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각본 살인 사건 - 상 - 백탑파白塔派 그 첫 번째 이야기 백탑파 시리즈 1
김탁환 지음 / 황금가지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저자인 <김탁환>은 『불멸의 이순신(총8권)』을 쓴 작가로 많이 알려져 있다. 나 또한...이 작가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이 작가를 처음 접한 것은『방각본 살인사건』을 통해서다. 그런데 너무나 흥미롭게 읽었다. 처음 이 책을 읽으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역시나 같은 작가의『열녀문의 비밀』을 읽어보려 했는데, 이 책은 '백탑파 시리즈'의 두번째 이야기라, 어쩔 수 없이..첫번째 이야기인 『방각본 살인사건』을 펼쳐들게 된 것이다. 처음엔 시리즈인줄도 몰랐다.

암튼...예전에 가끔 외국 추리 소설을 읽다 우리나라에도 셜록 홈즈나 브라운 신부 혹은 명탐정 포와르 그리고 모스 경감..등등...유명한 탐정이 있었으면...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도 해보았다.(물론...우리나라에도 있겠지만, 책을 많이 안봐서 잘 모르겠음...)

그런데...이 '백탑파 시리즈'가 어느정도 내가 바란 것들을 조금은 만족시켜준 듯 하다. 이 소설의 배경은 역시나 조선의 중흥기 시절이었던 '정조'시대가 배경이다.  이 소설은 물론 그 당시의 시대상을 잘 알지 못해도 술술 넘어간다. 정치적인 배경이 이 소설의 바탕을 이루지만, 역시나 추리소설이다 보니 읽어내려가는데 큰 지장을 주진 않는다. 하지만 역시나 시대소설이므로 그 당시의 정황을 알아야 머랄까..보이지 않는 뒷맛까지 음미할 수 있다고나 할까?

자신의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엿새동안 뒤주에서 갇혀있다 죽은 후 정조가 왕위를 이어받는다. 이 정조는 할아버지인 영조의 '탕평책'을 그대로 유지하는데, 비록 탕평책이 모든 당의 인물들을 고루 등용시킨다는 명목이 있지만 아직도 그 시대의 세상은 '노론'의 몫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서얼(서자출신)들 까지도 등용시키려는 정조의 계획을 눈치챈 노론은 이들을 반역죄로 몰아넣으려는 흑심을 품게 하는데...이것이 바로 이 이야기의 시대적인 배경을 이룬다.

이 책에서 나온 '백탑파'의 '백탑'이란 그 유명한 탑골공원(파고다 공원)안에 있는 원각사지 10층 석탑(국보2호)을 말한다.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탑이기에 백탑이라 불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백탑 주변에 모여 시문을 읊고, 북학이라 불리우는 실학사상(실사구시와 이용후생)에 대해 토론했던 이들을 가리켜 '백탑파'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 '백탑파'는 '초정 박제가', '연암 박지원', '야뇌 백동수', '형암 이덕무', '영재 유득공' '담헌 홍대용'등 대부분 서얼 출신(홍대용과 박지원제외)과 실학에 관심을 보인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이 '백탑파'의 시리즈 중 첫번째 이야기다. 그렇다면..과연 이들이 주인공인가?  작가 <김탁환>은 이 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지 않고, 또 다른 인물 두명을 창조한다. 그리고 이들이 주인공이며, '백탑파'는 이들을 도와주는 조언자 역할을 한다. 이 책이 소설이지만 매우 사실적으로 보이는 이유가 바로 생생한 이들 인물들의 자취때문이다. 

암튼...주인공은 '이명방'으로 <의금부 도사>의 직위에 있는 인물이다. 그리고 '김진'이라는 인물이 있는데...이 인물은 '이명방'을 도와 사건을 해결하는 거의 문과 무에 능한 천재에 가까운 인물이다. 이 둘 사이에서 내가 느낀 것은 홈즈와 왓슨 박사이다. 홈즈는 김진에 가깝고, 왓슨은 이명방에 가깝다. 암튼 이들은 매설(소설)을 즐겨보는 이들의 연쇄 살인 사건을 해결하려 하는데..이 매설의 작가인 '청운몽'이라는 사람이 '백탑파'와는 정말 친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 유명한 매설가가 결국 살인범으로 몰려 죽음을 당하게 되지만...그 뒤로도 살인 사건이 계속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결국...'백탑파'가 주시당하게 되고...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임금인 정조까지도 신경을 쓴다.

이 이야기를 보면..정조가 신경을 쓴다는 부분을 제외하면..그냥 있을법한 살인사건에 불과할 듯 보이지만, 역시나 <김탁환>의 어마어마한 연구와 방대한 자료는 이 사건과 그 당시 정조 시대의 정치적, 시대적 배경과 결합시켜 이 사건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극점까지 가게 만든다. 정말 쉴새없이 일어나는 사건의 연속과 긴장감은 쉽게 책에서 눈을 떼기 어렵게 만든다.

