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미국에 가지 말 걸 그랬어
해길 지음 / 텍스트칼로리 / 2021년 9월
평점 :
품절



" 여기 와서 일 년만 김밥 말아보쇼. 선생 때려치우고 온 걸 두고두고 후회할거요."

" 여기는 물과 공기만 좋아요. 말하자면 심심한 천국이지요."

" 우리 내일 라면 함께 끓여 먹어요. 여기선 라면 함께 먹는 날이 소풍날이예요."

" 외국은 여행이나 다녀야지 직접 외국에서 사는 건 아니랍니다."


2003년 뉴질랜드에 갔을 때 얘기이다. 당시 외국어과 교사 대상으로 해외 배낭연수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운 좋게 당첨되어 170만 원을 보조 받았다. 연수 해당 국가는 미국, 영국, 호주, 유럽, 뉴질랜드로 주로 영어권 국가에 한정되었다. 공용어로 영어를 사용하는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권 국가는 왜 해당이 안되는지 그때나 지금이나 당혹스럽다. 유럽에서 영어를 사용할 기회보다 인도에서 영어를 사용할 기회가 훨씬 많은데도 말이다. 흑인 원어민 교사를 채용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겠지. 지금은 좀 달라졌는지 모르지만. 뉴질랜드를 선택한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일주일은 패키지로 뉴질랜드 남북을 훑어보았다. 나머지 열흘은 동료교사 언니가 운영하는 오클랜드 외곽에 위치한 한 모텔에 묵으며 현지인처럼 지내보았다. 매일 버스를 타고 오클랜드 시내로 출퇴근했다. 대학에도 가보고 영화도 보고 맥주공장 견학도 하고 수족관도 가고.... 그러다가 어느날은 동료교사의 언니를 비롯한 한국인들과 어울려 월남쌈을 해먹기도 하고 현지인이 애용하는 온천에도 다녀왔다. 그들 중에는 퇴직하고 이민온 노부부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지금의 내 나이쯤 되는 분들이었던 것 같았다. 그분들이 내게 물었다. 오클랜드 시내 가는 버스요금이 얼마냐고. 자기들은 한번도 타본 적이 없노라고. "그거요. 손바닥에 동전 몇개 올려놓고 기사분한테 알아서 가져가시라고 했죠. 그래서 요금을 알게되어서 그 다음부터는 딱 맞게 내고 타게 되었어요." 맥주공장 견학도 다녀왔다고 했더니 어떻게 알고 갔냐고 물었다. 여행안내소에 있는 브로슈어 보고 다녔왔다고 하니 "그런 방법도 있네요."하면서 신기해했다. 그렇게 두어 번 어울리다보니 한국이민자들 얘기와 이민생활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것들을 듣게 되었다. 대책없이 온 어떤 가족 얘기, 선생 때려치우고 이민와서 하루종일 김밥 마는 어떤 분 얘기, 이민 초기 운전이 익숙하지 않아 3시간 동안 직진했던 얘기 등. 그리고 위의 저 대화들. 듣다보니 이민생활이 그리 행복해보이지 않았다. 유일한 낙이라면 한인상가에 가서 비디오테이프 빌려다가 보는 것 정도. 이민자들끼리 함께 라면이나 맛있는 음식 해먹는 정도. 그리고 무엇보다 무료해보였다. 영어를 잘 못하니 키위(현지인)들과 어울리지도 못하는 실정이었다. 그래도 이분들은 돈을 벌어야하는 압박감은 없어보였다. 부인은 전직 초등학교 교사여서 연금을 받고 있으며 한국을 오가며 생활한다고 했다.


여차하면 이민이나 가야지, 하고 막연하게 마음 먹고 동경도 품고 있었는데 단박에 정신이 들었다. 아, 니, 구, 나......하고.



