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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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도중에,

<작가란 무엇인가 1,2,3>라는 인터뷰집을 만나게 되었다.

그 책들은 유명 작가들에 대한 인터뷰 모음인데, 자못 기대가 된다.

그 책의 머리말을 쓴 사람들은 1권, 김연수, 2권, 이현우(로쟈), 3권, 금정연(poptrash)이다.

 

 

 

무릇, 작가라면...

이런 이들의 글을 읽으면서 질투에 사로잡혀 눈에서 불길이 훨훨 타오르지나 않았으려나... 이런 생각이 든다.

 

자서전은

수치스러운 점을 밝힐 때만이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스스로 칭찬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거짓말을 하고 있다.(조지오웰)

 

손석희가 전임 가카의 회고록을 두고 이런 구절을 읊조렸단다.

당근, 그 가카는 밝힐~ 때는... 돈이 될 때고...

십중89가 아니라, 텐오브텐~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어 하는 소리렷다.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은 '소설가가 되기 위하여 어떻게 하면 되는가'를 인도하는 글은 아니다.

아직 한국 소설의 고전...이 될만한 작품의 작가도 아닌 그가

스스로도 모를 <어떻게 하면 훌륭한 소설가가 되는가>를 쓸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인터넷 블로그의 특성에 맞게,

2012년 2월부터 2013년 1월까지, 꼬박 일 년,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에 연재되었던 글들을 모은 것이다.

그러니, 너무 무겁게 읽을 필요는 없다.

 

그는 스스로의 일을 '칭찬'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자연스럽게 소설가의 삶을 살고 있게 되었음을 내비칠 뿐이다.

그는 거짓말쟁이는 아니다. 또한 이 책은 자서전도 아니다.

그저, 소설가 중의 한 사람이 1인칭 시점에서 자기 이야기를 블로그(카페)에 ㅋㅋ 거리며 올린 글이다.

그래서 우스개도 많고 진지하지도 않다.

 

결국 소설은 '생고생하는 이야기'로 정의된다.

블로그와 그의 문체에 어울리지 않는 한 단어를 찾자면, '핍진성'이다.

아, 이 단어 참 핍진...하다. 난 핍진...에서 '궁핍'이나 '결핍'의 '피로함'이 느껴진다.

(한자로는 핍진하다의 逼 닥칠 핍 을 쓰고, 궁핍이나 결핍은 乏 가난할 핍을 쓴다. 그저 동음이의 관계일 뿐.)

핍진성이란

소설속의 세계가 긴밀하게 짜여 있어서 현실과 무관하게 나름대로 독립적인 세계를 이루는 성질을 뜻하니까

핍진한 소설이라면 캐릭터들은 진부한 날것의 말들을 자신들의 백스토리와 가치관과 욕망에 걸맞은, 참신한 표현으로 바꿀 것이다.(133)

 

아, 핍진성의 풀이 또한 참 피곤하다...

 

도대체 샐린저가 왜 자신의 말이 기사화되는 것을 그토록 꺼렸는지 그 이유를 나는 잘 모르겠다.

나름대로 추측하는 게 있긴 하지만, 그걸 여기에 썼다가는 하늘에 계신 그 분이 또 격분하시지 않을까...(125)

 

황색 저널리즘이란 말이 있다.

싸구려 신문에서 선정적으로 휘갈기는 영혼없는 기사들을 일컫는다.

샐린저 역시 그런 현실에 불신의 뜻을 표한 것이리라.

김연수의 이 책을 카페에서 읽었다면, 재미있다고 느꼈을 듯 싶은 구절들도...

13,000원의 책값을 고려하면... 아쉽다.

 

20,000원의 <작가란 무엇인가>를 곰곰 읽기를 고대하고 있는 이유도 그런 이유에서다.

 

플롯 같은 건 생각하지 말고

불타는 다리를 건너갈 때까지 일단 토고부터 쓰자.(110)

 

글쓰는 것이 '기술'의 측면이나 '작업'의 측면에서 강조되는 느낌이 크다.

책의 가치는 한 시대를 관통하는 '생각'의 형상화에서 더 살아남을 수 있을 성 싶은데,

그는 자신의 글쓰기를 말하는 FPS(first person shooting) 게임 같은 것으로 느낌을 쓰고 있어 보인다.

그래서 토가 나올 지경으로 퇴고를 하는 '작업'을 강조한다.

 

허나, 세계적 명작이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소설가들의 명작을 보면,

그 시대의 삶을 그야말로 리얼하게 묘사해내는 역량이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읽게 된다.

 

단번에 명작을 쓰고 싶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방이 깨끗해지는 우주에 다시 태어나는 수밖에 없다.(77)

 

불가능함을 이렇게 개그를 섞어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이 글들은 쉽게 읽을 수 있고, 또 웃으면서 작가가 되는 길에 동참할 기회를 주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가카의 '대통의 시간'이라는 책을 집필했을...

