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향기 - 어떤 기이한 음모 이야기
게르하르트 J. 레켈 지음, 김라합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개인에 따라서(정말 애매한 말...)스포일러일 수 있습니다. 책을 읽으셨거나..책을 아예 읽지 않으실 분만..보세요...
 
이 소설은 커피를 소재로 한 거대한 음모론에관한 이야기이다. 커피를 가지고 어떠한 음모론을 펼칠 수 있을까? 이 소설을 읽기전에 가졌던 짧은 의문이었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어보니 문화사적인 이야기들이 전반에 깔려있다. 그러니까 커피가 가지는 역사적 전통을 현대 사회를 겨냥한 음모론에 부드럽게 섞어넣었다. 여기서 부드럽다는 것은 긴박감이 흐르는 추리물이 아니라는 뜻이다.
 
커피의 주된 효과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각성제'가 가지는 효과일 것이다. 문화사적으로 봤을때(그러니까...커피가 가지는 전통적 관념에 견주어) 커피의 상반되는 음료는 '맥주'이다. 왜냐하면...이 '맥주'라는 것은 커피와는 전혀 다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다들 알다시피...맥주는 알코올 음료이며, 다른말로는 '흥분제'라 말 할 수 있다.
 
커피는 인류사에 결코 빠질 수 없는 우리가 얻은 선물이다. 커피라는 것이 좋은 역할을 하던지, 못된 역할을 하던지 이제는 현대 사회에서 떼어버릴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런데 만약 커피를 마실 수 없다면?
 
이 소설의 출발점은 바로 이것이다. 물론 커피를 마시지 않고 다른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있지만, 어찌됐든 커피 마시는 행위는 성인남녀라면 의례적으로 마시는 하나의 양식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그리고 이 책은 커피로 인한 습관적 중독이 만들어내는 습관적 망상으로 시작한다. (이 망상이 진실에 접근하는 하나의 수단일 수 있고, 구체적으로 혁명을 이루어내는 하나의 방편일 수 있다. 부정적으로 볼 일 만은 아니라는 뜻)
 
크리스마스를 9일 앞둔 12월 16일 독일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등지의 대형 커피 전문점에서 커피를 마신 사람들 250명이 독극물에 중독된다. 사람들은 커피 마시는 일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이 때는 독일 정부의 대개혁법안 또한 며칠 앞둔 시점이다.
 
음모론을 설정하고 그것을 풀어내려는소설속 인물은 독극물에 중독된 250명중의 한명인 한 소년의 아버지이자, 보수적 커피 로스터(커피 생두를 열을 가해 볶아내는 기계 혹은 그런 기계를 다루는 사람...그리고 여기에서 생두를 볶아낸것이 바로 원두이다.)인 한 남자이다. 그는 음모론을 다룬 영화 '컨스피러시'의 '멜 깁슨'을 연상하면 좋을 듯 하다. 그는 이 세계의 문화사의 한 위상을 차지하는 커피의 지식과 애정으로 수수께끼같은 사건에 접근한다. 그리고 방송사의 인턴기자와 함께 점차적으로 퍼즐을 맞추어간다. 커피 로스터의 집요한 추적은 결국 그가 이 사건의 범인이라는 의혹까지 불러오고 경찰에 쫒기기까지 하는데...
 
이 책의 제목...'커피 향기'는 단순히 이 소설이 커피 이야기를 풀어놓는다고 해서 달아놓은 것이 아닌 듯 하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서 설명해 주지만... 커피 향기는 바로 '계몽'을 뜻한다. 그러니까 닫혀있는 지식인의 지각을 열어놓음을 뜻한다.
 
"선동가들이 어디에서 만났겠습니까? 머리를 맑게 해 주는 커피하우스에서 만났습니다! 그 전까지는 역사가 커피하우스에서와 같은 식으로 이루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커피하우스에는 열렬한 웅변이 있고 열띤 토론이 있었어요. 커피는 밤을 낮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돌이킬 수 없게요. 사람들은 밤마다 논쟁을 벌이고 회의를 열고 계획을 짰습니다. ....(중략).... 그런 카페들은 그림자정부(프리메이슨을 가리킨다)와 이상주의자들과 혁명가들의 집합소였지요. 점점 많은 사람들이 계몽의 전당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바스티유 감옥으로 돌격하기 바로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
...(중략)...
 
"계몽의 시작을 특징짓는 것은 하나의 냄새입니다. 바로 '커피 향기'지요!"
 
p. 229 ~ 230
 
문화사에서 커피는 닫혀있는 세상들의 교류를 만들어준 매개물중 하나이다. 그리고 커피를 통한 교류는 이 세상의 시간을 좀더 빠르게 돌아가게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항상 깨어있기 때문이다. 결국 현대사회의 빠른 흐름은 커피가 가지고 있는 각성제의 효과덕을 톡톡히 보았다.
 
