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가족 - 과레스키 가족일기
죠반니노 과레스끼 지음, 김운찬 옮김 / 부키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제목에 나온 까칠하다를 인터넷으로 검색했더니 이런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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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배]의 한말글 일깨우기 (138) : 까칠하다 


 요즘 다른 사람의 성격을 말할 때 ‘까칠하다’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1) 걔 참 성격 까칠하데. 
‘까칠하다’는 자기가 생각하는 정당한 일에 대해서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공격할 때도 씁니다. 
    (2) 그냥 넘어가면 좋을 걸 왜 자꾸 나에게 까칠하게 구는데? 

‘까칠하다’는 어떠한 말이나 행동이 조금 거친 것을 나타내기도 하고, 그래서 다른 사람이 대하기 어렵다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까칠하다’는 원래 ‘야위거나 메말라 살갗이나 털이 윤기가 없고 조금 거칠다.’의 뜻입니다. ‘가칠하다’나 ‘거칠하다’, ‘거칠다’와도 관련이 있는 말입니다.
‘까칠하다’의 풀이가 사전에 없다고 밀어내기보다는 우리말 표현의 다양성을 위해서도 기꺼이 받아들일 만한 표현이라는 생각입니다.
괜스레 다른 사람에게 까칠하게 굴지 말고 부드럽고 둥글게 대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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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제목을 저렇게 붙인 것은 아마도 '서로 친근하여 거침없이 대하는 부모와 자식 관계, 부부 관계'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뭘 까칠하다고 번역했을까...로 몹시 궁금했는데, 그건 전적으로 번역자의 의역으로 보인다.

원 제목인 Corrierino delle famiglie가 가족 신문이란 뜻이라니 말이다.

그런데, 난 좀 의구심을 갖고 있다. ^^ 꼬리에리노란 말은 꼬리아와 좀 비슷한데, 거기다 까칠하단 말을 쓰니 그렇다. ㅎㅎㅎ

유럽에 얼핏 다녀온 나는 떼제베를 탔을 때, 케이티엑스와 비슷한 느낌을 느꼈고,
이태리 고속도로에서 한국을 느꼈다.(듣자니, 떼제베에서 기차를 사 온 거고, 우리 고속도로 기술은 이태리에서 들여온 거란다.)

이태리 사람들은 열정적이고 좀 과격하고, 어쨌든 까칠하고 엽기적이기가 한국인과 맞먹는다는데...

이 가족 이야기를 읽어 보면, 별로 그렇지 않다. 파시오나리아처럼 귀여운 캐릭터를 한국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최근의 이야기가 아닐까? 내가 요즘 읽고 있는 '금지를 금지하라'란 인터뷰를 쓴 어떤 이의 딸내미가 파시오나리아랑 좀 비슷하다.

직설적이고, 그야말로 까칠하게 아빠의 의표를 콱, 사정없이 찌르는 것이.
부모님은 둘다 멍청해서 결혼했다는 의외의 결론은 진실에 가장 가까운 답 아닐까?ㅎㅎㅎ
그러면서도 따스한 사랑이 늘 넘치는... 그러다가도 어느 날, 여지없이 유산을 내 놓으라는 아이들과 둥글둥글한 부모들. 감상이 넘치는 아내와 상상력이 과다한 남편.

이런 가족의 이야기를 쿡쿡거리며 읽는 일은 영원히 유쾌한 일일 것이다.

