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1일부터 6월 26일까지, 하루 빼고 매일 찍은 사진이다. 하루를 건너뛴 건 이파리에 새똥이 떨어져서였다. 꽃을 찍으면 되었지 이파리에 새똥 하나 묻었다고 사진을 건너뛴 건 확실히 어리석은 일이다. 그땐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다는 얘기다. 사소하고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친구 하나 멀어지게 한 것처럼 쓰리고 후회스럽다. 살면서 이런 일이 여러 번 있었을 터, 이제야 뒤돌아보게 된다.

 

같은 꽃을 찍었지만 크기와 각도가 일정하지 않은 이유. 멍멍이가 지켜보고 있었다. 매일 오전과 오후에 멍멍이를 산책시키면서 한 손에 리드줄을 잡은 채 급하게 찍었다. 밖에 나오면 성질이 급해지는 멍멍이에게는 잠시 인내심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조련사도 아닌 나는 잠시 개의 자유를 억압하면서 즐거움을 탐했다. 그러니까 이 사진은 우리 멍멍이와의 합작품.

 

닷새동안 집을 떠나있다가 돌아와보니 꽃이 사라지고 없었다. 시들어서 꺾어버린 건지 그저 보기싫다고 없애버린 건지 꺾인 부분만 오도카니 남아 있었다. 그래도 이 꽃은 다른 꽃보다 오래 버티었다. 이 꽃을 매일 찍으면서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른다. 이것보다 위쪽에 핀 두 송이는 더 보기 좋고 탐스러웠는데 사람들 눈에 잘 띄는 바람에 일찌감치 누군가에게 가해를 당했다. 잘났다고 나대다가 당하는 건 꽃 역시 그런가보다.

 

수국이 한달가량 꽃을 피운다는 걸 처음 알았다. 또한 수국은 인간의 손에 의해 모습이 바뀐 식물이라는 것도.

 

 

 

 

 

 

 

 

 

 

 

 

 

'수국은 산수국의 크고 화려한 가짜 꽃만으로 만든 원예종이며 산수국과 달리 절대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191쪽)

 

'수국은 산성에서는 푸른 꽃을, 염기성에서 붉은 꽃을, 중성에서는 하얀색 꽃을 피워낸다."(187쪽)

 

 

 

수국, 너도 참 모진 삶을 살아내고 있구나. 인간의 눈요기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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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 2021-07-04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첨 알았네요. 수국에게 이런 사연이. 세상 난 것들에 이야기 없는 것이 없나 봅니다. 꽃도 정보도 감사해요.^^

nama 2021-07-04 13:31   좋아요 0 | URL
세상 난 것들은 다들 고통을 겪기도 하고요.
 

 
















상상속에서든 현실에서든 역경을 만나면 자기 연민이나 절망에 빠지지 말고 그저 다시 시작하라.(마르쿠스)               -99쪽


  쇼펜하우어는 다른 동물인 고슴도치의 도움을 받아 인간관계를 설명한다. 추운 겨울날 한 무리의 고슴도치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고슴도치들은 얼어 죽지 않으려고 서로 가까이 붙어 서서 옆 친구의 체온으로 몸을 덥힌다. 하지만 너무 가까이 붙으면 가시에 찔리고 만다. 쇼펜하우어는 고슴도치들이 "두 악마 사이를 오가며" 붙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서로를 견딜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거리"를 발견한다고 말한다.

  오늘날 고슴도치의 딜레마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딜레마는 우리 인간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필요로 하지만 타인은 우리를 해칠 수 있다. 관계는 끊임없이 궤도 수정을 요하며, 매우 노련한 조종사조차 가끔씩 가시에 찔린다.    -162


  쇼펜하우어가 살던 시대에는 백과사전이 곧 인터넷이었고, 인터넷 못지않게 유혹적이었다. 책만 열면 바로 해답이 있는데 골머리를 썩일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쇼펜하우어는 대답한다. 왜냐하면 "스스로 생각해서 해답을 내놓는 것이 100배는 더 가치 있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는 사람들이 자기 생각과 함게 머무르지 않고 너무 자주 책 앞으로 달려간다고 말했다. "책은 자기 생각이 고갈되었을 때만 읽어야 한다."                 -179


  우리가 가장 귀중한 선물을 얻는 것은 그것을 찾아나설 때가 아니라 그것을 기다릴 때다. (시몬 베유)                                         -255


  얼룩 없이 깨끗한 것에만 쇼나곤이 기쁨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쇼나곤이 찬미하는 많은 물건은 오래되고 낡았으며, 심지어 더럽다. 쇼나곤은 정성 들여 관리한 연못보다 "버려져서 수초가 잔뜩 떠 있는 연못"을 더 좋아한다. "그런 연못에서는 표면에 반사된 달빛 그림자가 초록색 사이사이로 하얗게 빛난다.."