토고를 완성했을 작가가 되신 분들도 있었을 것을 생각하면...

아무리 랜덤하우스코리아가 중앙일보 계열의 재벌 회사라지만,

작가라고 해서 모두 자신의 글에 행복을 느끼며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늘 상가에 다녀 오면서 버스에서 오랜 시간 보내게 되었는데,

이 책의 리뷰들을 오래 읽었다.

사람마다 글쓰기에 대하여 참 진솔한 이야기들을 털어놓는 기회가 되었음을 보고,

아, 뭔가 토하게 만드는 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가나 글쓰기를 꿈꾸는 이라면 한번 읽어볼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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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한입 - 박찬일의 시간이 머무는 밥상
박찬일 지음 / 창비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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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의 글을 읽노라면... 질투가 느껴진다.

 

시기 : 남이 잘되는 것을 샘하여 미워함.

질투 : ①자기()가 사랑하는 이성()이 다른 이성()을 좋아하거나 호의적인 태도()로 대하거나 하여 미움을 느끼고 분()하게 여기는 것. 강샘 ②잘나거나 앞선 사람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것

 

시기는 일방적으로 샘이 나는 감정인 반면,

질투는 삼자간의 감정에 가깝다. 두 번째 의미로 치자면 시기나 비슷한 의미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를테면, 같은 요리사 입장이라면 잘 되는 그를 보면서 내 능력에 비해 '시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와 나는 다른 업을 가지고 먹고 사는 사람이지만, 글재주까지 가진 그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좀더 복잡한 것이겠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뜨거운 한입―박찬일의 시간이 머무는 밥상』은 창비 문학블로그 ‘창문’(blog.changbi.com)에 ‘박찬일의 영혼의 주방’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던 작품이다.

라고 소개되어있듯, 연재된 글들이다.

 

그의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단초는 '재료'다.

홍합, 쌀, 간, 메밀, 달걀, 대구, 비계, 아귀, 콩나물, 토마토, 감자, 조개, 어란, 떡볶이, 쏘세지, 그리고 라면 등...

한 가지 재료에서 자기가 어린시절 경험한 식단, 요리를 배우면서 경험한 이딸리안 레시피에서 쓰이는 것들,

이런 풍부한 이야기들을 늘어놓고 있다.

 

무엇보다 요리사라는 양반이 뭐이리 입담이 좋단 말인가 싶을 정도로

그의 글에서는 프라이팬 위에서 자글자글 익어가면 스스로 육수를 내는 재료들처럼

졸깃하고 풍부한 육즙을 입안 가득 맴돌게 하는 말맛을 읽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식사를 마치고 한두 시간 후 우연히 잇새에 낀 참깨가 잘근 씹힐 때의 그 고소함이란

뜻밖의 횡재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내 말에 동의해줄 사람들이 많다고 믿는다.

고춧가루나 김치쪽이 나오는 것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그 충만한 고소함을 기억한다면 말이다.(100)

 

그러게... 많다고 믿을 수는 없으나... 나 역시 동감에 공감을 표하는 사람이다.

 

한국에서의 음식은 단순한 유래나 전통보다는 역사적인 흐름을 같이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만큼 현대사가 역동적인 변화를 거쳤기 때문이다.

전쟁 후 원조가 없었다면, 밀가루를 주재료로 한 수제비나 국수 등을 혼식의 이름으로 장려할 수 없었을 것이고,

떡볶이같은 불후의 명작이 탄생할 수 없었음도 이 책에서 잘 나온다.

 

냉면 가락을 빨아들이다보면 어느샌가 노른자가 살살 육수에 풀려서 흐물흐물해진다.

풀린 노른자는 밋밋한 육수에 탁한 기운과 고소한 맛을 선사하게 된다.

그저 시고 짠 육수가 노른자의 기운을 받아 두꺼운 밀도를 얻고

결국 포만한 뒷맛을 남긴다는 설이다.(151)

 

다들 그렇고 그랬을 생활 속에서 만들어진 음식들을 맛보면서

이런 표현으로 형상화해내는 일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탁월한 말 놀림 능력이 대뇌에 탑재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대구는 살아서 피부와 아가미로 호흡하고,

죽어서 그 부위에 소금을 받아 다시 살아난다.

살로 온전히 죽음과 부활의 운명을 받는다.

호흡의 강고한 증거인 아가미에 소금을 처넣고 깊이 잠든다.

그 죽음의 미라.

결코 영생을 꿈꾸어본 일 없는 슬픈 미라가 우리 입에 들어온다.

대구를 먹는다.

그건 소금처럼 짜고 먼 일이다.(15)

 

이런 건 숫제 시다.

 

소금을 뿌려 쓴맛을 죽이고,

술에 재어 단맛을 돋운다.

그러고는 아주 천천히 숯불에 굽는다. 껍질이 거뭇거뭇해지고

숯덩이처럼 보일 때까지 충분히 익힌다.

