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부탄에 삽니다
고은경 외 지음 / 공명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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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에서 살고 있는 세 여성의 이야기 중 이연지 씨의 글.


  몇 해 전, 아빠가 부탄에 방문했을 때였다. 여름에 파리가 많아서 신문지를 돌돌 말아 파리를 잡고 있는 아빠를 보며 타시는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는 해충을 잡는 것이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어서 타시의 반응에 그저 웃었는데 "파리는 그렇게 맞아 죽을 때 얼마나 고통스럽겠어요."라는 타시의 말에 더 이상 웃을 수가 없었다. 아빠와 나는 파리를 죽이지 않고 손으로 잡아서 창문 밖으로 내보내는 법을 배웠다.                                 - 158쪽



*타시: 이 글을 쓴 이연지 씨의 부탄인 남편.


몇 년 전에 참여한 템플스테이가 떠오른다. 살생을 금하는 불교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는데 누군가가, 모기나 파리 같은 해충도 생명을 존중해야 하느냐고 지도 스님에게 물었다. 유치한 질문이었지만 나도 내심 궁금하던 차였다. 스님은, " 모기와 파리는 해충인데 굳이 존중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냥 잡아버립니다." 여기저기서 키득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기억은 오래 가는 법. 스님, 부탄에 한번 다녀오셔야겠어요.



티벳이나 부탄 관련 책을 읽으면 이런 소소한 얘기에 마음이 훈훈해진다. 인도 라다크 지역의 곰파(사원)에서 한겨울을 지내보는 게 소망인데.... 부탄 관련 책으로 마음을 달래본다.




* 이 책에서 언급된 부탄 영화 <교실 안의 야크>를 감상했다. 툴툴거리는 초짜 선생님의 성장기(?)쯤 되는데 부탄의 깨끗한 자연환경처럼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부탄이니까 가능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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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10-23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신간 소식에서 보자마자 찜해두었는데, 담번에는 nama님 곰파 체류기(?) 읽을 기회가 있기를, nama님의 소망이 현실화되기를 응원드립니다

nama 2022-10-23 16:11   좋아요 0 | URL
응원을 받으니 언젠가는 실현되리라고 믿고 싶어집니다.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2-10-23 18: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희집에도 모기가 있어서 조금 전에 전기모기채로 잡았어요.
저는 부탄 가서는 못 살겠네요.^^;
nama님, 잘 지내셨나요.
이번주 날씨가 조금 따뜻해지나 싶었는데 오늘 다시 바람이 많이 부네요.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하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nama 2022-10-23 18:22   좋아요 1 | URL
저는 모기매트와 연고 달고 살아요.
평온한 날들 되시길 바랍니다^^

얄라알라 2022-10-24 12:19   좋아요 0 | URL
서니데이님 댓글에 빵 ㅎㅎㅎ˝모기채와 모기매트가 등장하다니 ㅋㅋnama님까지 ㅎ

자이나교인들은 수영을 못한다 (물 속에 있는 작은 생명체를 해할까봐)라고 들은 적이 있는데, 부탄에서도 비슷한 세계관 찾아볼 수 있나봐요

nama 2022-10-24 16:50   좋아요 1 | URL
이슬람, 기독교, 유대교 처럼 자이나교, 힌두교, 불교도 뿌리는 같을 거예요.
 
















마음이 없다


                         정호승


마음이 다 떠났다

마음에도 길이 있어 

마음이 구두를 신고

돌아오지 않을 길을 떠나버렸다

비가 오는데 비를 맞고

눈이 오는데 눈을 맞고

마음이 먼 길을 떠난 뒤

길마저 마음을 다 떠나버렸다

나는 마음이 떠나간 길을

따라갈 마음이 없다

종로에서 만나 밥 먹을 마음도

인사동에서 만나 술 마실 마음도

기차를 타고 멀리

바다를 보러 가고 싶은 마음도 없다

마음이 다 떠나면 

꽃이 진다더니

내 마음이 살았던 당신의 집에 

꽃이 지고

겨울비만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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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조사가 민폐일까?


