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아, 사람아, 그냥 갈 수 없잖아
사석원 지음 / 푸른숲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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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책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한지 비슷한 고급 종이로 만든 책싸개가 멋스럽다.

저녁 무렵마다 대폿집들을 다니며 나는 그리운 시절을 떠올렸다.
풍경들, 사람들... 풍경도 사람도 변했다.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어디서 무얼 하는지, 모두들 보고 싶구나.
가난했지만 낭만이 보석같이 빛나던 세월들이여, 안녕!(본문 중에서.)


화가의 사인본.
선착순 50인에게 사인본을 준대서 부랴부랴 주문한 책이다.
이 땅에서 점점 사라져 가는 대폿집 이야기를 화가의 유머러스한 일러스트와 함께 듣는 재미라니!
책을 펼치면 시금털털한 막걸리 냄새와 함께 파전, 꽁치 굽는 냄새가 확 풍긴다.

--시인 이상을 좋아했던 박인환은 이상의 기일인 3월 17일 오후부터 이상을 추모하는 몇몇 지인들과 함께 명동의 한 대폿집에서 폭음을 한다. 그렇게 사흘을 내리 술을 마신 박인환은 19567년 3월 20일 밤 9시경, 그의 세종로 집에서 만취 상태로 갑자기 숨지고 만다. 그의 나이 겨우 서른한 살이었다.(16쪽)

광화문 교보문고 근처의 유명한 대폿집 '소문난 집'은 와보고 사람들이 세 번 놀란대서 '삼경원(三驚苑)'이라는 이름이 붙었단다.
저자가 주로 다닌 곳은 옛날 문인들, 가난한 예술가들이 많이 다녔던 곳. 그리운 이름들과 얽힌 소소한 일화들도 맛깔나게 풀어놓고 있다.

--배병우(사진작가) 선생과 임 선생(막걸리공장 사장)은 서로에게 막걸리를 부어주며 어릴 적 친구인 여수 출신 화가 손상기(1949~1988)에 대해 이야기한다.초등학교 때 척추를 다쳐 성장이 멈춰 불구가 된 손 화백은 서른아홉에 요절한 '한국의 로트렉'이다.(...) 이 기진맥진한 삶 속에서 사람들은 '말집'에 모여들어 또다시 찾아온 고난을 이겨내려 한다.(70, 71쪽)

막걸리 한 병을 800원에 받아 돼지 껍닥을 무한정 구워주며 1500원 받는다는 말집 인심. 그래서인지 노가다하는 사람, 실업자들도 마음 편히 찾는 곳이란다.

여수 오동도 근처의 말집.

--초여름 질긴 해가 떨어지고 사방이 어둑어둑해올 때 나는 광장시장으로 들어왔다. 셀 수 없이 많은 좌판 대폿집이 환히 불밝힌 채 빈대떡이며, 순대, 머릿고기, 국수 등을 차려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 서울 광장시장에는 300여 개의 좌판이 몰려 술과 음식을 팔고 있으니 말 그대로 우리나라 최고, 최대의 좌판 '대포촌'이다.(84, 85쪽)

이렇게 펼치면 두 페이지에 걸친 대작(?) 일러스트도 심심찮게 나온다.

--법조인과 시민운동가들, 학생과 인쇄공과 사무원들이 섞여 북적거리던 대폿집에 빈자리가 많아졌다. 도로메기집엔 차림표도 냅킨도 없다 그래서 대폿집의 원형 같은 곳이다.
원형은 군더더기 없고 단출한 것이다. 흔한 액자 하나 없지만 숫자만이 덩그렇게 적힌 달력 하나만으로 충분히 아름답다.(132, 134쪽)

대구시 남산동 도로메기집 이야기. 원형(따우님!)에 대한 저자의 간략한 정리가 멋지다.

--저 남학생이 오늘밤 어떤 낭만적인 상황을 기대하고 저 여학생과 술자리를 가졌다면 애당초 틀렸다. 저리도 술이 약하니 말이다. 여학생은 검고 긴 머리칼을 가졌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올리비아 핫세나 <사랑의 스잔나>의 홍콩배우 진추하도 검고 긴 머리칼을 가졌지.

고대 앞의 오래된 대폿집 '고모집'에서 커플로 보이는 남녀의 모습을 보며 상념에 젖는 화가.
불콰한 얼굴로 대폿집을 나섰을 때 마침 하얗게 하얗게 눈이 내렸단다.
오래 전 이대앞 모 주점에서 부산에서 올라온 친구와 실컷 마시고
떠들다가 나섰을 때 함박눈이 펑펑 내렸던 날이 내게도 있었지.

--제주의 바다에선 소주를 마셔야 한다. 그것이 어울린다. 한라산 소주라면 더욱 좋다. 봄여름엔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어 잔, 가을겨울엔 소라 한 점에 소주 두어 잔, 그게 제격이다.(225, 226, 227쪽)

제주 탑동 잠녀 주막, 컨테이너 박스와 플라스틱 의자 몇 개, 테이블이 전부. 22명의 해녀가 매일 바닷속에 들어가 직접 공수하는 소라니 멍게니 싱싱한 안주라니......바닷바람 냄새가 코끝에 확 끼치는 듯하다.

이벤트 선물로 받은 화가의 본문 일러스트를 이용한 엽서 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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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5-06-01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그림책들은 로드무비님의 포토리뷰로 만족한다니까요. ㅎㅎ

비발~* 2005-06-01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의미에서 감사.(--)(__) 무비님 포토리뷰 아니었으면 나왔는 지도 몰랐을 듯~^^

인터라겐 2005-06-01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겠어요... 일단은 보관함으로...

