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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에 지다 - 상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북하우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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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무라 간이치로...

한 낭사가 있었다. 그는 난부의 번사이었고, 또 난부의 탈번자이었다. 그리고 그는 메이지 유신의 격변기를 피와 눈물로 맞이한 신센구미(신선조)였다.

이 책은 '아시다 지로'가 20여년 만에 완성한 한 무사의 이야기이자, 그의 아내, 자식들을 끔찍이 사랑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다.

피가 흩뿌리고, 여기저기 시체가 널부러져 있는 전장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이다. 매우 거친이야기이지만, 그 속은 한 없이 따뜻하다. 

각 450여페이지나 되는 두권의 책이 주는 무게는 그리 가볍지는 않다. 하지만, 책속에 들어있는 뜨거운 전우애의 이야기이자,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주는 이 소설은 수많은 글이 주는 무거움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이 소설을 읽는 즉시, 한 무사에 동화되고, 이 무사의 족적이 궁금해져 쉽게 책을 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소설은 '요시무라 간이치로'가 '도바 후시미' 전투에서 간신히 살아남아 예전에 무사꿈을 키워왔고, 애틋한 사랑때문에 탈번했던...오사카의 난부 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하며, 이 시작부분이 그의 끝부분이다. 

과연... 이 사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 무게감이 느껴지는 두권의 소설은 이 사내를 추적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이 소설의 화자들을 통해 결국 도쿠가와 막부가 내리고 새로운 메이지 시대를 연 그 전쟁 후 50년이 지나 어느 신문기자(이 소설에선 이 기자의 말 한마디 조차 없다.)가 '요시무라 간이치로'라는 문무를 겸한 한 남자를 추적하고 밝혀내는 이야기이다. 당연히 요시무라와 조금이라도 옷깃이 스쳤던 여러 무사들과 주변인들(바로 이들이 '화자'이다)의 탐문으로 이 남자의 생애, 그리고 그 과정들이 낱낱이 드러난다.

초반부에는 요시무라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인물들은 그리 사건 중심적인 이들이 아니다. 말 그대로 잠깐 스쳤던 인물들이 내놓는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정확히 이 '요시무라 간이치로'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도저히 알 수 가 없었다. 그가 정의로운 사람인지, 무술이 뛰어난 사람인지..도대체...이 남자는 무슨 공적을 세웠는지 말이다.

그 수많은 전장에서 승리하고, 수많은 다른 무사들을 베어넘긴 이 남자는 이 남자에게 마지막 전투라 할 수 있는 '도바 후시미'전투에서 엄청 큰 부상을 당한다. 하지만, 그는 결코 할복하거나(이 시대의 이 상황에서는 가만 앉아 죽느니 할복이 가장 큰 명예였다..) 항복을 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아 전쟁터를 떠난다. 그리고 정신을 놓지 않고, 오사카의 남부 번에 들어간다. 제발 살려달라는 한 마디를 던지고 말이다. 그런데... 살아남기 위해('살기위해'라는 말과는 질적으로 다른) 들어간 이 오사카 난부 번에서 그는 할복을 한다.

보이지 않는 화자는 이 남자의 죽음으로 향한 이 과정을 캐어낸다.

갈수록 이야기를 풀어놓는 인물들은 일개 무사에서 점점 더 계급이 올라간다. 그러면 그럴수록 이 남자는 전설이 되어간다. 여러 사람의 이야기로 전개되어 가는 이야기 구조라 시간축은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다. 한 남자의 슬픔이 그려지는 가 하면, 어느 순간에 이 남자의 극도의 활약이 그려지기도 하며, 더불어 이 남자의 행복도 그려진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속에 사랑이 있고, 슬픔이 있고, 웃음이 있다.

이 책에 관한 리뷰를 다른 곳에서도 봤다면, 이런 문구를 한번쯤은 봤을 법도 할 것이다.

"절대로 공공장소에서는 이 책을 읽지 마라... 눈물 흘리는 당신이 매우 난처할 수 있다."라는 문구말이다.

이 '칼에지다' 상(上)권은 크게 동요할 만 한 것이 나와있진 않다. 하지만, 1권 후반부로 갈수록 절정에 이르고 2권에 이르러서는 그 격함이 밀려온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새벽탓을 많이 했다. 새벽에 읽으니..감정이 몰입되어 눈물이 흐른다고 혼자 자탄하면서...

