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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 오브 락 - 할인행사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 잭 블랙 외 출연 / 파라마운트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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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장의 사고 싶은 DVD가 늘었다.

<스패니쉬 아파트먼트>와 <러브 액츄얼리>에 이어 <스쿨 오 브락>은 비디오를 보고 나서,

그리고 팀 버튼의 <빅피쉬>는 아직 보지 않았지만 무조건 갖고 싶은 작품에 속한다.

오늘 낮 드디어 <스쿨 오브 락>을 보았다.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의 매력적인 뚱보배우 잭 블랙 주연, 감독은 리차드 링클레이터다.

3년째 빈대붙어 살고 있는 친구네 집. 그 동거녀에게서 집세라도 보태라는 눈총을 받고 있는

무명 락밴드의 기타리스트 듀이 핀.  설상가상 자신이 조직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밴드에서도

오버하는 꼴을 봐줄 수가 없다며 방출당한다.

어느 날,  임시교사인 친구에게 걸려온 전화를 대신 받고 교사를 구한다는 말에 무턱대고

그 학교에 찾아가는데... 호레이스 그린 초등학교는 엄격한 교풍에다가 학비가 비싼 대신

학부모들의 입김이 무지 센 그런 학교였다.

그런데 이 엉터리 가짜교사가 열 살짜리 아이들을 쑤석여 학교 몰래 락밴드를 조직하고 대회에

나가는 그 과정이 흥미롭다 못해 엉덩이를 들썩이게 하는 것이다.

클래식 연주만 하던 꼬마들이  '세상의 잘난 것들에게 저항하는'  락 정신을 일깨우고,

밴드의 연주자든 조명 담당이든 허울좋은 매니저든 한 가지씩의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또 충분히 감동적이다.

함께 락 밴드의 일원이었다가 자신에게는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일찌감치 꿈을 접었던

주인공의  꺼벙한 친구와, 뒤에서 손가락질을 받는 호레이스 그린 초등학교의 여자 교장선생도

참 인상적이었다.

"나도 옛날에는 꽤 재미있는 인간이었다구요.  이렇지는 않았다구욧! "

좋아하는 음악과 맥주 한잔에 마음을 열고 임시교사 듀이 핀에게 푸념을 늘어놓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가슴 한편이 뻐근해 왔다.

요즘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주인공보다 조연에게, 또 지나가는 사람 1,2,3이 더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나는 아직 버릇없는 청춘을 충분히 더 구가하고 싶은데 말이다.

<스쿨 오브 락>은 잭 블랙이라는 배우의 재능과 매력을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그리고 꼬마 드러머 프레디나  백싱어 토미카, 항상 주눅들어 있던 아이 잭, 영악한 매니저 섬머 등을

통해 그것이 어떤 자리이고 역할이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한다.

'락은 이유도, 리듬도 없다'는 말이 몇 번인가 나오는데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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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frog 2004-08-01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 이거 대여점 갈 때마다 없어서 아직도 못 보고 있어요.. 빈 케이스만 갖다둔 거 아냐?, 하고 엄한 소리를 해보기도 하고.. 흠, 님 리뷰를 보니 더 보고 싶어요..^^

로드무비 2004-08-02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붕어님, 기대하고 보면 실망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이 영화는 안 그렇답니다.
우리 금붕어님도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재밌게 보셨는지 궁금하네요.^^

superfrog 2004-08-02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님!! 오늘 들어오는 길에 드뎌! 스쿨 빌렸어요!! 사랑도..는 제목 땜에 별로 안 땡겼는데 좋은가요? 사랑도.. 도 접숩니다!! 휴가 때 빌려볼게요..ㅎㅎ

플레져 2004-08-02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이 영화 접수!