작은 세상의 '돈 까밀로와 빼뽀내'처럼 우의적이면서 애정어린 이야기들이 널리 알려지지 못한 것도 이탈리아의 풍토 때문이기도 하리라. 쿠오레처럼 조금은 전쟁 냄새가 묻은 역경 극복의 이야기가 바람직하다고 여겼겠지. 그런 것도 꼬레아랑 비슷한 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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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30 1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7-08-30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이 책 읽으며, 님 생각을 했더랬죠.^^

프레이야 2007-08-30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탈리아 산불이 계획적 방화로 의심되어 대수사가 착수되었나 보더군요.
아, 그분의 딸 진짜 파시오나리아랑 닮은 것 같아요 ㅋㅋ

글샘 2007-08-31 08:57   좋아요 0 | URL
이탈리아에도 산불이 났나요? 요즘 뉴스를 못 보고 피곤해서 푹 뻗어서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잘 모르겠네요. 하긴, 몰라도 멀쩡한 게 세상이지만.
마녀 사냥이나 아닌지, 괜히 과녁이 된 몇 사람만 죽어나는 게 아닌지...
그분이 좋아하시려나 ㅋ 닮았다고 하면...
 
바우돌리노 - 상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현경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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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은 좀 어려웠던 기억이 나는데, 이 책은 처음 샀을 때도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다.

주제 사라마구의 '리스본 쟁탈전'과 마르크 블로크의 '역사를 위한 변명'을 읽다가 불현듯, 바우돌리노를 만나고 싶었다.

역시... 주제 사라마구의 포르투갈은 바우돌리노의 이탈리아에도 있었고, 역사를 위한 변명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를 읽노라면... 기호와 사물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역사란 것은 하나의 '기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바우돌리노를 읽으며 떨쳐버릴 수 없는 화두였던 것 같다.

[a]라는 소리를 아로 써도 되지만, a로 써도 되고, 일본어로 써도 마찬가지이듯이...
그리고 야얏, 하는 쉬운 소리는 아! 하든 오우치! 하든 별로 거리감이 없을 수도 있지만,
한국어의 '식사 하셨어요?'를 영어로 번역할 때 '너 밥 먹었니?'로 번역하면 안 되고,
일본어의 '어디 가세요?'를 '너 어디 가는 거니?'로 번역하면 안 되는 거와 같지 않을까?

굿 모닝이든, 굶었니든... 그냥 친근감의 '기호'에 불과할 따름인 것을...

바우돌리노가 '성인'을 보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사람들은 필요에 따라 <기호>를 정식화하기에 이르고, 그것이 두 권이나 되는 책으로 엮인 것이 이 픽션이다. 이 픽션은 어디까지나 소설이기에, 우리에게 '사실'이 무엇이었던지를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들려준다.

이런 거 보면 리스본 쟁탈전이랑 비슷하다. 과거와 현재가 오락가락하는 것이...
그리고, 역사란 정말 랑케가 말한 것처럼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에는 관심이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유럽 문화의 원천이라고 일컬어지던 '그리스-로마' 문화를 무너뜨린 '이슬람'을 치는 것이 <십자군>의 성스러운 임무였다는 '기호'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기호를 외치는 자들이 '황제'이거나 '가장 힘있는 자'라는 것만이 중요할 뿐.

그러다 보니, 신 제국주의시대의 '엠퍼러'를 자처하는 한 나라의 이슬람 타격이 <십자군>하고 별 다를 것도 없단 생각이 든다.

법에서도 마찬가지다. 법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가를 정확하게 밝혀낼 수 없으므로, 재판에 임하는 증인의 '기억'을 판결의 준거로 삼는다. 그 기억이 오락가락하지만 않으면 그게 판결의 기준이 된다는 것도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포스'가 느껴지는 대목이고, 그러므로 그 판결이란 '기호'는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평생 감방안에 가두어 두기도 하는 거다.

기호란 정말 무서운 것이다.
기호로 작용하는 모든 것들은 모든 '진실'에 우선한다.
기호로 인정받은 모든 것들은 모든 '사실'을 은폐하도록 억압한다.