이 소설의 가장 객관적인 소재는 바로 사무라이이며, 무사도에 대한 이야기가 중점이다. 이 무사도를 멋드러지게 묘사를 한 것은 무사도를 위함이 아니라, 바로 '인의'를 나타내기 위함이다. '충의'보다도 더 본이 되어야 하는 '인의'. 이 소설이 주는 재미는 바로 '충의'와 '인의'를 똑같이 보지 않고, 이 두개의 '의'가 교묘히 부딪혔을 때, '요시무라 간이치로'는 '충의'대신 '인의'를 선택하는데에 있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가장 큰 재미이자, 그리고 감동이 묻어나오는 부분이다.

        높으신 분들이 한결같이 말단 무사에게 죽어라 죽어라 다그치는 것은

        스스로 죽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던가.

        전장에서 죽는 것이어야말로 무사의 영예라니

        대체 어느 누가 그런 바보 같은 말을 시작했단 말인가

        내 나름대로 사서오경을 배우며 뼈에 사무치게 생각한 바가 있었다.

        공자님은 그런 말씀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주군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라고는 하셨어도

        충효를 위해 죽으라고는 하지 않으셨어.

        - p .237

그는 무예 뿐만이 아니라 문예 또한 출중하여...그는 그 자신의 고집을 '충의'가 아닌 '인의'에 묻어버렸다.

그래서 그는 전장이든 비밀임무를 행하든 죽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자신은 죽어서는 안되기에 그렇게 다른 이들을 베고 또 베고 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그가 원하는 것은 매우 소박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인의'의 중심이기에 어느 누구도 쉽게 행할 수가 없었다. 소박했더라도 말이다.

이 책에선 인터뷰를 통해 '요시무라 간이치로'를 보여주는 부분이 거의 대부분이지만, 그 반대로 '요시무라 간이치로'의 내면으로 들어가 1인칭 시점으로 바뀌는 부분도 있다. 솔직히 이 부분은 지금도 어렵다. 어떻게 3인칭에서 1인칭으로 들어가 화자가 주인공으로 될 수 있을지...그래서 감동이 더 클 순 있지만,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이것이 어쩌면..각기 다른 사람들의 기억들을 짜 맞추는 과정의 또 다른 연장선이 될 수 있다고도 느껴진다. 기억을 바탕으로 풀어낸 이야기들 이기 떄문이다. '기억의 객관성'은 존재하지 않기에...

이 책의 또 다른 묘미는 여러 인물들이 생각했던 사건들의 겹침이다. 어떤 이는 한 사건에 대해 짧게 말하는 반면에 다른 이는 그 짧은 사건속에서 궁국의 감동을 이끌기도 한다. 이것이 기억의 단편들이 주는 묘미이다.

그렇게...요시무라는 여러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조립되어가고, 다시 탄생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그를 겪었던 사람들에게 다시한번 전설로 끄집어 나오게 된다.

'요시무라'는 매우 현실적인 사람이지만, 또한 매우 이상적인 사람이다. 이는 그 사람의 성품이 좌우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가 딛고 있는 이 시대가 정하는 것이다. 시대에 따라...이 사내는 매우 이상적이면서 현실적인 남자로 거듭 태어나는 것이다.

이 책은 역시나 사무라이 이야기이므로 전투내지 칼싸움에 대한 묘사가 매우 진지하며, 흥미롭다. 감동을 잘 못느끼는 목석같은 사람이라도 이 부분에서 만큼은 책에 쏙 빠져들것이다.

이렇게 책을 통해... '아사다 지로'라는 작가를  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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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Road -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
박준 글.사진 / 넥서스BOOKS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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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자신의 꿈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은 지금도 길위에 있다. 이 책은 여행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엄밀히 말해서 여행기라고는 할 수 없으나, 결국엔 많은 사람들의 여행이야기, 인생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훌륭한 여행서라고 할 수 있겠다. 여행을 하는 이는 분주하다. 그러나 이는 여행을 하지 않는 이가 곁에서 지켜봤을때나 하는 소리고, 막상 여행을 하는 이는 조용하고 평화롭다. 왠지 삶의 무게를 배낭에 든 무게만큼 덜어낸 것과 같은 느낌이 감돈다. 특히, 장기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무엇이 이들을 여행, 그것도 장기여행으로 이끌었나.

