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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0
하인리히 뵐 지음, 김연수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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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하인리히 뵐은 1972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인물이다. 전쟁 직후 혼란한 독일의 상황을 묘사하며 소외받고 외면 받은 상황과 이들을 작품 속 소재로 사용하였다. 문학 작품을 읽을때 작가의 시대적 상황과 성향을 이해하는 것은 작품을 읽고 공감하는데 있어서 도움을 주기에 짧게나마 서술하는 바이다.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언론의 치부를 건드린 작품이다. 알권리와 인지도를 위한 무분별한 정보공개와 왜곡 그리고 선정성은 오늘 우리 사회에서도 문제되는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약 30년전에도 언급되었던 문제들이 오늘날에도 논란이 되고 있다는 점은 시대를 뛰어넘은 문제점을 찾아내어 지적한 하인리히 뵐의 날카로움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언론은 사회다수에게 문제를 알리며 왜곡되거나 숨겨진 진실을 밝혀 사람들에게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언론의 다양한 역할 중 일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역할 가운데는 표현에 있어서 선정성과 정확성 그리고 대상의 권리등을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하는 언론의 책임론도 함께 다뤄져야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운데 나타나는 문제는 언론의 정보에 의지할 경우 그릇된 정보와 견해로 인하여 잘못된 선입견과 인식을 가질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언론의 치부' 즉 언론의 폭력성과 그 폭력성에 희생된 이혼녀 카타리나 블룸의 개인적인 명예가 살해당하고 보복의 과정 가운데서 그녀가 기자를 살해하게 된 점을 이야기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언론의 폭력을 '살인'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통해 복수한 그녀의 이야기는 비록 허구의 내용이라 말하지만 (작가는 서문에 이 이야기가 허구임을 말하며 당시 자신과 대립하고 있던 빌트지와는 상관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실질적으로 이 이야기가 언론의 보도방식에 이의를 제기하고 그들의 불편함을 야기시키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는 책을 읽는 가운데 왜 카타리나 블룸이 살인을 하였는가? 라는 질문을 받고 살인의 원인을 찾아 가는 가운데서 드러나는 언론의 불편한 모습들을 발견하게 된다. 분명 언론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과 과거 혼란 스러웠던 독일인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며 시대변화와 각성을 촉구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은 면 뒤에는 선정적이며 자극적이며 왜곡된 진실 가운데 국민과 여론을 조작하는 부분도 존재하리라. '카타리나 블룸은 27살의 어린 나이로 가정관리사로 살아가던 중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범죄행위를 일으켰다. 그렇다고 하여 그녀가 행실이 고약하거나 잘못된 심성을 소유한 인물은 아니였다. 그녀는 비록 어려운 환경 가운데 자랐으나 성실했으며 진실한 여성이였다. 살인 사건은 그렇기에 더욱 호기심이 당겨진다. 왜 '카타리나 블룸'은 그를 죽였을까? 살인 사건의 진실을 알기 위하여 그녀의 행적과 참고인들의 진술 그리고 경찰과 검사 변호사들로부터 얻어낸 이야기들을 통하여 우리는 그녀가 당한 폭력을 통해 오늘날 언론으로부터 명예살인을 당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카타리나 블룸'의 부서져 가는 모습을 통해 새로운 경각심을 얻어낼 수 없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당하는 삶의 무너짐과 유린당함은 독자들 또한 공범이자 방조자이며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작품이 가지고 있는 무게감과 호소력은 짙은 색채가 되어 시대와 사회를 외면하는 독자들로 하여금 시대문제를 돌아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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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드로 파라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3
후안 룰포 지음, 정창 옮김 / 민음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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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책의 장르를 그리 많이 접해보지 않았던지라 라틴 아메리카의 작품은 그저 생소하고 낯설기만
하였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지명 그리고 명칭들은 익숙해지지 않은 채로 끝까지 전개가 되었지만
책의 내용과 구조 만큼은 정말 좋은 작품이라고 추천해주고픈 책이다.

