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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날 그후 - SF거장 14인이 그린 핵전쟁 그 이후의 세상
노먼 스핀래드 외 지음, 마틴 H. 그린버그 외 엮음, 김상온 옮김 / 에코의서재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문명을 리셋시킨 껍데기들의 사투

리 가 인지하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종말은 '우주적 종말'과 '지구적 종말'로 나눌 수 있을 듯 하다. 이 둘의 차이는 물론 종말을 맞는 주체의 차이지만, '지구적 종말'은 '우주적 종말'에 포함되어진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쓰는 '지구적' 종말의 개념을 지니는 단어에는 무었이 있을까? '종말'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아마겟돈 Armageddon'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신약성서의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단어로, 흔히 최후의 결전, 선과 악의 대결,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 등과 같이 전쟁으로 인한 종말의 의미를 함축한다. 또 다른 단어는 '라그나뢰크 Ragnarök'(우리는 흔히 '라그나로크'라고 말한다)라는 단어인데, 이는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세상의 마지막 전투라고 한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신들의 숙명 Fate of the gods'이라는 의미가 있다 한다. 또 '아포칼립스 apocalypse'라는 단어 역시 성서에서 나오는 말로 이 자체로 '요한계시록 the Revelation'을 의미하기도 하며, 신의 계시나 묵시라는 뜻으로 쓰여 종말이나 대전쟁을 가리키기도 한다. 또한 (종의) 멸종(extinction)이라는 단어도 종종 '인간(혹은 생명체)의 종말'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종말을 의미하는 몇가지 단어를 간단히 살펴보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종교나 신화속에서 경고하는 인간을 향한 심판의 메시지처럼 들리기도 한다. 물론 종교에서 의미하는 '지구적 종말'은 곧 '우주적 종말'과도 일맥상통하지만, 인간을 향한 심판이라는 의미에서'우주적' 보다는 '지구적' 이라는 말이 더 가까울 듯 하다.

아무튼 책 이야기로 넘어오자. 이 책 『최후의 날 그후』에서 보이는 종말, 즉 여기서의 '최후'는 '핵전쟁'이 몰고온 파멸을 의미한다. 이 책에서는 핵전쟁을 '메가 워 mega war'로 대신한 단편도 몇가지 있다. 이 책은 핵전쟁 이후의 지구의 모습, 혹은 인간의 모습을 그린 여러편의 단편선집이다. 테마북이라 말하면 쉽게 와닿을 듯 하다. 이 책이 가지는 장점 중에 하나는 바로 한가지의 소재 혹은 주제(테마)를 가지고 여러 작가들이 그들 방식의 다양한 상상들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꿔말하면 다양한 상상들은 여러 갈래의 이야기들을 '핵전쟁'의 전후 시점으로 나누어 완벽하게 복원한다(하지만 제목 자체부터 '이후'라는 뒷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어서 그런지 핵전쟁 이후의 세상을 보여주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까 이 책의 장점은  다양한 상상의 갈래들인데, 작가마다 서로 다른 시,공간적 관점에서 그려내고 있어서, 이것들을 (강제적으로) 연관시켜 읽다보면, 이야기들이 커다란 하나의 줄기가 되게끔 엮어진다(비록 순서가 뒤죽박죽이지만, 하나의 장편의 분위기도 느낄수 있다). 물론 줄기가 되는 것은 '핵전쟁'이 아닌 원초적 본능을 지니고 문명을 그리워하는 '인간의 삶'이다. (인간의 삶을 중심에 놓고 읽다보면 '핵전쟁'이 의미하는 '신이 내리는 심판의 메시지'를 어느정도 중화시키게 된다.)

일례로, 시간적 관점에서는 핵을 쏘기 직전 버튼을 누르는 상황부터 핵이 터진 이후 수년이 흘러, 죽지 못하고 살아남은 자들이 어떻게  삶을 연명하는지를, 또 공간적인 관점에서는 (문명을 이루는)물 질이 없어 마비된 세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내가 보기엔 이게 바로 주제이다. 과학의 이기가 만들어낸 무기로 인해, 과학의 편리를 제거시킨 암흑의 세상. 한마디로 물질을 이용한 시기는 과거로 흘려보내고, 쓸만한 물질조차 소멸되어 구차하고 무거운 삶을 이어가는 것. 이게 바로 살아남은 자들에게 있어서 종말인 것이다(소설속에서도 죽은 이들은 그리 언급되어 있지는 않다).

인간은 문화의 힘으로, 과학의 힘으로 물질을 만들어냈으며, 더 많은 물질을 소유하고픈 욕망으로 인간들의 사회는 갈수록 이념적, 경제적, 사회적 경계들을 치기 시작한다. 경계선 안팎으로 너와 나의 구분은 뚜렸해지고, 드디어 지구적인 제로섬게임에 들어간다. 그리고 버튼을 누르고 이 세상을 리셋시키며, 살아남은 자들은 이제는 물질이 그리 많지 않은 세상에서 국소적인 제로섬게임을 다시 시작한다. 이 갈등의 순환이 바로 종말로 읽혔다. 쓰다보니 무슨 '아니메(일본식 에니메이션)'풍의 나열이 되었지만, 이 단편들을 읽다보면, 1930년대부터 1980대년에 이르기까지 힘들었던 이념적 갈등의 시대를 비추고 있어서인지, 구차하고 무기력한(혹은 이념에 종속된) 개인을 그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20세기의 구시대적 패러다임이 21세기에 와서도 여전히 유효할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하게 된다.

지금 바라보고 있는 세상은 어떠한지. 비록 세계화로 인해 외관적으로는 각자가 친 여러 경계들을 없애는 과정으로 보여지지만, 실상은 힘으로, 돈으로 그 경계들을 더 넓히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덧붙임>

1. 20세기 중,후반(1950년대와 1960년대가 많다)의 작품들이 대부분인지라 이념적 성격을 띤 글들도 있다.

2. '세상의 종말'에 관해 몇 권을 엮어 넣어보자면...

