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이 아름답다 2015.10
녹색연합 편집부 엮음 / 녹색연합(잡지)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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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은 나무를 베는 도끼 소리로부터 시작되었고, 나무를 다 베어버리고 도끼 소리가 그칠 때 그 문명도 사라졌다.

 

 

 

나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이야기가 싫다.

 

 무언가를 주면 사람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요구하고, 결국에는 타인의 몸도 마음도 송두리째 베어간다. 그러고는 급격히 노인이 되어 이미 복구 불가능한 죽은 시체를 깔고 앉아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나는 물론 이 책을 매우 어릴 때 읽었지만, 그 때부터 인간에 대해 소름끼치도록 환멸을 느끼기 시작한 듯하다. 나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 경우가 있고 대체로 베어져서 밑둥만 남은 나무처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초토화를 시켰기에(...) 그런 점에 대해선 참회를 하지만, 참회도 할 줄 모르는 인간이 세상엔 너무 많다. 게다가 이번엔 나무의 단위가 아니라 아예 산 단위로 파괴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설악산 파괴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예전에 산은 우리 삶의 터이자 이동공간이었으나, 자본주의 때문에 레저와 부동산으로 보여지고 있는데, 파괴되는 지금도 산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게 전반적인 내용. 새가 노래하는 건지 우는 건지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결국 진실은 짝을 찾기 위한 부르짖음이다. 산도 우리를 기다리고 싶어서 기다리겠는가? 특히 지금같은 단풍철이면 인간만 봐도 경기를 일으키는 지도 모른다. 내가 산이라도 그러겠다. 산골 사람들마저 배신을 때리고 자기들만 살겠다고 케이블카를 짓자고 강력 주장하는 이 시기에 말이다. 품성이 시골답고 산과 바다다워야 산골이고 바닷골이지, 서울까지 가는 데 경기도보다 좀 더 오래 걸린다고 시골이 아니다. 천한 사람은 중졸이던 고졸이던 대졸이던 간에 좋은 대학 갔다고 머리에 뭐가 들지 않는다. 이번 사건은 '시골' 사람들이 얼마나 무식하고 재수없는지를 잘 나타내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난 이런 사람들이 '일부'라고 생각하고 그러길 바란다. 다른 나라에 비해 개발이 덜 되었다고 생각하는 데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결국 사람을 이 지경까지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통탄할 지경이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자기 아버지가 저지른 악행으로 욕 먹는 게 싫어서 제 2의 새마을운동을 펼치고 있다고 난 생각한다.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세우게 된 자초지종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강원도의 숙원사업이라며 설악산 개발을 강하게 밀어붙였고, 문재인 대표를 비롯한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는 '입장을 밝혀라'는 시민사회의 요청에 침묵으로 답했다. 급기야 전국경제인연합은 설악산 케이블카 계획에 대형 리조트와 호텔 같은 산지개발 계획을 더 얹었다. (...) 첫째, 자격 없는 위원이 투표에 참여했고 회의자료는 사전에 회람되지 않았다. 둘째, 양양군은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경제성 분석 보고서를 조작하였다. 셋째, 산사태와 낙석 위험을 제기한 산림청의 경고는 무시되었다. 넷째, 환경부는 '산양 주 서식지'를 알고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저번 주말 집에 가는 길에 천기누설 보고 있는데 크론병 이야기가 나왔다. 크론병이 사실 광우 쪽과 아주 연관이 없는 이야기가 아닌데, 꽤나 유명한 가수가 그 병에 걸린 사실이 최근 밝혀지고 여러 발병자가 TV 등 방송 곳곳에 나오고 있는데 아직도 침묵이 대세인 듯하다. 침묵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해놓고서 지금 쌍용 쪽도 세월호 쪽도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고 그럴 수도 없는 상황. 방사능 강제수용소도 그렇고 언제까지 너네의 병은 우리의 무관심과는 관계없단 식으로 나올지 모르겠다. 

 핵발전소 설립 반대, 세월호 논란, 거짓말, 혹은 아무 생각도 상식도 없는 인간들 같은 걸로 사람들과 싸우기도 많이 싸웠고 갈리기도 많이 갈렸다. 처음엔 '내가 이런 걸로 어떻게 돈을 벌어먹을 것이며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는가. 결국 난 내 고집만 부리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에 침통했는데 지금은 그런 싸움이 헛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취향은 절대 강요하지 않아야 하지만, 올바른 정신은 자꾸 강요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비참하게 죽을 수 있기 때문에(영혼이던 영성이던 육체던간에 말이다.). 그리고 나를 나 자신으로 유지하기 위해. 결국 소로의 말이 맞다. 언론과 말다툼은 버리고 직접 가서 행동하는 게 제일 좋다. 살인과 고통의 현장에서 신문 펴 읽고 치킨이나 뜯을 것이 아니라 그들의 손을 잡고 위로하는 게 나 자신에게도 제일 좋다는 뜻이다. 난 결국 평생 이들에 대한 기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다 ㅋㅋㅋ 내가 만나봤던 어떤 이성들보다도 더 아픈 사람들 그리고 아프기에 아름다운 사람들... 