  이런 불완전함을 향한 사랑을 일본인들은 와비라고 부른다. 와비는 해진 기모노와 땅에 쓸쓸히 떨어진 벗꽃 이파리, 희곡 한두 개가 빠진 셰익스피어 '전집'이다. 찢어진 청바지나 낡은 가죽 가방을 구매한 적이 있다면 와비를 따른 적이 있는 것이다.    -342~343


  키케로는 궁수를 떠올려보라고 말한다. 궁수는 자기 능력을 허락하는 한 가장 훌륭하게 활시위를 당기지만 시위를 놓고 나면 화살의 궤적이 더 이상 자기 손에 달려 있지 않음을 알고 숨을 내쉰다. 스토아철학은 이렇게 말한다. "해야 할 일을 하라. 그리고 일어날 일이 일어나게 두라." 우리는 외부의 목표를 내면의 목표로 바꿈으로써 실망의 공격에 대비해 예방접종을 놓을 수 있다. 테니스 경기에서 이기려 하지 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경기를 펼칠 것. 자기 소설이 출간되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대신 자신이 쓸 수 있는 가장 훌륭하고 진실한 소설을 쓸 것. 그 이상도 이하도 바라지 말 것.                        -408~409


  그때 롭은 스토아철학의 "위에서 내려다보기" 개념을 설명하고 있었다. 당신이 지구 위 높은 곳을 맴돌며 당신의 작은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별것 아닌 교통체증과 더러운 그릇과 옹졸한 말다툼과 잃어버린 노트들. 전부 무관한 것들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다.                 -424


 나의 자기기만 능력은 수염 몇 가닥이 처음으로 하얗게 셌을 때 생긴 것이 아니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가 말했듯이 우리가 노화 탓으로 돌리는 많은 결점은 사실 인성의 문제다. 노화는 새로운 성격 특성을 만들어낸다기보다는 기존의 특성을 더욱 증폭한다. 우리는 나이 들수록 더 강렬한 형태의 자기 자신이 된다. 이러한 변화는 보통 긍정적이지 않다. 돈 쓰는 데 신중한 청년은 늘 투덜대는 늙은 수전노가 된다. 감탄할 만큼 의지가 강한 젊은 여성은 짜증날 만큼 고집 센 할머니가 된다. 이런 성격의 강화는 늘 부정적인 쪽으로만 흘러가야 하는 걸까? 나이 들면서 그 궤도의 방향을 꺾을 수는 없는 걸까? 더 나은 모습의 나이 든 애가 될 수는 없을까?                      -439


  다른 국가에서 보내는 이틀은 익숙한 환경에서 보내는 30일만큼의 가치가 있다.(유진 이오네스코)                                   -467


  보부아르는 노년에 수동성이 아닌 열정을 불러일으켜야 하며 열정은 반드시 외부로 표출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소일거리가 아닌 프로젝트를 가져라. 프로젝트는 의미를 제공해준다. 보부아르는 이렇게 말한다. "노년이 이전 삶에 대한 터무니없는 패러디가 아닐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기 존재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목표를 추구하는 것, 즉 개인과 집단에, 대의명분과 사회적·정치적·지적·창의적 작업에 헌신하는 것이다."                      -468


  여러 다양한 철학은 각기 다른 시기에 각기 다른 사람들에게 호소한다. 소로의 저항 정신은 10대의 마음을 끈다. 니체의 불꽃 같은 강렬한 아포리즘은 젊은이들을 끌어들인다. 자유를 강조하는 실존주의는 중년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스토아철학은 나이든 사람을 위한 철학이다. 몇 번의 전투를 이겨내고, 패배도 몇번 해보고, 상실도 경험해본 이들을 위한 철학이다. 크고 작은 인생 역경의 시기를 위한 철학이다. 고통과 질병, 거절, 짜증나는 상사, 건조한 피부, 교통체증, 카드빚, 공개적 망신, 지연되는 열차, 죽음 같은 것들. 스토아학파를 낳은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철학에서 무엇을 배웠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모든 행운에 준비되는 일"                                                           -397~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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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고 불합리했던 학창시절, 결혼과 식구들 건사로 바빴던 시절을 뒤로 하고 이제는 느긋하게 거울 앞에 설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걸, 저 책이 말해주는 듯하다. 여전히 삶은 팍팍하고 외롭고 고달프지만 저 책들이 있어 위로를 받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책마저 없는 세상은 얼마나 쓸쓸할까. 저런 책을 나눌 수 있는 친구마저 없다면 삶에 무슨 낙이 있을까. 친구야 고맙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버텨서 앞으로도 책 많이 보내주시구려.