좀 오래된 1991년작 소설이긴 하지만... 이미 고인이 된 '시드니 셀던'의 『최후 심판의 날의 음모』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초반과 중반은 정말 흥미 진진하다. '로버트 러들럼'의 '본 시리즈'와 같은 첩보물이며, 쫓고 쫓기는 이미지가 매우 강렬했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중반을 지나 후반에서는 조금 엉뚱하게 흐른다. 물론 이 책에서 말하는 '최후 심판'에 대한 소재는 『최후의 날 그후』에서 그리고 있는 핵전쟁과 관련된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인류의 과제를 다루고 있는데...이는 스포일러상 말하기가 그렇다. 그래도 '시드니 셀던'표 첩보소설을 좋아한다면...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이 책『종말의 바보』는 요즘 '일류日流'의 바람을 타고 국내에 들어와있는 '이사카 고타로'의 일본 소설이다. 이 책에 대한 소개는 예전에 써두었던 나의 리뷰로 대신한다.




여전히 읽고 싶은 책에서 상위 목록을 차지하고는 있지만, 훑어만 본 책...


'폴 데이비스'의 『마지막 3분』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우주의 탄생과 현재의 우주, 그리고 우주의 미래를 아우르는 과학서적이다.



마지막으로 '마이클 J. 벤턴'의 『대멸종』은 이 블로그에서 몇 번 언급했으므로(완전히 읽지 않아서 리뷰는 없다) 여기서는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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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
마이클 크라이튼 지음, 이원경 옮김 / 김영사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마이클 크라이튼'의 새로운 소설 『넥스트』는 애매한 소설상의 시점을 제공한다. 그 애매한 시점을 통칭하여 아마도 '넥스트'라 부르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이 소설에서의 '넥스트'라는 의미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가까운 미래에 진행될 이야기를 말하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조금 더 먼 미래, 확실치 않은 어느 먼 시점에 가야 소설속 이야기들이 등장하게 되는지'를 확실히 못박고 있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뜻이다.

 '마이클 크라이튼'은『넥스트』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였나? 사실, 중요한 것은 'what'이 아니다. 제목에서도 드러냈다시피 그는 'when'을 이야기하고 싶어한 듯 보인다. 인간이 가져야만 하는 윤리가 어느 시점부터 남극대륙 빙하녹듯이 녹아내리고 있는가를 말이다. 그렇다. 이 책은 유전공학의 그늘에 드리워진 인간 윤리가  스스로의 욕심으로 그것들이 점점 무너져 가고 있다는 경고성 글이지만, 사실 이를 지켜내는 인간들의 영웅 이야기를 그린 것은 아니다. 이 책 말미의 '옮긴이의 글'에서도 나와있지만, 그는 소설가이지 과학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가정을 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낼 뿐이다. 그는 일반인이 알 수 없는 유전 공학의 그늘속에서 증식시킨 유전자의 오용과 남용이라는 악(惡)의 이야기를 들고 나왔다. 사실 악(惡)인지는 명확히 구분짓기가 어렵다. 그렇다하더라도 분명히 선(善)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 책 내용은 그리 독창적이라든지, 유별난 것은 아니다. 확실히 '유전자'나 '줄기 세포'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그리 학문적 이야기로만 들리는 것은 아니다. 얼마전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라 세계를 들썩이게 했던 '황우석 박사 사태'에서도 보았듯이 그만큼 대중적 스토리로 등장하였다. 그것이 비록 전문분야의 학문이긴 하지만, 대중들은 학문으로써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말이다.

이 책은 다양한 사례들을 들고 나왔다. 작년에 읽었던 『인체 시장 Body Bazaar 궁리 2006』이라는 책에서 읽었던 내용안에 들어있던 사례들보다 확실히 멀리 나간 것은 아니다. 물론, 유전 공학을 이용하여 인간의 말과 심리를 이해하며, 주위 환경을 판단할 수 있는 '지능을 가진 앵무새'의 이야기나 '언어를 가지고 있는 오랑우탄'의 이야기는 약간 더 나아가 있긴 하다. 조금 더 미래시점으로 봐야 한다는 소리이다. 하지만 이 책속에 들어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은 지금도 진행중인 이야기인 것만은 확실하다. 다만 그것이 우리들 일상속에 들어와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이런 다양한 'what'은 진행중이고, 법으로도 지지해주고 있다. 그러니까 문제는 우리가 언제쯤 일상속에서 인지하느냐이다.

기존의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과는 분명히 다르다. 그러니가 내가 읽었던 그의 작품 몇가지는 '상상을 기반으로 하여 현실이 과학을 무기로 상상을 따라가는 형식'이지만, 이 소설 『넥스트』는 '현실을 기반으로 하여 작가의 상상이 곧 현실의 반영'임을 내세우고 있다. 가령, 『쥬라기 공원』에서 오래된 화석속 모기(확실히는 기억이 안남)에서 공룡 유전자를 추출하여 공룡을 복제시켜 내는 상상의 이야기는 현실속에서 현대 유전 공학의 발달로 판타지적 상상이 아닌,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자신의 소설이 현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작가 자신이 그린 가증스런 결과를 견제하고 있다. 일례로 몇가지 '유전자 특허법'의 부당함을 자신의 목소리로 높이우고 있으며, 과학이라는 학문이 사업의 관점에 휘둘려 어떻게 변질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과학의 돌연변이(학문의 무차별적인 사업화)를 경계하여야 한다는 윤리적 관점을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책 속의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해봐야 단어와 스포일러만 늘어날 것이기에 책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한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느꼈던 느낌은 앞서 소개했던『인체 시장 Body Bazaar 궁리 2006』의 리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책 『넥스트』의 과학 교양서 버전이 바로 『인체 시장』이라 봐도 무방 할 듯 하다.

아..참... 한가지 잊어버리고 그냥 지나쳐 버릴 뻔한 것이 있다.

