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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선 1 블랙펜 클럽 2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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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를 피해가려 노력은 했지만 사소한 몇가지는 드러난 듯 싶습니다. 하지만 이런것들은 책의 표지에 설명되어 있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책을 읽지 않은 분들도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될 듯 싶기도 한데, 물론 결말의 대한 스포일러는 없지만, 그래도 신경쓰인다면 무조건 넘어가길 권고합니다.

얼마전에 일본 도쿄의 아키하바라에서 무차별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인터넷에서 접한 이 뉴스에서 슬프지만 흥미롭기도 한 부분이 살인자의 성장과 관련한 보도였다. 그는 결국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것이다. 지극히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차츰차츰 네트워크의 링크를 끊어버리며 보이지 않게 되었다. 또 이번 범죄의 다른 속성으론 예고 살인이라는 것도 등장했다. 일본 미디어는 가정문제에서부터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까지 그의 하나하나를 분석하였다. 이런 행위는 잘못된 사회적 메커니즘으로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한 오작동 감지에 대한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일어난 것은 또 일어나기 마련이다.

네트워크에서 하나의 노드 혹은 객체는 다른 것들과 실타래같이 연결되어있다. 문제는 오작동을 일으킨 부분의 네트워크를 고쳐야는데 완벽히 고칠 수 없다는데 모든 이가 동의할 것이다. 오직 링크를 끊어버리는 역할뿐이 할 수 없다. 리셋이란 사실 우리의 군집에서 일어날 수 없는 행위이다(하지만 비슷한 의미로 갱생 혹은 개화라는 말을 쓴다). 그렇다면 격리뿐이라는 소리인데.. 이는 또 다른 메커니즘의 시작일 수 있다.


주말에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의 책을 읽었다. 이 책은 두권으로 되어있는 『검은 선』이라는 작품이다.

내가 추리소설이나 스릴러물을 읽고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특별히 작가가 말하고 싶어하는 소설속 주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떤 스토리로 전개되느냐가 아니라 스토리가 보여주는 재미이다. 재미가 없다면 사실 책읽기는 곤혹스럽다. 물론 이러한 스토리가 주는 재미위주의 독서 또한 또 다시 작가의 의미부여라는 소설속 주제로 회귀되는 경향이 있는것은 사실이지만 작가의 재능이 바탕이 깔려있지 않고서야 꺼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장르물을 애독하는 독자에게 좋은 작가는 우리에게 교훈이 아니라 재미를 주는 작가쯤으로 해석해도 무방하겠다.

그러니까  "이 책은 재밌냐?"라는 질문이 장르물에 있어서 매우 의미심장하고 중요하고 무서운 질문이다.
"볼만해" 나는 이 책에 대해 이렇게 답할 것이다. 정말 볼만하다.
"그러니까 재밌냐고?" 이렇게 다시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

장르물에서 재미를 추구한다는 사실은 당연한 듯 싶지만 어떤 양념이 첨가되었느냐에 상당한 무게감을 가진다. 따라서 쉽게 답할 성질은 아니다. 암튼 "볼만했다."

이 속에 쓰인 양념을 한번 살펴보자. 물론 무의미한 나의 해석이기도 하다.

작가가 바라보는 이 한 단어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전에 '악'에도 역사가 있을까? 물론 여기에서의 역사는 태고적부터 내려오는 계승적인 '악'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역사는 원인을 가리킨다.

한마디로 악의 원인이다. 원인이 있는 '악'은 '순정의 악'이 아니다. 어떤 '악'의 원인을 알았다면 '악'은 고칠 수 있는가?

가령, 정상적인 동작을 하는 기계가 있다고 가정하자. 어떤 부품이 빠지거나 고장난 것이라면 그 기계는 '순기능'을 잃고 만다. 물론 '기능' 자체를 잃어버리는 상태까지 도달할 수도 있겠지만(이는 마비라 부를 수 있겠다), 어떤 기계는 오동작을 할 것이고 이 기계는 속해있는 전체적인 메커니즘에 영향을 줄 것이다.

이러한 메커니즘을 한 네트워크를 구동시키는 시스템적 능력이라고 생각해보자. 그러니까 이 능력은 네트워크의 효율을 의미한다.

부품과 기계와 연관되어 있는 네트워크는 효율이 떨어지면서 점차적으로 이상 감지를 느낄것이다. 어떤식으로 처리를 할까. 소프트웨어적이라면 버그를 잡아야하고, 하드웨어적이라면 장비를 고치든, 교체하든 이런 기계적 수단을 써야 할 것이다.

네트워크가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면. 잘못된 부품이 범죄자라면. 이 '악'에 대한 처방을 우리 사회는 어떤 식으로 내려야 할 것인가? 당연히 리셋은 할 수도 없고, 부품 교체도 없다. 엄밀히 말해서 부품 수리도 없다. 범죄자의 개화는 수리가 아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악의 본능을 없앨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억제는 수리라 할 수 없겠다. 사회는 교육을 통해 억제를 가르친다. 사람들은 억제를 학습할 뿐, 본능을 버리지는 못한다.