그러고 마침내 속까지 충분히 익으면 배를 갈라 그 위에 가다랑어포를 올려 낸다.

가다랑어포가 춤추듯 꿈틀거린다.

가지의 속살은 뜨겁게 몸을 뒤채다가 젓가락으로 헤집을 때마다 김을 뿜어낸다.

극도로 건조한 청주 한 잔을 마시고 입에 넣은 갖는 녹을 듯이 감미롭다.

미처 열기를 털어내지 못한 가지 속살은 입천장을 벗겨버린다.

그러므로 이 요리는 아주 느긋하게 입에 넣고, 마치 설탕을 녹이듯 살살 달래가며 먹어야 한다.

그래서 겨울이라도 술은 반드시 차가운 청주를 시킨다.

그 궁합이 절묘하다.

응축된 가지의 단맛이 폭발하고, 술잔은 비워지게 되어있다.

 

밖에 천둥이 치든 폭설이 내리든 가지는 구워지고, 술잔은 엎어지고.(183)

 

마치 '설국'이란 소설에 나오는 한 장면이거나,

다자이 오사무가 고향 쯔가루에서 유학 와 머물던 곳을 묘사한 장면의 형상화 같기도 하다.


전주의 콩나물국밥.

그 맛을 나는 '어른이 되는 맛'이라고 하겠다.

어른들만이 아는 맛이라고...

무심하고 밋밋한 콩나물이 전부인 그 국물은 자극이라고는 모르는

요즘같은 선동적인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맛이다.

아니, 그렇기때문에 어른들은 더 콩나물국을 찾는 것일지도.

남부시장의 국밥집 아낙은 막다진 매운 고추와 마늘, 파를 내가 시킨 국밥 그릇에 쏟아넣는다.

막 터진 그 양념의 액포들이 콩나물과 함께 휘발한다.

노랗고 맑은 콩나물국을 한숟가락 뜬다.

거기에 내 어린 날의 냄새가 자욱하게 번진다.(198)

 

눈물이라도 금세 질금 번져나올 듯한 구절이다.

 

그런 그게 '감자탕'을 <감자가 들어있어서 감자탕인 이 요리>라고 설명하는 구절은 갸우뚱?하게 한다.

이 인터넷 검색의 시대에... 그런 실수는 옥에티다.

 

감자가 들어 있어서 감자탕인 이 요리에 감자가 빠지기도 했다.

감자가 비싸졌기 때문이었다.(225)

 

요즘엔 다들 알듯이 '감자탕'은 그가 지켜본 '노동자들이 무언가 거대한 뼈를 들고 뜯었던' 그 뼈의 이름 '감자뼈'에서 유래한 것이다. 돼지의 등뼈와 척수같은 부산물을 넣고 끓인 그야말로 가난한 식품이 감자탕이었던 셈이다.

 

요즘처럼 갈수록 서민의 등골을 빼먹으려 혈안이 된 정부아래서 사는 한 사람으로서,

뜨끈한 국밥같은 음식이라도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박찬일의 맛있는 문장들 역시 헛헛한 심사를 달래주는 든든한 한 끼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띠지에 적힌 한 마디 문장이 눈시울 달구는 위안이 된다.

<인생이 차가우니 밥은 뜨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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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식당 - 요리사 박찬일의 노포老鋪 기행
박찬일 지음, 노중훈 사진 / 중앙M&B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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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의 칼과 황홀...을 읽으며 실망했던 적이 있다.

그의 '짜장면'같은 수필을 기대하며 읽었던 탓이었겠지만, 아무튼 먹을거리에 대한 찬사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싶었다.

 

이제 우리 시대에 박찬일을 만난 것은 행복한 일이다.

나랑 비슷한 연배의 그가 건강을 지켜준다면 앞으로도 더 깊은 책을 내줄 수 있을 것이어서 기쁘고,

무엇보다 그는 '조리'나 '요리'에만 머무르지 않고,

한국의 문화에서 '요리'나 '조리'가 차지하는 비중에 대하여 깊이있게 찾는 사람이어서 그렇다.

 

이 책은 단순히 오래된 유명한 식당 순례기에 불과한 종이뭉치는 아니다.

적어도 문화 생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통시적으로 역사와 삶 속에서 그러한 무늬가 빚어지게 된 연유에 대하여 고찰하고 있고,

공시적으로 이곳과 저곳의 음식이 차이지는 맛을 그 음식을 빚어내었고 향유하고 있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말맛까지 살려 기록해 두기 때문이다.

그리고 참으로 온건하지만 폭력적인 행정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적어 둔다.

아마도 전임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있던 시절 이야기일게다.

 

우리는 피맛골이 사라진 발단과 경과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조사하고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피맛골을 되살릴 수는 없지만 향후 수없이 발생할 제2, 제3의 피맛골 사태를 막는 단초가 되리라 생각한다.(339)

 

2008년 촛불 집회가 한창이던 때, 주말에 서울엘 간 일이 있었다.