리 뷰 초반에 이야기를 했어야 했는데, 깜빡하고 지나쳤다. 나는 이 리뷰 제목을 『탐욕스러운 인간 2.0의 세계』라고 지었다. '인간 2.0' 이라는 말이 너무 멋졌다. 이 말은 요즘 읽고 있는 '레이 커즈와일'의 『특이점이 온다』라는 책의 초반부에 작가가 인간1.0 버전과 관련하여 언급한 부분에서 따온 것이다. 물론,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웹2.0'과도 겹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잠깐 언급한다면, '레이 커즈와일'은 『특이점이 온다』에서 생물학적 인체를 1.0버전으로 언급하면서 인간의 진화는 사실 기계의 진화에 비해 멈추고 있는 상태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기계의 진화는 그 예가 다양하다. 방금 전 위 단락에서 말했던 '웹 2.0'도 계속 바뀌어가고 있는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고, 일반적으로 반도체에서 쓰이는 '무어의 법칙'(컴퓨터의 메모리의 양이 18개월마다 2 배로 증가한다는 법칙)도  점점  진보하고 있는 상황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만큼은(물론 각자의 재능이 있는 사람이 나오긴 하지만), 인간이라는 종(호모 사피엔스)의 측면에서 볼때, 진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니, 그 속도가 무진장 느리다. 거의 멈추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 런데, 이 책 『넥스트』에서는 인간의 기술로 인간 버전 2.0을 실현시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소설속 이야기보다 훨씬 더 앞서 나간 소리이긴 하지만, 인간 2.0의 초석을 깔고 있는 내용을 그린다. 그러니까 요즘 심화되고 있는('리처드 도킨스'의 기존의 여러 책들과 더불어, 특히 최근의 『만들어진 신』에서도 주장하는) 신에 대한 부정, 그리고 종교에 대한 부정의 맥락을 넘어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립까지도 충분히 그 주제를 펼칠 수도 있다고 본다. 인간이 다음 버전의 인간을 만들어 내는 기술을 획득한다면, 그리고 여러 일반인들(보통의 인간들)이 그 기술에 종속되어져 있는 상품이라면, 이는 지구적인 토픽을 넘어선 우주적 토픽까지 진화하게 되는 것이다. 다음 물음은 뻔하지 않는가?

'과연 누가 신인가?'라는...

암튼, 너무 깊이 들어간 듯 보이는데 이 책에 대한 (나의) 느낌을 알고 싶다면, 예전에 내가 썼던 『인체 시장』의 리뷰를 봐도 무방하다.

<덧붙임>

1. 나는 '마이클 크라이튼'을 좋아한다. 내가 과학이라는 분야를 좋아하는 것이 가장 주된 이유가 되겠지만, 과학을 조금 비튼다면, 그 속에서는 정말 무궁무진한 상상의 이야기들이 펼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회가 된다면, '마이클 크라이튼'의 다른 소설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속에 들어있는 과학적 배경 지식과 더불어...그런데...쉽지가 않다. 참고 서적으로만 몇권을 봐야할지 계산도 되질 않는다. 물론, 쉬운책들도 아니다. 그래도 재미가 있기에... 이런 것들을 보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2. 『넥스트』를 읽으며, 예전에 봤던, 그리고 지금 보고 있는 책들 중 연관된 것 몇가지를...소개.....

       

          
먼저 인체 시장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넥스트』의 과학 교양서 버전으로 보면 되고...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 드려야 할까요?』는 『PD 수첩』황학수 PD의  '황우석 사태' 추적기로 보면 된다. 그때 그 사건의 전모를 알기 쉽게 쓴 책이다. (물론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은 이야기이긴 하다..)

『특 이점이 온다』라는 책은 이제 초반부를 읽고 있는 터라 머라고 설명하기 쉽진 않지만 인간과 기계의 진화속도와 관련 이야기를 그려내는 책이라 생각하면 된다. 기계의 진화속도는 이미 인간의 그것을 넘어섰다. 한마디로 교착점을 지난지 오래(우주적 시간과 연결지어서 말한다면, 찰나에 불과하지만...)되었으며, 이젠 특이점을 향해 간다는 소리이다. 특이점이란, 수학과 물리학의 용어인데..사실 특이점이 주는 의미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나 또한 잘은 모르겠으나...대충 극한의 수렴점(?)이라 생각하면 될듯 싶다. 한곳으로 모인다는 소리인데...예를들어 무어의 법칙에서 18개월마다 메모리 용량이 두배씩 늘어난다고 가정하면, 영원히 이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다. 다시말해 기술이 훨씬 발전된다면...그 시점이 더 짧아질 수도 있다는 소리이다. 그러다 나중에는 말이 안될정도로 빨라지고 심지어 이론적으로 1초도 안되 용량이 2배씩 늘어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면 그 시간은 아주 미세한 시간으로 구분지어야 되고...그 순간 메모리 용량의 발전상을 그리는 그래프는 비선형적이 되어 무한으로 발산되어버린다. 대충 이런 의미이다.

그런데..생물의 진화에도 이런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식이다. 중요한 것은...'이러이러한 식이다'가 중요할 듯 싶다. 그러니까...패턴을 보여준다는 말인데.. 새로운 패턴..새로운 패러다임을 찾는 것이 이런 특이점 주의자들의 몫인 모양이다.
그러니까..더 이상 인간이 관여를 하지 않고...기계가 기계를 낳는 새로운 패턴을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는 그려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아직 초반부라 확실치는 않다. 이제 50페이지 정도 읽어냈다(총 페이지 수는 840페이지 정도...)
 
다만,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인간을 새로운 관점으로도 볼 수 있겠다 싶어서이다. 이 책은 과학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보면 좋을 것 같고...나머지 두 책은 크게 흥미없어도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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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9-20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이리뷰 당선이시네요. :) 축하드립니다.

쿼크 2007-09-21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감사합니다...요즘..책값이 너무 비싸..도서관 이용이 늘었는데...고마울 따름입니다...
 
