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나와 함께 일하던 사람 가운데 유명 대학에 출강하던 연구원이 있었다. 그가 부하 직원과 함께 수개월의 시행착오 끝에 한 제품을 완성시켰다. 그러나 나는 그 제품을 보자마자 "가망없다"라고 냉정하게 말했다.

"왜 안 됩니까?" 고객들이 요구하는 성능을 그대로 맞췄는데요."

그는 공격적으로 물었다.

"아니지. 내가 기대한 건 좀 더 높은 수준이라네. 먼저, 색깔이 칙칙하지 않나?"

"당신도 기술자시니 '색깔이 안 좋다.'라는 식의 정서적인 문제는 이야기 하지 말아주세요. 이건 공산품입니다. 좀 더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평가해 주십시오."

"정서적인 문제라고 말하겠지만, 내가 지금까지 머릿속에서 본 것은 이렇게 칙칙한 색깔의 세라믹 제품이 아니라네."

그런 이유에서 나는 이 제품이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여, 다시 고치라고 말한 것이다. 물론 그때까지 그의 노력이나 그가 쏟은 땀은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 사실 그 완성품은 외관상으로 다른 제품과 비슷했지만, 내가 지금까지 머릿속에서 보아왔던 것들과 분명히 차이가 있었다. 결국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결과 마지막에는 이상적인 제품이 완성되었다.

"손이 베일 정도의 물건을 만들어라." 그래 나는 이렇게 요구했다. 너무 뛰어나고 너무 완벼갷서 손을 대면 손이 베일 것 같은 착각에 빠질 만큼 흠잡을 데 없는 완전무결한 제품을 만들라는 의미였다.

'손이 베일 정도'라는 표현은 어린 시절 나의 부모님이 자주 쓰던 말이다. 정말 완벽한 제품을 보았을 때, 사람들은 거기에 손대기도 주저할 정도로 그것을 동경하고 경외한다. 부모님은 그것을 '손이 베일 정도'라고 표현했다.

그 말이 내 입에서도 튀어나온 것이다. "이제 이 이상의 것은 없다."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을 완성할 때까지 노력을 아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바로 창조라는 높은 산의 정상을 올라야 하는 인간의 중대사이며 의무이다.

-- 카르마 경영 中 p. 48~50 --



이 말이 너무 와 닿았다. '손이 베일 정도'....

나는 내가 했던 무엇이 되었든...'손이 베일 정도'로 했던 적이 있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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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텝파더 스텝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1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미야베 미유키'의 가벼운 소설을 읽었다. '미야베 미유키'의 책은 예전에 '이유'라는 책을 읽었던 적이 있었는데, '이유'에 비하면 '스텝파터 스텝'은 정말 가벼운 소설에 해당한다. 한 젊은 도둑이 강압(?)에 못이겨 어린 쌍둥이 형제의 양아버지가 되어 셋이 주변 사건들을 파헤치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데, 짤막 짤막한 이야기들이 가벼운 웃음을 선사한다.
 
'미야베 미유키'가 1987년에 등단한 것을 고려하면, 이 책은 1993년에 쓰여졌으니까..그녀의 초반 작품군에 해당될 듯 싶다. '이유'를 제외하고 그녀의 다른 책들은 읽어보진 않았지만,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가볍게 웃음지으며 볼 순 있지만, 웃음을 위한 소설도 그리고 사회 비판을 무겁게 다룬 소설도 아닌 어쩌면 조금은 밍숭맹숭한 이야기라는 느낌이 들었다. 읽어가는 도중 차츰 몰입이 되긴 했지만, 상황 설정부터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제 막 개발되기 시작하는 도시 외곽의 한 집에 사는 쌍둥이 형제, 부모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예 등장도 하지 않는다. 다만, 쌍둥이들은 부모가 서로 다른 사람과 바람나 집을 나갔으며, 이 부모는 서로 상대방이 아이들과 함께 사는줄 알고 있다. 물론 쌍둥이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그리고 주인공인 도둑. 이 도둑은 옆집을 털려다 어쩌구 저쩌구 해서 쌍둥이들의 협박에 못이겨 양아빠 노릇을 하게 되는데... 이 설정이 대단히 비현실적이다.
 
