인형의 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8
헨릭 입센 지음, 안미란 옮김 / 민음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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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메르: 노라, 나는 당신을 위해 밤낮으로 기쁘게 일할 수 있어. 당신을 위해 가난과 고통을 참을 수도 있어. 그렇지만 어떤 남자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명예를 희생하지는 않아.

노라: 수많은 여자가 그렇게 해요.- p. 148

 

 

 

아마도 노라가 타란툴라 춤을 추는 장면이 아닐까.

이 춤이 끝난 다음에 헬메르는 문제의 편지를 보고, 노라는 집을 떠난다.

 

 사람들은 모두 노라가 떠나는 장면에 집중하게 된다. 연극의 클라이막스이자 엔딩이니 아무래도 당연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남편은 물론이고 아이들 셋을 버리고 떠나는 그 장면에 사람들이 충격을 먹어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형의 집에서 발단은 노라가 헬메르의 말단부하에게 돈을 빌리면서 시작되는 일이다. 첫째로 이 희곡이 씌여진 당시엔 노라가 어음장에 직접 싸인할 수가 없는 형편이라서(이런 점에선 우리나라에서 호주제가 없어진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친정아버지에게 꼭 싸인을 받았어야 했었다. 그러나 돈을 빌리는 이유가 헬메르가 병이 걸려 이탈리아로 요양을 떠나야해서였는데, 그때 친정아버지도 병에 걸려 오늘내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싸인을 받을 수가 없었다. 둘째로 헬메르의 말단직원이 잘릴 위기에 처해 노라를 협박하며 붙잡고 늘어질 때이다. 그는 결국 집앞 우편함에다가 노라의 행실을 낱낱이 고한 편지를 넣고 집으로 가는데, 집의 우편함 열쇠를 헬메르가 가지고 있어 그녀는 혼비백산하며 어쩔 줄 몰라한다.

 노라는 기적을 두번 논한다. 첫번째 기적은 헬메르가 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기적이다. 그러나 헬메르가 그녀의 아버지의 부도덕함을 운운하며 그녀를 헐뜯자, 그녀는 내심 두번째 기적을 논한다. 헬메르와 그녀가 둘 다 변하는 기적이 일어나야 그들이 다시 만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자는 언제나 남자를 떠날 때 희망을 남긴다. 그러나 남자는 여자를 인형으로 안다. 세상이 가부장적이면 가부장적일수록 사랑은 게임 취급을 받는다. 사랑을 '썸' 따위로 부를 뿐이지 '사랑'이라고 제대로 부르지 못한다. 지금 시대같았으면 노라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재산을 확실히 챙겼을 수도 있지만, 반면 집을 나가기도 전에 헬메르의 손아귀에 목이 부러졌을 수도 있다. 하룻밤만 오누이처럼 지내자고 매달리는 헬메르도 참 구질구질하기도 하지. 세상 모든 남자들이 미련없이 세상으로 그녀들을 보내줬으면 좋겠다.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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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지음, 김혜경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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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사랑은 미래 세대들에게 지속성 없는 짧은 유효 기간과 편리주의의 경향에 넘어가지 말라고 우리를 초대합니다. 미숙하고, 무관심하며, 소심한 상대주의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또 자기도취에 빠지지 말라며, 파산과 실수 앞에서 모래 속에 머리를 묻은 타조처럼 되지 말라고 합니다. 사랑은 약함 속에서도 자기를 세우고 서로 화해하고 성장하는 모든 힘이 있음을 인정하라고 우리에게 촉구합니다.

 

 선택을 해야만 했던 일이 있었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말은 안했지만 선택은 이미 끝났다. 개인적으로 난 누구도 손해보지 않게 선택을 잘한 것 같은데, 그쪽을 선택하다가 말을 잘못해서 본의 아니게 나와 관계가 좀 서먹해진 인간이 있다;;; 이걸 리뷰에다가 올리면 더 서먹해질까(...) 그래도 해주고 싶은 말이 그대로 쓰여져 있어서 일단 올려본다. 어차피 올려봤자 그 사람이 안 볼 거 같기도 하지만. 

 

 

남녀의 사랑이 사랑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기에 커플이 나오는 짤방은 자제하려 했건만

어쩌다 에반게리온의 신지와 신지 엄마의 가족애를 드러내는 사진을 올려버렸다.

 이 책은 맨 먼저 경청하는 사람의 자세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을 보면서 속으로 슬퍼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그들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필요를 모두 모아서 주님께 청하는 게 진정한 경청의 자세라는 것이다. 그 다음 우리가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기 위해선 '마음을 찢고 백성을 위해 싸우는 듯이 기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하느님에게 사랑을 받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빛을 내부에서 꺼내어 마음이 가난한 자들에게 드러내라는 것이다. 여기서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란 배척된 사람들 사이에서 눈을 막고 귀를 막고 마비된 채 사회적 불의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중대한 도덕적 결핍을 야기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손상시키며, 사회의 조화와 평화를 위협한다고 한다. 그 다음 교황은 (아직 추기경 시절에 쓴 책이니까) 아르헨티나의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선 신자유주의를 어느 정도 멀리해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전에 쓴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에 쓰여져 있는 의견과 같아서 깜짝 놀랐다.