앞서 말했지만, 이 소설은 '백탑파'의 첫번째 이야기다. 그리고 두번째 이야기는 작년(2005)년에 『열녀문의 비밀(상,하)'』로 출간되었다. 그리고 세번째 이야기는 '왕과 나'라는 가제로 되어 있는데..아직 나오지 않은 듯 하다.

역시나 정조시대는 이야깃거리가 가득한 것 같다. 솔직히 슬픈 역사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어쨋든...흥미있는 이야기의 소재거리임에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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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뇌론 - 뇌를 향한 두렵도록 새로운 시선
요로 다케시 지음, 김석희 옮김 / 재인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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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요로 다케시의 <유뇌론 唯腦論>은 '오직 뇌가 전부이다'라는 명제를 가지고 '유물론 唯物論'적인 입장을 취하는 책이다. 그러니까 실재적인 뇌뿐만이 아니라 관념론적인 뇌에 관한 저자의 고찰이 담긴 책이다. 저자는 우리 사회의 모든 현상을 뇌화腦化 과정의 부산물로 보고 있으며, 이 '뇌화'는 사회의 구조적 기능 담당을 뛰어넘어 생물학적으로 그러니까 다시말해 진화론적으로도 적용되어 있다고 보고 있다. 저자의 말대로이면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이 모든것은 뇌화과정의 산물인 것이다.
 
먼저, 우리는 마음이 있다. 이 마음때문에 개개의 독특한 인성이 드러나며 다른 삶들과 구별되어지는 독창성이 부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개개인의 '자아 自我'는 그 사람이 품고 있는 '마음'의 주체로 표현되어질 수 있다. 마음은 자아이기도 하지만, 자아는 좀 더 포괄적이다. 그리고 좀 더 철학적이다.
 
인체에는 각 기관이 있으며, 이들 기관은 우리를 구성하는 물리적 구조이다. 이러한 구조는 각각 독특한 기능을 행한다. 심장은 혈액순환을 시키는 기능을 하며, 신장은 노폐물을 걸러주는 기능을 하고, 위는 몸 속으로 들어온 음식물을 소화시키는 기능을 한다. 그 외에도 모든 기관들은 각자 맡은바 임무가 있다.
 
그렇다면 '뇌'라는 기관 혹은 구조는 어떤 작용을 할까? 대표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모든 기관을 신경이라는 신호체제를 통하여 제어를 하는 것이다. 또한 여러 감각기관을 통합하여 우리가 자극을 느끼게끔 알려주는 기능을 한다. 이것들은 우리가 쉽게 알고 있는 뇌의 물리적 기능들이고, 제일 중요한 기능은 역시나 기억의 보존, 생각, 무언가를 하려는 의지등등 객체가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표출 시키는 것이다. 그러니까 뇌의 여러 기능 중 하나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 혹은 '자아'를 생성시키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언가를 하거나 생각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은 뇌가 시켜서 하는 것이다. 가령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역시나 나의 뇌가 시켜서 하는 것이다. 단순히 뇌가 나의 손을 움직이게 하여 글을 쓰게 끔 하는 것 보다 좀더 고차원적인 일,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게 하고, 이 글도 지금 꼭 써야한다는 것 까지 포함한 것이 나의 뇌가 시킨 하나의 단편적인 명령이다. 역시나 이 글 쓰기를 중단하고 내일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나의 뇌가 내린 명령일 것이다(하지만 오늘 나의 뇌는 아마 나에게 이 글을 다 쓰라고 명령한 듯 하다). 그렇다면 '나'라는 것은 '나의 뇌'가 만든 하나의 이미지로 볼 수 있지 않은가. 내가 뇌의 기능들을 조정하거나 제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뇌가 나(마음, 자아, 의지 등등..)를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내가 일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뇌'라는 말에는 모순이 생긴다.  왜냐하면 '나'야 말로 '뇌'의 소유물이 아닌가. 이것이 관념적인 뇌고, 유물론입장에서의 유뇌론이다. 더 들어간다면 과학적 관찰을 떠나 철학적 고찰로 넘어가게 된다.
 
