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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병기 활 - War of the Arrows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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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활(弓)이 아니라 활(活)인 이유는 '지켜 낸다'는 의미를 철학적으로 부여했기 때문인듯 하다. 그렇다고 철학이 녹아있는 영화는 아니고, 다만 마지막에 주인공 남이(박해일 분)의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뱉으면서 영화처럼 끝냈다. 사실 나는 이 말이 맘에 든다.

활(活)

활(活)을 '지켜 낸다'로 풀이하긴 했지만, 그보다 더 원초적인 전제가 함축되어 있다. 이 전제는 '잴 수 없는 기량'이다. 이 잴 수 없는 기량은 상대에 맞추어 발휘된다. 그릇에 담긴 물과 같다고나 할까. 상대가 그릇이라면 주인공은 물이다. 상대의 기량에 맞추어 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발산한다. 월등한 기량이 받춰줘야지만 지켜내든, 공격하든 할 수 있다. 이런 기량이 없다면 자뻑이 된다.

영화는 아쉬운점이 있다. 당연하다. 완벽한 영화는 있을 수 없다. 대신 그 모자람을 어떻게 채워넣는지에 따라 완성도는 올라간다. 이 영화는 초반의 모자람이 후반에 채워진다. 일단 영화 초반, 아쉬운 점은 앞서 말했던 철학의 부재이다. 예전에 읽었던 책이 떠오른다. 제목은 'Zen in the art of Archery (번역서 : 활쏘기의 선)'. 언젠가 'art'에 꽂힌 적이 있었는데, art라는 것은 굉장히 유연하다. 우리말로 하자면 예술은 곧 미학이 될 수 있지만 본래 의미적으로는 기예이고, 재능이다. 또 숙달이다. 그러니까 무형을 유형으로 만드는 보편적인 방법이 곧 art이다. 물론 이것은 art에 대한 고전적인 해석이고, 우리 시대의 art는 유형을 무형으로 보듬어 내는 가치를 뜻한다. 그림이나 조각 등 이런 것은 유형이지만, 그것이 뿜어내는 무형의 것에 가치를 둔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고전적 의미의 art가 부족하다. 즉, 주인공 남이가 활을 익히는 과정, 노력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더하여 활(活)을 푸는 스토리가 부족하다. 단순히 여동생 자인(문채원 분)을 구하려는 것이 활(活)은 아니고, 무자비한 살생을 지양하는 것이 활(活)은 아니다. 영화에서는 반복적인 연습으로 활 쏘는 경지에 오른 것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지만, 관객인 나로서는 art에 접근하는 태도가 상상했던 것 만큼 모자랐다. 그의 기술적인 완성도는 그렇다치더라도, 그의 정신적인 완성도는 어떻게 이루어져있는지 도저히 알 수 없다. 제목에서 풍겨대는 것은 자비심을 뿜으며 활인궁(활인검에 비유해서)을 쏘아댈 듯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는 실용주의를 쫓는다. 목표가 정해지면 바로 계획을 세우고, 곧 최선을 다하며 실천한다. 이 선에서 옆으로 새지도 않고, 더 나아가지도 않는다. 제목과 맞질 않는다. 물론 딱 한 번 활을 거두는 장면이 있긴 하다.


최종병기

영화를 보기 전까지,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따온 듯한 '최종병기'라는 단어가 장난스레 느껴졌다. 영화를 보고 '활(活)' 보다는 '최종병기'라는 타이틀이 영화를 대변하는데 더욱 적합하게 느껴졌다.

최종병기의 의미는 국가의 기능 상실이다. 군대라는 집단이 해야만 하는 역할과 기능은 눈녹듯 사라진 대신, 이 모든 것을 개인에게 일임한다. 물론 영화속에서 말이다. 즉, 국가가 해 줄 수 없는 것을 자기 자신의 손으로 해내야 한다. 그 손에 들린 것이 당시 항복을 했던 조선이 묵인하는 최후의 병기가 된다. 한마디로 다윗의 돌이라 부를 수 있을 듯.

이 최종병기는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이중의미가 있다. 즉, 이미 항복해서 기능이 상실된 군대 대신 개인이 스스로 손에 든 다윗의 돌이라는 점과  마지막 최종적 한 발이라는 복선.

이 마지막 한 발을 쏘는 장면에 들어서야 영화 제목과 부합된다. 말 그대로 '최종병기 활(活)'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활(活)은 자비가 아니라 희생이다. 즉, 자신을 희생해서 남을 살린다는 의미가 된다. 지켜 낼 것은 끝까지 지켜낸다는 의미 또한 살린다.

기타

사실 영화에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혼례 장면이다. 전반적으로 위화감이 흘렀다고나 할까. 이 혼례 장면부터 본격적인 영화의 서막이 시작되는데, 혼례에 이은 청나라 병사들의 침략은 영화의 완성도를 떨어지게 하는데 꽤 많은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혼례를 준비하는 과정도 의외로 길게 느껴진다.