박정희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막걸리를 즐겨 마시는 서민적인 사람이고 육영수 여사는 인자한 영부인이라는 <기호>로 정식화 되자,
박정희는 만주 군관학교를 나온 친일파였고, 공산주의자였다가 동지를 팔고 목숨을 건진 배신자였으며, 씨바쓰 리갈인지 그 회사에서 나온 로열 샬룻인지를 처 마시며 그때 그 사람을 부른 가수와 지금 재혼 회사를 열심히 운영하는 아가씨를 옆에 끼고 '대연'을 열다가 총맞아 죽은, 그리고 육여사는 박통이 바람필 때 재떨이로 이마가 깨진, 그러다가 74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문세광이 쏘았다고 '정식화된' 총알에 맞아서 불행하게 죽은 불쌍한 여인이란 사실들은 모두 폐기된다.

전두환도 인자한 할아버지일 수도 있다.
그 아들과 탤런트 며느리에게 수백 억을 주는 능력있는 가장일 수도 있고,
장똘뱅이 같은 수하들에게 인심 좋은 보스일 수도 있다.
그가 광주 시민들을 학살하라고 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전두환이 공수부대원이었던 것도 아니다.

전두환은 80년대 혼란했던 나라를 구하기 위해 십이일이라는 용감한 사건을 일으켰고,
이어 대통령이 되어,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평화적인 정권 교체를 성사시켰으며,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을 개최하는 쾌거를 일으켰다.

이런 '기호'들은 그가 권력의 노예가 되어 저지른 온갖 악행들을 폐기시켜버릴 수 있는 것이다.

어두운 기호들이 힘을 얻으면, 생각보다 그 힘은 오래 간다.

간첩이란 '기호'를 얻어 비명횡사한 유족들의 아픔을 수십 억의 보상으로 갚을 수 있겠냐마는,
기호를 믿는 이들은 그 보상 자체를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광주를 민주화 운동, 국가 유공자 대우하는 것에 불신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은 얼마나 많겠는가.

어제던가, 합천엔 극장이 없어서, 공원에서 '화려한 휴가'를 상영했단다.
그 공원이 하필이면 그 새끼의 호가 붙은 공원이었고, 전사모(전두환 사형을 꾀하는 모임일까?) 회원들은 마스크를 쓰고 좀 뻘쭘한 자세로 와서 시위를 하다 갔단다.
'기호'의 힘은 이렇게 '진실'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라는 말보다 '연구'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던 '역사를 위한 변명'이 이 책을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역사'라고 하면, 마치 그 책에 적힌 일들은 모두 사실이고 진실이라고 착각하게 되고,
그 책에 적히지 않은 일들은 '야사'가 되어 믿거나 말거나가 되어 버리는 것이어서,
히스토리아가 그저 '연구' 수준이었으면 하는 그런 바람은, 움베르토 에코가 이 책에서 희대의 뻥쟁이 바우돌리노를 창조하여 떠벌이도록 만들게 한 힘이 아니었을까 한다.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한다는 말은,
인권을, 인간답게 살 권리를 준다는 말은,
힘있는 기관이 '기호'로 정해진 것들을 줄여나갈 때 비로소 내용을 갖게 될 것이다.
아무리 '민주화된 정부'라는 기호가 판을 쳐도 그 알맹이는 '전시 체제'와 다름없다면 인권과 어긋나듯이,
'자율'이란 '기호'로 이름붙은 '타율 학습'과 '두발 타율화'가 시빗거리가 되는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모든 강제된 기호들은 '나'를 억압한다.
'정식화된 기호'를 거부하는 것은 '운동'의 핵심이다.
그러나... 그래서... 운동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바우돌리노의 거짓말을 읽으면서, 에코 선생의 짱구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짱구를 굴리다 보니, 최근에 읽던 책들이 날줄과 씨줄이 되어 얄궂은 생각들의 옷감만 짠다.