이 책을 읽다보면 절로 한숨이 나온다. 어떻게 하는 일마다 망해버릴 수 있을까. 예전에 우리 아버지가 그랬다. 잉어 양어장, 양계장, 약초 재배, 향나무 재배, 시멘트 매매....하는 것마다 처절하게 실패했다. 답답한 엄마가 점쟁이를 찾아갔더니, 가만 있는 게 도와주는 것이라고 했단다. 그냥 한국에 있었으면 절대 하지도 않을 고생을 온식구가 7년에 걸쳐 재산 탕진해가면서 고생은 고생대로 했다는 게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쩌릿쩌릿했다. 귀촌이나 귀농도 최종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한달살기, 일년살기를 해보는 게 실패를 줄이는 방법인데 하물며 외국 이민이야....



이 책은 아주 고마운 책이다. 미국에 막연한 동경을 품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특히 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도 내가알던 친구들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친구들은 학생 티를 벗지 못한 사회 초년생들이었는데 어느새 한 분야에서 자리를 잡고 조직에서도 중요한 위치까지 올라가 있었다. 대학가 근처에서 저렴한 술집이나 찾아다니던 예전의 친구들이 아니었다. 연예인 못지않은 머리 스타일에 유행하는 옷을 입고, 브랜드 가방을 멘 모습이 눈부셨다. 반면에 나는 미국에 갈 때 가져갔던 옷을 그대로 입고 낡은 가방을 메고 있었다.

                                                                                  -248쪽



7년간의 고생이 빛을 발할 때가 있을 거예요. 기죽지 마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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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31 11: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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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31 1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8-31 14: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01 09: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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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치병, 불치병이라고 해두자. 불가항력적인 이 병에 걸리면 나 같은 인간은 세상을 원망하고 신을 지독히도 미워하느라고 제명대로 못살 것이다. 그것도 태어나면서부터 얻게 된 병이라면.


입학식에는 이 학생의 어머니만 참석했다. 5층에 자리한 강당에 올라오는 게 힘겨웠는지 호흡이 거칠고 땀을 흘리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그리 건강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물어보진 못했지만 기저질환을 앓고 있을 것 같았다. 입학식이 끝난 후 이 학생 몫의 교과서를 챙겨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후 일년 내내 이 학생은 한번도 등교하지 않았다. 등교하지 않아도 되었다. 집에서 온라인으로 교육청이 제시한 사이트에 들어가서 출석체크와 정해진 수업분량만 채우면 되었다. 연 네 차례의 시험을 볼 필요도 없었다. 그러니까 학교에 적을 두는 형태로 소속을 정해주었을 뿐 학교 생활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어린 마음에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교복도 입어보고 싶고 친구들과도 어울리고 싶고 한창 유행중인 빨간색 립밤도 바르고 싶었을 것이다. 엄마의 휴대폰에 담긴 교복 입은 모습은 여느 아이와 다를 바 없었다. 다만 교복을 입었으되 밖으로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이 형벌처럼 잔인할 뿐이었다.


엄마는 메신저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 각종 서류도 그때그때 제출했고 자녀의 학업 생활에 필요한 정보교환도 놓치지 않았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학교에 와서 일처리를 했기에 엄마를 자주 만나게 되었다. 이제는 나도 나이가 들어 학부모의 나이가 내 나이를 넘는 사람이 없어서 학부모를 대하는 일도 그리 부담되지는 않았다. 나이듦의 편안함을 조금은 누릴 수 있게 되었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한번도 출석하지 못하는 학생의 담임이라는 게 좀 이상하긴 했지만 시간은 잘도 흘러 여름방학에 들어갔다. 타지역에서 3일간의 연수를 받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이 학생의 엄마였다. 말을 머뭇거리고 있어서 용건을 여쭸다. 다음날 갚을테니 70만 원을 빌려줄 수 없냐고 묻는다. 간절하고 답답한 심정이 전해져왔으나 순간의 판단은, 빌려준다면 돌려받지 못할 돈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순간 당황한 나는 회피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더듬거리며 거절의 말을 했으리라. 나 자신이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어 괴롭기도 했다. 그간의 이해와 공감은 돈 앞에서 쪼그라들대로 쪼그라들고 있었다. 나도 내가 마음에 안들었다.


