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
공선옥 지음 / 당대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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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낮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하면서 공선옥의 산문집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를 장바구니와 함께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만삭일 때도 딱 맞았던 단벌 청바지 허리가 꽉 끼어 눈을 부릅뜨고 심호흡을 하고 지퍼를 올리고 단추를 잠갔다. 공선옥 작가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이럴 때 나는 사는 게 딱 거짓말 같다.


마을버스 속에서  장애가 있는 내 또래 여성에게 신호를 보내어 내 자리까지 오게 해서 자리를 양보했다. 그렇게까지 하기는 드문 일이다. 그건 순전히 내 손에 들려 있던 책 때문이었으니 공선옥의 책을 읽으며 노인이나 아이, 임산부, 장애가 있는 사람을 외면하고 천연덕스런 표정으로 자기 자리를 사수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전철을 갈아타고 나는 두 건의 선행(?)을 더 했는데 여기 일일이 적지는 않겠다. 그녀가 울며 읽었다는 김성칠 선생의 <역사 앞에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 겸손하고 너그러우며 제 잘한 일을 입 밖에 내거나 붓 끝에 올리지 말 일.


십몇 년 전 나도 이 대목을 읽으며 마음속으로 밑줄을 쳤다. 그러니 어떻게 전철 안에서의 그 소소한 일을 선행이라고 차마 내 입으로 떠벌릴 수 있겠는가!


‘내 이웃의 통곡 소리가 그치지 않는데 밤이면 밤마다 휘황한 네온 십자가가 다 무엇이며 따뜻한 구들방에서의 선(禪)이 다 무엇이냐’(25쪽)고 작가는 묻는다.  또 서울 어느 대학 수학교수님이 정말 좋은 수학교수법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보며 어릴 때부터 나처럼 수학 노이로제가 있는 듯한 그녀는 생각한다. ‘저렇게 좋은 것은 지금도 좋은 저 아이들한테보다 지금 나쁜, 지금 아주 힘든 상황에 있는 아이들에게 먼저 가게 했으면.’ (29쪽)


소설이고 산문이고 간에 그녀의 글들을 읽으면 나는 너무 많이 가진 자이고 그것도 깨닫지 못하고 사는 게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유한부인으로 전락하는 느낌이다. 나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부자로 살아본 적은 없지만 그렇게 가난뱅이였던 적도 없는 것 같다. 3만 원이 넘는 호머 심슨 라디오 같은 장난감도 사고, 갖고 싶은 만화 전집도 큰맘먹고 사는 걸 보면 돈 쓰는 데 크게 구애받지 않는 것 같지만 그 대신 10년째 청바지 하나로 사계절을 버티며 돈 아까워서 ‘빠마’도 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누리는 호사가 최소한의 것이고 정당한 것이라고 강변하는데(누가 뭐라지도 않는데 말이지) ‘내 배가 부르면 꼭 누군가에게 죄를 짓고 있는 것만 같다’고 말하는그녀 앞에서 나는 뭔지 좀 부끄러운 기분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글 읽기를 중단할 생각은 없다.  앞으로 좀 더 부지런해져 억울한 죽음을 당한 이들의 소식을 먼 풍문처럼 듣지 말고 작가처럼 장례식장에 직접  조문도 가고,  좀 더 바람직한 인간이 되기를 바랄 뿐.(그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오래 전 아현동 민족문학작가회의의 독서교실인가 창작교실인가에 등록해 두어 달 드나든 적이 있다. 창작을 직접 해보겠다는 생각에서는 결코 아니었고 직장인이랍시고 회사엔 다니지만 그때 당시 하도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아 어딘가에 소속되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천승세, 김영현, 김남일 등 작가들의 리얼리즘 문학 강의는 무척 재밌었고 그 중 마음 맞는 사람끼리 ‘풀무’라는 이름의 독서 모임을 꾸려 신촌의 주막을 전전하며 책을 읽은 소감을 나누었다. 주로 월북 작가들의 소설을 구해 읽었으며 그 무렵 자주 있었던 시위 현장에도 꽤 열심히 참가했다. 1년쯤 지났을까?  우리 다음 기로 본격적인 창작반이 구성되었다는데 아이를 등에 업은 아줌마가 아주 열심히 참석하고 있다고 들었다. 거기다 그녀는 공장 노동자라고 했다. 창작은 고사하고 독서는커녕 사람들과 어울려 술 마시는 재미로 가끔 그곳을 드나들던 나는 내 또래의 그런 여인이 있다는 얘기를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그녀가 바로 소설가 공선옥이다.


이 땅에 어느 정도 가진 자의 자식으로 태어나 배울 만큼 배우고 누릴 만큼 혜택을 누린 인간들, 작가의 표현대로 하면 ‘사는 게 사는 것 같은’ 사람들은 오염된 공기가 어떻고 교육문제가 어떻고 닫힌 의식이 어쩌고 하며 못살겠다고 이 땅을 속속 떠나든가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자식들을 조기유학으로 빼돌린다. 그러면서 나라 걱정은 혼자 다 하지. 그런 이야기를 흥분하는 기색도 없이 이 작가는 조용히 읊조린다. 다 좋은데 떠나려면 조용히 떠나라고, 괜한 분란 일으키지 말고 ......이 대목에서 나는 짝짝짝~ 박수를 쳤다.  그녀의 독서일기와 나의 독서일기가 100프로(!) 겹치는 걸 알게 된 것도 유쾌했고.


하도 많은 분들이 리뷰를 올려 과연 이 책을 읽고 나도 할 말이 남아 있을까, 생각했는데 역시 공선옥은 공선옥이다.  이 신새벽에 나를 책상 앞에 앉게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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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ky 2005-05-20 0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선옥씨도 대단하지만, 로드무비님도 정말 대단하세요. 회사다니면서 창작교실에 등록도하고, 모임도 갖고 했다는 것 자체가 너무 멋져 보입니다.

호랑녀 2005-05-20 0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로 추천하고... 장바구니 들어갑니다.
공선옥의 책... 자꾸만 피하고 있었습니다. 왜였을까... 한번 잡으면 빠져버릴 것 같아서 그랬을까...

서연사랑 2005-05-20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글은 추천받으셔야 마땅할 리뷰라고 생각해요^^

바람돌이 2005-05-20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읽었던 공선옥의 글이 참 좋았음에도 그 후로 그녀의 글은 저를 피해간것 같아요. 아님 제가 피했었던가....
오늘 님의 글 읽고 그리고 그동안 많은 알라디너들도 이 책을 칭찬하고...
역시 봐야겠네요.