새벽 4시가 다 되어 가는데...
임의 침묵을 탈고 하던, 10,000해 선생님이 계시던 백담사의 새벽이 이렇게 후텁지근했을까?
시집의 탈고가 1925년이었으니, 백담 계곡 아무리 서늘해도 마음은 오죽 답답하셨으랴.
새벽 4시,
마찬가지 절집에서 칩거하던 1해 새끼도 두 해 여름 몹시 더웠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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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k182s 2007-09-25 0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좋네요,,기호화와 역사라...이책사놓고 그냥 보관중인데 읽어봐야겠네요..
 
리스본 쟁탈전
주제 사라마구 지음, 김승욱 옮김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주제의 다른 소설들에 비하여, 이 소설은 소설보다는 역사를 보는 역사 철학서에 가깝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얼마 전, 역사가가 얼마나 오류를 많이 저지를 수밖에 없는지를 변명한 마르크 블로크의 책을 읽고 나서였기 때문인지... 과연 역사란 괴물은 어떤 존재일까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주제 사라마구의 책은 '눈먼자'에서 정말 미치게 재미있게 시작했다가,
'눈뜬자'에서 뭔가 좀 계몽 비슷하게 흘렀고,
'모든 이름들'에서 좀 재미있기도 했다가,
이 책에 와서는 주제 사라마구를 쉽게 읽긴 어렵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이 책을 빌려다 두고 뒤적거린 게 한 달이 다 되었다.
그러다보니, 이야기가 정확하게 머릿속에 정리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교정자의 의심의 눈초리. 라이문두 실바의 교정은 역사라는 괴물에 대한 본연의 의심을 버리지 않는다.

역사란 이렇게 늘 의심의 눈으로 읽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역사 교육을 외치는 많은 자들은, 암기 과목으로서의 애국심 세뇌용 역사를 애호하는 거나 아닌지...

주제 사라마구에 겁을 내면서도 도플 갱어는 또 읽고 싶다. 제목이 주는 매력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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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7-08-26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이컨은 실수를 다음의 네 가지 범주로 나눴다.
종족의 우상. 인간 본성이 저지르는 실수. 감각 기관의 불완전함 선입견과 격정의 영향, 모든 것을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지혜에 따라 판단하는 우리의 습관, 사물들 속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것보다 더 많은 유추를 찾아내는 성향 때문에 우리의 정신이 갖게 된 한계에도 불구하고 만족할 줄 모르는 호기심 때문에 생김.
동굴의 우상. 개인이 저지르는 실수. 생각의 차이가 원인. 누구는 세세한 것에 몰두하고, 누구는 광범위한 일반화에 몰두한다. 모든 것을 환원시키는 특정한 학문을 우리가 선호하는 것도 두 번째 실수의 원인.
시장의 우상. 즉 언어의 실수. 단어에 더 이상 아무 의미도 없거나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
극장의 우상, 즉 시스템의 실수. 이 실수가 너무 많아서...

많이 읽을수록 배우는 것은 더 적다. ㅋ

교정자는 매와 같다... ^^

turk182s 2007-09-25 0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제사라마구 소설 읽다가도 가끔지겨워지던데,,,
 
미지의 섬
주제 사라마구 지음, 강주헌 옮김 / 큰나무 / 2000년 12월
평점 :
절판


주제 사라마구의 책을 마구 읽는다.
도서관에서 눈뜬 자들...을 빌리는 데, 옆에 있어서 우연히 빌린 책들이다.
이름은 사라마구..인데, 마구 사 지지는 않는다. 책장에 새책 산 지가 오래 되었다.

이 책은 앞에 읽었던 세 권의 소설에 비해 간단한 우화다.

포르투갈 사람들에게 있어서 항해는 밥벌이이자, 큰 부자가 될 수 있는, 그러니깐 인생의 성공을 가늠하는 로망이었을 수 있다. 미지의 섬을 발견하면 성공한 인생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자, 이제 주제가 말하는 미지의 섬은 돈벌이는 아닐 것이고, 뭘까?