혼례를 치르는 와중에 청나라 병사들이 말 타고 쳐들어 와 조선 군대와 벌이는 전투는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성곽에서 전투 장면에서는 성곽이라는 이미지보다는 관광지 이미지가 컸다. 관광지에서의 전투라니...관광지 답게 너무나도 깔끔한 곳이었다. 차라리 야밤의 전투가 나을 뻔 했다.

그럼에도 앞서 말했듯이 이후 장면부터 사소한 위화감을 덮는다. 이제부터는 영화속으로 빨려 든다.

위에 올린 사진이 쥬신타역의 류승룡인 이유는 말 그대로 류승룡이 영화를 이끌었다고 봤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편인 남이의 박해일보다는 적인 류승룡이 나올 때 긴장감이 돌았다. 연기는 류승룡에게 한 손 들어주고 싶다.

전쟁을 담고 있는 영화이긴 하지만 매우 소박하다. 전쟁 속 전투, 그것도 게릴라 전투를 담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 소박함은 사실적인 묘사로 인해 더 부각된다. 수풀과 절벽, 그리고 벌판. 중국영화였다면 아름다운 색채를 더해 원색의 화면으로 칠해 놓겠지만 어쨌든 이 영화는 거칠다. 거친만큼 소박하다.

요즘 볼 영화가 마땅치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최종병기 활'은 확실한 2시간을 보장한다. 극장에서 다른 관객들과 같이 긴장감을 공유해보는 것도 좋겠다.

PS.
7광구 나오자마자, 아니 하지원이 출연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7광구가 정말 보고 싶었다. 왠지 스케일도 있을 듯 싶었고. 그런데 너무나도 평이 좋지 않아 퀵을 선택했다. '퀵'은 '해운대'와 '7광구'를 연출한 '윤제균'감독의 영화이다. '퀵'에 대한 감상도 올리려 했지만, 시간이 흘러 기억나는 것도 없고, 또 기억날 만한 것도 없다. 다만, 이 좋은 소재를 이렇게 만들었구나. 쯤? 재미는 그런대로 있었지만 이 역시 좀 많이 안타까운 영화였다는 생각. 그러고 일주일 후, 평은 안좋지만 7광구를 한 번 봐볼까 했는데 '최종병기 활'이 재밌다는 소식을 듣고 '7광구'에서 다시 '활'로 방향을 바꾸었다. 7광구는 이제 생각이 없다. 갈수록 평점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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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31 14: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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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8 1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저씨 - The Man from Nowher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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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인 소설 한 편 잘 보았다. 소설이라구? 사실 영화이다. 그럼에도 난 이 영화 「아저씨」를 소설로 읽은 듯한 느낌이다. 영화와 소설의 가장 큰 차이점중 하나는 페이지를 넘기는 주체이다. 영화는 영상을 감독의 속도로 넘겨주지만 소설은 내가 직접 나의 속도로 책장을 넘긴다. 그런데 이 영화를 난 내 의지로 영상을 넘긴듯하다. 속도감이 있고 지루할 틈이 없다. 쉴새없이 넘겨지는 말없이 행해지는 액션들과 주인공인 차태식의 캐릭터에 매료되는 바쁜 와중에도 면면이 이어지는 이야기를 예상해보기도하고, 악당들을 처치할 정의의 매질을 나름 설정해보기도 하는 등 하나의 거룩한 이야기를 얼음장처럼 굳은 자세로 읽어댔다. 이런 느낌은 도대체 뭔가. 짜릿한 전율을 느끼는 장면마다 혹 옆 사람이 나의 과도한 감정 분출을 느끼지 않았을까 눈치가 보일 정도로 감정 조절이 힘들었다. 물론 나도 옆 사람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해받기도 하였다.  

                   

판타지라는 염료통에 담가놨다 이제 막 건져낸 듯한 느낌. 간만에 말초신경들이 왁자지껄 소통을 해대는 이 느낌. 감독은 어떤 관객 계층을 표적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영화 제목 그대로 '아저씨'계층? 아니면 앞에서 팔랑대는 원빈이라는 조각미남에 빠져 환각으로 초대된 '아가씨'계층? 또 아님 보통의 '아저씨'와 살고 있는 '아줌마'계층? 마지막으로 쇼핑 목록에 '옆집 아저씨'를 올리고 부모에게 졸라댈 '꼬맹이 숙녀' 계층? 물론, 마지막 꼬맹이 숙녀들은 관객의 표적과는 거리가 멀테다. 미성년자 관람 불가이기에.