로드무비 2005-06-01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발~*님, 이 책 강력 추천합니다.
특히 술 좋아하시는 분들.
앞으론 포토리뷰만 올릴까봐요.^^
블루님, 인터라겐님, 그림이 많아서 이 책은 포토리뷰만 가지곤
아쉬운 게 많을 텐데요?^^

로드무비 2005-06-01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빈현님, 주소까지 자세히 나와 있진 않지만 대강 위치를
말해놓아서요.
찾아가는 데 지장이 없을 듯합니다.^^

로드무비 2005-06-01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저자의 따우님 찬양이 이어지죠?(못 읽으셨나?;;)
따우님, 추천해 주시면 가르쳐 드릴게요.^^

로드무비 2005-06-01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집구석 보고...이렇게 좁고 누추한 대폿집이 있을까!
2.술손님 보고 놀란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문인, 언론인, 교육자,
예술가들의 아지트다!
3. 주모의 인품과 미모에 놀란다!
ㅎㅎ 따우님, 궁금증 풀리셨죠?^^

2005-06-01 1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클리오 2005-06-01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져요, 멋져... 게다가 밖에 비까지 주룩주룩 쏟아지고 천둥번개까지 배경이 되어주니.... ^^

실비 2005-06-01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가의 책이란 말이죠.. 이거보고 또 끌리네요.ㅎㅎㅎ 퍼갑니다.^^

로드무비 2005-06-02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비님, 끌릴 때 사세요.
1천원 할인쿠폰도 준다고요.^^
클리오님, 어젯밤 천둥번개 쳤나요?
모르고 퍼잤어요.
(밤에 서재활동을 해야 찐한 글이 나오는데...쩝)

날개 2005-06-02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가의 책이라 그림들이 저리 생생하군요...^^
날씨가 흐릿하니.. 술 한잔 땡기죠? (술도 잘 못먹으면서 왜 이리 폼은 다 잡는지..흐흐~)

로드무비 2005-06-02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안 그래도 어제 한잔했습니다.
동생 부부가 중국요리를 시켜서요.^^
(이 책 마음에 들어요.^^)

2005-06-03 0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6-03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마음에 드는 것만 눌러주세요.^^

2005-07-05 0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흉터와 무늬
최영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머리가 너무 나쁜 것인지 나 스스로 나에게 관심이 없는 것인지 몰라도 어린 시절 일들이 도통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니 어린 시절을 소재로 해서 소설은커녕 손바닥만한 에세이 하나 제대로 쓸 수 없는 인간으로서  나와 비슷한 시기를 산 이 작가의 세세한 기억력에 찬탄하며 책을 읽었다.

<흉터와 무늬>에서 최영미는(작가는 후기에서 이 책이 어디까지나 허구라고  밝히고 있는데 나는 이상하게도 작가의 얼굴을 장면장면마다  대입하며  읽었다. 단 둘이는 아니었지만 여럿이 어울려 새벽까지 술을 마셔본 적도 있고, 실제로 그녀가 나보다 먼저 택시에서 내린 것도 이 책의 배경처럼 세검정 모 빌라 골목이었다. )  두세 살 때 집안의 어른이 돌아가셔서 방 안에 사람들이 들끓고 혼자 누운 자신은 버려진 듯한 기분이었다고 말하는데 온 정신을 집중하여 내 인생 중의 그런 장면을 생각해 보면 서너 살 때 꾀죄죄한 런닝 바람으로 꽃밭 앞에 서서 오만상을 찡그리고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남아있을 뿐.

--신이여, 이 글을 썼던 손을 용서하소서. 라고 단 한 줄의 의미심장한(그녀답지 않게 너무 호들갑을 떠는 느낌!)  문장이 적힌 페이지를 뒤로 넘기면  ' 1.거울 앞에서'를 시작으로 '137. 다시 거울 앞에서'로 끝나는데, 차례로 번호를 달고 있긴 한데 대부분 심상하고 무심한 제목들이다. 그 내용은 대부분 '지긋지긋한 집구석'(황지우의 시에서)과, '아무도 안 보면 내다버리고 싶은 식구'(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의 표현)에 관해서이다.  (집과 가족에 관한 이 표현을 꼭 한 번 써먹고 싶었는데 너무 잘 됐다.)

 '14. 아무도 무시 못할 몸' '23. 참기름에 볶은 밥'   같은 제목을 보라. 이런 식이다. "오늘 네 생일인데 뭐가 먹고 싶니?"하고 엄마가 물었는데 "참기름에 밥이나 볶아줘!"하고 대답했더니 엄마의 얼굴이 흐려졌다는 것이다. 평소 감상과 과장이 과도하게 들어간 글은 속이 느글거려서  절대로 못 읽어내는 나로서는 평소 이 작가의 냉소와 위악이 적당히 섞인 글이 기호에 맞았다.  그러니 작가의 자전적인 이 소설도 단숨에 읽힐 수밖에......

태어나면서부터 심각한 선천성 심장병을 가지고 태어나 왈가닥 자매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구석에서 골골거리다 열여섯 살에 수술을 받기 위해 미국으로 위장입양,  수술 후 한 줌 재로 돌아온 언니가 이 장편소설을 쓰게 한 동인이다.  그런 피붙이를 철저하게 외면하고 무시했다는 죄책감.  설령 작가에게 그런 언니가 실제로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 짧은 생애를 두 줄로 정리만 해도 가슴 먹먹해지는 그런 규모와 심도의 상처는 언젠가 제대로 정리가 되어야 한다. 자신의 손에 의해 서둘러 봉합되었던 무수한 상처들.

