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렐의 발명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5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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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아돌프 비오이 카사레스'(이하 카사레스)는 중남미 문학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또 다른 거장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평생 지기이도 한 카사레스는 비현실적인 환상과 현실을 절묘하게 조합하여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낸다는 점이 특징이다.
<<모렐의 발명>>은 가상으로 만들어진 인물이 실제 인물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며 이 가운데서 나타나는 현상을 표현하기 위한 SF거장들의 선구자 역할을 하는 작품이다. '모렐'의 아름다운 모습과 비현실적인 로맨스가 펼쳐지는 공간에서 우리는 환상과 가상현실 가운데 이뤄지는 일들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모렐의 발명>>의 작품 속 주인공이자 화자에 대한 이야기를 읽기전 한가지 언급하고 이야기 하고픈 것은 작가의 서문이다. 보통 작가의 서문이 작품에 쓰일경우 작가는 작품을 쓰게된 이유에 관하여 매우 의미심장한 단서나 언급을 남겨놓는다. <<모렐의 발명>> 서문 또한 작가 '카사레스'의 작품의 의도와 창작의 기본 정신이 잘 담겨져 있기에 작품을 이해하고 읽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작가는 <<모렐의 발명>>이 당시의 소설의 흐름과 형식에 구애를 받지 아니하며 새로운 장르와 생각을 기초로 하여 작성되었음을 서문에 언급하고 있다. '카사레스'는 서문을 통해 단순한 상상력에 의한 의미없는 글을 남기지 아니하고 '합리적인 상상력'을 기반으로한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기 위해 고심하고 <<모렐의 발명>>을 집필하였다고 말한다. 작가의 창조적이고 새로운 시도가 살아 숨쉬는 <<모렐의 발명>>이 가지고 올 파장은 그의 서문에서 언급하였듯이 독자들에게 새로운 것을 만나게 하며 문학의 새 장르를 열어가는데 매우 중요한 일익을 담당한다. 이러한 작가의 서문을 통해서 우리는 오늘날 초기 SF문학으로도 불리워질 수 있는 작품을 보고 또 한편으로는 섬세하고도 아름다운 언어의 유희를 통하여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모렐의 발명>>
은 제목처럼 독자들에게 '새로운 발명'으로서 다가 온 문학계의 큰 흐름의 시작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모렐의 발명>>속 화자는 주인공의 역할도 함께 한다. 주인공은 '빌링스'라는 섬으로 도망쳐 온 사형수이다. 그는 사회에서 받은 판결로부터 도망친 사람이며 생명에 대한 욕망으로 스스로 섬에 들어와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가운데서 얻어지는 고단함은 그가 가지고자 열망했던 생명에 대한 욕망으로 버티는 삶을 살아간다. 그런 그의 삶에 한무리의 사람과 매일 오후에 바위위에 앉아 석양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여인'은 '화자'의 고독과 욕망에 대한 해방구이자 삶의 새로운 가치이다. '여인'에 대한 갈망과 주변의 반복적인 일상 등은 '화자'의 오감을 새롭게 바꾸며 '화자'로 하여금 진실에 다가서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작품은 신비하면서도 몽환적이다. 인적이 드문 섬에서 외로이 숨어 사는 화자, 매일 오후마다 석양을 바라보는 여인 '포스틴', 매번 똑같은 대화와 행동을 반복하는 인물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시각, 청각 모든 것을 체험케 하는 가상의 현실이었다는 사실은 한편으로는 섬뜩하고 우울하게 만들며 다른 한편으로는 매력적이기도 하다. 기존의 소설들이 시간의 틀안에서 전개된다고 말할때 <<모렐의 발명>>은 가상의 현실 가운데서 펼쳐지는 반복되는 영속의 시간이다. 이 영속의 시간은 인위적
조작에 의해서 조정되며 화자는 그 가운데서 새로운 욕망과 사랑 그리고 고독을 이야기 한다.
작품의 세가지 시점과 구성은 서로 대립하며 갈등을 일으키는 구조로 이뤄져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모렐의 발명>>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균형(가상의 여인과 현실의 화자의 사랑)처럼 절묘하게 균형을 이룬다. 마치 어느 한쪽이 부정되고 새로운 것이 진실임을 주장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세계로의 시작점으로서 작품이 자리 매김한 것처럼 <<모렐의 발명>>은 독자로 하여금 균형잡힌 합리적 사고와 언어의 유희의 향연에 발을 내딛게 만들며 앞으로 벌어지게 될 미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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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 글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9
너대니얼 호손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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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나다니엘 호손'의 천재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주홍 글자>>는 '죄'와 관련하여 파멸과 구원을 이야기 한다. 작품 속 분위기는 시종일관 어둡다. '죄'의 기독교적 속성을 이해한다면 <<주홍 글자>>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간통의 죄'는 <<주홍 글자>>의 전체적인 흐름을 이끌어 나가는 주제이다. '죄'에 대한 불편함 속에 숨겨진 사회와 인간의 나약함을 파헤치고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작가의 솜씨는 '너새니얼 호손'의 천재성이 발휘된 작품이라는 평가가 과대포장 되지 않았음을 독자로 하여금 인정하게 만든다.