작가가 쌍둥이를 만들어냈다는 것은 글쎄...왠지 편해보이려는 수작의 냄새도 난다. 얼굴도 같고, 성격도 같고..생각하는 것도 같고.. 괜찮은 캐릭터를 별 수고스러움 없이 세트로 만들어버렸으니... 이렇게 쌍둥이를 이용하는 것도 괜찮은 생각이 들긴 했다.
 

 
그런데 내용은 더 가관이다. 이 셋이서 사회 부조리를 캔다. 정말 엉망진창이군...
 
그래도 재밌다. 왠지...이 주인공들 데리고 이런식으로 책 한권 딸랑 하나만 냈다는 것이 더욱 무책임하게 보인다. 하나의 사건들이 그리 복잡하지도 책 페이지도 많이 차지하지 않기 때문에, 좀 더 시간을 들여 스토리를 좀 더 세분화 시키고, 주인공들의 과거도 들먹이면서 좀 더 이야기를 늘여, 시리즈 같이 만드는 것이 더욱 괜찮을 듯 싶은데...
 
이들이 사건을 풀어나가고...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가는 것도 재밌지만, 난 이들의 과거가 궁금하다. 왜..이 쌍둥이들은 지들끼리만 살고 있을까?. 정말로 부모는 살아있는 것일까? 왜..머리도 비상한 이 도둑은 도둑질을 하고 있을까? 그 계기는 무엇일까? 왜 이 도둑의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사업(?)을 하는 것일까...
 
정말...이들의 과거가 궁금하다. 비록 한권으로는 구성도 약하고 사회비판적인 내용도 약하지만... 씨리즈로 두,세권 정도 더 나온다면...굉장한 그럴듯한 이야기가 될텐데..
 
이건 마치...'미야베 미유키'의 습작뿐이 안되는 듯...
 
그래도 가볍고,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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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추적자 - BBC 다큐멘터리 샹그리라.아르고호 원정대.시바의 여왕.아더 왕 이야기
마이클 우드 지음, 최애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누군가가 말했다. 이 세상은 원자가 아니라 이야기로 이루어져있다고... 만약 이 세상의 원초적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신화가 될 것이다. 다시말하면 이 세상 이야기들의 시발점쯤 되지 않을까?  이 책 『신화 추적자』는 그 시발점이 되는 것들 중 몇가지 이야기들을 시공간적으로 따라가보는 여정의 이야기이다.
 
신화는 비록 주로 고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아주 먼 옛날 어느 순간에 뚝딱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신화 자체는 또 하나의 구비문학(혹은 구전문학)이며, 수천년에 걸쳐 덧씌어진 인간사의 욕구이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덧붙여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다보니 이런 생각들이 절로 든다. 그러니까 지금 현대를 사는 우리들도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는 신화속 사람들로 표현될지도 모를일이다. 약간은 방향이 다르지만...역시나 일부 SF에서는 우리가 발 디디고 서있는 현재의 지구도 신화속 공간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네가지의 신화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다룬다. 신화가 가질 수 있는 진실성을 바탕으로 그 당시의 지리적 여로를 추적한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책을 따라 여행에 동참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다. 바로 지명때문인데... 생소하기도 하고 도저히 머릿속에서 쉽게 기억되지는 않았다. 물론 책속 그림들 중에 지도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먼저 첫번째 여정은 동양의 신화로 출발한다. 이 신화는 숨겨진 파라다이스 '샹그리라 Shangri-La'에 관한 것인데...서양인의 눈에 비친 동양은 아마 낙원을 품고 있었던 듯 하다. 1900년대 이후에 서양인들이 속속 티벳을 발견(티벳이 위치한 지형적 특성 때문에 숨겨져 있다는 것이 맞을 듯 싶기에...)하기 시작했으며, 불교와 접목하여 동양인이 말하는 지상낙원의 이미지를 그리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매우 상업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로 '샹그리라'가 쓰이고는 있지만, 예전 서양인의 눈에 티벳의 고원지대가 보이기 시작할 무렵에는 쉽게 다가갈 수 없는 험한 지형때문에 영적이고 신비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인 듯 하다. 보통 신(들)은 높은 곳에서 아래의 속세를 지긋이 지켜 보고 있지 않은가. 책에 따르면 인도에서 처음 기록된 티벳 신화로 알려졌지만, 그 후 서양인들이 하나 둘 씩 인도를 통한 지리적 접근을 통해 티벳의 신비롭고 동양적인 그리고 불교적인 이미지의 베일을 벗기기 시작했으며, 1933년 '제임스 힐턴'의 <잃어버린 지평선 Lost Horizon>이 발표되고, 1937년 헐리우드 영화로 상영되며 무릇 정신적, 경제적 공황시대를 살고 있는 서양인들에게는 절망적 세계를 벗어날 수 있는 위안을 주고 꿈을 꾸게 만드는 지상낙원으로 믿기 시작했다. 이 책의 저자인 '마이클 우드'는 티벳 지역과 히말라야 접경지대에 이젠 부서진 몇몇 건물만이 남아있는 '구게 왕국(9세기에 창건되어 17세기에 비극적 인 종말을 맞음...)'을 샹그리라로 굳게 믿고 있다.
 