--장례식은 산 자를 위한 의식이다. 살아남은 자들이 스스로를 달래는 절차를 우리는 생략했다. 꽃도 촛불도 없었다. 우리는 언니를 매장하지 못했다. 독한 향이라도 피우고 식구끼리 얼싸안고 눈가가 짓무르도록 울음을 쏟았다면 지금쯤 언니는 희미해졌을 텐데. 우리는 우리를 치유하지 못했다.(261쪽)

작가를 떠올리게 하는 자전적인 성장소설이라면 은희경의 <새의 선물>도 그렇고  몇 편 있지만,  137개의 번호와 제목을 달아 짧은 산문 형식으로 써나간 이런 소설의 형식은 내가 알기로는 처음이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신선하다는 느낌을 주더니 중반을 넘다보면 다소 어리둥절해지는 느낌도 있다.(시인은 고육지책으로 이런 소설 형식을 취한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슬그머니......) 

아버지와 어머니, 자매들의 캐릭터가 너무나 생생하게 살아 있어, 바로  옆에 있는 사람처럼 팔을 뻗으면 만져질 것 같은 것도 이 책의 묘미.

아버지의 발길질에 밥상이 날아가던 어린 날을 혹시 슬로비디오로 만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으면 된다.  곰곰 생각해 보면 우리들 지나간 날의 생채기는 흉터가 되었다가 언제인지 모르게 희미한 무늬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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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antomlady 2005-05-31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아무리 아픈 상처라도 희미한 무늬로마나 남은 생채기는 지난 날을 증언하는 거겠죠. 최영미란 작가, 별로 안 좋아했는데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우연히 만났어요. 패셔너블한 다른 주부작가들을 보다 평범하고 소박한 노처녀 작가를 보니 아, 이 여자는 글로 먹고 사는 여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직업란에 주부라고 되어 있어서 잠깐 즐거웠다는.. ^^

깍두기 2005-05-31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일곱살 이전의 기억은 없는 사람인데, 어린 시절 기억 자세하게 하고 있는 사람 보면 신기해요. 난 왜 기억을 못할까?
1. 특별한 일이 없는 평범한 삶이어서
2.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무의식 속으로.....
저는 1번에 비중을 두고 있지요, 당연^^

히피드림~ 2005-05-31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나온 책이네요.
<흉터와 무늬>라는 제목이 맘에 듭니다.
출판사에 근무하신 경력이 있으셔서 그런가 작가들을
개인적으로 많이 아시는거 같아요.^^

로드무비 2005-05-31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깍두기님, 아마도 님이나 저는 그런가보아요.
전 기억력 안 좋은 거 별로 안 아쉬워요.
기억 못해서 아쉬울 일이 별로 없다는 건 조금 슬픈 일인가?^^
스노드롭님, 님도 보면 참 어지간히 돌아댕기셨구랴.
글로 먹고사는 여자, 멋져요.^^

로드무비 2005-05-31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unk님, 그래봤자 먼 빛으로 한두 번 슬쩍 보는 건데요.
아무튼 직접 얼굴이라도 한 번 본 사람의 자전적인 글은 더 생생하고 재밌어요.^^

날개 2005-05-31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시절 기억은 저도 없어요..ㅡ.ㅡ 그걸 다 기억하고 있는 사람보면 신기하더라구요..ㅎㅎ 참기름에 볶은 밥 같은 산문 제목은 어째 로드무비님을 연상케 하는걸요? ^^

로드무비 2005-05-31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날개님, 제 허름한 밥상 메뉴 제목 같죠?^^

2005-05-31 18: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5-31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잉? 속삭이신 님,
전 위악이 아니라 위선적인 인간인데요.ㅎㅎ

야클 2005-05-31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 잘 읽고갑니다. ^^

로드무비 2005-06-01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 멋진 리뷰라니, 고맙습니다.^^

플레져 2005-06-03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매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맛난 소설깜이죠.
님의 리뷰가 더 재미날 것 같다에 한표 ^^

니르바나 2005-06-03 0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엊그제 저의 동네 교보매장에 가서 열번쯤 들었다 놨다 하다가 놓고 나왔습니다.
박상륭의 소설 한 권 보는 것도 큰 무게로 압박해 오더군요.
로드무비님의 리뷰로 만나려 그리했나 봅니다.

로드무비 2005-06-03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 이 책 읽고 싶으시면 나중에 빌려드릴게요.
제 리뷰나 소장함 중에 보고 싶은 책 혹시 있으면 말씀하세요.
기쁜 마음으로......^^
(저는 박상륭 씨 책을 읽을 정신머리가 요즘 아니어서요.;;)
플레져님, 이 리뷰랄 것 없는 리뷰가 재밌다고 말씀해 주시니...^^

니르바나 2005-06-03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소장번호 68(한대수), 72(전제덕)이요.
깨끗이 보고, 듣고 돌려드릴께요.
시간되시는 대로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니르바나 2005-06-03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말씀하신대로 택배비 감안해서 두 권도 함께 부탁드릴렵니다.

내가없는 이 안 2005-06-08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기름에 밥이나 볶아줘, 라는 말은 왠지 로드무비님이랑 많이 닮았어요. ^^ 님, 왜 이렇게 생각에도 없던 책들을 읽게 만드는 거예요, 참...