이 영화는 아저씨든 아줌마든 아가씨든 할 것 없이 나름 각기 속해있는 계층에 맞게 적절한 판타지를 제공한다. 아저씨는 꼬꼬마 시절 꿈속에서나 꾸었을 법한 악당을 완전무결하니 제압해대는 액션과 세상을 이미 관조하고 있는 무표정한 표정에서, 아줌마와 아가씨는 이유 불문, 의미 불명 무조건적인 기사도 정신에 매몰된 한 남자(연하든 연상이든)가 구원하러 와 줄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에서 판타지를 읽는다. 그러기에 이 영화를 보고 있는 사람 누구든 현실이 아닌 영상속에서 자신만의 판타지 세계를 구축하느라 정신없을 거라는 생각이다. 다만 피튀기는 영상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건지는 개인차가 분명 있을 것이다.

어렸을 적, 비슷한 전율을 느낀 영화가 있었다. 그것은 '스티븐 시걸' 형님의 「복수무정2」. 지금 보면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겠지만 어린 마음에 주인공인 '스티븐 시걸'이 거대하게 보였다. 마음만 먹으면 어느 누구도 제압할 수 있는, 한 능력하는 능력자. 거기에 액션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고 유유자적 그럼에도 절도있는 강세로 탁탁 쳐내고 꺾어치고 날려버리고 주위에 널려있는 사물을 모두 무기화할 수 있는 무심한 한 남자. 전반적 내용은 이미 기억에서 사라진지 오래지만 그 액션만은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다.

「아저씨」에서 원빈의 액션도 그렇다. 세상을 지배하는 시스템과는 동떨어져 있으나, 그 시스템을 경멸하며 약자를 괴롭히는 조폭들에겐 일말의 동정심도 소비하지 않는 무심한 표정의 한 남자. 내일이라고는 없고 오직 오늘만을 살고 있는 한 남자. 그리고 세상의 한 쪽 구석에 차려진 전당포를 운영하는 이 남자. 그를 세상안으로, 시스템안으로 불러들인 조폭들은 처절함만이 남게된다.

이 영화는 나에겐 정말 대단한 두 시간여를 보내게 했지만 조금 성에 차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형사들. 영화속 형사들은 80년대. 자신이 곧 법이라는 관념에 파묻혀 자신들도 엑스트라이지만 역시나 엑스트라들을 깔보는 듯하는 촌스런 형사들이다. 나름 간간히 웃음 포인트를 친절하게 알려주지만 영화속 잔당들이나 처리해야할 촌스런 운명을 거룩한 국가적 사명으로 인식한다. 대표적 예는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가 맡은 박두만 형사. 형사에겐 시민은 없고 (국가)기관만 담고있는 전형적 80년대스런 기풍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영화의 흐름을 자신들이 끌어가려고 부던히 노력한다. 물론 이 노력은 시나리오상에서 이미 약속된 노력이지만.

악당은 90년대. 어떻게 보면 거대 조폭 집단같지만 다른쪽에서 보면 삼류 양아치들 모임. 그래서 원빈이 맡은  누구나의 아저씨 '차태식'의 세련됨과는 균형이 맞질 않는다. 잔혹성으로 '차태식'과 보조를 맞추려하지만 그래도 영화가 진행할수록 그들 또한 촌스러움이 물씬 풍긴다. 따라서 감독이 '차태식'과 위상은 전혀 다르지만 무게감은 유사한 태국 배우 '타나용 윙트라쿨'을 섭외하여 '람로완'역을 맡긴 것에는 영화의 균형미를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시나리오에서도 차태식(원빈)과 람로완(타나용)의 근접 격투는 영화의 질을 한 층 높였다. 

                   

람로완과 차태식의 결투. 가장 눈길을 끄는 장면이다. 감독 또한 공을 많이 들였으리라. 영화 전체적으로 차태식은 감정에 이끌려 세상속으로 나오고 감정에 이끌려 사건 해결사 역할을 하지만, 장면 장면마다 그는 감정을 절제하고 있다. 감정의 절제는 단순하게도 임무로 환원한다. 스스로 꼬마 아가씨 '정소미'를 구하기 위한 임무를 설정한 뒤 몇년만에 가장 의무적인 오늘을 보내려 한다. 그리고 그의 두뇌 회전은 빨라진다. 따라서 어떤 의미로 보면 차태식은 여전히 감정에 젖어있지 않다. 그럼에도 람로완과 대결할때 차태식이 이빨로 람로완의 손등을 물고 아마도 뼈를 끊어놨다든지 신경을 끊어놨다든지 한 그 행위에선 가장 격정적 감정이 차태식을 지배하고 있을 때이다. 그리고 이미 싸울 수 없는 지경에 놓인 람로완을 파파파팍... 가슴팍을 칼로 찔렀다 뺐다를 순식간에 여러번 하는 그런 행위야 말로 하나의 감정 주파수만이 최절정을 치는 순간이다. 관객과 배우는 그 주파수로 완벽하니 동조를 이룬다. 오직 이 장면에서만이 장르가 바뀐다. 가장 액션스러운 장면으로 가득하지만 액션에서 드라마로 전환된다. 현란하지만 의미없이 그냥 지나치는 동작들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눈에 그려지는 여운을 불러온다. 따라서 잠시나마 '정소미'를 구하기 위한 임무의 경로에서 벗어나 자신과 람로완의 격투의 완성을 매듭짓는 드라마틱한 미학적 장면으로 잔상을 남긴다. 잔인한 듯 보이지만 잔인하지 않는, 차태식이 발동한 것이 아니라 람로완이 영화 처음부터 기다려온 복선의 완성이다.