<<주홍 글자>>는 '간통이라는 죄'에 얽혀있는 세 인물들을 통해 개인과 사회의 내면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주홍 글자>>의 배경은 17세기 미국의 보스턴에 자리한 청교도 마을이다. 마을은 기독교의 규율을 중시하며 살아가는 이들로서 '십계명'(기독교의 가르침 중 모세가 하나님으로 받았다고 하는 10가지 계명)을 준수하고 순수함과 신성을 꿈꾸는 곳이다. 이러한 마을에서 '간음의 죄'를 저지른 '헤스터'의 존재는 불편하며 배제되어야 할 대상이다. 종교적 계율과 계율을 바탕으로한 규범이 가진 힘아래에서 '헤스터' 본능적이며 굴복하지 않는 새로운 힘으로 표현된다. 그녀는 사회가 그녀에게 씌운 굴레로부터 당당함을 자랑한다. 작가는 '헤스터'와 '마을'(사회)를 대립 시킴으로서 갈등과 긴장의 관계를 보여준다. 오늘날 간통=죄라는 개념의 이해와 달리 작품 속 마을의 '간통'이란 단순한 본능의 사건이 아니다. '간통'은 지켜야할 가르침에 위배되는 행위이며 죄는 곧 그들의 이상향 유토피아로 가는데 있어서 배제되어야 할 대상이다. 그렇기에 '헤스터'와 '마을'의 대립과 긴장 관계는 더욱 역동적이며 팽팽하다. '헤스터'의 작품 속 역할을 자세히 본다면 우리는 그녀의 당당함으로부터 기존의 체제와 질서에 대한 역동하는 시대적 사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헤스터'의 상대역인 '딤스테일'은 그녀와 반대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딤스테일'은 마을의 목사이다. '목사'의 자질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청렴하고 결백하며 모범이 되어야 할 '딤스테일'은 '헤스터'와 간통을 일으킨 죄인이다. '헤스터'가 자신의 죄를 드러내놓고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면 '딤스테일'은 죄로 인하여 괴로워한다. '헤스터'가 가지고 있던 '죄'는 그녀의 자유와 본능의 삶에 의해 무게가 덜어졌다면 '딤스테일'목사의 죄는 그의 신앙에 의해 '끊임없이 책망받는다. 이후 등장하는 '헤스터'의 전남편인 '칠링워스'의 복수 또한 '딤스테일'목사의 죄의 댓가를 지불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죄'를 생각지 않는자와 '죄'에 사로잡혀 책망 받는자 이 둘 가운데서 '죄'를 징벌의 수단이자 동기로 바라보는 존재 이들 모두는 '죄'를 통해 바뀌어져 나가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주홍 글자>> 속 '죄'의 개념을 기독교적 해석으로 바라본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거나 단절되는 원인이다. '죄'는 수치로서 다가오며 대사으로 하여금 그 마음을 짓누른다. 그렇기에 '죄'는 책망의 대상이다. '인간'은 죄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더욱 '신앙'의 삶을 살아가며 '죄'를 범할경우 멀어진 혹은 단절된 관계에 대한 회복을 갈망하게 된다. 즉, '죄'는 인간의 구원으로 가는 길목에 놓여져 '구원'으로 향해 나아가는 이들에게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죄'의 본질적인 측면은 인간 모두에게 있으며 '죄'로 말미암아 더욱 구원을 사모하게 되는 모습 또한 바라 볼 수 있다. '죄'를 지적함으로서 질서를 유지하는 '마을'과 '죄'에 대한 회개와 댓가를 지불함으로서 '구원'으로 나아가는 이들을 통해서 종교적 색채를 독자들은 바라볼 수 있다.

