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미술 수업 - 한 젊은 아트컨설턴트가 체험한 런던 미술현장
최선희 지음 / 아트북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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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과장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겸손 떠는 것도 아닌 글에 신뢰감이 생긴다. 이 책이 그렇다. 뒷 표지에 적힌 " 학위도, 경력도, '빽'도 없었다. 하지만 그림이 미치도록 좋았다!"는 과격(?)하고 거친 표현이 유일하게 눈에 거슬리긴 하지만.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던 지은이가 미술을 만나 생각지도 못했던 길로 접어들어 살아가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잘 읽었다. 화가에 대한, 혹은 미술계 사람들에 대한 적당한 소개와 정보도 유익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화가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떠오른 생각- 에세이라는 장르에서도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정도의 정보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잠시. 

그래서 알게 된 샤반이라는 화가. 

(105쪽)...샤반은 그간 서양 미술사에서 한 줄이나 다뤄질까 말까 할 정도로 심하게 과소평가되었지만, 사실은 피카소, 마티스, 쇠라, 고갱과 같이 서양 근현대 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상징주의와 나비파 화가들이 샤반에게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샤반의 이름이 미술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은 것은 그가 어떤 특정한 '주의'라는 사조 안에 함께 묶일 수 없는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지녔기 때문이다...후기인상파 화가들 중 샤반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화가는 조르주 쇠라이다....폴 고갱은 쇠라에 비해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어떻게 보면 더 깊은 영향을 받은 화가이다...이렇게 1880년대에 유럽에서 새롭게 유행한 상징주의 그립들은 샤반의 존재를 무시하고는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피카소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피카소의 청색시대나 장밋빛시대 작품들이 샤반의 화풍에 가까이 다가가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중국의 현대 작가, 쟝 샤오강과 웨 민쥔- 쟝 샤오강이 회화 요소를 강조하고 개인의 내면세계를 세련된 기법으로 그리는 쓰촨 분지 화가들을 대표한다면, 웨 민쥔은 정치적인 메시지를 강하게 담아내는 베이징 화가들을 대표한다. 웨 민쥔의 트레이드마크는 '웃음'이다. (279)

언젠가 전시회에서 보았던 얼굴 큰 남자의 꽉 찬 웃음이 인상적이었던 작품이 아마도 웨 민쥔의 작품이었던 듯싶다. 가물가물한 기억.  

내 세계가 될 수 없었던 그림판의 세상, 은 내게는 늘 짝사랑과도 같다. 한 때 그림에 뜻을 두었다는 게 평생 이렇게 미련으로 남아 있다니, 새삼 내 미련스러움에 원망과 한숨이 서린다. 이제와서.. 

이 책을 읽는 것은 그래서 즐거움과 동시에 아픔을 동반한다.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원망이랄까. 미술계를 하나 하나 알아가고 세계를 넓혀가는 지은이가 그래서 몹시 부러웠다. 지식과 안목이 축적되어 삶이 넓게 그리고 깊게 펼쳐지는 인생이란 얼마나 황홀한가. 

데미언 허스트- 영국 현대 미술의 거장으로 '신'적인 존재라는 사람. 그가 말하는 현대 예술이란? "이야기를 하는 거다. 모든 예술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야기를 하는 방법은 아주 많다. 하지만 어려운 것은 자신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아는 것이다. 일단 이야기하고 싶은 게 생기면 그것을 들려주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379) 

지은이의 다음 책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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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41192

 

김예슬씨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전문>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다리기를 하는 20대.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안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20대.

우리들의 다른 길은 이것밖에 없다는 마지막 믿음으로 이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나는 25년간 긴 트랙을 질주해왔다.

친구들을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나를 앞질러 가는 친구들에 불안해하면서.

그렇게 '명문대 입학'이라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더 거세게 채찍질 해봐도 다리 힘이 빠지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

지금 나는 멈춰서서 이 트랙을 바라보고 있다.

저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취업이라는 두번째 관문을 통과시켜 줄 자격증 꾸러미가 보인다.

다시 새로운 자격증을 향한 경쟁이 시작될 것이다.

이제야 나는 알아차렸다. 내가 달리고 있는 곳이 끝이 없는 트랙임을

이제 나의 적들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이다.

국가와 대학은 자본과 대기업의 '인간제품'을 조달하는 하청업체가 되었다.

기업은 더 비싼 가격표를 가진 자만이 접근할 수 있도록 온갖 새로운 자격증을 요구한다.

10년을 채 써먹을 수 없어 낡아 버려지는 우리들은 또 대학원에, 유학에 돌입한다.

'세계를 무대로 너의 능력만큼 자유하리라'는 넘치는 자유의 시대는 곧 자격증의 시대가 되어버렸다.