영화 장면들속에서 시종일관 지배했던 람로완의 강렬한 눈빛이 차태식에 의해 죽어가면서 자신의 재능이 차태식의 재능에 미치지 못함을 억울하다는 듯 이럴리 없다는 듯이, 눈동자가 미묘하게 풀려나가는 그 순간 차태식은 보너스 스테이지를 끝내고 다시 영화로 복귀한다. 아마 남자들 뿐만 아니라 여자들까지도 매료됐으리라. 난 이 장면에서 판타지의 최절정, 마지막 전율을 느꼈다.

영화속에서 나에게 특이하게 인식된 장면이 있다. 원빈이 머리깎는 장면인데, 원빈은 세상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대화도 없고 소통도 없는 부류이다. 남의 이목을 끌려고도 하지 않고 가급적이 아니라 정말 조용조용하게 산다. 하지만 전당포를 통해 여전히 세상과 경제적 셈을 하며 먹거리를 해결한다. 영화속 등장 인물과는 관계를 맺지 않는 인물이지만 유독 관객에게는 잘 보이려 애쓴다. 뭐, 감독의 의도이겠지만, 그리고 여성 관객을 향한 배려이겠지만, 그래도 영화속 인물이 유독 신경쓰는 것은 영화 밖 관객이라는 점에서 매우 특이하다. 굉장히 스타일리쉬하는데 80년대, 90년대 홍콩 느와르 영화속 배우들이 창조한 트렌치 코트 스타일과는 달리 영화속 공간이 21세기 공간임을 관객들에게 계속 어필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솔직히 영화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시대적 상징들이 절묘하게 섞여져 왠지 이것저것을 가져다 쓴 잡스런 영상을 풍기기에 그렇다.

꼬마에게도 아저씨, 양아치에게도 아저씨, 누구에게나 아저씨로 불리지만 아저씨는 정체성의 의도적 봉인이다. 세상속 드럽고 걸죽한 사건을 위한 잠복이다. 영화속에서 왜 정체성이 봉인이 되어야하는지 과거 경로만 훑어볼 뿐이다. 특수부대 요원에서 지저분한 도시 뒷골목의 전당포 주인으로의 변신은 세상을 벗어나고자 하는 자의적 몸부림이지만 온갖 세상 물품을 만져야만 하는 그의 직업 특성상, 특히 뒷골목의 전당포는 더더욱, 어쩔수 없이 사건을 불러들이는 의도된 위치선점이다. 따라서 기다렸다 치고 다시 빠지는 순환적인 흐름을 가지는 하나의 시리즈로 진화할 수 있다고도 생각된다. 이 부분이 내가 가장 소설스럽게 읽혀졌던 부분이다. 그럼에도 감독이 차태식을 경찰의 손에 넘기는 것으로 시나리오를 끌고 갔다는 것은 조금 아쉽다. 왜냐하면 형사는 사건의 마무리를 짓는 요소가 아니라 사건 속 잔당 처리이며 불합리한 영화의 논리를 애매모하게라도 마무리 지으며 다음 스테이지로 인도할 수 있는 또 다른 장치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차태식에겐 전직 요원이었던 동료도 있지 않은가. 이 또한 활용할 수 있는 장치이다. 따라서 일회적인 요소로 끝맺음도 가능하지만 다른 이야기로의 전환도 가능하다. 차태식은 전당포에서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누군가 맡긴 어떤 물건에 지저분한 사연이 담겨있기를 기대하며...

그래서 차태식이 내년에 8.15 특사로 풀려나 여전히 그의 판타지 이야기를 진행시켰으면 좋겠다.

PS>
- 정말 오랜만에 두 번 보고 싶은 한국 영화를 만났다.
- 이 포스팅의 제목 'image turner'는 이야기가 재밌어 계속 다음 장으로 넘겨대는 그런 소설을 뜻하는 'page turner'에 변형을 가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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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 The Man from Now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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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을 얼어붙게 만든다. 시종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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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셉션 - Ince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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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있으니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은 왠만하면 읽지 마세요!!


인셉션 미니멀리즘 포스터 : http://www.slashfilm.com


'팽이는 돈다. 약간 비틀비틀. 그래도 돈다.'