『검은 선』에서 악의 원인은 무엇일까?. 물론 원인을 찾기위한 그의 탐구는 이 책 뿐만 아니라 세번째 시리즈까지로 이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만 본다면 단편적이고 부분적일 수 있겠다. 하지만 작가는 한가지를 말하는 듯 싶다.

악의 이력(hysteresis).


이력(hysteresis)은 간단히 말해서 외부적인 힘에 의한 어떤 물질의 성질 변화가 변화의 원인이 제거되었는데도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가지 않는 성질을 말한다. 이는 주로 물리학에서 쓰는 용어이다. 전자기학에서 나온다. 물론 공학이라든지 경제학 등의 여러 분야에서 쓰이기도 한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한가지는 나왔다. 앞서 말한 이력(hysteresis)이 그것이다. 이 소설에 대입해보자. 범죄자(이 소설의 주인공중의 한명이라 할 수 있겠다)는 어떤 원인에 의해서 악의 성질을 띄게 되었다. 그리고 원인이 고쳐졌든 어쨌든 이 성질은 그가 죽을때까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의 상태는 항상 악한 상태로 머물러있다.

두번째, 작가의 삼부작 중 그 첫번째는 이력이었다. 그렇다면 이 이력에 쓰이는 소재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 책의 제목인 '검은 선'이다. 그 중에서 '검다(black)'라는 것.

일반적으로 '검다(black)'라는 의미는 모든 색이 혼합되어져 있는 색을 말한다. 서로 다른 색이 섞이면 섞일 수록 더욱 짙어진다. 물론 이 색들중에는 흰색은 제외다. 흰색은 명도를 높인다. 그러니까 검은색은 한마디로 잡스런 모든 색들이 섞인 상태이다. 그리고 이런 상태는 통제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혼잡은 엔트로피를 증가시킨다. 생물에게 엔트로피가 증가되면 공통적인 사건이 하나 발생한다. 그것은 바로 죽음이다.

인간에게 피는 생명이다. 붉은피는 어느 한가지를 잃으면 색깔이 짙어진다. 그러니까 검게 변한다. 붉은 피를 유지하게 하는 한가지 것은 산소이다. 피가 산소를 가짐으로써 이 피는 신선한 피이고 피는 산소의 운반을 통해 여러 기관과 세포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그러니까 이 소설에서 검은 피는 통제되지 않은 죽은 피이다. 소설 속 범죄자는 피해자의 피를 빼앗음으로써 피해자뿐만 아니라, 모든 정황을 통제하려 한다.

이러한 통제 방식의 습득은 그의 어린시절의 정신적 학대에서 기원하며, 이 정신적 학대에서 피하는 방법을 그는 일시적으로 숨을 쉬지 않음으로 해서 깨우친다.

결국, 그는 후에 어른이 되어 몸속으로 산소의 공급을 일시적이긴 하지만 꽤 길게 차단시킬 수 있는 능력으로 발전시켜 무호흡 잠수 챔피언으로까지 성장한다. 그의 모든것은 산소의 통제이다.

세번째, '선(line)'은 무엇인가? 사실 선(line) 자체는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소설에서의 선은 역시 검은 이라는 형용사와 어울려야 하는데, 검은 선은 두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이 책에서 살인마로 나오는 '르베르디'의 직업과 관련되어 있다. 숨참는 것을 통제할 수 없는 선. 그것은 무호흡 잠수부가 최고로 내려갈 수 있는 한계이다.(사실 이 한계라는 것은 엄밀히 말해 계산된 추정값이다. 바다속의 이 한계선까지 잠수하였다가 다시 물 위로 올라와야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하나는 말 그대로 산소가 없는 피의 걸쭉한 향연. 즉, 뿜어져 나오는 죽은 피의 줄기를 말한다. 참고로, 이 소설속에서 범죄를 추적하는 기자인 주인공 '마르크'가  사건들을 종합하여 낸 책이 <검은 피>라는 제목이다.

책에선 숨어있지만, 의미있는 것들이 있다. 하나는 통제이다. 통제는 드러나지 않는 키워드이다. 이야기속에서 통제는 곧 산소와 관련되어 있다. 숨을 참는다는 것. 이것이 곧 통제이다. 소설속에서 '사스(SARS)'라는 질병이 나온다. 이 질병의 정식 명칭은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이다. 산소가 개인간의(혹은 개인의) 통제의 의미로 쓰였다면, 사스는 거대 집단의 통제의 의미로 쓰인다. 바로 국가와 사회라는 집단이다.

'르베르디'가 수감되어 있는 교도소는 말레이시아에 있는데, 소설 속 배경은 한창 중국과 홍콩, 대만을 위주로 하여 동남아시아에 '사스'가 한창 맹위를 떨던 때이다. 그때의 '사스'는 이 소설에서 말하는 악과는 또 다른 성질의 소재이다. 이 질병이 교도소에도 위세를 떨쳤는데 수감되어있는 범죄자들도 질병의 무서움을 톡톡히 인식하고 있었다. '악인'들도 공포에 떨게한 것이 바로 '사스'이다. 사스는 거대하며 근원적인 악이다. 원인도 없는 악이다. 물론 악당 주인공인 '르베르디'는 이 사스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몇가지 할말은 있는데, 이는 스포일러와 직접 연관되어 있어서 이 포스팅에는 쓸 수 없을 듯 싶다.

