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플란드 우체국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12
장이지 지음 / 실천문학사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가슴이 까맣게 타버린 벌레야

벌레야, 나는 더 독한 지옥이 되어야겠다.

노래가 삭고 삭은 지옥이 되어야겠다.

내 지옥이 너의 지옥보다 지독해져서

혼자 버티고 서 있기도 어려워야겠다.

눈먼 절망이어야겠다.- 충옥 중

 

 

쓰는 단어도 그렇고 시가 전반적으로 부기팝의 느낌을 많이 닮았다.

 

 ... 요새 하도 표절 논란이 빗발치다보니 미리 못을 박아야겠는데, 이 시집은 표절을 쓰지 않았다. 도리어 굳이 이런 시집에다가 이런 설명을 해야 하는 걸까 갸우뚱해질 정도로 시의 문장과 단어에서 원천이 된 배경을 구구절절히 설명하는 면이 있었다. 예를 들어 폐허에 대한 시를 쓸 때 부기팝을 인용한 건 좋지만 굳이 그에 대한 설명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굳이 설명을 붙이진 않았지만 사도와 기지, 그리고 (플랫 연작시에서) 새하얀 바다같은 곳에 혼자 남겨지는 이야기도 나왔는데, 난 거기서 충분히 에반게리온을 떠올릴 수 있었다. 에반게리온은 너무 유명하니 괜찮고 부기팝과 기타 애니메이션에 대해선 따로 설명을 할 필요가 있었다고 본 것일까? 시인을 찾아서 한 번 물어보고 싶다. 아무튼 이 시집은 그 정도로 일본 애니와 만화에 한 마디로 쩔어있었다. 그 아이디어들은 민주화 운동 때 중2병이 온 시인의 고초(...), 시인 특유의 동성애적 코드에 대한 자학, 기타 사회적 비판에서 주로 쓰였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해답은 '충옥'이란 시 마지막 부분에 잘 나타나 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부득불 이를 악 물고 성공하리라 다짐할 텐데 이 시인은 시나리오를 쓰면서 굶주려 죽는 사람들, 꿈을 못 잊어 1년에 500만원 벌고 월세로 600만원을 날리는 영화배우와 함께 지옥으로 가겠다고 다짐한다. 아니, 오히려 그들보다 더 독한 지옥으로 가겠다고 결심하는 것 같다. 이 결심은 단순한 자학만은 아닐 것이다.

 

 P.S 성인 '나'가 라플란드 우체국으로 가다가 소년 '나'에게 편지를 전해주지 못한 이유는 아마 타임 패러독스 때문일 것이다. 타임머신을 써서 과거로 돌아갈 경우 과거의 나와 마주쳐 혼란이 일어나는 상황을 가리킨다. 이는 슈타인즈 게이트라는 게임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또한 그 게임의 주인공도 "메일"로 '나'들과 소통할 뿐, 직접 마주하는 일은 없었다. 문학평론가 김영희가 말한 것처럼 나와 나의 커뮤니케이션 실패같은 그런 거창한 게 아니라 생각한다. 이러니 사람이 만화를 보고 애니를 보고 게임을 해야 한다. ㅉ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머로 재치있게 말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유재화 지음 / 책이있는마을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이별마저도 즐겁게 맞이하라. 인생에서 겪는 한두 번의 이별은 실패나 좌절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으로의 터닝포인트다.

 

 

 

 

 

슈타인즈 게이트를 보면 이제 실패 단어만 들어도 스즈하가 떠오를 것이다.

결론만 쓸게요. 실패했다실패했다실패했다실패했다 실패

 

 이 책을 읽으면서 얻은 교훈은 사실 '남을 깎아내리는 유머는 진정한 유머가 아니다', '상대방의 기분을 헤아려서 유머를 해라', '너무 오버하면 유머를 한 것만도 못하다' 정도일 것이다. 자기계발서는 풍부한 예시를 제시해주긴 하지만, 너무 소설같은 분위기를 내서 별로인 경우도 많다. 이 책 처음 부분에 반어법을 구사한다는 전략도 그 중 하나이다. 진심을 어설프게 숨기면 오히려 더 의심과 화를 북돋울 수도 있다. 국어에 능숙하거나 선수가 아니라면 정말 위험한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책속의한줄에서 이 구절이 인상적이라고 올리니 누군가 이런 댓글을 달았다. '누구에게나 인생역전의 기회가 온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착각하기 쉬운 것은 그 기회가 멋지고 화려한 모습으로 올거라 기대하는 거죠. 그것이 긍정적인 변화든, 비관적인 변화든... 우리모두 현명하게 대처하는 강인함과 자기확신을 가졌으면 합니다.' 나는 이렇게 답글을 달았다. '강인함따위 지녀서 엇따 쓰시게요? 거울보면서 자기비판에 쓰실 거 아니라면 그만 두는 게 좋지요. 현명한 이별, 마음 아프지 않은 이별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이 때가 아니면 터닝포인트를 어디에서 찾겠습니까?' 누구나 다 힘들고 고달프게 살며, 심지어 우리보다 더 아프게 지내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나같이 날카로운 인간 만나서 개쪽당하지 말고. 이별과 실패는 확실히 우리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맞다. 멋지고 화려하던 추하고 고약하던 솔직히 지금 시대에선 그저 평범하게 남에게 해 안 끼치고 잘 살아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괜히 내가 저 위에 올라가겠다 복수하겠다 이를 갈다가 이명박처럼 못생겨지는 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학.중용 - 2015년 개정신판 동양고전 슬기바다 3
주희 지음, 김미영 옮김 / 홍익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국가를 이끌어 가면서 경제에 힘쓰는 것은 반드시 소인에게서 나온다. 소인에게 국가를 다스리게 한다면 재앙과 해악이 함께 이를 것이다. 어진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국가는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이익을 창출하지 않고 의로움을 추구함으로써 이익을 창출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지금 상황에 매우 적절한 발언이라 생각한다.