<<주홍 글자>>는 '허구'속 인물들을 통한 '현실'바라보기가 잘 적용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당시의 시대와 정신을 보여주며 한편으로는 '허구'속 인물들을 통해 모순과 거짓을 지적하고 시대 정신에 대하여 반기를 든다. 그렇기에 평가는 유보적이며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으며 많은 다수의 기독교 인들에게 불편한 책일 것이다. 하지만 작가의 시선을 통해 작가와 시대가 요구하는 대상으로서 '헤스터'와 '딤스테일'을 바라본다면 독자는 상상력과 현실이 잘 조화된 공간에서 관습과 체제에 대한 봉기 그리고 새로운 해석들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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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줌의 먼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7
에벌린 워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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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지가 선정한 현대 100대 영문 소설작품 중 하나이기도 한 <<한줌의 먼지>>는 영국의 작가 '에벌린 워'의 경험이 반영된 책이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희극 무대에 등장하는 유쾌한 배우들 처럼 보이나 사실은 비극적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인물들이다. 도덕적 가치가 상실되며 무엇이 우선인지를 잊고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세상과 단절된 또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삐뚤어 지고 망가진 모습이기도 하다. 이러한 작품 속 주인공들을 등장시키고 바라보는 가운데서 등장하는 작가의 해학과 풍자는 <<한 줌의 먼지>>가 왜 현대 100대 영문 소설 작품인지를 보여준다.

 

<<한 줌의 먼지>>는 '토니'와 '브렌다 라스타' 부부의 파경을 중심을 통해 영국 상류사회의 허식과 속물 근성을 보여준다. 작품의 성격은 유쾌한 희극을 보여주지만 그 결말은 충격적이며 비극적이다. 그렇기에 작품 서두에 등장하는 "다친 사람은 없었지요?"라는 문장은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문장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비극으로 가는데 일조하는 인물들이다. 반면 주인공 부부의 파경과 비극적 결말에 대하여서는 책임 지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 또한 특징이라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듯 싶다. 이러한 모순을 비집고 들어가서 파헤치는 작가의 필력은 가식적인 인물들에 대한 경고이자 지적의 힘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풍자를 넘어선 그 무언가가 숨어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서 글을 썻다. 그렇기에 작품 속 인물들의 모순을 더욱 잘 이해하였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그들의 삶에 대하여 비록 날카로운 펀치를 날리지만 그들을 책망하기 보다는 그들 자체를 독자들에게 보여주려고 한것인지도 모르겠다.