개학이 되어 학교에 돌아와 이런 사건을 얘기하니 교감샘이 웃으며 그런다. "한번 빌려줘보시지 그랬어요." 그게 또 그렇다. 타인은 무심하다.



학교생활이 너무나 피곤했다. 얼마 후 학교를 영영 떠났다. 물론 이 일 때문은 아니었다. 가뜩이나 무겁고 지친 삶의 무게 때문에 쓰러질 찰나 지푸라기 하나 얻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도중하차, 자랑스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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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쯤 될까? 가물가물한 기억을 헤집어본다. 학급당 학생수가 50여 명쯤 하는 시절이었고 지금은 잊혀진 아이들 얼굴을 애써 떠올릴 수도 없지만 한 학생만큼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말이 없고 조용히 앉아있던 그 학생 때문이 아니라 그 학생의 어머니 때문이다. 아마도 학년 초에 열리는 학부모 총회에서 만났을 것이다. 아닌가? 잘 모르겠다. 하여튼 그 학생의 어머니와 얘기를 나누었고 자녀 중에 자폐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폐아가 주는 어감 때문에, 나 역시 장애가 있는 언니를 두었기에, 그 학생을 유심히 보게 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따로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자폐아를 동생으로 둔 아이의 마음은 어떨까 상상하며 일상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을 뿐이다.

 

물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시간은 흘러 학년 말이 되었을 무렵, 정확히는 김장철 무렵, 이 어머니가 갓담근 김장김치 세 통(아마도)을 손수 들고 내가 사는 아파트를 찾아오셨다. 고소공포증(밀실공포증?)으로 엘리베이터를 타면 심장이 두근거린다며 식은땀을 흘리고 계셨다. 예전에 어떤 선생님에게 드렸는데 제 때에 냉장고에 넣지 않아서 결국 못먹게 되었다는 말씀을 하시며 이마에 흘린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숨을 돌리셨다. 고마움과 죄송한 마음으로 염치없이 김치통을 받았다. 묵직했다. 배추김치, 알타리김치, 파김치였던가. 종류를 달리한 김치 세 통을 이삼일 실온에서 익힌 후 냉장고에 넣으니 냉장고가 꽉 찼다. 그해 겨울 그 김치를 먹을 때마다 이 어머니를 떠올렸다. 그후로도 그 김치가 떠오를 때마다 생각해보았다. 자녀의 담임선생님이 뭐가 그리 이쁘다고, 뭐가 고맙다고 이런 수고를 하셨을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아픈 자녀가 있으면 엄마의 마음도 늘 아프다. 아픈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서 내 아픔을 보아달라고, 알아달라고 할 수는 없다. 차라리 내가 남을 보듬어주는 게 내 아픈 마음을 들키지 않고 나를 위로하는 방법이 된다는 것을. 그러니 누군가 조건없이 내게 무엇인가를 베풀 때는 잠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 사람의 마음의 밑자락을 곰곰히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위의 책. 김치통과 함께 주신 건지, 나중에 주신 건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저 책을 직접 쓰셨는지도 정확하지 않다. 직접 쓰신 걸로 기억하는데 내용을 읽다보니 아닌 것도 같고.....그게 또 그렇다. 타인은 무심하다.

 

1월 12일

  '버스 금강 추락 38명 사망'

  신문에 대문짝만한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사람이 떼죽음을 당하는 세상이다.

  외로운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 고장난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내는 아이. 현실적으로 보아도 가엾기 그지없고 절망감난 안겨 주지만 종교적인 입장에서 보면 맑고 깨끗한 영혼의 소유아이리라. 이럴 때는 겨울 열차를 타고 조용한 간이역에서 혼자 내리고 싶다.      -55쪽

 

1월 13일

  내가 당면하고 있는 이 시련은 아무것도 아닐 수가 있다. 죽음을 생각해 보자. 죽음은 모든 것을 앗아가버린다. 이 시련조차도.