 

 아마도 우리나라 사상 제일 최악이자 최악이 되어야만 하는 SK 회장이 풀려났다. 그 날이 2015년 8월 15일이다. 그 날을 기억하는가? 혹시 그 날이 가깝고도 머나먼 옛날처럼 생각되지 않는가? 만약에 그렇다면 당신은 그냥 헛되이 산 자는 아닐 것이다. 여기서 그저 취업전선에 휘말려들었거나 연애전선에 말려들어 하루하루를 날벌레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제외한다. 적어도 F-X 사업이 어떻게 개판이 되었는지 김관진 등의 인물들이 우리나라 보안을 어떻게 광란의 파티로 만들었는지 상식적으로 머릿 속에 입력되어 있는 사람들 이야기다. 이전에 김관진이 진정으로 국가안보를 생각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Y군. 이 글 보고 있나? 내가 내기에서 이겼으니 나 만나면 밥 사라. 이미 절교했지만.

 분노하는 와중에서도 Y군이 동양철학에 대해서 공부 좀 하라고 충고했던 건 적절했다. 덕분에 이런 촌철살인의 명언도 보고 말이다. 이 세상에 상식적인 것들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연인관계에서 친구로 가는 게 가능하지 않겠냐는 이론에, 커플 사이에서 서로 합의만 한다면 다자연애도 가능하지 않겠냐는 이론에, 교과서 이론을 하나로 통일하기 위해 국정교과서를 만들면 어떻겠냐는 이론까지. 우리를 살아있게 만들어준 우리나라 단군님이나 그 조상들이 이 말을 들으면 거품물고 쓰러질 소리다. 꼰대라고 보지 마라. 그들 또한 인간이다. 조선시대 세종 때에도 레즈비언은 있었고, 정확히 확인되진 않았지만 게이도 있었다. 기득권과 법규가 너무 엄격했을 뿐 들키지만 않으면 그럭저럭 묵인하면서 살아갈 수는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너무하다. 사람들이 정말 후안무치하게 뻔뻔스럽다. 인간으로서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게 있다.중용에서는 이런 말도 한다.

 

은밀한 곳보다 눈에 잘 띄는 곳이 없고, 미세한 일보다 분명하게 드러나는 일은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홀로 있을 때에 신중하게 행동한다.

 

 

  

한 마디로 얼척없는 말 지껄이지 말고 닥치란 이야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월의 편지 - 세월호 희생자 정지아(단원고2)의 글
정지아 지음, 지영희 엮음 / 서해문집 / 201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너에게 내린 줄을 당기고 싶다는 건
내게로 오게 함이었다

뱃전에 달라붙는 소외된 냉기쯤
더 아플 것 없는 청호동 바람에 훑어내고
가끔 큰 배가 지나칠 때마다
물결 사이로 솟구치는 유혹은 두려움이기도 하지만
네가 왜 
먼 바다에까지 외등을 밝히고
밤마다 서성이는지 알아야겠다
갈고리에 끼운 쇠줄
힘껏 당기어
네 가슴 한가운데를 끌어내는데
내 먼저 가고 있는 건
발 먼저 내달아지는 건 무슨 까닭인가

바람 속 너를 끌어안고 싶은 
오늘
내 가슴 한가운데로
굵은 쇠줄 하나 내리고 싶다.

 

 

  

이것이 바로 강원도 속초에서만 쓰이는 갯배.