오래된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데커드'가 과연 레플리컨트(합성인간)인지 아닌지 딱 그 모양새다. 감독이 맞다라고 한다면 맞는 것이고, 아니라한다면 아닌 것이다. 그 뿐이다. 물론 감독은 영화가 만들어지고 처음 상영된 후 오랜 시간이 지나서 '데커드'가 레플리컨트라고 밝혔지만 말이다.

'크리스토퍼 놀란'감독의 『인셉션』은 플롯이 완벽할수록 재미가 반감되어지는 구조이다. 따라서 싹둑싹둑 화면에 가위질을 할 때 마다 논리적 구성에 대한 비논리적 상황이 증폭되어지고 관객은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뭔가 비어있는 구멍을 메꾸기 위해 머리를 굴린다.  

영화 시나리오의 가장 큰 줄기는 과연 한 사람의 마음을 바꾸게 만들 수 있느냐이다. 물론 어떤 정신이 이 사람 머리속에 숙주처럼 기생하여 마음을 정복하거나 상시적으로 조종하는 것은 아니다. 아주 작은 씨앗만 무의식속에 몰래 뿌려놓으면 된다. 의도된 행동을 하기 전에 무의식 속의 그 씨앗에 스위치가 켜지기만 하면 된다.

아주 멋진 아이디어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그 씨앗을 어떤 식으로 뿌려놓느냐이다. 다른말로 하면 기억의 조각이 어떻게 무의식 속으로 가라앉게 만드는 지이다.

영화상 무의식속으로 잠복해 들어가 벌이는 활동은 두가지이다. 하나는 무의식속에 잠재되어있는 정보를 얻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의식의 파편을 무의식속에 심어놓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동반되는 현상이 꿈이라는 작용이다. 무작정 머리속으로 들어가 휘젓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꿈이라는 프로토콜을 가동하여 그 안에서 나름의 브라우징을 한다. 하지만 꿈으로 들어가며 보여줘야만 하는 일련의 철학적 과정이나 물리적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몇가지 과정들에 대한 것들을 내 방식으로 상상해야만 했다.

이 영화의 특징은 공간 계층(layer)과 무의식 계층의 혼잡이다. 더우기 한 사람이 표적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또 다른 사람의 꿈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는 점이 이 영화의 매력적인 부분이다. 혼잡하긴 하지만 나름 순서가 있다. 공간 계층은 시간을 창조하며, 무의식의 계층은 물질을 창조한다. 공간만 만들어지면 의식이 시간을 만들어 일종의 가상현실이 된다. 또 무의식에 파편화되어있는 기억의 조각들은 물질로 재현된다.

흥미로운점은 논리가 필요없는 아니 비논리조차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무의식의 세계를 조정함으로써 현실의 인과율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환원적 논리를 표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흔히 꿈에서 나타나는 공간비약시간비약은 감독의 의도대로 앞서 말한 계층으로 분할하여 황당한 개꿈이 아니라 이야기가 진행되는 깨고 싶지 않은 꿈으로 바꾸어 놓았다.


Inception Maze by ~jcm-amorim


꿈속에서 전혀 다른 공간으로 또 시간으로의 비약은 빈번하다. 일례로 집의 현관문을 열었더니 공동묘지가 보인다는 것은 공간이 수직적으로 계층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수평적으로 나뉘어짐을 의미한다. 시간비약도 마찬가지이다. 더 깊은 과거에서 얕은 과거로 흘러오기 다반사다. 다시금 또 다른 깊이의 과거로도 도약한다.

감독은 이런 비약들을 수직적으로 단계적으로 분할함으로써 산뜻하게 선보였다. 그런데 시간의 분할에서는 일종의 프로토콜이 수행된다. 그것은 바로 현실 시간의 분주(demultiply)이다. 다시말해 감독은 시나리오에서 무의식의 세계조차 시간에 의존하게 만듦으로써 계층화시켜버린다. 분주[각주:된 현실의 시간을 무의식 세계의 시간으로 사용함으로써 말이다. 이런 환원론에 대한 이야기는 의식 세계와 무의식 세계와 상관없이 현실속 다른 프레임으로 얼마든지 변환할 수 있다. 현실의 프로토콜은 무의식 세계와 맞닿아 있는 톱니바퀴이자 하늘에서 내려뜨린 동아줄이다.

가령 우리는 밥과 국을 먹고, 또 반찬을 먹지만 우리안에 있는 또 다른 우리들 그렇지만 나와는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없는 전혀 다른 본질들인 세포의 레벨에서는 당분을 먹는다든지, 비타민을 흡수한다든지, 탄수화물, 단백질을 섭취한다. 심지어 원초적 세포 단계에서는 전자 한 개, 나트륨 원자, 칼륨 원자 한 개들이 들락날락한다. 그것들만의 타임라인에서 말이다. 우리는 그 전자나 원자를 다루기 위해 고기도 먹고, 빵도 먹고, 술도 먹는다. 이것은 의식과 무의식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지만 여전히 현실의 시간에 의존한다. 현실의 시간을 분주함으로써 말이다.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의 프로그래밍조차도 다르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클럭이며, 전원이다. 시간으로써 공간을 제어한다.