내가없는 이 안 2004-08-02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빅피쉬 봤는데 볼 만합니다. 우선 팀버튼 감독의 작품이니 영상미 하난 말해 뭐하겠어요...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나 감상이 절절한 사람에겐 더 감동적일 영화지요. 님의 글 읽고 나니 저도 이 영화 입력해놓아야겠군요... ^^

로드무비 2004-08-02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무지 재밌어요.
여자들한테 차인 주인공이 일일이 그 여자들 만나서 물어봅니다.
나를 왜 찼냐고...
레코드 가게가 배경이고 잭 블랙은 불량점원이죠.
플레져님, 이안님도 오셨네요.^^

마냐 2004-08-07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잭 블랙이 그 영화에도 나온답니까? 저 '스쿨 오브 락'보고 뻑 갔잖아요.
더이상 유쾌할 수 없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그런 영화라고..저는 강추했더랬죠...^^

로드무비 2004-08-07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 반갑습니다.
어쩌면 <사랑도 리콜이...>에서 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줘요.
보시고 너무 재밌으면 한 줄짜리 감상이라도 남겨주세요.^^

겨울 2004-08-12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잭 블랙의 최고작은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가 아닐까요? 패럴리 형제의 작품인데 걸작이랍니다.^^

로드무비 2004-08-12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그가 바로 잭 블랙이었군요.
그런데 왜 이렇게 이미지가 다를까요?
시간 날 때 한 번 더 빌려봐야겠어요.^^
 
시간의 주름 - 3단계 문지아이들 13
매들렌 렝글 지음, 오성봉 그림, 최순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5월
평점 :
절판


"왜?"라고 물으면 안되고 '사랑'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면 체포되는 나라가 나오는 SF영화가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갑자기 그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

매들렌 렝글의 환상동화 <시간의 주름>은 오래 전 비디오로 본 그 영화를 떠올리게 하였다.

오늘  나는 오랜만에  짧지 않은 장편동화 한 권을 두 시간 만에 해치웠다. 그것도 푹 빠져서...

 

천재과학자를 엄마아빠로 둔 열두 살의 메그는 못생기고 공부도 못하는 자신을 돌연변이라고 생각한다.

메그에게는 쌍둥이 외에도 다섯 살짜리 동생 찰스가 있는데 녀석은 상태가 더욱 심해서 말도 잘 못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

모종의 연구(미 항공우주국과 관련된)를 위해 집을 떠났던 아빠는 언젠가부터 연락이 두절돼 동네

사람들은 메그의 집을 손가락질하며 수근거린다. 이것이 또한 스트레스인 메그.

메그와는 달리 우등생인데다가 학교 농구부에서 활약하여 인기도 좋은  편인 캘빈이 어느 날 우연히

메그의 집에 놀러오는데, 그들은 순식간에 같은 종류(스스로를 별종이라고 생각하는)의 인간임을

알아차리고 친구가 된다.

이 조금 이상한 아이들, 찰스와 캘빈, 메그가 그날밤 숲에 산책을 나갔다가 마녀의 오두막 가까이에서

저게뭐야, 누구야, 어느거야라는 이상한 이름을 가진 아줌마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런데 저게뭐야, 누구야, 어느거야라는 이름의  아줌마들이 하는 말은 90퍼센트가 유명한 문인들의 작품

속에서 인용한 것들이다. 그것이 또 이 책에 묘한 활기를 부여하고 있다.

"코메 테 피치올 팔로 아마로 모르소."(단테, 사소한 잘못이 얼마나 우리에게 크나큰 고통을 주는지...)

"운 아스노 비에호 사베 마스께 운 뽀트로."(스페인 소설가 폐레스 감도스, 늙은 당나귀가 젊은

 망아지보다 많이 안다.)

"핑크 세룬트 아니미, 라로 에트 페르파우카 로켄티스."(호라티우스, 행동을 적게 말은 더욱 적게 하라!)

아줌마들의 수다를 듣고 있던 아이들 중 다섯 살짜리 찰리가 버럭 짜증을 낸다.

