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일대를 한 바퀴 돌고 왔더니 목포 때문에 난리가 나기 시작했다. 때마침 논란의 중심이 된 목포의 구도심도 다녀온지라 사진이라도 몇 장 올리고 싶어졌다.

 

목포. 심적으로는 인도라는 나라보다 더 멀리 떨어진 곳이다. 인도는 수차례 다녀왔지만 목포는 목포만을 목표로 다녀온 적이 없으니, ‘라는 인간은 대한민국 국민이 맞나 싶을 정도이다. 어디 목포뿐이랴. 우리나라 구석구석 가지 않은 곳, 눈길 한번 주지 않은 곳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여수 향일암, 영암 구림마을, 순천만습지와 국가정원, 목포 구도심 일대, 광주 518 민주묘지 등이다. 순천 선암사 템플 스테이도 다녀왔다. 작년 10월에는 친구들과 갔었고 이번엔 남편과 둘이 갔다. 향일암이야 워낙 유명한 곳이니까 설명이 필요 없는 곳이고, 영암 구림마을은 안내책자를 보고 얼떨결에 찾아간 곳인데 큰 감동을 받고 왔다. 호남의 3대 명촌 중의 하나라고 하는데, 주변 산세하며 반듯하고 점잖은 마을 품새하며, 게다가 작은 마을에 미술관과 도기박물관까지 갖추었는데 상상 이상으로 품격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아파트촌에서 태어나 아파트가 전부인 아이들이 얼마나 불쌍한지 이 마을에 한발이라도 들여놓는 순간 가슴으로 깨닫게 된다. 구림마을. 이 이름만이라도 일단 잊지 않도록 자꾸 입속으로 되뇌어 본다.

 

 

 

 

 

 

 

 

 

 

 

 

 

 

 

동네 서점에서 구입. 저자의 주관적인 색채가 짙은 책이라서 여느 관광안내서와는 다른 편이다. 널리 알려진 곳은 별로 나와있지 않아서 '굳이 이런 곳에' 가야하나 싶었는데 실제로 이 책대로 따라가보면 생각지도 못한 놀라움과 즐거움을 발견하게 된다. 구림마을이 그랬듯.

 

 

 

 

 

 

 

 

위 사진은 '유달산 아래 달동네 다순구미마을' 전경이다. 목포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마을로 예전 '다순'은 '따뜻하다'는 뜻이고, '구미'는 '바닷가의 후미지고 깊은 곳'을 뜻한다고 한다. 목포의 그 많은 명소 중에 굳이 이런 데를 가야하나 싶었으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달리 소개된 곳이 없었다. 50여 년을 한 집에서 사셨던 어머니를 뵌 듯한 기분에 젖어 이 마을을 지그시 눈에 담아보았다. 외부인에게는 감상에 젖어들기에 좋은 동네지만 실제 저 마을에 사는 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 깊은 속내를 가늠하기 전에 우선 이 정감있는 마을이 오래 보존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앞섰다.

 

 

 

 

마을 전경을 내려다보기에 좋은 언덕. 저 길을 끝까지 올라가보면 초등학교가 나온다. 학교 정문인 셈이다. 문득문득 길을 걷다가 저런 언덕길을 만나면 나는 순간 숨이 멎는다. 길이 끝나지 않아서 다행인 것이다. 사진에 담고 학교 이름을 읽어보았다. '서산초등학교' 서산이라....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손헤원의원의 목포스토리에 서산지구가 나와서 저곳이 그곳이구나 싶었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의 소개로 찾아간 빵집. 줄을 서는 곳답게 빵맛이 일품이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의 소개로 찾아간 동네백반집. 김낙연국무총리가 예전부터 다니던 곳이었는지 그의 사진이 많이 걸렸다. 만 원짜리 밥상으로는 가성비 최고다. 사진상에 보이는 약간 빈약한 반찬 접시는 생선구이가 나중에 나오는 바람에 미리 한두 점 먹어치워서 그렇다.

 

 

 

동네 치장에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나 밤거리는 한산하기만 하다. 그래서 손의원이 그렇게 분기탱천했나 싶지만...

 

 

글로 더 이상 옮기지는 않으나 진짜 재미있었던 부분은 게스트하우스 주인과의 대화였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해볼까 한다. 오늘은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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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9-01-21 1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순전히 <목포 문화 탐방>을 목적으로 친구들과 여행 갔을 때 구림마을 한옥에서 1박 했던 게 벌써 10년쯤은 된 듯하네요. 그때 문화해설사를 대동하고 목포 시내 구도심에도 가 보고, 가수 남진 씨 생가도 구경했던 기억이 나네요.^^

목포에서 맛 볼 수 있는 음식점 가운데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소개된 백반집도 괜찮고, 여기저기 가볼 만한 음식점이 많았던 것 같은데, 시내에 있는 그 유명한 <독천낙지>도 빼놓을 순 없겠지요. 민어회로 유명한 <영란식당>도 가 볼 만하고요.

