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의 모험 - 빌 게이츠가 극찬한 금세기 최고의 경영서
존 브룩스 지음, 이충호 옮김, 이동기 감수 / 쌤앤파커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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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게무스는 갤로웨이에게 머큐리 우주선 캡슐 모양의 라펠핀을 건네주면서 다소 멜로드라마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며 이 면담을 시작했다. 그 라펠핀은 머큐리 우주복에 대한 연구로 올게무스가 상으로 받은 것이었다.



올게무스는 우주복 만드는 회사에서 근무하는데 비슷한 종목의 회사에게 헤드헌팅당해 이직을 함. 근데 지금 읽어도 이 분 약간 모자란 게 직속상사에게 보고하고 나서 직장 동료한테 찾아가서 이직했다고 알리며 저런 짓을 함. 박봉 블랙기업이라면서 그냥 얌전히 탈주할 것이지 왜 굳이 다른 흑우의 속을 긁음? 결국 저러고 싸워서 소송까지 들어갔다는 챕터임. 회사 기밀을 빼간게 잘못되었다는 판결까지 가지만 내 생각엔 초반에 저딴 식으로 싸움 안 걸고 조용히 갔으면 그보단 관대한 처벌이 내려졌을 듯함. 뭐든지 말을 어떻게 하느냐 혹은 하지 않느냐에 따라 다름. 내 생각인데 저 갤로웨이란 친구는 라펠핀 못 받았음.

당연히 시발 이 새끼 뭐야? 회사가 나한테 라펠핀을 안 주니까 지가 주겠다는 거야? 생각할 수 있을 거 같음. 아님 라펠핀 없이 옆에 가서 '내가 이런저런 집안 사정이 있어서 이직하게 되었다. 인수인계 착실히 하겠다.'라고 하면 남의 일에 뭐라하는 사람 생각보다 많지 않음. 기업도 정치도 다 사람이 하는 일임. 결국 인간관계에 기반해있음. 인간관계라고 해서 딱히 친하란 얘긴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쟁하란 얘기도 아님. 웬만하면 좋게 원만하게 일을 처리하는 게 가장 좋고, 이 책은 그걸 확인하는 계기가 된 듯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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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체중 - 크고 뚱뚱한 몸을 둘러싼 사람들의 헛소리
케이트 맨 지음, 이초희 옮김 / 현암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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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팬데믹이 시작되고 얼마 후 한 번 더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를 시작했는데, 6개월 동안 전혀 진전이 없었다. 그래서 큰 결심도 없이 먹기를 멈췄다.

(...) 2021년 1970년대 TV쇼를 리메이크한 폭스 TV의 판타지 아일랜드 첫 화에서 크리스틴이라는 아침 뉴스 앵커는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는 섬에 묵기 위해 상당한 돈을 낸다. 그녀의 판타지는 먹어도(먹고 먹고 또 먹어도) 살이 1그램도 찌지 않는 것이다. (...) 그리고 그녀는 전형적인 다른 여자들과 비슷하게 엄격하지만 분별 있는 식이 제한에서 벗어나나 짧고 거칠고 마법 같은 시기를 즐긴 후 결국 가벼운 식인 풍습에 빠진다.


하지만 아무리 다이어트를 해도 마이코처럼 로봇 아나운서가 나오면 자리 지키기 쉽지 않을 걸? 결국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게 다이어트의 최종과제일 수밖에 없다. 먹고 토하지 않는 이상 먹고 칼로리를 흡수하지 않는 방법이 없거든.

저자 케이트 맨은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하며 이 글을 썼다고 한다. 그 다이어트는 악플에 의해 강제로 시작되었으며, 모든 다이어트가 그렇듯이 아주 고난이었다고 진술한다. 그녀는 작아지라고, 날씬해지라고 강요하는 세상에 대한 비난을 시리즈로 책에 담고 있고 이 작품은 두 번째다. 이미 미국엔 리베카 솔닛(남자들은 나를 가르치려 든다)처럼 한 번 들으면 평생 잊을 수 없는 제목을 가진 책이나, 혹은 수전 팔루디(백래시)처럼 전설적 책을 쓴 저자들이 있다. 차라리 이럴 땐 일기식으로 솔직하게 나가는 게 먹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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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사회 149호 - 2025.봄 (본책 + 하이픈)
문학과사회 편집동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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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광장에서 중에서

윤은성

기억하니

우리는 음악과 지구과학을 같은 날 배우고

함께

옥상에 올랐잖아

구름 사이로 빛이 보이면 무언가 알아챈 것만 같은

기분도 들고

소나 강아지의 이마를 만지는 것 같은

부드러운

떠가는 시간을 촘촘히 알 것 같았잖아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 하면서

엎드려 울기밖에 할 수 없더라도

시간에 맞추어 책상에 앉아 이어폰을 나눠 끼었잖아

그때도 이걸 알았던 기분이야

내가 사는 도시에선 자주 광장으로 사람이 모이고 흩어져

계속 말하려고 하는데 어쩐지

여기에서 외치는 기도가 멀리까지 가닿지 못하는 기분도 들고

(......)