스포일러와 관계없는 한가지만 더 말해보자면, 과연 산소가 통제니 뭐니 그랬는데 과연 산소는 무슨 의미일까. 산소는 바로 '독(毒)'을 의미한다. 산 소가 아이러니한 것은 우리가 숨을 쉬며 생명을 이어갈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우리를 죽음으로 인도하는 무서운 산화제이다. 생명체는 양초와 같다. 양초는 자신의 몸을 태워서 불을 밝혀주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산소를 호흡해서 피를 통해 우리에게 에너지를 공급하지만 그 찌꺼기는 우리에게 독이된다. 이와같은 산소의 이중성을소설에서는 진실과 거짓이라고 내포하였다. 산소를 마시면 살 수 있다는 것은 또다른 거짓이다. 바로 영원성에 대한 거짓이다.

결론을 말한다면, 산소가 가지는 이중성과 통제의 의미. 그리고 검은 선을 추구하려는 범죄자 '르베르디', 그리고 악에서 구원받은 또 다른 여자 주인공. 그리고 이들을 맺어주는 기자인 '마르크'. 이 모두가 하나씩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악'과 관련하여...

<덧붙임>

1. 작가에 관하여....

작가인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는 르포를 썼던 저널리스트였다. 그래서 그런지 소설을 쓰기 위해 불러들이는 그만의 소재는 다양하다.  범주를 크게 잡으면  인문학과 자연과학 그리고 사회과학으로 나눌수 있으며 특히 내가 좋아하는 분야는 '과학'분야이다.

그가 인기를 얻어 이름을 떨치게 한 소설 『크림슨 리버』' 우생학'과 관련된 생명공학을 소재를 불러들였다. 『크림슨 리버』도 재미있는 의미를 가진다. 리버는 강을 뜻하는데,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강은 바로 유전적 형질을 의미하며, '크림슨'이라는 뜻과 합쳐져 '피'를 뜻하게 된다. '크림슨 crimson' 은 다름아닌 붉은 계통의 색을 뜻한다. 진홍색이라고도 한다. 참고로 유명한 잠수함 영화『크림슨 타이드』의 '크림슨'이라는 단어도 이 단어이다. 붉은 색이라는 뜻. 연관되어 하나 덧붙이자면 이 영화보다 더욱 갈채를 받는 유명한 잠수함 영화가 있다. 그 영화는 『붉은 10월』이라는 영화로 '존 맥티어난'이 연출하였으며 , '숀 코너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물론 이때의 '붉은'은 원제에서는 'red'이다.

『크림슨 리버』는 영화로 봐서 소설로 읽진 않았지만 영화보다 소설이 더욱 강렬할 듯 싶다.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의 또 다른 소설은 『돌 의 집회』와 『늑대들의 제국』이 있다. 『돌의 집회』는 핵융합과 관련된 소재가 쓰였다. 그리고 『늑대들의 제국』은 뇌과학, 특히 기억의 조작이라는 과학기술이 사용되었다. 아무튼 그만큼 이 작가는 여러 분야, 특히 과학과 관련된 소재를 끊임없이 사용하고 있는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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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광인 - 상 - 백탑파白塔派, 그 세 번째 이야기 백탑파 시리즈 3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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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 스포일러가 들어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책을 보실 분은 이 글을 읽어보지 않으심이 현명하실듯...**


드디어 '김탁환'의 『열하광인』(2007, 민음사)의 마지막 장을 읽음으로써, 일명 '왕과 나' 트릴로지(trilogy)를  완결지었다.'왕과 나'는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열하광인』을 내놓기 전에 붙인 '가제'로 알고 있다.(2편인 '열녀문의 비밀'에서 언급되어 있다.) 가제인 '왕과 나'를 내리고 결국 '열하광인'으로 바꿔단모양인데 이 3부작을 마땅히 가리킬 말이 없어 내 임의대로 '왕과 나'라 가칭해본다.(KBS의 '왕과 나'라는 사극과는 별개이다.)

여기에서 '왕'은 곧 정조대왕을 가리키고, '나'는 왕의 종친이자 의금부 도사인 이 책의 주인공 '이명방'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왕과 나'는 의금부 도사의 미션수행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암행어사와 관련된 것도 아니고, 정조와 이명방 중심으로 풀어가는 이야기도 아니다. 사실 3부작의 완결에 이르기까지 정조는 그 캐릭터가 뚜렷이 드러나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냥 흐릿하다.

소설 읽어가는 눈높이를 시종일관 왕의 신하인 이명방의 눈높이에 맞추어서인지 정조는 그리 특색있게 나오지 않는다. 작가가 왕의 의중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놓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작가야 직접 인물들의 내면까지 들어다볼 수 있는 전지전능한 힘이 있음에도, 이 권한을 내려놓고 (작가가) 백탑파의 일원에게 논리적 성찰을 줌으로써 정조의 실체를 한꺼풀 덮어버린 듯 하다. 이 성찰은 이명방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앞서 트릴로지라 언급했는데 이는 소설 자체보다는 소설을 그려내려한 작가의 노력과 공들인 시간에 대한 나의 칭찬이다. 3편의 이야기를 무려 6년에 걸쳐(2년마다 하나씩 내놓았다) 풀어놓았으니, 작가의 말대로 소설속 인물들도, 작가도, 독자도 모두다 같이 늙어갔다. 물론 외국에서야 이런 구성이 많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지극히 드물것이다. 그래서 작가의 공로를 높이 산다.