그래서 이 소설은 현대 사회의 병폐를 지적하는 반대급부를 설정해 놓았다. '시간 늦추기 협회'가 바로 그것인데...주인공은 이 협회에 모든 의혹을 쏟아부으며 퍼즐을 하나씩 맞추어나간다.
 
유사이래 '시간이 없다(Keine Zeit)'는 말처럼 무의미한 표현은 없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갈수록 점점 많은 동시대인들이 시간의 압박을 받고 있다. 불필요하게. 요즘 사람들은 전레 없이 긴 수명을 누리면서도 언제부터인가 여가를 갖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시간은 과연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p. 90 ~ 91 '시간 늦추기 협회'의 '동기'라는 항목 中
 
이 소설에서는 세상의 빠름에 대한 모든 이유를 커피에서 찾고자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소설속 커피가 가지는 문화사적, 인류사적, 미시사적인 의미를 통해 현대사회의 조급함과 커피에 속박당한 이 사회를 겨냥하고 있음은 자명하다. 그래서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됨으로써 멍해져버린 사회와 의욕을 잃어버린 좀비같은 현대인들을 조롱한다. 항상 깨어있어야만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깨어있음을 당연시하고, 그래야만 사회의 구성원의 역할을 한다고 믿는 사람들. 바로 이들 사람들의 풍자를 그린다.
 
그렇다고 '커피를 마시자 말자'라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커피의 부재로 인해, 사회의 부조리를 지적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바보스러운 행위는 경계하자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 않나싶다. 그러니까 작가의 인물설정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 책의 주인공은 커피 로스터와 인턴 방송 기자이다. 비록 커피 로스터의 시각으로 커피를 풀어내고 이 사회의 병폐를 보지만 결국엔 이 로스터 자신도 스스로에게 자부심만 부여하는 인물일 뿐이다. 하나의 현상을 통해 진실에 접근하려 하지만, 결국 주인공인 커피 로스터도 커피 마시는 것을 하나의 의식같이 치르는 인물이다. 그러니까 커피 로스터는 항상 커피를 마셔대기 때문에 사물의 본질을 어느정도 침착하게 볼 수 있는 자격을 부여했고, 인턴 기자는 커피를 마시면 몸의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커피와는 담을 쌓고 있는 인물이다. 재미있는 부분이다. 커피를 마셔대는 인물과 마시지 못하는 인물은 상대적이긴 하지만 역설적으로는 항상 깨어있는 자들이다. 결국 이들이 사건을 파헤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소설은 정부의 직접적인 비판이 아닌, 깨어있다고 생각하는 현대 좀비들에게 한마디 하는 소설이다. 물론 정부도 비판의 대상이긴 하지만, 이들 정부는 바로 현대 좀비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정부의 비판은 나를 포함하여 현대적 좀비일 수 있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이런 비판을 통해야만 이 소설의 완성된 퍼즐을 보지 않을까 한다. 결국 커피 로스터의 입장에서 풀린 의혹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기도 하며, 설령 의혹을 풀었다고 해서 어떠한 해법을 발견하는 것 또한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는 소설속에서 이 사회의 현상만을 보여준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해석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둔채.
 
커피를 통해 세상 사람들의 의욕을 통제하려는 정부. 비록 한시적이지만 이는 정부의 역사를 통해 배운 고단수의 머리쓰기이다.(근대적 계몽과 혁명은 커피와 같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정부이기에 대개혁법안에 반대 목소리를 억제하려는 정부의 머리쓰기) 
 
갈수록 목소리가 다양해지고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겨냥한 일률적인 통제를 하기 위한.
 
그렇다면 과연 커피의 향기를 풍기는 이는 누구인가. 그러니까 계몽적인 선동을 하는 인물은 누구인가.
 
예전 역사속 인물들이 커피를 마시고 계획과 선동을 준비했다면, 이 소설은 한시적으로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함으로써, 선동과 도발을 억제하려는 정부이다. 선동을 억제하기위해 보이지 않는 선동을 이용하는.
 
웃기게도 소설속 사건과 연관된 정부 관리 또한 커피를 마시는 자이다. 그들도 항상 깨어있다.(그래서 이런 머리쓰기가 가능하다. 우리모두 좀비가 되지 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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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 생각의나무 우리소설 10
윤대녕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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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첫 페이지를 펴자마자 단숨에 한권을 다 읽었다. 새벽까지 내리 쭉 읽었다. 영빈과 혜연의 무심한 대화와 그 속에 묻어있는 그들의 고통을 잊을라 쉬지 않고 읽었다.