내 목소리가 지상에서

또 지하에서 잠시 울리고 사라져

우리가 붙들고 모이는 게

미래를 등지고 선 사람들이 몸을 되돌려보려고

보이지 않는 선으로 연결된

조용한 기도라고 하자

유리와 안개를 동시에 깨뜨리고

밖에서 안으로 집어넣는

손들을 알아채려 잠시 모였다고 하자


글 보시는 분들은 광장에서 노래부르는 게 저지되었다는 하림의 소식 들었음? 어쩌면 이번 예술인을 통제하는 상황은 어떤 대통령이 뽑히더라도 계속되리란 생각이.. 시 계열은 점점 메르헨과 비유로 접어드는 것 같아. 자유를 잃어버린 상태에서 이렇게 흘러가는 현상이 좋진 않아보여. 반박시.. 모르겠다 착잡하네. 이랑도 그렇고 내가 좋아하는 싱어송라이터는 밥먹고 살기 힘든갑다. 와중에 윤은성의 이 시는 좋았다. 최근 좋은 메세지의 시를 쓰는 게 매우 능숙한 시인을 간혹 본다. 그도 그런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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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이 아름답다 284호
작은것이 아름답다 지음 / 작은것이 아름답다(잡지)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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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윤석열 정부가 한편으로는 원전사업, 석유채굴시공을 비롯한 성장 중심의 산업사회를 촉진하고자 했고, 다른 한편 여성, 장애인, 퀴어, 이주민과 같은 소수자를 혐오하는 것으로 지지기반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비롯한 저항(네거티브)의 상황을 반영하지만 그보다는 더 깊은 구성(포지티브)의 차원을 지닌 것은 분명하다. 내란 세력과 극우 파시즘 세력이 공포와 혐오에 바탕을 두고 배제와 차별이 난무하는 폭력과 위력의 권력정치를 전개했다면, '빛의 혁명' 참여자들은 그에 맞서면서 기쁨과 사랑의 활력이 넘치는 평화와 연대의 생명정치를 보여주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구성의 차원을 설명해 준다.



사실 저항이 격렬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여 아쉬움이 남았으나 결국 일이 터졌다고 생각하면 참 찝찝하다. 이렇게 했는데도 결국 김문수 지지율이 오른 것이다. 모여서 꺅꺅 다 해놓고 막상 자리에서 흩어져서 변질되는 사람들보면 신기하지 않은가? ㅋㅋ 난 밤새 시위했는데 아침에 그래도 국민의힘 찍을거라고 하는 인간도 본 적 있음. 인간세상 참 신기함. 아, 그렇다고 해서 절대 인간에게 관심이 있는 건 아님 ㅋ 더 시골에 가서 살고 싶음.

근데 민주당 패인 명확하긴 해서 할말이 없다. 자기네들이 아이돌 스케쥴이다 등등 덕후세계 운운했으면서 소비하는 덕후의 절반이 넘는 여자마음 잡는데 실패했다는 것. 사실 실패한 것도 아니라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광장에 줄서서 사준다고까지 했는데도 대놓고 여자에게는 안 판다고 외면해버려서 지팔지꼰해버림. 지켜보고 있다보면 당연히 지가 반장될 줄 알고 설치다가 민심 및 표뺏긴 우등생같음. 이번에 투표는 해도 너네는 안 뽑을테니 알아서 잘 김문수 이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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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비평 207호 - 2025.봄
창작과비평 편집부 지음 / 창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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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의 존경을 받고 소수자와 취약계층을 대변할 수 있는 인권위원다운 인권위원이 임명되는 건이 너무나도 중요하다.

(...) 헌법개정 이전에도, 국가인권위원회법 등 관련 법령의 개정을 통해 인권위의 재정적 조직적 독립성을 강화하고, 인권위원 선임절차를 법제화해야 한다. 특히 인권위원의 자격요건을 강화하고, 소수자와 인권취약계층의 대표성이 충분히 강화될 수 있도록 법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누누히 말하지만 한국에서는 동성애 차별하지 않고 외국 특히 동양인 차별하지 않는 사람들이 절실히 필요하다. 적극적인 사람들이 인권 주장해야 한다. 인권 운운하면서 막상 저런 거 어떠냐 물어보면 허허호호하면서 좋게좋게 넘어가는 ㅅㄲ들을 뽑으니까 막상 상사가 보수로 뽑히면 동성애자들과 외국인 근로자들의 목숨이 위기에 처하는 거라고. 일본한테는 진심을 보이라 주장하면서 한국인들 속내 안 드러내는 거 개꼴불견임.

작년 12월 내란에 관련된 비평은 훌륭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훌륭한 글이 항상 두번째에 나온다는 것이다. 백낙청을 버리지 못하는 건 인정하겠다. 그런데 문제는 문학평론에서 발생한다. 개인의 발언자유는 인정하나 김지하는 그렇다치고 왜 자꾸 문단 갑질로 인해 나락으로 간 시인을 거론하는가? 창비 라디오 애청자였고 이번에도 내란 관련된 문학잡지들 검색하다가 생각나서 구입했는데 매우 실망했다. 어쩐지 내란 다룬 문학잡지들 거론하는 뉴스에서 창작과 비평은 빠졌더라(검색해보니 세계일보에는 거론되었으나 나머지는 대체로 쉬쉬하는 편). 우리 모두 예민해져야 한다고 본다. 1에서도 얘기했지만 전전대통령이 소수자들 정책은 '나중에' 하자고 발표한 덕분에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난 게 아닌가. 지금이라도 소수자들 싫으면 얼른 보수측으로 빠지시고 진보 측 사람들끼리 얘기해서 차별금지법 만들고 했음 좋겠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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