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 10등 안에 드는 한 중학교 남학생이 있다.
녀석은 영특하고 욕심도 남달라 점수 관리를 잘 한다. 그러나 성적이란 긴장의 대가에서 나오는 법. 긴장과 욕심이 맞물리자 엉뚱한 실수를 하게 되었다. 노트를 눈높이에 두고 시험을 치른 것이다. 전 시간에 치른 수학시험에서 한 문제를 몰라서 당황한 마음에 정신이 없었다는 둥, 감독 선생님이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공부하고 있다가 얼떨결에 옆에 놓았다는 둥, 하필이면 벽장 옆 자리였다는 둥...구질구질한 변명과 해명으로 들렸다. 순간적인 불운과 불행을 지켜보는 일은 착잡하고도 불유쾌한 일이었다.
이 영재 옆에는 전교에서 꼴등하는 또 한 남학생이 짝이 되어 앉아 있다.
녀석은 한글은 겨우 깨쳤지만 영어는 단어 하나 아는 게 없다. 정신연령은 초등학교 3학년 수준. 그러나 주관식 답안지는 절대로 여백을 남기지 않는 예의를 아는 녀석인지라 성실하게 성심성의껏 꼬박꼬박 채운다. 전혀 답이 아니어도 개의치 않는다. 그 성의 가득한 답안지는 세상과의 불통일 뿐 펜을 쥔 녀석의 얼굴에는 미륵보살과도 같은 잔잔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그 살인미소에 행복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없다. 아이들도 선생들도 그 미소를 보면 행복해진다.
벌써부터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는 영재는 오늘도 경시대회에 나간다.
석가모니의 미소를 머금은 그 짝은 오늘도 점심 급식 시간에 황홀한 표정으로 밥 한끼를 맛있게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