로드무비 2005-06-08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안님, 언제 오셨다 가셨어요?
참기름과 계란프라이에 비비는 밥, 우리 전공인데, 그죠?^^
니르바나님, 접수했습니다.
오늘 부쳤어요.^^

마냐 2005-06-12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궁. 이 리뷰는 또 왜 놓쳤답니까....뒤늦게 와서 잘 보고 갑니다. 첨엔...어린시절 기억 없는 동지가 또 있군...뭐, 이런 잡념부터 시작해서 나중엔 참기름 냄새가 나는거 같아요...정말 제가 좀 산만하군여...^^;;
 
현태준 이우일의 도쿄 여행기
현태준. 이우일 지음 / 시공사 / 2004년 9월
품절


--태준이 형과 나는 언제나처럼 홍대 앞의 선술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형, 우리 여행을 가자. 그래 도쿄는 어때? 여행 다녀온 다음 그걸 책으로 만드는 거야. 그림도 그리고 일기도 쓰고. 엄청 재미날 것 같지 않아?"
"응, 재미있겠다."(9쪽)

널리 알려진 대로 코믹엽기 만화와 일러스트를 그리며 장난감 마니아인 두 남자, 술집에서의 수다가 현실이 되어 어느 날 나란히 도쿄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우일이 만난 도쿄, 차례.

고양이 버스, 책방 순례, 무라카미 타카시, 제멋대로 카이조, 로스트 인 트렌스레이션, 초밥을 맛있게 먹는 법, 도쿄에서 구입한 장난감 컬렉션 등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현태준은 프리마(노점의 일종)와 중고숍, 그리고 도시락, 식당이나 술집의 음식 소개를 열나게 하고 있다.

(**클릭하면 큰 사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뭔가 맘에 드는 아이템이 있으면 죽어라 그것 하나만 입는다. 아무리 집사람이 그것 좀 그만 입고 다른 것을 입으라며 챙겨줘도 반드시 그것만 입는 것이다. 더럽혀지면 저녁에 빨아 아침에 다시 입는다. (...)아무튼 그래서 우린 평소대로 입고 동네 목욕탕 가듯 훌쩍 떠났다.
(13쪽)

정말 마음에 드는 두 남자의 패션 철학이다.


문득 눈에 띈 중고가게에서 아내 선현경을 위해 낡은 치마를 한 벌 사고 좋아라 하는 이우일.

--나는 책방에만 들어가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내가 발견한 몇 곳의 책방은 정말 걸작이었다. 그림같은 책방이었다고나 할까.(...) 그 책방들은 너무나 주변의 풍광과 잘 어울렸으며, 자신의 개성에 걸맞은 책을 다루는 곳이었다.(35쪽)

책방 이야기는 듣기만 해도 코가 벌렁벌렁하고 가슴이 뛴다. 아아, 부러워라!

--혼자 도쿄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일주일 동안 있었는데 무인도에 혼자 버려진 기분이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곳이 많은 도시이고, 그래서 혼자도 상관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외로움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것 같았다.(76, 77쪽)

빌 머레이와 스칼렛 요한슨이 주인공이었던 영화 '로스트 인 트렌스레이션.(우리 나라에서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라는 제목으로 개봉.) 도쿄로 여행 온 두 남녀의 스쳐지나가는 듯한 사랑과 손에 잡힐 듯 전해져오는 외로움이 나에게도 아주 인상적인 영화였다.

--이곳의 모습이 내가 사는 곳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비로소 나의 여행은 시작된다.(121, 148, 149쪽)

현태준은 역시 별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동네 허름한 골목을 선호한다. 시모키타자와라는 동네, '그라바'라는 이름의 술집과 옷집 등 독특한 가게들이 몰려 있는 골목.

--청계천 벼룩시장의 분위기와 매우 흡사해서 찰칵. 인형, 골프채, 명품 핸드백, 교황 바오로의 사진까지 잡동사니 대행진이구나.(170, 171쪽)

<뿔랄라 대행진>과 <아저씨의 장난감 일기>의 저자답게 대한민국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장난감 마니아 현태준은 100엔 이내의 중고 장난감을 선호한다. 마음에만 들면 비싼 가격도 별로 개의치 않고 사는 편인 이우일과는 쇼핑 스타일이 많이 다르다.

--도쿄의 오빠들과 야키도리술집에서의 만남을 기념하며.(231쪽)

거구의 대식가답게 맛있는 음식이나 식당, 술집이라면 환장하고 달려드는 못 말리는 이 아저씨의 허름하고 맛나 뵈는 음식 소개 사진들도 빠트릴 수 없다.(머리에 두건을 쓰고 파란색 가로줄 무늬 티셔츠를 입은 이가 현태준.)

--멋쟁이 오빠의 놀라운 東京 특수 여행비법 대공개(266쪽)

도쿄에 친한 친구가 살고 있어 내심 그곳을 아지트 삼아 이런 여행을 꿈꾸기도 했는데 몇 주 전 친구 부부가 아예 짐을 싸들고 돌아왔다. 오호 통재라!

두 남자의 도쿄 여행은 중고 장난감 가게나 책방, 변두리의 도시락집, 선술집을 도는 게 다였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뒤를 쫓는 이 시시껄렁한 기행이 무척 재미있고 마음에 들었다. 그러면 된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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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antomlady 2005-05-30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과 별 상관없는 댓글인 지 모름) 도쿄 여행기에서 이우일이 손에 쏙, 들어오는 그 작은 책들 얘기할 땐 저도 얼마나 가지고 싶었는지 몰라요. 예전에 일본여행 갔을 때 무려 4천엔 상당의 비단으로 만든 북커버를 산 적이 있는데 사이즈가 너무 작아 할리퀸 로맨스 말고는 우리나라 책을 싸기엔 어림도 없더라구요 하하..

