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예감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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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조금 슬프지만, 아주 약간 우울하지만, 역시 요시모토 바나나인만큼 '쿨'하다.

어려서 교통 사고로 부모를 잃지만, 예지력을 가진 소녀였던 주인공은 이모와 이유모를 친근감을 느낀다.
나중에 이모가 언니임을 알게 되고, 남동생은 배다른 동생임을 알고 연인이 될 수도 있음을 느끼고,
이모는 제자와 사랑을 나누는 대담한 선생님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모가 피아노를 쳐준다는 대목을 몇 번이고 읽었다.
비 오는 밤, 조용한 데서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으면, 그 음악을 한 사람이 듣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면서. 나중에 '피아'하고 '노'가 행이 바뀌어 있을 때면 괜스레 맘이 쓰였다.
이런 말을 하면 누군가는 엄청나게 잘 연주하는 베테랑이라 착각할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날이 우울하니 조금 센치해지는 건지도 모르고...

지금까지 해온 어떤 사랑도 이렇게 풍경을 지우지는 못했다...
식사가 끝나지 않으면 좋을텐데 하고 생각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단출하게 그릴 수 있는 작가는 역시 탁월하다.

말도 안 돼!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의 이야기를 읽노라면 상큼하단 생각이 든다.
마치 어린 시절 즐겨 읽던 엄희자의 순정 만화들처럼...(그 내용이 무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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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빨강 2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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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을 빌려다 놓고 얼마나 오래 뒤적거렸는지 모른다.
오죽하면 어떤 녀석은 작문 시간에 우리 '재량활동 선생님'은 내 이름은 빨강을 정말 열심히 읽고 있다...고 썼다. ㅋㅋ

1권의 살인 사건이 흥미를 돋우면서 추리 소설로 읽히는 속도감이 있는 반면,
2권의 살인 사건 추적과 사랑 이야기, 그 시점의 변환들은 속도감보다는 인생에 대한 숙려가 같이 얹혀서 읽어야 할 책이다. 그만큼 무겁고 느리게 진행되며 나처럼 템포를 잊어버리면 지루하기도 쉬운 책이다.

노벨상이란 이름이 주는 편견.
그것은 길고 지루한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인생의 이야기를 하는데, 노인들이나 이해할 법한 지리한 이야기를 반복하고 반복하고 반복해도 남는 것은 허망함 뿐이라는 뭐, 그런 것들이 아니려나...

이 소설의 압권인 '시점'의 이동이 보여주는 다이내믹한 이야기의 전개가 2권에 오면서는 많이 느려지고 있다.

그만큼 작가가 뒷부분에서 동양과 서양의 사이에 낀 나라로서의 페르시아, 터키의 과거 역사를 배경으로 깔고 쓰는 소설이겠지만, 남의 나라 역사, 특히 내게는 너무도 먼 터키라는 나라의 세밀화 이야기는 살인사건과 애정 이야기에서 벗어나면서 흥미를 많이 잃게 되었다.

오늘 간만에 큰맘을 먹고, 이 책을 도서관에 반납해야겠다는 일념과 범인을 알아내야겠다는 생각으로 마무리를 지었지만, 역시 노벨상의 편견은 아직도 내게 가득하단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고 있는 옆자리 선생님이, 이 책 재밌냐고 묻기에, 그냥 웃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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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04-23 0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뒤로갈수록 읽어내기가 힘들어지던데요. 전 뭐 오르한 파묵이 노벨상 받기 전에 읽었으니 그 상의 무게에 짓눌릴 일은 없었지만요. 좀 색다르다는 느낌은 좋았지만 다시 다른 책을 들고 싶은 생각은 안나서 이후 이 작가의 다른 책은 안보고 있습니다. 혹시 님께서 진짜 근사한 다른 책을 소개해주실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살짝 하고 갑니다. ^^

글샘 2007-04-24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권은 참 재밌었는데... 2권에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책을 읽을 상황이 아니었던 탓도 있겠지요. 뭐든 운때가 맞아야 한다니까요.^^ 저도 파묵의 다른 책을 읽고픈 생각은 별로 없네요 ㅎㅎㅎ도움이 안 되죠?

