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으로의 긴 여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9
유진 오닐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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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유진 오닐'이 헌정사에도 밝혔듯이 이 작품은 작가의 묵은 슬픔의 기억들을 희곡으로 적어내린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다. 작가 '유진 오닐'은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이며 <<지평선 너머>>, <<안나 크리스티>>, <<기묘한 막간극>>, <<밤으로의 긴 여로>>를 통해 총 4회에 걸쳐 퓰리처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기도 하였다. 반면 활동기 시절의 작가 '유진 오닐'의 성공의 모습은 어릴적 암울했던 시절로 점철된 과거로부터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기도 하였다. 결국 '유진 오닐'은 1941년 그 자신의 어린 시절과 마주보고 그 시절의 이야기를 '티론 가족'이라는 작품 속 캐릭터들을 통하여 깊은 연민과 이해와 용서를 담아 <<밤으로의 긴 여로>>를 쓰게 된다.

<<밤으로의 긴 여로>>는 '유진 오닐'에게 4번재 퓰리처상을 안겨준 의미있는 작품인 동시에 그의 생전에는 발표되지 못하였던 작품이다. 작품 속 등장 인물들은 작가의 어릴적 가족의 모습을 모델로 하였으며 작품의 내용 또한 생전의 경험과 기억을 기반으로 하였다. 하지만 이 기억은 아픔과 상처의 기억이자 작가의 치부와도 같은 이야기였다. 작가는 자신의 비극적인 가족사가 자신의 생전에 공개되는 것을 감당할 수 없었지만 과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는 슬픔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돈과 명예를 좇아 살아가는 아버지는 작품 속 '제임스 티론'이라는 인물로 마약중독자였던 어머니는 '매리 캐번 티론'으로 그리고 두 아들을 통해서 자신의 형 제임스 오닐2세의 벌거벗은 모습이 <<밤으로의 긴 여로>>에 담겨져 있다. '유진 오닐'의 실제 가족사를 바탕으로 하였기에 더욱 사실감 있는 묘사와 감정들이 반영되었다.