두 사람의 팬인 나로서도.. 로드무비님의 '그러면 된 거지 뭐'에 동감 ^^

하루(春) 2005-05-30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 싶어요. 근데, 오타 있어요. 아래에서 네번째 그림 옆 설명 '이곡--> 이곳' 아닌가 싶어서요.

nemuko 2005-05-30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족관찰기를 재밌게 읽은 탓인지 이것도 좋아보여요^^

로드무비 2005-05-30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무코님, 네. 이 책도 아주 재밌습니다.^^
하루님, 오타 가르쳐 주셔서 고마워요.^^
스노드롭님, 그러게 말입니다. 작은 책 이야기 흥미롭더군요.
오, 일본도 다녀오시고.
님의 쇼핑 목록도 궁금하구만요.^^

히피드림~ 2005-05-30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개인적으로 이름난 작가가 수필집 내는 거 별로 안좋아 하구요. 이런 만화가나 공예가(?)가 작품으로 말하지 않고 좀 시시해뵈는 여행기같은거 쓰는거 별로 안좋아해요. 이런 치사한 기획으로 탄생한 책들 보면서 일반인들도 나도 조금만 하면 책하나 쓰겠네라고 생각하게 될까봐 두렵습니다.
너무 엄숙주의라고 욕할 수도 있겠지만 누구든 글이라는 것은 제 살과 뼈를 깎는 고통속에서 나와야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소설가는 오직 소설로만 말하고 만화가는 만화만 성실히 써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에세이라는 건 그 작가들이 늙어서 적어도 예순이 넘은 다음에 한권 정도는 써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남이 경험하고 내가 읽는 여행기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서울갔다온 사람이 아무리 얘기해주면 뭐합니까 본인이 한번 다녀오는게 낫지.
오해 마세요. 저는 이런 종류의 책이 싫다는 것이지 로드무비님의 리뷰가 싫다는 것은 아니니까요. 도서관에서 빌려읽으면 모를까 제돈주고 살 일은 없으니까 여기서 이렇게 포토로 보고가니 좋네요.^^

릴케 현상 2005-05-30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좋아:)
근데 혹시 잊은거 없수?

로드무비 2005-05-30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자명한 산책님!
잊은 거 있습니다.
내일 꼭 보낼게요.
그런데 좋다고 하심시롱 뭐 잊은 거 없수꽈?ㅎㅎ

punk님, 저도 그런 엄숙주의 좋아합니다.
그런데 산문을 훨씬 재밌게 잘 쓰는 시인이나 소설가를 가끔 봅니다.
여튼 저는 제가 읽어 재밌고 좋기만 하면 됩니다.
소설이든 시든 여행기든 여타 잡문이든 아무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런 책들 포토리뷰 올리는 이유가 뭐게요?
저야 워낙 좋아하니까 책까지 사서 보지만 그럴 의사가 없는 분들
사진으로나마 잠시 웃으며 즐기시라고요.ㅎㅎ

히피드림~ 2005-05-30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말도 맞습니다. ㅎㅎ
세상만사 정답이 없는 법이고, 뭐든 상대적이니까요.
결국엔 많은 것들이 취향의 문제로 낙찰되기 마련입니다.
로드무비님, 제가 읽어보지도 않은 책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거 잘 들어주셔서 고마워요.
제가 좀 이렇게 신중치가 못하네요.^^
어제 하루종일 들어왔었답니다.근데 주말이라 어디가셨었나봐요.
님서재들어오면 재밌거든요.

로드무비 2005-05-30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방이 재밌다니 기분이 좋습니다.
어제는 친구 생일 축하해주러 우리 가족이 출동했어요.
밤늦게까지 실컷 마시고 먹고 떠들고 왔습니다.^^

날개 2005-05-30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토론의 장이 지나고 난 뒤의 댓글 달기는 정말 어려워~~~ㅡ.ㅡ
하여간 재밌겠어요...^^*

로드무비 2005-05-30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배드민턴 여사님 납셨다!
날개님, 오늘 낮 올린 포토리뷴데요?
요즘은 리뷰든 페이퍼든 인적도 빨리 끊겨요.^^;

Phantomlady 2005-05-31 0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인적을 저라도 쭈욱~ 이어드릴게요. 제 쇼핑목록이 궁금하다구요? 하하, 기억날까 모르겠네(라고 하면서 열심히 굴리고 있음)

썸머소닉이라는 락 페스티벌을 보러 갔을 때라 쇼핑은 별 게 없어요 우선 HMV는 너무 비싼 관계로 우리나라에선 구할 수 없는 CD 딱 한 장만 샀어요. 그리고 중고레코드점에서 몇 장의 시디를 더 사구요. 비틀즈 마니아 샵이 있는데 거기서 퍼즐, 손거울, 열쇠고리를 샀어요 열쇠고리는 친구에게 선물로 주구요. 도쿄 여행기에도 나오는 곳들이죠~

그리고 블라이스 인형을 샀어요 큰 걸 사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서 작은 걸루.. 1500엔 밖에 안 하는 옷도 하나 샀구요.. 그리고 책과 관련된 쇼핑은 비단 북커버와 책깔피,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읽은 패션잡지 정도.. 쓰고 나니 정말 별 거 없네요 ^^;

로드무비 2005-05-31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노드롭님, 락 페스티발을 보러 일본에......멋집니다.
비틀즈 마니아 샵 꼭 가보고 싶군요.
블라이스 인형 무지 비싸던데 어느 놈으로 사셨는지
사진 찍어 한번 보여주세요.
비단 북커버도......^^

플레져 2005-06-03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이우일씨와 선현경씨가 그렇고 그런 사이였어요? 흐미~ ㅎ
이 만화는 좀 땡기네요.