작품을 읽는 동안 작품 속 인물들의 삐뚤어지고 망가져 버린 도덕관념과 가치관들은 독자로 하여금 허탈과 어이없음을 선사할지도 모른다. 상류사회에 속한 이들의 망가진 모습은 이미 웃음과 기쁨을 주는 대상을 넘어서 상실감을 안겨준다. 책의 제목대로 <<한 줌의 먼지>>처럼 작품 속 인물들의 삶은 공허하며 허황되고 위선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반면 작품 속 주인공들을 책망하기 보다는 동정심이 가며 애정이 가는 것은 '망가져 버린 현실'사회로 이야기 되는 인물들을 대변하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너무나도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인물들의 설정과 그들의 몰락을 통해 독자로서 그리고 사회와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이로서 슬픔과 연민을 함께 느끼는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서 내면적 망가짐을 가지고 살아가는 '비정상적인 삶'의 주인공들이 펼치는 한편의 드라마는 곧 우리 자신의 자화상의 또 다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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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셀라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6
새뮤얼 존슨 지음, 이인규 옮김 / 민음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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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라셀라스>>의 원 제목은<<아비시니아의 왕자 라셀라스 이야기>>이다.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작품에 등장하는 동방의 작은 나라 아비시나의 '라셀라스'왕자가 겪는 사람들과의 만남과 질문 그리고 대답들을 통해서 얻게된 해답을 철학적 사고로서 옮겨 놓은 내용이다. 저자인 새뮤얼 존슨은 18세기 유행한 계몽주의(인간의 이성을 중시하는 사고개념)을 통하여 인간의 삶의 의미와 본질을 성찰하는 가운데서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다. 이러한 본질과 의미에 대한 성찰의 질문은 비록 작품이 18세기 무렵 쓰여졌더라도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즉 18세기의 독자와 21세기를 살아가는 독자 모두에게 '새뮤얼 존슨'은 '진정으로 행복한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라셀라스'왕자를 통해 질문을 성찰하며 이야기 한다.

 

주인공 '라셀라스'왕자는 오늘날 에티오피아의 옛 이름인 아비시니아의 왕자로 소개되는 인물이다. 대왕의 넷째 아드린 그는 부족함 없는 삶을 살아가며 뭇 사람들이 바라보기에 축복과 은혜가운데 살아가는 왕자였다. 작가는 '라셀라스'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 삶인지를 묘사하는 과정 가운데서 독자가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과 동시에 그러한 행복의 골짜기를 살아가며 불만족스러워하는 '라셀라스'왕자를 소개한다. 무엇이든지 흡족한 왕자의 주변 상황은 결코 왕자의 불만을 없앨수가 없었다. 왕자가 가진 불만은 '부족함이 없다는데 기인'한다. 그렇기에 그의 불만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공감하기 어려운 가운데 놓여져 있는듯 싶다. 하지만 작가는 '유토피아'로 보여지는 골짜기로부터 '라셀라스'를 현실 세계로 이끌어 내고 현실과 마주보는 동기로서 행복의 골짜기에 살고 있는 '라셀라스'왕자의 불만을 이야기 한다.

 

'라셀라스'왕자의 현실로 이야기 되는 세상체험은 왕자의 고민인 '진정한 행복을 위한 필요조건'을 위한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한 여정이다. 이러한 여정은 인간의 순수한 욕망을 기초로 하고 있으며 행복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닌 행복을 찾기 위한 여정이라는 점 그리고 모두가 공감할 법한 삶을 뒤로한 채 참 행복을 찾기 위한 여정으로 볼 수 있다. 그렇기에 '라셀라스'의 여정은 출발과 동시에 이미 과연 그런 것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그 질문의 답을 알고 있는 우리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을 살펴봄으로서 '라셀라스'왕자가 어떻게 될지 결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행복을 지키기 위해 행복의 '파랑새'를 쫓는 이들과 달리 왕자는 '행복이 없는 불만'가운데서 행복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결말은 어떠할까? 책을 읽는 가운데서 느끼는 것은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행복에 대한 해답의 다양한 형태의 답변과 사유를 통해 독자들에게 알게 되는 것은 '행복'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한 순간이나마 부질없음을 알게 해주는 메시지를 담고있다는 느끼게 된다.