무의식 세계에 걸친 프로토콜의 끈을 잡는 순간, 현실과 가상세계에 맞물린 톱니바퀴들을 돌아가게 만들고  이런 프로토콜의 작용으로 인해 그 이전의 계층으로 복귀된다는 프레임은 실로 즐거운 이야기이지만 신선하다고는 말 할 수 없다. 눈 먼 시계공의 이야기가 아니라 눈 뜬 시계공의 이야기이다. 원숭이가 타자기를 치자마자 멋진 글이 나온다는게 아니라, 철저하게 숙련된 소설가가 나름의 지식으로 타자기를 쳐야만 멋진 글이 나온다는 이야기이다. 불확실성에 의존하며 카오스적인 상황이 수반되는 <쥬라기 공원>[각주:이 아니라, 치밀한 논리와 교묘한 트릭을 이용한 <오션스 일레븐>에 가깝다.

그래서 이 영화의 플롯(구성)은 내가 상상했던 것이 아니다. SF적이기라기 보다는 단순 액션물에 가깝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꿈 설계자(아키텍처)이다. 하지만 영화속 역할 설명은 불친절하다. 이야기를 만들지 않았다기 보다는 너무나 잘라냈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무의식과 꿈은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다. 무의식은 말 그대로 백지의 세상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무의식의 세상에서 꿈이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 세계에 퍼져있는 기억이라는 씨앗(감정이나 느낌)을 불러(load)와 비어있는 공간에서 꿈이라는 프로토콜을 통해 그 씨앗을 이미지화 시키고 물질화시킨다. 무의식이 공간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꿈이라는 프로토콜이 의식이 깃든 공간을 만들어낸다. 즉, 무의식은 파편화된 기억들의 씨앗이 이곳저곳에 널부러져 있는 조각모음 되지 않은 혼잡한 상태이다.

꿈 설계자는 조각모음을 얼마나 잘했느냐에 따라 더 치밀한 물질화된 세상을 구현할 수 있다. 물론 그 세상은 여전히 가상이다. 그러니까 꿈 설계자는 일단 표적이 되는 사람의 뇌 속의 비어있는 다른 영역을 확보하고 그곳에서 의식의 세상을 만들어놓고, 표적이 일단 경험하게 함으로써 무의식속에 표적 스스로가 씨앗을 심는다.

그러니까 꿈 설계자는 무의식으로 들어가게하는 것이 아니다. 의식할 수 있는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역할인 것이다. 표적이 활보할 수 있는 논리적 공간을 만들어 낸다는 의미이다.

다만 영화속에서는 이러한 것 보다는 이전 계층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복귀 프로토콜, 일명 '킥'을 얼마나 치밀하게 설계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이 역시 현실에서 분주된 혹은 제1단계 꿈에서 분주된 시간의 동기가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영화상에서는 약물을 통해 무의식의 세계로 점프하고, 설계 프로토콜에 의해 꿈 주인의 기억 파편을 의식의 세계로 불러온다. 이렇게 함으로써 꿈에 접속한다.

그런데 두번째 점프와 세번째 점프는 도대체 어떻게 이루어지는걸까. 그때도 당연히 약물을 주입한다. 그런데 문제는 꿈에서의 약물은 실제 약물이 아니다. 꿈속에서의 물질은 그 공간에서는 실제로 느껴지지만 결국 외부 관찰자 시각에서는 그 약물마저 가상이 된다.. 모든 것이 허구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약물은 처음 제조할 때 이미 시간 간격까지 생각하고 만들어낸 것일까? 그러니까 일정 시간이 지나면 프로토콜의 또 다른 작용으로, 킥을 준비할 인원(1명)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다시금 다음 단계의 꿈으로 접속하는 듯 하다. 즉, 꿈이 주는 랜덤한 시공간을 꿈 설계자가 준비한 고정된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 동일한 시공간으로 바꾸기 위해(혹은 랜덤한 꿈으로의 진입을 막기위해) 그들은 다시금 프로토콜에 접근하는 것이다. 다시 돌아가서 이 프로토콜은 여전히 현실에서 준비했을 공산이 크다.

내 생각은 이렇다. 원래 꿈의 단계는 1단계 밖에 없다. 더 깊숙한 공간으로의 침투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꿈속에서는 뭐든 일어날 수 있는 법이다. 다시말해 랜덤한 공간으로 점프한다던지 조종할 수 없는 어떤 현상에 봉착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설계된 꿈이란 이런 카오스적인 상황을 미리 막고 또 변수를 확실히 줄여주는 것, 그래서 꿈에서 다른 꿈으로 예정된 점프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게 내 상상이다. 최대한 계획된 그리고 고정된 액자식 꿈의 완성이 바로 영화에서 보여주는 꿈의 단계별 설정이 되는 것이다.