 

 

 

 

 

 

 

 

 

 

 

 

 

 

 

 

나도 쓸 수 있을 것 같은 만만한 책. 일본책들은 이런 게 많다. 하향평준화된 느낌이 들지만 그만큼 책과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책은 고상한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런 책은 의미가 있다. 근거없는 자신감 좀 가지면 어때!

 

 

 

 

 

 

 

 

 

 

 

 

 

 

 

 

 

이 책을 읽다보니 나의 퉁퉁 불은 시니컬한 감정이 많이 순화되었다. 나무 같은 사람, 우종영. 나무의사가 사람의 마음도 치유해주시네요. 고맙습니다.

 

 

 

 

 

 

 

 

 

 

 

 

 

 

 

 

기대가 너무 컸나, 내 취향이 아니었나. 과대포장 느낌이 살짝나는 소설. 촘촘한 문체가 다가오다가 멀어지다가. 하여튼 독특한 맛이 있다.

 

18. 엄마는 아빠와의 사랑에서 결코 빠져나오지 못했다

엄마는 아빠를 사랑하는 마음을 둘이 처음 만났던 여름만큼 생생하게 유지했다. 그러기 위해 인생을 외면했다. 때로 엄마는 물과 공기만으로 며칠을 버티기도 했다. 알려진 고등 생명체 중 그렇게 생존이 가능한 유일한 존재로서, 엄마의 이름을 딴 생물종이 하나 있어야 마땅하다. 언젠가 줄리언 삼촌이 해준 얘기에 따르면, 조각가이자 화가인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머리 하나를 그리기 위해 때로는 몸 전체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나뭇잎을 그리기 위해서는 전체 풍경을 희생해야 한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한계를 지우는 것 같을지 몰라도 시간이 좀 지나면, 하늘 전체를 다루는 척할 때보다 무언가의 4분의 1인치 정도밖에 안 되는 부분을 다룰 때, 우주에 대한 어떤 느낌을 붙잡을 가능성이 더 크다.

엄마는 나뭇잎이나 머리를 택하지 않았다. 엄마는 아빠를 택했고, 어떤 느낌을 붙잡기 위해 세상을 희생했다.     -72쪽

 

 

 

 

 

 

 

 

 

 

 

 

 

 

 

 

 

 내 주변 사람들 때문에 마음이 아픈 것도 모자라 요즈음엔 다른 나라들 때문에 심란하고 마음이 시끄럽다. 미얀마, 인도, 홍콩. 미얀마의 신앙심 깊은 사람들의 저항, 인도의 '무능이 무죄한'(황지우) 사람들의 어이없는 죽음들, 야만스러운 중국에 온몸으로 저항하는 홍콩 사람들. 아픈 마음으로 읽을 수밖에 없는 이 책. 그래도 이런 책은 읽어야 한다. 자칭 단골로서 침사추이의 태국 식당 주인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라도 홍콩의 민주화를 지지해야 한다.

 

 

 

 

 

 

 

 

 

 

 

 

 

 

 

 

 

저자의 의욕이 과도해서 차분하게 읽히지 않는 책. 아니면 내 속이 복잡하거나... 

 

 

 

이렇게 2021년의 5월이 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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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1-05-30 15: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nama님, 오랜만이어요.
어제 원주 <뮤지엄 산> 다녀오며 nama님 생각했어요.

nama 2021-05-30 15:13   좋아요 1 | URL
멋진 곳에 다녀오셨네요. 가끔 생각나는 곳이지요.
 


제주 산방산이 바라보이는 곳에 위치한 작은 독립서점 <어떤바람>.




나는 집보다 저런 창턱을 갖고 싶다. 집이 있어야 가능하지만 저런 창턱을 위해 집 한 채 짓고 싶을 정도이다. 꼭 내가 염두에 두고 있던 모습을 발견하고 가슴이 뛰었다. 잠시 앉아볼 틈도 없이 카메라에 담기만 했다.





내 기호에 맞는 책들이 꽂혀 있는 서가. 마치 내가 선별한 듯해서 놀랐다. 