 
두번째 여정은 '아르고 원정대'가 '황금양털'을 찾아서 돌아오는 원정을 그린 신화의 추적이다. '마이클 우드'는 이 원정대에 몇가지 의미를 부여했는데 첫째는 지중해 너머의 세상을 탐험했다는 것(당시의 그리스인들은 지중해 너머의 세계는 상상으로만 그리고 있었다함...)과 최초의 엘도라도에 관련한 이야기라는 점이다. 즉, 황금의 땅을 찾아나서는 최초의 모험기라 부를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이아손'과  '메데이아(태양신 '헬리오스'의 손녀)'라는 신화속 인물이 등장하며, 더불어 '헤라클레스'도 이 여정에 동참한다고 하니 얼마나 오래된 이야기인지 알 수 있다. 참고로...'아르고 Argo'는 '이아손'의 배이며 '빠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여정은 지중해와 흑해를 지나 지금의 '그루지야인 당시 지명으로 '콜키스'라 불리는 곳까지의 여정을 그리고 있는데...'콜키스'는 세계의 동쪽 끝으로 믿었다 한다. 그만큼 '황금양털'을 차지하려는 그들의 모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짐작케한다. 이들의 원정 중심에 놓여있는 '황금양털'은 '이아손'이 '펠리아스' 왕에게 그의 왕국을 요구한 댓가로 '펠리아스'왕이 '이아손'에게 요구한 것인데...이는 고대의 제물로 쓰인 양을 신화로 재구성하여 폭력과 희생, 그리고 종교를 아우르는 하나의 이야기로 된 것이다. 결국 이 신화의 핵심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지리적 지식을 늘림과 동시에 그리스인들의 흑해 진출을 신화로 표현했다는데에 있다고 간결히 말할 수 있겠다. 물론, 여러 고대 영웅들의 영웅담을 곁들여서 말이다.
 
세번째 이야기는 성경과 코란에 나오는 '솔로몬'왕의 이야기중 조금 언급이 되는 한 여인의 이야기이다. 이 여인은 '시바 Sheba'여왕이다. 이 여왕을 '마이클 우드'가 찾아나선 이유는 바로 성경과 코란에 동시에 언급이 되기도 하며, 솔로몬 왕과 지혜와 부로 대비되는 여왕으로 호기심을 이끌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시바의 여왕'을 찾아가는 여정은 바로 홍해를 넘나드는 여로이기도 하다. '시바'여왕은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의 기원이 되는 인물이며, '시바'의 여왕이 '솔로몬'왕을 만나러 가는 여정은 옛 고대의 향료 무역로를 추적할 수 있는 하나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시바의 여왕'은 한쪽 발이 털이 많은 염소발을 가졌다는데...솔로몬이 이를 확인하고 고쳐주었다고 한다. 또 이 신화는 악숨('시바'의 여왕이 다스리던 제국)이라는 그리스의 헬레니즘 문화와 아프리카 문화의 교역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고대 문명에 관련된 이야기이다.
 
