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책을 도서관 신간도서로 구입하고 읽자니 약간 박자가 느린 감이 없지 않다. 이젠 집안에 책탑을 쌓아야 할 판이니 차라리 조금 기다렸다가 내 소유가 아닌 책을 보는 쪽이 마음도 몸도 편하다. 책이라는 소비재를 덜 구입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래서 읽게 된 이 책.

 

 

 

 

 

 

 

 

 

 

 

 

 

 

 

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언급했나 했더니, 그래 알겠다. 특별할 것도 없는 그냥 평범한 영문학과 교수의 일대기가 잔잔하면서도 애잔하게 펼쳐진다. 그렇다고 딱히 불쌍하다거나 불행하다고 생각되지도 않는 삶인데 마음 저변에 동정심과 연민의 감정을 솟게 한다. 누구에게라도 있을 법한 그저그런 얘기를 그저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는 딱 그 정도로 서술한 소설인데, 고전적인 감동을 준다. 명작소설을 읽는 기쁨이 은은하게 퍼져나간다.

 

물론 인상적인 에피소드도 있다. 특히 영문학 관련 부분은 아릿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대학시절 영문학사에 매료되어 겨울방학 내내 원서를 읽으며 그 숱한 작가와 시인들 이름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 것 아니지만.

 

사족이지만, 이 책은 번역이 훌륭한 것 같다. 마치 국내 창작소설을 읽는 것처럼 문장이 자연스럽고 매끈하다. 소설을 읽고 행복한 감정이 든 건 참 오랜만이다.

 

나이 마흔 셋에 윌리엄 스토너는 다른 사람들이 훨씬 더 어린 나이에 이미 배운 것을 배웠다. 첫사랑이 곧 마지막 사랑은 아니며, 사랑은 종착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 (2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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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권을 읽으며, 청소년 소설도 읽을 만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나 할까. 판타지류의 소설을 거의 읽어본 적이 없다는 것도 그리 자랑거리는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늘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아이들 세계를 애써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자각도.

 

사실, 소설 앞에 '청소년'이 붙는 작품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기껏 영문판 'The Giver' 나 'Holes' 정도, 아니면 영어동화로 분류되는 아동물 정도.

 

어렸을 때는 읽을 책이 썩 드물었다. 책이라고 해야 공무원이셨던 아버지가 갖고 계시던 온갖 정부간행물 뿐이었다. 그것마저도 독서용이 아닌 불쏘시개용으로 조만간 사라져버리고 말았지만. 동화책도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서야 학급문고로 개인당 한 권 씩 사서 서로 돌려본 것 외에는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 전에는 언젠가 당시 서울의 작은 집에서 학교에 다니던 언니가 여름방학 때 집에 내려왔을 때 몰래 가방에서 훔쳐보았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들>이 내 유년의 유일한 동화책이었다. 아무도 없는 아랫방에서 언니 가방을 몰래 열어보는 일도 가슴이 두근거렸는데 책 내용마저 심장을 떨리게 했다. 고통이 느껴질 정도로 가슴이 두근거렸는데도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고, 다 읽고 읽고나서도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렇게 재미있는 세계가 있구나, 하는 놀라움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책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나를 놀라게 한 부류의 책이 또 있었다. 우리집에 세들어 살았던 군인가족이 있었는데, 아저씨는 육사출신의 장교였고 아주머니는 이대영문과 출신으로 미군방송을 즐겨보았고 슬하에 남매를 두고 있었다. 이분들이 이사를 가면서 몇 푸대자루의 책을 잠시 맡겨두고 간 적이 있는데 뒤란 한 구석에 방치되었던 이 책꾸러미가 우리 삼남매에게는 장난감 역할을 하곤 했다. 그런데 이 책꾸러미 속에 한글로 된 책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온통 영어로 된 책뿐이었고 게중에는 색채도 선명한 총천연색 포르노그라피류의 잡지도 적잖이 있었는데...포르노라는 말조차도 몰랐던 어린 시절에 접한 이런 책들은 그저 놀라움 자체였다. 게다가 미끈미끈한 몸매의 백인과 흑인의 적나라한 성기들. 이런 세계도 있구나, 하는 놀라움에 정신적인 성장이 조금 앞당겨졌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미건조한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더하기 대학 시절.