로드무비 2005-06-03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플레져님 그것도 몰랐어요?
얼마 전 가족관찰기가 알라딘을 한 바퀴 돌았는데도?@,.@

실비 2005-07-03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좋아요.. 약간 외국에 대한 동경이있어서 꼭 한번 가고싶답니다. 엄마께서 외국나가는거 자체를 반대하셔서 지금은 보류중이지만.. 자세히 찍으셨네요
추천하고 퍼갈게요^^

로드무비 2005-07-10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비님, 고맙습니다!^^
 
출가 - 마음을 찾아서
글.사진 윤영관.이민우 / 동아시아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오래 전 무심코 채널을 돌리다가 스님처럼 머리를  빡빡 민 한 중년여성의 클로즈업 된 얼굴에 시선을 빼앗겼다. 신현임(48세)이라는 여성. 오대산 월정사에서 한달 동안 단기 출가를 체험하고 있는 중이라고 하는데 시간의 얼룩이 느껴지는 그 얼굴이 너무 좋았다. 나는 그의 수양이나 신심이 얼마나 깊고 심오한 것이든  인간사 모든 고뇌에서 완전히 해방된 듯한  말간 얼굴을 좋아하지 않는다. 상처와 고뇌와 욕망이 노루 꼬리만큼은 남아 다소 복잡하고 아득한 눈빛을 가진 사람의 얼굴이 좋다. 그녀의 얼굴이 바로 그랬다.

이 책은 바로 그 프로, 오대산 월정사에서 연례행사로 이루어지는 일반인들의 단기출가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한 프로듀서와,  '묘명'이라는 이름으로 그곳에서 출가자들과 함께 한달 동안 행자 노릇을 하며  사진을 찍은 한 카피라이터의 담담한 기록이다.

깊은 산속 암자에서 방을 하나 얻어 한두달 간 틀어박혀 가지고 간 책이나 실컷 읽고, 잠이나 자고, 그것도 싫증나면 산보를 나서는 생활,  나는 아주 옛날부터 그런 생활을 꿈꾸었다. 어쩌면 한번쯤 꼭 가보고 싶었던 인도나 네팔에 가지 못한 것보다 그런 생활을 해보지 못한 것이 내게는 더 아쉽게 느껴진다. 하지만 어느 날부턴가 나는 더이상 내 영혼의 암자를 꿈꾸지 않게 되었다. 내가 서재활동을 하느라 풀방구리 쥐 드나들듯 하루에도 몇 번씩 기어드는 이 방, 책으로 가득 쌓인 내 조그만 방이 나의 암자이고 베이스캠프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

내 절친한 여고 동창이 오래 전  마인드컨트롤을 배운다고 2박 3일인가  3박 4일 양산  모처에서 단기코스를 밟은 적이 있다. 그때 룸메이트로 배정받은 여성이 낯이 많이 익어  자세히 보니 시인 강은교였다고  자랑을 하는 것이었다.  눈빛이 아주 형형했지만 뼛속 깊이 외로워 보였다고 국문학도인 내 친구는 문학도답게 시인을 그렇게 표현했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이 배우려고 한 것이었다니 너무너무 궁금해서 나도 어느 날 부산일보 강당에서 열린 마인드컨트롤 설명회에  참석했다. 그런데 강사의 설명을 들어보니 마인드컨트롤은 별게 아니었다. '아아, 오늘 날씨가 춥고 비까지 내리니 감기에 걸리겠는걸?'하고 생각하면 그 사람은 꼼짝없이 감기에 걸리고 만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마음에 따라 인생 모든 일이 결정된다는 것. 그때나 지금이나 시건방지기 짝이 없는 나는 그 말 한마디에 마인드컨트롤을 모두 마스터했다 생각하고 유료 강습은 신청하지 않았다.

자신의 마음자리를 찾는 모든 여행이 출가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때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기웃거린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잠자리에 누워 낮에 만난 아버지와 딸(아버지가 딸을 무지막지하게 폭행하는 장면을 산보를 하던 두 행자가 보고  뜯어말렸다)을 떠올린다. 그들은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서로에게 마음을 드러내 보이기가 두려웠던 것이다. (...)가장 훌륭한 선방과 가장 험악한 저잣거리가 겹친다. 한 스님이 강의 시간에 스님들이 쌀쌀맞아 보이도록 당당하고 꼿꼿한 이유는 자신이 부처임을 깨닫고, 자신이 있을 곳이 어딘가를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신이 있는 곳을 받아들이고, 제 자리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극락이라 여기기 때문이라 했다. 또 다른 스님은 절에 오면 부처를 만나고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가는 것이라 한다.(119쪽, 묘명 행자의 기록)

열네 살 중학생 소년부터, 여대생,  장성한 두 딸을 둔 중년여성,  70세의 뚜르르한 기업의 부회장 등 그들이 이 바쁜 세상에서 하던 일을 중단하고  한 달 동안 깊은 산사에서 스님들과 똑같은 생활을 체험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지금의 나를 벗고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도 아직 그런 소망은 아주 쬐끔 남아 있다. 하지만 나는 아마도 내가  어렵사리 구축한 이 조그만 방이 주는 쾌락과 가짜 평화에서 좀체 벗어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직 멀어도 한참 멀었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는데, 괜시리 눈물이 찔끔찔끔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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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드림~ 2005-05-28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런 단기출가 프로그램 한번 경험해 보고 싶네요. 하지만 제가 가있는 동안 제 가족은 어쩌죠? 여하튼 아줌마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려고 해도 걸리는게 너무 많다니까요. ^^

클리오 2005-05-28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몇 년전, 송광사에서 일주일간 하는 산사체험을 신청한 적이 있었어요.. 7기까지인가, 여름 내내 진행되는데, 놀라운 것은 그것이 전부 마감되어 저는 못갔다는 것이죠... ^^;; 마음의 평안을 열망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가봐요...

날개 2005-05-28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직 멀었나 봅니다. 이 안이한 생활에서 아직 벗어나고 싶지 않은걸 보면..^^;;

balmas 2005-05-28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잘하셨어요.
암자 가셨으면, 한 달 넘게 로드무비님 서재가 터~엉 빌 것 아녜요?
말도 안돼!!

kleinsusun 2005-05-29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 여름휴가에 7박 8일간의 명상수련에 들어갔었어요. 3일만에...뛰쳐나왔어요.
하루 종일 좌선을 하고 앉아 있는데 온갖 잡생각만이 드글드글...
그때 간절했던건 콜라와 맥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ㅋㅋ
몸만 산사에 가있다고 달라지는게 없더라구요.
마음을 내리지 않는다면...

