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읽었다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 간단하게 쓴다. 다시 읽지 않기 위해서.















실례의 말씀부터 드리면, 이 책은 너무나 부르주아 향기가 짙다. 도서관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따끈따끈하게 읽었지만 딱 그것 뿐.


p.236~239

<우울한 날이면 남미로 가자>

   우울한 날이면 멕시코, 브라질, 쿠바, 페루, 아르헨티나로 가볼 일이다. 햇빛은 투명한 기름처럼 자글자글 끓어오르고, 크레파스를 함부로 문질러놓은 듯한 푸르고 붉고 노란 단층집들과 총천연색의 낡은 자동차들이 굴러다니는 거리.

                   (중략)

   우울한 날이면 남미로 가자. 하던 일 밀치고, 가방을 꾸리자.


멕시코, 브라질이 동네에 있는 카페라면 모를까.


2.

















알라디너들이 간간이 읽기에 궁금해서 빌렸다. <계로록>을 쓴 분이기도 해서 인생의 조언도 듣고 싶었고. 


p. 46

<불행은 사유재산이다>

   인간은 비극적인 체험을 통해 진리에 도달한다. 나는 옛날부터 그렇게 생각했다. 질병, 빈곤, 차별, 폭력에 따른 불안한 생활, 전쟁, 이런 것들은 바람직하지 못한 환경이다. 세상에서 근절시키려고 다 같이 노력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이런 비극적인 체험이 위대한 성과의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불행은 엄연한 사유재산이다. 불행도 재산이므로 버리지 않고 단단히 간직해둔다면 언젠가 반드시 큰 힘이 되어 나를 구원한다.


일정 부분 동의하지만 좀 배부른 소리같다. 불행도 불행 나름이고 감당조차 안 되는 불행 앞에서 이런 말은 모독에 가깝다. 불행한 사람은 이런 말을 듣는 것도 거북하리라.



3.
















도서관 서가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 그러잖아도 요즈음 한문을 새로 공부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역시 관심이 있어야 보이나 보다. 고루한 이야기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른 모든 책을 제치고 이 책부터 완독했다. '파고 파고 또 파고' 공부하고 싶어지게 한다. 이런 책은 저자의 공부하는 생활을 위해 내돈내산 해야 하는데...


차라리 배우지 않을지언정 배우기 시작했거든 제대로 배울 때까지 그만두지 말고, 

차라리 물어보지 않을지언정 질문을 시작했거든 제대로 알게 될 때까지 그만두지 말며, 

차라리 생각하지 않을지언정 생각하기 시작했거든 답을 얻어낼 때까지 그만두지 말고,

차라리 분변하지 않을지언정 분변하기 시작했거든 분명하게 분변해낼 때까지 그만두지 말며, 차라리 행하지 않을지언정 행하기 시작했거든 마음을 다해 진실하게 행할 때까지 그만두지 말아야 한다. 남이 한 번에 해내거든 나는 백 번을 하고, 남이 열 번에 해내거든 나는 천 번을 해야 한다.



<중용>에 나오는 글이라고 한다. 기왕 시작했으면 끝을 보라는 말씀 같은데... 그래도 시작이 반이라고 일단 배우고, 일단 물어보고, 일단 생각하고, 일단 분변하고, 일단 행하는 게 낫지 않나...나는 이렇게 '일단' 정신으로 살고 있는데.... 거, 참.


이 책에서 언급한 (<중용> 말고도) <맹자>의 글을 접하며 나는 여직껏 <맹자>를 읽을 생각조차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일단' 도서관에서 빌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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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2-11-27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약간의 거리를 둔다>는 나마님과 비슷하 마음으로 빌렸는데 저런 글이 좀 많아서 뜨악했어요. 그래도 저에겐 도움이 되는 글도 있어서. 암튼 <나의 첫 한문 수업>을 담습니다. 저는 한문 하나도 모르거든요,, 마음은 안 그런데.^^;;

nama 2022-11-29 18:25   좋아요 0 | URL
가끔 소노 아야코의 글을 읽고 싶을 때가 있어요. 가끔 배 부를 때 투정이 나오는 게지요.
 


포르투갈은 크기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고 한다. 인구는 1000만 명 정도. 수도인 리스본의 인구는 50만 명.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왠지 부러운 느낌이다. 사람에게 치일 일은 드물 것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것보다 정말 부러운 건 그들의 언어인 포르투갈어이다. 세계에서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2억 5000만 명 정도라고 한다. 과거 식민지였던 나라들에서 포르투갈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들 나라로서는 억울한 일일 것이나 현재는 언어공동체를 이루며 친목과 단합을 다지기도 한다고 한다. 이름하여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Communidade dos Paises de Lingua Portuguesa, CPLP) 회원국은



포르투갈

브라질

앙골라

모잠비크

카보베르데

기니비사우

상투메프린시페

적도 기니

동티모르

마카오(다른 책에서는 마카오가 빠져있다)


이들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지역을 일컬어 일명 루소폰이라고도 한다.

