일본침몰 세트 - 전2권
고마쓰 사쿄 지음, 이성현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상,하권 두권으로 이루어져있는데..딱히 구분되어 있지는 않지만...1권은 SF 냄새를 풍기며(혹은 과학적)이고, 2권은 정치적인 느낌이 나는 책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처음 일본 주변의 한 무인도가 가라앉으면서 부터 시작하는 지질물리학의 지식은 꽤 신선한 느낌이다. 보통 재난영화, 재앙영화를 보면 대부분의 소재가 바로 지구의 지질특성이나 환경변화에서 나오는 발상이라고 봤을때, 영화가 아닌 글로써 그 스펙터클함을 상상하려 하니 힘이 부치긴 했지만 영화보다 좀 더 그럴듯한 단편적인 지식들을 내비치고 있는듯하다. 그러니까 무턱대고 막 쓴 소설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소재들을 가지고 만든 영화들을 보면 그 스펙터클함이 바로 바로 인식되어버리니까 그 거대한 광경들로 인하여 시원한 감은 들지만, 책을 통해 글로써 읽어 내려가려하니 거시적 상상보다는 미시적 상상때문에 생각이 자주 멈추어지는 것 같다. 그러니까 개개인들이 풀어나가야할 절망이라는 안겨진 과제와 국가와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이루는 작고 다양한 국부적 시스템들의 물리적 해체는 그럴듯한 논리로 풀어나간다.
 
물론 영화라는 이미지보다는 글이주는 정보는 스펙터클함의 거시적 상상보다는 좀더 세세한 상황을 표현하려는 미시적 상상을 더욱 자극했다. 또 읽어내린 글을 상상으로 다시 풀려하니 역시나 앞서 말한대로 힘에 부치긴 하였다. 무너진 세상을 머릿속에서 온전히 그려내는것이 이렇게 어려울줄이야. 물론 내가 상상했던 것들도 영화속 장면들에서 많은 부분 들여왔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일본이 지진으로 가라앉는 장면은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다. 물론 순식간에 가라앉기 때문이기도 하지만(물론 1년여정도의 시간차는 있지만...), 왜 가라앉아야만 하는지에 대한 원인들의 분석과 가라않기전에 취해지는 대책들 이런것들이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가 아닌가싶다. 1편은 일본이 가라앉을거라는 확신을 갖기 위해 알아보는 분석 과정들이 세세히 묘사된다. 맨틀과 지각과의 관계에 대한 설명부터 범 세계적인 지진대와 환태평양 조산대와 같은 일본과 매우 관계깊은 지진대까지 이 책에 나오는 과학 지식(지질학적 지식) 중 용어 부분만 따로 정리해놓아도 왠만한 지구물리 몇 챕터는 공부한 것과 마찬가지 일 듯 싶다.
 
보통 SF라 하면 이런 과학적 근거가 되는 뼈대에 얼마마큼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살을 붙였는가가 핵심일 듯 싶은데. 이 부분에서는 나로선 만족스럽다. 그렇다면 이 책에 나오는 '과학적 근거 + 상상의 발로'는 무엇일까? 내가 생각한 바로는 유일하게 일본만이 가라앉는다는 것에 있지 않나 싶다. 왠만한 지진대가 지구적으로 깊숙히 관여되어있고, 또 그 피해 범위는 더욱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이 요즘에 쓰이는 영화적 소재라면(비록 영화속에서는 유럽과 아시아 이렇게 덩어리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이 책은 한반도 남부를 제외하곤(이것도 거의 이야기되는 것이 없다) 오직 일본만이 덤탱이를 쓴다.
 
일본만이 가련한 피해자이고,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수도 없는 희생자로 묘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2차세계대전과 연관지어 일본만이 세계에서 유일한 원폭 피해자라는 것과 연관지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면 2차세계대전때의 원폭 피해와는 좀 차이는 있다. 왜냐하면 원폭 피해는 일본을 선의의 피해자라 보고 그들이 2차세계대전때 행했던 짐승같은 행동을 희석한 것일 수 있겠지만(일본을 옹호하는 시각속에 나타남...), 이 소설속에 나타나는 일본만이 입는 피해는 오히려 그들이 아시아, 세계속에 융화되지 못함을 비판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일본인들에게 지진이라는 시련을 가정하고 피해를 가늠해봤을때, 좀 더 독선적이지 않고 아시아와 세계에 융화되려고 노력한다면 자국민을 좀 더 구제하고 피해를 줄일 수도 있지 않겠냐는 시각을 바탕으로 쓰여져있다.
 
이 책에선 그동안 탈아입구론적인 일본의 정책때문에 일본 주위의 아시아 국가들은 일본인의 구호에 어느정도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일본이 그 주위의 나라(한국과 북한을 포함하여)에 이웃의 정으로 구원해달라는 것이 아닌 인류애적인 감성을 가지고 구해달라는 것은 어찌보면 일본 입장에서는 난감한 일일 것이다. 그만큼 그들도 그들 자신이 아시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냉소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것들이 2권에서 이야기하는 정치적인 것들이다.
 
작가는 무너져 내리고 가라앉는 일본을 무덤덤히 그리고 가능한한 비참하게 그리려 하고 있다. 작가 자신은 아마 그럴듯한 악몽을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작가가 꾸었던 이 악몽을 일본인들도 같이 꾸어보자고 동참시키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악몽은 어느 한 사람(이 책의 작가)만 공유하기엔 너무 아까운 악몽이다. 그러니까 이런 악몽은 꿈 꿀 만하고...어차피 꿈과 현실은 다르니까 이 악몽을 깬 순간 일본인들은 기쁨의 안도를 느끼며 정말 예전과는 다른 일상을 맞이하지 않을까 하는 것을 작가가 노렸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도 가끔 정말 무서운(혹은 너무 슬픈...) 악몽을 꿈꾼 다음에 잠에서 깨어 그것이 한낱 꿈이고 허상이었다고 느끼는 순간 감사하는 마음을 느끼며 정말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가.(특히 어렸을때 꾸는 꿈 중에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꿈과 같은...)
 