  그래서 이 시련은 생명이 숨쉬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 생명을 열렬히 사랑하라는 신의 가르침이 있다.     -55쪽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낫지, 하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내는 장애아 엄마. 지금은 어떻게 살고 계신가요? 잘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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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28 1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8-29 18: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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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2-08-28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 조건없이 베풀 때는 잠시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말씀 너무 와 닿습니다!!! 잘 지내시죠??

2022-08-29 1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8-30 1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8-31 0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천과 양양, 때로는 인천과 양양과 서울을 오가며 지내왔다. 두 집 살림 때로는 세 집 살림을 했다는 얘기인데, 살림에는 재주가 없으니 그냥 세 장소를 드나들며 지냈다는 게 맞겠다. 퍽이나 정신 없을 것 같은데 난 이런 생활이 몸에 맞는다. 장소를 바꿀 때마다 여행하는 기분도 들고 기분전환도 되니 말이다. 


그러다보니 책 읽기도 중구난방이다. 이것저것 집어드는데 완독하는 책은 드물다. 정신 사나울 때 읽어도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나.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은 도중하차해도 내 삶에 지장을 주지 않으니 도대체 책을 읽어야하나 말아야하나 하는 생각마저든다.


새로운 책보다 새로운 식물을 만나는 기쁨이 더 컸다. 십 년 넘게 드나든 오두막 주변에는 여전히 생소한 꽃들이 눈에 띄는데, 매번 새로운 꽃이라는 사실도 놀랍지만 모두 제각각 이름을 갖고 있다는 사실 또한 놀랍다. 누군가 꼼꼼하게 세상을 기록하고 있다는 게 어떤 위안을 준다고나 할까. 처음으로 이름을 붙이는 재미는 얼마나 멋질까. 세상은 부지런한 사람의 몫일까. 




노루오줌




물레나물




기린초

  



초롱꽃




영아자




파리풀



머위꽃



벌깨덩굴




쐐기풀




사슴 벌레가 겁도 없이 집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예전에 이미 올린 야생화도 여럿 있으니 오두막 근처의 작은 땅에 '생물의 다양성'이 보존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주하는 도시도 옛날에는 이런 다양성을 보유하고 있었으리라. 눈만 크게 뜨면 어느덧 다가오는 새로운 발견 앞에 작은 탄성을 지르며 도시에서의 삭막한 풍경을 떠올린다. 무엇을 잃었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잠시 생각에 잠긴다.






남편과 함께 모종을 심고 잡초를 뽑아가면서 기른 작물이다. 물론 남편의 수고가 훨씬 컸다. 사과나무, 감나무, 대추나무, 살구나무, 블루베리 등도 조금씩 심었으니 수년후에는 수확이 있으리라. 직접 재배한 살구로 살구잼 만들 날을 고대하고 있다.



책 얘기도 해야겠다.
















 















'기-승-전-인도'를 사시는 분들의 글이라서 다채롭고 웅숭깊다. <인도수업>의 티벳 불교 설명은 좀 깊이 들어갔는데 아직은 내가 읽을 때가 아닌 듯 싶기도....

















장소가 주는 묘한 힘이 있다. 장소가 바뀌어야 생각이 바뀐다. 그 일면을 볼 수 있는 책. 틈틈이 잡초를 뽑 듯 틈틈이 읽게 된다. 시골에서 읽으면 더 잘 읽히는 책.


