철학적 고찰로 넘어가기 전에, 또 한가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뇌사'는 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고 뇌의 모든 기능이 죽은 것은 아니다. '뇌사'상태의 사람 역시나 숨을 쉬고, 혈액을 순환시키며, 거의 모든 장기들을 제어하고 있다. 그렇다면 뇌의 무슨 기능이 고장난 것일까. 바로 '마음'이라는 정신상태, 즉 '자아'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한마디로 의식이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단순히 하나의 기능만 작용하지 못하는데 왜 우리는 죽은 사람처럼 취급할까. 역시나 사람이라면 가지고 있어야 할 '자아'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뇌의 '신체성'(한마디로 뇌와 떨어진 몸이라 생각하면 된다)이라고 이 책의 말미에 저자가 이야기한다. 즉, 뇌가 가장 두려운 것은 뇌가 뇌를 인지하지 못할때이다. 즉, 죽음인데 이를 작가는 '신체성'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신체가 뇌와 분리되어 있는 상태, 뇌가 신체에 작용을 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그것이 곧 시체'이고 뇌 밖의 일이다. 그래서 우리의 뇌는 자신의 시체(혹은 '신체성')를 두려워 한 나머지 뇌가 가지고 있는 지식 혹은 정보를 다른 뇌들에게 전달한다. 결국엔 자신이 죽어도 이 사회의 뇌화는 멈추지 않는 것이다. 다시 돌아와서 본다면 역시나 이 사회는 뇌화이다. 이 역시 작가의 고찰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단순히 뇌의 기능중 하나만을 고찰한 것이고, 이 책에는 그 밖의 여러 기능적, 구조적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가령, 우리의 언어에 관한 것이라든지, 우리의 감각에 관해서란든지 등등... 뇌에 대한 해부적 조감도 부터 시작하여 철학적 고찰을 넘나든다.
 
가령, 우리가 느끼는 감각, 특히 시각과 청각의 차이에 대한 그의 설명은 독특하다. 시각은 디지털 적이며, 청각은 아날로그적으로 보고 있는데, 예를 들어 영화를 보고 있다가 일시정지 버튼을 눌렀다고 생각해보자. 그럼 움직이는 그림이 순간적으로 멈춘 상태이며 우리의 뇌는 그것을 시각계라는 감각을 통해 받아들인다. 누군가 지나가다 멈추었다고 해도 우리는 멈춘 상태를 인지 할 수 있다. 그런데 음악을 듣는다고 생각해보자.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일시정지를 눌렀다고 해보자. 과연 어떻게 될까. 우리가 가진 오디오기기에는 일시정지가 없다. 물론 있긴하다. 그렇지만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자마자 음악은 중단된다. 곧 소리(음)가 제거된 상태라는 뜻이다. 만약 제거되지 않고 일시정지된 상태에서 음을 듣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음악이 아니다. 하나의 주파수만이 끊임없이 똑같은 음으로 퍼져 나오게 되는 것이다. 고음일 경우 상당한 고통일 수도 있다. 암튼 그 밖에 시각과 청각의 다른 설명들이 많긴 하지만 이 정도에서 줄인다. 그만큼 우리의 뇌는 특이하다. 책에서는 이 청각과 시각을 통합시키는 뇌의 역할까지도 설명되어 있다.
 
이 책은 앞서 몇가지 설명한 것 처럼 우리도 가끔 궁금히 여기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는것에 대한 작가의 철학적, 해부학적 지식이 녹아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더 이상 뇌에 관해 생각치 않은 걸까. 그것은 역시나 철학의 세계이고,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그것을 더 생각하게 된다면 그 사람의 뇌는 생각말자라는 명령을 내릴 것이다. 왜냐하면 뇌 자신이 힘들어하니까 말이다. 그 영역을 뛰어 넘은 사람들이 바로 철학자이다. 내가 보기엔 그들의 직업정신은 투철하다. 아니 상당히 강화된 뇌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이 책의 작가는 해부학자이다. 그는 '신체성'이 이루어진 후(뇌가 관여하지 못하게 된 후, 즉 사람이 죽은 후)의 여러 기관들을 다룬다. 물론 뇌도 다룬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호기심으로 뇌를 이야기하고 싶어했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굉장한 지적 호기심을 풀어줄 듯도 보이지만, 역시나 철학이라는 벽을 어느정도 뛰어 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은 매우 관념적으로 흐를 수 있고, 철학적으로 흐를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어떤 뇌는 힘든 나머지 '이 부분은 뛰어 넘어서 읽어라'라는 명령을 내리거나 '책을 덮어라'라는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좋은 책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재미없는 책일 수 있다는 말...^^
 
또한 이 책은 답을 내놓진 않는다. 그냥 뇌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생각한다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전부이다라고 말할 수있다. 결국, 작가 '요로 다케시'의 사람들의 뇌에 관한 고찰쯤으로 봐두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작가의 시각은 특이하다. 그러니까 작가의 말대로 '요로 다케시의 뇌'는 특이하다.
 