하지만 소설의 대미가 크게 와닿지 않아, 3부작의 완결이 그렇게 아쉬웠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행인지조차도 모르겠다.

소설의 무게가 한 곳에 쏠리지 못한 느낌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소설의 큰 축은 4개로 구분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들 4개의 축중에서 이야기를 떠받치고 있는 '왕과 나'라는 축이 있겠다. 하나는 정조이고 나머지 하나는 이명방이다. 그리고 그 외 나머지 두개의 축은 노론이라는 축과 백탑파의 축으로 나뉠 것이다. 이야기는 흥미롭게 전개되기는 하나, 그 축에 쏠리는 중심은 사뭇 가볍다. 노론은 거의 등장하지도 않고, 오직 캐릭터들의 상상 저 너머에서 존재만 한다. 정조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역할 만 하고, 이명방은 그 메시지를 전해주는 역할만 한다. 사건이 이명방을 따라 일어나기는 하지만, 사실 사건과는 독립적이다.(소설속에서 아무때나 죽어도 된다. 결말을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이명방은 전체 스토리를 지배하고 있다. 좀 모순같기도. 이명방은 그냥 소설 속 장치일 뿐이다. 백탑파는 소설속에서 그 세력이 많이 약해진바, 백탑파는 단순 퀘스트일뿐이다. 주인공인 이명방을 성장시키는 미션수행이라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사건해결은 이명방의 손을 빌리지도 않는다. 작가는 이명방의 행보에만 유독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줌으로써, 독자에게 제대로 된 추리를 내리지 못하게 하고 계속 알쏭달쏭하게 만든다. 사실 별것 없는 사건이고, 추리이다.

모든 캐릭터는 대립관계도, 공생관계도 아닌 좀 흐지부지한 관계이다. 특히 대립관계가 매우 약한게 흠인 듯하다.

전지적 시점을 가지고 있는 '김진'이라는 인물은 모든 사건을 해결하는데에 가장 큰 공을 세우는 존재이다. 하지만 앞의 2부작보다는 다르게 이번 3편에서는 그의 등장과 활약이 부자연스럽다고 할까? 내용 초반부터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지 마치 작가의 강한 개입으로 뿐이 보이질 않는다. 물론 이야기에 활력을 불어넣고, 독자들의 몰입을 더 기대할 순 있게지만, 너무 '한방'이다. 김진의 노력이 보이질 않는다. 사건을 해결하는 인물은 김진인데, 화면은 김진을 비치지 않고 엉뚱한데를 비추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계속 이명방만 비춘다.) 독자가 화면밖을 의식하지 않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화면안에서 김진만을 애태우며 기다릴 수도 없다. 이야기의 구성이 조화롭지 못하고, 또한 임팩트가 분산되어버린다.

비록 김진이 사건을 해결은 하나, 역사를 배경으로 하였기에 모든 갈등이 해소되어지지는 않는다. 이 해소되지 않은 사건의 마무리는 결국 이명방이 짓긴한다. 이명방은 주인공이지만(사실 주인공인지조차 의심스럽다), 김진을 부각시키려는 장치일 뿐이고, 김진은 주인공은 아니지만, 작가 자신을 위한 장치(갈등부를 빠르게 수습시키려는 장치)임을 고려하면, 이 둘의 조화는 앞선 2편보다는 좀 더 못하다. 같은 공간을 점유하는 둘의 행보가 많은 부분 생략되어 있는 것이 아쉽다. 책의 분량도 사실 그 당시 조선의 배경이나 사상을 생각해서 보게끔 여유도 주지 않는다.

이 소설의 주제는 "군왕은 군왕의 편일 뿐이다" 라는 것인데, 군왕은 실종되어 있고, 결국 남는 것은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대한 소개만이 남는다.

이렇듯 많은 부분에 있어서, 특히 추리라는 장르적 부분과, 역사성이라는 서사적 구도가 매끄럽지 못해, 캐릭터들의 특성을 많은 부분 중화시키기는 하지만, 흥미를 이어가고 있기는 하다. 앞서 언급한 것들은 그 흥미를 조금 갉아먹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차피 『열하광인』은 앞의 2편의 이야기들의 힘을 어느정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열하광인』을 독립적으로 보고 싶진 않다. 비록 '왕과 나' 트릴로지의 3부작의 마무리가 다소 미진하기는 하였으나 의미는 있다고 생각한다.

계속 궁금증이 일어나는 것이, 과연 몇 가지 에피소드를 가지고 한 시대의 풍경과 당시 인물들의 활약에 생명을 부여한 한국의 작가가 있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나의 경우에 있어서 2006년부터 읽었지만, 그 전부터 읽어왔던 독자들은 나보다는 더욱 애정이 깊으리라는 생각이다.

