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과 양양, 때로는 인천과 양양과 서울을 오가며 지내왔다. 두 집 살림 때로는 세 집 살림을 했다는 얘기인데, 살림에는 재주가 없으니 그냥 세 장소를 드나들며 지냈다는 게 맞겠다. 퍽이나 정신 없을 것 같은데 난 이런 생활이 몸에 맞는다. 장소를 바꿀 때마다 여행하는 기분도 들고 기분전환도 되니 말이다. 


그러다보니 책 읽기도 중구난방이다. 이것저것 집어드는데 완독하는 책은 드물다. 정신 사나울 때 읽어도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나.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은 도중하차해도 내 삶에 지장을 주지 않으니 도대체 책을 읽어야하나 말아야하나 하는 생각마저든다.


새로운 책보다 새로운 식물을 만나는 기쁨이 더 컸다. 십 년 넘게 드나든 오두막 주변에는 여전히 생소한 꽃들이 눈에 띄는데, 매번 새로운 꽃이라는 사실도 놀랍지만 모두 제각각 이름을 갖고 있다는 사실 또한 놀랍다. 누군가 꼼꼼하게 세상을 기록하고 있다는 게 어떤 위안을 준다고나 할까. 처음으로 이름을 붙이는 재미는 얼마나 멋질까. 세상은 부지런한 사람의 몫일까. 




노루오줌




물레나물




기린초

  



초롱꽃




영아자




파리풀



머위꽃



벌깨덩굴




쐐기풀




사슴 벌레가 겁도 없이 집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예전에 이미 올린 야생화도 여럿 있으니 오두막 근처의 작은 땅에 '생물의 다양성'이 보존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주하는 도시도 옛날에는 이런 다양성을 보유하고 있었으리라. 눈만 크게 뜨면 어느덧 다가오는 새로운 발견 앞에 작은 탄성을 지르며 도시에서의 삭막한 풍경을 떠올린다. 무엇을 잃었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잠시 생각에 잠긴다.






남편과 함께 모종을 심고 잡초를 뽑아가면서 기른 작물이다. 물론 남편의 수고가 훨씬 컸다. 사과나무, 감나무, 대추나무, 살구나무, 블루베리 등도 조금씩 심었으니 수년후에는 수확이 있으리라. 직접 재배한 살구로 살구잼 만들 날을 고대하고 있다.



책 얘기도 해야겠다.
















 















'기-승-전-인도'를 사시는 분들의 글이라서 다채롭고 웅숭깊다. <인도수업>의 티벳 불교 설명은 좀 깊이 들어갔는데 아직은 내가 읽을 때가 아닌 듯 싶기도....

















장소가 주는 묘한 힘이 있다. 장소가 바뀌어야 생각이 바뀐다. 그 일면을 볼 수 있는 책. 틈틈이 잡초를 뽑 듯 틈틈이 읽게 된다. 시골에서 읽으면 더 잘 읽히는 책.


















20대에 겁없이 읽던 칼릴 지브란이 이제야 읽힌다. 친구가 여러 권을 사서 한 권씩 선물한 책인데 채 두 쪽이나 읽었을까. 오랜만에 만난 옛동료를 만나며 이 책을 선물했다. 함께 늙어가는 처지에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은 터라 작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주고 보니 이 책을 준 친구가 서운해 할 것 같아서 내 것으로 한 권을 구입했다. 그런데 또 한 사람이 떠올랐다. 역시 옛동료. 그녀의 마음고생이 떠올라 그녀에게 보내는 주문을 넣었다. 오늘쯤 손에 쥐겠지.

















친구들과의 수다는 구수한 맛, 정희진의 글은 짜릿한 맛. 정신을 번쩍 차리고 싶을 땐 짜릿함이 좋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을 복사했더니 영 사진이 볼품 없습니다. 그냥 대충 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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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8-06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a님 잘 지내셨나요.
이웃서재 새 글 구경하다 반가운 이름 있어서 짧은 안부인사 드립니다.
직접 기른 작물이라 그런지 반짝반짝 참 예뻐요. 더운 날 이만큼 될 때까지 힘드셨겠어요.
요즘 날씨가 많이 더워요.
더운 날씨 건강 조심하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nama 2022-08-07 10:00   좋아요 1 | URL
반가워요.
몇 포기 심은 채소들이 한여름을 풍요롭게 하네요.
한결같은 서니데이님의 글도 가끔씩 접하면서 묵묵하게 기원하고 있어요. 늘 안녕하시길....
 

