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 튀어! 1 오늘의 일본문학 3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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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학교에서 배우는 거, 실은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야. 공부하는 내용도 그렇고 집단 생활의 규칙 같은 것도 그래. 정해진 통학로로만 다녀야 하다니, 그런 건 명백하게 아무 의미도 없는 규칙이잖니? 나라에서는 국민을, 어른은 어린애들을 그저 편리하게 관리하겠다는 것 뿐이야.(353)

개인 단위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만이 참된 행복과 자유를 손에 넣는 거얏!(328)

앞의 것은 주인공 소년 지로의 엄마 이야기고, 뒤의 것은 아빠의 이야기다.

지로의 아버지 우에하라 이치로씨는 아나키스트다. 무정부주의를 이 책에선 ‘개인의 완전한 자유를 주장하며 정부 및 그 밖의 모든 권력을 부정하는 주의’라고 정의하고 있다.

21세기, 지구상의 인간을 규정하는 악덕 중의 하나가 <정부>다. 정부는 태어나자마자 신성한 국민의 <의무>를 지워주고, 누리겠다는 의사표시를 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권리>를 부여한다.

납세, 교육, 국방의 의무를 제대로 하는 사람은 가지지 못한 자들이었다는 것을 삼척동자도 안다. 세금 포탈하고, 공교육 안 받고, 군대 안 가는 것은 <신의 아들>들이었고, 유리 지갑에서 세금을 신고하기 전에 떼어가고, 공교육이 교육의 다라고 생각하며, 군대를 만땅 채우는 것이 <어둠의 자식들>이었다. 간혹 <사람의 아들>은 조금 특별한 지위를 획득하기도 하지만, 사람의 아들이 어둠의 자식들로 편입되는 것이 요즘의 대세다. 사람의 아들은 결코 신의 아들이 될 수 없다. 개천의 미꾸라지는 용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어제 본 영화 <우리 학교>에서 재일조선인들이 고통받는 이유도 바로 <정부>에 의한 비협조와 <협박>이었다. 정부가 없다면 그런 일들이 일어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결코 나쁘지 않다. 일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부시가 대장인 미국 정부는 악의 축이고, 아베를 비롯한 일본 정부는 전쟁광이다.

콜라나 캔커피도 우에하라 집안에선 금지 품목일 정도로 아버지 이치로씨는 의식적으로 <정부>와 <국가>를 부정한다. 콜라와 캔커피는 미국의 음모이며 독이라는 말과 함께.

일본 정부의 국민 연금이나, 경찰, 교사 등의 공무원에 대해서도 ‘체제에 빌붙어 먹는, 국민 세금의 떡고물로 연명하겠다는 근성을 가진 착취자의 가장 악질적인 한 편’이라고 정의하는 이치로씨.

그런 건 각각 자기 책임으로 해 두면 돼! “그럼 나는 국민을 관두겠어.”하는 말은 나도 하고 싶은 이야기다.

월급에서 꼬박꼬박 기여금을 수십 만원씩 떼어가지만, 정작 국가에서 보장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지금 퇴직하는 이들의 연금을 내주기는 하겠지만, 누구도 선뜻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하는 한국의 경우, 정말 국민을 관두는 것이 현명할는지도 모르겠다.

노인 국가 일본의 고민이 같이 들어있는 소설이라고 하겠다.

운동한다는 이들도 비판의 대상이다. “정말 한심한 자들. 이상을 실현하는 것보다 조직을 유지하는 데 급급하고 있으니, 세상과 점점 더 괴리된다는 것도 모르고 그저 운동을 위한 운동에만 매달린다.”고 날카로운 비판의 날을 세운다.

남쪽의 이리오모테 섬은 작가 오쿠다의 <이어도>가 아닐까? 남쪽으로 튄다고 무엇을 얻을 수 있어서가 아니라, 구속하는 <정부>의 힘을 벗어나기 위한 버리기로 비친다.

인생은 바라기와 버리기의 줄타기라는 말이 있다. 뭔가를 누리기 위해 <바라는> 마음과 그 욕심을 <버리고> 존재의 자유를 누리며 살기 위한 치열한 의식의 결투.

미나미 아이코 선생의 이름이 南愛子인 것은 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질 것 같다.
남쪽을 사랑한다는 이름이 왠지 2편에서 튀어보이는 컨셉트로 작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아버지 一郞과 아들 二郞 사이의 관계도 2부를 기대하게 한다.