이 책을 보기전에 궁금했던것이..바다와 호랑이의 관계였다. 책을 읽기전 혼자 궁상맞은 생각을 다 해보았다. 바다와 호랑이면 무언가..용호상박인가? 아무튼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첫 페이지를 폈고, 그 뒤는 바다와 호랑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처음에 이 소설은 뒤죽박죽이었다. 시간이 영빈에 따라 얽혀있었고, 영빈은 공간에 설켜있었다. 그만큼 주인공인 영빈은 그 무었때문인지는 알 순 없지만, 저 가슴속 어딘가에 저리는 무언가를 지닌채 방황을 하고 있는듯 공간적 시간적 풀어헤침이 갈지자를 이룬다. 영빈은 우리나라의 현대사의 슬픔을 껴안은채 살아가고 있는 중년남성이다. 소설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설명하진 않는다. 영빈이 겪었을 사건들과 사무친 감정들을 애써 외면한다. 다만 영빈에게 무심하면서도 냉소적인 성격을 부여함으로써 이 소설을 읽어내려가는 독자들에게 계속 영빈에게 무슨 일이 있었고 왜 영빈이 이렇게 해야하는가라는 무의식적인 추측만을 하게 만든다. 영빈은 제주도에 내려가기에 앞서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이웃집 여자인 해연에게 집 열쇠를 맡기며 가끔 창문을 열고 케케묵은 먼지냄새를 없애주라며 부탁하는 것으로 그는 제주도로 현실도피를 하게 된다. 그에게 제주도는 자신의 지난 세월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공간이고, 자신이 입은 응어리를 풀 수 있는 이상적인 공간이다. 제주도가 이상적인 공간이라면 해연이 남아있는 서울은 현실적인 공간이며 영빈이 상처를 입었던 모든 사건이 일어났던 공간이다. 서울에는 영빈의 사람들이 있고, 제주도는 영빈이 항상 낚아올릴수 있는 물고기가 있다.

해연은 영빈이 현실과 끊을 놓지 않게 만드는 인물이다. 해연 역시 그녀만의 슬픔을 가지고 있으며, 그녀는 제주도에 내려가 있는 영빈을 통해 아픔을 치유하는 인물이다. 해연도 영빈과 마찬가지로 그녀가 가지고 있는 상처를 쉽게 내보이지 않는다.

영빈과 해연은 그렇게 각자 서로에게 비장한 무기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들이 각자의 비장한 무기를 무장해제하는 순간이 서로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순간이기도 하다. 물론 영빈은 해연보다 먼저 그리고 서서히 무장해제를 한다.
이 소설은 서로 아픔을 가지고 있는 두 남녀가 서로를 통해 아픔을 치유한다는 애정일기와도 비슷하며, 초보 낚시꾼이 차차 손맛을 들여가 낚시 전문가로 거듭나는 낚시 전문 기행 소설이라 봐도 큰 무리는 없다. 마라도, 추자도, 차귀도등 여러 공간을 돌아다니며, 어느 시각의 물때(고기를 잡을 수 있는 조류가 흐르는 시각)의 시작과 함께 돗돔, 독가시치,긴꼬리 벵에돔, 돌돔등을 낚아올리는 이야기는 마치 그림속의 또다른 그림을 보는 듯한 또 다른 재미와 스릴을 안겨준다. 단순히 물고기를 낚는 것이 아니라,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처럼 그 속엔 주인공의 끈질김이 있고, 감동이 있다.

이 처럼 이 소설속엔 여러 이야기가 공존하며 그 이야기들은 하나의 주제를 풀어가기 위한 정말 감미로운 조미료인 것이다.
하지만 이들 재료들은 또 하나의 주제이기도 하다. 세상일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해연에게 그녀만의 기쁨은 바로 영빈의 낚시에 대한 이야기이다. 해연은 어렸을때부터 아버지와 같이 낚시질을 다니는 준전문가이다. 바로 이 낚시가 영빈과 해연을 각자의 현실과 이상을 계속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도구인 것이다. 그래서 이 애정일기와 같은 이야기에서 낚시는 겉돌지 않고, 이야기의 또 하나의 뼈대를 구성해준다. 정말 감탄스러울정도로 탄탄하다.