석란1 2008-02-12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 갔다가 책이름이 눈길을 확 끌어서 빌려왔어요. 책 겉면이 눈길을 끌어서 읽기는 이 책이 처음인 것같아요. 2권까지 단숨에 읽어야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저는 참 재미있게 읽었어요.
 
도쿄 타워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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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에쿠니 가오리는 반짝이는 도쿄 타워를 올려다 보면서, 어른들의 세상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었다고 후기에서 쓰고 있다.

이제 40대가 된 에쿠니 가오리는, 자기 안에서 아직도 빛나고 있는 아이를 만난다.
그는 40대의 시후미이기도 하고, 30대의 키미코이기도 하다. 아니 20대의 유리이기도 하다.

내 안에는 유년기의 나도 들어 있고, 청년기의 나도 들어있음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40대의 시후미가 20대의 유리가 되어 20대의 남자 아이들과 어울리는 일은 자칫 도착된 사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다가도, 나의 사고도 꽤나 경직되어 있다는 생각을 한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은 상상력이 뛰어나다.
그 상상력이 포용하는 것은 엽기가 아니라 사랑스러움이다.
40대 아줌마가 친구의 아들과 놀아나는 일은 사실 서프라이즈~~에 나올 법한 이야기이지만, 가오리의 향기를 묻히면 경쾌한 이야기가 되고 만다.

시후미에게서는 비냄새가 묻어난다.
비의 냄새는 비릿한 물비린내 속에 시원스런 음향까지를 감싸안고 있다.
가끔 비를 맞는 일이 상쾌하기도 하다.

키미코에게서는 잘 익은 복숭아 향이 난다.
유리에게선 활짝 핀 벚꽃같은 빛이 강하다. 향기따윈 없어도 좋을 듯 하다.

에쿠니 가오리가 나이를 한 열 살 더 먹으면, 잿빛 낙엽 냄새가 나는 글을 쓰지 않을까? 그의 상상력은 독특하지만, 별점을 많이 주고픈 생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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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당무 - School Library 03
쥘 르나르 지음, 유가연 옮김 / 종이나라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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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당무...

그의 삶은 차별과 편애의 일상이었다.
아무리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의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그렇지만, 홍당무처럼 겉도 속도 뻘겋게 익어서 힘겨운 삶을 사는 아이들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다.

홍당무는 경제적으로 궁핍한 집의 아이와는 다른 상황이다.

막내인 홍당무는 꾀가 많은 형과 여우같은(여우님껜 미안하지만) 누나 아래서 늘 뭔가 덜떨어진 인간 취급을 받는다.

그래서 오해도 많이 받고, 미운털도 숱하게 박혔지만... 홍당무는 멀쩡한 한 사람으로 자라난다.

자전적인 소설이라기에 더욱 섬뜩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붉고 들척지근한 무라는 홍당무... 그의 생김새에 어울리잖게 단단함은 숨은 삶이 아닐까?

왜 작가는 그런 삶에 <홍당무>란 이름을 붙였을까...
자기 어린 시절을 상상하면, 낯이 늘 붉어졌을까, 아니면 그 힘든 삶을 단단하게 이겨낸 스스로를 대견스럽게 생각했을까...

아프다고 며칠 결석했던 아이 하나가 복도에서 나를 만나더니 반갑게 웃는다.
중학교도 적응하지 못하고 검정고시로 고등학교에 입학한 그 여자애가 학교를 잘 다닐 수 있을까... 걱정도 되지만, 웃으며 인사하는 걸 보니 힘이 돼주고 싶다.

홍당무를 읽으면 낯을 잘 붉히고, 그래서 학교 다닐 때 속을 무던히도 썩이던 아이들... 그렇지만, 이제는 제 자리에서 멀쩡한 한 사람의 삶을 살 단단한 아이들을 생각하게 된다. 나를 가르치는 것은 늘 아이들이다. 그 중에서도 홍당무처럼 뻘건 아이들... 나보다 훨씬 단단한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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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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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대학 시절이 그랬다. 국가라는 괴물이 너무도 혐오스러워 그넘과 싸우다 보면, 어느덧 나 자신이 괴물이 되어버린 가위눌림에서 한 순간도 벗어나지 못하는 꿈속같던 시절... 그래서 빨리 졸업하고 안일한 교사 생활을 바랐건만... 왜 내가 발령받자마자 두 달만에 전교조가 생기는 건지...