영화속에서 감독은 이러한 꿈 설계자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해주지 않는다. 다만 공간을 창조하고 가상의 물질을 창조한 새로운 차원의 공간을 만든다는 이야기만 할 뿐이다. 꿈 설계자가 만든 공간은 심지어 차원마저도 만들어낸다. 앞쪽의 건물과 도로들이 일어나서 수직으로 배치되어 있지만 그 도시를 가로지르는 자동차라든지 사람들은 그러한 변화에도 놀라지 않는 것은 꿈 설계자가 이미 신과 같은 공간을 창조할 수 있는 권한(authoirity)을 얻었다고 보면 무방하다. 4차원 속에서 3차원을 볼 수 있지만 3차원에 속해있으면서 4차원을 볼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럼에도 영화속 꿈 설계자의 활동은 미미하다.

따라서 완벽한 꿈 설계자일 수록 완벽한 공간을 창조하며 <다크시티>에서처럼 건물이 불쑥불쑥 생긴다든지, 또 건물과 공간이 사르르 사라지게 할 순 없다. 그런 일이 있다면 이미 꿈 설계자로서는 부적격자니까 말이다. 따라서 영화속 꿈 설계자가 완벽해지면 완벽해질수록 영화상에서 볼거리가 밋밋해진다. 최소한 인셉션의 프로세싱 과정을 시각적으로 어떤식으로든 표현했다면 정말 좋았을텐데.

꿈 설계자 다음으로 중요한 꿈의 방어기재의 역할이 미미하다. 방어기재야 말로 이 영화의 또 다른 백미이다. 하지만 방어기재의 표현은 사실 너무나 평범하다. 총들고 쏘는 일차원적인 방어만 할 뿐이다. 먼저 이 방어기재들이 있는 공간은 논리가 필요하지 않는 가상공간에 있음을 알아야한다. 그 말은 방어기재들은 주어진 자원을 최대로 활용해야한다. 방어기재들은 이미 꿈 자체이기 때문이다. 가령 땅이 꺼지게 만든다든지, 아니면 공간을 뒤틀리게 한다든지 말이다.


타임라인 http://www.slashfilm.com/2010/07/27/infographic-inception-timeline/


우리가 흔히 아는 꿈에서의 비논리적 상황은 꿈 속에서 아는 것이 아니라, 꿈을 깬 후에 안다. 그러니까 꿈 속에서는 그것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도 특별한 일이 아니다. 꿈 설계자는 비록 가상현실이지만 최대한의 노력으로 완벽한 논리적 공간을 창출해야 하며, 꿈속 방어기재는 설계자의 의도와는 반대로 역시나 최대한의 노력으로 비논리적 공간을 창출해야 한다.

즉, 이 영화는 논리적 공간과 비논리적 공간의 충돌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래서 영화속 플롯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영화의 큰 틀은 꿈이지만 표적이 최대한 그 상황을 현실적 그리고 논리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꿈을 깨도 꿈을 꿨는지 몰라야된다. 단지 무의식속에 가지고 있는 정보만 뺐길 뿐이다. 그런데 꿈을 깬 후에 꿈이라고 느끼면 말이 안되기에 최대한 현실 그대로의 모습으로 표적이 꿈에서 느끼게 해야한다. 아무튼 현실로 돌아왔을때 모든 것이 없었던 일처럼 평화로와야하고 나중에 인과적 상황을 만들어내는 스위치만 동작하면 되기에 영화가 쉽지는 않다.

영화는 SF이지만 영화 플롯은 <오션스 일레븐>과 별 다를바 없다. 얼마나 정교하느냐가 중요하지 얼마나 비현실적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는 좋지만 그것을 구체적으로 들어내면 들어낼수록 현실적 장치로 회귀될 뿐이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한계라고 본다.

사실 아쉬운점을 길게 적어내려가긴 했지만, 괜찮은 영화다. 왜냐하면 관객들에게 논리적이지만 비논리적인 어떤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딱 말이되게끔만) 관객들의 머리를 계속 쥐어짜기 때문이다. 어떤 글에서는 관객을 향한 감독의 인셉션이라고도 표현한 것을 보았다.

이 영화의 한계는 <매트릭스>이다. 내 짧은 식견으로 아무리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고 감독이나 배우들의 권위가 올라가도 매트릭스를 넘을 순 없다. 아니 매트릭스, 그 아래 단계까지만 가도 대단한 성공이다. 매트릭스가 대단한 것은 영화 자체(그러니까 컨셉트)를 넘어 하나의 플랫폼으로까지 진화해 버린 점이다. 기독교, 불교, 네트워크, 과학, 가상현실, 정보통신, 양자역학, 심리학 등등 어떤 카테고리를 넣어도 왠만큼 설명가능하기 때문이다.