 

누군가의 글을 읽고 심보선의 <형>이라는 시를 읽기 위해 책을 샀다.

 

 

 

 

 

 

 

 

 

 

 

 

 

 

 

 

누군가가 그랬듯이 나도 이 긴 시를 옮겨본다. 

 

 

                 

 

형은 어쩌면 신부님이 됐을 거야.

오늘 어느 신부님을 만났는데 형 생각이 났어.

나이가 나보다 두 살 많았는데

나한테 자율성이랑 타율성 외에도

신율성이라는 게 있다고 가르쳐줬어.

 

신의 계율에 따라 사는 거래.

 

나는 시율성이라는 것도 있다고 말해줬어.

시의 운율에 따라 사는 거라고.

신부님이 내 말에 웃었어.

웃는 모습이 꼭 형 같았어.

 

형은 분명 선량한 사람이 됐을 거야.

나만큼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았을 테고

나보다 어머니를 잘 위로해줬을 거야.

당연히 식구들 중에 맨 마지막으로 잠들었겠지.

문들을 다 닫고.

불들을 다 끄고.

 

형한테는 뭐든 다 고백했을 거야.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사는 게 너무나 무섭다고.

죽고 싶다고.

사실 형이 우리 중에 제일 슬펐을 텐데.

 

그래도 형은 시인은 안 됐을 거야.

두번째로 슬픈 사람이

첫번째로 슬픈 사람을 생각하며 쓰는 게 시니까 말야.

 

이것 봐. 지금 나는 형을 떠올리며 시를 쓰고 있잖아.

그런데 형이 이 시를 봤다면 뭐라고 할까?

너무 감상적이라고 할까?

질문이 지나치게 많다고 할까?

아마도 그냥 말없이 웃었겠지.

아까 그 신부님처럼.

 

시가 아니더라도 난 자주 형을 생각해.

형이 읽지 않았던 책들을 읽고

형이 가지 않았던 곳들을 가고

형이 만나지 않았던 사람들을 만나고

형이 하지 않았던 사랑을 해.

 

형 몫까지 산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이가 들수록 가끔

내가 나보다 두 살 더 늙은 것처럼 느껴져.

 

그럼 죽을 때 두 해 빨리 죽는 거라고 느낄까?

아니면 두 해 늦게 죽는 거라고 느낄까?

그건 그때가 돼봐야 알겠지.

 

그런데 형은 정말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사실 모르는 일이지.

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가지 않았으리란 법도 없지.

불행이라는 건 사람을 가리지 않으니까 말야.

 

만약 그랬다면 내가 형보다 더 슬픈 사람이 되고

형은 감옥에서 시를 썼을까?

그것도 그때가 돼봐야 알겠지.

 

형한테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수두룩했는데

결국 하나도 물어보지 못했네.

 

형 때문에 나는 혼자 너무 많은 생각에 빠지는 사람이 됐어.

이것 봐. 지금 나는 새벽까지 잠도 안 자고 시를 쓰고 있잖아.

문들도 다 열어두고.

불들도 다 켜놓고.

 

형, 정말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왜 형은 애초부터 없었던 거야?

왜 형은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았던 거야?

왜 나는 슬플 때마다 둘째가 되는 거야?

 

형.

응?

 

 

------------

 

 

먹먹해져서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리다가 뚝 멈추고 말았다.

 

왜 형은 애초부터 없었던 거야?

왜 형은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았던 거야?

왜 나는 슬플 때마다 둘째가 되는 거야?

 

이 부분에서다. 애초에 없는 형 얘기를 이렇게 쓰다니....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랄까. 한동안 속이 부글거리는 와중에 이런 책도 손에 들고 읽기 시작했다.

 

 

 

 

 

 

 

 

 

 

 

 

 

 

 

 

태초에 지구는 존재하지 않았고 언젠가는 지구라는 행성도 우주에서 사라지리라는 사실을 찬찬히 읽고 있자니 부글대던 속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무서운 얘기인데 이상하게 기분이 차분해지면서 위로가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언니가 지난 5월 28일에 세상을 떴다. 68세. 50여 년 간 병원과 요양원에서 생을 보내다 마감했다. 언니와 놀았던 기억도,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적도, 다툰 적도 없다. 병원에서 쓸쓸한 생을 보낸 언니도 억울하지만 나 역시, 우리 오빠들 역시 억울한 세월을 보냈다. 누구도, 그 누구도(하느님 포함) 어떻게 해줄 수 없는 상황이라니....