그러니까 이 책을 읽고 전체적으로 든 생각은 '이 책의 저자는 일본인을 향해 경고를 한다기 보다는 일본인들이 느껴야 하는(일본인들을 계속 존재케 하는 이 땅과 국가에)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라는 것이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일본인들이 가지는 자신만을 위하는 독선적인 논리와, 일본이 하는 행동은 절대로 그릇된 것이 아니며, 절대로 나쁘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비판의 시각을 내세우고는 있지만, 결국엔 전후(2차 세계대전 패망 후) 오직 일본의 성장과 발전만을 위해 희생한 일본인 아버지, 어머니들을 잊고 지내는 전후 2세대들에게 보내는 메세지라는 생각이 든다.
 
'너희들이 바라보는 도쿄의 스카이라인이 시사각각 변하고,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일본제품의 우수성이 세계에 알려지고 있는 지금, 그 성장의 이면속에 희생하고 고통당했던 전후세대를 외면한다면 너희들의 모든 부는 일순간에 무너질지도 모른다. 그러니 유흥에만 힘쓰는 니들만이 옳고 잘 산다고 떠들지 말고...자중하며 살아라...'
 
나는 웃기게도 이 책속에서 이런 글을 본 듯 하다.
 
이 책이 1973년에 쓰여졌으니까 이 말이 맞을 듯 싶다. 지들(일본인들) 속에서 지들만 잘 살아보세 하다가 지들 땅값 올리고 결국 더 부자되었다는 소리 듣고... 그러다 거품경제로 일 순간에 쌓은 부가 사그르르 사라지게 되니까 말이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 말이다.
 
그러니까 이런 것들이 꿈이었을때 행복한 것이다. 지금 우리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꿈(악몽)이 현실로 되어가는 나라..
 
푸훗...
 
만약 이런 소설(그러니까 한 국가를 악몽속에 놓이게 하는 상상이 들어있는)이 우리나라의 현실에 맞게 쓰여진다면.. 일본이 지진으로 무너지는 것과는 다르게, 전쟁(제 2의 6.25라 부를 수 있는)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그릴 수 있을 듯 싶다. 전쟁의 악몽. 그런데...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인한 우리 역사의 침탈 또한 하나의 악몽이며, 이는 현실이다. 일본의 말도 안되는 독도를 통한 영유권 침탈(분쟁은 일본측 말...)도 하나의 현실이니 실로 우리는 무수히 많은 악몽이 현실로 바꿔지는 세계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80년대 90년대에 이런 것들을 악몽으로나마 접해봤다면...지금과는 양상이 다르지 않을까? 다르다면 어떻게 다를까.물론 악몽만 꾼다면 한국의 미래상을 매우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바판도 당연히 나올 수 있겠지만(부작용도 나올 듯 싶다...), 아무튼 악몽을 꾸어보지도 못하고 바로 현실로 만나게되니 왠지 대책없이 당하고 있는 것 같다. 씁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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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십 트루퍼스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5
로버트 하인라인 지음, 강수백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3년 6월
평점 :
품절


『스타십 트루퍼스』는 예전에 1997년작 <폴 버호벤>감독의 영화로 처음 접해보았다. 이 영화에 대해 가장 크게 기억나는 것은...곤충같이 생긴 외계생물과의 전투씬이다. 신물나는 곤충들과의 한판을 그린 이 영화만을 보고...『스타십 트루퍼스』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아마 10%만을 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소설속에서의 전투장면이 10%정도 되니까..

그만큼 이 소설에서 전투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약한 편이다. (그렇다고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이 400여 페이지가 넘는 이야기는 대부분 무엇으로 채워져있을까? 단, 한단어가 떠오른다. 'propaganda'(프로파간다) 우리말로는 선동 혹은 선전이라는 의미이다.

이 소설의 전체적인 구성은 영화와 비슷하다. 다만.. 영화속에서는 시각적인 구성을 전투에 중점으로 뒀다는 것과 주인공(조니)의 친구들(칼과 카르멘으로 고등학교 동창)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한다뿐이다. 참.. 영화속에서는 강화복(powered suit)에 대한 이야기가 일절 없다. 이것은 소설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왜냐하면...'하인라인'의 이 소설은 '강화복의, 강화복에 의한, 강화복을 위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왜...강화복에 대한 이야기가 중요할까... 그 이유는 우리의 '조니'가 기동보병 소속이기 때문이다. 처음 군에 입대하여 훈련소에서 기동보병이 되기 위한 훈련을 마치고 수료하기 까지의 과정이 어림잡아 책 절반을 넘게 차지한다. (영화속에서는 훈련과정이 아마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 훈련과정에서의 내용은 완전무결한 군인정신 특히, 기동보병 정신을 쇠뇌받는데...바로 이 부분이 하인라인이 가장 많은 목소리를 내는 부분이고, 훈련과정 자체가 선동인 것이다. 하인라인은 훈련소의 교관으로 혹은 군대의 장교로 선임 하사관으로 혹은 고등학교 시절의 '역사 윤리 철학'선생으로 등장한다. 이 모두가 조니를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게 바로  이 소설이 선동적인 이유이다.

이 이야기의 주된 선동은 시민권을 따라는 것이다. 자유(참정권 제외)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질 지 모르지만 이 시민권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시민권이 없다고 사회생활에 전혀 지장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의 고결한 시민이 되려면 시민권이 필요하다. 그리고 군대 경력이 필요하다. 그 뿐이다. 선거권, 피선거권을 따기 위한 군입대는 왠지 모를 뿌듯감으로 인해 정신건강에는 좋을 지 모르나, 절대로 육체적건강에는 좋지 않다. 특히, 기동보병으로 있는 한은 말이다. 그래서 이 인류를 사랑하고 위하는 시민권을 가진 고결한 사람을 만들기위해선 오로지 선동뿐이다. 누가 선거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기 위해 목숨을 바치겠는가. 그런데 한가지 웃긴것은 소설속에서는 이 선거권, 피선거권 실체가 없다. 그냥..선거권 따기 위해..전쟁나가 죽는 것이다. 또한 군인신분으로는 선거권, 피선거권이 없다. 오직 제대를 해야한다는 말인데...이미 쇠뇌된 군인에게는 솔직히 시민권 자체가 필요없다. 단기 근무는 장기 근무로 가기위한 통행권같은 것이다.