주절주절 길게 떠들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딱 한 줄이다.

"매트릭스가 각성이라면, 인셉션은 각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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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d montreal 2010-08-01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많은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영화군여

쿼크 2010-08-01 23:45   좋아요 0 | URL
사실 영상보다는 대화에 집중해야하는 영화같아요... 물론..저는 자막에 집중... 사실 제 글은 잡설이라 뭐 영화 내용하고는 별로 상관없어요...
 
2012 - 2012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한달전쯤에 극장에서 2012를 보았는데, 그날 대충 블로그에 감상을 적었었다. 우선 뼈대만 적어놓고 수정하려 하였는데, 그 뒤 손도 안대고 있다 어제 아바타 리뷰 올려놓는김에 이것도 그냥 올려본다. 한달전에 봤지만 왠지 까마득한 이 느낌...2012는 좀 불편하게 봤다. 자리가 불편했다기 보다는 내용이 좀 불편했다...그래도 몰아치는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웃더라. 이거 걸작인데 하며...

            

2012를 보고 왔다. 한마디로 지구가 부글부글 끓어 리셋되어버린다는 내용. 리셋되는 만큼 CG의 영향은 거룩하다. 요즘 할리우드 대작 영화를 보면 돈 값은 하는 듯 하다. 내용이야 어떻든 러닝타임이 다들 길어 극장안에서 좀 더 오래 뻐딜 수 있게 되었다. 영화속 격정이 한차례 지나가면 따땃하니 잠이 솔솔오면서 몸이 나긋해진다. 등과 맞닿아 있는 진동의자가 나긋한 몸에 주기적으로 안마도 해주고...

나갈 때쯤 교훈도 하나 얻을 수 있다. 지구는 리셋되도 쪼다(등신, 혹은 루저)같은 놈들은 여전히 박멸되지 않고 쪼다짓 한다는 것을... 또 하나, 같은 과학자라도 정치가와 연계되어있는 과학자는 살더라는. 뭐 이렇게는 적었지만 단편적인 것일뿐...

소니 픽쳐스에서 제작해서 그런지 그놈의 바이오 제품이 등장하는데, 기묘한것이 영화상에서 노트북이나 모니터 화면을 보는 내용에서는 나는 무의식중으로 브랜드를 확인하고 있었다. 또 SO*Y인가? 혹은 또 V*IO하며...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게임을 보고 있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는데에 있다. 비행기나 자동차가 장애물(무너져가는 빌딩들, 파손되어 있는 자동차들, 도망치는 사람들, 화산재 등등...)을 피하는 장면은 격한 역정(땅이 솟거나 꺼지는 와중...)속에서 2D 비행기 슈팅 게임을 보는 듯 했다. 또 다양한 탈것들도 마련되어 있다. 비행기도 몰다보면 업그레이드도 되고, 암튼 착실히 득템해야 게임의 최종판까지 갈 수 있는 확률이 커지게 되는 구조이다. 주위의 NPC들과 가급적 많은 대화를 해보고 중요한 정보는 항시 체크. 그래야만 필수 아이템을 얻든지 관문을 통과할 수 있다. 특히 맵은 필수로 챙겨야함.

영화는 사실상 글로벌 경제의 위기를 말 그대로 '글로벌'의 물리적 위기로 치환해서 보여준 듯. 심화된 양극화의 끝을 말이다. 궁금한 것은 'ship'에 탄 하급 기술자들은 계속 하급 기술자이고, 정치가는 여전히 정치가이고, (아랍)왕자나 (영국)여왕은 계속해 초지배계층일까? 객관적 잣대로 보면 피라미드 위로 갈수록 위의 계층은 대단히 생산성이 낮게 보이던데...화폐 가치는 이미 제로인 상태일테고...계급화라는 질서를 정리하는 몫은 살아남은 정치가의 숙명일까?

극장을 나오면서 뒷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또 영화속 'ship'이 우주를 향해 나아갔다면 아마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피용'처럼 이야기의 구조가 흘러가게 되지는 않을까하는...

암튼, 뒷생각만 가득하니 머리에 이고 극장을 빠져 나왔다.

"뭔 놈의 대사들이 그리 긴지...." <-- 잘 봐놓고...딴 소리...


PS> 근데 마야인들의 정체는 도대체 뭐야? 얘네들 무서...예전에는 해리슨포드가 외계인(크리스탈 해골과 관련...)의 자취를 추적하게 만들더니, 이번엔 지구의 롤러코스터화를 예견하고...

얼마나 대단하길래 수천년전에 벌써 21세기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위해 떡밥들을 그리 뿌려댔는지...

대단 대단... 남은 떡밥 또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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