 종교와 정치가 취향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종교도 정치도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종교는 우리 사람의 개개인 하나하나에 영성이 있다고 굳게 믿는 일종의 신념이다. 정치 또한 세상을 좀 더 살기 좋게 만들기 위한 발버둥이 아닌가. 그 둘로 인해 시간과 돈을 날리는 사람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종교와 정치를 '더 잘' 믿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자본주의 체계 속에서 벌이는 일종의 프로포즈 혹은 허세라고 생각한다. 결국 둘 다 세계감이라는 것으로 연결될 뿐인데 말이다. 사실 그런 게 중요한가? 어떤 짓을 해서라도 이 미친 자본주의 세상을 망하게 하는 게 중요하지. 설악산 케이블카던 지리산 둘레길이던 자연에게는 둘 다 지구 전체를 팀킬하려는 정신나간 짓으로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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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트 Axt 2015.9.10 - no.002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엮음 / 은행나무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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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거나 잘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거나 잘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따위 말장난에 감복하는 꼬맹이가 아니다. 솔직해져보자. 절망과 체념을 반복해서 겪는 동안 욕망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했다. 늘 내가 손해봤고 양보했다고 믿었다. 그런데 아닌 것 같다. 나는 나를 속이고 있었다. 내 욕망은 점점 세밀해지고 계속해서 구체적인 모양을 갖춰왔지 단 한 치도 작아진 적이 없었다.

 

 

 

내가 최근 들어 열성을 가지고 대하는 김덕희 작가.

그래, 내가 원하는 건 문학 속에서라도 대놓고 뻔뻔한 남자다.

숙취와 실수로 얽혀진 성추행과 표절을 가지고 '교통사고'라고 얼버무리는 남자가 아니라.

다음에 악스트가 꼭 이 분을 인터뷰하시리라 믿으며...

 일단 너무 기가 차서 표절 이야기부터 하겠다. 일단 신경숙 작가와 똑같이 표절 논란이 일었던 박민규 작가를 데리고 와서 표절에 대한 의견을 솔직히 말해보라 한다. 대체 어떤 악스트의 어떤 편집진이 이런 개떡같은 아이디어를 냈는지 모르겠다. 일단 난 개인적으로 이 작가를 가장 싫어한다. 배수아 작가와 똑같이 이 작가의 소설 중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만은 좋아한다. 사실 그 점에서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에 대해서 독자로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그 글을 쓴 작가에게 상세한 질문을 요구한데서 더이상 바랄 바가 없다. 그래서 별점도 처음에 주려고 했던 것보다 조금 더 높게 줬다. 하지만 단지 그 뿐이다. 내가 신경숙 작가를 아직도 용서할 수 없는 이유는, 첫째로 표절이 너무 대놓고 티가 난 데다 상습적이었기 때문이다. 둘째로 표절한 의혹?이 있는 대상 작품이 일본 극우파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경숙 작가가 너무 오랫동안 한국작가의 최상위 권좌에 앉아서 으스댔고, 끝끝내 독자들에게 빈말로라도 사과하지 않는게 괘씸해서이다. 그 점을 확실하게 짚고 나갔어야 했는데, 이 작가는 중요한 데서 말을 흐렸다. 단지 끝부분에서 권좌에 앉으신 분들은 물러가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미묘한 한 마디만 했을 뿐이다. 7/8월호에 나와서 '정치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른다'라고 주장하면서도 권좌에 앉은 분들 다 갈아엎어야 한다고 대차게 시원하게 발표하신 천명관 씨에 비교하면 너무 비겁한 태도이지 않은가?

 그 어이없는 글을 보고는 기가 차서(두번째 이야기하고 있다.) 씩씩대고 있었는데, 김덕희의 <모르는 얼굴>에서 싹 풀렸다. 스포일러 빼고 간단히 내용을 설명하자면, 증명사진을 고치는 일을 잠시 직업으로 삼은 어떤 히키코모리(라고 생각하고 싶다.)가 자신의 예전 고객을 목격하게 되어 사랑에 빠지고 열병을 앓다가 그녀의 사진을 자신의 취향대로 고치는 이야기. 단테의 작품 속에서 베아트리체를 보고 '너무 작위적인 거 아냐?'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십중팔구 이 단편을 낄낄거리면서 읽을 것이다. 남자 예술가들이란 하나같이 왜 이리 찌질하면서도 귀여운지 ㅋㅋㅋ

 작가들의 리뷰란이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왠지 교양서적을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두고 계신 것 같은데, 그보단 종이책을 읽는 '소수의 종'들의 생활패턴 설명에 초점을 둬 달라는 쓸데없는 충고를 남기며 글을 마치겠다. 아, 오래간만에 판타지와 무협에 대한 리뷰를 보게 되서 상당히 반갑고 좋았다.