20대에 겁없이 읽던 칼릴 지브란이 이제야 읽힌다. 친구가 여러 권을 사서 한 권씩 선물한 책인데 채 두 쪽이나 읽었을까. 오랜만에 만난 옛동료를 만나며 이 책을 선물했다. 함께 늙어가는 처지에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은 터라 작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주고 보니 이 책을 준 친구가 서운해 할 것 같아서 내 것으로 한 권을 구입했다. 그런데 또 한 사람이 떠올랐다. 역시 옛동료. 그녀의 마음고생이 떠올라 그녀에게 보내는 주문을 넣었다. 오늘쯤 손에 쥐겠지.

















친구들과의 수다는 구수한 맛, 정희진의 글은 짜릿한 맛. 정신을 번쩍 차리고 싶을 땐 짜릿함이 좋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을 복사했더니 영 사진이 볼품 없습니다. 그냥 대충 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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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8-06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a님 잘 지내셨나요.
이웃서재 새 글 구경하다 반가운 이름 있어서 짧은 안부인사 드립니다.
직접 기른 작물이라 그런지 반짝반짝 참 예뻐요. 더운 날 이만큼 될 때까지 힘드셨겠어요.
요즘 날씨가 많이 더워요.
더운 날씨 건강 조심하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nama 2022-08-07 10:00   좋아요 1 | URL
반가워요.
몇 포기 심은 채소들이 한여름을 풍요롭게 하네요.
한결같은 서니데이님의 글도 가끔씩 접하면서 묵묵하게 기원하고 있어요. 늘 안녕하시길....
 

 

누군가의 글을 읽고 심보선의 <형>이라는 시를 읽기 위해 책을 샀다.

 

 

 

 

 

 

 

 

 

 

 

 

 

 

 

 

누군가가 그랬듯이 나도 이 긴 시를 옮겨본다. 

 

 

                 

 

형은 어쩌면 신부님이 됐을 거야.

오늘 어느 신부님을 만났는데 형 생각이 났어.

나이가 나보다 두 살 많았는데

나한테 자율성이랑 타율성 외에도

신율성이라는 게 있다고 가르쳐줬어.

 

신의 계율에 따라 사는 거래.

 

나는 시율성이라는 것도 있다고 말해줬어.

시의 운율에 따라 사는 거라고.

신부님이 내 말에 웃었어.

웃는 모습이 꼭 형 같았어.

 

형은 분명 선량한 사람이 됐을 거야.

나만큼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았을 테고

나보다 어머니를 잘 위로해줬을 거야.

당연히 식구들 중에 맨 마지막으로 잠들었겠지.

문들을 다 닫고.

불들을 다 끄고.

 

형한테는 뭐든 다 고백했을 거야.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사는 게 너무나 무섭다고.

죽고 싶다고.

사실 형이 우리 중에 제일 슬펐을 텐데.

 

그래도 형은 시인은 안 됐을 거야.

두번째로 슬픈 사람이

첫번째로 슬픈 사람을 생각하며 쓰는 게 시니까 말야.

 

이것 봐. 지금 나는 형을 떠올리며 시를 쓰고 있잖아.

그런데 형이 이 시를 봤다면 뭐라고 할까?

너무 감상적이라고 할까?

질문이 지나치게 많다고 할까?

아마도 그냥 말없이 웃었겠지.

아까 그 신부님처럼.

 

시가 아니더라도 난 자주 형을 생각해.

형이 읽지 않았던 책들을 읽고

형이 가지 않았던 곳들을 가고

형이 만나지 않았던 사람들을 만나고

형이 하지 않았던 사랑을 해.

 

형 몫까지 산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이가 들수록 가끔

내가 나보다 두 살 더 늙은 것처럼 느껴져.

 

그럼 죽을 때 두 해 빨리 죽는 거라고 느낄까?

아니면 두 해 늦게 죽는 거라고 느낄까?

그건 그때가 돼봐야 알겠지.

 

그런데 형은 정말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사실 모르는 일이지.

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가지 않았으리란 법도 없지.

불행이라는 건 사람을 가리지 않으니까 말야.

 

만약 그랬다면 내가 형보다 더 슬픈 사람이 되고

형은 감옥에서 시를 썼을까?