 

동화책에서 곧바로 세계명작소설로 넘어갔던 우리 세대에 비해서 요즘은 읽을거리도 참 다양하다. 다양함이 오히려 피곤함이 되는 걸 우려해야 할 지도 모르겠으나 그래도 읽을거리가 다양하다는 게 부럽긴 하다.

 

위의 책. 약간은 모호하고 설득력이 약한 <기억을 파는 가게>보다 <괴물 사냥꾼>이 훨씩 가독성이 좋다. 반전이랄까, 복선도 재미있다. 아이들 특히 중학교 남학생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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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폐기될 뻔했던 것을 간신히 건져서 서가에 도로 꽂아놨던 책이다. 잘 했다.

 

오카나와 사람들 이야기를 동화로 읽고 있자니...재미와 교훈, 어쩌고 하는 말도 떠오르고...이게 과연 동화인가...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손에서 놓지 못했다.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참 정답고 눈물겹구나, 하고 마지막 장을 술술 넘기고 있었는데 마지막 장에서 주인공 후짱의 아빠가 죽는다. 정신병을 앓는 있는 아빠 때문에 묘한 긴장감이 책 전체에 흐르고 있었는데...순간 눈물이 핑 돈다. 글썽거리던 눈물을 닦고 쓰고 있다, 지금. 와, 이렇게도 울리는구나!

 

단 한 줄, 이 책의 주제가 되는.

 

..일본은 오키나와의 마음과 만나면서 조금씩 제대로 되어가지 않을까 생각해. 그렇지 않으면 일본은 죽어갈 뿐이야.(347쪽, 기요시의 편지에서)

 

이 책에 나오는 야마노구치 바쿠의 <방석>이라는 시.

 

바닥 위에 마루

마루 위에는 다다미

다다미 위에 있는 것은 방석

그 위에 있는 것이 안락

안락 위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일까.

어서 깔고 앉으세요, 권하는 대로

안락하게 앉은 쓸쓸함이여,

바닥 세계를 멀리 내려다보고 있는 듯이

생소한 세계가 쓸쓸하구나.

 

찾아보니 이 시인의 책이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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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에 읽었던 이 소설을 다시 읽는다. 도서관 한 구석에서 폐기처분될 날을 기다리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에 집어 들었다.

 

더이상 나빠질 수 없는 맨 밑바닥의 삶을 살고 있는 주인공 모모. 그래도 로자아줌마에 대한 사랑으로 끝까지 버텨내고 로자아줌마를 지켜내는 과정이 이 소설의 뼈대였구나. 20대 초에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한 게 아니었다는 자각.

 

다 읽은 이 책을 다시 신간서적 서가에 살짝 꽂아놓아야겠다. 부디 눈 밝은 아이들의 눈에 들어가기를. '영혼이 맑은' 아이들이 주로 오는 도서관. 이런 책 한권에서 부디 마음의 위로를 찾게 되기를. 사는 게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을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이 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래도 살아지고, 살만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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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5-03-20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래전에 바로 이 표지로 나온 책으로 읽었어요. 아마도 고등학교때, 아버지 책장 뒤지다가 (^^) 이 책 표지인지 띠지인지 당시 대학가요제 수상곡인 ˝모모˝란 노래의 가사가 나와있는걸 보고 눈이 동그래져서 읽게 되었지요. 좋아하는 노래인데 대체 이 책과 무슨 상관이 있나 해서요.
나중에 학교 가서 애들한테 그 노래 가사가 외국 사람이 쓴 어떤 소설에 나와있는거라고, 말 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뻘쭘했던 기억이 나요.

nama 2015-03-20 10:18   좋아요 0 | URL
저도 요즘 그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어요. 애들한테는 물론 얘기를 못 꺼내요. 제가 중학교 때 `동아`라는 단어가 들어간 자습서로 공부했다니까 애들이 놀래요. 그 시절에도 그런 게 있었냐구요. 예전 얘기를 할수록 아이들과는 거리감만 생겨요.