곧 사라진다는 소문이 돌던 때라,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청진옥에서 뜨거운 해장국을 훌훌 마신 적이 있다.

6월이어서 땀을 줄줄 흘리며 다들 한그릇씩 들이켰다.

그해 8월 3일 그 집은 헐리고 말았다.

 

"집에 있으면 아파서 차라리 나오는 게 낫고예, 추석하고 설에만 쉬었수다."

제주 돼지 순대(돗수애)는 몽골에서 전래했다는 설이 있다.(328)

 

언어까지 오롯이 담긴 기행이라 더 의미깊다.

 

평안도가 고향인 시인 백석의 시 <국수>에서도 '슴슴한 국수'가 나오는데,

이는 냉면을 의미한다.

겨울밤이 유독 긴 평안도, 밤엔 집집마다 냉면을 먹었다.

고깃국물은 만들기 힘들었고, 그저 김칫독을 퍼서 국물과 김치를 꺼내면 그게 냉면이었다. 차고 심심하게 말았다.(39)

 

이것은 어늬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 옆 은댕이 예데가리밭에서

하로밤 뽀오햔 흰 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녯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녀름볕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서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자타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 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늬 하로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 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여났다는 먼 녯적 큰마니가

또 그 짚등색이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 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녯적 큰아바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희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故淡)하고 소박(素朴)한 것은 무엇인가 (백석, 국수, 부분)

 

도대체 왜 맛있는 집은 맛있는가?

 

요식업의 뻔한 배결 중 하나가 바로 '규모의 맛'이다.

양이 어느 정도 되어야 제맛이 나오는 법인데...(155)

 

설렁탕집 잼배옥 중에 나오는 대목이다.

많이 팔 규모가 예상되어야 펄펄 해장국을 끓이는 게 당연하고,

잘 팔려야 좋은 재료를 매일 구해다댈 것이야 당연한 이치지만,

어떤 집이 더 장사가 잘 될 것인지는 며느리도 모를 노릇이다.

부산에서 돼지국밥집으로야 가장 유명한 '쌍둥이' 집보다도 그가 '할매국밥'을 치는 것도 그런 것이다.

 

이 책에는 내가 사는 도시가 네 번 등장하다.

나는 그 중에 '해운대 암소갈비' 한 군데를 가봤을 뿐이다.

할매국밥도 마라톤집도 삼진어묵도 아직이다.

그가 높이 치는 맛이 어떨는지... 한번 가볼 참이다.

 

오뎅은 어묵(가마보코)을 포함해서 쇠심줄(스지), 두부, 유부 같은 여러 가지 재료를 넣고

장국에 끼린 게 오뎅이고예,

그라이까 어묵 넣은 기 오뎅이고, 어묵은 오뎅의 일부라예.(166)

 

나도 어묵과 오뎅은 이제 알겠다.

그러니까, 어묵과 여러가지 건더길 넣어서 끓인 것을 오뎅탕이라고 하는 것이다.

 

전통적 음식 문화의 하나인 '토렴'에 대하여는 국밥집마다 쓰고 있다.

그만큼 그가 '토렴'에 담긴 배려와 인정에 대하여 반한 모양이다.

 

해방 전에는 자기가 먹을 찬밥을 가지고 이 집(청진옥)오는 풍경도 흔했다.

그 밥을 받아 뜨거운 국물에 여러 번 헹궈 따뜻하게 한 후

국물을 말아냈다.

그걸 '토렴'이라고 한다.

세계 음식사에서 유례가 없는 독특한 요리기법이다.

보온밥솥이 없던 시절, 아침에 해둔 밥은 식게 마련이었다.

이것을 그대로 국에 넣어 말면 전체적으로 국물이 미지근해지고 맛이 떨어진다.

그러나 찬밥에 뜨거운 국물을 여러번 부었다 헹궈내기를 반복하면

밥알 속까지 따뜻해지면서 국밥의 온도가 먹기 적당하게 변하는 것이다.(186)

 

이탈리안 셰프인 그가 이렇게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것은, 문화에 대한 깊이가 깊어서이다.

 

매년 12월 15일 밤에 손님있는 시간까지,

그러니까 한 새벽 1시쯤 될 거야.

마지막 날이니까 더 늦게까지 손님이 옵니다.

그렇게 영업하다가 가게 문을 닫고

다음해 3월 1일 아침 9시에 엽니다.

닫는 날은 시원섭섭하고 여는 날은 긴장되고 그렇지요.

 

문을 닫는 12월 15일 이후에는 자리보전하고 앓는다.

"딱 열흘간 앓아요. 정확해요."

그러고는 일어나 운동을 한다.

그러다가 3월 1일 재개장날에 완벽한 준비를 해서 다시 손님을 맞는다.

그 원칙은 단순하다.

"마치 어제도 문을 열었던 것처럼."

 

두달 반을 쉬는 이유가 몹시 궁금했다.

그런 장사가 어디 있나. 방학을 찾아 먹는 장사가.

