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작가가 아닌 사람의 차이점을 단순하게 찾는다면? 작가는 자신의 얘기를 글로 쓰고, 작가가 아닌 사람은 마음 속으로 되뇐다는 것. 아니 에르노의 두 책을 읽고 든 생각이다.


















이 책은 에르노가 아버지에 대해서 쓴 책.

















이 책은 에르노가 엄마에 대해서 쓴 책.


두 책 모두 형식이 비슷하다. 아버지의 죽음 혹은 엄마의 죽음을 기점으로 과거를 회상하며 아버지에 대해서, 엄마에 대해서 잔잔하게 서술하고 있다. 읽다보면 나도 쓸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저절로 들기도 한다. 왜 안 그러겠는가. 누구에게나 아버지와 엄마는 존재하니까. 부모와 자식 사이란 세상살이를 하면서 마음 속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면서 평생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관계가 아니던가.





두 책 모두 심혈을 기울여 구입한 책은 아니다. <남자의 자리>는 떨이로 파는 책더미에서 작가 이름과 출판사를 보고 구입하고, <한 여자>는 양양의 유일한 서점인 대아서점에 들렀다가 빈 손으로 나올 수 없어서 고른 책이다. 평일 오후의 시골 책방. 서점 내에 풍기는 냄새로 보아 주인장은 안채에서 점심을 드시는 중인 것 같았고 대신 목청 좋은 댕댕이가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컹컹컹. 서점을 개가 지킨다고? 주인 잘 만나서 너도 머잖아 당구풍월하겠구나. 서가 작은 코너에 아니 에르노의 책들이 여러 권 꽂혀 있었는데 <한 여자>도 그곳에 있었다. 반가움.



나도 아버지에 대해서, 엄마에 대해서 머릿속으로 쓴 문장들이 얼마나 많은가. 머릿속으로는 작가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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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나의 독서가, 책을 대하는 나의 자세가, 한 권의 책에서 하나만 얻기 식으로 되고 있다. 내 취향이 좀 그렇다. 음식도 향이 강한 것을 좋아한다. 이를테면, 익히지 않은 파김치, 고들빼기김치, 고수, 걸죽한 짬뽕, 진한 커피, 생마늘, 청양고추.... 책도 강한 맛이 있어야 눈에 들어온다. 일단 강한 맛이 눈에 들어오면 나머지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강한 맛 하나로도 만족하니까.

















메리 올리버의 이 시집에서 눈에 들어온 시 한 편. 이 시집은 다행히(?) 원문이 함께 실려 있어서 답답하지 않다. 제대로 알건모르건 본모습을 대면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



That Sweet Flute John Clare


That sweet flute John Clare;

That broken branch Eddy Whitman;

Christopher Smart, in the press of blazing electricity;

my uncle the suicide;

Woolf on her way to the river;

Wolf, of the sorrowful songs;

Swift, impenetrable murk of Dublin;

Schumann, climbing the bridge, leaping into the Rhine;

Ruskin, Cowper;

Poe, rambling in the gloom-bins of Baltimore and Richmond-


light of the world, hold me.




감미로운 피리 존 클레어


감미로운 피리 존 클레어,

부러진 나뭇가지 에디 휘트먼,

전기의 불꽃으로 활활 타오른 크리스토퍼 스마트,

자살한 나의 삼촌,

강으로 가는 버지니아 울프,

구슬픈 노래 짓는 후고 볼프,

더블린의 짙은 어둠 조너선 스위프트,

다리 위로 올라가, 라인강에 뛰어드는 로베르트 슈만,

존 러스킨, 윌리엄 쿠퍼,

볼티모어와 리치먼드의 음울한 정신병원을 배회하는 

 에드거 앨런 포-


세상의 빛, 나를 품어주오.





존 클레어가 누굴까? 1793년 출생, 1864년 사망, 워즈워드, 셸리, 바이런과 같은 당대 유명한 시인들과 함께 영국 낭만주의 시대를 풍미했지만 이들의 그림자에 묻혀 평생을 무명으로 살아온 비운의 시인.(출처: 나무위키)



에디 휘트먼은 누구? 미국의 유명 시인 월트 휘트먼의 부러진 나뭇가지(장애인 형제) 동생.


다음, 다다음 사람은 누구? 이들을 공통으로 묶어주는 것은? 원문에 쓰인 sweet, light 를 빼면 설명이 된다. suicide, sorrowful, murk(암흑, 어둠) 등. 감미로운 인생을 살지 못한 유명인들이다. 특히 정신적인 면에서. 


시인은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바랄 수 있을까? 나는 저들처럼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light of the world, hold me.

세상의 빛, 나를 품어주오.



그러나 뭔가 불편하다. 시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세상의 빛이 비추지 않아서 고통을 겪은 것일까? 그들의 고통을 세상사람들이 알 수 있을까? 묶음으로 처리된 그들의 최후. 그들의 억울함이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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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표를 샀더니 요즘에는 이런 걸 쓴단다. 스티커로 되어 있어서 사용이 편리하다나...침 발라서 우표를 붙이고 싶었는데. 10장의 손편지를 올해 안에 쓰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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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3-29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우표 붙이던 시절
이 그립습니다.