  A는 언니의 장례식을 가족끼리 치뤘다. 부모는 모두 작고했고 언니는 결혼을 하지 않아 형제자매와 배우자, 조카, 조카며느리 다 합해서 10명이 전부였다. 언니는, 오랫동안 이어진 입원 생활로 친구 하나 남지 않았다. 쓸쓸한 일생을 보낸 언니는 마지막 길마저 쓸쓸했다. 언니 뿐일까. 가족 또한 오랫동안 쓸쓸했으니 그 쓸쓸함은 누구랑 나눌 수도 없는 슬픔이었기에 더욱 더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은 묵직하고도 끈적거리는 핏덩이같은 외로움이었다. 피로 이루어진 가족의 끈끈함은 벗어날 수 없는 족쇄이기도 했다. A는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심연 속으로 가라앉곤 했다.


  A의 친구 B는 최근 딸과 아들의 결혼식을 치뤘다. 30대인 아들과 딸은 대학 졸업 후 직장 생활을 반듯하게 하고 있고, 결혼식도 본인들의 뜻대로 했다고 한다. 결혼식은 가족끼리 했는데 부모와 형제자매와 배우자, 조카, 조카며느리 포함, 양가 합해서 80여 명이었으니 다복한 집안임에 틀림없다. 친족이 아닌 가족 구성원들의 친구와 지인까지 초대했다면 결혼식이 성황을 이루었으리라.


A와 B는 이런 경조사를 치르면서 친구 한 명 부르지 않았다. A는 그나마 친구 C를 통해서 단체 카톡방에 부고 사실을 알리며 양해를 구했는데, B는 대사를 모두 치른 후에 결혼식 사진을 올려 친구들을 경악하게 했다. 50년 된 죽마고우들을 깜쪽같이 속인 깜쪽같은 친구 B. 카톡방에 미리 한마디쯤 흘리는 게 그렇게 어려웠을까. 아니 쉬웠을까. 단톡방을 알맹이 없는 깡통으로 만들어버린 B. 민폐 끼치기 꺼린 친구 대신 제 역할 못한 카톡만 씁쓸하게 원망한다.


* 위의 글을 딸에게 보여주니, A는 모르는 사람이 봐도 엄마이고, 친구 B한테 단단히 서운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며, 그럴 수 있겠다며 키득거린다. 친구가 가족이 될 수야 없지만 어찌보면 가족보다 가까울 수도 있지 않은가...하는 생각도 잠시. 섭섭한 감정을 어떻게 풀까나....카톡에서 내 패를 모두 보여주면 안되는 거구나...하는 씁쓸함.



2. 그깟 영어 하나 가지고








코***에서 구입한 영업용 청소기. 상자 위에 쓰여있는 각국의 언어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이중에서 대 여섯 나라의 단어를 넘겨짚어가며 읽는다고 해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많다.

도저히 발음할 수 없는 외계어같은 말들. 영어 하나 배우느냐고 고생도 참 많이 했는데 그래봐야 

조족지혈. 급 겸손해짐.



3. '어쨌건 페미니스트인 Y에게'















여기저기에서 인용되는 고 장춘익 교수의 글을 드디어 접했다. 