"특히 누구야 아줌마, 그 말끝마다 인용 좀 안하면 안돼요?"(무서운 아이다!)

그러자 다른 두 아줌마가 찔끔하며 나서서 거든다.

"자기 말로 얘기하는 것보다 인용하는 게 더 편한 걸 어떡해!"

"이건 나름대로 우리 방식의 유머라구."

평소 나의 의견이라 할 만한 게 없어서 걸핏하면 책에서 인용을 잘하는 나의 어깨도 덩달아 움찔한다.

 

신화 속처럼 날개 달린 동물로 변신한 저게뭐야 아줌마의 등에 올라탄 아이들은 시간의 주름을 통과,

낯선 행성들을 거쳐 아빠가 갇혀 있는 카마조츠 행성에 도착하는데...

이 흥미로운 동화는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꽤나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다름'에 대한 고찰, 인생의 행복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의문을 노골적으로 계도하거나 설명하지 않고

적절하게 이야기들 속에 배치하고 있는 것이다.

중용부인의 유리구슬에 비친 지구와 또 그 곳 어느 모퉁이에 살고 있는 자신의 엄마들을 지켜보며

아이들은 우주 속의 한 점에 불과한 자신의 존재를 깨닫는데 여기서 중용부인의 말이 인상적이다.

"그게 나의 제일 곤란한 문제예요. 애착심 말예요. 누굴 좋아하지만 않는다면 난 항상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텐데..."

(나에게 있어 애착심은 나이 마흔을 넘기면서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다. 어쩌면 영원히

해결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때때로 나를 엄습하여 전율케 한다.)

아이들과 더이상 동행할 수 없게 되자 저게뭐야 아줌마는 아이들에게 금과옥조의 말을 남긴다.

"알비센트 빈 이히 니히트. 도흐 비엘 이스트 미어 베부스트."(괴테, 나는 많은 것을 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알지는 못한다.)

이 말은 순수하지만 자기만의 세계가 확고한 찰스에게 저게뭐야 아줌마가  따로 당부하는 말처럼 지나친

자존심과 오만을 경계하라는 것이다.

아이들끼리 도착한 다음의 이상한 나라는 모든 것이 규칙적이고 사람들이 로봇처럼 동일한 리듬하에

움직이고 있었다.

그 나라를 통제하는 무시무시한 존재는 붉은 광채의 눈을 가진 '그것.'

 그의 앞에 서자 부들부들 떨면서도 캘빈은 자신도 모르게 어떤 책의 구절을 인용한다.

"두려움 그 자체 말고는 두려워할 게 아무것도 없다"고.(파이팅, 캘빈!)

인생의 모든 고통과 괴로움을 없애주겠으니 자기 밑으로 들어오라고 붉은눈이 아이들을 꼬시는데

다섯살짜리 찰스가 냉큼 나선다.

"고맙지만 행복이든 불행이든 우리 스스로 결정을 내리겠어요." (한마디로 입을 다물라는 소리다.)

똑똑한 만큼 과도한 자만으로 결국 붉은눈에게 장악되는 찰스, 어렵사리 여러 행성을 거쳐 찾아왔더니

모든 문제를 해결하긴커녕 무능하기 짝이 없는 존재인 아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아이들의 이 모험기에는 가족관계 등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사유들로 가득하다.

결과는 해피엔딩.

누구야아줌마들이 아이들에게 준 마지막 열쇠는 결국 사랑이었던 것이다.

 너무 안이한 결말인  듯하여 책의 마지막 장을 덮기가  심히 아쉬웠는데 누구야아줌마들의 수다만

 해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미련을 버리고 탁 책장을 덮었다.