<덧붙임>
 
일반적인 기관은 물질이며 또한 물질을 다룬다. 이를 대사작용(물질대사)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뇌는 물질이지만 물질을 다루지 않는다. '마음'이라는 추상적인 것을 다룬다. 이 역시 뇌의 독특한 특징이다. (일례로..심장은 피를 다루며, 신장은 오줌을 다루고, 폐는 일반적으로 공기(산소)를 다루고, 그 밖에도 여러 기관들은 호르몬이라든지 그 밖의 물질을 다룬다.) 그런데 인체에는 뇌와는 반대의 기관 두 개가 있다. 즉, 물질을 다루는데... 어떤 두 기관은 물질이 아니다. 즉 구체성이 없다. 이 기관을 내놓으라고 질문을 던진다면 내 놓을 수 없다. 이 또한 예를 들어... 눈을 내놓아라..하면 눈을 내놓을 수 있다. 심장을 내놓아라 하면 심장을 내놓을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기관을 내놓아봐라' 하면 내 놓을 수는 없다. 상당히 고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이 두 기관은 무엇일까?
.
.
.
.
답은.....
 
(마우스로 드래그 하시면 답이 보여요~~~)
 
--> 답은 입과 항문이다. 이 두가지는 엄밀히 말해서 입구와 출구라는 의미를 가진다. 즉, 입의 범위를 규정지을 수도 없고, 항문도 마찬가지이다. 입과 항문을 내놓으라하면 글쎄...피부정도나 내놓을 수 있나? 입의 피부는 역시나 입술이 될테니 엄밀히 말해서 입은 아닐것이고, 항문은 피부정도는 내 놓을 수 있겠다. ㅎㅎ... 암튼 이 두가지 기관은 구체적인 기관은 아니지만, 역시나 물질을 다룬다. 입을 통해 음식이 들어가고, 항문을 통해 대변이 나오니까 말이다.
재밌다...(이부분도 책에 나오는 부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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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의 고백
이덕일 / 푸른역사 / 199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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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만일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힌 이유가 이미 상식이 되어버린 것처럼 정신병 때문이라면, 아버지 영조는 아들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지 뒤주에 가두어 죽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단지 정신병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자식을 뒤주에 가두어 죽이는 아버지가 과연 있을 수 있을까? 그것도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또한 비행 때문이라면 태종 이방원이 그랬던 것처럼 세자를 폐하여 지방으로 내쫓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사조세자의 비극적 죽음에 대한 의문의 출발점이었다. 

< 머리말 中>

우리 나라의 역사를 보면 슬픈 역사가 많다. 가끔 그런 역사들을 읽어보면 정말 화딱지가 머리꼭대기에 나앉을 정도로 열을 받기도 한다. 정말 바보같은 사람들의 역사같이도 느껴진다.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어렸을때부터 영웅들을 더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문화를 다양하게 발전시키고 학문을 수련하는 그런 학자들이 아닌 피바람이 몰아치는 산야에서, 시커먼 광풍이 몰아치고 집어삼킬듯한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에서 그렇게 싸워 승리하고 전사해간 그들이 더 그리운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만약 우리의 역사속의 수많은 난중에서 우리의 역사를 기술한 책들이 모두 소실되어졌다면,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슬픈역사를 먼 과거의 신화마냥 귀로서 들어야만 했다면, 아니 먼 과거의 슬픈역사가 있는 사실조차 알 수 없었다면, 우리는 더 큰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까? 아님..우리 역대의 조상들을 더욱 더 빛나게 기리고 있을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우리가 비극을 알기에 슬픔을 알기에 우리는 더 강해졌고, 더욱 더 우리 땅과 우리네 사람들에 대해 더 강한 애착을 보여줬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너무 오버해서 극단적으로 몰고가는 시각들도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어찌됐든 우리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우리는 역사를 지켜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사도세자의 고백>>을 보고 또 애꿎은 나의 가슴만 아파왔다. 이것은 소설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이기에..그리고 진실에 어느정도 다가섰다고 느껴졌기에 마음이 애렸다. 이 책이 물론 진정한 진실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이덕일'씨도 어차피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논리는 빈 곳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이 든다. 물론 사소한 반론도 낼 수 없을 정도로(기껏 해보았자..예전에 '한중록'을 읽은 사실뿐 '사도세자'와 '영조', 그리고 '정조'에 대해선 교과서에 배운게 전부다. 그 썩을놈의 '탕평책'--물론 '탕평책을 욕하는 것은 아니다.--뿐이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게 없지만, 이 책은 모르는 사람을 무시하거나 설득하거나 그러진 않는다. 다만 그때의 정황을 저자의 깔끔한 논리로 풀어보일 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도세자'는 뒤주에 죽었다. 왜 죽었는가..이 단순한 의문이 그 당시의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조선시대의 추악한 모든 면들을 보여준다. 노론, 서론, 남인,서인 등등..서로의 당을 못잡아 먹어서 안달난 사람들의 정치..이것이 이면적인 원인으로 보이지만, 결국 조선은 하나의 잘못된 관습으로 문을 닫게 만든것이다. 바로 '씨'다. 왕들의 '씨'. 이 책에서 '삼종의 혈맥'이라는 내용이 책 초반부에 나온다.