또 영빈과 해연이 풀어가는 구도상 둘이의 갈등이 좀 밋밋한 감이 없진 않다. 공간적으로도 서로 떨어져 있고, 시간적으로도 그들은 서로 부대끼는 순간이 길지 않았다. 그러한 밋밋한 둘 사이에 히데코라는 일본 여성이 등장한다. 이 여성은 단순히 일본 여성이라기 보다는 할머니 쪽이 한국계인 한국 피가 말 그대로 1/4이 흐르는 여성인 것이다. 히데코의 등장은 역설적이게도 '히데코'라는 술집에서 일어난 일이며 단순히 둘 사이의 긴장감과 갈등의 구조로 등장하기 보다는 히데코의 한국계라는 정체성의 갈등을 영빈에게는 작가 자신의 시점의 관한 갈등을 내보이게 하는 어쩌면 작가 자신이 소설에 등장한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된다. 영빈도 회사 생활에 실패한 소설가이며, 히데코도 소설을 쓰고 싶어하는 작가지망생이라고 봤을때, 이 둘의 이야기는 작가 자신이 3인칭 시점의 소설에 3인칭으로 들어간 이상하면서도 재미있는 과정이기도 하다. 물론 소설을 읽으면 알겠지만, 작가 자체가 히데코가 되서 들어갔다기 보다는 실재 존재했던 일본작가인 [사기사와 메구무]를 영빈과 히데코의 둘 사이에 존재시킴으로써 그 둘은 또 하나의 연결 고리를 가지게 되며, [윤대녕]작가가 자신이 이 소설에 직접 개입할 수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정말 재밌다.

(안 읽었다면 이 부분은 읽지 않는 것이 좋을 듯..)

소설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모든 것들은 관계되어있고, 갈등 구조가 있으며, 그것을 시원하게 푸는 해법 또한 존재한다. 물론 이 해법이 나로서는 좀 마음에 안 드는 부분도 있지만, 이 책을 다들 읽었을꺼라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지만, 히데코와 [사기사와 메구무]는 똑같이 한국계이며 똑같이 정체성에 고민을 많이 하는 인물들로 나온다. 다만 [사기사와 메구무]는 정식 작가로서 자신의 정체성 상실과 갈등을 자신의 소설을 통해 회복하려 그리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하지만, 히데코는 단지 그러한 [사기사와 메구무]를 부러워할 따름이다(참 여기서 둘은 친구관계로 나온다. 정확히는 동창관계). 하지만, 이렇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에 관한 문제를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타파하려는 이 둘에게 똑같이 자살이라는 죽음을 통해 보여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결국 이 둘은 스스로 해법찾기를 포기 하게 된 것이고, 반대로 영빈과 해연은 이 둘을 통해 해법을 찾게 되는 것이다. 나로서는 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다. 좀 통속적이게 보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부분부터는 다시 읽어도 됨..)



다시 이 소설의 원초적인 질문으로 돌아와서 과연 영빈은 호랑이를 잡을 수 있을까? 영빈은 호랑이를 잡기 위해 이상적인 공간인 제주도로 왔다. 그 곳에서 제주도에 몰입을 하게 되고, 낚시라는 삶의 도구를 통해 마음속에 무너져 있는 자신의 현실의 해법을 낚는다. 하지만, 제주도도 거대한 죽음의 섬이라는 것을 영빈은 어느 순간 알았다. 태풍과 히데코의 죽음을 통해 제주도가 더 이상 이상적인 공간이 아님을 안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영빈의 주위에 맴돌고 있는 거대한 호랑이와 조우하게 된다. 그동안 영빈이 키워만 갔던 호랑이..그 호랑이와 어느 순간 맞딱뜨리고만다. 태풍과 함께..

영빈은 가족과 영빈 자신 주위에 걸터앉았던 죽음의 끈, 항상 영빈이 생각했던 것이 자신은 죽음과 관련있다라고 생각했었던 그 죽음의 끈을 놓아버림으로써, 호랑이를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히데코의 자살을 마지막으로..그는 감지할 수 있었다.

현실 어디에도 영빈을 동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영빈은 영원한 순간과 조우하게 되는 제주도로 내려간다. 하지만 결국 제주도 또한 다른 이들에겐 엄청나게 아픈 현실임을 알게된다. 그 현실을 빠져 나오지 못하는 제주도 주민들이 있던 것이다. 영빈은 또 다른 죽음을 맞닥뜨리게 되고 자신의 거대한 호랑이를 보내게 되는것이다.

과연 나는 언제 나의 호랑이와 조우하게 될 것이며 호랑이를 떠나 보낼까..나도 제주도가서 낚시를 해야만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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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2 - 단순하고 아름다운 시선, 필름 카메라
이미지프레스 글.사진 / 청어람미디어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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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에는 두가지 내용이 담겨져 있다. 제목 그대로 하나는 낡은 카메라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들과 나머지 하나는 그 카메라를 들고 떠난다는 여행기로 볼 수 있는 글들이다.

 
역시 사진은 추억을 먹고산다. 카메라라는 밥공기를 품고 말이다. 디지털 카메라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요즘, 오래되고 기억속에서 아물가물한 클래식 카메라를 이야기하고 소개해준다는 것은 소수 매니아 뿐만 아니라, 필름을 갈아끼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는 아이들 혹은 젊은층에게는 훌륭한 부교재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이든다. 또 그것은 셔터를 누르다라는 행위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것일 수도 있다.
 
