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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돈 PD의 운명, 논리로 풀다 - 운명에 대한 과학적 논리석 해석
이영돈 지음 / 동아일보사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운명은 정해져 있는 것일까,
아니면 노력에 의해 바꿀 수 있는 것일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이 자신의 미래를 점치고자 한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 길 것이다.
이 책에서는 사주, 궁합, 관상, 굿에 대한 신뢰가
과연 신빙성이 있는 것인지,
논리적으로 타당성이 있고 합리적인 것인지를 검증하려 한다.
논리적 타당성이란,
전체가 성립한다면, 그 부분에 속하는 것은 성립한다는 관계를 따지는 것이다.
그래서 사주가 타당성이 있으려면,
어떤 사주쟁이에게 물어도 유사한 답이 나와야 한다.
정말 사주로 운명을 예측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미 여러 번 이와 같은 질문을 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답도 알고 있다.
역술가들은 사주가 70% 정도의 운명을 예측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운명이 꼭 사주대로 가지는 않는다.
후천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변수의 작용 때문이다.
그런데 그 변수 또한 사주 안에 들어 있는 것이라 사실은 자신의 사주대로 운명이 진행된다.(74)
실험을 위해 가짜 사주쟁이를 투입하기도 하는데,
그런 것은 타당성을 검증할 수 있는 실험이라기보다는,
불신을 키울 수 있는 실험이어서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궁합은 왜 보는 겁니까?
일종의 참고서라고 보면 됩니다.
궁합이 좋게 나오면 좋은가보다 하고 서로 넉넉한 마음으로 살고,
궁합이 나쁘게 나오면 서로 더 조심하고 노력하는 거죠.(105)
결정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부부의 궁합을 보았더니,
비슷하게 예측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전혀 다른 답을 내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몇 건의 사례 조사로 '논리'적인 해석을 내렸다고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궁합이나 사주를 이렇게 바라보라는 관점은 한편 도움이 된다.
일기예보에서 내일 오후에 비가 온다고 한다.
당신은 우산을 들고 나가겠는가, 아니면 출근을 포기하겠는가?
선택은 당신의 손에 달려 있다.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믿고 견지하느냐, 재미로 보고 넘어가느냐를 선택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일 수 있다.
그런데, '논리'적인 해법을 찾는 사람이 제시할 답은 아닌 것 같다.
논리적 타당성을 따져서, 이것은 옳다, 합리적이다, 어느 정도 옳다... 고 판단하지 않았다면,
제목에서 '논리'를 적용한 것은 무리다.
그저, <그것이 알고 싶다> 수준이 좋았지 싶다.
관상서에는
'상이 아무리 좋아도 마음을 잘 쓰는 것만 같지 못하다'라는 말이 있다.
또한 '사주보다는 관상이, 관상보다는 심상이 우위다'라는 말도 있다.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 선행을 베푸는 사람의 얼굴은 부드럽고 온화한 인상을 주는 반면,
자기 이익을 위해 남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의 얼굴은 반대의 느낌을 준다.
결국 관상과 상관없이 그 사람의 마음 씀씀이가 얼굴에 드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는 것 아닐까.(166)
어떤 화가가 '예수 모델'로 선한 이를 그리고,
나중에 '유다 모델'을 찾으러 다니다 적합한 이를 찾았더니, 갸가 바로 예수 모델이었단 이야기도 있다.
사는대로 얼굴에 인상이 드리워진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것도 한편 옳고 한편 옳지 않다.
영어권의 [i] 발음은 입술을 가로로 길게 늘이는 발음인 반면,
한국어의 발음은 입이 별로 움직이지 않고 소리난다.
그래서 영어권 사람들이 사진찍을 때 '치~~이즈'하면 웃는 입이 되지만,
한국인은 '김~~치이~~'해도 입이 뚱하게 보이는 것이다.
러시아 사람들은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는 법이 없다고 한다.
한국인들도 그렇다. 엘리베이터에 낯선 누군가가 있으면 서로 낯을 돌리는 것이 낫다.
환하게 웃으면서, '좋은 아침' 운운했다가는, 오버하는 치한으로 오해받기도 할 것이다.
문화에 따라 관상도 달라질 것이니,
동안 열풍이 부는 요즘, 철부지 부모들도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군대까지 쫓아가는 엄마들]
이런 기사를 보면, 마냥 한심해할 노릇도 아니다.
플라시보 효과와 노세보 효과라는 말도 있지만,
가짜 약도 믿으면 좋은 효과를 보여주기도 하고,
적절한 처방이나 약도 정작 환자 본인이 믿지 않고 의구심을 가지면 악을 먹어도 잘 낫지 않는다.(207)
주역 공부를 하고, 사주명리학이나 관상을 공부하는 이유는,
모든 것을 확실하게 알고 삶을 살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점쟁이가 로또를 맞히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해야... 그런 것이 '논리적'이다.
우리가 공부하는 것은,
생로병사의 인생 행로에,
고통뿐인 사람이라고 힘겨워한다면, 무슨 낙이 있겠는가.
인생의 골목길에는 자그마한 정거장에 핀 들꽃도 있게 마련이고,
험난한 산 구비구비마다 멋진 경치를 보여주는 전망도 있게 마련이다.
등산이 힘들다고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자는 없다.
아무리 등산로에 대하여 지도를 통해, 블로그를 통해 공부한다고 해도 등산이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주를 보고, 관상이나 점을 보고, 굿을 해도,
인생은 '고(苦)'인 것은 변치 않는 진리다.
어떻게 하면 인생을 잘 사는 것인지...,
삶에 대한 긍정적 마인드와 미리 대비하는 유비무환의 자세,
맺히게 두지 말고 푸는 지혜...
이런 것들을 두루 생각하게 하는 것이 공부의 목적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