'인생은 소네트와 같다'고 왜 제목을 잡았는지 궁금하신 분이라면 이 책을 꼭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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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7-25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자로 시작되는 것 같은데...장 뤽 고다르 거였던가?
그 영화 제목 가르쳐주신 분께는 선물 드릴게요.
선물은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음. 어쨌든 예쁜 것으로...ㅎㅎ

프레이야 2004-07-25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영화는 모르겠구요, 이 책 저도 참 좋아하죠. 몇년 전이었는데, 다시 한번 보고 싶어지네요. 님의 글이 하도 재미나서요. 인생은 소네트와 같다~~ 저도 아직 애착심을 버리지 못하고 사니 제 맘의 일렁임을 주체할 수 없네요^^ 편안한 일요일 보내세요.

로드무비 2004-07-25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반갑습니다.
이 책 참 재미나죠?
님처럼 이름을 서재 전면에 내세우는 것도 좋군요.^^
그건 그렇고 사는 게 정말 장난이 아니에요!(에고, 무슨 소리를!)

로드무비 2004-07-25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방금 영화 제목이 생각났어요.
<알파빌>.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하려니 무안하네요.^^
그리고 조금 전 다음에 들어가 검색해봤습니다.
감독 장 뤽 고다르 맞네요.
아아, 난 아직 녹슬지 않았어!

깍두기 2004-07-26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저 왔어요. 코멘트가 안 달려서 썰렁하다기에 달려왔더니 뭐예욧! 이렇게 유명서재가 되어 있으면서!
근데, 흑흑, 저도 이 책 읽었는데, 재미없어하며 읽은 기억이ㅠ.ㅠ 다시 읽어 볼까봐요.(저는 특히 그 안이한 결말에 알레르기가ㅠ.ㅠ)

starrysky 2004-07-27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주변의 열렬한 찬사와 추천에 힘입어 읽었었는데 의외로 실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전개 과정이 그다지 흥미롭지도 않았고 캐릭터들도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이라 독창적이지 않은 데다가 그넘의 결론이라니.. 너무 기대를 많이 했었는지도 모르지요. 아니면 혹시 그 사람들은 원서로 읽고 저만 번역본을 읽었던 걸까요.. -_-;;;

로드무비 2004-07-27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깍두기님, 스타리 스카이님
저는 이상하게 이 책이 재미있었어요.
아줌마들 떠드는 것도 유쾌했고요.
결말이 너무 이상했지만 책 읽는 내내 즐거웠으니 별로 불만없어요.
사람마다 다 다르니까...
그리고 같은 책을 읽어도 그날그날의 기분 등에 따라 다르게 읽혀지지 않나요?^^
어쨌든 저는 요즘 님들은 자주 만나니 기분좋아요!

마태우스 2004-08-03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이주의 마이리뷰 당선되셨어요. 축하드리구요, 참고로 님과 저는 이주의 마이리뷰 동기가 되었습니다. 반가워요!

로드무비 2004-08-03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저도 무지 반가워요.^^

로자 2004-08-03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비무비님, 축하해요.
모임 같이 하는 언니가 언젠가 추천해준 책인데
님의 리뷰 보고나니 읽고 싶다는 생각이 팍팍 드네요.
(사실 그 언니 말 듣고는 그런 생각이 덜 했거든요^^)
상품에 눈이 멀어 서재 콘테스트에 나갔는데요.
마감일이 가까워 질수록 멋진 서재가 계속 올라오지 뭐에요.
알라딘에서 책도 계속 사고 했는데 혹시 뽑아주지 않을까하는
헛된 기대는 그 서재들 구경하면서 사라졌답니다.
다음에도 좋은 리뷰 기대할게요.

로드무비 2004-08-04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자님, 로자 룩셈부르그 책이 세 권이나 있는 서재는 아마 드물 거예요.^^
제가 줄거리를 너무 자세하게 써서 읽을 때 재미가 반감될까 그게 걱정되네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 할인행사
홍상수 감독, 성현아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그제 낮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후배를 만나기로 했는데 집에 데리고 가면 저녁을 먹을 수 있느냐고.

  나도 몰래 빽 소리를 질렀다.