정상적인 가족처럼 보이는 '티론 가족'은 어릴적 '유진 오닐'의 기억처럼 음울한 분위기 속에서 등장하게 된다. 무거운 분위기와 보이지 않는 두려움들은 작품 속 주인공들로 하여금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여러가지 수단을 택하게 된다. '티론'은 가난을 '메리'는 의사탓을 '에드몬드'는 유명한 비관주의 작가들을 탓하지만서도 자신들에 대해서는 한없이 변호를 하며 상대를 비난하고 상처입힌다. 이들의 이야기는 절망과 그리고 비관으로 가득차 있지만 작가인 '유진 오닐'은 이들에 대하여 '깊은 연민과 이해와 용서'로서 <<밤으로의 긴 여로>>를 쓰기에 죽어버린 슬픈 인물들이 아닌 새롭게 숨쉬는 작품 속 인물들로 거듭 나게된 것이다. 작가는 '운명'에 얽매여 망가져가는 '가족들'의 모습에서 미움을 말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렇기에 자전적인 그의 이야기는 인간의 보편적 진실로서 관객들과 독자들에게 다가서며 진정한 예술 작품으로 남게된다.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묘사된 '유진 오닐'의 가족이야기는 '유진 오닐'의 삶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닌 그 자체였기에 더 감동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말년에 이르러서 '유진 오닐'은 병환으로 세상을 떠나지만 <<밤으로의 긴 여로>>는 밤이 아닌 빛으로서 세상 밖에 나와 많은 사람들에게 가족의 의미와 용서와 이해를 구하는 가장 훌륭한 '유진 오닐'의 대표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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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정류장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1
가오싱젠 지음, 오수경 옮김 / 민음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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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강서성 간저우에서 출생한 가오싱젠은 동양의 전통 그중에서도 중국 연극에 기초하여 서양 연극의 장점을 살린 희극작가이다. 1980년대 베이징인민예술극원의 극작가로 활동한 '가오싱젠'은 버스정류장, 야인등의 명작품을 남겨 명성을 쌓는다. 비록 프랑스로 망명하여 사상에 대한 비판을 하였다는 이유로 금서목록에 올라가는 불운을 맞이하기도 하였지만 문학 세계에서의 '가오싱젠'은 중국의 연극 문화의 보고이자 수작인 작품들을 탄생시킨 거장임에 분명하다.
'가오싱젠'의 <<버스정류장>>은 다성부를 활용한 연극 실험인 <<버스정류장>>과 모노드라마인 <<독백>>현대 연극이 중극 전통극의 연극 개념의 회복하고자 실험한 <<야인>>이라는 작품이 수록되어있다. 책은 친절하게도 <<버스정류장>>과 <<독백>> 두작품에 대한 작가의 설명과 제안이 친절히 담겨져 있기에 작품에 담긴 작가의 담론과 제안을 쉽게 살펴볼 수 있게 되어있다. 그렇기에 책을 읽기전 '가오싱젠'이 말하는 공연에 대한 설명과 제안을 한번쯤 미리 읽고 바라본다면 더욱 작품을 유익하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버스정류장>>이 배경이 되는 곳은 교외의 한 버스 정류장이다. 정류장에는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버스를 기다리며 여러가지 삶의 이야기와 시대와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서로 갈등하기도 하며 반복하는 가운데서 버스를 기다린다. 오자마자 승객들을 태우지 않고 지나쳐가는 버스는 승객들의 기분을 한껏 고조시키며 좀더 과격한 그리고 진솔한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소재이며 승객들을 서로 이해하게 만들고 묶어주는 역할도 함께 한다. 작품은 다성부를 활용하고 있기에 눈으로 읽기에는 사실 여러가지 제약이 따르기도 하다. 선율이 합쳐져서 이뤄지는 합창을 직접 듣지 못하고 연결된 표시를 통해서 작품을 바라볼 수 없다는 점이 참으로 아쉽다고 볼 수 있다.
두번째 작품 <<독백>>은 모노드라마이다. 한사람의 배우로 상영되는 모노드라마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독백>>은 주인공의 풍부한 역할과 감성 그리고 생각을 표현함으로써 '가오싱젠'이 가지고 있는 극의 이해도를 수준 높게 이야기하고 있다. 작품 속 주인공은 극의 시작과 함께 등장하여 노끈으로 관객과의 선을 긋과 보이지 않는 담을 쌓아올린다. 작품 속 주인공은 때로는 벽을 허물거나 대사를 잊거나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작품 속 주인공임을 자각하며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여러 등장인물들을 한 사람이 묘사해 나가는 부분과 주인공의 감정의 다양한 표현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세번째 작품은 <<야인>>이다. 다성부를 이용한 현대사시극인 <<야인>>은 중국 전통극의 기초가운데 서양연극으로 이야기되는 현대 연극의 개념을 조화시킨 작품이다. 그렇기에 <<야인>>은 서양작품의 아류가 아닌 중국의 연극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삼림지구에 털복숭이 원시인이 나타났다는 보고가 올라오고 사람들은 야인을 보고자 몰려오게 된다. 작품 속 주인공으 생태학자이며 그 또한 일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가운데 야인을 연구하기 위해서 방문하게 된다. 작가는 현대와 원시 그리고 인간과 자연이라는 상극의 조화와 화합을 추구하고자 한다.