로드무비 2005-05-29 0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그 페이퍼(맞죠?) 정말 재미나게 읽었는데.
저라면 이틀을 못 넘겼을 것 같아요.
아무튼 어떤 간절한 염을 가지고 깊은 산속을 찾는 이들이
아름답고 애달프게 보여요.^^
발마스님, 달마스님과 좀 자주자주 모습 보여주세요.
두 분이 활약하지 않으시니 기운이 빠지네요.(바쁘세요?ㅎㅎ)
아유, 그나저나 발마스님 참 예쁘게도 댓글을 쓰셨네요.^^
날개님, 우리 함께 위로하며 그냥 이대로 살아요.^^
클리오님, 오, 님도 신청을 하셨었군요.
송광사도 참 좋을 것 같아요. 하긴 어딘들...^^;;
펑크님, 우리 주부의 역할이 막강하죠?
자신의 쓸모있음에 만족하며 당분간 이곳에서 버텨보자고요.^^

하루(春) 2005-05-29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프로그램 작년에 봤어요. 신현임씨도 기억나요. 얼굴까지.. 엠비씨에서 해줬을 때 꽤 인기 많았던 걸로... 나레이션이나 BGM 없이 그냥 그 오대산 월정사의 단기출가생들의 소리로만 채워졌던 그걸 기초로 쓴 책이군요.

비로그인 2005-05-29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 때문에, 그 눔의 술 때문에 저두 쪼매 힘들 거 같긴 한데, 그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그냥 책을 읽을 수 있다면 훨씬 잘 견딜 수 있을 거 같아요. 전 갠적으로 눈 맑은 사람, 무서워해요. 제 안에 있는 열등의식, 그러니까 어떤 내보이기 싫은 조잡함을 꿰뚫어보는 듯해서요.

로드무비 2005-05-30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이님, 새벽 예불이나 108배등 장난이 아니던데요?
전 참선보다는 그냥 뒹굴뒹굴을 택하겠습니다.
그리고 호쾌한 복돌이님께 무신 조잡함이 있다는 말씀입니까요.^^
하루님, 전 중간부터 봐가지고요.
한 번 더 보고싶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월정사 너무 멋졌죠? 거기 참석한 사람들도...^^

플레져 2005-06-03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저 그 프로 봤어요. 한 사람이 부처가 되고 한 사람이 절을 할 때 그 중년의 여자분이 몹시 울었었지요. 이 책 사야겠어요. 살 때 땡스투 누를게요 ^^
참, 스님의 그 자세가 그러한 연유로 꼿꼿하신거군요. 흠...

로드무비 2005-06-03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책보다 그 프로그램을 한 번 더 보고싶군요.
중간부터 봤거든요.^^
 
빨간 양철지붕 아래서
오병욱 지음 / 뜨인돌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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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사진을 찍어 올린다. 화가의 얼굴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이다.

-내가 아는 오병욱은 특별한 귀재이다. 그는 화가이기 전에 시인이고 철학자이며 사진가이고 음악가이자, 일찍부터 도시를 떠나 자연 속에 머무르면서 자연의 언어와 빛깔 그리고 자연의 냄새와 소리를 익힌 사람이다.(화가, 김병종)

(**클릭해서 큰 사진으로 보시면 좋아요.)

--양철지붕집이라 여름엔 덥다. 그래도 우리집에 다녀간 사람들은 여름이 제일 좋단다. 양철지붕 아래서 듣던 소나기 소리 때문일까?(17쪽)

화가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1990년 5월, 할머니 혼자 살고 계시던 경북 상주의 빨간양철지붕 집으로 기어들었다. 식솔을 이끌고......

우편함을 하나 대문간에 매달았더니 딱새가 알을 낳았다. 딱새 집이라 크게 써주고 그 옆에 새로 우편함을 하나 달았다.

--새끼가 날아오르기 좋도록 팔을 쭉 뻗고 가만히 손을 폈다. 손바닥을 차고 날아오르는 순간에 약한 무게감과 가슬가슬한 발톱을 느낄 수 있었다. 좋겠다. 쟤네들은 하루만 연습해도 저 정돈데 우린 이게 뭔지 모르겠다.(29쪽)

사진은 양철지붕집의 어둑신한 방. 목침을 베고 늘어지게 한숨 자도 좋겠고 하염없이 창밖을 내다봐도 좋겠다.

--상주 시내에 있는 커피가게 주인한테 삭발한 전시 포스터를 한 장 주었더니 다음날 바로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놓았다. 재즈 뮤지션들 사진하고 잘 어울린단다.(34쪽)

'마음 한없이 고요하여라. 그 위에 향기로운 일감이 오다.'
이중섭이 원산 화실에 써 붙였다는 이 말은 빨간 양철지붕집 화가의 마음속 등불이 되었단다.

왼쪽이 암컷 '쏭(Song)'이고 오른쪽이 수컷 '칸(Khan)'이다. 여름엔 개들이 더울까봐 등나무 아래로 개집을 옮겨준다. 쏭이 낳은 강아지 네 마리 이름은 도,레,미,파. 짧고 간단하고 기분좋은 이름이다.