 

 

평소에 tv를 보지 않기에 <우리들의 블루스> 시리즈를 넷플릭스로 몰아서 보았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눈이 시뻘개졌다. 은희, 선아, 영옥이 얘기를 합치면 내 얘기가 되는구나, 생각이 드니 더욱 서러워졌다. 그래도 극중 영옥이만큼 경제적인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월남한 부모님은 나머지 자식들을 미더워하지 못해 언니의 병원비를 끝까지 책임지셨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에도.

불쌍한 나의 부모님.

 

 

그간 여러 권의 책을 손에 들었다 놨다.

 

 

 

 

 

 

 

 

 

 

 

 

 

 

 

작가가 아일랜드 출신이라는 사실만 기억하고 싶다. 매끈한 소설은 끝까지 읽히지 않는다.

 

 

 

 

 

 

 

 

 

 

 

 

 

 

 

 

남에게 읽히는 글은 무엇인가, 를 생각하게 하는 책.

 

 

 

 

 

 

 

 

 

 

 

 

 

 

 

 

<엔드 오브 타임>을 읽고 이 책을 읽으면 안 되는 거였다.

 

 

 

 

 

 

 

 

 

 

 

 

 

 

 

 

여행 고수들도 많은데......

 

 

 

 

 

 

 

 

 

 

 

 

 

 

 

읽다보니 읽었던 책이었다.

 

 

 

 

 

 

 

 

 

 

 

 

 

 

 

 

목소리 큰 왕언니의 일침 같은 책

 

 

 

 

 

 

 

 

 

 

 

 

 

 

 

 

내가 욕심낼 책이 아니었다. 관심도 거의 없고.

 

 

 

 

 

 

 

 

 

 

 

 

 

 

 

 

힘을 좀 빼면 더 좋지 않을까 싶은.

 

 

 

 

 

 

 

 

 

 

 

 

 

 

 

숨통이 트였다. 벌써 내용은 가물거리지만, 작가의 유쾌한 글에서 기운을 얻었다.

 

 

몇 권 더 집어들었었는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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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9 14: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19 1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Ⅰ.

 

       

 

 

오늘 날짜 신문을 마지막으로 신문구독을 해지했다. 강원도 오지를 오가며 생활하자니 챙길 것과 챙기지 못할 것이 생기기 마련이다. 삼십 년 넘게 구독해온 한겨레신문을 더 이상 챙길 수 없게 되었다. 강원도 오지까지 신문배달이 가능할 것 같지 않고, 그렇잖아도 요즈음 윤 당선자의 얼굴을 신문에서 보는 날이 많아지면서 정나미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책 소개가 실린 토요판은 일주일 중 제일 기대를 품고 기다리곤 했는데 이젠 무슨 낙으로 토요일을 맞이할까나.

 

어렸을 때 아버지가 구독한 신문은 서울신문이었는데 나중에는 조선일보로 바꾸었다. 한자병용의 세로 신문으로 아버지는 늘 사설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는데 착실하게 사설을 읽은 적은 거의 없지만.... 신문은 쌀과 같은 존재였다. 집구석에 쌀 떨어지는 일 없이 살아왔듯 역시 신문 떨어지는 일 없이 평생(직장생활을 시작한 1~2년을 제외하고)을 집구석에 신문을 흘려가며 살아왔다. 손톱을 깎을 때, 댕댕이 밥 그릇과 물 그릇을 받쳐줄 때, 만주 빚을 때, 김치 담글 때....요긴하게 사용했는데 이젠 무엇으로 대체하나....

 

일주일 전에 신문구독을 해지하겠다고 고객센터에 전화를 했는데 꼭 이별통보하는 기분이었다. 오늘 마지막으로 배달된 신문을 보고있자니 하루종일 쓸쓸하고 울적해져서 이런 글이나마 쓰고 있다는.....

 

 

Ⅱ.