'루소폰에 생소한 섬나라나 소규모 국가들이 있는 것은 대항해 시대와 관련이 있습니다. 대항해 시대에 포르투갈이 본국과 식민지 사이의 항로를 개척하면서, 선원들의 괴혈병 예방과 물자 보급을 위해 주요 항로 상의 섬들을 점령한 것이 현재까지 이어져 지금의 루소폰이 되었기 때문입니다.(p.41)



어제 포스팅한 포르투갈의 피아니스트 마리아 주앙 피르스는 교육 프로젝트를 운영하였는데 포르투갈 정부와 이견을 보이면서 돌이킬 수 없는 사이로 악화되었다고 한다. 결국 2006년 조국을 떠나 브라질에 정착하여 이전에 시도했던 프로젝트들을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좁은 땅덩어리에 게다가 수도권에서 많은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살다보니 이런 언어공동체 국가들이 부럽다는 점이다. 여기 아니면 저기에서 살아갈 방법을 강구해볼 수 있다니 생각만해도 희망이 꿈틀거리는 것 같다. 여행은 말할 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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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때 안산시 합동 분향소에 갔었다. 출입문에서 분향대까지 걸어가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렇게나 많은 아이들이었다니....넓은 실내체육관 한 면을 차지한 영정과 위패, 그리고 꽃장식. 어떤 괴기영화보다도 괴기스럽고 어떤 스릴러보다도 소름끼치는 장면이었다. 영정 하나 하나를 살펴보기가 겁나고 무서웠다. 안타까운 마음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교복을 단정하게 입은 아이들 사진은 꼭 학급 출석부에 있는 사진첩 같았다. 사진첩 속 아이들이 한꺼번에 사라지다니....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잊히지 않는 장면이었다. 그후 서대문에서 시청앞광장까지 진행된 전교조 시위 대열에 참가하고, 촛불집회에도 여러 번 참가했었다. 마음이 너무나 아파서였다. 눈가에 자꾸 눈물이 맺혀서였다.




영정도 위패도 없던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들. 독립운동하던 시절도 아니고 고인들의 면면을 외신으로 접해야하나.


행여 국민들이 마음 아플까, 눈물 흘릴까, 잠 못 드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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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얘기를 듣고 찾아간 노추산 모정탑. 강릉 시내에서 한참 들어가는 산골마을에 노추산이 있고 그 산속에 모정탑이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노추산 모정탑길을 설명해주는 안내판이 하나 서있다.


"차순옥 여사는 강릉으로 시집와서 슬하에 4남매를 두고 지냈으나, 언제부턴가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노추산 계곡에 돌탑 3,000개를 쌓으면 집안에 우환이 없어진다는 신비한 꿈을 꾸게 되었다.


돌탑을 쌓을 장소를 찾던 중 율곡 이이 선생의 정기가 서려 있는 이곳에 26년간 돌탑 3,000개를 쌓았다.


돌탑이 늘어날수록 집안은 평온을 되찾았고 돌탑을 완성한 그즈음 차순옥 여사는 2011년 9월 향년 66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노추산 모정탑길은 율곡 구도장원비와 함께 소원성취 기원의 명소로 알려지며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곧이어 장정같은 탑이 우뚝우뚝 솟아있지만 이건 마을사람과 여행객들이 쌓은 것이고, 다음 사진의 안내석이 나와야 본격적인 차순옥 여사의 돌탑길이 시작된다.

















이 분이 차순옥 여사이다.



어떤 우환이기에, 어떤 심정이었기에 저렇게 탑을 쌓았을까. 저 위에 옮겨 적은 내용으로는 알 수가 없어서 검색을 해봤는데, 몇년 전의 안내판에는 좀 더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글에서 내가 굳이 밝힐 일은 아닌 것 같다. 더 이상 알겠다고 검색할 일도 아닌 것 같다. 마음만 무겁게 가라앉을 뿐이다. 그저 가족의 우환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렇게 탑을 쌓아야했을까 하는 심정을 헤아릴 뿐이다. 탑을 쌓는 일은 삶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서이고 무너지는 몸과 마음을 곧추 세우기 위해서였겠구나 그저 짐작할 뿐이다. 3,000개의 탑을 쌓았다는 위대함보다 돌멩이 하나하나에 서렸을 눈물과 한숨 그리고 꿈이 절절하게 다가오는 광경이었다. 






겉껍질을 벗긴 자작나무의 속살. 새하얀색 수피와 손톱으로 긁은 것 같은 갈색 가로줄무늬는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다. 노추산 모정탑을 보고 온 여운이 남아서인지 저 가로줄무늬 하나하나가 마음을 할퀴는 것 같다. 찌릿찌릿 아프다. 그림 이상의 그림이다.





머잖아 화목난로 속으로 들어갈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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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nama > 다시 읽어봐도 맞는 말씀

9년 전에 올린 글을 작년에도 올렸는데 올해 또 올린다.
엿도 아깝다. 엿 고는 일이 얼마나 고되고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인데. 나라를 거저 먹으려는 자들은 엿부터 고아봐라.
고만큼이라도 땀 흘려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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