삼종이란 영조보다 앞선 효종, 현종, 숙종 세 임금을 뜻하며, 혈맥이란 그 세 임금의 피를 이은 아들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삼종의 혈맥'이라는 말에는 이 세 임금의 왕위 계승이 정당하다는 자기 방어 논리가 담겨 있었다. 이렇듯 왕위 계승에 대한 자기 변명이 필요하다는 것은, 바꿔 말해 효종부터 숙종으로 이어진 왕위 계승이 정당하지 않을수도 있다는 의구심이 깔려 있음을 뜻한다.

이런 자기 방어 논리는 인조의 맏아들인 소현세자 일가의 비운에서 비롯되었다. 원래 인조의 왕위는소현세자가 잇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작 왕위를 계승한 인물은 둘째 아들인 봉림대군이었다. 그가 바로 삼종의 혈맥의 시조가 되는 효종이다. ........(중략)...... 조선시대에 맏아들과 둘째 아들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였다. 맏형은 둘째 이하에게 거의 아버지와 같은 대접을 받았는데, 이는 단순한 관습이 아니라 종법에 명시된 하나의 성문법이었다....(중략).....              

--p. 23--

어차피 조선은 그 탄생자체부터 정당하지 못했으며, 결국 그때 이성계가 뿌린 씨는 조선 500년의 역사내내 조선 자신을 스스로 괴롭히게 만드는 그러한 괴물이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이런 왕들 옆에서 보좌해주는 그 신하들도 '조선'이라는 같은 배를 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각자 스스로가 '사공'이었다고 생각했었나보다. 이 책을 읽고 내가 더욱 기운이 빠진 것은 그때의 상황이나 지금의 상황이나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국가엔 '국민'이 있지만, 정치엔 '국민'이 없는 이 상황..

이 책을 읽고 과연 왕들이 국가에 제대로 신경이나 썼었나싶다. 물론 백성에 신경을 쓴 왕들은 어찌보면 이러한 '왕위 계승에 관한 정당성'에서 한결 자유로울 수도 있기에 그만큼 '성군'의 정치를 했다고도 보여진다. 하지만, 자신이 '왕위 계승의 정당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 그렇다면 자신을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은 단순한 비판자의 성격을 넘어 '적'으로서 혹은 '반란자'로서 규정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슬픈 조선의 역사이다. 그리고 조선의 뿌리이자 조선이 뿌린 씨앗이며, 결국 조선이 걷어들일 '열매'였던 것이다.

이 책을 읽기전에도 가끔 조선은 '정조'이후로 무너졌다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조선은 '정조'가 마지막 희망이었고, 마지막 기회였다. 만약 '사도세자'가 있었다면, 어땠을까..영조가 부렸던 욕심을 줄여 '사도세자'에게 왕권을 넘겼다면, 글쎄..역사는 아무도 모른다. 조선에서 마지막 북벌을 계획했던 '사도세자'가 조선을 또다른 전쟁으로 몰아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엔 가정이 없다. 아무도 모른다.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외친 '정조'.. 그도 결국 젊은 나이에 스러졌다. 독살설이 가장 대두되고 있지만, 아무튼 이 왕도 자신의 계획을 이룩하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그리고 이런 죽음 이면에는 눈을 옆으로 흘기며 비열한 듯 입꼬리를 올리고 기묘한 미소를 지은 자들이 분명이 있다. 조선은 결국..그 앞날을 어쩌면 예견할 수도 있는 대목인지도 모른다..

수많은 칼바람을 물리치며 지켜왔던 종각은 결국 지하에서 수많은 선왕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너져 내리고 있던 것이다.

