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아, 내 외침을 들어라! 내인생의책 책가방 문고 8
밀드레드 테일러 지음, 이루리 옮김 / 내인생의책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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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제가 사라진 미국 땅에서도 린치는 멈추지 않았다. 한국어에선 린치를 폭력 정도로 쓰는 말인데, 사실 린치란 사소한 폭력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도록 폭행을 가하는 일을 쓰는 용어라고 한다.

KKK처럼 백인 우월주의자들 내지는 흑인 해방에 동의할 수 없는 사람들로서는 당연하다고 착각했던 일들이, 얻어맞는 흑인들의 입장에서는 개구리처럼 바들바들 떨면서 하루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도 이미 억압이 체화되어 비굴함조차도 느낄 수 없는 나이든 세대가 아닌, 날마다 배우는 것이 가치관이 되는 아이들에게는 백인의 억압적 구조가 주는 치욕이 이해 가능한 범주를 넘어섰을 것이다.

캐시라는 흑인 소녀의 시선으로 본 흑백 갈등의 문제는 이처럼 신선하게 제기된다.

꿈을 가득 품고 학교에 간 꼬맹이에게 나누어준 '깜둥이용' 걸레같은 책으로부터 그 비극은 막을 올리고,
동네 주민들이 맞고, 치욕을 당하고, 팔다리가 부러지고, 결국 불태워지는 일까지... 린네가 '종'을 나눈 이래로 같은 호모 사피엔스에 속하는 종족들끼리 저지른 것 치고는 혐오스럽기 그지없는 잔혹한 일들이 줄을 이어 일어난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이뤄진 금긋기는 아이들의 세계에도 강제된다. 그 질서를 부정하는 사람은 백인이든 흑인이든 용서받지 못한다.

한창 가치관이 형성될 청소년들에게 이런 여러 가지 가치관을 제시해줄 수 있는 책이 좋은 책이 아닐까? 이런 책이 권장 도서 목록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베스트 셀러나 처세술을 적거나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에피소드처럼 적힌 많은 책들을 뛰어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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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 - 산월기(山月記) / 이능(李陵)
나카지마 아츠시 지음, 명진숙 옮김, 이철수 그림, 신영복 추천.감역 / 다섯수레 / 199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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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지마 야츠시를 요절한 천재작가라고도 한다는데, 사실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데, 세상의 걸작은 이런 곳에 숨어 있기도 한 것이다. 인재도 숨어서 평화롭게 살듯이...

나는 삼국지를 별로 즐겨 읽지 않는다. 두어 번 읽어보긴 했지만, 피비린내나는 써든 어택의 전장을 나는 싫어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 책의 인물들은 삼국지같진 않으면서, 삼국 유사를 떠올리는 사람 냄새를 진하게 풍긴다.

이 책은 중국 사서에서 걸어나온 이야기들을 쓴 것인데, 역사라기 보다는 작가의 감성이 흠뻑 배인 글이 매력적이다. 술이부작(述而不作). 서술하지만 억지스럽게 지어내지 않는다는 서술 원칙이 오히려 인물들에게서 짙은 페이소스(정념)을 자아낸다고 하겠다.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산월기이다. 다소 판타지 소설인데, 인간이 동물인 이상, 호랑이라고 하나 멍멍이라고 하나 거기서 거기다. 다만 호랑이가 되어버린 인간의 외로움을 나는 왠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군대에서 키 180 이상의 헌병들과 근무하면서 내 170의 정상 신장은 한없는 무력감을 주고 말았던 경험처럼,
쭉쭉빵빵 8등신 성형 미인 앞에서 툭튀어나온 이빨과 작은 눈, 광대뼈를 거울에 비춰보며 견적을 고민하는 취직앞둔 여학생이나,
남들은 그렇게도 쉽게 척척 맞추는 문제를 도무지 알 수 없는 학생들의 좌절감이나,
수능보다 높다는 공무원 시험 앞에서 매번 작아지기만 하는 장수생의 비애 같은 것.

징그럽고 지긋지긋한 인간들의 사이에서 소외되어버린, 그러나 그 인환의 세계가 마냥 그리운 것은 인지상정이 아닐까 한다.

사마천과 이능, 소무의 <쿨한 세 남자> 이야기, 이능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 세 남자를 그토록 쿨하게 서술한 나카지마도 대단히 쿨한 남자다. 난 남자지만 쿨한 남자를 좋아한다.
끈적거리는 남자, 질퍽한 눈빛, 난 그런 사람 정말 싫다. 사실 이 책에서 나카지마의 수준을 가장 잘 보여주는 절창은 <이능>이 아닐까 한다. 이런 책을 가지고 투표를 해 볼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그냥 내 기준으로 제일 맘에 든다.