 

원래 추어탕은 가을 두어 달만 팔아야 맞는다고 생각한다.

문헌에도 이런 내용이 있다.

유명한 서울의 추탕집들도 사철 문을 여는데,

미꾸라지가 늘 잡히는 것이 아니고 맛도 떨어질 때가 있기때문에 다른 요리를 같이 팔았다.(231)

 

오래된 식당이 없는 한국.

그 이유는 참 다양한데, 그의에필로그에서 참으로 복잡한 현대사의 굴곡을 이야기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에게 백년이란 시간은 자못 복잡하고 난해한 세월이기 때문이다.(332)

 

노포의 특징은 오래된 주인장만이 아니다.

오래된 종업원, 오래된 단골들이 필수다.

단골이야 그렇다 치고, 일꾼을 전문가로 치지 않아서는 노포가 될 수 없다.

 

간혹 할머니 혼자 오셔서 쓸쓸하게 냉면을 드십니다.

여쭤보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거죠.

저도 함께 쓸쓸해집니다.

간혹 아래층에서 큰 소리가 들릴 때가 있어요.(부원면옥은 2층이 주 업장)

냉면을 내려달라는 거예요.

계단을 오르시지 못하게 된 노인이 저희집 냉면 한 그릇을 기어이 드시겠다고 오신 겁니다.

참 짠한 일이에요.(285)

 

맛을 내는 과정 역시 한결같이 단순하고 심심하다.

 

제일국수공장에서 맛있는 국수 만드는 비법은 단순하다.

"초리~하고 매끄리 하게 만들어야 맛있제."

그걸로 끝이다.

탱탱하고 예쁘고 매끈하게 빚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건조는 국수의 품질에 큰영향을 미친다.

"겨울에 국수가 더 맛있니더. 하늬바람 불 때 국수가 최고니더."

바람이 국수를 만든다는 얘기다.

"국수하는 사람은 발이 안 보여야 하니더. 엄청 바쁜 일이라 놀면서는 모합니더."(312)

 

경주 사투리가 묻어나는 장인의 검은 얼굴이 내비치는 말뽄새다.

먹을거리를 만드는 일이 고급진 '조리 장인' 내지는 '전문 셰프'로 불리는 것도 일부분이다.

모든 사람이 날마다 자기 먹을 것을 하느라 골몰하지 않느냐.

 

먹는다는 일의 문화사를 이렇게 엮어내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

더더군다나 백년 사이에 석기시대와 우주시대를 넘나들었던 한국의 현대사에서야... 말해 무엇하리오.

 

그가 오래오래 건강하게 건필하길 기원한다.

혹시 알랴.

우연히 할매국밥이나 마라톤집에서 등돌리고 앉아 쓴소주 한잔 기울이는 인연이라도 만날지...

 

 

 

109. 자유시장에 잇대어 있는 부평시장이 깡통시장이라... '자유시장'이 아니라 '국제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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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미안해서 비행기를 탔다 - 오기사가 다녀온 나르시시즘의 도시들
오영욱 글.그림 / 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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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건축을 하는 오기사.

그가 가우디를 찾아서 스페인을 갔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오기사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

 

건축하는 사람들은 자 없이도 구불구불 선을 그리기 좋아한다.

그리고 투시하는 각도에 따라 그림이 떠오르는데,

오기사는 자신의 그림, 이야기, 사진 등으로 이곳들을 들려준다.

 

우선 <욕망>의 도시 라스베이거스.

 

그녀가 말했었다.

"너는 사람을 외롭게 만들어."

잠자코 있었지만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외로움은 기대의 불균형에서 오는 것이다.(40)

 

지난 몇 년간 나는 즐거웠는데

사실 딱 그만큼 힘들어하고 있었다.

원인은... 내가 욕망하는 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던 것.

내 욕망은 스스로를 외롭게 했다.

그런 나에게 라스베이거스는 이런 위로를 던져줄 것 같았다.

"솔직한 게 제일 좋아. 그걸 남들이 싫어하면 어쩔 수 없는 거지."(42)

 

라스베이거스의 건물 사진들을 보면,

그가 그 버석거리는 사막 한가운데 꽂힌 욕망의 꽃으로 들어간 이유를 알겠다.

 

찬디가르라는 도시는 르코르뷔지에에 대한 예찬과 회상으로 가득하다.

그 건축가는 축복받은 인물이다.

축복받은 건축가들의 시대는 이미 지나간 것 아닌가 싶다.

실용과 아름다움을 모두 갖춘 멋진 건축의 시대...

 

내가 피곤한 것은 결국 나 때문이다.(173)

 

말도 안 되는 사람들과 부딪쳐야 하는 인도에서 그는 자신을 만난다.

100원짜리를 1200원 붙여 놓고 깍아준다며 천원을 받는 사람들의

능글맞은 웃음 속에서

"나는 이런 인도의 오만함이 간혹 마음에 들었다."