이 훌륭한 시민권을 어렵게 따기 위해선 강력한 적이 있어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강력한 적이 나올 수록 시민권에 대한 열망이 크다. 그래서 나온것이 거미같은 외계생물인데...이 생물의 강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이 강인함과 직접 맞서서 싸워야하는 군인들 또한 강인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강화복을 입은 기동보병이 중요하며, 역시나 적과 바로 대면한다는 것 때문에 기동보병은 대단한 것이다. 즉, 군대의 꽃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단함과 추켜세움때문에 전쟁은 이루어진다. 매우 정치적이다. 시민권을 쉽게 딴다면... 누가 군대를 갈 것인가.

'조 홀드먼'의 『영원한 전쟁』은 '하인라인'의 『스타십 트루퍼스』와는 반대선상에 있는 소설이다. 이 『영원한 전쟁』에서도 강화복을 입고 또 외계 생물과 전투를 치룬다. 하지만, '조 홀드먼'은 인류와 싸우는 외계 생물을 강인한 것과는 다르게 묘사한다. 이 소설속에서는 따내려는 시민권이 없기 때문에 강한 적도 만들 필요도 없지만, 전쟁은 무언가 이루려고 하는 것이 아닌 오해에서 시작된것으로 보고있기 때문에 전투에 큰 의미를 두진 않는다(하지만 오히려 전투 장면은 『스타십 트루퍼스』보다 많이 나오는 듯 하다). 그리고 이 시각은 '하인라인'의 사상과는 반대편에 있는 좌파적 성격을 띠며(반전 사상이 다분하다), 오히려 『영원한 전쟁은』전쟁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아닌 전쟁을 치루고 있는 그 시대상을 다룬다.(재밌게도 이 시대상은 시간적으로 3000년 이상의 시간을 가진다). 『스타십 트루퍼스』에는 시대상은 없다. 오로지 인류의 전쟁을 하기 위한 전쟁 윤리와 전쟁 철학만이 있을 뿐이다. 이 두 소설이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계급의 진급이다. 전투를 위한 '하인라인'의 소설은 전투중 손실로 인하여 진급하는 경우가 제일 크다. 물론 따로 교육도 받지만 말이다. 어차피 상관이 죽어나가기에 계급은 올라가게 되어 있다. 하지만 '조 홀드먼'의 소설에선 계급의 진급은 크게 의미가 없다. 다른 우주로 전송되었다가 다시 돌아오는데 몇백년씩이나 훌쩍 지난다.(정지되어 있는 자의 시간기준으로) 물론 주인공에겐 얼마 되지 않는 시간만이 흐른다. 자연히 진급이 된다.

이 두 소설은 똑같은 전쟁이라는 소재를 다루었지만, 그 차이는 분명하다.

『스타십 트루퍼스』는 전쟁을 위한 소설이고 바로 전쟁을 치루는 남성을 위한 소설이다. 하지만, 역시나 이 소설속에서도 여성은 등장하며, 여성 또한 군인으로 심지어 함장으로 까지도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의 여성은 전쟁을 치루기 위한 촉진제(?)이다. 조니가 꼭 입대를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입대지원을 받는 곳에서 자신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외모가 예쁜 카르멘을 만난다. 카르멘은 진정한 사람이어야한다면 시민권이 있어야되고, 군대를 가야한다고 말한다. 조니는 입대원서를 냉큼 집어든다.

또, 기동보병들은 강화복을 입고 우주선에 있는 캡슐을 타고 적이 있는 행성으로 강하한다. 이때 전쟁의 나락,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긴장감과 함께 두려움에 떨고 있는 보병들에겐 역시나 함선내 방송으로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꼭 살아돌아오라고...

이 소설에선 죽음이라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죽음은 사후 '사자무공훈장'을 받을 수 있는 한가지 원인이다. 또한 누군가의 죽음은 또 다른 영웅을 만들어낸다.

『스타십 트루퍼스』는 결코 평화로이 끝을 맺진 않는다. 또 다른 전쟁이 기다릴 뿐이다(하인라인의 또 다른 소설 '프라이데이'에서의 결말은 좀 다르다.그래서..후기 하인라인의 작품은 초기 작품과 차이가 있는 듯 하다...). 그런데 『영원한 전쟁』은 전쟁이 끝나고 사랑이 찾아온다(비록 이 전쟁이 수천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 끝이 나지만 말이다...). 이것이 이 두 소설이 가지려는 주제이다.

막상 이렇게 쓰고보니 『스타십 트루퍼스』를 매우 부정적인 소설로 묘사를 하였는데, 그렇진 않다. 비록 선동 혹은 선전이라는 묵시적인 소재가 들어가있지만, 읽어보면 재미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이 쓰여진 시기가 1959년이니까 어느정도 사회상과도 맞아 떨어진다.

이 소설은 역시나 밀리터리SF의 원조로 불리운다. 지금의 밀리터리 SF는 군사적인 면보다는 정치적이 면이 많이 내포되어 있다. 어차피 둘다 비슷하지만, 요즘의 SF는 확연히 정치적이다. 예전 초기의 SF면과는 달리 전투라는 좁은 범위에서 벗어나 좀 더 넓은 외교라는 분야가 포함되어 있다. 『스타트랙』, 『배틀스타 갈락티카』등을 보아도 확실히 넓은 의미의 정치,외교,군사를 다루고 있다. 심지어 『배틀스타 갈락티카』는 대통령과 함장, 그리고 언론과 군대등 수많은 갈등 요소를 품고 있다.

SF는 단순히 재미만을 위한 장르는 아니다. 요즘의 시대상과 더불어 앞으로의 시대 혹은 사회상을 보여주는 것이 SF이다. 비록 자극적인 소재도 다분히 많이 끼어있지만, 무언가 영감을 주긴 주는 것 같다. 정치,외교 분야를 공부한다면 SF는 전공 필수까지는 아니더라도 전공 선택은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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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데이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로버트 하인라인 지음, 안정희 옮김 / 시공사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기 시작한지 얼마지 않아.. 난 내가 의도했던 소설의 방향이 아니라는 것을 감지했다. 이 책을 읽기 전.. 이 책의 주인공이 AP(Artificial Person : 인조인간)라는 것을 알았기에... 이 인조인간의 불완전한 정체성을 그려낼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사실.. 이 예상은 맞았다. 그런데.. 내가 가지고 있던.. 편견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결론은 이것이 아니다.