'가오싱젠'의 세 작품중은 기존의 중국 연극에 비해 창의적이며 실험적인 요소들이 다분히 강한 작품들이었다. 단순히 작품을 통해 사상의 미화나 선동이 아닌 극작품을 통해 중국의 전통을 지키고 새롭고 참신한 발전상을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가오싱젠'이라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위치와 비중은 매우 크다고 말할 수 있다. 사회의 다양한 부류와 대화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가운데서 드러내는 언어는 새로운 창조언어이며 중국문학의 새로운 발전상을 다시한번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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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0
니꼴라이 고골 지음, 조주관 옮김 / 민음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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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관>>은 러시아의 어느 소도시에 암행 감찰관의 방문이 온다는 소식 가운데 생겨난 사건을 배경으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희극이다. 작품 속 주인공인 '홀레스따꼬프'는 하급관료이지만 중앙의 암행감찰관으로 착각한 사람들을 속이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과 주인공이 떠난뒤 남겨진 이들의 깨달음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실소를 자아내는 해학이 담겨져 있다.
관료사회와 그 면면을 파헤치고 조롱한 '니꼴라이 고골'은 작품 속에서 속물적 인간들의 자화상을 훌륭이 그려냈지만 <<검찰관>>으로 인하여 6년간 고향을 등져야 하기도 하였다. 웃음을 통한 현실의 고통 바라보기로 인하여 풍자의 진수를 보여준 <<검찰관>>은 매력적인 하급 관리 주인공 '홀레스따코프'는 작가가 독자와 관객들에게 선보인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러시아의 관료제도와 보수적인 체제 안에서 <<검찰관>>과 같은 풍자극이 나왔다는 것은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다. 작가가 탄생시킨 '홀레스따꼬프'는 20대의 젊은이로서 입만 열면 과장과 허풍을 말하고 사람들을 속이는 거짓말을 한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을 허풍쟁이, 거짓말쟁이 등으로 여기며 멸시하거나 거리를 두게 되지만 작품 속 주인공은 마치 '속임수'로도 알려진 '머큐리'처럼 사람들을 속이지만 독자와 관객들에게 미움을 받지 않는 캐릭터이다. 이는 작품 속 주인공이 속이는 대상들에 대한 관객과 독자들의 반발심리에 기인한다. 즉 악이되 더 큰 악을 비하하기에 먼저의 악은 비난을 덜 받는 것과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홀레스따꼬프'는 변화무쌍하다. 여기서 변화무쌍하다는 것은 그 자신이 제 3의 인물을 연기할때 자신이 원하는 대상으로 완벽한 연기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가 허풍을 떨고 과장되게 이야기 하며 사람들을 속일때 그의 말을 믿고 그에 반응하게 된다. 결국 상대가 알지만 그는 속일 수 있다는 경지에 오른 인물이 바로 '홀레스따꼬프'라고 말할 수 있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대체로 자신들의 직위를 마음껏 누리는 관료들이라는 점과 사회적 지위가 높은 점에서 그들이 속아 넘어가는 모습은 독자들에게 또 다른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작품에 대한 해석은 일차적으로 관료사회에 대한 비판과 풍자라고 말할 수 있다. 지방의 소도시를 지휘하는 이들에게 닥친 암행 감찰관은 등장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의 상위권력이자 그들의 위치를 위협할 수 있는 이의 등장이다. 항상 남의 위에 서있던 그들은 자신보다 높은 권력을 마주쳤을때 허둥대고 당황해 한다. 거들먹거리는 이들의 당황스러움은 겉으로는 더큰 권력이지만 결국엔 그들 보다 낮은 인물들에게 속아 넘어가는 것이니 이 또한 독자와 관객들에게 재미있고 통쾌한 즐거움을 선사한다고 볼 수 있다. 두번째 관점에서 이 작품을 보자면 이 작품은 사회적인 퇴폐를 가리킬 수 있다. 우리는 웃음 가운데서 현실의 고통과 슬픔을 바라볼 수 있다. 우리가 믿고 따르던 이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과 면면에서 우리는 그들의 통치아래서 살아가는 슬픔을 바라보게 되고 사회 속 또 다른 사회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어떠한 관점이던 해석이던 우리는 '홀레스따꼬프'의 다양한 인물 변화만큼이나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해석이야말로 독자와 관객들이 즐길 수 있는 즐거움 가운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할 수 있다.

