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끝에서 만난 이야기 - 루이스 세풀베다 산문집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엄지영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쾌하고 즐거운 소설이나 동화를 쓰는 세풀베다의 삶은,

피노체트의 그늘에서 신음하던 조국 칠레와 뗄 수 없다.

 

전장을 누비는 그의 이야기들은

남미를 휩쓴 쿠데타의 광풍을 현장에서 증언한다.

 

가장 재미있게 읽은 것은 역시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을 쓰게 된 배경 이야기다.

밀림과 원주민과...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소설.

 

그렇지만 가장 은밀한 숲이던 남미가 개발 독재에 신음하고 있다.

그런 아픔이 비명으로 잠겨있는 책이다.

 

오늘 황현산 선생이 돌아 가셨다.

세상이 모두 아픈데, 멀쩡해 보이는 것들이 표면상으로 드러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황현산 선생의 아픔에 대한 기록이나,

세풀베다의 여유로운 말 속의 페이소스가 오래 가슴을 울린다.

 

이 더운 여름, 노회찬과 황현산을 잃고,

나는 망연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쥐와 친구가 된 고양이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노에미 비야무사 그림, 엄지영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긴 시간이든, 짧은 시간이든,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삶이라는 건 길이가 아니라,

고양이와 생쥐처럼 서로 마음을 열고 따뜻한 마음으로 사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믹스는 작은 친구의 눈으로 세상을 보았고,

멕스는 크고 건장한 친구의 몸에서 솟구치는 힘과 활력을 통해 더 강해질 수 있었다.

둘은 정말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진정한 친구는 자신이 가진 장점을 서로 나눌 줄 아는 법이니까.(79)

 

비슷해야 잘 어울리는 사이도 있지만,

정 반대이면서 조화를 이루는 친구도 있는 법이다.

 

세풀베다의 동화는 주제가 단순하지 않아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연애 소설 읽는 노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23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루이스 세풀베다,

유명한 작가지만 이적지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독서 모임에서 이 책을 읽어 보래서 만나게 되었고,

내친 김에 세풀베다를 몇 권 읽었다.

 

원시의 생활이 생생하게 묘사되는 부분은

남미의 곳곳을 누비며 투사로 살아온 그의 날들이 반영되어 있기도 했고,

그 속의 연애 소설 읽는 노인에 대한 낭만적 묘사도 좋았다.

 

그가 어떤 사연으로 원시의 땅에 자리잡고 살게 되었는지는 신비에 가려 있지만,

자식을 잃은 어미 짐승의 분노를 통해 형상화된

현대 물질 문명의 포악한 발톱에 상처입은 지구는

마음을 아리게 했다.

 

무척이나 무더운 연수를 받는 틈틈이

밀림 속의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을 펼쳐드는 일은

망중한의 여유였다.

그런 좋은 시간으로 기억에 남을 소설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18-08-01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이스 세풀베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한 명입니다.

다른 작품들도 아주 좋답니다.

품절된 책이지만 <감상적 킬러의 고백>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이유 - 생텍쥐페리 잠언집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송혜연 옮김 / 생각속의집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통해 어린왕자 외의 책들에서도 좋은 구절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사막은 원래 확실한 것은 주지 않는다.

그 안에 있으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사막에 가면 인간들은 자신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이끌려 살아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어느 인질에게 보내는 편지 중, 168)

 

어젯밤에 러시아와 스페인이 16강전을 하는데,

피파 랭킹 70위라는 러시아가 8강으로 올라갔다.

연장 끝에 무승부여서 승부차기를 하는데, 어떤 선수가 찰 때 왠지 막힐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그 공은 키퍼가 막아냈다.

나중에 있었던 경기를 보니, 덴마크와 크로아티아가 승부차기에서

열 개의 공 중에서 무려 5개를 키퍼들이 막아냈다. 굉장하다.

 

승부차기도 실력이라 할 수도 있으나,

우연이 더 크게 작용할 수도 있다.

러시아라는 나라의 심장에서 그 큰 외침 속에서 공을 차는 선수의 마음은 졸아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치 한국전에서 스페인이 승부차기에서 지고 돌아갔듯이... 하필이면 또 스페인이다.

 

별을 따라가며

길손이 산에 올라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몰두하다 보면

어느새 별이 길을 안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성당에서 돈을 받고 의자를 빌려주는 사람도 마찬가지.

의자를 내주는 데 너무 열중하다 보면

자기가 하느님을 섬기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된다.(인질 편지, 146)

 

교사도 그렇다.

학생 지도에 너무 열중하다 보면,

학생이 한 우주라는 것을 망각할 때가 있다.

 

중요한 것은

네가 무엇을 향해 가느냐 하는 것이지,

어디에 도착하느냐가 아니다.

인간은 죽음 이외의

그 어떤 곳에도 도착하지 않는다.(사막의 도시 중, 130)

 

냉철한 통찰이다.

어제 허무한 부고를 들었다.

애써 아이를 길렀던 한 어머니가, 쉰의 나이에 암으로 소천했다.

정말 고생했고, 이제 아이가 성장했으니 잘 살아갈 모습만 보길 바랐는데...

 

인생 허무하다.

무엇을 향해 가는가 하는 지향도 허무하긴 마찬가지다.

오늘 처한 일을 너무 열심히는 말고,

잘 넘길 일이다.

 

내일 태풍이 온다 한다.

조용히 지나가길 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맹 - 자전적 이야기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가가 문맹이라니... 아니, 소설가의 '문맹'이라는 작품이라니...

아고타의 '세 가지 존재의 거짓말'은 과할 정도로 강렬했다.

주인공들의 모습도 그렇지만,

쓰는 일에 대한 감동도 잊히지 않는다.

 

크리스토프의 삶을 건너뛰기하며 적어낸 글이다.

모국어를 버리고 적의 언어로 글을 쓰기까지,

통역도 번역도, 원서로 하는 읽기도 아닌,

전혀 다른 언어로 쓰는 일이란 어떤 것일지를 상상하기도 힘든 경지를

그를 통해 조금 상상해 본다.

 

외국어로 책을 읽는 일은,

표지와 경계가 뚜렷한 해수욕장을 벗어나

저 멀리 망망대해를 헤엄치는 것과 비슷하다.

외국어를 읽는 동안

나는 가 닿을 수 없는 수평선처럼 그곳에 있는,

누군가의 모국어와 내 발을 묶고 있는 내 모국어 사이 어딘가에서

대양을 가로지르는 은빛의 물고기처럼 자유롭다.(118)

 

이건 옮긴이의 말이다.

 

문맹은

독서와 서사를 사랑했던 한 여자아이가

작가가 되는 이야기이며,

동시에 사회적, 역사적 비극으로 인해 정체성을 상실한 안 인간이

언어를 배우며 자기 자신을 되찾는 이야기(124)

 

이것도 옮긴이의 요약이다.

 

무엇보다도 그날,

1956년 11월 말의 어느 날,

나는 하나의 민족 집단에 속해 있던 나의 정체성을 완전히 잃어버렸다.(73)

 

이 책은 짧고 가볍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간단하다.

다만, 읽는 이의 마음 속에는 한없이 무거운,

글자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심연의 깊이와 무게를 남긴다.

 

아주 좋은 책이라고는 못하겠다.

재미있지도 않다.

그렇지만, <문맹>은 모국어와,

외국어 독서와,

글쓰기라는 자유자재와 부자유의 간극을 고통스럽게 잇닿게 하는 과정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