  더워죽겠고 바빠죽겠는데(사실은 알라딘 서재 돌아다니느라고...) 밖에서 먹고 오라고.

  "알았어, 알았다고. 그런데 왜 신경질이야?"

  남편은 시무룩하게 전화를 끊었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제일 앞 장면이 바로 나같은  마누라 때문에 집 앞까지 온  선배를

  현관에도 들이지 못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청소를 못해 집이 엉망이니 미국 아니라 달나라에서 온 선배라도 집에 데리고 오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대통령 아니라 대통령 할아버지라도...

  물론 이 영화에 그런 구체적인 대사까진 나오지 않는다.

  홍상수가 그의 영화에서 초지일관하여 보여주는 냉소는 섬뜩할 정도이다.

  저렇게 뚱한 표정으로 시큰둥한 말이나 내뱉으려면 도대체 왜 관계를 이어나가는 건지

  왜 만나는지 모르겠는 그의 영화 속 등장인물들.

  이번 영화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니, 더욱 점입가경이었다.

  도라무깡을 엎어놓은 허름한 술집과 바퀴벌레가 출몰할 것 같은 여관 역시 홍상수 감독이

  무척 선호하는 장소임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나 역시 빤질빤질한 술집보다는 허름한 집이 좋다.)

  그는 도대체 그런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나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사건을 통해  뭘 말하고

  싶은 걸까?  삶의 남루함,  아니면 비루함?

  우리는 굳이 그의 영화를 통하지 않더라도 남루한 삶을 넌더리나게 경험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의 영화 속 사람들은 심하게 표현해서 이미 태어난 몸이니 죽을 수는 없고 어찌어찌 역할을 정해놓고

  간신히 사는 흉내나 내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들은 그토록 소심하고 당돌하며 어떨 땐 무모하기까지 한 것이다.

  술 마시다 느닷없이 "담배불로 날 좀 지져줘!"하고 절규하며 팔뚝을 들이미는 인간을 보라.

   더욱 웃긴 건  홍상수 감독이 그토록 경멸해 마지않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허위의식을,

  감독은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 발설하게 해놓고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

   다짜고짜 찾아와 잠깐만 시간을 내달라고 윽박지르다 여자가 선약이 있다고 하니,

  "너 군대에서 온 사람에게 이럴 수 있니?" 하며 납치하다시피 하는 녀석이 없나.

  또 성현아를 만나러 함께 부천에까지 가자고 했는데 유지태가 거절하자,

  "너 미국에서 방금 온 선배에게 그럴 수 있니?" 하는 김태우의 대사.

  아니, 군대나 미국에서 왔다 하면 꺼뻑 넘어갈 걸로 아는 남자들의 단순함, 혹은 후안무치.

   평소에 자신도 모르고 쓰기도 하는 말들이 홍상수 영화의 옷을 입으면 얼마나 유치찬란하고

  혐오스러운 건지 관객들은 화면을 보며 깨닫게 된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싫어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데 아마 이런 요인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나는 어떤 편이냐 하면  그 썰렁한 유머를  즐기는 사람에 속한다.

  부천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교수가 되고 싶다는 자신의 포부를 밝히는 유지태의 그 뻔뻔한 표정이라니! 

  아아,  자기 영화에 출연하는 남자배우를 돼지로 만들어야 속이 풀리는  심술궂은 홍 감독.

  불능의 남자와의 베드신에서 "당신은 잘 할 수 있어요. 저는 믿어요!"라고 남자 밑에 깔려 외치던 진도

 희의 영화보다 이 영화에는 더 웃기는 장면이 많았다.

  넌 좋은 교수가 될 수 있을 거야."  김태우의 덕담.

  "고마워, 형." 그리고 의미 없는 악수.

  "오늘 나랑 잠으로써 이제 너는 깨끗해지는 거야."(김태우)

  "저 신음소리 내도 좋아요?"(성현아) ...홍상수는 확실히 마초다.