 

 

왼쪽은 1986년에 출간된 책으로 20대 백수 시절에 책상에 반듯하게 앉아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비록 백수였지만 평생 책만 읽는 형벌이라면 달게 받으리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무슨 수험서 읽듯 한글자한글자 꼭꼭 눌러가며 읽었던 책이다. 그리고 네루의 <세계사편력>을 읽은 사람이라고 내심 자부해왔다. 그런데....얼마전 강병관의 <책벌레의 여행법>을 읽다가 네루의 이 책이 인도에 관한 역사를 다룬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왼쪽의 책에선 인도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강병관의 <책벌레의 여행법>에서 인용한 인도 역사 부분도 놀라웠다. 그간 인도에 관한 책을 좀 읽었다고 자부해왔는데 정작 중요한 네루의 이 책을 놓쳤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가뜩이나 새로 나오는 좋은 책들로 넘쳐나는데 오른쪽 책은 언제 다 읽나...3권까지 있는데.

 

 

 

Ⅲ.

 

 

올리비아 랭의 <이상한 날씨>에서 데릭 저먼에 관한 글을 읽고 저지른 책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There is no book I love more than Modern Nature.

 

 

 

 

 

 

 

 

 

 

 

 

 

 

 

영화감독 데릭 저먼이 AIDS로 사망한 후 영화배우 틸다 스윈턴이 3년 동안 활동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는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여러 사실이 아찔하면서도 즐거웠다. 이 책은 그러니까 데릭 저먼이 HIV에 걸린 후 황무지 해변에 정원을 가꾸며 하루하루를 기록한 일기이자 자신의 인생에 대한 명상록이라고 한다.(겉표지를 자세히 보면 저 멀리 원자력발전소가 보인다.) 예술가, 작가, 영화제작자, 그리고 동성애자였던 사람의 말년의 일기. 내가 이 책을 읽을 수 있으려나...부지런한 누군가가 번역해주길 기다리는 게 낫지 싶다.

 

대강 펼친 페이지에서 눈에 들어온 문장.(빽빽한 문장이 아니어서 눈에 띄었을 게 확실한)

 

Spent the morning reading Matthew, and Wisdom.

 

Our name will be forgotten in time

And no-one will remember our works

Our life will pass away like the traces of a cloud

And be scattered like mist

That is chased by the rays of the sun

And overcome by its heat

For our allotted time is the passing of a shadow

And will run like sparks through the stubble

 

                                         -p.108 

 

 

Ⅳ.

 

 

강원도 오지는 거대한 숲이자 정원이다. 눈을 비비고 자세히 살펴보면 아름다운 꽃들도 많고 생전 처음보는 곤충(벌레)도 많고 식용 가능한 나물도 많다. 요건 우산나물로 맛은 좋지만 요렇게 이쁜 걸 어떻게 먹나.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신문과의 이별을 달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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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22-04-30 2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깡촌에 살다가 그나마 소도시로 진출했을 때 가장 기뻤던게 조간신문을 구독할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ㅎㅎㅎ 종이신문에 대한 로망은 언제나 있는데 그 썩렬이 면상 볼 생각을 하니 도저히 용기가 안나네요

얄라알라 2022-04-30 21:21   좋아요 1 | URL
박균호 선생님 반갑습니다. nama님 한겨레 구독해지 이유에 아주 공감하던 차, 선생님께서도 공감을 보내주셨네요^^

nama 2022-04-30 21:38   좋아요 1 | URL
저는 깡촌으로 가는 덕분에 신문에서 해방되었어요. 정권 바뀌면...그때도 종이 신문이 남아있을까요?

얄라알라 2022-04-30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산 나물? 처음 들어보는데, 이름을 먼저 알게 되어 그런가, 정말 우산처럼 보이네요. 노끈으로 일부러 묶어놓으신 건지, 아니면 원래 저렇게 묶여서 자라는지 어리석은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너무 뭘 모릅니다...

nama 2022-04-30 21:34   좋아요 1 | URL
노끈으로 일부러 묶은 건 아니구요. 그저 자연의 장난(?)으로 저런 모습이 되었어요. 우연이지요. ^^
 

 

-  나는 의사선생님을 잘 믿는 편이다. 일년마다 위내시경을 받아야한다고 해서 오늘 숙제를 했다. 수면내시경으로. 혈액검사, 소변검사, 심전도 등을 함께 했는데 비용이 137,800원 나왔다. 약간 한숨이 나왔다. 또 일년마다 받으라는 담낭초음파를 예약하고 있는데 정산을 다시 해야 한단다. 가보니 좀전의 결제를 취소하고 새로 결제를 한다고 한다. 43,900원으로 바뀌었단다. 예? 했더니 '중증질환'이어서 그렇단다. 반가운 마음에 헤헤 웃음을 흘리면서 '고마워요'라고 했는데 중증질환이 고마운 건가...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 엇그제 세탁기에 삶은 행주를 헹구기 위해 세탁세제 투여기능을 해제한 줄도 모르고 빨래를 돌렸다. 세제 한 방울 넣지 않고 순전히 물빨래를 한 셈이다. 벌써 한두번이 아니어서 이젠 한숨도 안 나온다. 세제를 넣지 않았는데도 앞자락의 음식물 흘린 부분이 깜쪽같이 사라졌다. 한숨을 쉴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일부러야 세제를 안 넣을 수 없지만 종종 깜박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세수할 때 비누를 사용하지 않아도 얼굴에는 물길의 흔적이 남는다. 빨래도 그렇다.