솔직히 나의 예상은 '스타워즈'에 나오는 "내가 니 애비다..." 와 같이...뒷통수를 내리치는 강렬한 느낌을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이 문장도 이젠 식상하지만 말이다. 암튼..이런식의 강렬한 통한의 한마디 정도는 남길 줄 알았다.

"내가 인조인간 이었다니... 이럴수가... 나를 이 더러운 세상에 잉태시킨 인간을 .....용서치않겠어..." 대충.. 이런 한 마디 정도는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실은 그게 아니다.  또한 '블레이드 러너'에서 나오는 <리플리컨트>들이 자신들의 목숨을 보전하려는 그들의 애절한 사투를 벌였던 것 처럼.. 이 Friday라는 인조인간 여성도 쫓고 쫓기는 처절한 삶을 살 줄 알았다. (사실...이 Friday 또한 좋은 환경에서 살진 않는다. 이 인조인간의 직업은 마피아 같은 조직의 밀사이다.)  사실.. 소설은 영화보다 더 디테일하게 묘사를 할 수 있기에, '블레이드 러너'의 [헤리슨 포드]가 "나 또한 리플리컨트인가?" 하며  상상하며...막을 내렸던 것 같이.. 끝낼 순 없다. 소설이 주는 엄청난 상상력 때문에 그와 같이 막을 내렸다가는 아마 뇌가 터질 것이다. 영화에선 애매모함이 인정되지만, 소설은 전혀 인정할 수 없다.(적어도 나는..)  그래서... 이 소설은 마지막에 회고 처리를 한 것인 지도 모르겠다. 하나..이는 중요치 않다.

하나... 내가 앞서 주저리 주저리..떠드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 SF소설은 스타워즈에서 나오는 정체성도 블레이드 러너에서 나오는 정체성과도 거리가 멀다. 왜냐하면...이 640여 페이지나 되는 이야기는 우리의 암울한 미래를 투영시킨 디스토피아에서 꽃피는 처절한 "성장소설"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며 계속 나의 뇌리에 남았던 것은.. 천진무구했던..'링컨 6-에코'나 '조던 2-델타'보다 더욱  천진무구한 'Christopher'를 느꼈기 때문이다. 참고로...'링컨 6-에코'와 '조던 2-델타'는 <마이클 베이>감독의 '아일랜드'에서 나오는 두 복제인간이다. 그리고 <Christopher>는 내가 얼마전에 읽었던...'Curious Incident in the Night-time'이란 책에서 나오는 자폐아 소년이다.

그만큼..이 소설은 SF형식의 성장소설이다. 사실 나는 400페이지나 넘게 읽는 동안 이 소설이 왜 SF소설이 되어야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단순히 인조인간이 등장해서 그런가...아니면...일부 지구인들이 정착하고 있는 정착행성들 때문인가..암튼.. 이 소설은 장르가 중요하지 않다. 초반엔 오히려.. 첩보 스릴러물(본 아이덴티티 같은)로 생각했었으니까..

그런데... 이 소설을 '성장소설'로 본다면... 이 소설은 훌륭하다. 비록 내가 원했던...SF적인 배경이 많이 등장하진 않지만, 또 이게 '하인라인'식이라고는 하지만, 암튼.. 인조인간 Friday의 끊임없는 자신에 대한 질문은 그녀를 결국 그녀가 바라는 환경으로 스스로 데려다주었다. 여기서 나오는 인조인간은 로봇과 같은 인조인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유전공학적 변칙 기술을 써서 만든 '강화인간'정도로 표현하면 맞을 듯 싶다. 건담 시리즈의 '코디네이터'라고 하는 것이 제일 나을 듯...모든 외형이 인간과 같고, 심지어 만든이 조차도 AP와 human을 구별하지 못할 정도이지만, AP는 그들만의 자격지심을 가지고 산다. 다만, Friday는 워낙 암흑가에서 활동하다 보니, 그녀 스스로 자신만만하다.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능력(인간보다 빨리 다닐 수 있고, 싸움을 훨씬 잘하며, 정신력 또한 강하다. 모든 것이 인간보다 낫다.)을 함부로 쓰진 않는다. 위급상황을 제외하고는.

이 책은 몇가지 사회적 이슈를 던져준다. 글로벌 기업간의 전쟁이라든지..이 부분에선 국가의 개념이 좀 희박해진다. 그리고 에너지 문제...그리고 성적인 문제.. 이 책에서 나오는 성적인 문제는 부부가 남,녀 한명씩이 아닌... 그룹으로 부부가 맺어질 수 있다는 히피 문화적 성격을 띄고 있다. 