제자에서 자로와 공자는 슬프다. 자로처럼 벌떡 교사를 도륙하고 젓을 담그던 시대가 아직도 여전하다. 공자는 젓갈을 입에 대지도 않았다는데... 나는 젓갈을 좋아한다. 옳은 것을 옳다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 하는 사람은 고금을 막론하고 백안시하는 것이 냉엄한 세상이다. 그럼에도 목을 걸고 그렇다고 한다.

명인의 수준. 이가 커다랗게 보이고, 나중엔 활을 쏘지 않는 경지.
명인의 경지란 어떤 것인지를 깊이 고민하는, 어찌 보면 가장 일본 냄새가 풀풀 풍기는 작품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삶의 한 진한 단면이 명인에 나와있어 보여서...
우리에게 없는 철학의 하나인데... 아니, 원래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제 잃어버리고 만 명인의 추억...

인생은 아무 것도 이루지 않기엔 너무도 길지만,
또 무언가를 이루기엔 너무도 짧은 것.

이 주제를 다양한 이야기와, 다양한 생각할 거리와 함께 우리에게 들려주는 책.
역사 속에서 걸어나온 쿨한 남자들의 이야기가 이 가을 인생을 궁리하게 한다. 사는 게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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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10-02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하실 줄 알았어요. 자로와 공자의 관계... 참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글샘 2006-10-07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책은 재미있다기 보다는 뭔지 삶의 진한 고뇌를 담은 냄새가 폴폴 풍기더군요.
 
청춘이란
아라이 만 지음, 김수경 옮김 / 새터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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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란 시가 있다.

사람의 청춘이란 나이가 가리키는 수치로 따질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열정으로 따지는 것이다... 뭐, 이런 시다.

우리의 주파수를 날마다 새롭게 다듬고, 내게 주어진 운명에 늘 관심을 두는 것. 그것이 청춘이다.

내가 더 나이가 많이 많이 들어서 이런 책을 읽는다면 용기를 더 낼 수도 있으리라.

그가 청춘이란 시를 쓸 때, 타이타닉의 무선 신호 이야기를 듣고 시상을 떠올린 거라 한다.

그런데... 이 짧은 시에 바치는 것 치고는 이 책은 너무 두껍다.

처음에 사진 시가 나오고, 다음에 영어 원문이 나오고, 다음엔 저자의 에피소드가 간략하게 나온다.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잠시 시간을 내서 읽어볼 수도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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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여행자
한스 크루파 지음, 서경홍 옮김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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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사는 방식은 개개인이 모두 다를 것이다.

집 밖에서 즐겁게 노는 일을 즐기는 사람도 있고,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사는 사람도 있다.

이런저런 일로 모두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데, 자기만의 삶의 방식을 큰소리로 말하기도 한다.

학교에서는 공부를 잘 해야 한다.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
학교를 다녀야 한다.
돈이 많아야 한다.
출세를 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모두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한다.

헤르만 헤세의 등장이라고 할만큼 유명하다는데, 나는 처음 만난 사람이다.

이야기는 꽤나 재미있었다.

위에서 말한 고정관념들을 무시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마음의 자유를 주는 책이다.

책도 두껍지 않고, 크지 않고, 적당한 크기다.(하드커버에 대해서는 늘 불만이지만...)

류시화나 헤르만 헤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뒹굴뒹굴 하면서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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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쿠와 우키요에, 그리고 에도 시절 - Art 020
마쓰오 바쇼 외 지음, 가츠시카 호쿠사이 외 그림, 김향 옮기고 엮음 / 다빈치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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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비같지도 않은 비가 흩뿌리더니, 갑자기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음력으론 아직도 윤칠월인데...

이 책에선 하이쿠를 읽을 수 있도록 한글로 음을 붙여 둔 것이 돋보인다.

실제로 하이쿠는 정제된 <정형시>이기 때문에, 그 뜻보다는 형식미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글들이다.
그래서 의미를 음미하는 것도 좋지만, 원음으로 읊어 보는 맛이 일품인 문학이다.

일본 방송을 간혹 보면 아직도 하이쿠 짓기 놀이를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일본어를 고등학교 수준에서만이라도 배운 사람이라면, 짧은 실력이나마, 일본어로 읊조려 보는 하이쿠의 맛이 색다를 것이다.