이 책의 저자인 '박준'은 달랑 카메라와 EBS에서 지원받은 돈 몇푼을 가지고 여행을 떠난다. 그는 장기여행자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카오산로드로 떠난것이다. 비록 일과 관련되어 떠나는 여행이지만, 알지 못하는 여행자들을 취재하고 인터뷰를 하는 여행은 저자에게도 가장 기억남는 여행일 듯 싶다.
 
이 책은 단순히 경치나 보고, 관광을 즐기는 여행과는 거리가 먼 책이다. 이 책 안에는 사람이 들어있다.
 
이 사람들은 모두들 배낭을 짊어졌으며, 조용한 삶의 혁명을 바라는 그리고 그 혁명을 이끄는 사람들이다.
 
그가 왜 여행을 하게 되었고, 여행 하기전에는 무슨 일을 했으며, 앞으로 무슨 여행을 할 것이고, 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리고 여행을 한 뒤로 자신이 어떻게 바뀌어가고 있는지...단순히 여행의 이야기가 아닌 삶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인생은 기나긴 여정이다 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여행을 통해 자신의 삶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여정이어야 말로 인생의 시작이다. 새로운 인생. 여행은 그들에겐 큰 스승이다. 그리고 그 여행자 자신이 자신에게 큰 스승이다. 그들은 여행하고 있는 자신을 통해 자기발전을 스스로 느껴가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많진 않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똑같은 장소에 있지만, 각기 다른 이유로 카오산로드를 찾았고, 또 각기 다른 꿈과 희망을 품고서 그들의 나라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이들은 무엇인가를 찾고 있거나 찾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감이든, 바라는 꿈이든간에 말이다.
 
이 책은 외국 여행을 한번도 하지 못한 나같은 사람을 위한 책인것 같다.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언젠가는 '당신도 이곳에 동참할 수 있다' 라는 메세지를 보여준다.  그럼 나도 언젠가는 그들처럼 길위에 있겠지.
 
나도 이 책을 읽으며 언젠가 어딘가의 길에 있을 나를 상상해본다.
 
길 위에서 또 다른 나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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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나무 1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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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던지 역사관련 책을 읽다보면 역사가 주는 아이러니함에 놀라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역사 사건 현장에 어슬렁거리는 '우연성'에 대해서 역시나 깜짝 놀란다. 그것이 좋은 우연이든, 나쁜 우연이든지 간에 말이다.

나는 역사엔 그리 우연성이 깊게 작용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비록 그 때, 그 장소에서 우연처럼 보이지만, 이미 그 과거의 과거에 우연을 이끌어가는 깊은 연관된 작용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운명론'같이 생각하면 된다. 그 '우연'은 과거에 이미 시작된 하나의 작은 실타래이다라고...

그러니까..우리의 역사, 혹은 남의 역사가 그렇게 되었다는 것은 대체적으로 우연보다는 운명적(혹은 필연적)으로 이루어졌다라는 것이 나의 얕은 생각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나오는 여러 소재들을 한번 보자. 먼저, 세종대왕은 태종(이방원)의 셋째 아들이다. 그런데 그가 왕의 자리를 이어받은 것이다. 첫째, 둘째 형들을 제치고. 그리고 그 셋째 아들로 왕이 된 그(충녕대군으로 후에 세종, 그는 '이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정말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큰 업적을 남긴 그런 왕...아니...대왕이 되었다. 그 업적중에서 단연 으뜸은 역시나 우리글, 우리말인 '훈민정음'이다. ('한글'이라는 단어는 '주시경'박사가 처음에 썼다고 알고있는데..찾아보니..주시경 박사의 조선어학회의 동인지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함...)