고 할 정도면, 나름대로 인도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르 코르뷔지에이 건물들이라는데 그닥 감동을 받지 못했는데,

그 유명한 롱샹 성당은 참 가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순례자를 위한 선과 면이 공간을 이룬 성당이라니...

 

시대 정신을 담느라 그랬을 뿐 난 원래 이런 사람이야.(232)

 

이렇게 말했다는데,

따뜻하고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성당을 만든 사람의 마음은 반드시 따스하리라.

 

소설점의 도시 생트 페테르부르크의 네프스키 거리를 위로의 도시라고 한다.

 

고골은 소설 '네프스키 거리'의 마지막에서...

이 네프스키 거리라는 건 언제나 거짓말을 한다.

무엇보다도 밤이 거리의 구석구석까지 들어차고 짙어지면서

하얗거나 크림색으로 빛나는 집 벽들이 드러나게 될 때,

도시 전체에 굉음과 번쩍이는 불빛이 넘쳐흐른다.

무수한 마차가 다리 쪽에서 몰려오고 마부가 고함을 치며 말 위에서 뛰어내릴 때,

그리고 악마가 모든 것들을 실제 모습으로 보여주기를 거부하고 램프의 불을 직접 켤 때,

네프스키 거리는 더욱 심하게 사람들을 속인다.(311)

 

마치 고골의 아카키 아카키예비치가 화병으로 죽고난 후 유령이 되어 떠돌기라도 할 듯한 네프스키 거리...

거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거리가 사람들을 속인다는 것은... 도시의 속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언어다.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 때는 위로가 필요하지 않은 법이다.

그건 그냥 묵묵히 혼자서 어떻게든 견뎌내야 하는 종류의 과정이다.

백야의 계절이 지나 어둡고 축축해지는 시기의 페테르부르크 도시는

겁에 질린 나를 위로해줄 것 같았다.

무서워하지 말고 자신을 믿으며 계속 가보라고.

세상에서 가장 척박하고 고독한 땅에 일구어낸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을 보라면서...(312)

 

오기사가 다녀온 도시들을 <나르시시즘의 도시들>로 명명한다.

욕망의 도시, 일탈의 도시, 위안의 도시...

그리고 그는 다시 서울로 돌아온다.

 

인간은 누구나 제 욕망의 무게에 짓눌려 산다.

그래서 일탈의 여행을 꿈꾸고,

푸근한 위안을 찾는다.

 

이 책처럼 제 이야기를 혼자서 떠벌이는 이를 바라보면서도,

욕망과 일탈과 위안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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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선미술 순례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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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서경식이 '우리/미술(조선/미술)' 순례로 돌아왔다.

그는 늘 '디아스포라(고향을 잃은 방랑인)' 이방에서 예술을 접하는 글을 써왔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

나의 서양음악 순례

고뇌의 원근법 등이 있다.

 

표지에 ㅇ ㅜ ㄹ ㅣ ㅁ ㅅ

이런 여섯 자모가 적혀있다. 이것을 조합하면 우리미술이 된다.

여기 탐구한 작가도 여섯 명이다.

 

그런데 책의 제목은 출판이 임박하여 '조선미술'로 바꾼 모양이다.

책의 간지에도 ㅇ ㄹ/ㅁ ㅅ 이락 세로로 적은 걸 보면 그렇다.

그만큼 작가가 '우리'라는 말 속에 담긴 '우리민족'의 배타성보다는,

'조선'이라는 말이 가지는 <재일 한국인>의 디아스포라적 시선을 담아내려는 의도가 크다고 보겠다.

이 조선은 '북조선'과는 다르고 '이씨 조선'과도 다르다.

 

그런데 표지의 자모를 가만 보면, 자모 안에 그가 탐구한 그림들이 등장한다.

예를 들면 'ㅅ'에는 '개자지'가 불끈 발기한 채 들어있다.

왜 '개자지'란 말을 쓰는지는 읽어보면 안다.

달을 보고 짖는 개, 성질이 가득 난 것 같다.

우린 그만도 못한 거 아닌가 싶은 자괴감을 부르는 그림이다.

 

첫만남은 '신경호'이다.

그의 '넋이라도 있고 없고 : 남아평생도'에 들어있는 달을 보고 짖는 개가 가장 인상적이다.

 

 

친구들이

"야, 네 그림 하나 사주고 싶은데 상스러워서 못 사겠다"고들 합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말하죠. "너는 천생 신부님처럼 사는 사람이냐?"(50)

 

10년을 거슬러 참담하게 견뎌냈을 이 사람의 30대는 엄청난 절망과 상실감 속에서...

달을 보고 짖는 저 누렇고 야윈 개는 신경호 선생 자신의 자화상인 동시에

둘 곳 없는 울분을 터뜨릴 대상, 절망적인 한국 현실의 표상이기도 했으리라.(51)

 

1979년 작이라 하니... 그래,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던 압제의 시절이었다.