목포는 꽤나 먼 곳이지만 그래도 드문드문 들르게 되더군요. 영암의 월출산, 강진의 다산초당, 해남의 대흥사,미황사,보길도, 흑산도와 홍도 등지를 찾아갈 때도 웬만하면 거길 거쳐야 하니까요.

nama 2019-01-21 12:29   좋아요 0 | URL
월출산, 다산초당...이런 곳에 갈 때도 목포에 들른 기억이 없는데..어떻게 갔었을까요?
구림마을이 예전부터 유명했었군요. 저는 처음 알았어요. 제가 좀 그래요.

목포의 매력을 조금이라도 알게 되었던 여행이었어요.

jeje 2019-01-21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게하 주인과의 대화.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꼭 들려주세요 ㅎㅎ

nama 2019-01-22 08:15   좋아요 0 | URL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답니다. ㅎㅎㅎ
 

 

 

 

 

안동 봉정사, 부여 무량사에 이어 이번에는 순천 선암사에 다녀왔다. 이게 모두 유홍준 교수의 책에서 비롯되었다. 얼마 전 생일을 맞은 내 친구(A)가 있었다. 친구의 생일 선물로 유홍준의 <산사 순례>를 선물했는데 이 친구가 이 책을 너무나 마음에 들어했다. 그럴줄 알고 선물했지만 막상 나는 책을 읽지 않았다. 그렇다고 선물한 책을 나중에 빌려달라고 하는 건 도리가 아니어서 결국 내 것으로 한 권을 샀다. 그리고 며칠 후 포도밭집 딸인 친구(B)네 갔는데 시중에서 보기 힘든 귀하디 귀한 포도를 한 상자 안겨주기에 낑낑대며 집으로 들고왔다. 내년에 또 맛있는 포도를 얻어 먹을 욕심에 이 친구에게 두 권의 책을 보냈는데 그중 한 권이 <산사 순례>였다. 친구 C가 있다. 미혼인 C는 주중엔 직장에 다니느라 바쁘지만 주말엔 불러내주면 한번도 거절한 적이 없는 친구다. 그리고 나, D. 우리는 모두 같은 중학교와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다. 우리 중에 불교 신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게 또 하나의 공통점이다. 심지어 A는 독실하다 못해 뿌리까지 깊은 4대를 잇는 천주교 신자이다. 이렇게 넷이 기차를 타고 순천 선암사로 향했다.

 

그런데 선암사가 어떤 절인가. 선암사에 관한 책을 보면 하나같이 칭찬에 칭찬을 보태고 거기에 주관적인 감정까지 더해져 이곳에 가보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불안감(?)을 조성한다. 조장한다. 언젠가는 반드시 가봐야 할 곳으로 각인되는 곳으로 되어버린다. 처음으로 불을 지핀 분은 건축가 승효상이시다.

 

 

 

 

 

 

 

 

 

 

 

 

 

'솔직히 말해 나는 한국의 수많은 절집들 중에서 이 선암사 가보기를 제일 좋아한다. 부석사의 사무치는 그리움도 감동적이지만 건축을 하는 나에게는 그런 애잔한 감정을 마냥 좇을 수만은 없다. 건축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선암사를 좋아하는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사찰의 원형이 그대로 보전되어 있다는 데 있다.(중략)그러나 이 선암사는 여전히 산사의 고졸한 원형을 보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세월이 갈수록 위엄이 더해 가면 우리에게 경건과 침묵의 아름다움을 일깨우고 있다.'

 

선암사가 원형을 보전하게 된 연유가 유홍준의 책에 자세하게 나와 있는데 읽다보면 머리가 조금 복잡해지면서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대부분 같은 내용이지만 좀 간단하게 정리한 책을 찾자면 김봉렬의 다음 책인 것 같다.

 

 

 

 

 

 

 

 

 

 

 

 

 

'남한에 있는 사찰 가운데 19세기 이전에 조성된 사찰은 대략 1,000여 개로 추정하고 이들을 보통 고찰이라 부른다. 1,000개 가운데 99%는 모두 조계종 산하의 사찰이고, 제2종단인 태고종은 단 두 개소의 고찰만을 가지고 있다. 본산인 서울 신촌의 봉원사와 순천의 선암사. 그나마 선암사의 법적 주인은 조계종이기 때문에 봉원사만이 태고종의 유일한 고찰이다.'