 

 

- 어렸을 때 아버지와 라디오로 판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아버지가 적이 감탄하는 것을 보고 "아버지, 저도 판소리 배워볼까요?" 했더니 아버지는 조용히 입을 다무셨다. 하라는 말씀도, 하지 말라는 말씀도 없이. 가당치도 않은 얘기에 아버지는 속으로 한숨을 쉬셨겠지. 아마도.

 

 

 

 

이제서야 생애 처음으로 판소리 완창을 들었다. 270분 동안 펼쳐지는 심청가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공연이었다. 런던과 뉴욕에서 보았던 몇 편의 뮤지컬은 그저 장난이라고나 할까. 한마디로 비교불가. 뮤지컬을 보면서 저러다가 피 토하고 쓰러지지는 않을까 염려한 적은 없었으니까. 서양의 뮤지컬과 닮은 점은 가사 전달이 어렵다는 것. 예전에 셰익스피어 고향인 스트레포드 어폰 에이본에서 보았던 연극 <한 여름밤의 꿈>을 생각하면 지금도 창피한데 글쎄 한마디도 못알아들었다는 것. 나중에 영국 출신의 원어민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자신도 못 알아듣는다고 해서 조금 위안을 받았다. 이번 완창 심청가를 1/3이나 알아들었을까. (더군다나 내 왼쪽 청력은 청신경이 30% 정도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그랬다.) 우리말이 영어처럼 세계의 언어가 되었다면 판소리는 대단한 공연예술로 사랑 받았을 텐데...

 

뚝, 꿍딱, 따다닥, 쿵쿵...고수의 북소리가 그렇게나 아름답고 한 세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소리꾼과 주거니 받거니하는 맛도 각별하지만 그 자체로도 한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듯했다. 소리꾼 없는 고수만의 북소리는 가능한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 읽은 책 중에서

 

 

 

 

 

 

 

 

 

 

 

 

 

 

 

내용도 내용이지만 글쓰기에 관한 책으로 읽었다. 에세이의 지평을 넓혀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자기계발서로 읽혀서 실망할 뻔했으나 사실을 토대로 한 픽션으로 읽힐 정도로 숨이 막혔다. 대단한 이야기꾼이다.

 

 

 

 

 

 

 

 

 

 

 

 

 

 

 

 

 

소설을 쓴다면 이런 소설을 쓰고 싶었는데....나의 꿈을 빼앗긴 소설. 역시 소설은 문체 읽는 맛...을 선호한다면 잘근잘근 씹어가며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책. 문장에 매료되어 저절로 한숨이 나오는 책. 이런 책을 도서관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읽었는데 내내 후회를 했다. 이런 책을 안 사면 어떤 책을 사려고...그 돈 아껴서 뭐하려고....

 

184쪽

  "멋지군, 자네도 비상용, 그 아가씨도 비상용. 자네 인생 전체도 하나의 커다란 비상용이군. 내가 자네보다 더 많이 아는 척하진 않겠지만, 자네 인생에서 진짜는 논문밖에 없어. 근데 누가 알겠어? 그 논문이 다를 것들보다 훨씬 더 기만적인 비상용일지. 이해가 안 가는군. 솔직히 말해서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본 수아레."

  따다다다다.

  그 말을 남기고 그는 갔다.

  나는 그가 왜 그렇게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쩌면 나의 세계에서 그도 비상용이라는 잠정적인 지위를 획득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던 것이지도 모르겠다. 비상용 삶이 넘쳐나는 비상용 도시에서 피어나는 비상용 우정.

 

 

 

 

 

 

 

 

 

 

 

 

 

 

 

 

 

 아주아주아주 야무진 잡지. 김진해, 신형철, 이라영. 이 세 분만 실렸어도 충분히 만족했을 터. 한겨레의 믿음직한 구석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잡지.