   一輝諸 (일휘구제)     한 번 휘둘러 모든 것 담아내니
    光剋山河 (광각산하)     산천이 빛으로 새겨지다
 
저자(다큐멘터리 작가 이상엽)는 이순신 장군의 검명을 조금 바꾸어 자신의 카메라와 사진촬영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좀 놀라웠던 것은 작가 '김훈'의 『칼의 노래』에 보면..이순신 장군의 검명 중 血染山河(혈염산하: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의 부분에서 색칠할 '도(塗)'를 버리고 물들일 '염(染)'자를 고집했다고 나오는데...저자(이상엽)는 새길 '각(刻)'을 버리고 이길 극 혹은 새길 '각(剋)'을 쓴 것을 보면...단어 한 자 취함에도 이순신 장군의 혼을  자신의 검(劍)과 같은 카메라에 불어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 혼자만의 생각일 수 있지만 이 책의 프롤로그 부분에 통영(이순신 장군과 관계된 '세병관', '충렬사'등의 문화 유적지가 있다)의 여정이 잠깐 언급된 것을 보면 내 느낌이 맞을 듯도 싶다.
 
먼저, 이 책은 2004년에 나온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의 후속편이다. 그래서 전작을 읽어보지 않은 나로선 더 나아졌는지, 아니면 형만한 아우 못봤다는 식의 전작보다 못하다느니 머라 말할 수 없는 입장이다. 참..그리고 나는 카메랑맹이다. 그렇기에 여기에 나온 카메라들의 기능적인 것에 대해서는 더욱 더 머라 말도 못한다.
 
그래도 굳이 이 책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한번쯤은 나도 카메라를 다루어 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기 때문이다. 우리집에도 낡은 카메라가 있긴 하지만, 거의 써먹지도 않는 편이다. 그래도 이 책을 읽고나니 카메라가 없어서 무언가를 찍을 수 없다는것 보단 낫다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하다. 만약 이 책을 읽고 나서, 찍어볼 카메라가 없다면 어찌 낙담하지 않을수 있을까.
 
이 책의 필자진은 다큐멘터리 웹진 <이미지프레스 www.imagepress.net>의 대표인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이상엽'씨를 필두로 '임제천', '강제욱' '노순택'씨와 <타임>, <르몽드>, <리베라시옹>, <지오>등에 기고를 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성남훈'씨 그리고 게스트로 방송작가겸 여행사진가인 '최승희(www.damotori.com)'씨로 구성되어있다.
 
그리고 이들은 각자 프랑스 파리, 브라질, 파라과이, 러시아 그리고 국내로는 수덕사와 운주사, 탑리등을 돌아보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다큐멘터리 재능들을 힘껏 펼친다. 그들의 이야기의 주변부에는 그들만의 클래식 카메라가 있고, 그들의 이야기는 그 카메라에서 나온 사진들로 위용을 갖춘다. 하지만, 역시 카메라맹인 내가 보기에는 다큐멘터리적인 여행기는 괜찮았지만, 카메라의 용어와 기술 부분에서 막히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래도 오히려 내가 모르는 카메라의 세계로 이끌어주는 글들이 그들의 여행기보다는 더 좋았던 것 같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들의 여행기는 직업적인 냄새가 많이 났고, 오히려 카메라 이야기는 그들의 열정과 노력과 애환이 보여서 더 좋은 듯 싶다.
 
특히, 개인 사비를 털어서 카메라 박물관(www.kcpm.or.kr)을 세운 '김종세' 관장과의 인터뷰는 그 분의 열정을 볼 수 있어서 가장 기쁘게 읽은 부분이다. 참, 필름에 관한 이야기도 좋았다.
 

 
요즘은 무엇이든 너무 다양하다. 그리고 그 다양함을 조금만 노력하면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데 이 카메라, 특히 클래식 카메라의 세계는 우스갯 소리로 웬지 저주가 걸려 있는 듯 하다.
 
한번 들어가면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그러한 늪과 같은 세계. 그래도 그 세계에 더 못빠져서 서로들 아우성 거린다.
 
솔직히 이 모든게 상업적인 시각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상업적인 부분의 시작 또한 누군가의 열정으로 문을 열게 되었으니, 그 끝을 알 수 없는 깊숙한 늪에 빠져도 왠만한 불평을 들을 수 없는 듯 하다.
 