내 몸무게와 거의 맞먹는 커다란 개. 이름은 '산방이'. 덩치가 큰 녀석이 순하디 순하다는 건 매력 중의 매력. 반갑다고 꼬리치는가 싶더니 금방 잠들어버렸다.





내부만큼이나 평화로운 모습의 외관.





내 기호와는 별개로 고르게 된 책. 독립서점에선 무조건 한 권이라도 구입.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무해한 산문이 주를 이루고 있군, 하는 생각으로 읽다가 눈이 번쩍 띄는 부분을 발견했다.


 육체노동을 하는 모든 사람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하는 일이 중요할수록 더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흰 피부는 언제든 꽤 잘 보이는 편이다. 북유럽에서 밭에서 일하는 사람을 보면 아마 한 번 더 쳐다보게 될 것이다. 더운 나라에서는, 지브롤터 남쪽이나 수에즈 동쪽에서는 어디를 가나 일꾼이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치기 쉽다. 내가 거듭 경험한 일이다. 열대 지방에서 우리 눈은 사람만 빼고 모든 풍경을 흡수하는 것 같다. 메마른 토양과 손바닥선인장, 야자나무, 먼 산을 빨아들이지만 작은 밭을 가는 농부는 노상 보지 못한다. 농부는 땅과 같은 색깔일뿐더러 다른 걸 구경하는 것보다 훨씬 덜 흥미롭다.

  바로 그런 까닭에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굶주린 나라들이 휴양지가 될 수 있다. 고통받는 지역으로 저렴하게 여행을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피부색이 갈색인 곳에서는 빈곤이 사실상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모로코가 프랑스인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오렌지 숲이나 정부의 일자리를 뜻한다. 영국인들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낙타, 성, 야자나무, 프랑스 외인부대 병사, 놋쇠 쟁반, 노상강도. 모로코에서 여러 해를 살고도 이곳 주민 90펴센트에게 삶이란 황량한 땅에서 조금의 먹을거리라도 쥐어 짜내기 위해 끝없이 애쓰는, 등골 빠지는 투쟁임을 모를 수도 있다.                 - 143~144쪽



조자 오웰의 글이다,(<마라케시> 중에서) 역시 조지 오웰이구나.





* 이 글을 포스팅하려고 컴퓨터에 앉았더니 딸아이가 지나가는 말로 그런다. 누군가 계산을 해봤는데 시급에 맞는 가격만큼 블로그를 작성하려면 8분을 넘기지 말아야 한단다. 8분을 넘기면 손해라고. 시급에도 못 미치고, 눈길도 사로잡지 못하고, 내 마음에도 안 드는 이런 글을 쓰는 이유가 뭘까.... 마트에 가면서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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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5-03 13: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주도에 가면 꼭 가봐야겠어요~ 저도 저 창턱 너무 맘에 드네요!!

nama 2021-05-03 14:10   좋아요 3 | URL
주인분이 친절하시고 다정다감하셔요. 처음 간 곳인데도 편안하고 좋았어요. 꼭 들러보세요.

행복한책읽기 2021-05-04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점 너~~~무 예뻐요^^ 제가 아는 동생은 저런 창턱 갖고 싶다고 아파트에 저런 비슷한 공간을 만들더라고요. 나마님도 할 수 있어요. 꼭 주택일 필요 없습니다. ㅋ

nama 2021-05-06 12:18   좋아요 0 | URL
그런 방법도 있네요. 상상만으로도 즐거워요~~
 


벼르던 올레길을 걸었다. 1코스부터 차례대로 7코스까지 일단락지었다. 퇴직한 남편이 있어서 가능했으리라고 생각한다. 혼자서 못 할 일은 아니지만 여성에게는 불리한 조건을 무시할 수 없는 구간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다. 혼자가 두려워서 함께 걷지만 함께 걷는 일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이라는 길은 자연의 길보다 더 복잡하고 복합적이어서 정신줄 놓고 터덜터덜 걸을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자연의 길은 마음 놓고 걷지만 사람의 길은 절대로 마음 놓고 걸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나 또한 상대방에게는 그런 존재. 단순함과 긴장감이 교차하는 놀이 같은 것, 내가 밟은 올레길이 그랬다.

















(사실은 이 책보다 더 오래 전에 나온 2008년판을 읽었다. 예전 것은 검색창에 뜨지 않으니 비슷한 걸 올리는 수밖에.)