그 옆에 보면, 하이쿠에 어울릴 만한 우키요에가 실려 있다.

미인도를 그려 두기도 하고, 도쿄의  풍경을 그려 두기도 했다. 네덜란드의 화단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우키요에는 가장 일본적이어서 가장 세계적인 예술로 평가받기도 하는 그림이다.

일본놈들의 행태를 보면 참 부러울 때가 많다.

아들 녀석이 사회 시간에 일본에 대해 배우는데, 그들은 성실하고 부지런해서 경제적으로 성공했단다. 피~ 순 거짓말. 그들은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수행하는 미국 뒤를 닦아 주면서 성공한 것이다. 만주 731 부대의 마루타 실적을 그대로 미국에 상납하고 얻은 평화와 부흥이다.

속으론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들에게 남은 전통, 가부끼나 노, 하이쿠와 우키요에 같은 것들을 보면 별것 아닌 것으로 생색을 잘도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럽다.

십년 이래, 우리도 지방자치제를 표방하면서 각 지자체에서 무슨무슨 '축제'를 시시껄렁하게 펼치고 있지만, 거기 모인 사람들은 떠돌이 유랑극단 내지는 불나방처럼 모여드는 음식 장사들 뿐이다. 토속 음식도 없고, 인정도 없고, 축제 속에 축제스러운 흥청댐은 어디에도 없다. 오로지 자본에 의한, 자본을 위한 한마당만 펼쳐질 뿐. 연꽃 축제엔 연꽃이 피지 않지만 휴가철에 맞춰 열린다는 해괴한 논리 앞에서, 한국의 지방자치제의 현주소를 읽게 된다.

일본의 갖가지 마츠리를 보면 부럽다. 별것 아닌 것들이지만, 제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한국인들은 세계 유일의 시속 100킬로 이상 달리는 버스 안에서, 그 좁은 공간을 활용하는 관광버스 춤을 개발한 민족이고,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식사를 빨리 마치는 민족이다.

느긋한 우리의 시간을 빼앗아간 식민지 시대와 가난했던 현대사의 굴곡을 비웃기나 하는 듯,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서 보니 눈물나게 서러운 과거만 가득한 민족에게, 일본인들은 자랑이나 하는 듯, 전통을 앞세우며 뿌리를 내세운다.

하이쿠의 밝고 발랄하고 신선하고 찡한 언어들을 느끼면서 아름다운 마음으로 우키요에를 바라보면 될 일이지 청승맞게 남 탓이나 하고 있는 내 자신이 짠해지지만, 과연 우리에겐 우리 것이 있기나 한 건지... 생각하면 속이 쓰리고 맘이 아파서 해 보는 소리다.

죽이지 마라, 파리가 손으로 빌고 발로도 빈다.(잇사)
일어 음으론, 야레 우쓰나 하에가 테오 스리 아시오 스루.라고 읽는다.
직역하면, 야, 치지마. 파리가 손을 비비고 다리를 비비잖아... 뭐, 이런 느낌이다. 좀 다르다.

떠나는 내게 머무는 그대에게, 가을이 두 개.(시키)
일어론, 유쿠 와레니 도도마루 나레니 아키 후타스.
직역하면 가는 내게 머무는 그대에게, 가을 둘. 세상은 보는 이 숫자만큼 존재한다.

떨어진 꽃잎 가지로 돌아가네, 아, 나비였구나.(모리다케)
락카 에다니 가에루토 미레바 고쵸우카나.
직역하면, 낙화 가지로 돌아가서 보니, 나빈가...

봄비로구나. 소근대며 걸어가는 도롱이와 우산.(부손)
하루사메야 모노가타리 유쿠 미노토 카사.
봄비구나. 이야기하며 가는 도롱이와 우산. 아 그들의 도란도란 이야깃소리가 정겹기만 하다.

하이쿠를 접해보지 못한 이들이 처음 하이쿠를 대하기 좋은 책이다. 그림이 있어 더 좋다.
그리고, 우키요에만 보기에도 좋은 책이다.
일본어를 조금 안다면, 더없이 좋은 책이다. 중얼중얼 읽으며 사는 맛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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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6-08-31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에 읽은 이 책을 가을에 떠올리는 맛도 좋군요..

글샘 2006-09-01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쿠는 봄에 유난히 작품이 많지요. 이 책은 계절에 상관 없이 즐겁게 볼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