 지역 사람들은 이게 어째서 명물인지 잘 모르는 것 같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상당히 의미있는 관광상품이라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배를 타려면 노가 필요하고, 노를 젓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래서 베네치아같은 곳에서는 배를 타기만 할 뿐, 직접 배를 몰아보지는 못한다. 그러나 갯배는 단지 쇠줄만 잡아당기면 여기서 저기로 쉽게 이동할 수 있다. 어른들 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직접 배를 끌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인근에 항구가 생겨서 바닷물이 점점 더러워지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그 바닷물마저 갯배를 타면 새롭다. 바닥의 출렁거리는 느낌은 심장의 두근거림과 어느 정도 닮았다. 이 시는 갯배의 모습을 상당히 잘 표현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시집에선 아쉬움이 남는다. 구석구석 슬픔과 눈물에 젖은 단어들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단지 시인의 개인적인 감상일 뿐이다. 아무리 자신이 슬픔을 느낀 그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해줘도, 독자들에게는 그것이 남의 일일 뿐이다. 감정적인 발언을 좀 더 배제하거나, 최소한 불확실하게 얼버무렸다면 조금 더 매력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
와타야 리사 지음, 정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유일하게 믿었던 키누요한테서도 버림받고, '누구 남은 사람 없어요' 하는 질문에 손을 들어올릴 때의 그 비참함. 적어도 입으로 대답했으면 좋았을 거다. 두리번거리다가 말없이 이마 높이까지 손을 들어올리는 내가 마치 무슨 괴물 같았겠지. 또 다른 나머지 한 사람도 나처럼 비굴하게 손을 드는 방법을 취해 씁쓸했다. 이 들어올린 손으로, 아직까지 반에 친구가 없는 인간은 나와 또 한 명의 그 남자아이, 니나가와뿐이라는 게 명백해졌다.

 

 

 

  

묘사되는 여주의 모습과 가장 비슷한 캐릭터라면 이쪽이 아닐까 싶다.

 

 보이쉬한 캐릭터는 꾸준히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보이쉬한 측에 속하는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지만 말이다. 딱히 여자력을 과시하고 싶지도 않지만(여자력이란 말만큼 여자에게 폭력적인 단어도 없다.), 설령 여성스럽게 소녀스럽게 행동하려 노력해도 그게 더 부자연스러워 보여서 보이쉬라는 딱지가 붙어버린 사람도 있다.

 

 일단 그게 문제가 아니라 말하고 싶다. 여기서 등장하는 여주인공은 불쌍할 만큼이나 조숙하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중학생 시절에 대한 언급이 잠깐 등장하는데, 아무리 독백이라 하더라도 그녀가 그렇게 급성장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다 털어놓지 않는 그녀의 현명함에 혀를 내두를 뿐이다. 그녀는 소설 중반에 자신이 비뚤어진 생각을 지녔다고 자학하지만, 글쎄. 그녀의 회의주의는 사실 사회의 근본적인 액면에 맞닥뜨린 20대 초중반의 사람들이 학교에서 강제로 심어준 이상적인 환상 세계를 저버릴 때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절망감에 가까웠다. 아마도 키누요같은 친구에 의해 계속 압력을 받은 탓에 더 쪼그라들었겠지. 여름엔 이렇게 잠깐 사랑과 호기심을 키웠겠지만, 여주인공과 니나가와가 맞닥뜨릴 세계는 혹독할 것이다. 2학기가 되면 하츠의 예측대로 될 것이다. 일단 2학기가 시작되면 니나가와가 먼저 폭행을 당한다. 하츠는 니나가와를 밟는 사람을 몰래 부러워하겠지만, 그것도 잠시. 하츠가 니나가와를 좋아하는 걸 눈치챈 키누요가 자신들과 친한 다른 무리들에게 그 사실을 알릴 것이다. 결국 니나가와와 똑같이 하츠도 폭행을 당하지 않으려면 하츠는 니나가와의 등짝을 밟아야 할 것이다. 그녀도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처음 니나가와의 집에서 니나가와의 오타쿠적인 액면 그대로를 발견했을 때 그를 사정없이 찬 데에서 그렇다. 니나가와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하츠가 자신에 대해 혐오감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하츠는 니나가와의 등짝을 지긋이 밟을 뿐, 때리지 않는다. 이는 결국 그녀도 조만간이던 좀 더 늦던 간에 니나가와같이 왕따나 폭행을 당하리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고등학생 때의 인간관계는 성인이 되도 그 특성이 바뀌는 경우가 결코 없다. 니나가와 또한 자신의 등을 (아마도) 처음으로 때리고 밟은 하츠의 발가락을 잊지 못할 것이다. 어느 쪽이나 쉽게 잊지 못할 청춘이 되리라는 건 자명하다. 

 

 그리고 나는 여주가 니나가와에게 느낀 공감 이전에 키누요와 여주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 그리고 다른 여자 아이들의 브래지어를 빤히 쳐다보는 그 시선에서 굉장히 퀴어함을 느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이런 소설이 나왔다면 기독교들의 반발에 의해 동성애를 조장하는 작품으로 찍혀 매장당하지 않았을까, 라고 멍하니 생각하게 될 정도였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래도 니나가와같은 남자랑 사귀면 안 된다'

라는 말을 꼭 한 마디 남겨주고 싶었는데,

와타야 리사가 2012년에 이런 내용의 소설을 썼다고 한다.

이 작가도 살면서 한두번쯤 우유부단한 남자한테 데였던 것일까. 모를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