이 부분은 역사적 아이러니이다. 이방원도 정종을 몰아내고 자신이 왕을 차지한 사람으로 그의 아들들 또한 적자계승의 원칙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리고 양녕대군(제일 맏형)과 효령대군(둘째형) 또한 스스로 왕위 자리를 욕심내지 않으니, 혹자는 그들이 현명하였다는 사람도 있고, 또 다른 자는 이미 서슬 퍼런 이방원의 눈엣가시로 남겨지기 싫어 스스로 멀리 했다는 사람도 있다. 어떤 작가는 고려를 멸하고 세운 조선의 뿌리가 근본적으로 쿠데타이기에(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는 말) 그런 왕위 계승은 이어 받지 않기 위한 하나의 계략(양녕대군은 미친짓을 했으며, 효령대군은 절로 들어간 것)이 아니었는가 하는 내용도 어떤 책 속에 들어있다.(아마...김진명의 '하늘이여 땅이여'라는 책일 것이다)

어쨌든, 세종은 왕위를 이어받았지만, 그 또한 힘겨운 날들 또한 있으니, 그의 장인인 심온의 역적 행위이다. 비록 심온이 후에 무고함으로 밝혀졌지만, 그의 식솔은 모두 관노로 배속되었고, 심온은 그 전에 이미 사사(賜死 : 사약(賜藥)을 마시고 죽다)되었다.

세종은 이미 그의 왕위의 적통도 불안하였고, 후에 무고로 밝혀졌지만 그의 장인쪽은 역적죄를 지었으니 그가 이룬 대업들은 더욱 그 의의가 클 수 있겠다는 생각이든다.

너무 역사 이야기를 하였는데, 이 책은 작든 크든 이 모든것이 소재이다. 또한, 그 후 세종의 여러 업적, 집현전을 세우고, 집현적 학사들을 채용하여 학문의 연구에 더욱 더 박차를 가하여, 농사직설, 혼천의, 간의, 자격루, 측우기 등등...헤아릴 수 없는 것들을 만들고 지었으며, 이 역시 이 소설에서 중요한 소재이다.

그러니까..이 소설은 마치 조각난 퍼즐을 맞추는 형식이다. 처음 이 조각들만 보다보면은 후에 큰 그림이 펼쳐졌을 시 분명 놀라게 될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처음 이 소설은 그리 특징있는 것이 아니었다. 세종의 업적 중 몇가지를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내놓은 소설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런 몇가지의 구실은 작으면 작은것대로 의미가 있고, 후에 큰 그림에 들어 맞추었을 때도 역시나 뺄 수 없는 그런 조각들이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이 소설은 처음엔 잘 모르지만, 후에 자신이 이 세종시대에 일어났던 사건에 흠뻑 젖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이 소설의 느낌을 말로 하자니 역시나 어렵다. 그렇다고 대놓고 말하면, 완전 스포일러가 되어 버리니까..어쩔 수는 없지만...

요즘에 우리가 듣는 말이 팩션(faction)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왜 이 팩션이라는 말이 이 소설에 어울리냐하면, 말 그대로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허구인지..도통 알 수 가 없다는 데에 있다. 물론 역사에 대해 잘 안다면, 어느정도 윤곽이 보일 테지만, 팩션이 가지는 장점은 허구를 가려내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상상이 정말 실제 존재했던 여러 정황들속으로 너무나 잘 녹아들어 그 허구라는 장치를 보이지 않게 하는 것에 있다. 이렇게 하려면, 작가가 조사했던 자료 또한 방대해야하고, 작가의 논리도 매우 정연해야 하며,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작가의 티나지 않는 글솜씨이다. 허구이든, 진실이든 소설 속에서는 한결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진실로 허구를 들어내지 않으며, 허구로 진실을 감추지 않는 그런 작가 본연의 기술이 있어야 할 듯 싶다.

예전에 '김탁환'의 백탑파 시리즈(마지막 3부는 내년에 나온다함)를 읽어보았다. 이 역시 재밌게 본 역사소설이지만, 읽으면서 팩션 자체에 대한 느낌이나 감상은 없었다. 그의 소설속에 자리잡은 인물들은 허구적 인물과 실체적 인물이 다 드러나 있으며, 그 소설속의 사건 또한 이게 진짜일까..하는 상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어본다면, 이게 사실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과 함께... 우리 역사가 주는 왠지 모를 분통함에 부가되어 독자 스스로 그렇게 믿기를 원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팩션은 작가가 만드는 부분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독자들이 그 소설을 진실로 믿길 원하는 그런 힘이 들어있는 것 같다. 재미를 원해서든, 옳은 바을 원해서든, 독자는 자신의 머릿속에 구상한 틀이 진실이고 정의이길 원하기 때문이다.

최소한 나는 그랬다.

