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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 - 마음을 찾아서
글.사진 윤영관.이민우 / 동아시아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오래 전 무심코 채널을 돌리다가 스님처럼 머리를 빡빡 민 한 중년여성의 클로즈업 된 얼굴에 시선을 빼앗겼다. 신현임(48세)이라는 여성. 오대산 월정사에서 한달 동안 단기 출가를 체험하고 있는 중이라고 하는데 시간의 얼룩이 느껴지는 그 얼굴이 너무 좋았다. 나는 그의 수양이나 신심이 얼마나 깊고 심오한 것이든 인간사 모든 고뇌에서 완전히 해방된 듯한 말간 얼굴을 좋아하지 않는다. 상처와 고뇌와 욕망이 노루 꼬리만큼은 남아 다소 복잡하고 아득한 눈빛을 가진 사람의 얼굴이 좋다. 그녀의 얼굴이 바로 그랬다.
이 책은 바로 그 프로, 오대산 월정사에서 연례행사로 이루어지는 일반인들의 단기출가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한 프로듀서와, '묘명'이라는 이름으로 그곳에서 출가자들과 함께 한달 동안 행자 노릇을 하며 사진을 찍은 한 카피라이터의 담담한 기록이다.
깊은 산속 암자에서 방을 하나 얻어 한두달 간 틀어박혀 가지고 간 책이나 실컷 읽고, 잠이나 자고, 그것도 싫증나면 산보를 나서는 생활, 나는 아주 옛날부터 그런 생활을 꿈꾸었다. 어쩌면 한번쯤 꼭 가보고 싶었던 인도나 네팔에 가지 못한 것보다 그런 생활을 해보지 못한 것이 내게는 더 아쉽게 느껴진다. 하지만 어느 날부턴가 나는 더이상 내 영혼의 암자를 꿈꾸지 않게 되었다. 내가 서재활동을 하느라 풀방구리 쥐 드나들듯 하루에도 몇 번씩 기어드는 이 방, 책으로 가득 쌓인 내 조그만 방이 나의 암자이고 베이스캠프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
내 절친한 여고 동창이 오래 전 마인드컨트롤을 배운다고 2박 3일인가 3박 4일 양산 모처에서 단기코스를 밟은 적이 있다. 그때 룸메이트로 배정받은 여성이 낯이 많이 익어 자세히 보니 시인 강은교였다고 자랑을 하는 것이었다. 눈빛이 아주 형형했지만 뼛속 깊이 외로워 보였다고 국문학도인 내 친구는 문학도답게 시인을 그렇게 표현했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이 배우려고 한 것이었다니 너무너무 궁금해서 나도 어느 날 부산일보 강당에서 열린 마인드컨트롤 설명회에 참석했다. 그런데 강사의 설명을 들어보니 마인드컨트롤은 별게 아니었다. '아아, 오늘 날씨가 춥고 비까지 내리니 감기에 걸리겠는걸?'하고 생각하면 그 사람은 꼼짝없이 감기에 걸리고 만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마음에 따라 인생 모든 일이 결정된다는 것. 그때나 지금이나 시건방지기 짝이 없는 나는 그 말 한마디에 마인드컨트롤을 모두 마스터했다 생각하고 유료 강습은 신청하지 않았다.
자신의 마음자리를 찾는 모든 여행이 출가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때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기웃거린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잠자리에 누워 낮에 만난 아버지와 딸(아버지가 딸을 무지막지하게 폭행하는 장면을 산보를 하던 두 행자가 보고 뜯어말렸다)을 떠올린다. 그들은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서로에게 마음을 드러내 보이기가 두려웠던 것이다. (...)가장 훌륭한 선방과 가장 험악한 저잣거리가 겹친다. 한 스님이 강의 시간에 스님들이 쌀쌀맞아 보이도록 당당하고 꼿꼿한 이유는 자신이 부처임을 깨닫고, 자신이 있을 곳이 어딘가를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신이 있는 곳을 받아들이고, 제 자리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극락이라 여기기 때문이라 했다. 또 다른 스님은 절에 오면 부처를 만나고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가는 것이라 한다.(119쪽, 묘명 행자의 기록)
열네 살 중학생 소년부터, 여대생, 장성한 두 딸을 둔 중년여성, 70세의 뚜르르한 기업의 부회장 등 그들이 이 바쁜 세상에서 하던 일을 중단하고 한 달 동안 깊은 산사에서 스님들과 똑같은 생활을 체험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지금의 나를 벗고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도 아직 그런 소망은 아주 쬐끔 남아 있다. 하지만 나는 아마도 내가 어렵사리 구축한 이 조그만 방이 주는 쾌락과 가짜 평화에서 좀체 벗어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직 멀어도 한참 멀었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는데, 괜시리 눈물이 찔끔찔끔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