모든 이름들에서 그 외롭던 등기소 직원에 비하자면 이 책의 주인공 사내는 덜 외롭다. 청소부 아낙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미지의 섬을 찾아다니는 모든 이는 외로움의 별자리를 타고 난 것 아닐까?

섬.

한 글자로 뚝 떨어져서 쓸쓸한 어감을 주는 말이다.

무인도라고 하면 더 외로워야 하는데, 어감은 덜 외롭다.
미지의 섬. 여기는 외로움이 더 붙는다. 미지란 말로...

모든 이름들에서 스스로를 죽여버린 한 여인의 등기 서류를 통해 인생의 외로움을 찾아나갔다면, 미지의 섬은 그런 이야기를 우회적으로 돌려 말하고 있는 것도 같다.

인생은 미지의 섬에서 미지의 섬으로 떠도는 항해와도 같은 뭐, 그런 것.

정작, 그의 수도원의 비망록은 아직 읽지 못하고, ... 리스본 쟁탈전도 사서 샘이 찾아 주셔서 빌려다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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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7-09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주제의 책에 집중하고 계시군요. 이 책은 첨 봅니다.
전 몇 권 사두고는 아직..

글샘 2007-07-09 10:31   좋아요 0 | URL
집중하는 게 아니구요. ㅎㅎ 시립도서관에 갔더니 주루룩 꽂혀 있어서 우연히 빌려온 겁니다. 처음에 눈먼 자들...에 혹해가지고...

바람돌이 2007-07-09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눈뜬자들의 도시 보다가 딱 멈췄어요. 어찌나 책장이 안넘어가는지.... 도플갱어 사뒀는데 눈뜬자들을 읽어야 보죠. 지금은 다른 급한 책들 땜에 일단 미뤄둔 상태...

글샘 2007-07-09 10:31   좋아요 0 | URL
눈뜬 자들은 솔직히 지루하죠.
저는 눈먼 자들...과 모든 이름들이 재밌던데요.
도플 갱어는 제목만으로도 재미있을 듯.
 
모든 이름들 - 세계현대작가선 11
주제 사라마구 지음, 송필환 옮김 / 문학세계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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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왜 하필이면, 하필이면 중앙 등기소일까...

사람에겐 늘 뭔가가 따라다닌다. 직업이나 지위, 환경 같은 것이...
그렇지만 인간의 근원을 캐들어가다보면, 누구나 한 장의 종이 조각에 제 이름을 기입함으로써 존재했고, 그 종이 조각이 죽음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삶이 해체된다. 등기소에선 몇 개의 글자로 된 이름과 날짜 외엔 아무 것도 아닌...(178)

중앙 등기소는 그런 의미를 갖는 공간이다.

소설 속에 나오는 사람들이라고는 모두 직책으로 불리거나, 일반 명사로 불린다. 그것도 부정칭으로... 어떤 모르는 여자, 1층 할머니, 3층 여자... 등. 소설가 자신의 이름인 쥬제가 유일한 고유 명사다.

맨 앞, 증명서 : 너에게 붙여진 이름은 알아도, 네가 가진 이름은 알지 못한다.

이게 작가가 이 글을 쓰게 된 모티프인 것 같다.

모든 것들을 소외시키는 주인공, 그에게 의미로 다가온 한 모르는 여자의 이름은 결국 자살로 마감하고, 그의 삶은 다시 소외와 무명으로 달린다. 자기 이름을 알 뿐, 자기가 가진 이름조차 알지 못할 따름인지...

자살한 사람들이란 누구도 만나고 싶어하지 않을 게 틀림없기 때문에 무덤의 번호표를 바꿔버리는 양치기. 아, 이렇게도 고독을 절절하게 탐구한 이야기가 또 있었을까?

사망 진단서를 잃어버린 죽음. 종이 조각으로 존재하는 삶에게 그 삶이 죽은 후 종이 조각의 분실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세상은 아무 의미도 없어.(247) 주제, 그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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