<덧붙임>

역사가 주는 아이러니는 역시 세종이라고 비켜가질 않는 것 같다. 그 또한 태종의 3남으로 왕위를 이어받았지만, 그의 아들(후에 문종)은 세종의 장남으로 왕위를 이어받는다. 하지만, 몸이 병약하여 병으로 죽고(2년 4개월 동안의 재위), 문종의 아들인 단종이 왕위를 이어받지만, 그 또한, 숙부인 수양대군(후에  세조)에 왕위를 빼앗기고 물러나게 된다. 그리고 후에 죽음을 맞게 되고, 이로써, 세종 때부터 옆에서 보필하며, 세종의 뜻(실사구시)을 세우던 신하들은 사육신(성삼문을 비롯한...)이라는 이름하에 그들 또한 죽음을 맞는다. 결국 세종의 뜻은 이때부터 사그러지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세종 이후의 시대와 정조 이후의 시대가 비슷하지 않나라는 느낌도 든다. (이 소설의 느낌도 정조 시대의 느낌과 다르지 않다.)

물론..이것은 역시나 역사 일부로만 바라본 사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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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사랑 2006-08-28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 완전 공감입니다. 뿌리깊은나무 강력추천!!

쿼크 2006-08-29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사랑님..반갑습니다. 이 책 괜찮죠? 소설속 인물들의 성격만 좀 더 개성있게 처리해줬더라면..아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약간은 좀 밋밋하지 않았나 싶네요..^^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
안건모 지음 / 보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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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검소한 책을 읽은 것 같다. 하지만..내면에는 아픈 사연 만큼이나 웃음을 주는 이야기도 들어있다. 그리고 문자 그대로...커다란 용기 만큼이나 무식한 배포와 왠지모를 이 사회를 바라보는 냉담한 시선도 함께 묘사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안건모>씨는 서울에서 20년간 시내버스 운전을 하며 운전사로서 노동자로서 그리고 한 시민으로서 자신이 겪은 이야기들을 지금은 그가 몸담고 있는 <보리 출판사>에서 이 한권의 책으로 펴냈다.

저자의 거친 입담은 그가 살아온 내력을 대변해주듯 주저함이 없다. 단순히 그의 인생이 부침이 많았기에 그가 쓴소리 에 주저함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그를 혹은 이 시대의 아버지들을  사각의 꽉 막힌 공간안으로 밀어넣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왠지...노동자하면...그 반대 급부인 자본가가 떠오른다. 하지만...저자의 시각, 노동자의 시각을 떠나서...자본가나 정부 또한 하나의 거대한 억압 집단이 아니라, 이들 또한 개개인이 모인 무리에 불과하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서로 못잡아먹었듯이 안달이 나기 시작했을까?

이 책을 읽었기에 당연히 그 주된 시선을 노동자에 맞추어본다면...그들(자본가)의 이익은 노동자의 피와 땀에 비례한다. 반대로 그 시선을 자본가에 맞추었다면...노동자의 이익은 자본가의 이익과 비례하다. 여기에서 차이는 무엇일까...바로..노동자의 피와 땀이 노동자의 이익과 결부되지 않음에 있다.

저자는 시내버스를 운전하였다. 그들은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규정시간을 초과하면서도 그들의 제대로 된 수입을 얻지 못한다. 여기서 제대로 된 수입은 바로 법적으로 깨끗하고 이성적으로 사리에 맞는 수입을 말한다. 그런데...노동자(여기서는 버스 운전사)들은 사(使)측의 횡포에 말도 못한다. 오히려...그들의 장단에 울면서 어거지로 맞출 수 밖에 없다. 저자는 사측의 못된 행태와 더불어 노동자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한다. 바로 주인의식의 결여이다. 사측에 눈치보며 아부로 회사에 연명하는 일부 노동자들은 그들 개개인의 존엄성을 버리고 익명성이라는 쉽게 휘둘려질 수 있는 보이지 않는 힘없는 존재로 그들 스스로 전락하였다. 그리고 사(使)측 또한 노동자들을 무슨 기계부품 처럼 대하면서 그들을 관리자가 아닌 감시자로 자신의 지위를 격하시켰다.