그런데..이 책에 나오는 미래의 배경은 어떠할까... 솔직히 이 작품의 연대는 1982년이다. 그리고 2006년의 시각으로 봤을때, 지구 말고 우주에 다른 정착행성이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리 먼 과거는 아닌 것 같이 느껴졌다. 아니 오히려, 요즘 이야기라해도 크게 이상할 것도 없다. 하지만, 역시나 우주를 나갈 수 있고, 몇십광년을 짧은 시간에 갈 수 있다고 본다면..먼 미래의 일이기도 하지만, 솔직히 우주를 나갈 수 있는 시대로 상상하기에는 많은 부분에서 부족함을 느끼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이 책의 결말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다. 아니..당연하다. 만약 직접적으로 언급했다가는 이 640여 페이지나 되는 이야기들이 시시해질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 소설의 결말에 대해 이야기 안 할 수가 없다. 앞서 이 책을 '성장소설'로 한정 짓는다면..어느정도 이해는 간다. 그리고 그 속에는 충분히 로맨스와 사회성도 포함되므로, 특히 사회적 현상에 관한 한마디 교훈쯤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결론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준다는 것이다. 그럼 인조인간이 나오는 소설속에서 주는 결론이 무엇일까... 대체적으로 이런 이야기들 혹은 소설들이 주는 결론은 인조인간의 '새로운 탄생'이다. 혹은 '새로운 자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새로운 탄생'은 인조인간이 과학기술이든, 신적 계시든 어떤 것으로 인해 인간으로 새로이 탄생한다던지, 아니면, 인조인간 그 스스로의 새로운 자각으로 자신의 부류들을 새로이 볼 수 있는 눈을 갖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탄생 혹은 자각'은 '성장소설'이나 있을법한 이야기이고(그래서 성장소설일 수 있겠지만...), 미래소설, 혹은 SF소설이라 봤을 때는 마지막 이야기의 끝과 함께... 새로운 의문 혹은 궁금증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먼저...이 소설은 앞서 말했듯이...우주선을 통해...우주 이곳저곳을 옮겨 다닐 수 있는 과학기술력이 있다는 설정을 해 놓았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인조인간들은 인간과의 마찰에 매우 조심스러우며, 자신들의 정체성이 튀어 나오는 것을 꺼려한다. 하지만, 이는 지금 현대의 사회상에 비추어봤을때 나올 수 있는 현상이다. 이 책에는 '외계인'이 나오지 않는다. 생물학적으로 인간과는 전혀 본질이 다른, 그리고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외계인말이다. 이러한 외계인의 등장을 제한함으로써 이 소설은 완성되어지는 것이다. 왜.. 외계인의 등장이 없을까... <하인라인> 자신이 상상을 못했을까.. 외계인은 이 우주에 없다. 혹은 지구인이 우주를 떠돌아 다닌다해도..아직...'외계인'들과 조우할 그럴 기술력의 단계엔 아직 오지 않았다는 뜻일까? 아니면, 전지전능한 인간이 아주 미계한 외계인들을 찾아내지 못한 것일까...

물론...이 이야기속에 '외계인'이 나타난다면...이 소설은 한낱 종이쪼가리에 불과할 것이다. 이 책은 인조인간의 정체성, 인간과 다름을 한탄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모든 SF가 '스타트랙'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지구인들이 '워프'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지기 전부터 외계인이 지켜본다는 '스타트랙'의 설정은 이 소설과는 그 이야기가 전혀 다르다. 물론 전개방식조차도 다르다. 그럼...이 'Friday'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A.I.'와 닮아있을까? 이 'A.I.'라는 영화도 결국은 인조인간 꼬마의 이야기이다. 물론 성장소설이자 모험담으로도 충분히 통할 것이다. 내가 'A.I.'를 보고 정말 놀라웠던 순간은 이 꼬마의 모든 이야기가 끝났다 싶을때 ... 새로운 이야기의 전개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종말' 혹은 '외계인의 등장'이다. 지구의 새로운 종이 등장하며...이 꼬마와의 조우로 통해... 새로운 이야기로 끌고가며, 거의 끝부분까지 달려왔던 하나의 통일된 이야기가 완전 새롭게 변모했던것이다. SF의 특징에 더 놀라운 SF적 상상력을 더 했고..그것은 이야기속에서 충분히 발휘되었다. 그리고 이 꼬마 또한 소원을 이루며, 이것으로 이 영화가 주려는 메시지를 우리는 받게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A.I'처럼 또 다른 이야기를 끌어내진 못했다. 어찌됐든...'외계인'은 나타나지 않았고, 이 인조인간은 그가 지난시절 겪었던 정체성에 대하여 극복한 일들을 통해 일생을 회고하며 웃음짓고 끝나기 때문이다.

얼마전..NFL(북미프로미식축구 리그)의 '슈퍼볼 영웅' <하인스 워드>가 내한하였다. 그리고 <노무현>대통령을 포함한 수많은 인사와 만남을 가졌다. 그의 이야기는 진정 드라마틱한 '성장소설'이다. 혼혈아의 벽을 넘고 세계의 빅 리그에서 그의 이름을 펄펄 날렸으니까.. 그런데..이는 오직 우리 사회에서만 통용된다는 점이 문제가 있다(물론 미국에서도 인종차별적인 문제 또한 가지고 있다.). 미국이 보는 <하인스 워드>의 관점에 우리 사회는 혼혈아라는 사회적 편견을 더 덧붙였으니까.. 이 'Friday'라는 소설이 이러한 식이다. "<하인스 워드>는 혼혈아라는 시각을 극복하고... 그는 슈퍼볼의 영웅으로 잘 먹고 잘 살았다..." 이런식으로 보았을때...이 <하인스 원드>가 우리 사회에 던진 질문과 이 소설이 던져주는 질문은 크게 다르지 않는다. 비록 이러한 사실 또한 우리에게 던지는 큰 질문이며, 풀어야될 숙제이지만... 끝을 너무 미화시킨 감이 없진 않다. 그래서 이 소설이 '성장소설'에만 국한되어 보이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말해 처음 이 소설이 SF일까..라는 의문이, 결국엔 처음 그 느낌대로 포장된 SF라는 답변으로 돌아온 꼴이다...

나는 이 부분이 아쉬웠다. 정말 무언가가 있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비록 인조인간이었던...우리의 'Friday'는 노후를 인간처럼 아니..인간과 인조인간을 구분짓는 세상이 아닌곳에서 편안히 보냈지만, 나는 결코 이 소설속에서 '그 후 이들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단다'라는 동화속 편집된 인생을 보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 이 책을 봤을때.. 한권짜리 640여 페이지는 매우 많다라고 느꼈지만, 오히려 너무 짧았다. 무수한 에피소드들만 나열되어 있었지만..(물론 그 에피소드들이 다 연관은 되어있지만 말이다.) 충분치 않았다.

그런데..난 이 소설을 하룻만에 읽었다. 매우 재미있었다. 왜냐하면....나는 '성장소설'도 매우 좋아하고 잘 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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