풍자 가운데 드러나는 날카로운 공격의 발톱을 숨기고 관객들에게 발가벗겨 세운 <<검찰관>>이 단순히 사회를 조롱하고 비판하기만 한다면 작품의 매력은 반감될지도 모른다. <<검찰관>>의 도덕과 사회에 대한 풍자는 기실 사람들에게 다양한 상황을 보여주고 담론을 이야기 한 뒤 바꿔나가는 역할로서 독자와 관객들의 참여를 유도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극의 마지막 부분처럼 무언 속 인물들의 모습에서 앞으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또한 생각하며 이야기 할 수 있게 된다. 막이 내리는 순간 또 다른 막이 오르는 희극 <<검찰관>>은 작가 '니꼴라이 고골'이 던지는 거짓말 처럼 사라지는 불량 솜사탕의 달콤함 처럼 순수함을 가장한 나쁜 먹거리로 유혹하는 달콤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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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눌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1
헤르만 헤세 지음, 이노은 옮김 / 민음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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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눌프>>는 독일의 문학작가 '헤르만 헤세'의 의미있는 작품이다. 작품 속 문체는 거침없이 미끈하여 독자로 하여금 부담을 주지 않는다. 또한 부드럽고 단순한 문장의 구조는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분위기를 충분히 살리고 있다. 독자로 하여금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하면서 내면적 성찰을 이끌어 내는 '헤르만 헤세'의 기풍이 잘 살아 있는 <<크눌프>>는 문학작가 '헤르만 헤세'가 사랑하며 많은 독자들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문학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크눌프>>작품 속 주인공은 작가의 분신이자 작가의 소망을 담고 있는 인물이다. '헤르만 헤세'는 '크눌프'의 삶을 통해서 19세기 독일의 전원과 그 안에서 살고있는 시민들의 모습을 소박하게 묘사한다. 전체적으로 '헤르만 헤세'의 작품들이 그러하듯이 '크눌프'또한 다양한 사고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매력적인 캐릭터'임에는 분명하다. 평범하리만치 단순한 그의 삶에서 어떤 사건이나 커다란 깨달음이 담겨져 있지 않지만 '크눌프'의 이야기는 분명 독자들을 사로잡는 힘이 담겨져 있다.

'크눌프'는 안정적인 삶과 직업을 거부한채 떠돌이 삶을 살아간다. '크눌프'에게 있어서 못박힌 삶보다는 바람처럼 살아가는 삶, 세상과 만나고 사람들을 바라보는 삶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망하는 안정적인 삶과는 궤를 달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크눌프'의 삶이야 말로 작가가 희망하고 소망하는 삶이라는 생각이 작품 속 곳곳에서 나타난다. 작가 '헤르만 헤세'가 종종 '크눌프'라는 매력적인 캐릭터에 대해서 무한한 애정을 표현하는 것 또한 자신의 삶이 바라는 진정한 모습이기에 그러할 것이다.

'크눌프'에 대해서 굳이 비유로 설명하자면 음유시인이나 한량과도 같은 이미지를 그려낼 수 있다. 자연을 노래하고 이야기 하는 음유시인과 세상의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아니하고 그저 자신이 원하는대로 살아가는 한량의 모습에서 우리는 미워할 수 없는 혹은 동경하는 삶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반면 언급한 음유시인과 한량과도 같은 이미지의 반대편 쪽에는 어두움이 자리잡고 있다. 배신당한 상처와 자식과의 생이별 그리고 소유함이 없이 떠도는 방랑자의 삶은 작품 속 캐릭터의 두가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겉과 속의 절묘한 조화와 성향은 작품을 읽는 동안 독자로 하여금 어느 쪽의 면에 더욱 치중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해석과 다른 느낌을 받게 되고 이러한 느낌이야 말로 '헤르만 헤세'가 바라는 독자에 대한 반응이 아닐까라는 생각 또한 해본다.