회사가 각종 명목으로 그들이 온당 받아야 할 수당을 주지 않음에도, 결코 노동자들의 파업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탁상공론만 하는 정부가 사(使)측의 파업을 인정함에도, 노동자들은 결코 열외의 대상이 아니었다.  바로 자신의 일터에 주인의식을 갖지 못하는 그들 자신이 가장 큰 문제였던 것이다.

이 책은 사(使)측과 정부에 대한 섭섭함과 그릇됨에 대해 웃음을 유발하면서도 날카롭게 성토하고 있지만, 결국...그 웃음은 자신들을 향할때 그친다. 한마디로...사(使)측이나 어쩌면 들러리로 보여지는 정부를 비판함에 있어서는 웃어가며, 혹은 그들을 풍자해가며 이야기하지만, 막상 자신들을 낮추고 또 다른 자신들을 감시하는 노동자들 이야기를 할 때는 우는 것이다.

노동자 자신들을 높이는 방법으로 말 그대로 과격하게 들릴 수 있는 '투쟁'이라는 단어를 쓰자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찾자'는 것이다. 저자는 노동자들이 가져보지 못할 것을 내놓으라는 것이 아니라...받아야 할 것을 제대로 받자라는 말을 한다. 수당? 법적으로 그리고 사리에 맞게 받자는 것이고, 월차? 1년내내 한번도 쓰지 못한 것을 이젠 제대로 써 보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조합원 선거? 사(使)측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그런 단체가 아닌 말 그대로 조합원 혹은 노동자들을 위한 조합원을 뽑자라는 말이다.

말 그대로 이 책의 저자의 시선으로 본 내용들이다. 하지만...주절주절 내놓는 저자의 이야기들이 결코 거짓되거나 부풀려서 말하는 것이 아님을 나 또한 느낀다. 거짓으로 혹은 부풀려서는 이런 글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이 책이 심각한 책은 아니다. 정말 저자의 거친 입담과 더불어 투박한 말투가 이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만든다. 그리고 저자가 겪었던 여러 에피소드들은 웃음을 터뜨리게 만들기도 한다.

난...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봐줬으면 한다. 결코...이 책을 봄으로써 사람들이 사(使)측이나 두리뭉실한 정부를 욕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을 읽는 거의 모든 사람이 바로 노동자이고 근로자이며 자신들의 이야기이기에 자신들의 위치를 한번 되돌아보라는 것이다.

우리가 매일 타는 버스. 이 버스를 모는 분들이 이렇게 힘들고...재미없고...드러운 세상에서 힘겹게 일하는데..정작 이 버스의 손님인 우리들은 어떤 대접을 받겠는가... 우리 모두다 시니컬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딱딱함이 우리 사회를 이루는 토대라면...누가 이 땅에서 살맛나게 살겠는가...

이미..저자는 냉소적으로 이 사회를 보고 있다. 다음은 누구 차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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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7-02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쓴 안건모입니다. 리뷰를 쓴 분들에게 뒤늦게 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제 책을 좋게 평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버스 기사들의 실태가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닙니다.
저는 지금은 월간 <작은책>이라는 진보 월간지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노동운동에서 언론 운동, 문화운동으로 바꾼 셈이지요. 노동자들 소식을 전하는 책입니다. 사이트에도 들어 오셔서 어떤 책인지 구경하시고 작은책도 널리 퍼뜨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한달에 한번 글쓰기 모임도 하고 강연도 있고 <역사와산> 이라는 모임에서 다달이 산도 갑니다. 혹시 가까우면 참석하셔서 같이 활동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www.sbook.co.kr
02-323-5391
 
자유의 감옥 올 에이지 클래식
미하엘 엔데 지음, 이병서 옮김 / 보물창고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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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금까지 난 <미하엘 엔데>가 누군인지 몰랐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지금도 그가 어떤작가인지 모른다. 하지만, 단 하나 그는 정말 엄청난 이야기꾼이었을거라는 생각이든다.

<미하엘 엔데>의 "자유의 감옥"이라는 이 책은 단순히 짧은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에는 그가 궁금해했고, 추구하던 그의 사고와 삶이 들어있다. 적어도 나로선 그렇게 생각한다.