이 책을 한번쯤은 보라고 권하고 싶다. 물론 이 책을 보면 열을 받게 될 것이다. 모르겠다. 열을 안 받을지도 모르겠지만, 마음만은 편치 못할 것이다. 이 책을 보며 덮어버리고 싶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만큼 그들의 계략이 싫었다. 욕심이 싫었다. 어처구니없는 그들의 실정이 싫었다. 하지만, 그래도 역사는 흐른다. '사도세자'가 죽는 그 순간까지 수없이 많은 덮어버리고 싶은 마음을 접으며, 끝까지 읽었다. 나는 '정조'를 기다렸다. '정조'는 나의 구원군이었다. 하지만, '정조'도 그렇게 가는 것을 보며..마음이 더욱 쓰라려왔다. 어찌보면 나도 똑같을 지도 모른다. '정조의 피의 복수'를 기다렸으니까.. 하지만, 이 책에선 무협소설이나 판타지 소설처럼 통쾌하게 나오진 않는다. 왜냐하면..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는 사실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궁금증이 들었다. 조선은 과연 '왕권이 강한 국가'였나?...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덧붙임>

1. 이 책은 구판인 <푸른역사> 출판사의 '사도세자의 고백'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현재..<휴머니스트>출판사에서 재출간되어 판매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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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십 트루퍼스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5
로버트 하인라인 지음, 강수백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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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스타십 트루퍼스』는 예전에 1997년작 <폴 버호벤>감독의 영화로 처음 접해보았다. 이 영화에 대해 가장 크게 기억나는 것은...곤충같이 생긴 외계생물과의 전투씬이다. 신물나는 곤충들과의 한판을 그린 이 영화만을 보고...『스타십 트루퍼스』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아마 10%만을 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소설속에서의 전투장면이 10%정도 되니까..

그만큼 이 소설에서 전투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약한 편이다. (그렇다고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이 400여 페이지가 넘는 이야기는 대부분 무엇으로 채워져있을까? 단, 한단어가 떠오른다. 'propaganda'(프로파간다) 우리말로는 선동 혹은 선전이라는 의미이다.

이 소설의 전체적인 구성은 영화와 비슷하다. 다만.. 영화속에서는 시각적인 구성을 전투에 중점으로 뒀다는 것과 주인공(조니)의 친구들(칼과 카르멘으로 고등학교 동창)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한다뿐이다. 참.. 영화속에서는 강화복(powered suit)에 대한 이야기가 일절 없다. 이것은 소설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왜냐하면...'하인라인'의 이 소설은 '강화복의, 강화복에 의한, 강화복을 위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왜...강화복에 대한 이야기가 중요할까... 그 이유는 우리의 '조니'가 기동보병 소속이기 때문이다. 처음 군에 입대하여 훈련소에서 기동보병이 되기 위한 훈련을 마치고 수료하기 까지의 과정이 어림잡아 책 절반을 넘게 차지한다. (영화속에서는 훈련과정이 아마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 훈련과정에서의 내용은 완전무결한 군인정신 특히, 기동보병 정신을 쇠뇌받는데...바로 이 부분이 하인라인이 가장 많은 목소리를 내는 부분이고, 훈련과정 자체가 선동인 것이다. 하인라인은 훈련소의 교관으로 혹은 군대의 장교로 선임 하사관으로 혹은 고등학교 시절의 '역사 윤리 철학'선생으로 등장한다. 이 모두가 조니를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게 바로  이 소설이 선동적인 이유이다.

이 이야기의 주된 선동은 시민권을 따라는 것이다. 자유(참정권 제외)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질 지 모르지만 이 시민권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시민권이 없다고 사회생활에 전혀 지장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의 고결한 시민이 되려면 시민권이 필요하다. 그리고 군대 경력이 필요하다. 그 뿐이다. 선거권, 피선거권을 따기 위한 군입대는 왠지 모를 뿌듯감으로 인해 정신건강에는 좋을 지 모르나, 절대로 육체적건강에는 좋지 않다. 특히, 기동보병으로 있는 한은 말이다. 그래서 이 인류를 사랑하고 위하는 시민권을 가진 고결한 사람을 만들기위해선 오로지 선동뿐이다. 누가 선거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기 위해 목숨을 바치겠는가. 그런데 한가지 웃긴것은 소설속에서는 이 선거권, 피선거권 실체가 없다. 그냥..선거권 따기 위해..전쟁나가 죽는 것이다. 또한 군인신분으로는 선거권, 피선거권이 없다. 오직 제대를 해야한다는 말인데...이미 쇠뇌된 군인에게는 솔직히 시민권 자체가 필요없다. 단기 근무는 장기 근무로 가기위한 통행권같은 것이다.

이 훌륭한 시민권을 어렵게 따기 위해선 강력한 적이 있어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강력한 적이 나올 수록 시민권에 대한 열망이 크다. 그래서 나온것이 거미같은 외계생물인데...이 생물의 강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이 강인함과 직접 맞서서 싸워야하는 군인들 또한 강인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강화복을 입은 기동보병이 중요하며, 역시나 적과 바로 대면한다는 것 때문에 기동보병은 대단한 것이다. 즉, 군대의 꽃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단함과 추켜세움때문에 전쟁은 이루어진다. 매우 정치적이다. 시민권을 쉽게 딴다면... 누가 군대를 갈 것인가.