  "신음 소리가 너무 예뻐요."(유지태)

 

   이 영화는 미루다가 극장에서 보지 못하고 결국 오늘 낮 우리 집 마루에서 비디오로 보았다.

  그것이 얼마나 다행으로 여겨졌는지 모른다.

  그나마 눈 내리는 스산한 거리 풍경이 이 폭염 속에 조금 위로가 되어주었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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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4-07-26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며칠전에 집에서 봤답니다. 두 번.
홍상수 영화가 홍상수 스타일로 완성된 느낌이었어요.
김태우, 유지태 두 지식인의 스타일이 바로 홍상수 라는 남자의 내면과 외연을 동시에 갖고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죠. 여자에게서 남자들이 발견하는 미래란 것이 겨우 성욕인가 싶지만, 대학교때 그런 애들을 참 많이 봤어요. 그땐 결코 이해 못했죠. 아주 극단적인 욕을 해댔었지만, 영화를 보면서 그 애들의 과거(?)의 행적을 이해하였지요. 니네들 그렇게 늘 목랐니? 라는 말을 해주고 싶을 만큼... 어떻게든 들어갈 곳만 찾는 남자들이란 참... 가엾더군요. 물론 보은을 베풀듯 그 곳을 내어주는 여자도 가엾구요. 그 여자, 성현아의 문제점은 그거 같아요. 유지태가 화실에 찾아왔을 때 성현아가 말하기를, "가을에 국화가 피면 마치 나를 위해 피어난 것만 같아요~호호호..." 공주병이죠. 여자들의 공주병 혹은 나르시스즘을 이용하는 남자와 자신이 정말 매력적이어서 남자들이 원한다고 생각하는 여자의 착각... 아...신이시여!!
저는 별 다섯 개 주고 싶어요. 두 번 보니까 더 재밌더라구요.
로드무비님의 영화평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저절로 추천 꾹~
사설이 길었습니다요... ^^;;

로드무비 2004-07-27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위의 글은 코멘트로 달기 너무 아깝습니다.
저처럼 엽서로 활용(?)하여 보지 그러셨어요.
홍상수 영화는 사실 너무너무 좋아합니다.
<생활의 발견> 포스터는 2년 넘게 우리집 거실 창에 붙어 있다죠?
김상경이 어느 집 들창 아래 담배 물고 요상한 표정 짓고 있는 것 말입니다.^^
이번 영화도 홍상수스러웠지만 뭔지 조금은 양에 안 찼습니다.
겨울에 한 번 더 빌려볼까요?
추천 눌러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비로그인 2004-10-13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중얼거렸던 말, 너무 싫다! 진짜 웃기다! ^^;

DJ뽀스 2005-05-19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색적인 대사들이 왜그리 웃기던지요. 극장전도 기대중입니다.
 
죠로쿠의 기묘한 병 - 히노 히데시 걸작 호러 단편 시리즈 2
히노 히데시 지음 / 시공사(만화) / 2003년 6월
평점 :
품절


'죠로쿠의 기묘한 병'은 이런 대사로 시작된다.

"이 바보 같은 놈! 또 그림 따위나 그리면서 농땡이를 피우다니!

그러니까 그렇게 이상한 종기가 생기는 거야."

어느 날 얼굴 위에 독버섯처럼 생긴 일곱 가지 색깔의 종기가 나기 시작한

동생 죠로쿠에게 퍼붓는 형의 악담이다.

"이 바보 같은 놈! 또 만화나 읽으면서 농땡이를 피우다니!

그러니까 그렇게 일거리도 딱 끊기는 거야."

어디선가 그런 목소리가 들린다.

이 만화 어딘지 참 무서운 데가 있다.

 

다음은 이어지는 설명.

--죠로쿠는 어렸을 때부터 머리가 모자라 그림을 그리거나

멍청히 있을 때가 많았다.