네번째 이야기는 '아더 왕'의 영웅담을 추적하는 이야기이다. 읽기 전까지 '아더 왕'은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이라고 생각했었는데...그게 아니었다. '마이클 우드'는 아더 왕의 원형은 달리아다 왕국의 왕자 '아루트이르'라고 소개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더는 앵글로-색슨족에 대항한 브리튼족의 영웅으로 알고들 있는데 말이다. 아더 왕 이야기에서 또 하나 잘 알고 있는 것은 '원탁의 기사들'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여기에서 쓰인 '원탁'은 '로베르 드 보롱'이라는 작가의 상상속의 산물이며, 마찬가지 '크레티앵'이라는 작가는 성배와 결부시킨 이야기를 썼다 한다. 몇 세기를 지나오는 동안 여러 작가들에 의해서 살들이 하나 씩 붙고, 그러한 영웅담을 당대 유명한 영국 왕들이 차용하니 이미 상상속 인물 혹은 실제로 존재했는지에 대해 의문이 가는 인물의 이야기는 허구를 넘어 사람들 머리에 신화라는 이름을 차용하여 강하게 인식되어진 것이다. 이미 신화로 자리잡았다면 허구든 아니든 그리 신경쓰지 않는다. 영국 왕은 이러한 신화를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였다. 물론 지금까지 우리 또한 하나의 상품으로서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4가지 이야기이지만, 여정을 통한 신화로의 접근은 읽기에도 그리 쉬운것이 아니었다. 어려운 지명도 물론이려니와 간간히 곁들어지는 다른 신화의 이야기들과 고대인들의 이야기등은 또 다른 미로를 안겨주었다. 무엇이 진짜이고 허구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듯 하다. 분명 고대 문명은 존재했으며, 그 시대 사람들 또한 존재하였고, 신화는 세상과의 교류속에 탄생한 민족적 위안거리이자 자부심일 듯 하니 말이다.
 
단순히 역사를 넘어 우리나라가 가진 신화를 추적하는 책들도 기대하는 바이다.
 
<덧붙임>
 
개인적으로.. '샹그리라' 이야기와 '아더 왕'에 관한 이야기가 좋았고...'시바 여왕' 이야기와 '황금 양털'을 찾아 여정을 나서는 '아르고 원정대' 이야기는 그리 흥미를 끌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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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경영 서돌 CEO 인사이트 시리즈
이나모리 가즈오 지음, 김형철 옮김 / 서돌 / 200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떤 사람은 자신의 신념대로 글을 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자신의 신념에 관해 한 권의 책을 썼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나는 정말 날 것 그대로 누군가의 신념에 관한 책을 한 권 읽었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자화자찬도, 예쁘게도 포장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삶.

그런데 어찌어찌 하다보니...이 사람은 사회에서 인정하는 성공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특히, 자신도 인정한 것을 보면.. 대단하다.

이 사람은 '이나모리 가즈오'이며, 이 사람의 신념에 관한 책이 바로 '카르마 경영'이라는 책이다.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싶습니까. 누군가 이렇게 물어본다면, 글쎄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행복 추구? 돈 많이 벌기? 건강하기? 아니면 자유로운 삶의 추구?

좋다.

그러면...당신이 가지고 있는 신념에 관하여 한번 글을 써보시오. 라고 한다면...

A4 한장 썼으면 많이 쓴 것일까?

누구나 가지고 있을 신념... 하지만, 대부분의 이는 신념에 크게 괘념치 않으며 인생을 살고 있을 것이다. 분명히 가지고는 있지만, 누군가 물어봤을때 입속에서 우물거릴뿐, 쉽게 나오지 않는다. 과연 나에게도 신념이란 것이 있을까? 나의 행동은 어떤 사고력에 의지하여 나오는 것일까?

신념은 성공한 자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외치고 싶다. 나에게도 작든, 크든 신념이 있다고... 그런데 그 크기는 인생의 성공에 비례할까? 그냥 그렇다는 것. 이 책을 읽고...머라도 한자 적으려 하니...이런저런 생각들로 머리를 가득 채운다.

성공한 삶을 영유하고 혹은 영유했던 자의 신념은 과연 어떨까?

이 '카르마 경영'의 작가이자 교세라의 창업자이며 KDDI ('이나모리 가즈오'가 NTT의 독점에 대항햐여 질좋고 저렴한 통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한 통신회사)의 창업자인 '이나모리 가즈오'는 신념을 자신의 경영 철학으로 승화시킨 인물이다. 좋은 학벌도 아니고, 또 부잣집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었기에 젊었을때 그의 신념은 그가 가진 전 재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여기에서 '카르마 Karma'란 불교에서 흔히 말하는 '업'이라는 뜻이다. 이 책에서는 현상을 만들어 내는 원동력으로 부르고 있으며, 다시 풀이하면 생각한 것이 원인이 되며, 그 결과가 현실이 되어 나타나는 하나의 인과응보(불교로는 업보의 의미를 지닌...)를 뜻하는 말이다. 그러니까...이런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그만큼 쉼없는 노력을 했다는 뜻이다.