작가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이 시리즈의 (또다른) 시작을 장식하고 또 한국 소설계가 보여주고 있는 스펙트럼의 확장을 위해서라도 '화광 김진'의 가상인물을 바탕으로 한 '번외편'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작가의 특별판이라 해도 좋다. (나만의 거창한 생각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한국의 소설계와 작가 자신에게도 하나의 이정표가 되는 것이다.


<덧붙임>

1. 이 소설은 3부작이긴 하나 그 간극이 너무 떨어져 있다. 시간의 흐름이 너무 빠르다. 이는 분명 소설속 정조의 태도변화라는 중요한 역사적 배경을 (세가지 이야기만에) 도입시켰지만, 소설 속 양념으로 끝난 느낌이다. 그래서 그런지 소설의 마무리에서는 못다한 정조의 꿈을 정말로 꿈꾼 것 같이 만들어  '몽유소설 夢遊小說' 의 느낌을 받게 만들었다. 대단한 정치의 장이자 활극의 무대였던 그 당시 역사라는 공간을 밋밋하게 중화시켜 버렸다.

2. 다음 '김탁환'의 소설은 더욱 더 짜임새가 있었으면 한다. 재밌게 보았는데, 남는 게 그리 없다. 비록 추리소설이라고는 하지만...

3. 정말 '김진'의 활약을 바탕으로 한 조선판 홈즈도 나왔으면 한다.


4. 백탑파 그 첫번째 이야기에 대한 나의 리뷰(『방각본 살인사건』)

5. 백탑파 그 두번째 이야기에 대한 나의 리뷰(『열녀문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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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1
이시다 이라 지음, 김성기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폴 오스터'가 각본을 맡고, '웨인 왕'이 감독을 맡은『스모크 Smoke라는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이 영화와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라는 소설의 공통점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오히려 이 둘이 가지는 장르의 갭(gap)이 크다. 하지만, 『스모크 Smoke를 언급한 이유는 바로 이 소설이 '거리'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스모크 Smoke에서는 10년동안 뉴욕의 한 거리를 매일 한결같이 찍는 이야기가 들어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영화의 이야기는 이게 전부는 아니지만...
 
이 소설은 <이케부쿠로>라는 거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것도 서쪽을 중심으로 말이다. 그곳에는 서구(西口) 공원이 있다. 참, 우리의 열혈청년인 주인공 '마시마 마코토'는 이 이름을 쪽팔려했지? 그래서 마코토와 그 친구들은 '웨스트 게이트 파크'라 부른단다. 빛나는 이름이다. 푸핫....
 
이 글 시작부에 좀 폼나는 영화를 들이대며, '빛좋은 개살구' 마냥 글을 시작했지만, 앞서 말한바와 같이 『스모크 Smoke는 불현듯 생각난 영화이고, 정말 이 소설과 어느정도 공감가는 영화가 있다면,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이라는 꽤 긴 이름의 우리 영화이다.
 
한마디로 우리의 주인공 마코토는 홍반장이다. 동네 시끄러운 일이 있으면 알아서 척척 해결해주는 홍반장... 그런데 이 소설속의 사건 사고가 그리 가볍지만은 않다. 아니, '그리'는 잘못됐다. 이 거리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가 꽤나 묵직하다.
 
다시 이 소설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예전에 이와 비슷한 장르의 일본 소설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 소설의 이름은 '미야베 미유키'의 『스텝파더 스텝이라는 책이다. 재밌게 읽었지만, 약간 아쉬웠던 것이 다 읽고나서, '머야? 이게 끝인가?'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만큼 다른 이야기가 후속작으로 없던것이 아쉬웠는데, 지금 리뷰를 올리고 있는 소설 『이케부쿠로~는 연작소설로 우선 3부작으로 '황금가지'출판사에서 출간을 하였다. 1부는 지금 이 소설이고, 2부는 『소년 계수기 -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2이며, 3부는 『뼈의 소리 -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3이다.
 
그만큼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분량이 꽤 된다.
 
다시 소설로 돌아와서, 이 소설은 대학 가는 것 자체가 굉장한 일이고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중도탈락하는 학생도 3분의 1에 해당될 정도로 많은, 이케부쿠로 거리의 어느 한 고등학교를 대단하게 졸업한 뒤, 백수로 있으면서 그의 어머니가 운영하시는 과일가게를 돕고 있는 청년 '마시마 마코토'의 이야기이다.
 
거리가 거리인만큼(대단한 유흥가...) 크고 작은 사건들이 떠들썩하게 일어나는데, 주인공 마코토와 같이 백수로 있으면서 나날을 우울(사실은 심심하게..)하게 보내는 친구들이 마코토를 도와 그 지역의 사건 사고를 해결하는 이야기이다. 이 사건 사고가 뭐냐하면, 원조교제 하는 여자아이들을 처참하게 살해하는 미친자식을 추적하는 일, 납치된 야쿠자의 딸을 찾아 행방을 수소문하는 일, 불법체류자를 숨겨주는 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케부쿠로의 '션샤인 시티' 지역의 두 패거리들 사이의 다툼을 중재하는 일등...총 네가지의 이야기가 에피소드식으로 나열되어있다.
 