 

 

 

- 도서관에서 빌렸으나 빌린 걸 후회하며 읽게 되는 책으로는, 이런 책은 사야지....

 

 

 

 

 

 

 

 

 

 

 

 

 

 

 

 

 

 

 

 

 

 

 

 

 

 

 

 

 

 

 

- 삼천포로 빠져서 이내 흥미를 잃게 된 책으로는

 

 

 

 

 

 

 

 

 

 

 

 

 

 

 

 

한 나라에 대한 여행기는 비판보다는 애정이 실린 글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인도는.

그리고 다른 사람이 쓴 책은 되도록 적게 인용하고.... 여행은 체험.

 

 

 

- 원하던 실물을 접했으나 이내 관심이 시들어버린 책

 

 

 

 

 

 

 

 

 

 

 

 

 

 

 

몇 개월 동안 이 책을 빌리고자 틈틈이 대출 확인 작업에 들어가서 결국 내 손에 넣었으나, 그 지난한 접선 과정에 비해 막상 책을 몇 쪽 못 읽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인연이 아닌가보다.

 

 

 

 

 

 

 

 

 

 

 

 

 

 

 

 

마음(정신)을 다루는 책은 케바케라서 딱히 잘 읽히지 않는다. 마음의 풍경은 천차만별. 도움이 될까 읽어보지만 당신은 당신의 문제, 내 문제는 따로....이런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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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5-13 2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마님이 열독 하신 책들
2022년에 만난 책들중 맘에 쏘옥 들었던 책들입니다.

한겨레 21 잡지 스물 한명의 작가 인터뷰 정말 재밌게 읽어서
담번에도 요런 기획물을 원할 정도 ^ㅅ^

nama 2022-05-13 21:48   좋아요 1 | URL
한겨레 21의 이런 기획, 정말 야무지지요. 열 권의 책 부럽잖은 한 권의 잡지를 보면서 글을 쓰는 것도 이래야되지 싶어요. 심장에 박히는 한 문장에 대한 열망.
 

 

 

 

1. 뮤지엄 산에 있는 이 조형물 이름은.....'제라드 맨리 홉킨스를 위하여'

2. 제라드 맨리 홉킨스는 누구..... 영국 시인(1844~1889)

3. 이 조형물이 형상화한 것은.....홉킨스의 시 '황조롱이'

4. 이 조형물을 만든 사람은.... 마크 디 수베로

5. 마크 디 수베로는 누구.....이탈리아계 미국인(1933~ ) 상하이 출생. 크레인을 조각 작업에 사용한 최초의 예술가. 뉴욕에서 활동 중.

6.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작품 설명이 검색해도 안 나와서

7. 홉킨스는 어떻게 생겼나.....

 

 

8. 요건 무슨 책.....

 

 

9. 언제 구입했나.... 1980년 11월

10. 그동안 많이 읽었겠네..... 아니. 홉킨스가 있는 줄 몰랐다니까.

11. 시 <황조롱이>도 실렸나.....당연

 

 

12. 해석 좀 해주면 안되나..... 번역본 있어

 

 

13. 글씨가 크네. 무슨 책.....

 

 

 

 

 

 

 

 

 

 

 

 

 

 

14. 글자가 커서 읽기 편하겠네..... 너무 커서 작은 눈이 적응을 못함.

15. 시가 어렵군. 그런데 "오 나의 기사여", "buckle" 이런 게 뭘 뜻하나....그게 동성애와 관련이 있다고 함.

16. 홉킨스는 카톨릭 사제라던데.....그게 그러니까. 좀 베껴볼게.

 

' 시인 스스로 자신의 걸작이라고 말한 <황조롱이>는 홉킨스 자신의 동성애적 욕망을 그리스도에게 투사함으로써 위험한 욕망을 안전한 욕망으로 승인받는 형식을 휘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경향은 동시대 다른 남성 문필가에게 찾아볼 수 없는 홉킨스만의 특징으로, 그의 갑작스런 카톨릭 개종의 원인도 이에 근거해 유추해 볼 수 있다.'

 

17. 어디에 있는 글..... 구글링

18. 조형물 하나 이해하는데 이런 걸 꼭 알아야 하나.....알려고 노력해야지. 그러니까 대통령 선거도 그딴 식으로 하지.

19. 왜 기-승-전-윤이야..... 화가 나서

20. 끝났어? ..... 응.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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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7 14: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3-17 14: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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