감히 조언자 역할을 해도 된다면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하나는 네가 세상에서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보다 새로운 것을 흡수하는 것이 더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뿌리에서 흡수하는 것보다 많은 수분을 방출하는 식물은 고사한다. 대기의 온도가 높을수록 더 많은 수분을 빨아들여야 하지. 항의할 줄 알아야 하지만, 나중에 자신이 줄 것도 있어야 한다. 세상에 애정과 호기심을 가지고, 네 지식과 정서의 저장고를 듬뿍 채워두어라. 페미니즘이 네 주장의 설득력을 보증해주는 것이 아니라, 너의 지식이 너의 페미니즘에 설득력을 가져다주는 것이야. 페미니즘 아닌 다른 영역에서도 지적으로 신뢰받을 수 있어야 사람들이 네 페미니즘도 신뢰한단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기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네가 너의 기쁨을 찾는다고 해서 항의의 진실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란다. 오히려 너의 기쁨과 생동성만큼 너의 주장에 전반적인 설득력을 가져다주는 것도 없단다.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내놓거나 혹은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것보다, 네가 가지고 있는 것에 다른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도록 해라. 그렇게 하려면 너에게 어떤 즐거움이 있어야 한단다. 종교수행자가 괴로운 표정만 짓고 있으면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질 수 있겠니? 다 버리고도 잔잔한 미소를 짓는 그런 '다름'에 비로소 사람들이 압도디는 것이다.    -p.20



처음엔 장춘익 교수가 여성인지 남성인지 매우 헷갈리고 궁금했다. 그분과 함께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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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배송 받는데 배송비는커녕 되려 적립금 500원을 주는 편의점 택배를 이용하고 있다. 문앞 배송에 젖은 게으른 습관을 바꾸고 몸도 조금 움직이니 커피 한 잔 마시는 듯한 각성효과와 기분전환의 작은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타박타박 걸으니 진짜 동네사람이 된 것 같다. 


며칠 전, 주문한 책이 도착했다는 카톡을 확인하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머리가 희끗한, 필시 내 또래쯤 되는 사장님이 반긴다. 며칠이 지나도 택배를 찾아가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한숨을 쉬면서 매번 곧바로 찾아가는 나를 향해 고마운 감정이 배인 인사를 건넨다. "역시 책을 많이 읽는 분이라 다르십니다." 엉? 속으로, 저는요, 알라딘세계에서는 책을 많이 읽는 축에도 못끼는데요...므흣. 하나만 사야지 했던 비스킷을 두 개 고르길 잘했다.


집으로 돌아와 딸에게 이 얘기를 하니, 그건 책을 많이 읽어서가 아니라, 우리 가족이 타고나길 그렇게 타고나서 그렇다는 해석을 한다. 늘 약속 시간보다 먼저 가서 기다리시던 나의 부모님의 유전자는 나를 거쳐 딸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으니.


그래서 구입한 책이 무엇이냐면,


1.















한겨레신문에 실린 이 분의 칼럼을 읽는 맛이 좋았다. 다소 엉뚱 기발하지만 '~척'하지 않는 진솔함이 마음에 와닿았다. 주기적으로 이 분이 쓴 책을 검색하기도 했다. 여러 권 있지만 내가 읽은 책은 거의 없었는데...어느날 시골 오두막에 방치(?)한 책이 눈에 들어왔다.





2015년 학교 도서관 업무를 할 때 낡고 오래된 책 수백 권을 폐기처분했는데 왠지 이 책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챙겨놨었다. 만화에는 별 애정이 없어서 읽고 싶은 책은 아니었으나 뭔가 독특한 아우라를 품고 있었다. 저자가 훗날 내가 좋아하게 될 분인지는 물론 몰랐다.


그리고 얼마전 도서관에서 빌린 책.
















이 책에 소개된 도시 중 1/2 를 가봤다. 내 발로 직접 가봤지만 이 책을 통해 시각교정을 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 이런 관점도 있구나 하는. 그러나 꼼꼼히 읽지는 않았다. 화장실에서 잠깐씩 읽기에 딱 좋은 책? 안타깝게도 나는 속전속결형이라 화장실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저자는 좋아해도 그 분이 쓴 책은 읽지 않는 이 불일치의 텁텁함이라니......


그러다가 저 위의 책이 발간된 걸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드디어 새 책을 내셨군요! 잔머리를 잠시 굴렸다.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하면 내가 맨 먼저 볼 수 있잖아~ 얼른 신청했는데 며칠 후 도서관 홈피에 들어가 확인해보니 이미 누군가가 신청해서 내가 신청한 게 취소가 되었다. 그러면 언제 내 손에 들어올 지 기약할 수는 있으나 기다리다 지칠까봐 그냥 구매하기로 마음 먹었다. 팬이라며....