아직도 학교에서 전교조 교사라는 자리는 승진을 위해 관리자들과 좋게좋게 지내는 사람이 아니라 관리자들과 소닭보듯 또는 때론 갈등하며 지낼 일들이 더 많은 듯 하다. 학교 안의 디아스포라라고나 할는지...

일본 땅에서 태어났지만 일본인이 되지 못하고 외국인 취급을 받는 <재일 조선인>들의 이야기들이 요즘 왜 이렇게 눈에 들어오는지 모르겠다. 서경식의 디아스포라부터 박치기, 우리 학교 같은 영화들... 그리고 오늘 읽은 소설, Go...

땅에 두 발을 단단하게 딛고 설 수 있는 자만이 챔피언이 될 수 있다는 아버지의 권투 교습은 마치 그렇게 살아오지 못하고 하와이로, 노르웨이로 가버리고 싶다는... 오로지 go, go...하는 막연한 꿈만 존재하는... 그러나 현실의 세계는 아직도 땅을 굳건하게 딛고 서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인 모습을 표상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소설의 이야기들은 마음 짠하게 하고, 심장 상하게 하고, 가슴 아프게 하지만... 가네시로 가즈키의 이야기는 가볍다.

그러나, 그의 가벼운 말투는 삶의 무게까지도 가볍게 해 주진 못한다. 눈물 질질 짜던 웃대들의 모습이 싫어서 냉소적으로 그리고 가볍게 생각하려 하겠지만, 결국 그들의 현실은 괴물과 싸우는 괴물의 모습을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쿠라이로 형상화된 현대 일본인들과 재일 조선인들 사이엔 상당한 접근도 이루어지고 있어 보인다. 그렇지만 아직도 <조선인도 일본인도 아닌 부초>로 살아가야하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메마른 입 안을 씁쓸하게 만든다. 정지용이 '고향'이란 시에서 그랬듯이... 메마른 입술만 쓰디 쓰다고...

다시 야만의 시대가 한국땅에서 시작되려는지, 국민들의 집회를 경찰(엄밀히 말하면 정부)이 막고 나서겠다고 설친다. 괴물을 대하는 괴물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 목전에 도래한 건지도 모르겠다.

아, 나도 그저 어디론가, 가고 싶다. 야생마처럼 달려서... go, go!!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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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03-25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가볍게 읽히면서도 전혀 가볍지 않은 소설이죠. 가끔 자신이 싸우는 상대와 닮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건 끔직한 경험이기도합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자신에게 보이는게 훨씬 뒤라는게 문제겠죠. 적어도 저의 경우에는요.

드팀전 2007-03-25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재일조선 학교 관련 다큐멘터리가 하나 나왔다더군요.제목이 <우리학교>였던 것 같습니다....아이들과 한 5년 살았다고 하던에...깊이 있는 시각과 애정이 높은 평가를 받는 듯 합니다.영화관에 갈 수 있다면 볼텐데...

몽당연필 2007-03-25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일조선인...제 조카들이 그렇습니다. 아직은 초,중학생인데 조만간 마음의 갈등을 겪겠지요.

글샘 2007-03-25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이미 보셨군요.^^ 참 재미있게 쓰긴 했는데 주제가 정말 무거운 거죠. 인간들의 차별에 대한 보고서... 스스로 괴물임을 뒤늦게라도 깨닫게 되는 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드침전님... 작년에 민주 공원에서 할 때 본 적 있는데요, 참 잘 만든 다큐더군요. 그런데 비판적인 시선은 전혀 없던데, 이 소설은 <우리 학교>의 한계도 잘 적고 있는 것 같았어요. 외부인과 내부자의 차이랄까요... 제가 애기 하루 봐 드릴까요? ㅋㅋ
몽당연필님... 아, 그렇군요. <우리 학교>란 다큐를 봤더니 참 갈등이 많을 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이 소설에선 더 하구요... 박치기란 영화에서도 재일 조선인들의 갈등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석란1 2007-04-03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우리 딸이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들에 푹 빠져있습니다. 아주 재미있다고 저에게 추천하더군요.

글샘 2007-04-04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석란1님도 보세요. 문체가 참 경쾌하고 재미있답니다.^^

turk182s 2007-09-25 0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교조교사들이 학교내에서 소수인가요? 잘몰라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