손편지 쓰기 응원하는 바
입니다.

nama 2023-03-29 16:41   좋아요 1 | URL
손편지를 쓰겠노라 마음은 먹었으나 손이 움직이지 않네요. ㅎ

잉크냄새 2023-03-29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허전한 느낌입니다. 우표가 주는 매력도 있는데...

nama 2023-03-29 16:45   좋아요 0 | URL
많은 사람들이 손편지를 쓰면 우표가 활성화될까요? 레트로가 유행인데 언젠가 다시 유행을 타지 않을까요? 세상 일은 모르는 거니까요.
 
네가 맛있는 하루를 보내면 좋겠어 - 츠지 히토나리가 아이에게 들려주는 인생 레시피
츠지 히토나리 지음, 권남희 옮김 / 니들북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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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되기 전에 야심 많은 워커홀릭이었다는 <냉정과 열정 사이>의 작가 쓰지 히토나리. 이혼 후 싱글대디가 되어 아들을 혼자 양육하였다고 한다. 그 고단과 어려움을 다음의 한 문장에서 읽을 수 있다. '' 100권의 책을 쓰는 것보다도 제대로 된 양육이 더 위대하다." 아이를 가진 뒤 작가로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연애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게 되었습니다. <냉정과 열정사이>와 같은 작품을 다시 읽는 경우는 없습니다."  (2023.03.25.<한겨레신문>에서 발췌)


요전에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영화로 보았다. 소설은 물론 읽지 않아서 상식보유 차원에서 영화를 본건데 뭐 이렇다할 감흥이 생기지 않았다. 내 취향이 아닌가, 내 감성이 메마른건가...했는데 이건 감성의 문제가 아닌가보다. 나이가 든 쓰지 히토나리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식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공감할 말이다.


그래서 읽게 된 책이 <네가 맛있는 하루를 보내면 좋겠어>. 자식에게 이런 음식을 해먹였다니...읽으면서 놀랐다. 낯선 음식이어서가 아니라 책으로 낼만큼 가짓수가 많아서. 잠시 반성.


  나는 말이야, 너하고 마흔다섯 살이나 차이가 나잖아. 종종 인생에 지칠 때도 있지만 부모니까 너를 잘 키울 때까지는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고 늘 생각하며 살아왔어.

  너와 둘이서 살기 시작했을 무렵, '행복이란 뭘까.'하고 고민한 적이 있단다. 밥을 지어 먹을 때, 네 방 청소를 할 때, 슈퍼마켓에서 장을 볼 때 등등 그런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칠 때면 곧잘 멈춰 서곤 했지.

  젊을 땐 행복이란 걸 찾지 않았던 것 같아. 그런데 혼자서 너를 키워야 하는 숙명을 짊어지게 된 그날부터 나는 꼭 행복해지겠다는 오기가 생겼어. 너도 어렴풋이 느꼈겠지만...  

                                   - p. 185


부모로서의 책임감과 정성을 느낄 수 있는 인상적인 구절이 종종 눈에 들어오지만 안타깝게도 레시피 부분은 내 관심 밖이다. 으흠...나는 좋은 엄마되긴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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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3-03-28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아 너무 반전인데 ㅋㅋㅋㅋㅋㅋ 냉정과 열정사이 작가가 연애소설 절필도 아니고 절독ㅋㅋㅋㅋㅋㅋ 이거 귀여니가 대학 가서 연애해보고 소설 절필한 거랑 비슷한데요? ㅋㅋㅋ 오늘의 가장 큰 웃음입니다!

nama 2023-03-29 09:04   좋아요 0 | URL
부모로서의 각성 때문일거라고 봐요. 지난 모든 게 어리석었다고 생각했을지도요.

hnine 2023-03-29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61개의 도시락 이라는 일본 영화가 있는데 아버지가 이혼하고 혼자 아들을 키우며 매일 정성을 다 해서 아들 도시락을 싸줘요.

nama 2023-03-29 09:05   좋아요 0 | URL
그런 영화도 있군요. 좋은 정보입니다~~
 

중국 최초의 서양화가 판위량. 검색해보니 이미 2004년 경에 <화혼 판위량>이 번역 출간되어 장안에 화제가 되었던 인물이다. 중국의 모던 걸로 나혜석과 비교되기도 하고, 중국의 프리다 칼로라고도 일컬어지고 있다. 파란만장했던 그녀의 삶을 처음으로 접할 수 있었던 책은 이유리의 <캔버스를 찟고 나온 여자들>이었다.


















소설로 나온 <화혼 판위량>은 절판 되어서 중고책으로 구입. 그의 일생과 그림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특히 누드화를 비롯하여 다양한 주제의 그림과 조소 작품을 접할 수 있어 좋았다.

















다음은 김명호의 책. 아직 읽은 책은 아니지만 저 겉표지를 알아볼 수 있게 되어 반가운 마음에 올렸다. 바로 판위량의 그림이다.
















강렬하게 눈에 들어왔던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고 싶었으나 구글링하면 다 나올 터이다. 


서양화가들에 대한 서적은 차고 넘치는데 중국이나 일본화가들에 대한 책은 많지 않다. 생긴지 얼마 안 된 동네 도서관에선 턱도 없다. 큰 도서관에 가면 좀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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