1917년에 출생한 후안 룰포는 어두운 유년시절과 낮은 학력을 소유한 작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뻬드로 빠라모는 서정적인 문체와 복잡한 구조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품을 읽기전에 언급하고픈
점은 내용이 전개될 경우 내용상의 주인공이 누구인가를 먼저 파악할 것을 권하는 바이다.
<<뻬드로 빠라모>>는 모호함으로 점철된 스토리 진행방식을 보여주는 작품이기에 (예를 들자면 혹
자는 그가 죽었다고 말하나 이후에 그는 살아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고 있다)작품의 내용 전개시
누구의 시점이며 누가 이끌어 나가고 있느냐를 살피면서 천천히 음미하는게 좋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어머니의 유언으로 부터 시작된 '뻬드로 빠라모'찾기의 여정은 내용이 전개됨에 따라 '뻬드로 빠라모'
의 관점으로 변하기도 하고 그의 아들인 '후안 쁘레시아도'로 다시 옮겨가기도 한다.
죽은자들의 또 다른 이야기처럼 유령처럼 보이나 보이지 않는 현실의 모호함처럼 작품 내용은 신비하며 몽환적 분위기를 보여주기도 하며 비참함 가운데서 살아가는 이들의 슬픔과 원망이 담겨있기도 하다.
성경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첫번째 제자인 '베드로'를 의미하는 '뻬드로'와 '황무지'를 의미하는 '빠라모'를 합친 '뻬드로 빠라모'는 꼬말라의 지주이다. 그는 많은 이들에게 원망의 대상이다. 소외된 농촌에서 그가 가지고 있던 힘과 그의 역할은 사람들의 생명과도 같은 땅을 죽음으로 내몰아 버리고 황폐화된 땅을 통해 사회주의적인 색채를 보여주며 '뻬드로 빠라모'를 통해 타도 되어야할 대상의 상징성을 보여준다.

낯설기만한 라틴문학가운데서도 처음 접해본 멕시코 문학은 구조적으로 복잡하고 운동적 요소가 내포되어있는 독특한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변방의 문학을 단숨에 중심지에 올려둔 작품이라고는 하였으나 낯설음은 해결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뻬드로 빠라모>>는 등장인물들의 독특한 설정과 신비함 그리고 부드럽고 간결한 문체등을 통하여 작품을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으며 다양한 생각을 통한 여운을 깊이있게 남기는 작품이라고 정리하고 싶다.