로드무비 2005-05-20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리뷰가 많이 올라오고 그걸 읽다보면 그 책을 안 읽었음에도
다 읽은 것처럼 생각이 될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도 재밌게 읽었으니 말 다했죠, 뭐.^^
서연사랑님, 미누리님 방에서 가끔 뵌 분이네요.
고맙습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호랑녀님, 한번 잡고 푹 빠져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그동안 왜 피하셨을까요?^^
퍼키님, 제가 속한 제1기는 독서 모임의 성격이 짙었어요.
사람이 그리워서 기어들어간 거였으니 멋있다는 말은
취소해 주실래요?
듣기 영 거북해서.;;

비로그인 2005-05-20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선옥..작가와의 만남 같은 모임이 마련된다면 멀리서라도 함 봤으면 좋겠습니다. 로드무비님만의 소소한 일상의 풍경, 잼나게 잘 읽었어요.

urblue 2005-05-20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근길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를 들고 나왔어요.
이것도 이제 읽기 시작했고, 공선옥의 글은 하나도 보지 않았지만,
로드무비님의 리뷰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주말을 앞에 둔 아침인데 너무 무겁다구요~~

perky 2005-05-20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있게보여서 멋있다고 말했던 것 뿐인데, 듣기 거북했다고 하니까, 제가 더 당황스럽네요. ^^;

로드무비 2005-05-20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키님,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요.
말씀은 무지 고마웠지만 괜히. 헤헤^^
블루님, 전 그 책 예전에 읽었어요.(오랜만에 블루님 앞에서 잘난척=3)
아이구, 주말을 앞두고 가배얍게 시집이나 한 권 들고 나오잖고...
복돌이님, 재밌게 읽으셨다니 기분좋습니다.
청바지 터져나간다는 이야기가 특히 재밌었죠?ㅎㅎ

부리 2005-05-20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멋진 리뷰십니다. 민족문학창작교실 같은 곳에도 가시고... 아아, 존경스럽습니다. 님의 빛나는 내공은 그 몇달 탓도 있지요?

stella.K 2005-05-20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창작 교실 다니셨군요. 저도 예전에 잠깐 다녔었는데...그때 마음 고생을 하고 있었던 중이라 정말 사는 게 사는 거 같지 않아서 다녔는데 다니다보니 정말 사는 게 사는 것 같아 좋아지더라구요. 근데 다니다 말았죠. 지금 생각하니 살만해서 그만 두었나 봅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더 다녔을지도...그땐 뭔가의 끈이 필요했었거든요.

로드무비 2005-05-20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 칭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예 저의 내공(ㅎㅎ)은 그 당시 신촌 술집 모임에서 키워졌답니다.^^

로드무비 2005-05-20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새 스텔라님이.^^
창작교실이 아니고 독서교실이었다니까요.
그때 사람들과 친해져서 한동안 꽤 잘 지냈답니다.
님은 계속 다니지 그러셨어요. 끈을 확실히 잡게...^^

stella.K 2005-05-20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글쓰는 게 점점 자신이 없네요. 흐흐.

숨은아이 2005-05-20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수가 너무 많아 안 할라 그랬는데, 에잇!

로드무비 2005-05-20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 아이님, 그러심 섭하죠.;;
고마워요.^^
스텔라님 글쓰는 데 항상 자신있는 사람도 있을까요?^^;

히피드림~ 2005-05-20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느끼는 거지만 로드무비님은 페이퍼건 리뷰건 적당히 자신의 경험도 섞어가면서 참 맛깔나게 씁니다. 재밌게 잘 읽었어요.

날개 2005-05-20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마트면 못보고 지나갈 뻔 했어요..^^;;

로드무비 2005-05-20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뜰하게 챙겨서 봐주시는 날개님, 고맙습니다.^^
punk님, 제 리뷰가 좀 껄렁껄렁하죠?;;
재밌게 잘 읽으셨다니 기쁩니다.^^

내가없는 이 안 2005-05-20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었어요. 전 공선옥 작가만의 소설가의 각오, 같은 게 만져지더라구요. 다른 글들도 좋았지만 맨 마지막 북풍이 휘적 하고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의 글요, 가슴이 다 아파오던데요. 로드무비님 리뷰는 안 껄렁껄렁해요. 진심이 담겨 있어서 온기가 느껴지는걸요. ^^ 추천도 해요!

2005-05-21 1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5-21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없는 이안님, 그런데 왜 리뷰는 안 올리셨을까요?
전 님의 공선옥 리뷰가 무지 궁금하답니다.
추천 고맙습니다.^^

비로그인 2005-05-21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보야, 봤지? 리뷰 특강은 무비 언니한테 받아야 한당께! 술 한 병 들고. 그, 근데, 소, 소개료는? =3=3
무비 언니 리뷰는 정말 안 보고 싶어요. 왜냐면,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던져버릴까 하는 갈등을 하게 만들 거든요!

kleinsusun 2005-05-22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선옥 소설을 딱 한권 읽었어요.<피어라 수선화>.
책을 읽다가 다 못읽고 덮어 버렸어요. 너무.....불편했어요.
읽으면서 계속 죄책감이 들었거든요. 또 너무 무거웠고.....

공선옥 소설을 읽으면
저의 모든 고민들이 너무 사치스러운 것 같고,
자꾸만 움츠리게 되고 그래요.

그런데....
로드무비님의 리뷰를 읽으니 이 산문집을 꼭 읽어보고 싶네요.
보관함에 넣었어요.

로드무비 2005-05-22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정말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답니다.
수선님의 화사하고 경쾌한 글쓰기도 얼마나 좋은데요.
아무튼 이 책 읽어보시는 건 찬성이에요.^^
노파님, 리뷰 특강은 마태우스님이 잡고 계시잖아요.
그런데 정말 언제 두 분이 손 꼭 잡고 우리집에 술 몇 병 사들고
오는 것 아니우?^^

2005-05-24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5-24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어머 당연히 그러셔야죠오.=3
(고맙습니다.^^)
 
텔레만을 듣는 새벽에 - 김갑수의 음악과 사랑 이야기
김갑수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빨리 읽고 리뷰를 쓰고 싶은 욕심이 나는 책이 있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최영미의 장편소설 <흉터와 무늬> 그리고 심지어는 주문해놓고 그렇게 기다리던 공선옥의 <사는 게 거짓말 같은 때>가 토요일에 도착했는데 뒤로 미뤄두고 이 책을 먼저 집어들었다.