필름 카메라와 디지털 카메라는 같으면서도 다르다. 필름없이 사진을 찍는다는 것과 필름을 아껴가며 사진을 찍는다는 의미와는 정말 천지차이인것 같다. 특히나 디지털 카메라는 인화과정이 없으니 또 다른 재미와 열정을 누락시키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렇다고 디지털 카메라가 필름 카메라보다 못하다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는 디지털 카메라 또한 누군가의 추억이 될 수 있으며, 일부 기종은 벌써 추억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 추억이 똑같이 다 추억은 아닐 것이다. 사진의 인화와 복제는 분명 그 의미가 다를테니 말이다.
 
2006. 0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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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 시장 - 생명공학시대 인체조직의 상품화를 파헤친다
로리 앤드루스.도로시 넬킨 지음, 김명진.김병수 옮김 / 궁리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인체의 신비전]이라는 전시회를 잘 알고 있다. 죽은 사람의 몸을 여러가지의 해부학적 분류로 구분하여...전시해 놓은 것 말이다. 어떤 표본은 운동하고 있는 형상을 하며, 어떤 표본은 아이를 임신한체로 전시되어 있다. 이 전시회를 가보았건, 가보지 않았건 간에...분명..사람이라면 충격을 받을 것이다.

'우리 몸이 저렇게 구성되어있구나. 뼈는 저렇게 우리 몸을 받쳐주고 있구나. 우리의 내장들이 이렇게 자리를 잡고 있구나' 등등...여러가지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런데..가만 생각해보자..

당신은 우리의 몸을 이루고 있는, 장기 혹은 뼈, 혹은 피부, 핏줄..뇌...등등...이런 것들 때문에..충격을 받았을까? 물론 이런것들로 충격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결국..우리가 받는 대부분의 충격은 이런 물질적인 것 때문이 아니라, 이 표본들도..지금의 나와 같이..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가족과 같은 삶을 이루고 있었고, 사랑을 했었던.. 또 사랑을 받았던..한때는 숨쉬고 있었던..인간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주된 이유일 것이다.

결국...우리는 인체의 신비를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던..사람이 어떻게 물질화되어 있는지..어떻게 상품화 되어 있는지..보러 가는 것과 같다. 과연...어느 누가...신비롭게 그리고 교육적으로 볼 수 있을까... 전시회에 가서 처음에 든 생각은 징그럽다, 내지..이 표본들이 예전에 인간이었음을 상기하면서..불쌍하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7장 생물수집품과 몸의 전시 中), 이 과학 전시회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의사이자, 해부학 강사이기도 하며..또한 미술가이기도 한..'군터 폰 하겐스'라는 사람이 플래스티네이션(plastination)이라는 특수 방부처리기법을 사용하여..인체를 표본화시켜 전시한 것인데, 처음에 예술 전시회로 표방했다가 논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과학 전시회로 바꾸었다 한다.

각설하고, 과연...우리의 몸은 누구의 것일까? 내 몸을 누구에게도 줄 수 있을까? 아니면, 주지도 않았는데..다른 이가 상업적으로 쓰면 어찌할까? 또, 자신의 몸을 주었는데...자신은 철저히 소외시키고 기증받은 사람 마음대로 처리하면 그 몸의 주인 혹은 주변인들은 과연..다시 소유권을 주장 할 수 없을 것인가? 또, 기증받은 사람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주고...그 다른 누군가가 처음 기증했던..사람과의 의지와 다르게..혹은 모르게 사용하면..어찌될 건가?

당신이 생각하는 이 일련의 질문들의 대답들은 대충 다 부정적일 것이다. 왜냐하면...자신의 몸은 자신의 것 아닌가..누가 자신의 몸을 해하면..법으로써 그 누군가를 응징할 수 있지 않은가...

이 질문과 당신이 생각했을 법한 대답들이 바로 이 책이 던진 질문이자..해결안된 대답이고, 우리가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전 세계적으로 지금 이순간에도 진행되고 있는 과정에 대한 추적이다.

앞서 몇가지 질문들 속에는 거시적인 소재로..몸(body)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렇다면..조금 더 미시적인 것들 그러니까..우리들의 머리카락이면, 혈액이면, 유전자이면, 심지어 사후 기증된 시체 혹은 그 일부이면..과연 어찌될까...