내 초등학교 몇학년 때 통신표(성적표)를 보면,

"체육시간이면 멍하니 다른 곳을 보고 있습니다."고

담임선생님이 우리 부모님께 일러바쳤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죠로쿠에게 육친과도 같은 애정을 느낀다.

 

시간이 흘러 종기로 온몸이 뒤덮이자 죠로쿠는 깊은 산 속 폐가에 갇히게 된다.

늙은 어머니가 가져다주시는 음식으로 연명하며 자신의 몸에서 쏟아져내리는

색색깔의 피와 고름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순전히 제목만 보고 이끌려 주문했다.

나로서는 처음 알게 된 히노 히데시의 걸작 호러 단편 시리즈 제 2권이고

죠로쿠 외에도 열대어를 기르며 공상하는 게 유일한 낙인

소년이 주인공인 '물 속'과, 

통학길에 있는 작고 지저분한 애완동물 가게에서

조그만 생쥐 한 마리를 얻어와 집이 쑥대밭이 되는 '생쥐',

그리고 사람을 잡아먹는 이야기 '백관동물' 이렇게 네 편이 실려 있다.

 

--온몸에 생긴 종기에서 흘러나오는 일곱 빛깔의 고름으로

그림을 그려내는 죠로쿠의 광기와 환희...

호러만화 역사에 남을 무섭지만 숭고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야기들이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책 뒷표지에 실린 글을 소개하는 것이  리뷰를 열 장 쓰는 것보다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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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rsta 2004-07-13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어떤 소설인가 어디서, 가난한 화가 남편의 뒷수발을 하는 부인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화가의 의식주뿐 아니라 그림에 주로 쓰는 선홍색 안료까지 구해다 준 부인덕에 어느날 유명해지게 되는데, 그때쯤 부인이 죽었죠. 그 선홍색 안료가 남편 몰래 뽑아준 부인의 피였다는..;;
고름으로 그림을 그리다니, 만만치 않군요.;; 리뷰가 정말 생생해요.(오싹)

LAYLA 2004-07-26 0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허헉..-,.-;;;;리뷰와 코멘트 모두 으스스 합니다!
tarsta 님 코멘트 보니 레드 바이올린도 생각이 나구요!

icaru 2004-12-22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뒷표지에 실린 글을 소개하는 것이 리뷰를 열 장 쓰는 것보다 낫겠다.



흐하하... 이 책도 솔깃~
 
소주병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47
공광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언제까지나 청년일 것 같은 '대학일기'의 시인 공광규도 어느새 늙나보다.

얼마 전 나온 새 시집을 보니 나이 마흔의 피로와 당혹감이 덕지덕지 묻어난다.

 

    작은 인정에 취하고 / 작은 비난에 상처받고

    작은 욕망에 갇히는 나는 / 큰놈 되기 다 틀렸다(시 '큰놈' 중)

 

'지독한 불륜'이라는 제목의 시집을 상재한 이후 몇 년 만의 시집인가?

'소주병'이라는 간결하고 단호한 이 시집의 제목이 나는 참 좋다.

'먹고사는 데 급급하여, 혹은 쾌락의 토끼 꼬리만 따라다니다

오늘 도심 골짜기에서 길을 잃었다'는 시인의 통렬한 고백이 시집 곳곳에

신음처럼 배어 나온다.

 

     더러워져가는 나를 끌고 / 장대비 속을 이백 리나 달렸다

     강물이나 도랑에 처박고 싶은 / 비겁해져 가는 중년(시 '원적사에서 하룻밤' 중)

 

내가 잘못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을 멈추지 않는 한 그는 시인이고 청년이다.

그의 정신과 언어는 아직 녹슬지 않았다.

거친 입담 속에 사람과 세상을 향한 뜨거운 관심과 애정이 보인다.

그는 이 땅에 몇 안 되는, 명실공히 사내 대장부 같은 뚝심 있는 시인이다.

아직도 그의 삶의 자리는 노동자들의 옆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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