그것도 그때가 돼봐야 알겠지.

 

형한테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수두룩했는데

결국 하나도 물어보지 못했네.

 

형 때문에 나는 혼자 너무 많은 생각에 빠지는 사람이 됐어.

이것 봐. 지금 나는 새벽까지 잠도 안 자고 시를 쓰고 있잖아.

문들도 다 열어두고.

불들도 다 켜놓고.

 

형, 정말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왜 형은 애초부터 없었던 거야?

왜 형은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았던 거야?

왜 나는 슬플 때마다 둘째가 되는 거야?

 

형.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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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먹해져서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리다가 뚝 멈추고 말았다.

 

왜 형은 애초부터 없었던 거야?

왜 형은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았던 거야?

왜 나는 슬플 때마다 둘째가 되는 거야?

 

이 부분에서다. 애초에 없는 형 얘기를 이렇게 쓰다니....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랄까. 한동안 속이 부글거리는 와중에 이런 책도 손에 들고 읽기 시작했다.

 

 

 

 

 

 

 

 

 

 

 

 

 

 

 

 

태초에 지구는 존재하지 않았고 언젠가는 지구라는 행성도 우주에서 사라지리라는 사실을 찬찬히 읽고 있자니 부글대던 속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무서운 얘기인데 이상하게 기분이 차분해지면서 위로가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언니가 지난 5월 28일에 세상을 떴다. 68세. 50여 년 간 병원과 요양원에서 생을 보내다 마감했다. 언니와 놀았던 기억도,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적도, 다툰 적도 없다. 병원에서 쓸쓸한 생을 보낸 언니도 억울하지만 나 역시, 우리 오빠들 역시 억울한 세월을 보냈다. 누구도, 그 누구도(하느님 포함) 어떻게 해줄 수 없는 상황이라니....

 

 

평소에 tv를 보지 않기에 <우리들의 블루스> 시리즈를 넷플릭스로 몰아서 보았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눈이 시뻘개졌다. 은희, 선아, 영옥이 얘기를 합치면 내 얘기가 되는구나, 생각이 드니 더욱 서러워졌다. 그래도 극중 영옥이만큼 경제적인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월남한 부모님은 나머지 자식들을 미더워하지 못해 언니의 병원비를 끝까지 책임지셨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에도.

불쌍한 나의 부모님.

 

 

그간 여러 권의 책을 손에 들었다 놨다.

 

 

 

 

 

 

 

 

 

 

 

 

 

 

 

작가가 아일랜드 출신이라는 사실만 기억하고 싶다. 매끈한 소설은 끝까지 읽히지 않는다.

 

 

 

 

 

 

 

 

 

 

 

 

 

 

 

 

남에게 읽히는 글은 무엇인가, 를 생각하게 하는 책.

 

 

 

 

 

 

 

 

 

 

 

 

 

 

 

 

<엔드 오브 타임>을 읽고 이 책을 읽으면 안 되는 거였다.

 

 

 

 

 

 

 

 

 

 

 

 

 

 

 

 

여행 고수들도 많은데......

 

 

 

 

 

 

 

 

 

 

 

 

 

 

 

읽다보니 읽었던 책이었다.

 

 

 

 

 

 

 

 

 

 

 

 

 

 

 

 

목소리 큰 왕언니의 일침 같은 책

 

 

 

 

 

 

 

 

 

 

 

 

 

 

 

 

내가 욕심낼 책이 아니었다. 관심도 거의 없고.

 

 

 

 

 

 

 

 

 

 

 

 

 

 

 

 

힘을 좀 빼면 더 좋지 않을까 싶은.

 

 

 

 

 

 

 

 

 

 

 

 

 

 

 

숨통이 트였다. 벌써 내용은 가물거리지만, 작가의 유쾌한 글에서 기운을 얻었다.

 

 

몇 권 더 집어들었었는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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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9 14: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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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9 19: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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