리뷰 전에 자랑질

클래식 음악애호가 김갑수,  1989년 그의 첫 시집 <세월의 거지>를 아주 재밌게 읽었다. 지금은 출판평론가로 명성이 자자한 모 씨가 나와 같은 출판사에 다니다가 <출판저널> 기자로 자리를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독자서평 원고를 맡았는데 원고 들어온 게 없다며 급히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얼마 안되긴 하지만 원고료도 있다길래 방금 사서 재밌게 읽은 김갑수 시인의 <세월의 거지> 서평을 얼렁뚱땅 써서 넘겼다. 일로 알게 되어 꽤 친하게 지낸 원로소설가 한 분이 출판저널에서 그 글을 읽었다며 한국일보에 실린 어느 원로화가의 인터뷰 기사를 화가의 자전적인 수필로 바꿔 써달라고 내게 부탁하셨다. 그걸 써드리고 원고료를 10만 원 받았다. 그리고  웅진출판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내 친구가 어느 날 우연히 그 회사 복도 자판기 앞에서 만난 김갑수 시인에게 독자서평을 쓴 친구 이야기를 꺼냄으로써 접선이 되어 딱 한 번 술도 거하게 얻어마셨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김갑수 씨의 시집을 읽음으로 인하여 나는 꽤 많은 경제적인 이득과  더불어 시인과 술을 마시는 영광을 누려봤다는 것이다. 에잇! 리뷰의 서두가 뭐 이래! (죄송.)

처연하면서도 심상한 자기고백

이 책이  음악책으로 읽히지 않기를 바란다는 저자의 바람대로 <텔레만을 듣는 새벽에>에는 지나간 사랑의 사연과 젊은날의 방황과 고뇌,  마흔을 훌쩍 넘긴 젊지도 늙지도 않은 시인의 처연한 자기고백이 그의 영혼을 매료시킨 클래식 음악의 선율과 함께 실려 있다. 자신의 한쪽 눈이 완전히 멀게 된 사연도, "한번도 너를 사랑한 적이 없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버린 애인에 대해서도 그는 참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심상하게 말한다. 나는 그의 담담한 어조가  좋다.

십몇 년 전 전문 음악실을 방불하는 광화문의 그의 아지트에 대해 소문이 무성했는데 내가 조금만 뻔뻔하거나 용감했다면 그 곳을 구경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구경 못한들 그게 뭔 대수겠는가. 이 책은 나같은 클래식 음악의 문외한도 아무 부담없이 읽을 수 있게 재밌게 쓰였다. 

오래 전  <음악, 귀로 마시는 황홀한 술>(제목이 정확히 기억 안 난다)이라는 제목에 이끌려 작곡가와  음악과 명반을 소개하는 책을 읽고 당장에 살 명반 제목을 수첩에 빼곡하게  기록한 적이 있다 그런데  남의 입을 통해 듣는 음악의 감동은 읽을 때뿐이었다. 송영 선생의 비슷한 책도 마찬가지. 재밌게 읽고 호감은 가졌지만 그 당장 레코드 가게로 달려가지진 않았다.  어쩌면 나는 선물받은 말러의 교향곡들과 카잘스가 연주한 바흐의 무반주첼로조곡 외에는 이렇다 할 명반 한 장 가져보지 못하고 인생을 끝내게 될지도 모른다.

음악이 안겨주는 전존재의 떨림이라!

--인생이 너무나 별게 아니라는 생각에 진저리치며  음악 속으로 도망을 친다. 거기 모든 것이 다 있다.(18쪽)

리스트와 바그너, 연애 문제로 악명이 높은 두 작곡가에 대한 저자의 이해가 막힘이 없고 참 명쾌하다. 연애 문제로 그 자신도 마음고생을 많이 한 눈친데 저자는 이를 결코 숨기려는 기색이 없다.

--그들은 사기친다고 드러내면서 사기쳤다. (...) 두 예술가는 그런 삶으로 충분히 화려했고 또한 충분히 고생을 했다.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작품을 남겼다.  나는 그런 리스트,  바그너를 사랑한다. 자격이 있다는 말이다.(25쪽)

삶이 괴로워서 음악으로 도망을 쳤다는 시인 김갑수는 음악에 빠져 시도 쓰지 않고 아예 클래식 음악 전문가로 방송 진행자로 나섰다. 이 책에서 30대, 40대, 50대 독신 트리오였다는 편집자 시절의 시인을 포함한  광화문 3인조 이야기가 나는 제일 재밌었다. 무명의 음악 애호가들의 삶, 나도 한번 그렇게 미친듯이 살아봤으면......

그리고  캐슬린 페리어니 벨라 바르톡 등 생전 처음 듣는 가수와 작곡가의 이름, 시인 김정환이 세상에서 제일 슬픈 음악이라며 그의 작업실에 놀러오면 청하여 듣는다는 슈베르트의 현악 5중주 몇 번 곡 등을 수첩에 옮겨 적었다. 시인의 음악 소개는 정말 사람의 혼을 빼놓는다. 그의 책을 읽다가 언젠가 비오는 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듣고 무지 좋았던 에릭 사티의 곡명을 알게 됐으며, 작가 최인호의 딸 다혜 양이 초등학생일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브루흐의 '콜 니드라이'를 듣고 너무 슬퍼서 펑펑 울었다는 재미있는 일화를 접할 수 있었다.

부산에서 국어 선생을 하는 내 친구 딸은 두 살 때 방문에 걸어놓은 아기 그네 위에 앉아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듣는 것이 취미였다. 그 곡을 들을 때 너무나 행복해 하는 아이의 모습이 결혼도 하지 않은 나는 신기하기 짝이 없었는데 유감스럽게도 마이 도러는 음악적 재능이 없는지 몰라도 그런 애창곡이 없었다. 요즘은 운동회 준비를 하며 배운 학교 교가를 고래고래 악을 써가며 시도때도 없이 부르는데......

나는 오래 전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어떤 음악회에서 이탈리아 가곡은 악보도 보지 않고 열창하더니 한국 가곡을 부를 때 소절마다 악보를 보면서 부르는 어느 소프라노의 태도에 화가 치밀어 클래식 하는 사람들을 싸잡아 미워했던 적이 있다. 그 무렵 또  윤호진 연출의 뮤지컬 <겨울나그네>를 예술의 전당에 보러 갔다가  겉멋만 잔뜩 든 그 엉터리 뮤지컬에  실망해  끝까지 보지 않고 일행과 함께 중간에 나오는 무례를 범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내 돈으로 음반을 열심히 사지 않았을 뿐 이렇게 저렇게 주워듣고 좋아라 했던 곡들은 꽤 되는데......