졸업장도 없는 인생이, 자격증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큰 배움없는 '大學 없는 대학'에서 우리 20대는 '적자세대'가 되어 부모앞에 죄송하다.

젊은 놈이 제 손으로 자기 밥을 벌지 못해 무력하다.

스무살이 되어서도 꿈을 찾는게 꿈이어서 억울하다.

언제까지 쫓아가야 하는지 불안하기만 하다.

나는 대학과 기업과 국가, 그들의 큰 탓을 묻는다.

그러나 동시에 내 작은 탓을 묻는다.

이 시대에 가장 위악한 것 중에 하나가 졸업장 인생인 나,

나 자신임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 대학을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시들어버리기 전에.

쓸모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이제 나에겐 이것들을 가질 자유보다는 이것들로부터의 자유가 더 필요하다.

나는 길을 잃을 것이고 상처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삶이기에.

생각한대로 말하고 말한대로 행동하고 행동한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련다.

이제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탐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진정한 大學生의 첫발을 내딛는 한 인간이 태어난다.

내가 거부한 것들과의 다음 싸움을 앞두고 말한다.

그래, "누가 더 강한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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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기자의 나도 가끔은 커튼콜을 꿈꾼다
김수현 지음 / 음악세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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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글을 읽는 맛이 있다, 이 책은. 

방송 기자, 뭐 특별한 게 있겠나 그 세계라고. 그럼에도 감동을 주는 글이 몇 개 있었다. 내가 몸 담고 있는 세계에서는 결코 경험해 볼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다.  

특히 취미이자 일이기도 한 공연 관람에 대한 여러 경험담은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물론 부럽기도 하고. 

1년간의 영국 생활에 관한 이야기도 재미있게 읽었다. 일단 내가 해 보지 못한 것이니까. 

일요일. 일주일 동안 쌓인 피로 때문에 집 밖으로는 한발짝도 내딛기 싫을 때, 연주회는 둘째치고 영화조차 버거워 꼼짝하기 싫을 때, 이럴 때 읽기에 딱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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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나만의 완소 여행 4
김지선 지음 / 북노마드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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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셋에 떠났던 여행을 기록한 책이다. 

20대의 마음을 들여다 보았다.'88만원 세대'의 절망과 꿈틀거림을 읽자니 묘한 감상에 젖는다. 나는 그 나이에 무엇을 했던가? 저 암울했던 전두환 정권 시절이었다. 과외 금지라는 사상 초유의 해괴한 제도 덕택에 이른바 '몰래 과외'를 하며 대학 나온 값을 하려고 비루한 나날을 숨 죽이며 보냈었다. 지랄같은 시절이었다. 

(355쪽) ...그냥 산다는 것이, 시간이 흐르고, 저절로 늙는다는 사실이 우리는 너무도 싫었다. 

그래서 지은이는 포르투갈의  포르투라는 도시에서 한 달을 살기로 한다. 자발적인 시간의 유예, 를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내게는 그저 로망으로 남아있을 뿐. 책 곳곳에서 보일 듯 말 듯 드러나는 산티아고 순례나 장기적인 여행은 부럽기 그지없다.  

엄살이 가미된 아픔. 20대이니까 용서할 수 있는 낭만 같은 방랑 내지는 방황. 그것도 어쩔 수 없다는 것, 을 안다. 정의될 수 없는 황홀한 시절. 시간이 저절로, 무의미하게 흐를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에 고개를 젓는 시절. .....20대. 

한 권의 책을 읽으며 밑줄긋는 시점은 언제쯤일까. 내게는 그 시점이 책의 절반쯤에서 시작된다. 왜 그런지는 아직 따져보지 않았다. 아무튼 내게도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이 책 역시 절반 쯤 되어서야 몇 개의 문장에 눈길이 머물기 시작했다. 

(187)...그런데 말이지.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포르투갈은 좀 아껴두고 싶으시대. 포르투갈은 여전히 전통이 살아 있다는 거야. 지금 이 순간도 상업화가 되지 못해 안달인 다른 곳을 먼저 찾고, 포르투갈은 좀 더 나이가 들어 여유를 가지고 여행을 해도 될 만한 곳이라는 거지. 이곳은 오래도록 변하지 않을 게 분명하니까. 

언제부턴가 포르투갈에 관심이 가 있던 차에 이 부분을 읽고는 피시식 웃음이 나왔다. 나도 늙어가는구나, 라고. 마카오에서 흐릿하게나마 감지되었던 포르투갈의 냄새를 이 책에서 흠뻑 맡게되어서 책 읽는 재미가 내내 쏠쏠했다.  

하나 더.  

(275)...도시를 멀찍이 떨어져 보는 법. 이것은 어느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은 나만의 여행 방법이다. 유명 관광지의 유적지나 가이드북에서 추천하는 레스토랑에 시간과 정성을 쏟지 말 것. 대신 거리를 두고 그 도시를 한눈에 담아볼 것. 