에디슨이 했던 말 중...'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이 만든다'라는 말과 의미가 얼추 비슷하다.

그런데 이 책 '카르마 경영'은 '선'을 바탕으로 쓰여진 책이다. 비록 저자가 성공했기에 자신의 신념속에서 성공신화를 찾아 볼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그의 신념이 선했기 때문에 그가 이루려는 것들은 결국에는 원했던 방식으로 이끌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 책에서 '경영'이니 '성공'이니 이런 왠지 물질적이고 영욕적인 것들을 읽어낸 것이 아니라, 사람이 가져야 하는 인간의 도리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읽은 듯 하다. 이 책에서는 저자의 '인간의 도리'는 결국 '삶의 방식'과 그 뜻이 통하며, 그의 인생의 원칙이 잘 스며들어있다.

이런 자기계발서들을 읽어보면.. 이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구나..이 사람은 자신을 매우 사랑하는 사람이구나..알 수 있다. 그렇다면...'이나모리 가즈오'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이 책에 따르면 그는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대천명이 있다. 그리고 그 자신은 그것을 느꼈으며 알고 있다. 대천명이 있다라는 말은 글쎄..무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는 자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깊은 사고력으로 자신이 하는 일의 방향을 결정하였으며, 그 일을 완수한 후, 그는 아무 미련없이 후자에게 물려주고 베풂의 삶을 실천하였다. 이것이 대천명이 아니고 무엇이랴.

저자는 인생에 대해서...하나의 공식을 만들어냈다. 그만의 인생의 가치를 결정하는 공식.

인생(일)의 결과 = 사고방식 X 열의 X 능력... 

이 공식에 따르면..인생의 결과는 열의와 능력의 곱이다. 합이 아니라 곱인 것이다. 그것은 열의가 있는 만큼...능력이 있는 만큼 곱절로 늘어난다는 이야기이다. 능력이 작으면 열의가 크면 충분히 결실을 맺을 수 있고, 반대로 능력이 있더라도 열의가 적으면 그 결실은 상당히 초라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저자는 열의와 능력을 1에서 100까지로 구분하였다.)

그렇다면...사고방식은 어떤 작용을 할까...

이는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사고방식은 열의나 능력과는 다르게 마이너스(-)로도 표시가 가능하다. 그래서 잘못된 사고방식은 열의와 능력이 아무리 크더라도 엄청난 잘못된 결과를 야기시킬 수 있다. 그러니까 열의와 능력보다 사고방식이 건전해야하며 긍정적이어햐 한다는 것이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공식이지만...그 의미는 깊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노력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고 있지만, 항상 주변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래서 그는 후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는지도 모르겠다. 욕심은 사람을 추하게 만들뿐이다.


요즘의 우리의 삶은 일종의 메뉴얼이다. 그러니까 정해져있는 수순들이 하루를 꽉 메운다. 현대사회에서는 메뉴얼적인 삶은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실수를 방지하려는 의도로 집단이나 개인이 채택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성공으로 가는 메뉴얼도 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처세술이다 자기계발서다 해서 나온 책들보면..역시나 메뉴얼적인 면이 보이니까 말이다.

마치 네비게이션과 비슷한지도 모르겠다. 분명 네비게이션의 화면은 자신을 위한 맞춤식 정보를 제공하지만, 결국에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한 하나의 평준화된 정보일 뿐이다. 모든 사람이 같은 길을 가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정보를 공유하다보면 역시나 자신이 그 길에 들어섰을때, 네비게이션은 더 이상 다른 이들에게 이쪽길로의 안내는 더 이상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너무 물질적이고 매뉴얼적인 삶을 받아들이지 말고, 자신을 위한, 인간을 위한, 그런 삶을 살아라라는 것이 이 책의 본질이다. 그러니까 이 책을 읽으면, 성공보다도 '선'이라는 단어가 젤 먼저 생각나는 것도 그 이유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한번 쭉 읽어보고...그 다음부터는 펼쳐지는 대로 읽으면, 괜찮을 듯 싶다.