본격적인 클래식 음악 이야기만 기대하고 이 책을 집어든 클래식 매니아 독자라면 어쩌면 조금 눈살을 찌푸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너무 재밌게 읽었다. 클래식 외에도 록이나 분노의 하드 코어, 밥 딜런 30주년 기념 콘서트장에서  사회자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의 품에 안겨 엉엉 울고 나갔다는 시네이드 오코너의 소식까지 뭐 하나 내 구미를 충족시키지 않는 것이 없었으니 김갑수의 음악과 사랑 이야기는 내가 모르는 클래식 음악에 대한 호기심은 물론 테리 리드,  할리 니어 등 그의 소개를 듣기만 해도 호감이 가는 대중가요 뮤지션들의 이름을 내 수첩 귀퉁이에 옮겨 적게 했다. 그것이 앞으로 무슨 소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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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누리 2005-05-16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억거리도 풍부한 로드무비님,
이런 저런 사연 읽기도 재미있었구요. 책소개도 잘 읽었습니다.
그가 라디오도 진행한다구요...
보관함에 넣고 추천도 잊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빡빡한 글씨에 맘 놓고 읽지 못 하였다가 저녁에 다시 와 차분히 읽었습니다. ^^

릴케 현상 2005-05-16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화려하게 사셨군요^^아니 사시는군요...오늘 택배를 보냈습니당

날개 2005-05-16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래식을 몰라도 재밌다니, 조금 용기가 생깁니다..ㅎㅎ

로드무비 2005-05-16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얼마전 <사색기행>을 재밌게 읽고났더니 책 읽는 즐거움을
어느새 회복한 것 같아요.
이 책도 단숨에 읽었습니다.
저처럼 클래식 몰라도 충분히 재밌으니 나중에 빌려드릴게요.^^
자명한 산책님, 동작도 빠르셔라.
내일 받는 대로 메모 남길게요.^^
그리고 저 화려하게 안 살았습니다.
어쩌다 얻어걸린 공연이며 생각잖은 두둑한 원고료였어요.
그러니 제가 잊지 못하고 자랑질을 하죠.ㅎㅎㅎ
미누리님, 추억거리는 풍부한 편인데 요즘 제가 왜 이리 시들한지 모르겠어요.
아, 제가 이 리뷰 너무 빽빽하게 썼나요?
재밌게 읽어주시고 추천까지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Phantomlady 2005-05-16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좋아하는 사람은 언젠가 꼭 만난다는 촌스러운 믿음이 있는데 작년 봄 우연히 식당에 밥 먹으러 갔다 김갑수 시인을 본 적이 있어요. 물론 인사도 못 하고 스쳐지나갔지만요. 이 책 읽고서 클래식 음반도 몇 장 샀더랬죠. 얼마전 알라딘에서 이수정과 조지아에 관해 쓴 글도 본 거 같은데 로드무비님이었나..

깍두기 2005-05-16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남의 수필집 같은 건 절대로 집어들지 않는 사람인데, 이책 읽고 싶네요. 로드무비님의 글빨에 속는 거 아닌지 몰라....

로드무비 2005-05-17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깍두기님, 전 남의 수필집 좋아하는데......
아마 모르긴 몰라도 님도 이 책 좋아하시지 않을까!^^
스노드롭님, 이 책 읽으니 사고 싶은 음반이 얼마나 많은지......
음반에 뒤늦게 필 꽂히면 절대 안될 형편이라 아쉬운 대로 두 개 정도만 사려고요.
그런데 님은 이 책 읽고 뭐뭐 사셨어요? (궁금)

하루(春) 2005-05-17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정말 새콤달콤한 추억을 많이 간직하고 계신 것 같아요.

2005-05-17 1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5-17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예전 제가 다니던 직장 덕에요.
지금 생각하니 꽤 재밌게 지낸 것 같은데 그땐 왜 그렇게
인상 쓰고 다녔을까요?^^;;
하루님, 들척지근한...이라는 표현이 더 맞아요.
님도 재밌는 추억 많이 만드시길......^^

2005-05-17 1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nemuko 2005-05-17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저나 독서의 스펙트럼이 정말로 넓으세요. 게다가 어쩜 그리 소설처럼 사신건지.. 옛 이야기들 하나씩 꺼내 놓으실 때마다 정말 부러워요^^

로드무비 2005-05-17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무코님, 뭐 그렇지도 않아요.
아무래도 출판사에 다니다보니 문인들 마주칠 기회가 좀 있었죠.^^

Phantomlady 2005-05-17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의 구구절절한 고백을 듣고나니 브람스와 슈베르트를 피해갈 수가 없었어요. 아마 읽어본 분들은 다 아실 듯 ^^ 추천곡에 나오는 브람스 현악 6중주는 똑같은 앨범으로 사구요. 슈베르트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는 한스 호터 노래가 없어서 제가 좋아하는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 곡으로 샀어요. 그리고 비버의 미스테리 소나타가 뭐야, 궁금해서 존 할로웨이 바이올린 연주로 사구요.

코마개 2005-05-17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전 김갑수씨 매우 좋아하는데...그 분의 생각들과 글들이 마음에 들어요. 그리고 그 담담한 어투.

로드무비 2005-05-17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쥐님, 수선님 방에서 간혹 마주치던 분이군요.
김갑수 시인의 생각과 글, 담담한 어투를 좋아하신다니 반갑네요.^^

로드무비 2005-05-17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노드롭님, 비버의 미스테리 소나타는 처음 듣는 얘긴데...
그 부분 읽을 때 잠시 졸았나보다.;;;;
슈베르트와 브람스 정말 안 살 수 없게 써놓았죠?
님의 목록 참고하겠습니다.^^

hanicare 2005-05-18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쌩스 투 누르고 구입했습니다. 예전에 이순열씨의'음악, 귀로 듣는 황홀한 술'을 샀었어요.그런데 한 귀절도 기억이 안나는군요.(이젠 검색조차 안되네요. 얼마나 되었다구.) 그런 책들은 결국 종이재활용으로 보내버립니다.저는 책의 육체성에도 굉장히 집착을 하는 고로 로드무비님처럼 중고서적은 통 정이 가지 않습니다.중고는 커녕 예전엔 초판만 사기도 했지요.은어낚시통신을 누구에게 주고 나서 판이 바뀐 책을 사려니 남 먹다남은 밥 먹는 것 같은 불결함(?)마저 느껴지던 기억.(어쩐지 쓰면 쓸수록 내 인간성이 나쁘다는 광고를 하는 것 같습니마만,흠흠.)
로드무비'님'이라고 술술 잘도 씁니다만, 처음에 서재나들이할 때마다 타 서재에 가서 '님'자 붙이기가 어찌나 어색하던지요. 남편을 여보라고 못 부르는 입을 달고서 '님'이라고 치지 못하는 손가락까지 겸비했지 뭡니까.(투덜)
* 저 책 살까 말까 계속 망설이던 겁니다. 작가들이 쓴 음악책 영 나른했거든요.
* 아 그나저나 저번에 파니 핑크랑 도리스 되리 책이랑 김광석을 패키지로 묶어 팔던 그 이상한 가게 귀뜸해주지 않으면 인제 추천이고 썡스 투고 다 떼 먹을 거에요.