이미 신문에서 읽은 글이 있었으나 그래도 좋았다. 정희진, 이라명...훅하고 치고 들어오는 짜릿한 글과 번갈아 읽고 있으면 충격이 가라앉으면서 나와 코드가 맞는 친구의 얘기를 듣는 기분이 들었다. 



2. 














이 책에 대한 포스팅을 9년 전에 올렸다고 친절한 북플이 알려주었다. 아, 이 책이 아니라 이전에 나온 책.

















때로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는 후회하곤 하는데 이 책이 그랬다. 소식 끊긴 친구는 못 만나지만 한때 마음에 들었던 책을 다시 만나는 건 작은 기쁨이다. 다시 보니 예전엔 눈에 들어오지 않던 인물들이 하나둘씩 안겨온다. 내가 세상을 헛되이 산 건 아니구나. ㅎㅎ



3.















이 책 역시 도서관에서 빌렸었는데 완독은 못했다. 도저히 보름 안에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빨리 읽는다고 머리에 남아있을 내용도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나는 만화를 읽는데 애를 먹는다. 그림과 글이 따로따로 놀아서 집중을 못한다. 게다가 그 많은 뮤지션들과 그들의 대표곡을 들으려면 이 책을 옆에 끼고 있어야 한다. 재즈에 대한 책을 언젠가 읽어보리..벼르던 게 언제였던가.




동네 편의점 사장님한테 인정 받기 위해 계속 플래티넘 등급을 유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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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hard Cory

                           E.A.Robinson

 

Whenever Richard Cory went down town,

We people on the pavement looked at him:

He was a gentleman from sole to crown,

Clean favored, and imperially slim.

 

And he was always quietly arrayed,

And he was always human when he talked:

But still he fluttered pulses when he said,

"Good-morning," and he glittered when he walked.

 

And he was rich - - - yes, richer than a king - - -

And admirably schooled in every grace:

In fine, we thought that he was everything

To make us wish that we were in his place.

 

So on we worked, and waited for the light,

And went without the meat, and cursed the bread:

And Richard Cory, one calm summer night,

Went home and put a bullet through his head.

 

리처드 코리가 시내에 나올 때마다

길가를 지나던 우리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신사였고

단정한 외모에 의젓하고 늘씬했다

 

항상 단정한 옷차림에

말할 때 그는 항상 인간미가 넘쳤다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할 때 맥박은 강하게 고동쳤으며

그가 걸을 때 눈이 부셨다

 

그리고 그는 부자였다. 왕보다도 더 부유했다

또 모든 면에서 훌륭한 교양을 쌓았다

요컨대 그는 우리가 그였으면 하고 바라게 만드는

그 모든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했다

 

우리는 그렇게 일하면서 희망의 날을 기다렸다

고기 없이 살며 맨 빵을 저주했다

그리고 어느 고요한 여름밤에 리처드 코리는

집으로 돌아가 자기 머리에 총을 쏴버렸다

 

 

 

 

 

 

 

 

 

 

 

 

 

 

 

 

 

p.186 에 실린 시인데 계속 이어진 글을 옮겨본다.

 

어머니는 학생들에게 이 시의 주제를 이해시키려 애쓰는 중이라고 했다. 남들에겐 완벽하게 보이는 표면과 그 아래 숨겨진 비밀, 아무도 모르는 절망감 간의 괴리를. 사실 이 시야말로 샐리와 내가 어머니에게서 들은 것 중에 우리 가족의 상황을 둘러싼 진실과 가장 가까웠다고 하겠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문제를 우리에게 절대 발설하지 않겠다던 맹세를 충실히 지켰으니까. 우리가 단서라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문학 토론을 통해서 뿐이었다.

 

이 책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시가 되겠다.

 

 

'내가 읽은 올해의 책'에 올리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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