일본 소설이 가지고 있는 문학성을 떠나 그 재미면을 보자면, 사회적 문제들을 작가의 위트와 기발한 상상으로 다시금 해석하면서 고발하는 식이다. 일종의 무거운 소재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것인데 사실 무거운 분위기를 떠나 재밌다. 그리고 역시나 기발하다.
 
이 소설은 이미 일본에서 애니메이션과 만화책 그리고 드라마로 제작되었는데, 특히 드라마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그리고 주인공이 누구인지 정말 궁금하다. 가끔 일본소설이나 만화를 드라마로 제작한 것을 보면, 좀 밋밋한 경우가 있는데, 과연 어떨지 보고 싶을 정도이다. 왠지 이야기에 빠져 들어갈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이 소설이 무거운 사회의 문제들을 꺼내어 보기 때문에, 가령 꽤 유명한 일본 드라마인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개의 별과 같이 시종일관 무겁게 흘러갈 수도 있지만, 주인공과 그 친구들의 엉뚱함 때문에 의외로 가벼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 가벼운 분위기안에서 재밌게 풀어쓴 일본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참...한번쯤은 정말로...'이케부쿠로' 거리를 정말로 거닐고 싶다...꽤나 흥분될듯......
 
<덧붙임>
 
1. <이케부쿠로~>의 TV site 바로가기...(꽤나 예술적이다....나 혼자만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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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마술사 1 링컨 라임 시리즈 9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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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책 읽으실 분들은 무조건 패쑤~ 하세요...
 
이 글 제목을 '반전의 마술사(= 제프리 디버)가 펼치는 마술의 향연'이라고 적기는 했지만, 사실 반전이 무어냐에 따라 조금 거리감이 있을 수 있다. <제프리 디버>는 말 그대로 반전의 마술사이다 . 그의 작품 속에서 반전이란 시시각각 범인을 지목하는 나침반의 바늘이 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글을 읽어 내려가며, 범인은 이 사람일꺼야..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그 인물이 범인과는 맞지 않는다. 아니, 순식간에 상황이 변해버린다.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시리즈를 읽다보면 바로 이런 인물들이 소설속에서 겪고있는 상황에 대한 역전 현상이 반전으로 나타난다. 말 그대로 범인과 <링컨 라임>의 두뇌싸움이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사라진 마술사』('디버'의 2003년 작이긴 하지만...)는 상황이 좀 다르다. 범인이 달라짐으로써 반전이 되는 것이 아닌, 범인의 행보에 따라 이야기의 흐름이 달라진다. 그러니까 범인을 쫒는 주동인물(<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를 제외하고),과 반동인물들이 가지는 상황이 실제로 반전 다운 반전은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해도 큰 무리는 없으며. 범인은 시종일관 그 '놈'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지금까지 나온 몇 편의 <링컨 라임>시리즈는 항상 범인이 변하였다. 그렇다면 작가인 <제프리 디버>는 어떤 식으로 그의 작품의 성격을 유지(독자들이 범인을 지목하게 유도한 뒤, 나중에 그것을 뒤엎어버리는...)하면서, 기존 작과는 차별을 두었을까?
 
그것은 사건의 '범인'의 형체를 숨겨두는 것에 있다. '범인'은 마술사이다(이것은 스포일러는 아님...). 그는 카멜레온 처럼 항시 변한다. 그러니까 범인은 '그 놈'이지만, 결코 전과 똑같은 '그 놈'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이 <제프리 디버>의 전작과는 큰 차이점인듯 싶다.
 
『사라진 마술사』로 <링컨 라임>시리즈와 첫 대면하든, 다른 이야기로 대면하든...확실히 재미는 보장된다. 그런데 계속 그의 작품을 읽어와서인지는 몰라도 머랄까...실망스러운 점은 결코 아니지만 기대 이상으로 무엇을 보여주는 것도 아닌 듯 하다. 예전 『돌 원숭이』편을 읽을때에도, 크게 변하지 않는 소설의 형태는 나중에 왠지 '독(毒)'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머랄까...작가의 '매너리즘'이라 해야하나? 아무튼, 그리 오랫동안 머릿속을 맴돌면서 까지는 아니었는데,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는 머릿속 다른 한켠에 이러한 생각들이 계속 자리잡고 있었다.
 
<제프리 디버>의 소설 <링컨 라임>시리즈의 주인공인 <링컨 라임>은  신체가 마비되어(가슴 아래쪽부터 전부...) 손가락 하나만을 움직여가며 그의 최첨단 실험실(혹은 병실...)에서 사건을 진두지휘한다. 그의 조력자이자 사랑을 하고 있는 <아멜리아 색스>는 <링컨>의 손발이다. 그런데 이 상황은 쉽게 변할 사항이 되지 않는다. <링컨>이 기적적으로 일어서지 않는 한, 이 소설의 구조는 아무래도 이대로 계속 갈 듯 싶다. 그래서 이 소설은 범인의 프로파일링이 중요하며, 사건 현장에서 얻은 단서로 다음 사건을 막으려 하거나, 추격하게 되는데... 문제는 항상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것이다. 앞서도 지목했던 그 '독(毒)이 바로 <링컨 라임>(혹은 '나는 놈')이다. 그는 비록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소설 후반부에 가서는 항상 범인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까..이 시리즈가 거듭되면 거듭될 수록 독자들은 그 독(毒)에 점점 중독되어 소설의 맛을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조금은 염려가 된다(물론 이 시리즈의 세가지 이야기 -『곤충 소년』,『돌 원숭이』. 『사라진 마술사』-가 한 해(2006년)동안 모두 출간되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다. 출간되는 시간 간격이 조금만 넓었더라도 이런 생각은 옅어졌을지도...물론 나를 포함한 그의 책을 빨리 보고 싶은 독자에게는 다행일 수도 있었겠지만..).
 