 단지 약간 아쉬운 게 동성애는 찬성하지만 동성 결혼은 반대한다는 의견이었다. 교황이 되셔도 그 의견은 변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결혼해도 애는 안 낳는 노키드도 많은데, 어째서 그에 대해선 한마디 말도 없으실까? 아무튼 그 글 하나를 제외하고는 굉장히 생각할 게 많은 책임에는 틀림없다.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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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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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러나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가정이 있다는 것이 부모들이 자녀를 양육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거가 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유치산업 보호 정책에서 실패한 사례가 있다고 해서 전략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보호주의의 잘못된 사례는 그 정책이 현명하게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줄 뿐이다.

그러나 개발도상국들은 대부분의 경우 복지 시스템이 매우 취약하거나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 무역 조정으로 인한 실업은 선진국에서는 생사를 가르는 문제가 아닐 수 있지만, 개발도상국들에서는 생사를 가르는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 실제로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경제적, 정서적으로 든든한 지원을 받아온 사람들이다.

 

 

 

 

 

  

이 글에선 '5포 세대'라는 단어는 눈꼽만큼도 나오지 않았지만

  위의 글들을 읽어보면 '5포 세대'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자동적으로 떠오른다.

그림을 보면 현재는 5포가 아니라 7포로 늘어났나보다(...)

 

 내가 더이상 촛불집회에 함께하지 않는 이유를 몇몇 아는 사람들 외에는 얘기한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사실 굉장히 단순한데, 촛불집회에 있던 사람들 중 내가 아는 일부가 어쩐지 거의 아나키즘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굉장히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대한민국은 존재하고 있는 데다, 대통령 하나 잘못 뽑으면 그에 대한 희생이 너무 크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진보층은 범세계같은 이론을 주장하고 있고, 대부분의 일반 시민들은 '정치판에서는 그놈이나 그놈이나 다 똑같다'는 말을 반복해서 늘어놓고 있다. 장하준에 의하면, 이 모든 게 선진국 신자유주의자들의 함정이다. 그의 해답은 이러하다. 개발도상국이 알아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게 가만 냅둬라. 이 책의 끝에서는 한단계 더 나아가 '기울어진 운동장' 이론을 내세워 개발도상국에게 진정으로 유리한 무역을 장려해야 한다고 쓰고 있다.

 

 사실 이 사람의 이론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일단 개발도상국을 발전시켜놓고 선진국이 더불어 발전하는 걸 지켜보게 하며 신자유주의자들을 설득하면 그들도 마음을 고쳐먹으리라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생각이다. 그리고 박정희 정권 외 몇몇 독재 정권들의 경제 '신화'를 인정한다는 점. 이후에 노동자들의 복지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은 하지만, 계속해서 '희생'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빼먹지 않는다. 하지만 선진국의 '사다리 걷어차기'로 인해서 개발도상국들이 기어오르지 못하게 세계화를 만들었다는 주장과,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어 개발도상국이 (위에서 아래로 달려내려감으로서) 선진국과 대결하기 쉽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찬성한다. 개발도상국을 '아이'로 그리고 선진국을 '어른'으로 그려낸 점이라던가, 기타 등등에서 독특한 묘사와 비유가 돋보였다. 아무튼 이 분은 개발도상국들에게(특히 아프리카를 주목하고 있는 것 같다.) 희망을 주기 위해서 이 책을 쓰셨으니 말이다.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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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애니비평 2015-09-09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구는 줄고, 그러면서도 서비스직종(가령 편의점 커피숍 등등 여가 및 편의시간)에 외국인을 꺼리는 한국이기에
역으로 가는 현실에서 참.....
저도 왠만하면 여자가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나, 이 현실에서 남자나 여자나 모두 포기...눙물

진보쪽 사람들의 착각이 재생산에 대한 부분을 간과하는 것 같더군요. 재생산부터 고려하지 않으면 완전 사멸하죠.
나라가 붕괴하기 전에 한국인이 붕괴할듯
 
함께 - 나에게 용기를 주는 한 마디
이와이 도시노리 지음, 황소연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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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가족이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나는 자신이 아닌 타인입니다.

세상은 온통 적으로 가득하다, 반대로 세상은 친구로 가득하다고 느끼는 기준은 대체로 어린 시절의 가족 관계에서 판가름 납니다.

하지만 성격은 어른이 되어서도 훈련을 통해 충분히 바뀔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세상이 온통 적으로 가득하다고 느꼈더라도 지금 이 순간부터 적은 어디에도 없고 세상은 친구로 가득하다고 여기는 습관을 길러보세요.