 

 P.S 악스트 잡지 창간호를 가지고 모델과 함께 사진을 찍던데, 구글 검색해보면 네티즌도 그에 못지 않은 분위기의 사진을 찍어냈다. 이참에 아예 사진공모전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Outro에 보면 사람들이 약간 악평을 한 모양인데, 난 개인적으로 이 책의 스타일에 대해선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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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가 맨 앞 문학동네 시인선 52
이문재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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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손을 잡지 않았다면

 

이문재

 

아직 손을 잡지 않았다면
아직 어린 시절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았다면
그대는 아직 그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그대가 싫어하는 음식이 뭔지 모른다면
지금까지 자기 가족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면
그이는 아직 그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날카로운 첫 키스가 첫 단추가 아니다.
첫 키스는 서툰 기습 같은 것이다.
사랑은 손에서 시작한다.
사랑은 손이 하는 것이다.
손이 손을 잡았다면
손이 손안에서 편안해했다면
그리하여 손이 손에게 힘을 주었다면
사랑이 두 사람 사이에서
두 사람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두 손은 서로의 기억을 가지려 한다.
열 개의 손톱이 모두 그이의 얼굴로 보일 때
손금에서 꽃 피고 별 뜨고 강물이 흐를 때
그리하여 그대가 알고 있는 그이의 이야기와
그이가 알고 있는 그대의 이야기가 같아질 때
그때부터 둘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헤어질 수 있는 자격은 그때서야 생기는 것이다.
먼 훗날, 아주 먼 곳에서 문득 걸음을 멈추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렇다고 후회하지도 않으며
추억할 수 있는 권한은 그때서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츠바사 크로니클 첫부분에서 샤오랑과 사쿠라 사이가 유리로 가로막혀서

서로 마주볼 수는 있지만 닿을 수 없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는 그 이후로 샤오랑이 사라진 사쿠라의 기억을 찾기 위해 먼 여행을 떠나는 데서 의미가 깊어진다.

 

 나같은 경우는 보통 좋아하는 사람의 손을 잡는 데에서 스킨쉽이 시작된다. 첫사랑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줄곧 그래왔다. (물론 생길려다가 실패한, 잘 기억도 안 나는 미숙한 사랑은 제외하고. 그런데 이 시를 읽고 생각해보니 꼭 그런 분들과는 손을 맞잡은 적이 없더라.) 그리고 손잡기를 제외하고 사랑의 증거가 나타나는데, 죄다 그 사람에 대한 정보이다. 일단 정리해보면 어린 시절, 싫어하는 음식, 가족 이야기이다. 최소한 마주보고 있거나, 이야기를 들은 마지막에는 상대방의 손을 붙잡아줘야 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싫어하는 음식 이야기일 경우는 심각한 이야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다른 좋아하는 걸 먹자고 손을 잡아 다른 곳으로 끌어줄 수 있으니까. 아무튼 전부 다 당장 만나자마자 할 이야기는 아니다. 정상적인 맞선을 본 적이 없지만(...) 아마 그런 곳에서도 당장 싫어하는 음식 이야기를 하기엔 비매너로 취급될까봐 조심스러울 테고, 어린 시절이나 가족 이야기를 상세히 하기엔 좀 꺼려질 것이다. 나는 스킨쉽을 상당히 좋아한다. 손을 잡고 조곤조곤하게 대화하는 것을 나는 매우 좋아한다. 손을 마주잡고 걸어보지 못한 사람과는 아무리 이야기가 잘 통하더라도 왠지 낯설게 느껴진다.