사랑하는 `그 한 사람`의 의미...이 소설은 그래서 앞으로도 명작으로 남을 거예요.

라로 2015-03-20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눈이 밝지 못한 사람이었어서 나중에 중년이 되어 읽었지요. 그리고는 로맹가리에게 빠졌다는;;; 암튼 저도 저 표지로 읽었는데 폐기 처분 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니,,,,나마쌤, 아니 나마 관장님 같은 분이 계셔서 다행~~~^^;;;

nama 2015-03-21 08:07   좋아요 0 | URL
저는 이제야 눈이 밝아지기 시작한 것 같아요. 철 들자 노망이라고...지레 겁도 나네요 ㅋ

yamoo 2015-03-20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다시 읽어야 할 소설 같아요..전 예전에 50여 페이지 읽다가 던졌거던요~ 얼른 다시 잡아야 할 텐데....매력적인 다른 소설들 때문에 후순위로 계속 밀립니다~ㅎ

nama 2015-03-20 16:28   좋아요 0 | URL
재미있는 소설은 아닌 것 같아요. 사는 게 신나는 사람들은 이런 책이 눈에 안 들어올 것 같구요^^
 
적절한 균형 아시아 문학선 3
로힌턴 미스트리 지음, 손석주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인도인은 크샤트리야 출신이다. 현지 안내인이었던 그와 함께 한 북인도단체여행 때, 교통사고로 사망한 소녀가 길가에 버려져 있는 걸 버스로 이동하면서 목격했다. 교통사고 사망자를 길가에 그대로 방치했다는 사실에 나는 경악했고, 아무도 놀라지 않고 동정심을 나타내지도  않는다는 사실에 연거푸 경악했다. 이 황당한 상황에 당황하고 있을 때 우리의 크샤트리아 출신인 안내인이 이 난감한 상황을 단 한마디로 정리했다.

 

"인도에 사람 많아요." 정확한 발음의 우리말이었다.

 

나는 인도에 관련된 각종 인명사고를 접하게 되면 이 인도친구의 말이 떠오르곤 한다. 사람 하나쯤 죽어나가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자신보다 계급이 낮은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이 인도친구가 특별하다거나 특이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출신이 출신이다보니 자신도 모르는 계급 의식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죽은 것을 보고 눈 하나 깜박거리지 않고 무덤덤하게 말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실화 같은 소설을 읽다보니 이 친구가 떠올랐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어이없는 수많은 죽음을 대하는 인도인들은 과연 어떤 생각들을 할까? 계급에 따라 다를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고.

 

이 소설. 뭐랄까. 과연 내가 알고 있는 인도가 진짜 인도인가? 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읽으면서 괴로웠다. 슬픔은 말할 것도 없고. 책도 두꺼워서 완독하는데 3일 가까이 걸렸는데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오로지 밥 먹고 책만 읽었다. 다른 일은 하기도 싫었다. 내용에 질리고 두께에 질리고 등장인물의 운명에 질리고...온통 질리게 만들었다. 진하디 진한 인도여행 같았다. 아니,징하디 징한 인도여행 같았다. 인도는 뭐든 사람을 징하게 만드는구나 싶었다.

 

그간 인도에 관한 책을 나름 많이 읽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그 자부심에 찬물과 뜨거운 물을 동시에 끼얹는 이 책. 이 압도적인 소설에 경외감마저 생긴다.

 

그런데 '적절한 균형'이란 제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리저리 생각해보아도 인도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기란 쉽지 않다. 특히 불가촉천민인 경우에는 더욱. 이 책을 읽어야 비로소 인도에 대한 적절한 균형 감각이 생긴다고 생각하니 좀 이해가 되는 듯도 싶다. 한마디로 진한 독서 체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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