 

우리에게 모더니즘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도 벗어나야 할, 포스트를 붙일만한 모더니즘이 실재했을까요?

저는 이 질문에 대단히 회의적이며 나아가 매우 화가 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55)

 

이런 대화를 읽는 일은, 자신을 제대로 돌아보게 만든다.

외국에 가서 예술을 배워와서 그것이 마치 자기의 생각인 양 떠드는 사람들,

무슨 사조가 어떠니~ 어떤 경향이 어떠니~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는 ~인듯 ~아닌 '사이비'이기 쉽다.

서경식이 '신경호'를 처음으로 인터뷰한 이유를 알겠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예술이란

어떤 면에서는 중립적이라고 할까요

균형감각을 가지고 관객들에게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이 다양한 해석을 만들어 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86)

 

정연두는 사진 작업을 하는데, 그이의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상록타워'라는 사진이다.

우리는 똑같은 구조의 아파트에서 살수밖에 없는 가엾는 나라의 백성들이다.

전 국토의 절반을 친일파나 재벌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 똑같은 삶의 기록은 신선했다. 그것을 보면서, '우리/미술'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지,

왜 '우리'는 이렇게 사는지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싶었다.

 

요즘 질주하던 가요가 갑자기 '복고'로 돌아오는 시즌이란다.

걸그룹이란 것들이 일본의 90년대를 모방하는 짝퉁이었으니, 다시 '우리' 것을 돌아봐야 하리라.

결국 문제는 '무엇'을 하는가 하는 텍스트의 문제가 아니라,

그 텍스트들이 '우리'와 어떤 관계인가 하는 '콘텍스트(문맥, 맥락)'의 문제라는 것이 서경식의 지론이다.

 

정연두의 작품이 다루고 있는 어떤 종류의 외로움은 '가족'과 '민족'을 문맥으로서 객관적으로 파악하려고 할 때

피해갈 수 없는 감각이다.

오히려 그 외로움의 끝에야말로 사람과 사람의 새로운 유대에 관한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으리라 생각한다.

앞으로 그는 이 외로움을 어떻게 예술적으로 형상화해 나갈까.(123)

 

이 책을 통틀어 내가 가장 애정해 마지않게 된 작가는 단연 '윤석남'이다.

'미친년 프로젝트'에서 보여주는 그 표정부터 압권인데,

그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박완서가 마흔 넘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과 흡사하다.

그런 그의 작품들은 어디서 주워들인 나무 파편들인데도, 따스하고 부드러웠다.

그의 여인들이 함축하고 있는 이미지들은 둥글고 부드러우면서도,

어쩔 수 없이 참아야했던 그 시대를 오롯이 증명하고 있었다.

 

 

 

 화가 윤석남 이야기 <나, 화가가 되고 싶어>라는 책을 봐야겠다.

그는 긴 손을 갖고 싶어하는 화가다.

그래서 '천수천안'의 관음보살의 마음처럼 모두를 돌봐줄 수는 없지만,

원피스의 루피처럼 먼 곳까지 관심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

 

나눔의 집에 걸려있는 그림은 참 인상적이었다.

 

긴 팔을 한 여인이 들고 있는 것은 '연꽃'이기도 하고,

고구마처럼 투박하게 생긴 '심장'이기도 하다.

그 여인이 하염없인 바라보는 상대에게 내미는 것은,

오롯한 '마음'이다.

그 마음은 어머니의 마음일 수도 있고, 인간의 마음일 수도 있다.

그와 매창의 공감을 그린 그림도 좋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하다.

화가들이 멋도 모르고 들쑤석거리면서 '서양'을 베끼기 바쁠 때,

그의 그림은 전통도 아니고 고전도 아닌,

그저 '우리의 마음'속에 흘러오던 그런 것을 '은근'히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매창의 손을 두 손으로 마주잡은 그의 표정이 더이상 편안할 수 없다.

 

그의 그림을 그저 '페미니즘'이라고 일컫기에는 생경스럽다.

그의 예술은 '페미니즘' 아류가 아니다.

저런 권위의 송곳들을 비판한 작품도 있으나,

김혜순이 들려주듯, 그의 마음은 <토템>이랄까... 암튼 그런것이다.

 

그의 개인전 도록에 김혜순이 <애타는 토템들의 힘찬 눈물>이라는 글을 썼다.

그에 "맞다. 정확한 지적이다.

토템들이다.

사라져버린 땅속에 묻혀버린 우리 여성들을 다시 세우고 싶었다."(136)

 

그래. 사라져버린 우리 여성들의 '벽 앞에 섰던 심정'들을

토템으로 되살리는 것이 그의 예술이다.

 

북으로 가버려 남한에서는 설 곳이 없는 '이쾌대'의 <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도 멋지다.