정신이 바짝들게 하는 야무진 문장이다. 그대의 젊음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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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고요 산책길
한상경 지음 / 샘터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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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강원도 여행을 떠나며 만나기로 한 장소가 김포공항이었다. 비행기를 타야만 공항인가, 우리는 운전병을 자처한 친구의 편의를 위해 공항을 집합 장소로 택했다. 

마음먹고 나섰더니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해서 하릴없이 서점을 기웃거렸다. 언제부턴가 인터넷 서점에 익숙해진 이후 서점에서 서너 시간을 보내던 일은 까마득한 옛 일이 되어 있었다.  

요즘은 시집을 제대로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우선 시집 코너를 둘러보았다. 꿈도 크시지, 웬만한 매장에서도 찾기 힘든 시집을 공항의 작은 서점에서 기대하다니. 현실감이 떨어지는군.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비롯한 두툼한 인문한 서적들이 버젖이 누워있는 인문학 코너에선 다소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전문 서적을 얼떨결에 공항에서 구입한다고? 얼떨결에 혹은 우연하게 혹은 아무렇게나 한 권 집어드는 곳이 이런 공항의 서점일텐데. 

저런 두툼한 책을 집어들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하며 겨우 한 권 집어 들었다. 아침고요 수목원을 만든 사람이 쓴 책이다. 물론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다. 인터넷으로 사면 할인이 되는데.... 

문장과 문장을 성큼 성큼 건너뛰며 읽었다. 나무를 심는 사람이 나무만 잘 심으면 됐지 글까지 기대하면 과하겠지 하면서 읽었다. 글 중에, 옻나무와 붉나무 얘기가 나왔다. "그 붉은 빛에 취해 산야를 바라보는 사람들 중에서 이 나무의 존재를 확실히 아는 이들은 드물다."는 붉나무. 내가 알고 있는 많지 않은 나무 중에서 확실하게 알고 있는 나무였다. 정원수로도 어울린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떠벌리기까지 한 나무였다. 잠시 으쓱했다. 

이 책을 또 뒤적일 일이 있을까. 그런데 이 한 쪽이 나중에 언젠가는 필요할 것 같다. 나무를 전정할 때 전정 기준이 되는 모양새에 대한 설명이다. 

"수직으로 곧게 자란 가지(직립지, 도장지), 나무의 안쪽을 향한 가지(내향지), 아래로 향한 가지(하향지), 동일 방향으로 겹쳐지는 가지(평행지), 같은 높이에서 서로 경쟁하는 가지(대생지), 그리고 병든 가지...."(180족) 

그러다가 이어지는 다음의 글에서 잠시 마음이 머문다. 

"전정을 하면서 생각한다. 때로 정신없이 살다보면 나로 인해 부지불식간에 피해를 받고 상처를 입게 될 수도 있는 주변 사람들을 잊을 수가 있다. 그리고 어쩌면, 사람은 존재한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남에게 폐를 끼칠 수가 있는 것이다. 내가 태양를 바라보며 감동할 때 이미 내 뒤에는 그늘이 던져지고 있다. 고목 곁에 뿌리를 내린 어린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이치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그러기에 진정으로 성숙한 사람은 자신이 사라져야 할 시기까지 예상해야 할 것이다....누군가가 아직 나를 붙잡아줄 때, 나의 떠남을 아쉬워하는 이들이 있을 때, 그때가 바로 돌아가야 할 시기임을 잊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오늘도 나는 전정을 한다." 

퇴임식이 이어지는 요즈음. 아쉬움과 미련으로 퇴임 후의 친목계를 결성하는 어떤 교장이 떠오른다. 퇴임 교장끼리의 모임이 아닌 수하에 있던 사람들과의 모임이라...깨끗하게 떨어져버리는 동백꽃 같은 모습을 기대한다면 너무 과한가? 

나무를 한 번도 옮겨 심어본 적이 없는 사람으로서, 언젠가 나무를 옮겨 심는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를 사람으로서, 다음의 귀절도 인용해둔다. 

"이른 봄에 나무를 옮겨심을 때는 먼저 뿌리를 둥글게 끊어서 조심스레 새끼줄로 감아야 한다. 그리고 본래의 뿌리가 잘려나간 만큼 비례하여 지상부의 나뭇가지를 솎아주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며 잘려자간 뿌리에 비하여 가지가 너무 많아 충분한 수분이 제때 공급되지 않아 나무가 말라죽기 십상이다. 더 좋은 곳에서 더 넓은 공간을 차지하여 더 크레 자라기 위해 나무는 뿌리가 잘려진 비율만큼 가지도 잘려지는 아픔을 감수해야 한다."(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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