나에게는 자극이 되는 문구와 글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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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침몰 세트 - 전2권
고마쓰 사쿄 지음, 이성현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상,하권 두권으로 이루어져있는데..딱히 구분되어 있지는 않지만...1권은 SF 냄새를 풍기며(혹은 과학적)이고, 2권은 정치적인 느낌이 나는 책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처음 일본 주변의 한 무인도가 가라앉으면서 부터 시작하는 지질물리학의 지식은 꽤 신선한 느낌이다. 보통 재난영화, 재앙영화를 보면 대부분의 소재가 바로 지구의 지질특성이나 환경변화에서 나오는 발상이라고 봤을때, 영화가 아닌 글로써 그 스펙터클함을 상상하려 하니 힘이 부치긴 했지만 영화보다 좀 더 그럴듯한 단편적인 지식들을 내비치고 있는듯하다. 그러니까 무턱대고 막 쓴 소설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소재들을 가지고 만든 영화들을 보면 그 스펙터클함이 바로 바로 인식되어버리니까 그 거대한 광경들로 인하여 시원한 감은 들지만, 책을 통해 글로써 읽어 내려가려하니 거시적 상상보다는 미시적 상상때문에 생각이 자주 멈추어지는 것 같다. 그러니까 개개인들이 풀어나가야할 절망이라는 안겨진 과제와 국가와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이루는 작고 다양한 국부적 시스템들의 물리적 해체는 그럴듯한 논리로 풀어나간다.
 
물론 영화라는 이미지보다는 글이주는 정보는 스펙터클함의 거시적 상상보다는 좀더 세세한 상황을 표현하려는 미시적 상상을 더욱 자극했다. 또 읽어내린 글을 상상으로 다시 풀려하니 역시나 앞서 말한대로 힘에 부치긴 하였다. 무너진 세상을 머릿속에서 온전히 그려내는것이 이렇게 어려울줄이야. 물론 내가 상상했던 것들도 영화속 장면들에서 많은 부분 들여왔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일본이 지진으로 가라앉는 장면은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다. 물론 순식간에 가라앉기 때문이기도 하지만(물론 1년여정도의 시간차는 있지만...), 왜 가라앉아야만 하는지에 대한 원인들의 분석과 가라않기전에 취해지는 대책들 이런것들이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가 아닌가싶다. 1편은 일본이 가라앉을거라는 확신을 갖기 위해 알아보는 분석 과정들이 세세히 묘사된다. 맨틀과 지각과의 관계에 대한 설명부터 범 세계적인 지진대와 환태평양 조산대와 같은 일본과 매우 관계깊은 지진대까지 이 책에 나오는 과학 지식(지질학적 지식) 중 용어 부분만 따로 정리해놓아도 왠만한 지구물리 몇 챕터는 공부한 것과 마찬가지 일 듯 싶다.
 
보통 SF라 하면 이런 과학적 근거가 되는 뼈대에 얼마마큼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살을 붙였는가가 핵심일 듯 싶은데. 이 부분에서는 나로선 만족스럽다. 그렇다면 이 책에 나오는 '과학적 근거 + 상상의 발로'는 무엇일까? 내가 생각한 바로는 유일하게 일본만이 가라앉는다는 것에 있지 않나 싶다. 왠만한 지진대가 지구적으로 깊숙히 관여되어있고, 또 그 피해 범위는 더욱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이 요즘에 쓰이는 영화적 소재라면(비록 영화속에서는 유럽과 아시아 이렇게 덩어리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이 책은 한반도 남부를 제외하곤(이것도 거의 이야기되는 것이 없다) 오직 일본만이 덤탱이를 쓴다.
 
일본만이 가련한 피해자이고,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수도 없는 희생자로 묘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2차세계대전과 연관지어 일본만이 세계에서 유일한 원폭 피해자라는 것과 연관지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면 2차세계대전때의 원폭 피해와는 좀 차이는 있다. 왜냐하면 원폭 피해는 일본을 선의의 피해자라 보고 그들이 2차세계대전때 행했던 짐승같은 행동을 희석한 것일 수 있겠지만(일본을 옹호하는 시각속에 나타남...), 이 소설속에 나타나는 일본만이 입는 피해는 오히려 그들이 아시아, 세계속에 융화되지 못함을 비판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일본인들에게 지진이라는 시련을 가정하고 피해를 가늠해봤을때, 좀 더 독선적이지 않고 아시아와 세계에 융화되려고 노력한다면 자국민을 좀 더 구제하고 피해를 줄일 수도 있지 않겠냐는 시각을 바탕으로 쓰여져있다.
 