 

 이 시집에 쓰여진 시는 쉬워 보이면서도 어렵다.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 중에서도 연꽃 이야기가 가장 생각할 여지가 많아서 좋았다. 게다가 내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게 하는 시가 왜 그렇게 많은지. '백서'는 세월호와 인혁당을 생각하게 했고, '태양계'는 Y를 생각나게 했고, '허리에게 말 걸기'는 M씨를 생각나게 했고, '생일'은 우리 부모님을 생각나게 했고, '연금술'과 '자작령'은 그 녀석을 생각나게 했고, '봄날 2'는 남생유 님을 생각나게 했다. 통 못 보거나, 지금은 내가 그닥 친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 중에서 섞여잇다. 가끔 이들이 그립기도 하지만, 결국 내 정신을 번쩍 들게 한 시는 지금 여기가 맨 앞이었다. 글을 쓰려면 자기를 중심으로 여겨야 한다는 어떤 시인 분의 말씀이 생각난다. '글을 쓰려면'을 '살아가려면'으로 바꿔도 옳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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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미시령 창비시선 260
고형렬 지음 / 창비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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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되려고 아들을 불러 앉히고 그 중태를 죽죽 찢어 입에 넣어주었다 그 황태 쓸개 간 있던 곳에서 눈 냄새가 나고 납설수 냄새도 나자 아버지 냄새가 났다 슬프다기보다 50년 신춘에 이렇게 건태 뜯어 먹는 버릇도 아버지를 닮았으니, 아들도 나를 닮을 것이다- 명태여, 이 시만 남았다 중

 

 

위의 문구는 훈훈해보이지만 어찌보면 끔찍해보이기도 하는 게 사실.

 

 시집 전체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고형렬 시인은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처음 내 마음에 들었던 시 양양 내수면연구소에서 들여다볼 수 있듯이 자라면서 서울 등지를 돌아다닌 듯 하지만, 여전히 속초를 잊지 못하는 그의 마음이 시집 전체에서 구구절절이 잘 들어있다. 그는 자기 자식과 자신의 관계에서 아버지와 자신의 관계와는 다른, 친구같은 관계를 성립한다. 요즘 세상에서 말하는 좋은 아버지의 표본이 되야지 결정하기라도 한 듯. 하지만 시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도 결국 그의 시만 남기고 사라질 것이다. 은근히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희망하면서도, 남겨진 사람들을 생각하며 안타까워하고 두려워한다.

 

 속초로 오는 버스를 타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고속도로라던가 미시령을 넘으면 그제야 속초로 들어간 느낌이 든다. 서울에 간 사람들은 자신이 강원도 속초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난 이전엔 부끄러워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자신이 그곳에서 자랐다는 사실을 마치 보물처럼 숨기는 느낌이다. 속초 사람들은 그네들끼리 반쯤 자랑스러워하면서 이야기한다. 한 번 이 지역으로 들어서면 다시 빠져나가기가 어렵다고. 그 말을 웃어넘기지 못하고 속초 시인은 이런 시를 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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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이 아름답다 2015.9
녹색연합 편집부 엮음 / 녹색연합(잡지)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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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세상을 바꿀 수 없어요. 하지만 다른 세상을 만들 순 있습니다.

 

  

싸이가 기어이 문을 닫게 만들겠다고 용역을 불러 사람들 몇 명 다치게 만든 테이크아웃드로잉.

 

 보이지 않는 손은 실제로 존재했다. 시민들이 힘을 합쳐 동네 땅에 입주하여 유기농 가게 등을 만들고 자신들의 꿈을 펼치려 했다. 이것은 마치 노예처럼 죽지 않을 만큼의 돈을 받으며 일하는 모든 월급쟁이들을 솔깃하게 했는데, 이는 일을 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자본주의 사상에 위배된다. 그러나 탐욕에 물들고 돈 욕심에 물든 투기자들이 국가보다 먼저 나서서 이 '위험분자'들을 저지하기 시작했다. 성미산 마을이야 워낙 오랫동안 터를 잡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데다 현 서울시장인 박원순이 그 마을을 건설한 사람이라서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 그리고 위에 있는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싸이가 법적 절차를 밟다가 실수를 몇 번 해서 간신히 목숨을 연명할 처지에 있다. 그러나 한마디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부동산과 주식 투기자들에 의해서 사라진 마을 가게가 얼마나 많겠는가. 국가에 의해서 대규모로 사라진 두물머리 논밭이야 더 말할 게 못 된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제시한 해결책은 확실하게 땅을 사서 녹지로 만들던가 동네 가게로 만들던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모두가 그 해결책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당장 자기 살 집도 제대로 마련 못하는 처지에 그것을 실제로 행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설령 충분한 자본이 있다한들 그 자본을 가진 사람들이 대규모로 이런 데에 선뜻 뛰어들 수 있을까? 결국 개개인의 '자선' 문제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개개인이 땅을 사기 어려우면 공동으로 소유하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는데, 그 쪽도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야 가능한 이야기이니 시간이 걸릴 것이다.

 

 

 

성미산마을의 작은나무카페.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체인점으로 바꾸지 않기 위해서는 점점 '사라져가는 풍경'을 마음 속으로 아쉬워하기만 할 게 아니라

마을 단위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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