 

인생의 허무함과 무상함을 이야기 할수도 있겠지만 '라셀라스'는 허무주의나 냉소적인 내용은 아니다. 작품속 '라셀라스'왕자는 순진하며 체험을 통해 얻어진 내용들을 사색하며 받아들인다. 그의 여정의 끝은 시작의 목적을 부합시키지 못하는 듯 보일지 몰라도 왕자 자신은 삶에 대한 충실함을 배우고 만족함을 배우게 된다. 이러한 왕자의 삶은 바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욕망의 굴레, 덫의 삶에 빠져들어 삶을 불만족스럽게 하며 포기하는 이들과는 반대되는 실천의 삶을 제시한다. 독자는 '라셀라스'왕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게 된다. 그 안에서 '행복'을 배운다.

 

삶의 이치와 상식등을 통한 '라셀라스'왕자의 깨달음은 독자에게 주는 작가의 깨달음의 선물이다. 메마른 삶을 살아가며 잡하지 않는 행복을 위해 욕망의 채찍질을 가하는 독자들에게 작가가 주는 선물은 메마른 땅을 적시는 한줄기 우로와도 같은 시간을 선사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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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7
에드워드 올비 지음, 강유나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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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버지니아 출신인 '에드워드 올비'는 폭력적인 상황을 통해 관습적인 것들을
흔들어 놓는 것으로 유명한 극작가이다.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속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우리는 '에드워드 올비'가 풀어 놓은 진실을 캐내는 과정과 삶의 부조리를 발견할 수 있다.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는 역사학과 교수인 조지와 남편의 대학 총장 딸인 마사 부부가 생물학과 교수 닉과 그의 아내 허니를 초대하고 파티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지식계층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이들의 파티는 혼란스럽과 난잡하며 질이 떨어지는 내용으로 이뤄진다. 그들은 밤새 술마시고 서로를 조롱하며 비난하며,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는 가운데서 음담패설과 욕설을 던진다. 얼핏 보면 이들은 거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인물들처럼 보인다. 파티의 내용만 놓고 본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들은 내면적인 나약함을 가지고 있으며 어느 심리학자의 말대로 나약한 이들은 자신들의 나약함을 숨기고 방어하기 위해 타인을 공격하는 속성을 보여준다. 이들에게 있어서 거친 파티의 내용은 서로의 숨겨진 진실을 폭로하고 진실앞에 벌거벗은 모습으로 세우는 역할을 맡고 있다. 폭력적 상황을 통한 진실 밝히기라는 작가 '에드워드 올비'의 특징이 잘 표현된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는 극작가로서 그의 능력과 진실 마주보기라는 결과 를 통한 거짓된 모습을 밝히는 내용을 보여준다.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가 독자를 매료시키는 힘은 무엇일까? 만일 이 작품이 고상한 이들이 모여서 진지한 토론을 벌이고 그 가운데서 나름대로의 진실을 얻어내는 구조로 이뤄진다면 어땠을까? 단언컨데 작품은 지금 말한 내용을 뒤집어 엎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작품 속 주인공인 조지와 마사부부는 오랜 기간 1막속 게임을 즐겨왔다. 이들은 게임을 통해서 상대를 조롱하고 비난하고 힐난한다. 그 가운데서 폭력적인 상황이 생기며 독자는 후련함과 흥미를 가지고 상황을 읽어 나간다. 그들의 갈등은 저급한 상황을 만들어 내기에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지만 결코 외면하지는 못하게 만든다. 그들의 저급한 상황이야 말로 독자들의 내면 속에 자리잡은 외설적 욕구를 자극하며 극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자 매력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매력을 가지고 작가는 독자들에게 가벼운 주제를 던져 몰입하게 만든 후 진지한 질문을 던져낸다.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허상과 거짓이라는 주제를 맞이하게 되며 이 주제를 받아들이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등장인물들의 갈등과 대립속에서 함께 맞이하는 것이다.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속 인물들은 '소통'을 통한 진지한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멸시', '소외', '고립', '절망', '실패'라는 다양한 내면의 문제를 가지고 살아가는 독자와 현대인들에게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는 '배설'과 '소통'을 통한 거짓을 벗겨내고 진실앞에 설것을 주문하며 오늘도 많은 독자들을 매료시키며 '희망'으로 삶을 이끌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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