이 책에선 그동안 탈아입구론적인 일본의 정책때문에 일본 주위의 아시아 국가들은 일본인의 구호에 어느정도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일본이 그 주위의 나라(한국과 북한을 포함하여)에 이웃의 정으로 구원해달라는 것이 아닌 인류애적인 감성을 가지고 구해달라는 것은 어찌보면 일본 입장에서는 난감한 일일 것이다. 그만큼 그들도 그들 자신이 아시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냉소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것들이 2권에서 이야기하는 정치적인 것들이다.
 
작가는 무너져 내리고 가라앉는 일본을 무덤덤히 그리고 가능한한 비참하게 그리려 하고 있다. 작가 자신은 아마 그럴듯한 악몽을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작가가 꾸었던 이 악몽을 일본인들도 같이 꾸어보자고 동참시키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악몽은 어느 한 사람(이 책의 작가)만 공유하기엔 너무 아까운 악몽이다. 그러니까 이런 악몽은 꿈 꿀 만하고...어차피 꿈과 현실은 다르니까 이 악몽을 깬 순간 일본인들은 기쁨의 안도를 느끼며 정말 예전과는 다른 일상을 맞이하지 않을까 하는 것을 작가가 노렸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도 가끔 정말 무서운(혹은 너무 슬픈...) 악몽을 꿈꾼 다음에 잠에서 깨어 그것이 한낱 꿈이고 허상이었다고 느끼는 순간 감사하는 마음을 느끼며 정말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가.(특히 어렸을때 꾸는 꿈 중에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꿈과 같은...)
 
그러니까 이 책을 읽고 전체적으로 든 생각은 '이 책의 저자는 일본인을 향해 경고를 한다기 보다는 일본인들이 느껴야 하는(일본인들을 계속 존재케 하는 이 땅과 국가에)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라는 것이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일본인들이 가지는 자신만을 위하는 독선적인 논리와, 일본이 하는 행동은 절대로 그릇된 것이 아니며, 절대로 나쁘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비판의 시각을 내세우고는 있지만, 결국엔 전후(2차 세계대전 패망 후) 오직 일본의 성장과 발전만을 위해 희생한 일본인 아버지, 어머니들을 잊고 지내는 전후 2세대들에게 보내는 메세지라는 생각이 든다.
 
'너희들이 바라보는 도쿄의 스카이라인이 시사각각 변하고,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일본제품의 우수성이 세계에 알려지고 있는 지금, 그 성장의 이면속에 희생하고 고통당했던 전후세대를 외면한다면 너희들의 모든 부는 일순간에 무너질지도 모른다. 그러니 유흥에만 힘쓰는 니들만이 옳고 잘 산다고 떠들지 말고...자중하며 살아라...'
 
나는 웃기게도 이 책속에서 이런 글을 본 듯 하다.
 
이 책이 1973년에 쓰여졌으니까 이 말이 맞을 듯 싶다. 지들(일본인들) 속에서 지들만 잘 살아보세 하다가 지들 땅값 올리고 결국 더 부자되었다는 소리 듣고... 그러다 거품경제로 일 순간에 쌓은 부가 사그르르 사라지게 되니까 말이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 말이다.
 
그러니까 이런 것들이 꿈이었을때 행복한 것이다. 지금 우리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꿈(악몽)이 현실로 되어가는 나라..
 
푸훗...
 
만약 이런 소설(그러니까 한 국가를 악몽속에 놓이게 하는 상상이 들어있는)이 우리나라의 현실에 맞게 쓰여진다면.. 일본이 지진으로 무너지는 것과는 다르게, 전쟁(제 2의 6.25라 부를 수 있는)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그릴 수 있을 듯 싶다. 전쟁의 악몽. 그런데...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인한 우리 역사의 침탈 또한 하나의 악몽이며, 이는 현실이다. 일본의 말도 안되는 독도를 통한 영유권 침탈(분쟁은 일본측 말...)도 하나의 현실이니 실로 우리는 무수히 많은 악몽이 현실로 바꿔지는 세계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80년대 90년대에 이런 것들을 악몽으로나마 접해봤다면...지금과는 양상이 다르지 않을까? 다르다면 어떻게 다를까.물론 악몽만 꾼다면 한국의 미래상을 매우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바판도 당연히 나올 수 있겠지만(부작용도 나올 듯 싶다...), 아무튼 악몽을 꾸어보지도 못하고 바로 현실로 만나게되니 왠지 대책없이 당하고 있는 것 같다. 씁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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