전쟁이란? 사회란? 계급이란? 사랑이란? 땅이란? 다양한 생각들을 할 수 있도록 하며 복잡한 사고만큼이나 복잡한 구조를 보여주지만 구조야 말로 <<뻬드로 빠라모>>를 무미건조하지 않으며 평범하게 묻히지 않게 하는 요소이다.
<<뻬드로 빠라모>>는 비극적 최후를 장식하는 삶의 종착점으로 우리를 인도하며 '후안 룰포'라는 작가의 삶과 작가로서의 삶 그리고 멕시코 민초들의 삶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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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4
알랭 로브그리예 지음, 박이문·박희원 옮김 / 민음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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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작품을 외면하는 경우는 드물기는 하지만 없는 경우는 아니다. 명작이란 때로는 그 시대의 사람들의 열렬한 환호와 더불어 각인되기도 하지만 일부의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고 논란 가운데 머무는 경우도 있다. 로브그리예의 작품 <<질투>>는 누보로망(신소설)이라는 명칭이 잘 어울리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첫 출판 당시에 746부라는 판매부수를 올렸지만 판매부수가 작품성을 평가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독특하면서도 세밀한 묘사방식은 1950년대의 상황과는 맞지 않았으리라 1인칭 시점에서 전개되는 시점 묘사는 공간과 시간을 뛰어넘어 <<질투>>라는 작품 세계를 만들어 내고 있다. 비록 작품 속 주인공이 어떠한 마음과 사고를 보이는지 알 수 없다 하여도 우리는 그의 시선과 전개에 따라 하나의 감정을 읽어내고 그 감정의 불편함에 빠져 함께 집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작품의 깊이를 보기 위해 세밀하게 읽으라고 권하고 싶지 않다. 눈이란 드러난 것에 대한 모든것을 읽어낼 수 없으며 때로는 속기도 하고 엉뚱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질투>>를 읽어보아도 작품 속에서 기승전결을 구분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심지어는 특별한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 무언가도 보이지 않는다. 아내인 A와 이웃인 프랑크가 담소하는 가운데 함께 시내가고 그리고 하루밤 자고온다. 한줄 요약이 될정도로 간단한 작품의 내용이 가지고 있는 힘은 줄거리에 있지 않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보다는 제목처럼 감정을 읽어낸다면 이 작품이 얼마나 인간적이며 강렬한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만약 당신이 눈앞에 있는 그 무언가를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바라본다면 대상이 표현하는 약간의 제스처에도 반응할 수 있을 것이다. 정지된 시간처럼 보이는 공간 속에서 조차 움직임을 잡아낼 수 있다면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질투'라는 감정은 남을 부러워 하거나 또는 그것이 고양된 격렬한 증오나 적의라고 말한다. 이는 사랑의 한 형태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책의 어느 부분에서도 '관찰자'의 감정이 묘사되거나 서술되어 있지는 않다. 그 많은 감정들은 어디있을까?
이 책의 매력은 바로 그 감정을 직접 묘사하거나 서술하지 않고도 그 감정을 강렬하게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사방으로 뻗어가는 직선과 그림자의 묘사 멈춰진 것들을 숨막힐 정도로 묘사하면서도 불편함을 느낄 정도의 감정을 전달하고 있는 공간의 묘사는 분명 쓸데 없어 보이면서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볼 수록 불안정을 더해주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오늘날 1인칭 카메라 시점으로 그것도 8mm 비디오로 관찰하는 작품을 인상 깊게 보았다면 이 작품 또한 인상 깊게 보고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작가가 친절하게 모든것을 설명하며 기승전결을 통한 시나리오와 줄거리에 익숙하다면 <<질투>>는 그저 내용도 사건도 없는 평범한 아니 그 이하의 작품일것이다. '누보로망' 기존의 소설의 방식을 뛰어넘어 새로운 전개 방식이자 도전적인 <<질투>>의 가치는 한 남자의 스스로도 제어할 수 없는 극렬한 감정과 과도한 집착, 그리고 '질투'라는 감정을 시작부터 끝까지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의심의 시선이 끊임없이 A를 꿰뚫고 그녀의 주변을 훑고 지나간다. 말한마디 한마디 심지어는 몸동작과 주변의 배경까지도 그 강렬한 시선이 멈추는 곳에는 감정의 비틀림과 혼돈이 자리잡고 기하학적 지표들을 무너뜨리며 독자에게 불편한 감정을 전달한다.
이 감정이야말로 로브그리예가 최고였다고 말하는 이유이자 <<질투>>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독자가 읽고 있는 <<질투>>의 세계는 바로 본문에 등장하지 않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계 속 이야기이다. 평범한 듯이 보이는 모든 내용 조차도 격렬한 감정이 담겨져 있으며 감정을 통해서 바라본다면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주체할 수 없는 감정으로 몰입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작가의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 속 세계의 구축을 바라보며 작품의 매력을 찾고 이야기할때 과도한 해석과 이해는 배제하여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말하지 않고는 견딜수 없을 정도로 로브그리예의 특유의 스타일이 살아 움직이고 있으며 그 스타일은 보는 이로 하여금 불쾌하게 만들기도 하고 난해하고 무감각 하게 만들기도 한다.
한정된 공간 속에 독자를 묶어버리고 멈춰진듯한 착각을 유발하는 시간의 흐름 속에 묻혀 인간의 감정을 독특한 스타일로 풀어버린 <<질투>>를 통하여 전통기법을 거부하고 신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로의 여정을 떠나보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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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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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태어난 작가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1877-1962)의 <<데미안>>은 고전 문학의 꽃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내면적 갈등으로부터 완성이라는 여정을 아름답게 묘사한 작품이다.

낙관주의가 유럽의 전역을 지배하던 중 터진 1차세계대전 중 만들어진 1916년에 기록되어 1919년에 바로 출간되었다. 전쟁의 상처로 인하여 사람들은 상처입고 내면의 갈등이 생겨나게 되었다. 우리나라와 달리 기독교는 유럽인의 정신의 지주이며 안식처이었기에 그들이 직면한 전쟁의 상처로부터 터져 나온 혼란은 당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혼란 그 자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는 어쩌면 이러한 혼란의 시기 가운데 휩쓸린 이들을 대표하는 자일지도 모른다. 혹은 종교적인 면을 가르치는 것일지도 모르며 세상을 빗댄 것일지도 모른다. 상징성과 대표성은 언제나 그렇듯이 해석하는 자의 관점과 필요에 따라서 확대될 수도 있으며 축소될수도 있다는 점에서 주의를 요구한다.