--우리는 시골생활의 이런저런 단점과 불편을 뜻밖에도 쉽게 받아들였다.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우린 그저 '잠깐 소풍을 나온 것처럼 가볍게' 살았던 것이다. 나는 내가 그림만 그릴 수 있다면 다른 모든 건 웃으며 받아들일 작정이었다. 중요한 한 줄기만 확보되면 나머지는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122쪽)


--모 국립대학엔 가서 부임만 하면 된다고 했지만 나는 교수보다 백수가 좋다고 했다. 난 지금도 그림 이외에 다른 직업을 갖는 일을 부끄러워한다. 그 결벽 때문에 내 인생은 힘들어졌다.(124쪽)

한쪽 벽에 책이 가득 쌓여 있고 기타가 나뒹구는 화가의 널찍한 방. 방문 창호지 하나도 어쩜 저리 멋들어진지......

'나의 희망' . 1998년의 수해로 인근 폐교 화가의 작업실 그림들이 몽땅 떠내려가고 망가졌다. '나의 희망'이라는 제목 덕이었는지 단 한 점 멀쩡하게 보존된 그림.

"저...... 건너편 초등학교에서 그림 그리는 사람인데요. 이번...... 그림이 떠내려가서......피해신고를 하라기에......"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그러자 면사무소 직원이 대뜸 이렇게 말했다.
"아, 그런 거는 나중에 면사무소로 직접 나오세요. 그리고 집이나 논밭이나 축사 같은 부동산이 보상 대상이지, 그림이나 돼지 같은 '동산'은 보상 대상이 아닙니다."
그림이나 돼지? 차라리 잘 됐다. 일단 빨리 여기서 도망치자.(97쪽)

'내 마음의 바다.' (2004, 200호 캔버스 두 개의 그림)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날이 있다. 그런 날 이 책 속의 화가를 만나면 좋으리라. 화가가 직접 찍은 그의 시골집 풍경과 이러저러한 사진들과 유려한 글이 위로가 될 것이다.


(**이 책을 낸 출판사와 아주 약간의 관계가 있지만 책이 너무 좋아 포토 리뷰로 당당하게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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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5-05-23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 두 마리 앉은 사진이 젤 좋아요. 시원하고 은밀해 보이는 나무그늘 아래 개집, 개집 앞에 우아하고 꼿꼿하게 앉은 두 마리 개... 근데 책을 누른 저 빨간 건 뭘까 하는 분위기 깨는 궁금증이... ^^

Phantomlady 2005-05-23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저 표지의 담배 피는 대머리 아저씨가 화가예요? 스타일 멋지시네~~ 이런 멋진 분인 줄 알았으면 책을 살 껄 그랬나.. 저도 다음에 사기로 하고 서점에 서서 후다닥 책을 읽었는데 (..)(") '커피 가게 주인한테 삭발한 포스터' 어쩌구 하는 글과 함께 사진이 실려서 그 커피 가게 주인인가 했다는 ^^;

강남의 유명한 입시학원을 물려준다는 것도 사양했다니 그 예술적 결벽성이 대단할 따름입니다 예술가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닌 거 같아요..

urblue 2005-05-23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면, 세상엔 재밌게 사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

인터라겐 2005-05-23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를 마다하는 사람이 진정 챔피언입니다... 뭔소리? 사람은 물욕에 약한데... 저도 저런 마음가짐을 배워야할터인데...

로드무비 2005-05-23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라겐님, 엊그제 노래방 가서 우리 남동생이랑 주하가 불렀는데...ㅎㅎ
책읽고 잠시잠깐 그런 마음을 품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습니다.^^
블루님, 저 화가 너무 매력적이에요. 글도 얼마나 잘 쓰는지...^^
스노드롭님, 서점에 서서 도대체 몇 권의 책을 읽고 나왔능기요?
저도 저 포스터 가지고 싶어요.
그리고 예술가, 그거 아무나 못하죠.^^;
숨은아이님, 새끼들 사진도 있는데 올릴까 하다가...
님 이 사진 이 책 좋아해 주실 줄 알았구먼요.^^
그리고 저 빨간 건 고래 모양이 뻥 뚫려 찍히는 뭣인데요.
이름이 기억 안 남.;;

chika 2005-05-23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전에도 책 주문하고 왔는데.. 정말 서재질이 늘어나면서 느는건 지름신의 강림...
ㅠ.ㅠ

로드무비 2005-05-23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카님, 아무리 책이 많이 쌓였더라도 이 책 꼭 사세요.ㅎㅎ
땡스투 누르시고요.^^

2005-05-23 16: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5-05-23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워요..빨간 양철지붕..근데 쥔장의 쌍라이트가 너무 눈부셔요! 게다 저렇게 책을 쌓아놓으면 낭중에 보고 싶은 책을 빼내려 할 때, 저거 다 무너지는데..

히피드림~ 2005-05-23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이나 돼지"? 언제부터 그림과 돼지가 한 문장 안에서 서로 다정하게 동급이 됐죠? 화가자신도 면사무소에 찾아간 자신이 참 순진하게 여겨졌겠네요...

로드무비 2005-05-24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unk님, 수해로 집을 잃은 촌로들 앞에서 화가는 자신이
그림 그리는 사람이란 걸 부끄러워하더군요.
그 심정을 잘 알 것 같았습니다.
복돌이님, 늦게라도 엽서 내놓으세요.
ㅎㅎ 쓰고 싶으실 때...공선옥 씨 책 선물은 님께 아직 유효합니다.^^
속삭이신 님,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저도 무지 신기하네요.^^

잉크냄새 2005-05-30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철지붕위의 소나기 소리...찜통같은 오후, 그 말만으로도 시원해집니다.

로드무비 2005-05-30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좋아하실 줄 알았네요.ㅎㅎ
양철지붕 아래의 서정을 님말고 누가 또 그렇게 잘 알겠습니까요.
(오랜만에 뵈니 반가워서 아부가 절로 나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