아무튼 이번 이야기는 거의 <링컨>에 맞먹는 범인이라는 점, 그리고 그 범인은 결코 자신을 숨기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그 드러냄이 바로 마술의 효과와 같이 쓰였다는 것이 이번 작품의 특징이라면 특징일 것 같다. 마술을 보여주기 앞서 항상  마술사의 이곳 저곳을 보여주지 않는가(숨긴 것은 없다라면서...). 범인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을 따라오게 함으로써(마술의 효과와 같은), 범인은 관중(경찰과 <링컨>의 팀들...)의 눈 앞에서 마술의 방법을 부리는 것이다. 홀연히 사라지는...
 
<제프리 디버>는 이 소설을 통해 그만의 보여준 효과와 방법들을 최대한 이용한다. 자신의 소설(<링컨> 시리즈)에서 항상 제한된 정보와 단서로 사건을 미궁에 빠지게 하는 것이 이 소설에서는 '미스 디렉션'(마술을 하기 위해 관중들의 시선을 일부러 다른 곳으로 이끄는 것. 그 짧은 시간 동안 관중은 잘못된 방향으로 시선이 향해 있으며, 순간 마술은 이루어진다. 예전에 -아마 지금도 유효할 듯...- 마술에서 '미스 디렉션'을 이끄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미녀'이었다)을 이용한다. 그 자신이 소설에 쓰는 기법을 소설 속 인물들이 향연을 펼치는 것이다. 서로 속고 속이고...
 

 
다음 <링컨> 시리즈는 내년 5월 쯤에 나온다는데, 그 때나올 신작은 어느 정도 다른 방향(순전히 독자의 이기심...)으로 전환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래봐야 내내 '미스 디랙션'과 '효과'와 '방법'들로 이루어져있긴 하겠지만 말이다.
 
암튼, 이번 편 역시 정말 재밌는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재미는 보장한다. ~~
 
2006.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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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1 밀리언셀러 클럽 51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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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장편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통 그의 작품들은 영화로 보곤 했었다. 이번 『셀』은 상당히 기대를 많이 한 작품이었다. 이 책을 읽기전에 이미 읽었었던, 알수없는 '괴물'의 습격을 소재로한 그의 단편 『안개』나 핵전쟁으로 세상이 파괴된 후, 갑자기 출현한 '뱀파이어'와의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하는 한 남성을 그린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를 상당히 재미있게 봤기 때문에 『셀』에 거는 기대는 상당하였다.
 
또한, <조지 로메로>의 『시체들의 새벽 Dawn of the Dead』과 같은 일명 '시체 시리즈'를 책으로 보진 않았지만, 익히 그 명성을 들어왔기에(그리고 '좀비'가 등장하는 영화의 유사 작품들을 흥미있게 봐왔기 때문에...) 이런 여러가지 호러적인 것을 섞어서 만든 『셀』은 무엇보다도 먼저 봐야 할 작품이었다.
 
<스티븐 킹>은 그의 이야기가 시작되기 앞서 책의 속표지에 '리처드 매드슨과 조지 로메로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라는 경애의 문구를 써 넣었다. 그만큼 <스티븐 킹> 작가 자신이 이 두 작가에게 많은 영향을 받아왔고, 후배 소설가로서 이들 선배들에게 굉장한 신뢰와 존경을 듬뿍 보내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특히 <스티븐 킹>은 <리처드 매드슨>의 작품을 읽고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는 말을 할 정도이기에, 이 두 작가를 이 작품에서 거론한다는 것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창조되었지만, 작품에 대한 무한한 열정과 재미에 대한 보장을 스스로 내비치고 있는거나 마찬가지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과연 그럴까?
 
그의 전작들을 읽지 않아 머라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의 단편집 『스켈레톤 크루』와 비교해도 그의 초반 러쉬는 대단하다. 내가 지금까지 느껴왔던 <스티븐 킹>보다는 한 템포 정도 빠르게 본격적인 궤도에 도달한 듯 싶다. 독자가 주인공을 느끼고, 작가가 주인공을 소개할 틈도 없이 바로 그냥 소설속 태풍에 휘말려버린다. 그의 영원한 테마인 '호러'속으로...
 
한번의 격정이 지나간 뒤(태풍이 휘몰아치고 잠시 숨죽이려 잠잠해진 뒤...), 그의 이야기는 서서히 발동이 걸린다. 그제서야 주인공을 돌아보고, 주인공과 같이 할 주변 인물들도 돌아봐진다. 그리고 소설은 주인공과 그 친구들로 다시 시작된다.
 