로드무비 2005-05-18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니케어님, 참 이순열 씨가 쓴 책이었죠?
전 인간성 나쁜 사람이 좋으니까 님이 그런 말씀하셔도
더 매력적으로만 보입니다.
이 책 일단 님도 재밌게 읽으실 거예요. 음악 취향하곤 상관없이.....
아, 그나저나 파니핑크랑 도리스 되리, 김광석을 패키지로 묶어팔던
이상한 가게를 아직 기억하시다니!
님 너무 재밌는 분이에요.ㅎㅎ^^

비로그인 2005-05-19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유명인들과 친분도 나누시고..로드무비님, 이거 은근슬쩍 잘 보여야겠습니다. 흠흠..그나저나 이거 또 제가 읽어야 할 필독서구만요. 조그만 무식함도 용서하지 않는 로드무비님 서재..아이고, 벱새가 황새 따라갈려면 가랭이가 찢어진다고..저, 로드무비님 따라댕길라다 깁스하게 생겼습니다. 우..웁T^T
 
도로시아 랭 Dorothea Lange 열화당 사진문고 8
마크 더든 지음, 김우룡 옮김, 도로시아 랭 사진 / 열화당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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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들 파트리지가 찍은 도로시아 랭(1895^1965)

샌프란시스코의 최상류층과 부호들을 주로 찍던 그녀가 대공황기, 자신의 스튜디오 근처에서 구호물품을 타기 위해 줄 서 있는 실업자들을 찍기 시작한 것은 자신의 인생과 작품세계의 획기전인 전환이었다. 이때는 그녀 자신 화가인 남편과 파경을 맞는 등 개인적으로도 아주 어려운 시기였다.

화이트 앤젤급식소, 샌프란시스코, 1933.

랭이 거리로 나가 첫 촬영에서 얻은 사진.
급식소에서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는 여러 사람들과 등을 맞대고 서 있는 이 늙고 수심에 찬 사람의 곤경이 생생하게 읽힌다.

랭은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이라도 그 대상의 내면적 힘과 탄력성을 포착하고야 마는데 이 이상의 우정이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외바퀴수레 옆의 남자, 샌프란시스코, 1934.

"여기의 이 사람은 머리를 묻고 벽에 등을 댄 채, 뒤엎어진 수레처럼
그의 삶 자체가 엎어져 있는 것으로 찍혔다."
랭이 후일에 한 말이다.

절망의 이콘...

이주민 어머니, 니포모, 캘리포니아, 1936.3.

임시천막에 머물고 있는 이주민 여인의 가족. 주위의 밭에 흩어져 있는 언 채소와 아이들이 잡은 새로 연명한다고 말했다는 이 여인의 나이가
서른둘이란다.

나이에 비해 엄청 늙어보이는 여인의 저 표정은 그러나 영국 여왕 못지 않게 단호하고 결연하다.

장애아, 섀크타운, 엘름 그로브, 오클라호마, 1936.

1960년대, 랭의 조수로 일했던 랄프 깁슨은 이 사진에 대한 재밌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을 찍은 지 30년 정도 지났을 때, 프린트를 다시 하기 위해 이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던 랭은, 의지할 곳 없던 이 지체아가 당하던 학대에 대해 얘기하면서 왈칵 눈물을 쏟았다 한다.

증오와 체념과 독기...무시무시하고 슬픈 아이의 눈빛!

길 위의 가족, 중서부, 1938.

애리조나로 가는 길에서 마주친 이주 농업 노동자 가족. 오클라호마를 떠나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에서 감자와 목화 수확 일을 따라 이동하는 중이었다고.

길가 더러운 천막촌에서 지내다 병으로 죽는 아이들이 속출했다니...

여행중의 어머니와 아이들, 튤레이크, 시스카유 카운티, 캘리포니아, 1939.

그녀의 사진 속 가난한 이들은 무력하고 비천하며 가련한 희생물이 아니라, 절망의 한가운데서도 어떤 위엄과 용기를 지니고 있는 당당한 존재로 그려내고 있다.

씻지 않아 꼬질꼬질하고 황망한 표정의 엄마와 아이들의 모습에서도 무력감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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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 2005-05-14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 제목이 더 가슴을 찌릅니다...

로드무비 2005-05-14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발~*님, 페이퍼가 아니라 포토리븁니다.^^

날개 2005-05-14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부 흑백인가요? 흑백이 참 잘 어울리는 사진들이군요..

인터라겐 2005-05-14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은 좋은책을 많이 갖고 계시네요...아 부럽다..

비로그인 2005-05-14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번째 사진은 문정현 신부님 같아요. 전 사실, 무섭습니다. 전쟁이 일어난 나라를 보면서 암담한 미래가 보여줄 우리들의 비참한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 힘들어요. 아, 저 사진 속의 나라가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이 아니고..경제공황도 마찬가지겠지만요..무서버요..으..

2005-05-14 1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5-14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이님, 저도 무서버요.^^;;;
님의 말씀을 듣고보니 저 사진 속의 남자 문정현 신부님 같기도 하네요.^^
인터라겐님, 사진집 좋아하는데 비싸서 살 수가 없어요.
열화당 사진집이 예전에 3000원이었는데 지금은 만 원이 넘는답니다.;;
날개님, 예. 흑백사진들이에요.^^

하루(春) 2005-05-14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화당 책 모으시나 보군요. 아니라면, 그저 좋아서 사다 보니까 그러셨을 수도 있겠죠? 좋은 사진과 님의 해설 혹은 감상 잘 보고 갑니다.

로드무비 2005-05-14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 몇 권밖에 없어요.
그리고 얼마 전 오랜만에 큰맘먹고 세 권 샀답니다.
사진 상태가 별로 안 좋은데 잘 보셨다니 제거 되려 고맙네요.^^

릴케 현상 2005-05-14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주민 어머니 사진은 많이 본 것 같네요. 타인의 고통 표지였던가요?(음 아니네-_-그럼 뭐지?)

로드무비 2005-05-14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산책님, 저 사진집 표지예요.
그래서 눈에 익은 거 아닙니까?^^

icaru 2005-05-17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화당 사진 문고 시리즈 중에서 하나인가보네요... 몰랐던 작가예요...
서점에 가면 도로시아 랭 꼭 찾아봐야겠어요 ^^
님 덕에 또 한 작가를 알고갑니...
 