<바라는 세상>을 <버리고 사는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2권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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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6-12-19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드디어 별셋을 해산 하셨군요...^^

글샘 2006-12-20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별셋보단 글샘이 저도 익숙하네요. ^^

sprout 2007-02-03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글샘님도 여기까지는 1편까지 보신 거군요^^ 저도 1편까지 막 보고는 2권 책이 없어 기다리는 중에 이렇게... 오쿠다 히데오, 참 멋있는 작가네요. 2권을 읽고 쓴 글샘님의 리뷰도 기대가 됩니다 ^^

글샘 2007-02-03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네요. ^^ 기대되시죠? 2편도 재밌답니다. 오쿠다 히데오의 '걸'이란 단편소설집과 '공중 그네'도 재밌어요. ^^ 어쩌다 보니 제가 팬이 됐네요.
 
축복 - 세상에서 제일 큰 축복은 희망입니다 장영희의 영미시산책
장영희 지음, 김점선 그림 / 비채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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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 선생님의 책이 나오면 꼭 사서 읽어 보게 된다.

먼저 나온 영시집과 이 영시집은 마음에 안 드는 신문에 실린 글들이고, 영어 원문에 번역된 시 뒤에 간단한 글이 붙어 있는 터라, 나는 이런 컨셉트를 가장 싫어하는 취향인지라, 읽지 않을 법도 하건만, 그래서 김용택 같은 이가 이런 짓을 하면 리뷰에 욕을 막 적는 막돼먹은 스탈이기도 하지만, 장영희 선생님의 글들을 읽다 보면, 글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그 사람에게서 나오는 힘으로 변환되어 내 마음마저 동화되는 것을 느낀다고나 할까...

'희망'으로 이름붙일 뻔했던 이 책이 가장 필요했던 분은 막상 장영희 선생님 자신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희망을 갖게 되는 축복을 깨닫게 된 이야기들이 살포시 들어 앉아 있고...
장영희 선생님의 글은 아픔이 묻어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아픈 사람에게 제일 좋은 친구는 같이 아픈 사람뿐이라는 <동병상련>의 진리가 있기에 이런 책들이 우리 삶에 큰 위로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영미시를 읽다 보면, 한국의 시란 것이 얼마나 얄팍한 것인지를 읽게 된다.
근대시란 것이 영미시의 모방 내지는 아류에 불과한 것들이 수두룩 하단 것을 느끼며 좀 슬퍼지기도 하고,
멋도 모르고 외치는 한 구절들의 오해에 대하여 일반인들이 착각하는 것들도 수두룩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엘리엇의 4월은 잔인한 달'이란 의미일 것이다.
4월은 4.19가 있어서 잔인한 달도 아니고, 중간고사가 있어서 잔인한 달도 아닌데... 꼭 4월이 되면 잔잔한 음악을 깔고 진행자의 멘트에 등장하는 대목이다.
봄이 되어 꽃이 피고 싹이 트고, 부대끼는 삶을 다시 살아야 하는 것 자체가 잔인하다는 이야기라는 설명들이 문학 교과서에는 되어 있지만, 사실 이런 건 수능에 안나온다며 넘어가기 십상이지.

한국 근대시의 모체가 된 영미시를 장영희 선생님처럼 가슴이 따스한 분의 설명으로 들을 수 있는 것은 21세기 한국인의 축복이기도 하다.

부디 선생님의 건강을 빌며, 이런 시집을 열 권, 스무 권 더 내 주셨으면 하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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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생육기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5
심복 지음, 권수전 옮김 / 책세상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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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가르친 제자와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 아이(이제 서른이 다된 아가씨지만)가 여름에 갑자기 아버지를 잃고, 자기가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에 시달리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께서 더 살 수 있었는데, 식물인간으로 오래 사는 것은 가족을 괴롭히는 일이라며 스스로 죽음을 택했을는지도 모른다면서 죄책감과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단다. 해줄 말이 없었다.
돈을 많이 벌어야 행복해 질 수 있단다. 그래야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고...
이적지는 아버지가 그 역할을 담당해 와서 자기는 모르고 살 수 있었는데, 그걸 안 이제는 자기가 그 자리를 채워야 한다고...

나는 이제 더이상 아이가 아닌 제자와 나눌 말이 없었다.
그 말이 없는 경지에서, 그 아이가 선택한 길을 열심히 가라고 말해 줄 수밖에 없었다.
온 가족의 생계를 떠안고 수레바퀴 아래서 고생하며 사는 사람들의 삶은 안타깝다.
어차피 삶은 여러 번 반복할 수 없고, 시험삼아 시행착오를 겪을 수도 없는 일회적인 것이어늘...

뜬구름 같은 인생인가? 과연 존재란 것은 무엇인가? 이런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다.
뜬구름 같은 생의 여섯 가지 이야기를 적었는데, 나도 이미 40년을 살고 나니 흐르는 시간이 정말 뜬구름이다.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1장의 아내 운과의 인연을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과연 청나라는 비교적 남녀의 애정 표현이 자유로웠던가? 아내와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는 지은이의 모습은 요즘도 보기 쉽잖은 아름다운 모습이다.