하지만, 문제(?)는 그 뒤다. 그의 전매특허가 사라지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고 얼마 안가서(실은 여기까지가 거의 1권에 해당한다...), 조금씩 의문이 생긴다. 사건의 원인은 <스티븐 킹>의 독자에게 필요치 않다. 그리고 솔직히 그 해결도 필요치 않다. 그러니까 내가 <스티븐 킹>에게 바라는 것은 그의 고유의 필력(筆力)이 들어있는 '전개'이다.
 
근데, 이 소설은 조금 갸우뚱 거린다. 그는 호러 작가이지 SF작가는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SF를 데려와서 호러로 끌어들인 것 까진 좋은데, 과연 이 SF가 가지는 논리의 뒷감당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내가 이 책을 읽는 동안 가진 의문이었다. 소설은 어느 순간에 휴대전화를 하고 있는 불특정한 사람들이 휴대폰에 나오는 신호에 속박을 당해 그들의 모든 뇌속의 데이터가 포맷되어지는 것으로 시작되는데(여기까진 좋다...), 아쉬움을 느낀 것은 2권을 넘어 중반으로 가면서부터는 사실 이러한 SF적인 소설의 플랫폼이 전혀 필요없다는 것을 느끼고 나서부터이다. 그러니까, <리처드 매드슨>의『나는 전설이다』는 호러와 SF의 적절한 배치로 소설을 이끌었다면, 『셀』은 솔직히 별 중요하지 않은 SF가 호러를 어느정도는 잠식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소설의 길이가 길어진다면, 초반 이것저것 늘여놓은 것을 후반에 가서 처리하기엔 벅찰 수도 있다. 하지만, 『셀』에서는 솔직히 늘여놓은 것도 없는데 설명이 부족하다. 물론 『셀』의 완벽한 엔딩을 보려한 것은 아니다(따지고 보면, 이런 소설에서 엔딩은 삭막한 지평선을 떠오른는 태양하나면 충분하다). 단순히, 좀비가 되어버린 사람들과의 고군분투를 더욱 보길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일방적으로 당하던가...아니면 게릴라 전법을 동원하여 좀비들을 일방적으로 몰아세우던가...이 둘중의 하나를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일방적이었다가 어느 순간부터 일방적이지가 않는다. 『나는 전설이다』는 특히, 양 진영(인간 vs 뱀파이어)간의 서로 반복되는 일방적 타격이 상당한 재미를 주었다.  스포일러 때문에 머라 말 할 순 없지만, 어느 순간 주인공과 그 친구들, 그리고 좀비가 어우러지며 소설 속 사건이 주는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이 좀 아쉬웠다. 이야기를 끌어들이고 그 이야기의 전개의 모체 되는 사건들과 이런 사건 전개의 묘사는 탁월했는데, 마무리(사건의 마무리가 아닌, 말 그대로 책의 남은 페이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자각을 한뒤로...)로 돌아서며, 기대치로부터는 점점 멀어져만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셀』을 보길 원했던 가장 큰 이유는, 앞서 말한 『스켈레톤 크루』라는 단편집의 첫 이야기인 『안개』의 엔딩을 원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이 소설 『셀』은 나에게는『안개』를 대신한 소설이기도 하다. 그런데 왠지모를 엔딩의 방향은 『안개』마저도 같이 밟아버린 느낌도 들었다. 그래서 <스티븐 킹>은 『안개』를 단편(사실은 중편정도 되는 길이이지만...)으로 놔두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도저히 결말을 지을 수 없다는 심정으로...).
 
 
암튼...<스티븐 킹>이 생각한 엔딩이 최고의 선택일 수 있겠지만, 독자인 나에게는 상당히 약하게 마무리되는 호러라는 점에서 엔딩으로 가는 과정이 그닥 맘에 들지 않았다. 이 점때문에 100%의 완성도를 이끌었다고 보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웬지 모르게 <스티븐 킹>이 이 소설의 작가라는 사실은 마음 깊이 와닿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참, 이 글 제목이 '『셀』,『나는 전설이다』에 대한 오마주? ' 라고 하였는데, 솔직히, 상당부분 『나는 전설이다』의 구성을 따라가는 것 같다. 이 역시 스포일러 떄문에 말을 할 수 잆지만, 세대별로 나뉘어진 좀비가 그 대표적. 『나는 전설이다』에서도 새로운 종(種)이 출현한 것을 보면 말이다. 이 두 작품에서 가장 공통적인 키워드는 '생존'이다. 좀비든, 뱀파이어든, 인간이든... 다만, 『셀』에서의 좀비는 한차원 높은 '복제를 통한 증식'이라는 타이틀이 걸릴 듯...이점이 SF를 끌어들였음에도 오히려 호러를 망쳐버린 점이라 못내 아쉽다. 더 이야기하면 안될듯...
 
아무튼 『셀』은 이야기로 빠져드는 몰입도도 높으며, 호러를 일상으로 맞아들인 주인공들의 공허감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나는 전설이다』와 『안개』를 재밌게 보신 분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소설이라고 언급하고 싶다.
 
2006. 12.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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