'조 홀드먼'의 『영원한 전쟁』은 '하인라인'의 『스타십 트루퍼스』와는 반대선상에 있는 소설이다. 이 『영원한 전쟁』에서도 강화복을 입고 또 외계 생물과 전투를 치룬다. 하지만, '조 홀드먼'은 인류와 싸우는 외계 생물을 강인한 것과는 다르게 묘사한다. 이 소설속에서는 따내려는 시민권이 없기 때문에 강한 적도 만들 필요도 없지만, 전쟁은 무언가 이루려고 하는 것이 아닌 오해에서 시작된것으로 보고있기 때문에 전투에 큰 의미를 두진 않는다(하지만 오히려 전투 장면은 『스타십 트루퍼스』보다 많이 나오는 듯 하다). 그리고 이 시각은 '하인라인'의 사상과는 반대편에 있는 좌파적 성격을 띠며(반전 사상이 다분하다), 오히려 『영원한 전쟁은』전쟁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아닌 전쟁을 치루고 있는 그 시대상을 다룬다.(재밌게도 이 시대상은 시간적으로 3000년 이상의 시간을 가진다). 『스타십 트루퍼스』에는 시대상은 없다. 오로지 인류의 전쟁을 하기 위한 전쟁 윤리와 전쟁 철학만이 있을 뿐이다. 이 두 소설이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계급의 진급이다. 전투를 위한 '하인라인'의 소설은 전투중 손실로 인하여 진급하는 경우가 제일 크다. 물론 따로 교육도 받지만 말이다. 어차피 상관이 죽어나가기에 계급은 올라가게 되어 있다. 하지만 '조 홀드먼'의 소설에선 계급의 진급은 크게 의미가 없다. 다른 우주로 전송되었다가 다시 돌아오는데 몇백년씩이나 훌쩍 지난다.(정지되어 있는 자의 시간기준으로) 물론 주인공에겐 얼마 되지 않는 시간만이 흐른다. 자연히 진급이 된다.

이 두 소설은 똑같은 전쟁이라는 소재를 다루었지만, 그 차이는 분명하다.

『스타십 트루퍼스』는 전쟁을 위한 소설이고 바로 전쟁을 치루는 남성을 위한 소설이다. 하지만, 역시나 이 소설속에서도 여성은 등장하며, 여성 또한 군인으로 심지어 함장으로 까지도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의 여성은 전쟁을 치루기 위한 촉진제(?)이다. 조니가 꼭 입대를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입대지원을 받는 곳에서 자신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외모가 예쁜 카르멘을 만난다. 카르멘은 진정한 사람이어야한다면 시민권이 있어야되고, 군대를 가야한다고 말한다. 조니는 입대원서를 냉큼 집어든다.

또, 기동보병들은 강화복을 입고 우주선에 있는 캡슐을 타고 적이 있는 행성으로 강하한다. 이때 전쟁의 나락,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긴장감과 함께 두려움에 떨고 있는 보병들에겐 역시나 함선내 방송으로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꼭 살아돌아오라고...

이 소설에선 죽음이라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죽음은 사후 '사자무공훈장'을 받을 수 있는 한가지 원인이다. 또한 누군가의 죽음은 또 다른 영웅을 만들어낸다.

『스타십 트루퍼스』는 결코 평화로이 끝을 맺진 않는다. 또 다른 전쟁이 기다릴 뿐이다(하인라인의 또 다른 소설 '프라이데이'에서의 결말은 좀 다르다.그래서..후기 하인라인의 작품은 초기 작품과 차이가 있는 듯 하다...). 그런데 『영원한 전쟁』은 전쟁이 끝나고 사랑이 찾아온다(비록 이 전쟁이 수천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 끝이 나지만 말이다...). 이것이 이 두 소설이 가지려는 주제이다.

막상 이렇게 쓰고보니 『스타십 트루퍼스』를 매우 부정적인 소설로 묘사를 하였는데, 그렇진 않다. 비록 선동 혹은 선전이라는 묵시적인 소재가 들어가있지만, 읽어보면 재미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이 쓰여진 시기가 1959년이니까 어느정도 사회상과도 맞아 떨어진다.

이 소설은 역시나 밀리터리SF의 원조로 불리운다. 지금의 밀리터리 SF는 군사적인 면보다는 정치적이 면이 많이 내포되어 있다. 어차피 둘다 비슷하지만, 요즘의 SF는 확연히 정치적이다. 예전 초기의 SF면과는 달리 전투라는 좁은 범위에서 벗어나 좀 더 넓은 외교라는 분야가 포함되어 있다. 『스타트랙』, 『배틀스타 갈락티카』등을 보아도 확실히 넓은 의미의 정치,외교,군사를 다루고 있다. 심지어 『배틀스타 갈락티카』는 대통령과 함장, 그리고 언론과 군대등 수많은 갈등 요소를 품고 있다.