이 책에는 8가지의 단편 소설(소설보다는 이야기가 가깝겠다.)이 있으며, 각각의 이야기는 이 작가의 엄청난 성찰과 관찰과 그리고 사색의 결과물이 들어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소재는 '공간'이다.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공간이라는 소재를 이용하여 그가 끊임없이 사색하고 연구했을법한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미하엘 엔데>는 모두의 삶이 영위되고 있는 이 '공간'이라는 소재를 설정해 자신이 말하고 싶은 바를 말한다. 어쩌면 우리에게 확실한 이 '공간'은 그에게는 꿈이 담긴 '판타지의 영역'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 한 예로서 이 책의 제목이자 이 책속에 들어있는 짧은 이야기중 하나인 '자유의 감옥'은 인간의 불확실한 운명을 수많은(책에서는 111개) 문으로 표현하였다. 자신이 들어갈 수 있는 수많은 문이 있지만, 오직 그 하나만을 선택한다고 했을때, 과연 누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런데 <미하엘 엔데>의 철학적 상상력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 111개의 문이 단 두개의 문으로 줄었다고 하여도 인간은 결코 선택하지 못할거라는 인간의 본능을 그리고 있다. 인간의 욕심과 그에따른 기회, 그리고 결과로서 성공 및 실패에 대한 인간의 양식을 '문'이라는 저쪽 너머를 알 지 못하는 벽으로 그림으로써 인간의 고민을 압축해놓고 있다. 이 밖에도 다른 이야기들도 저마다 그 이야기에 맞는 주제의 공간을 가지고 있으며, 그 공간안에 작가의 상상력이 내뿜는 또다른 공간을 창출하고 있다.

이 이야기들은 모두가 상징성이 있으며, 그 상징성을 갖는 모든것이 질문이다. 하지만, 답은 없다. 내가 보기엔 <미하엘 엔데> 스스로가 어쩌면 자신이 풀어놓는 상상력의 퍼즐을 풀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즉, 자신이 궁금하게 여기는 삶의 이야기를 자신의 언어로 그것을 전개시키고, 그 자신이 만들어낸 다른 누군가의 추적을 통해 그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따라가게 만들며, 그 여정속에서 그 작가 스스로가 궁금한것을 함정으로 만들고, 주인공이 그 함정을 어떻게 피해가는가에 대한 하나의 판타지적 철학 퍼즐인것이다.

<미하엘 엔데>가 그리는 시,공간은 그에게 있어서 무한한 도전이었을 것이며, 호기심의 원천이었을 것이다. 좀 엉뚱한 이야기들 또한 엉뚱한 것이 아니며, 철학적 사고의 확장일 뿐이다. 예를들어, '자동차 안에 들어있는 차고'이야기와 '서로 반대편 문이 맞닿아있는 어느 한 집'의 이야기는 단순히 [환상특급]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이 미묘하게 버무려져있는 맛깔스럽지만 쉽지않은 이야기인것이다. 또한 결국엔 자신이 있는 곳이 예전에 자신이 미묘하게 지켜봤던 그 그림의 실제 풍경속이라는 이야기는 인간의 동경과 그것을 바라는 내면심리를 그린거 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정답은 없으므로 다른 사람은 달리 느낄 수 도 있지만...

이 8편중 어느 하나 못난 이야기가 없다. 그만큼 나를 강하게 울리게 했으며, 이 책을 보고 손을 쉽게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 이야기중 감탄사가 튀어나올정도로 읽은 이야기는 바로 이 책의 제목인 "자유의 감옥"과 믿음에 대한 성찰을 이야기하는 "길잡이의 전설"편이다.

이 이야기중 제일 맘에 드는 소절로 리뷰를 마친다.

-- 마침내 양쪽 두 개의 문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그때 나는 수많은 가능성 중에 하나를 골라 내는 일이든,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든 결국은 마찬가지라는 흥미로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어느 경우이든 선택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리고 단 하나의 문만이 남게 되었을 때 나는 또다시 깨달았습니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이제는 머물 것인가, 아니면 떠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 '자유의 감옥'중에서...

-- 이정표는 지산이 가리키는, 바로 그 목적지만 빼고 어느곳에나 있을 수 있으며, 그곳이 어디든 그의 가치는 충분히 발휘될 수 있다. 목적지야말로 이정표가 아무런 쓸모도, 아무런 의미도 없는 유일한 장소인 것이다.-- '길잡이의 전설'중에서...

<2005년 9월에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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