이것은..머리가 아플정도로 굉장히 복잡하다. 특히..재생이 가능한 인자들..혹은..주어도 티가 나지 않는 것들은..엄청난 윤리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우리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생각했던 것들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문제들이 아니다. 다만..수면 아래에서 깊이 가라앉아 있을 뿐 드러나지 않은 것들이다. 왜냐하면..우리는 진정으로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알고 있는...의사, 연구가 들도 이 문제들을 다 알려줄 수 도 없다. 왜냐하면..이는 거대한 거미줄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한 부분을 흔들면...모든 망들이 흔들리며, 이는 우리의 과학적 체계 그리고 의료적 체계를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이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졌던..유일하지만, 너무 거대하게 다가온 부정적인 생각이다. 이 책이 지독하게 사실적이라는 것 때문에.. 모든 것들이 혼란스럽게 다가왔다. 범죄에서 해결하고, 생부를 판명하고, 우리에게 잠재되어 있는 유전병을 병 걸리기 이전에 인지할 수 있는 유전인자 분석과 DNA 분석같은 이런 긍정적이라 생각되어지는 모든 기술들도...우리에게 좋게 보여지고 있을 뿐인 그리고 허울만 좋을 수 있는...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즉, 범죄를 해결 할 수 있고, 유전병을 사전에 인지할 수 있지만, 이러한 기술을 다른 곳에 사용한다면..똑같은 기술로 엄청난 윤리적 난관에 걸리기도 하며, 범죄가 될 수 있다. 이는 큰 문제이다. 이 문제의 본질들은 윤리적인 시각과 법적인 시각이 주는 것들인데..솔직히..시간이 흐르면서..이 둘의 시각이 변할 수도 있다는 것에 있다.

또, 우리라는 거대한 집단에 대입시키면..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우리 모두 다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나 자신으로 한정시켜 접근하면...이는 거대한 벽에 혼자 머리들이받는 것과 같다. 나 혼자가 공익을 상대로 싸울 수 없듯이..나 자신이 갖는 개념과...인간 전체가 가지는 개념 자체가 다르다. 나 또한 인간이지만 말이다.

우리의 아니..인간의 정체성은 그야말로..백지 수표와 같다. 이 수표에 멀 쓰느냐에 따라..가치가 달라지듯이..인간의 정체성은 실제론...아무것도 없다. 오직...법적인 판결만 있을 뿐이다. 그 수위에 따라..인간의 정체성 혹은 인간의 본질에 대해 인간 스스로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이 자의적인 해석으로 인해..인체시장도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말해..인간의 정체성은 법이 좌지우지 한다 봐도..무방하다. 이 책을 읽고 난 느낌이다. 이미 인체는 상업적으로 쓰이고 있다. 그리고 이 상업적이라는 말은 그 기반에..법적인 허용(혹은 합법적)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고, 이 법적인 허용이라는 말은 인간의 정체성, 그리고 인간이라는 매우 윤리적인 기반을 어느 선까지 인지..대충 선을 그어 놓은 것을 의미하고 있다. 여기에서 대충이라는 말은 어느 누구도 정확히 선을 그어 놓을 수 없다는 말이다. 따지고 들면...오류 투성이이고, 말장난에 불과할 뿐이다. 

혹..어떤 사람은 대안으로 종교를 들먹일 수 있다. 물론.. 종교 또한 하나의 방벽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종교의 인식도 결국은 종교적이다. 그리고 종교 또한 다수이다. 종교지도자들끼리 합의한다고 해서...인간의 본질이 규정되는 것 또한 웃긴 일이다. 법적인 해결과 그 차이가 별반 다를 것도 없다.

과연...신이 아니고서야..이런 복잡하고 난해한..문제들(윤리적이면서 법적인)을 깔끔히 해결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지 않나...생각해본다.(하지만..그렇기에..우리는 웃고 있다.)

우리가 이미 구축하고 있는 모든 체계들이 흔들림없이 제대로 굴러가길 원한다면..단 한가지 방법이 있다. 그리고 그외의 방법은 작든,크든...윤리적이든, 법적이든 어떠한 문제라도 야기시킬 수 있다.

이 한가지 방법은...우리 모두 윤리적으로나 법적으로나 그리고 가장 중요한 양심적으로 깨끗하면 된다. 이게 유일한 해법이다. 그만큼..어렵다는 것이 아니라...해결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모든 것을 금지(심지어 의료행위마저)하지 않는 한은 말이다. 지금도 발견되는 유전인자들 하나하나에 대해서..어떻게 법적인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인간의 유전자가 2만 5천개정도 된다는데...)

그래서...이 책을 읽으며..거대한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고개를 끄덕거렸지만...실로 부정적인 생각도 드는 것이다.

'모르는게 약이다'라는 말을 떠올리면서...

끝으로...비록..이 책이 인간이 갖는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불 수 있는 여지를 주긴 하지만...이 책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인체를 대상으로 한 상업성의 폐해들의 사례들을 보여주는데에 있다. 이 사례들을 본다면... 웃지도 울지도 못할 것이다. 병으로 죽어가면..내 유전자가 상업적으로 쓰이든 말든..이것은 2차적인 문제이다. 혹...난치병이 치료가 된다면..이는 큰 문제도 아니게 될 것이다.

세상에는 나 자신도 모르는 별 희귀한 시스템도 있다는 생각도 하면서...이 책을 읽어보라 권해보고 싶다.