사색기행 - 나는 이런 여행을 해 왔다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규원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 이 책은 늘 뭔가를 생각하고, 언젠가 어떤 통찰을 얻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하는 것만을 기대하며 살아온 한 남자가 여행을 계기로 머릿속을 스쳐간 다양한 생각들을 기록한 것이다. 거기에다 취재를 겸한 여행에서 얻은 정보를 보태고, 그런 여행을 하면서 사색한 내용을 서술한, 농도 짙은 보고서 몇 개가 실려 있다.(85쪽)

다치바나 다카시의 <사색기행>을 읽었다. '세계인식은 여행에서 시작된다'는 제목의 90쪽짜리 서론에서 미리 밝혀놓은 것처럼 그의 기행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여행기와는 많이 달랐다. 관광객으로 들끓는 명소 위주의 여행도 아니며 그렇다고 아무 목적 없이 휘파람을 불며 어슬렁 뒷골목을 산책하는 배낭여행과도 거리가 멀었다. 

 낯선 나라의 도시 뒷골목이나 바닷가, 혹은 시골의 한적한 길을 유유자적 한달쯤 배회해보고 싶은 꿈이 나에게도 분명 있었는데 나는 어쩌자고 여러 번 걸어들어온 그 기회를 발로 걷어차버렸다. 인도도 마찬가지. 서른 초반에 나의 절친했던 친구 둘은 나를 유혹하다 하다 포기하고 저희들끼리 유럽에도 가고 인도에도 다녀왔다. 친구들이 배낭여행을 간 동안 극장으로, 또  희귀비디오를 소장한 비디오가게로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다녔던 나의 선택은 과연 현명한 것이었을까?

제 1장, '무인도에서 보낸 엿새'(1982년)는 문명사회에 중독된 인간의 엿새간의 단독 무인도 체류기이지만 한 잡지사의 기획의도처럼 너무나 가볍고 뻔해서 다치바나 다카시 본인으로서는 상당히 독특하고 유쾌한 경험이 되었는지 몰라도 독자로서는 별로 신통치 않았다. 일본의 한 무인도에 약간의 식량만 가지고 들어가 엿새를 혼자 보낸다는 설정이다. 그런데 단  며칠간의 경험일 뿐인데도 저자는 돌아와서 굉장히 중요한 깨달음을 얻는다.

--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어떤 일도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렇게 악착같이 일할 필요가 어딨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요컨대 나는 업무중독에서도 헤어나고 만 것이다.(119쪽)

제2장 몽골에서의 '개기일식' 체험(1997년)을 하게 되는 경위도 마찬가지이다. "몽골에 개기일식 보러가지 않을래요? 테레비아사히의 프로듀서가 이런 제안을 했다. (...) "개기일식으로 하늘이 새카매지면 헤일-봅 혜성이 육안으로 보일 겁니다. 이런 일은 두 번 다시 만나기 힘들지요."(121쪽)

그런데 그가 꼭 글을 쓰는 사람이어서 이렇게 멋진 제안을 받고 거기에 응하고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이른바 준비가 돼 있는 사람이었다. 가령 그는 중학생 시절에 망원경을 직접 만들어 별이나 달을 즐겨 관측했다. 

그뿐 아니다. 그는 대학시절 이슬람 문화에 관심이 많아 아라비아어 수업과 페르시아어 수업을 들었던 사람이다. 그가 팔레스타인 지역을 여행하고 보고서를 쓰는 것도 필연적인 것으로 보인다.

제 3장 '가르강튀아 풍'의 폭음폭식 여행(1983)은 일본의 최고 소믈리에와 프랑스의 와인 산지를 돌며 최고급 와인과 치즈를 원없이 먹어본 체험인데 이런 류의 취재여행을 제외하고는 다치바나 다카시이기 때문에 가능했고 온전히 그의 것이 되었던 독특한 기행들로 이 책은 채워져 있다.

내가 제일 부러웠던 기행은 제6장 신을 위한 음악(1982년) 편으로 세속과는  절연되어 사람의 발길도 거의 끊어진 수도원 엘 에스코리알 대성당에 들어갔을 때 울리기 시작했던 오르간 연주곡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를 듣고 아무 이유 없이 그가 눈물을 흘렸던 시간이다. 슬퍼서도 아니고 심란한 일이 있어서도 아니고 그냥 저절로 흘러내리는 눈물이었다.  마침 그 시간에 오르간주자는 연습을 시작했을 뿐인데 그 음악이 그의 영혼을 건드렸다. 나는 여행의 최고 순간을 그러한 장면이라 생각한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그가 열아홉 살에 떠났던 유럽 반핵무전여행(1960년)이다. 대학 1학년 때 이런 종류의 여행을 구상하고 모금을 통해서 엄청난 경비(요즘으로 치면 1천만 엔?)를 마련, 친구와 함께 떠난 그의 기상과 호기 앞에서 나는 너무 부러워 할 말을 잃었다. '원폭수폭 금지 세계 홍보운동 추친위원회'를 고마이 군과 달랑 두 명이서 결성,  1년 동안 모금을 받아 원폭피해 사진집과 관련 다큐멘터리 필름 세 통을 들고 유럽 여행길에 오른다. 그들이 만난 유럽의 평화운동 단체나 운동을 하는 개인의 모습들도 상당히 인상깊다.  "시위현장에서 놀랄만한 강인함을 보여주는 것은 대부분 개인의 신념이나 신앙(퀘이커 교도 등)에 의지하는 사람들입니다. " 그뿐인가, 다치바나 다카시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떠났던 이 6개월간의 여정에서 예술과 문화를 몸으로 체험한다.  어느 시골 구석에 가도 놀랄만한 미술작품들이 그의 눈에 띈 것이다. 

그는 6개월간 유럽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자칭 인생에서 최고의 공부를 한다. 체리나무가 있는 엑상프로방스 젊은 미망인의 집 마당에서 체리를 실컷 따먹던 그 일주일만큼 호사스러운 인생의 순간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 그는 이 여행에서 돌아온 후 학생운동을 그만두고 자신의 관심사인 공부에 매진한다.