SF는 단순히 재미만을 위한 장르는 아니다. 요즘의 시대상과 더불어 앞으로의 시대 혹은 사회상을 보여주는 것이 SF이다. 비록 자극적인 소재도 다분히 많이 끼어있지만, 무언가 영감을 주긴 주는 것 같다. 정치,외교 분야를 공부한다면 SF는 전공 필수까지는 아니더라도 전공 선택은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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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미스 해전 - 세계의 역사를 바꾼 전쟁
배리 스트라우스 지음, 이순호 옮김 / 갈라파고스 / 2006년 1월
평점 :
품절


우리는 스포츠에 열광을 한다. 물론 스포츠 자체의 재미도 있겠지만, 경기에 이기려는 승부욕이나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작전등이 더욱 더 세밀한 즐거움을 선사해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약한 팀이 선수들의 투지와 더불어 코치진들의 멋진 전략으로 인해 강한 팀을 이길때는(특히, 자신이 그 약한 팀을 응원하고 있을때에) 단순한 재미를 넘어 감동까지 선사한다. 얼마전에 읽은 '살라미스 해전'이라는 책도 앞서 언급한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짜릿한 승부를 이야기해주지만, 결국엔 역사적 사실이고, 하나의 큰 교훈이다. 

세계사에서 가장 유명한 해전 중의 하나로 이름나있는 이 '살라미스 해전'은 BC 480년에 있었던 유럽의 그리스와 아시아의 페르시아간의 해전을 가리킨다. 하지만 이 전쟁은 단순히 유럽과 아시아간의 대륙간의 영토 전쟁을 넘어선 고대 그리스의 민주정치와 왕정을 바탕으로 한 페르시아 두 나라간의 정치적 배경을 펼치고 벌인 해전이다. 이 배경은 또한 이 전쟁의 커다란 소재이자, 전쟁의 승패를 가늠하게 한 중요한 요소이다. 물론 아테네의 영웅 '테미스토클레스'의 심리적 전술의 이용은 이 전쟁의 가장 큰 승리의 버팀목이다. 또한, 페르시아 왕인 '크세르크세스'의 몇가지 실책은 엄청난 대군과 수많은 선박들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단 하루만에 엄청난 손실을 겪게 되는 원인이다.

이 해전의 내용에 관해서는 거의 언급을 하지 않겠다. 책을 보지 않으면.. 쉽게 와닿지도 않을 뿐더러 단순히 기원전에 있었던 아주 오래전의 작은 전쟁으로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가면서 느낀것은 결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이야기 같지가 않았다. 오히려..지금의 세태와도 꽤 많은 부분 들어맞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느낄 정도로 매우 섬세했으며, 지형,지물을 이용할 줄 아는 과학 전쟁이었다. 더군다나.. 인간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변화해오고 발전한 것은 기술이지 결코 인간의 정신이나 관념등은 그리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이다.

이 책의 초반부엔 '삼단노선(삼단노 갤리선)'이라는 배에 대해서 매우 자세한 설명이 나와있다. 처음엔 이렇게까지 자세히 말할 필요가 있나하고 느꼈지만, 결국엔 이 '삼단노선'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이 당시의 해전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삼단노선의 구조와 그 기능들, 그리고 그러한 각 부분을 맡고 있는 군인들을 포함하여 전쟁에 직접 참여한 사람들의 정신적인 부분까지도 삼단노선에 다 들어가 있다. 한 예로 배의 아래층에서 노를 젓는 하급민들을 통해 직접적으로 전쟁을 수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쟁의 긴박감과 긴장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이 책의 장점이 바로 전략에 관한 상세한 설명과 아울러 그때 당시의 페르시아인들과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사람들의 감정들이 자세히 실렸다는 점이다. 물론 많은부분은 추정이지만, 이러한 추정들도 근거없이 함부로 추정되어진 것이 아니고 옛 문헌에 기록되어있는 것들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기에 설득력이 있다.

이 책은 이 해전 이후의 이야기도 실려있다. 결국엔 이 해전으로 민주국가,민주정치가 어느정도 뿌리내리게 되었지만(좀 벗어난 이야기이지만...1차 세계대전을 끝으로 독일이 민주주의란 옷을 입지않고, '전체주의'로 가는 것과 같이...전쟁은 국가의 체제또한 바꾸어버리는 힘이 있다), 그 후 아테네와 스파르타간의 긴 반목과 전쟁으로 이어지는것으로 봤을때..결국 인간은 그때와 지금...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물론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살라미스 해전'이 세계 4대 해전에 포함되는 이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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