<<데미안>>을 읽기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주제이면서도 접할수 없는 줄기를 따라간다는 점이다. 그것은 바로 기독교의 성경의 내용들이다. 앞서도 언급하였지만 기독교는 작품이 기록될 당시의 유럽인들에게는 생활의 규범이자 유대인들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린시절 부터 교육받으며 성장하는 가운데서 접하는 정신적 세계의 환경이다. 만일 우리가 기독교의 성경의 내용을 이해한다면 <<데미안>>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요리를 좀더 깊게 음미하기 위해서 재료에 대한 지식을 알듯이 <<데미안>>을 위해서 성경에 대한 혹은 제목 속 사건들을 이해한다면 주인공 싱클레어의 내면을 사로 잡은 갈등의 깊이와 혼란을 좀더 깊게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데미안>>은 싱클레어라는 소년의 내면의 성장을 다루고 있다. 모든 것이 갖춰진 배경 속에서 주인공의 어린 시절은 두 세계를 통해서 어린시절의 갈등을 묘사한다. 갈등은 불안전함 속에서 촉발되며 그 불안전함이 터지게 되는 사건(주인공과 크로머의 거짓말사건)은 그의 유년시절을 고통으로 차오른다. 거짓, 타락, 죄, 두려움의 구도는 불안전한 싱클레어의 두 세계를 나누고 빠져나갈 수 없는 올가미이자 늪이 되어 내면을 피폐하게 만든다.
규범과 공동체는 싱클레어의 눈앞에 있지만 잡을 수 없는 곳에 있다. 싱클레어는 끊임없이 발밑을 바라보며 내면을 향하여 더욱 깊이 빠져든다. 잡을 수 없는 대상이라면 잡을 수 있는 또 다른 것을 찾아내면 된다. 주인공의 내면의 여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데미안은 흔들리는 싱클레어의 내면을 손보고 그의 시선에 또 다른 목표를 조명하는 빛이다. 그는 유혹자라고 말할 수도 있으며 인도자, 동행의 벗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관점의 차이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데미안이라는 존재가 잡을 수 없는 것에 대한 또 다른 목표를 제시하였다는 점이다. 그것은 규범으로부터의 탈피이며 새로운 것에 대한 희망이였다.
데미안으로부터 영향을 통해서 유년시절과 청소년 시절 그리고 성인으로의 길목에 접어들면서 펼쳐지는 주인공 싱클레어의 내면의 갈등과 혼란 그리고 폭발과 치유를 묘사한 <<데미안>>은 종교적인 색채와 인본주의, 규범과의 이별, 인간 내면에 대한 자기성찰등이 복합적으로 펼쳐지는 글이다.
글은 섬세한 심리적 묘사와 폭발하는 내면의 갈등을 잘 표현하고 있다. <<데미안>>은 규범과 공동체 안에 속하여 살아가는 가운데서 갈등을 겪는 이들의 마음을 조망하고 그들의 생각을 대변한다. 싱클레어의 내면의 여정은 그 자신만이 아닌 오늘날 우리 독자들의 여정이며 대리인이자 우리 자신인 싱클레어의 삶을 통해 우리의 답답함을 독자로서 지켜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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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 않는 기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9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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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 않는 기사_이탈로 칼비노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문학 작가인 이탈로 칼비노는 다양한 성향의 작품을 집필하였다. 초창기에는 네오리얼리즘의 작품을 집필하였고 중기에는 '우리의 선조들'3부작 "반쪼가리 자작", "나무위의 남작", "존재하지 않는 기사"를 집필하여 환상과 알레고리의 영역에서 활동했다. 현실사회에 대한 정치적 변화의 흐름 가운데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면서 '이탈로 칼비노'의 문학 세계는 환상적이며 동화적인 작품들로 채워진다.
 