그 뒤를 잇는 '팔레스타인 보고'나 '뉴욕 기행'도 무척 흥미로웠지만 저자의 말대로 그것은 보고서의 성격을 띤 것이니 너무 바쁜 사람은 건너뛰어 읽어도 무방할 것이다. 나의 생각으로는 이렇게 다양한 기행과 보고서를  한 권의 책으로 무리하게 묶지 말고 두 권으로 따로 엮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별로 바쁠 것 없는 나는 팔레스타인 보고서나 뉴욕 연구까지 꼼꼼히 흥미롭게 읽었지만 처음에 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흥분과 즐거움은 나도 모르게 반감이 되는 느낌이었으니까......그 점이 아쉬웠다고 하면 내가 너무 욕심이 많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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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05-10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무실에 굴러다니던데...마르스를 먼저 보고 기회를 노려야겠군요.마르스 재밌어요^^선인장하고 남녀 스타일이 약간 비슷한듯...

달팽이 2005-05-10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에게 있어 기행은 지식의 첨단을 걷고 있는 지적 여행이 아닌 것 같군요. 다만 자신의 내면에서 자신이 이전에 발견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기행이 아닐까 싶군요. 살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더랬는데...님의 리뷰로 사서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잘 쓰셨습니다.

로드무비 2005-05-10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바로 그거예요.
목적이 있는 실용적인 성격의 여행에서도 그는 자신이 기다리던
한 소식을 얻고야 말더군요.^^
자명한 산책님, 사색기행이 굴러다니는 사무실이라, 근사합니다.
마르스 재밌죠?^^

2005-05-10 15: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날개 2005-05-10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깨달음의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복이로군요. 아니다. 그건 본인의 능력이겠죠? 같은 여행이라도 관광지를 둘러보는 수박겉핥기 식의 여행과는 다른 느낌이군요..

마냐 2005-05-10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초절정 염장질이라 할 수 있군여..흠흠..

사마천 2005-05-10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네요. 남과 다른 독특한 체험을 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군요. 책만 많이 읽는게 아니라 삶도 두루 넓혀가며 사는 사람이죠.

로드무비 2005-05-10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마천님, 그런 사람이 부럽습니다.
마냐님, 제 맘에는 쏙 드는 기행이었어요.^^
날개님, 뭐 그런 이가 따로 있을라고요.
날개님이나 저도 기회만 되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속삭이신 님, 기대보다 좋았어요.
이틀동안 이 책만 읽었답니다.
그리고 비디오가게 드나든 저의 시절도 꽤 괜찮았어요.^^

urblue 2005-05-10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로드무비표 리뷰!

로드무비 2005-05-10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듣는 말!^^

Phantomlady 2005-05-11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이 너무 두껍고 무거워서 살까 말까 고민중인데 로드무비님 리뷰 읽으니까 더 고민이 되요.. (별 걸 다 고민하는 여자야 암튼..) 이상하게 들고 다니기 무거운 책과 상, 하권으로 나뉜 책은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구요.. ^^:

로드무비 2005-05-11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노드롭님, 이 책 사세요. 팔레스타인 보고서와 뉴욕 이야기도 전 무척
재밌게 읽었어요. 그리고 어쩌면 제목이 '사색기행'이니 좀 두꺼워야
맛이 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책 살 때 꼭 땡스투 누르시고요.^^

인터라겐 2005-05-11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거워서 들고 다니면서 보기엔 힘들어요.... 그래도 두고 두고 펼쳐볼수 있어 좋은것 같아요... 헉 그런데 로드무비님은 어찌 이렇게 글을 잘쓰신데요... 저 다시 한번더 볼래요.... 같은 책을 읽고도 이렇게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다는게 참 신기하지요?

로드무비 2005-05-11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라겐님, 워낙 재밌게 읽으면 리뷰도 술술 나오더라고요.
하나도 힘들이지 않고......
님도 잘 쓰셨으면서 귀엽게 엄살은?!^^
(결국 내가 잘 썼다는 말;;;)

2005-05-11 1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春) 2005-05-11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임자 잘 만났군요. ㅎㅎ~ 언젠가 그런 여행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겠죠? 함께 꿈꿔 보아요. ^^;;

kleinsusun 2005-05-11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정말 감칠 맛 나는 리뷰네요.
근데 로드무비님....저도 울어봤어요.아무 이유 없이....너무 평화로와서....
그런 느낌....정말 뭐라 말할 수 없이 충만해요.

로드무비 2005-05-11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그런 경험이 있으시다니 부럽네요.
전 눈물이 터지진 않았지만 하염없는 마음으로 여기저기
다녀보던 어느 한때가 자주 그립습니다.
하루님, 그려요. 함께 꿈꿔보자고요.
떠나게 되면 서로에게 엽서도 한 통 쓰고요.^^

플레져 2005-05-12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저기 떠돌아 다닌 적 없는 제게는 부럽기 그지 없는 책이네요....어흑...ㅠㅠ

chika 2005-05-12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저한테도 엽서 쓰는거 잊으시면 아니되옵~! ^^
근데 정말 로드무비님 말처럼 다치바나 다카시였기에 가능한 여행이었다는데 동감요~!!

로드무비 2005-05-12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카님, 그런 부분이 있죠?
엽서는 무,무,물론이죠.^^
플레져님, 저도 그냥 1박 2일로 여기저기 혼자 다녔던 걸 부풀린 것에 불과해요.
너무 부러워하지 마세요.^^

비로그인 2005-05-13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립된 수도원에서 '토카타와 푸가'를 듣고 눈물을 흘리다니..물아지경의 경지였을까요? 그냥 듣기에도 성스러운 곡을 알맞은 공간 안에서 들었을 때, 궁합이 딱 맞아버린 거였군요. 크하..저도 그런 경험 함 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로드무비 2005-05-13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이님, 요즘 님이 제 리뷰 읽어주지 않아 속상했다고요.
님도 인생에 꼭 저런 진한 순간을 경험해 보시길 빌어드립니다.^^

내가없는 이 안 2005-05-15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휴, 이 리뷰에 달린 댓글들... 로드무비님 서재는 1년만에 빌딩도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잘나가는 삼겹살집 같아요. 여기저기 벌어지는 이야기들이며, 고기 굽는 냄새도 나는 듯하고, 다들 여기서 술 한잔씩 하시는 느낌이라니! ^^ 사색기행, 저도 읽어보고 싶어지게 쓰셨네요. ^^
 
뚝딱뚝딱 인권짓기 - 만화 인권교과서 뚝딱뚝딱 인권 짓기 2
인권운동사랑방 지음, 윤정주 그림 / 야간비행 / 2005년 4월
구판절판


인권운동사랑방에서 짓고 펴낸 만화 인권교과서 <뚝딱뚝딱 인권 짓기>를 읽었다.
내가 어린이라면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엄마, 우리나라는 뭐가 이래요?"