비록 '크눌프'가 사회적 기준으로 보았을때 기준 미달의 삶을 살고 있지만 정착하여 살아가는 사람들 무언가에 얽매이고 제약받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 또한 또 다른 관점에서 또 다른 '크눌프'일 뿐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자신의 내면적 성찰과 자아를 찾아 가는 과정 가운데서 만나게 되는 종착점에서 그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긍정적 평가는 '크눌프'의 삶 전체에 대한 평가이다. '하나님'의 평가에서 비로소 작가는 억지로 맞춰지는 삶이 아닌 '의미있는 삶'임을 독자는 깨닫게 된다. 세상 가운데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사라져가는 수많은 '의미있는 삶'을 살아가는이들과 그러한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 이들에게 '크눌프'의 삶은 독자들에게 위로와 평안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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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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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는 데카당스, 혹은 무뢰파로 불리우는 작가이다. '데카당스'란 쇠미, 쇠퇴, 조락을 의미하며 무뢰파 시류는 당시의 문학작가들 중 시대를 앞서나가 불신과 고뇌, 혼란 등을 통해 시대를 비판하던 작가들을 지칭하는 명칭이다. '다자이 오사무'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자신의 출신에 대하여 부끄러움과 죄악감을 느끼며 살아갔다. 편하게 살 수 있는 환경 가운데 있으면서도 그가 접하고 따르게 된 사상은 '기독교'와 '공산주의'였다. 혼란스러운 전후 체제 안에서 두 개의 이념은 서로 융합되어 자본주의와 지주 계급에 대한 공세 그리고 지배사회에 대한 외침으로 나타난다. '다자이 오사무'는 작가의 자전적 체험인 내용이기도 하지만 당시 전후 세대의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글이며 상처받은 영혼들의 외침이다.

일본에는 8만 이상의 신들이 살고 있다. 그렇기에 일본은 '신들의 나라'라고 불리우며 신의 존재에 대하여 큰 거부 반응 없이 쉽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러한 일본에 상륙한 '기독교'는 단일신을 숭배하지만 의외로 일본인들에게 거부 없이 쉽게 받아들여졌는데 단일신의 속성조차도 많은 신들 가운데 주창될 수 있다는 인식에 기인한다. 얼핏 모순처럼 보이는 이러한 사상은 일본 전반에 퍼진 많은 신들의 가르침과 사상 속에서 살아온 일본인들의 독특한 사고와 이해를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

'기독교'의 근본적 가르침에 대하여 일본인들은 자신과 사회 그리고 체제에 접목시켜 활발히 활동하던 시기가 있었다. 특히 전후 사회체제 속에서 '기독교'는 배척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믿음의 종교로 거듭나기도 한다. 그들의 관심사는 자신들의 내면적 완성 그리고 채워짐을 위한 '기독교'의 가르침이었다. 이러한 '가르침'을 통해서 전후 체제 속 공허감과 패배의식을 몰아내고 사회안에 속한 자신들에게 맞춰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 '다자이 오사무'는 인간 실격을 통해서 '인간'과 '세상'그리고 '사회 질서'의 이면을 고발하는 작품을 남긴다. '주인공'에 대한 '화자'인 작가의 글은 '작가 자신'의 삶에 대한 회고록이면서 한편으로는 사회인들의 고백이기도 하다. '주인공'의 수기를 중심으로 '화자'는 그러나 확실히 몰락해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 '주인공'의 몰락에 대한 서문의 글은  <<인간실격>>이 가지고 있는 인간의 나약함이 유린당하는 현장을 요약하고 있으며 '화자'가 만난 진실에 대한 간접적인 충격을 미리 보여준다.

<<인간실격>>의 이러한 배신과 몰락 이라는 테마는 기실 '작가'의 삶과도 연결되며 '기독교'의 '성경'의 내용 중 일부에 대한 자기 해석에 따른 결과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일본이라는 나라의 종교적 특색을 이해하고 그들이 이해한 범주내 에서 작품을 썻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만일 <<인간정신>>을 교리 차원에서 분석하게 될경우 작품은 심각하고 지루한 논쟁거리가 될 것이다. 작품을 바라보고 이해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인간의 나약함'과 '작가가 경험한 배신'에 대한 비유로서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으로서 '기독교'의 테마가 인용되었다는 사실을 부담없이 받아들이고 작품을 바라본다면
일본 전후 역사상 가장 훌륭하며 수많은 문학 작가들이 숭배하기 마지 않았던 '다자이 오사무'의 불꽃같은 삶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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