  "존재하지 않는 기사"는 '이탈로 칼비노'의 '우리의 선조들'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흐름상 가장 오래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집필된 시기는 3부작의 마지막에 위치한다. 흔히들 '이탈로 칼비노'의 성향이 사회주의 성향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존재하지만 필자가 바라보는 '이탈로 칼비노'의 작품은 인간의 본성에 접근하고 뒤틀린 사회를 반면교사 삼아 이상향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우리의 선조들' 3부작은 동화와 소설의 영역에 걸쳐 환상과 실제의 이야기가 적절히 배치된 작품이다. 시대적 배경으로만 놓고 본다면 "존재하지 않는 기사"는 중세 시대 카롤루스 대제의 전쟁을 무대로 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은 작품의 리얼리티를 살리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기사'와 동료들을 허무맹랑하거나 환상 속 인물들로 만드는것을 방지하는 역할도 겸하고 있다. 작품 속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시대는 혼돈의 시대이다. 그곳은 실재와 전혀 일치하지 않는 이름과 생각과 형식과 제도들이 나타나 있는 곳이다. 즉 존재하고 흔적을 남기고 존재하는 모든것들과 충돌하려는 의지와 집요함이 아직 완전치 않는 시대이기에 가능하다.

  주인공인 '아질울포'는 존재에 관한 열망과 이념만으로 백색 갑옷에 자리한다.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에서 주인공이 동생의 영혼을 갑옷에 붙들어 둔것과 달리 '아질울포'는 스스로의 열망 가운데 갑옷에 머무른다. '아질울포'의 존재는 갑옷이라는 형태로 지상에 존재하지만 그 내부는 비어 있는 사념이라는 사실에서 그것은 존재하는 것과 동시에 부재한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다양하다.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존재하니까 자네에겐 빈틈이 없군!"

셀림피아 치테리오레와 페츠의 기사이자 코르벤트라츠와 수라의 구알디베르니 가문과 기타 가문 출신인 아질울포 에모 베르트란디노는 분명, 모버적인 군인이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그의 존재를 불쾌히 여겼다.

  위의 두 문구는 '아질울포'에 대한 작품 속 '아질울포'를 바라보는 이들의 생각 중 일부이다. 그렇다면 독자는 그리고 작가는 아질울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아질울포'라는 인물의 정체를 인식하기 위해서 작가는 여러 등장인물들과의 관계와 '아질울포'가 일개 갑옷에서 기사라는 뚜렷한 직업을 가진 인물로 자리하는데 영향을 미친 '소프로니아'구출 사건의 이후의 사건을 되짚는 과정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아, 재미있는 일이야! 여기 있는 이 백성은 존재하지만 자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고 저기 있는 나의 용장은 자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지만 존재하지 않는군. 좋은 짝이 되겠어 틀림없어!"-카롤루스 대제가 '구르둘루'를 보고 말하다.-

  다시 인물을 통한 작품의 흐름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아질울포'와 대립하는 인물은 하인 '구르둘루'이다.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기사와 존재하는 줄 모르나 존재하는 하인의 모습은 작품의 큰 축이자 서로 나뉘어진 하나이다. 그리고 이 두사람이 '아질울포'가 처녀성을 지키게 해준 여성을 통해 얻어진 존재 근거를 변증하기 위한 모험이 작품의 큰 골격이다. 작품 속 화자를 통해서 이야기 되는 '기사'와 '하인' 그리고 허상을 마음을 사로 잡혀 좇는 브라다만테와 그뒤를 좇는 랭보 등의 인물들은 모험을 더욱 긴박하고 진지하게 만든다. 이들의 모험은 작품 속 주인공들의 부족한 부분들이 완전을 이루기 위해서 서로를 끌어 당기고 서로를 좇아가는 형태를 취한다고 말할 수 있다.
 
  진실을 좇아서 떠나는 이들 일행의 모험은 '우리의 선조들'3부작의 피날레를 장식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뚜렷한 이미지가 없는 존재하지 않는 것은 화자를 통해서 형상화 되고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독자들은 깊이 몰입하면서 작품 속 캐릭터가 된다. 등장인물들의 다양함이 글의 복잡함을 더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복잡함이 작품의 색을 다양화 시키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모험의 시작과 끝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모험으로의 여정 가운데서 형상화된 이미지의 완결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확인하는 작업은 '이탈로 칼비노'와 독자들 모두 즐기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어렵고 난해한 해석을 전제하고 작품을 바라보기 보다는 한편의 동화로 그리고 자아 찾기의 여정이라고 생각하면서 볼때 더큰 재미가 느껴지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어느덧 우리의 선조들 3부작이 완료 되었다.>

환상과 리얼리티의 경계선상에서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물음을 통해 독자들에게 다가온 이탈로 칼비노

세계 문학 전집을 통해 접한 그의 작품은 독자의 마음을 사로 잡는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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