아내 운이 남장을 하고 외출을 했다가 어느 여인네 어깨를 짚고 오해를 받자,
발을 내보이면서 "저 또한 여자랍니다."하며 모면하는 장면이 있다.
중국의 전족이란 인권 훼손의 모습이 떠올라 씁쓰레하기도 하지만, 막상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문제의식을 못느끼며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훗날 뱃놀이를 갔다가 감원이란 여자를 소개해주며 "아름다운 사람을 이미 얻었으니, 당신은 이 중매쟁이에게 어떻게 보답하실 건가요?" 운이는 기뻐하며 나에게 말했다... 아, 이런 대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남편을 위하여 아름다운 여인을 구해주는 아내의 마음이 과연 즐거운 것일까?

이 아내를 잃고 애끓는 모습은 읽는이에게도 전이되어 심금을 울린다.

뒷부분의 양생법에 관한 부분은 본인의 글인지 아닌지 논란이 있다고 하지만, 마음을 다스리려고 노력한 모습이 돋보인다.

장자를 읽었다는 이야기 속에, 양생(養生)이란 말이 나오고, 소요유란 말도 나오니, 소요하며 사는 삶, 우리 삶이 부평초처럼 헛되고 헛된 것임을 명료하게 깨닫고 사는 삶이 웰빙이란 생각을 하게 한다.

괴로움을 이겨내는 삶으로서의 양생, 남의 이야기를 읽기는 언제나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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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란1 2007-06-03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시절 이 책을 읽고 나도 이런 아내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답니다. 결과적으로 남편과 저는 공감하는 것들이 많아서 좋은 친구이기는 하지만 서로의 개성을 너무 많이 존중해 주다보니 정말 따로 국밥인 점도 많답니다. 부부가 된지 20년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글샘 2007-06-04 0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로 국밥도 좋지 않아요? 너무 같으면 재미없을 것 같기도 한데...^^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로알드 달 지음, 권민정 옮김 / 강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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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잘 붙였다.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영어로는 별로 멋대가리 없는 제목이던데.

이 책의 중편 헨리 슈거는 정말 멋진 이야기다. 나도 도를 닦아야겠다. 공중부양 60센티는 안 되더라도, 카드 뒷장을 4초만에 꿰어 볼 수는 없을 지라도... 내 마음을 촛불에 비춰 보면서... 그럼, 누굴 생각한다. 아내? 아들?

헨리 슈거 속의 이야기도 재미있고, 헨리 슈거도 재미있다.

로알드 달이란 이야기꾼의 재능이 담뿍 담긴 이야기다.

나머지 이야기들은 단편이지만, 그의 재담이 가득하다.

뭐니뭐니해도 한달음에 읽게 되는 헨리 슈거의 힘이 로알드 달의 책을 놓지 못하게 한다.

눈을 가리고도 세상을 볼 수 있다는 재미난 상상력을 가진 아저씨란... 그래서 찰리와 초콜릿 공장도 쓰게 되지만, 실제로 더 재미있는 것은 헨리 슈거 이야기다.

'백조'같은 소설은 좀 잔인하기도 하고, 히치하이커는 기발한 로알드 달의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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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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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는 다양한 욕망들이 교차한다.

우선 소설가는 주제를 드러내기 위하여 다양한 작전을 수행한다. 소설가가 다양한 캐릭터를 창조하여 서로 얽히게 만들고, 그 사건 속에서 작가의 욕망을 드러낸다.

작가가 창조하긴 하지만, 캐릭터들은 살아 움직인다. 캐릭터 간에 캐릭터 숫자보다 많은 욕망들이 들끓고, 때론 합의하고 때론 갈등하며 욕망의 밭에서 뒹굴곤 한다. 특히 추리소설은 이 욕망들의 줄다리기가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뭐니뭐니해도 소설을 완성하는 것은 독자다. 독자는 작가의 욕망과 캐릭터의 욕망 사이를 꿰뚫어 보기도 하고 속기도 하면서 심리적 줄타기를 한다. 간혹 줄에서 떨어질 뻔하여 가슴이 철렁하기도 하고, 시야가 뿌얘지기도 한다.

이 소설은 일본다운 소설이다.

수학을 사랑하는 사람들, 과학을 사랑하는 사람들. 그들의 순수함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이 세상에는 거기에 관계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숭고한 것이 존재한다.
명성 따위는 그 숭고함에 상처를 입히는 것과 같다...

추리 소설에서 이런 말을 쓸 수 있는 그들의 인프라가 부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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