<덧붙임..>

* 아인슈타인의 사후 시체일부(뇌)보다 아인슈타인의 이미지(사진과 같은)가 더 법적인 제재를 받는 다는 것이 제일 웃겼다.

* 이 책이 과연 자연과학 관련 서(書)인지..아니면..법학 계열의 인문서인지...좀 헛갈린다. 문제제시는 과학,기술 분야를 통해서 하지만, 그 해결은 법 속에서 찾고자 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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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에의 충동
정진홍 지음 / 21세기북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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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책은 다수의 인물에 대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럼..어떤 인물들로 이 책 한권을 채웠을까? 제목 그대로...'완벽한 인물들'일까? 아니면..'완벽을 향해 가는 인물들일까?

어쩜..위 두가지 다 맞을 지 모른다. 최소 완벽에 가까운 인물들이다. 하지만, 좀 더 부연 설명이 필요할 듯 싶다. 이 완벽에 가까운 인물들은 인생의 수많은 고난과 힘겨움 그리고 역경을 이겨낸 인물들이다. 그리고 남들이 봤을때.. 성공한 인물들이다.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말이다.

음... 진부하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매체에서 이런 것들을 다루지 않나? 당장..인터넷에 접속하여..보더라도 수많은 성공과 실패로 뒤덮인 기사들로 가득 차 있지 않나? 진부함...내가 생각하기론 이 책의 단점이다.

하지만..(결국..이런 말이 나오지 않을까..예상했겠지만...) 이런 수많은 성공담들을 한자리에서 그리고 한 권의 책에서 읽기란 쉽지 않다. 이 책에 쓰인 여러 인물들의 성공담들은 매우 단편적임에도 오직 한가지 주제로 잘 조합되어 있다. 복잡한 인생살이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해 볼 수 있는 '예문들'이라 불러도 좋다. 이런 예문들을 어디서 쉽게 구할 수 있을까..

자신이 알고 있는 인물들 뿐만 아니라, 잘 알지 못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도 이 책속엔 들어있다. 그리고 작은 소주제들로 잘 구분되어져 있다.

한번..소주제들을 살펴보자.

1. 시도하지 않은 것도 실패다.

2. 고난은 신의 선물이다.

3. 세상을 사랑으로 숨쉬게 하라.

4. 삶의 향기를 뿜어내라.

5. 리더는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다.

6. 나만의 리더십을 디자인하라.

이렇게 6가지의 소주제들로 나뉘어 있으며..각 주제속에는 이 주제와 걸맞는 인물들의 고난의 이야기, 실패의 이야기, 행복의 이야기, 성공의 이야기등이 수록되어 있다.

어찌보면.. 이런 주제들과 상관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책속의 인물들의 이야기는 속해있는 주제를 향해 달려간다. 주제와 인물들의 이야기가 잘 들어맞는다. 그래서, 많은 이야기지만 복잡하지도 난잡하지도 않다.

이게 이 책의 장점이다.

이 책 제목은 '완벽에의 충동'이다. 내가 이 책을 사 본 이유는 '완벽'이라는 단어 때문이 아니다. (물론..'완벽'이라는 단어도 나를 충분히 매료되게 만들었지만...) '충동'때문이라는 단어 때문이다. 의도된 마케팅 전략에 내가 얽혀 들어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확실히..전략에 빠졌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이 책을 사본 것을 후회하진 않는다.

다만, 내가 이 책을 읽은 후...이 '충동'이 계속 나의 머릿속에 남아있느냐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는 많은 부분을 공감하고, 왠지 모르게 '충동'과 비슷한 결연한 '의지'같은 것이 솟구침도 느꼈지만, 나의 경우에 있어서 책을 덮으면, 이러한 교훈적인 내용은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더라는, 쓰디쓰지만 결국은 달콤함을 맛 본 이야기들에 불과해졌다.

이 책은 한 번 읽고 말 책이 아닌 듯 하다. 한 번 봤다고, 그리고 이 책속에 들어있는 인물들의 성공담과 실패담을 좀 맛봤다고 해서 '완벽'해지는 것도, '완벽'해 지려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의 제목대로... '완벽에의 충동'을 느끼려면... 이 책을 계속 보고 또 보려는 '충동'을 가져야만 이 책이 궁극적으로 말하려는 것들을 이해하지 않을까싶다.

이 책의 진정한 이야기는 보이기 쉽게 숨겨져 있다. 하지만 느끼기엔 쉽지 않다. 아니 느끼기엔 쉬울 지 몰라도 행하기엔 좀 어렵다.

이 책을 외워야 하나?

그럼...'자신의 삶을 삶답게 살고 싶은 충동'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을 멀리 떨어쳐 놓지 말기를...(책 속의 인물들과 자신과 동일시 시키는 것도 필요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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