 

현재의 재산관리는 순천시장이 맡고 있다고 하며 조계와 태고 두 종단의 소유권 소송이 아직도 법원에 계류중이라고 한다.

 

'조계종도 태고종도 순천 시장도 어느 누구도 섣불리 새로운 불사를 벌일 수 없었고, 마음대로 기존의 건물을 헐어버릴 수도 없었다. 선암사의 모든 건물과 토지에는 '가처분'이라는 딱지가 붙었기 때문이다. 다른 고찰들은 기존의 질서를 허물고 새로운 건물들을 신축하는 열풍에 휩싸였지만, 선암사만은 어떤 건축적 변화도 일어날 수 없었다. (중략) 최후로 남은 고찰,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최고의 사찰이 될 수 있었다.'

 

 

승효상은 선암사를 '수도자의 도시'라고 부른다. 설명을 읽어본다.

 

'선암사 경내의 모든 건물군들이 자기 나름대로의 고유한 공간을 만들며 뚜렷한 성격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선암사는 일개 사찰이 아니라 수도자들을 거주민으로 가진 도시였다. 그래서 다른 절과는 달리 건물들이 중심 시설인 대웅전의 축을 따르지 않고 죄다 다른 축을 가지고 다른 중심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한 건물군이 없어져도 선암사는 그대로이며 한 부분이 덧대어져도 그 역시 선암사인 것이다. 부분이 전체보다 결코 덜 중요하지 않은 도시이다. 그렇다면 이는 그야말로 다원적 민주주의의 도시 모습이 아닌가.(중략) 선암사는 건축이 아니라 작은 도시이다. 몸을 닦고 영혼을 닦는 수도자의 도시인 것이다.'

 

우리가 머물렀던 심검당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중략) 이 각기의 건축들이 죄다 보물 같은 건축 공간을 만들고 있다. 예컨대 대웅전의 서편에 있는 설선당이나 그 앞의 심검당 혹은 창파당 같은 요사채는 대개 2층 혹은 3층의 단면구조를 가진다. 이 단면의 비례는 외부와 충분히 격리된 느낌을 가질 정도라, 가운데 있는 마당만이 유일하게 하늘과 통하여 외부와 연결되는 장소이다. 수도자로서는 더없이 용맹정진할 수 있는 공간인 이 마당을 중심으로 아래층에 승방이 배치되고 위층에 곡식을 저장하거나 휴게의 용도로 쓰이는 공간을 두고 있는데, 때로는 벽으로 막히고 더러는 뚫려 있는 공간의 전개 수법이 탁월하다.'

 

 

바로 이 공간이다.

 

 

이렇게 길게 인용하고 되새기는 건 나를 위한 것일 수 있다. 보고도, 읽고도, 제대로 보는 안목이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가 갈아신었던 흰고무신. 아둔한 내 눈에는 오히려 신발장이 더 아름답게 보였다.

 

 

 

심검당 입구. 밤 8시 20분 경에 멧돼지가 자주 출몰하니 일찍 잠자리에 들라던 담당 보살님(?)의 말을 들었지만 왠지 밤새 경내를 서성이고 싶었다.

 

 

 

 

다음 날 새벽 3시 40분 아침예불에 참여하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든다. 대나무 걸대에 옷과 수건을 널고.

 

 

 

 

저녁 예불 시간

 

 

 

 

절에서 묵어야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경내 저 구석에 숨어 있는 공간, 산신각이다. 산신각은 민간신앙이 흡수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맞는 말이겠지. 딱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좁디 좁은 공간이다. 저 안에 들어가 문을 닫고 간절히 기도하면 무슨 소원이든 이루어질 것 같다. 눈을 뗄 수 없는 아름다운 건물이다.

 

 

 

 

뒷자태가 고운 이 건물은 무엇일까요?

 

선암사하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기로 유명한 뒷간의 뒷모습이 되겠다.

앞모습과 내부는 이미 올린 바가 있으니 보시거나 말거나....

 

 http://blog.aladin.co.kr/nama/8176471

 

 

 

선암사하면 또 유명한 게 홍매화인데 '선암매'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다. 상상력이 필요한 사진이다. 저 마른 가지에 홍매화가 피었다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 언젠가는 내 저 홍매화를 보러 가리라.

 

 

 

 

구멍 숭숭 뚫린 마음도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은목서'라는 나무의 꽃.  버터에 향수를 버무린 듯한 묘한 꽃 향기를 낸다.

 

유홍준 교수의 글이다.