차례 : 같으면서도 달라요 / 생각하고 말하고 전할 수 있어요 / 깨끗한 환경을 사랑해요...등 인종이나 남녀, 장애인 등 사람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인권보호와 자연보호의 필요성까지 열세 가지로 나누어 조목조목 만화로 보여주고 있다.

(내용이 궁금하시면 클릭해서 크게 보세요.)

같으면서도 달라요.(제목)

만약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인형가게에 있는 인형들처럼 똑같이 지낸다면 지루하고 따분하겠죠. 또 모든 사람들의 직업이 의사라면 아플 때는 좋겠지만, 빵이 먹고 싶을 때나 공부를 하고 싶을 때는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성적으로 인한 차별-같이 지각을 했는데도...
"범생이 네가 웬일로 지각이냐? 다음부턴 일찍일찍 다녀라."
"뭐하느라 늦잠을 자다 지각해?! 그러니까 성적이 만날 그 모양이지!"

性에 의한 차별 - 할머니는 나보다 오빠를 좋아하신다. 배고프다 말하면.
"아이고, 우리집 장손 배고팠구나. 자, 이 고기도 먹고...욿지, 잘 먹는다."
"아니, 너는 여자애가 그런 것도 못하냐? 알아서 챙겨 먹어라."

마이 도러는 초등학교 입학선물로 아디다스 가방을 받았다. 조기축구회에 든 남편은 사무실 사람들에게 생일선물로 축구공과 축구화를 선물해 달라고 해 마침내 받아냈다. 우리집엔 맥도날드와 롯데리아에서 햄버그를 사면 주는 장난감 인형이 쌔고 쌨는데......

--파키스탄의 세 자매. 6살과 7살의 동생 두 명이 가죽조각에 구멍을 뚫고나면 8살짜리 언니는 그 조각들을 꿰매어 축구공 만드는 일을 해요.
--맥도날드의 장난감을 만드는 사람들 중 대부분이 14세 이하의 어린이들이거든요. 어쩌다 쉬는 날에도 아이들은 갈 곳이 없어 공장에 있어야 해요.

만약 아이가 자기의 가방이나 장난감이 제3세계 가난한 아이들의 노동력을 저임금으로 착취하여 나온 것임을 안다면 뭐라고 말할 것인가?

회장 되려면 쏴야 해!(제목)
전교어린이회 회장 부회장 투표 전 합동 소견 발표회.
부잣집 아이 민호가 내거는 공약이 재밌다.

"그동안 정수기가 한 대밖에 없어서 불편하셨죠? 저를 만약 회장으로 뽑아주신다면 한 층마다 정수기를 설치하도록 하겠습니다. 또 지금은 흰우유가 매일 나오지만 다양한 우유가 나올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세 번째 '깨끗한 환경을 사랑해요' 편.
사람의 건강과 환경을 파괴하는 맥도널드 이야기를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펼치고 있다.

우리 몸은 소중해요(제목)

제 동생 지연이가 얼마 전부터 많이 아파요. 병원에도 갖다왔어요. 며칠 전에 어떤 아저씨가 지연이가 혼자 있을 때 뽀뽀도 하고 껴안으려고 해서 그렇대요.

으으, 그림만 봐도 정말 끔찍하다.

진짜 부끄러운 일은...(제목)

가난한 집안형편으로 급식비를 못 내서 쩔쩔매는 하남이에게 선생님이 일러주신다. 급식비를 지원받는 일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당한 권리인데 정말 부끄러운 일은 이런 걸 창피하게 생각하는 거고. 또 국가가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것이라고.

한 아이가 학교에 와서 돈을 잃어버리자 가방 검사를 하는 선생님.(우리는 예전에 이런 걸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신체검사에서 미정이의 체중을 살짝 훔쳐보고 돼지라고 놀리는 친구들.

이 책을 초등학교에 다니는 내 아이에게 읽히려면 부모로서 단단히 결심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세상의 문제들, 빈부의 격차니 눈 뻔히 뜨고 자행되는 인권 훼손 문제니 잘못된 일들이 어디 한두 가지여야 말이지. 아이가 눈 똑바로 뜨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 줄 건가?
아니 그건 차치하고라도 부모로서 나는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공평하고 열린 시각을 가졌으며 또 사회 구성원으로서 작은 정의를 부지런히 몸소 실천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책 마지막에 부록으로 실린 UN 어린이 권리조약.
아이 방 책상머리에 붙여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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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5-05-06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이로군요.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는 데에 도움이 되겠어요.

숨은아이 2005-05-06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담았습니다. ^^

인터라겐 2005-05-06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는 뭐가 이래요 라는 제목이 가슴에 와 닿아요...
진짜 마음 단단히 먹고 읽혀야 겠다는 생각이...

로드무비 2005-05-06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라겐님, 숨은 아이님, 하루님.
처음엔 그냥 리뷰 쓸 생각을 했는데요.
그림이 재밌고 내용 전개가 좋아서 포토리뷰로 올렸답니다.
잘했죠?ㅎㅎ
이 책을 읽고나니 우리나라는 뭐 이래? 하는 뜬금없는 생각이
떠올라서 제목으로 잡았고요.
추천 고마워요.^^

날개 2005-05-06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내용이군요.. 애들에게 보여주기 전에 정말 제 자신부터 바로 세워야겠군요..

플레져 2005-05-06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뭘 알아야 가르친다는 걸, 절감해요. 우선 나 부터 좀 제대로 된 생각을 해봐야겠어요. 추천해요, 저두요!! ^^

난티나무 2005-05-07 0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부터 먼저 봐야 할 책이군요. 추천!!!

로드무비 2005-05-07 0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 어른도 한번 읽어볼만한 책이에요.^^
플레져님/ 님이야 그이상 어떻게 제대로 된 생각을 갖추시려고요.^^;;
날개님/ 다음 보따리에 넣을까요?^^
새벽별님/ 님은 벌써 읽으셨죠?^^
따우님/ 저 페이지에 나온 저게 다예요.(클릭해서 보세요!)
두 쪽짜리라 따우님 말씀하시는 것까지 집어넣긴 무리가 있었던 듯.
정말 필요한 건데 말이죠.^^

Phantomlady 2005-05-07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노트북이 바이러스를 먹었는지(아니면 단순히 오래된 거라 성능이 떨어지는지) 포토리뷰는 로딩되는 데 한~~~참 걸리는 까닭에 이제서야 읽네요.. 로드무비님 리뷰는 뭐 이래요 어흐흐흑 감동먹고 갑니다 --_--b

로드무비 2005-05-07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포토리뷰에 이렇게 많은 추천 받은 것 가족관찰기 이후 처음이에요.
스노드롭님, 감동씩이나요;;
고맙습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