하여튼 예전부터 이 책을 읽으려고 했으나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는 사실 앞에서 내 자신이 심히 부끄러웠다는 것. 책 갈피를 보니 반 정도 읽긴했는데 기억나는 게 거의 없었다는 것. 그래서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후반부쯤 되어서야 속도가 붙었다. 그간 제대로 읽지 못한 건 자투리 같은 시간을 내어 미적미적 읽었기 때문이지 싶다. 나이를 먹으니 이해력도 생겼나?


요런 페이퍼를 쓰는 것도 쉽지 않은 일. 가장 인상적인 부분만 적어본다.


"..... 내가 뭘 먹고 싶고 갖고 싶으면 어떻게 하는 줄 아십니까? 목구멍이 미어지도록 처넣어 다시는 그놈의 생각이 안 나도록 해버려요. 그러면 말만 들어도 구역질이 나는 겁니다. 이 이야기면 설명이 되겠군. 어렸을 때 말입니다. 나는 버찌에 미쳐 있었어요. 하지만 돈이 있어야지요. 돈이 없어서 한꺼번에 많이는 살 수 없고, 조금 사서 먹으면 점점 더 먹고 싶어지고 그러는 거예요. 밤이고 낮이고 나는 버찌 생각만 했지요. 입에 군침이 도는 게, 아, 미치겠습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화가 났습니다. 창피해서 그랬는지도 모르지요. 어쨌든 나는 버찌가 날 데리고 논다는 생각이 들어 속이 상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한 줄 아시오? 나는 밤중에 일어나 아버지 주머니를 뒤졌지요. 은화가 한 닢 있습디다. 꼬불쳤지요. 다음날 아침 나는 일찍 일어나 시장으로 달려가 버찌 한 소쿠리를 샀어요. 도랑에 숨어 먹기 시작했습니다. 넘어올 때까지 처넣었어요. 배가 아파 오고, 구역질이 났어요. 그렇습니다, 두목. 나는 몽땅 토했어요. 그리고 그날부터 나는 버찌를 먹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보기만 해도 견딜 수 없었어요. 나는 구원을 받은 겁니다. 언제 어디서 버찌를 보건 내겐 할 말이 있습니다. 이제 너하고는 별 볼일이 없구나 하고요. 훗날 담배나 술을 놓고도 이런 짓을 했습니다. 나는 지금도 마시고 피우지만 끊고 싶으면 언제든지 끊어 버립니다. 나는 내 정열의 지배를 받지 앟습니다. 고향도 마찬가지예요. 한때 몹시 그리워하던 적이 있어서 그것도 목젓까지 퍼 넣고 토해 버렸지요. 그때부터 고향 생각이 날 괴롭히는 일이 없어요.   -302~303쪽


여자 밝히는 난봉꾼 얘긴가 할 정도로 전반부는 순 여자 얘기만 나오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조르바의 진면목이 드러나는데..... 조르바란 인물을 탄생시킨 니코스 카잔차키스에게 경의를 표할 수밖에.



이 달에 읽은 또 한 권의 소설.















감히 이 책에 대해선 말을 못하겠다. 보물 같은 이 책을 내가 어떻게 알고 구입해놨을까 생각하면 내가 기특해진다고나 할까.





읽기 보다 걷기에 치중하다보니 컴퓨터 자판 치는 것도 어설퍼졌다. 균형감각을 잃었으나... 읽기와 걷기를 선택하라면... 음, 아직은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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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2021-04-30 11: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다 내려놓은 적이 있는데 언젠가 꼭 읽어야겠습니다.ㅎ
5월도 화이팅 하세요~^^

nama 2021-04-30 11:53   좋아요 4 | URL
아마도 어렸을 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책도 때가 있겠지요?

미미 2021-04-30 1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마르칸드 갖고 계시군여! 저도 읽고 싶던 책이예요. 보물같다 하시니 아 더 더 읽고싶어요!🥲

nama 2021-04-30 16:12   좋아요 2 | URL
번역도 매끄럽고, 재밌고, 시야를 넓혀주고... 장점이 많은 좋은 책이지요. 이런 책은 다시 나오지 않을까요?

붕붕툐툐 2021-04-30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레길 좋으셨겠어요!! 걷기 넘 좋죠~ 걸을 수 있는 건 축복이라 생각해요!!
사마르칸드 읽고 싶은 책장에 넣었는데 책을 잘 구해봐야겠죵?ㅎㅎ

nama 2021-05-01 22:07   좋아요 1 | URL
올레길 만드신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걸었답니다. 이분들께 축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