 

 

다함께가 아닙니다.

쳐 죽일 놈들.

극혐짤 올려서 죄송합니다.

 

  

함께입니다.

 

 뭐 그렇다. 내가 내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들여다본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난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본다. 혜민 스님이 그 이론을 상당히 강조한 것으로 보는데, 스님이신 그 분은 언제든지 속세에서 벗어나 산을 타면서 혼자의 시간을 지닐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그럴 시간을 제대로 지니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직시할 때마다 거부감을 가지는 듯하다. 위기에 처하면 부모, 친구, 심지어 애인마저 다 버릴 수 있는 자신의 그 모습에서 구역질을 느끼고 마침내는 하나의 거대한 쓰레기로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다시 말해, 자기애에서 비롯된 자기 혐오의 단계에서 끝난다는 이야기이다. 혹은 일에 쫓겨서 미처 그런 단계도 밟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을 통찰할 수 있는가? 요즘엔 대게 혼자 외따로 떨어져 사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에, 남에게 자신을 평가해 달라고 질문을 한다. 시시때때로 남의 눈으로 본 자기 자신에 대해 듣고 성찰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 기분 나쁘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단지 '다를' 뿐인데 '틀리'다고 말하는 것이다. 

 

 대게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굉장히 비판적이며 '객관'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신공격은 그 사람과 '소통'하며 마음을 '함께' 나누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나도 어떤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지금도 어려움을 느끼고 있지만, 어떤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선 일단 많이 듣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비판하는 사람들은 자기 할 말을 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모하여 심지어는 평가해달라는 사람의 기를 누르기까지 한다. 번지르르한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부모던 친구던 연인이던 간에 멀리 하는 게 좋다고 본다. (나같음 애초에 내 옆에 있는 것 자체를 허락하지 않지만 말이다.) 이 책의 저자 이와이 도시노리의 최근 책 제목이 '나는 더 이상 착하게만 살지 않기로 했다'인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의 리뷰를 쭉 훑어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인간관계가 협소해서 공동체와 함께 더불어 살라는 말을 다는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렇게 쓴 분들이 많아서 좀 길게 적어본다.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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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5.9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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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솥

 

배순금

치익칙 증기 소린 추억의 기차 소리
날마다 익숙한 듯 그 길을 달려와서
한 다발 저 들꽃 같은 밤 내음을 풀어 놓는.

 

 

 

  

여기서 러브라이브 하나요의 밥짤을 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이번 호에 나온 이야기는 대부분 먹을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역시 어르신들이 잘 보는 잡지라서 그런지 술에 대한 이야기는 빼놓지 않고 등장한다. 박찬일의 현 요리사 모에 현상(?)에 대한 일침도 상당히 흥미진진하게 봤다. 진정으로 요리사를 하고 싶은 사람은 방송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박봉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요리를 해나간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요리를 만드는 데에도 나름의 자부심과 장인정신이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포즈보다는 완성품인 요리가 맛나야' 하니 말이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을 가서 김범의 노란 비명이라는 재미있는 영상작품을 본 적이 있다. 

 

 훌륭한 셀프 디스였다. '저 사람은 언제 그림을 그릴까' 싶을 정도로 쓸데없는 물감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고, 드디어 붓을 잡을 때 한 '일'이란 붓을 옆으로 그으며 동시에 비명을 지르는 것 뿐이었다. 물감 색깔에 따라 비명의 임펙트는 달라졌지만, 그 외 새롭다 할 것도 없었다. 분명 그것은 '참 쉽죠?'라는 명대사를 만들었다는 방송가 밥 로스에 대한 전면적인 냉소였다. 한 번 꼭 보시길 바란다. 개인적으로 이 분의 영상이 하이라이트이긴 했지만, 다른 분들의 작품들도 상당히 신선했다. 미술관에 가면 전반적으로 돈을 내는 게 씁쓸한 느낌이었는데, 저 때는 정말 돈이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좀 더 열심히 돌아보지 못한 걸 아쉽게 생각한다. 왜 난 그 때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며 자리를 비켜줬을까(...)

 주위에 글을 쓰겠다는 사람들도 있고, 음악가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러나 다들 하나같이 생계가 어렵다느니 잡소리를 늘어놓지, 한 줄이나 제대로 열심히 쓰질 않는다. 아무리 생계 때문에 다른 일을 하고 있다고 해도 그렇지... '그럼 퇴근 후에 핸드폰이나 게임이나 컴퓨터나 TV를 놓지 못하고 있는 건 어떻게 생각해?'라는 나의 질문은 사실 '대체 그 빌어먹을 작품은 언제 완성하는데?'이다.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튼 상대방의 대답은 보통 이렇다. 자신도 사람이지 않느냐고. 그래. 추가하자면 '아가리만 동동 떠다니는' 사람이겠지.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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