 

그를 하나의 '텍스트'로서 독해하기보다

이 화가 안으로 들어가 서로 모순되면서도 뒤얽혀 있는 복수의 '콘텍스트'

-이를테면 동양과 서양, 조선과 일본, 전근대와 근대, 식민지 지배와 피지배,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분단과 대립 - 가 갈등하고 충돌하는 '장'으로서 읽어보는 시도가 도움이 되리라.(187)

 

이쾌대의 여성상이 이루어낸 공적은

민족 의상을 입은 조선 여성을 그저 전통적인 표상을 드러내지 않고

그 내면에 숨쉬는 근대를 향한 지향성을 그려냈다는 점.(199)

 

신윤복의 여성을 탐구하다가 '바람의 화원'의 작가 이정명을 인터뷰한 것도 재미있고,

입양 출신의 작가 미희 씨의 인터뷰도 인상적이다.

 

홍성담은 아직도 핍박받고 있는 '세월,오월'의 작가다.

 

 

홍성담의 이야기는 그대로 영화고 눈물이다.

 

저는 태어나서 처음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여기 광주 시민들 모두한테요.

그러니까 제가 대신 지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344)

 

그렇게 도청에서 죽어간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다.

 

파독 간호보조원에서 화가가 된 송현숙의 이야기 역시 '우리'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서경식이 찾아가는 미술가들은 돈을 많이 버는 소위 미술계의 중심에 선 이들은 아니다.

한때 하던 말로 <민중>의 삶을 면면히 이어오는 화가들과 두런두런 나누는 노변정담을 통하여,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으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맥락이 어떻 것이고,

앞으로 살아갈 길은 어떤 것인지...

 

자랑스런 자유 대한의 <민족 중흥>의 그늘에 가려진 '우리의 눈물'은 얼마나 처절한 것인지...

이런 이야기들 속에서 한숨과 함께

예술이 담지하는 '힘'을 느끼게 된다.

 

그가 이 책을 내고 한숨을 포옥~ 내쉬는 모습이 머리에 그려진다.

힘들었을 것이다.

애가 많이 쓰였을 것이다.

두 형이 박정희의 감옥에서 온갖 옥고를 치른 역사를 뒤로 하고,

다시 그 딸이 되돌리는 유신의 국보법이 횡행하는 시대를 만났으니... 더 한심스럴 것이다.

 

'조선 왕조'는 우리의 본질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 역시 '친일 부역'을 처단했어야 했지만,

분단과 함께 미국의 앞잡이들이, 그리고 그 앞잡이들과 결탁한 정치 군인들이...

<우리 조선>의 민중들을 철저하게 압살했다.

 

이 땅의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이면서도,

여지껏 쌓여온 더께가 덕지덕지 앉은 <친일>과 <독재>의 <정경유착> 세력이 국민의 부를 착취해가는

<계급문제의 해결>이기도 한 것이다.

 

그것들은 복잡한 맥락 속에서 얽히고설켜 한칼에 베어지는 '쾌도난마'를 기대할 수는 없다.

실타래가 너무나도 엉켜버려서 '뒤집어진 유람선'을 조사하는것 하나 하지 못하는 현실을 만들었고,

겉모습은 아파트인데, 아파트가 아닌... 그래서 불이 나도 방화시설이 없는 부실 주택에서 타죽게 만들었다.

 

결국 문제들은 '순례'를 통해서 하나하나 만나야 한다.

문제들이 '발생, 본산지, 현실'을 하나하나 만나는 순례를 통하여,

후손을 제대로 가르치고 부정부패를 조금씩 고쳐나가야 하는데...

세상이 캄캄하여 실마리를 찾지 못하게 하니... <우리>는 더 눈물지을 일 많을 모양이다.

 

윤석남과 음악을 들으러 가서

서경식이 아내와 나눈 이야기는 미술이야기와는 조금 다르면서도 맥락이 닿는다.

결국, 아름답고 훌륭한 것, 듣고보는 이에게 좋을 것...도 중요하지만,

예술가는 소통과 함께 드높은 이상을 가져야 감동을 줄 수 있다는 말을 한다. 멋지다.

 

듣는 이를 생각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겠지만

동시에 연주자는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바람과 동경을 천상을 향해 드높게 간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긴장감이 관객에게 단순한 친근함과 즐거움을 뛰어넘는 감동을 전해주는 것이다.(130)

 

 

 

 

110. 오타... 마침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아침' 뉴욕에서.... 이렇게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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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2 0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14 1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15-01-12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글샘님. 참으로 우연히 비슷한 시간에 같은 글을 리뷰를 남긴것이 신기합니다. 저도 이매창 그림이 인상깊었는데 종교란 본디 저렇게 시공을 넘어 공감하는 것이였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나라며 일본의 상황이 점점 소통 평화와 상관이 없어지는듯해 읽는내내 저도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글샘 2015-01-14 11:27   좋아요 0 | URL
신기하기보다... ㅋㅋ
서평단에 쫒긴 주말밤이라고나 할까요. ㅎㅎ 동병상련이었겠죠.
맞아요. 이매창도 좋고, 저 초혼~치마도 좋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