 

'선암사는 1년 365일 꽃이 없는 날이 없다.(중략) 학교 선생이라는 직업에서 가장 어려운 것의 하나가 학생들 이름을 외우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이름 외우기가 힘들어지는데, 그래도 애써 외우고 아이들 이름을 불러주는 까닭은 학생들 이름을 알고 가르치는 것과 그러지 않는 것은 교육의 내용과 효과가 매우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열심히 나무마다 이름을 말해주지만, 나의 학생들은 그것을 별로 귀담아듣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장담한다. 두고 봐라, 너희도 나이가 들면 반드시 나무를 좋아하게 될 때가 있을 것이니, 그때 가서는 반드시 나를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유홍준 교수의 선암사편 글 중에서 제일 이해하기 쉬운 부분이다. ㅎㅎㅎ

 

 

 

절집이 아무리 의미가 깊어도, 꽃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가슴을 울리고 눈물나게 하는 것은 역시 사람이다. 아침 산책을 이끌었던 등명 스님을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내 말을 제일 안 듣는 사람이 바로 나예요."

 

많은 말씀 중에 이 한마디가 가슴에 절절하게 와닿았다.

 

마무리 시간. 스님께서 노래 한 곡을 불러주셨다. '날 구원하신 주 감사'라는 찬송가였다. 노랫말이 또 가슴을 친다. 장미꽃 감사, 장미꽃 가시도 감사....거절도 감사. 슬픔도 감사...어느새 눈물이 핑 돌았다. 스님의 노래가 이번 선암사 템플 스테이의 하이라이트이자 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벅차 올랐다. 순간 누군가 '앵콜'을 외친다. 그동안 우리를 지도했던 담당보살님의 외침이었는데 스님이 슬쩍 눈짓을 하신다. '그만 두시게'라는. 나중에 담당보살님이 살짝 귀뜀을 해준다. 스님께서 조영남의 '모란동백'을 좋아하신다고.

 

어제는 하루종일 조영남의 '모란동백'을 듣고 또 들었다. 자면서도 들었다. 스님께서 이 노래를 들려주신다면 언제든 달려가련다. 스님, 기회를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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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6 1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16 1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bina 2018-10-16 23: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새벽예불 정경이 인상적 이네요.
불밝힌 경내의 경건함속으로 들어가 서있는 착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경건하게 정진하는 모든 수도자들의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nama 2018-10-17 06:46   좋아요 1 | URL
새벽예불과 비슷하긴 하지만 두 사진 모두 저녁예불입니다.
저는 새벽예불이 좋았어요.
경건하고 신성한 기운이 느껴졌어요.
한편으론 수도자의 삶이란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spo 2018-10-17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들의 설명을 담은 A,B,C,D의 등장은 눈 앞에 살아 움직이는 듯,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읽게하는 집중력을 줍니다..
저녁예불이나 새벽예불은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상적이며,
경건함이 마음을 씻어주는 듯 합니다.
넓이에 깊이를 더해 더욱 잊지 못할 선암사를 가슴에 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nama 2018-10-17 16:34   좋아요 0 | URL
함께 갔던 친구들 A, B, C 모두 즐거운 체험이었을 거라고 여겨집니다.
친구 혹은 부부, 가족, 아니면 혼자서도 경험해볼 만합니다.
넓이와 깊이가 많이 부족함에도 너그럽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spo 2018-10-17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계종, 태고종, 순천시장의 법정다툼은 빨리 끝나길 바라지만
선암사의 보존은 영원했으면 합니다.

nama 2018-10-17 16:36   좋아요 0 | URL
선암사가 그대로만 보존된다면 법정 다툼이 계속 미해결로 남아도 되지 않을까요.
무소유를 가르치는 불교에서 뭐 그런 다툼을 벌이는지요. 원래는 하나였을 텐데요.
 

 

지난번 안동 봉정사는 예정에 없던 곳이라 책 한줄 읽지 않고 갔었다. 그렇다면 예습을 하고 간다면 어떻게 달라질까 싶어 다시 유홍준 교수의 <산사 순례>를 집어들어 부여 무량사편을 펼쳤다. 그러나 역시 예습보다는 복습을 위주로 살아온 삶이라 떠나기 전날 밤에 읽는 책은 그저 흰바탕에 쓰여져있는 검은색 활자에 불과했다.

 

 

 

 

 

 

 

 

 

 

 

 

 

 

대학 수능 이전에는 학력고사, 학력고사 이전에는 예비고사가 있었다. 예비고사 세대인 나는 그것 말고도 지원한 대학에 가서 본고사를 치러야했다. 과목은 대부분 국, 영, 수 였다. 시험 당일 택시를 타고 시험장으로 가면서 본고사용으로 편집된 얇은 수학책을 몇 쪽 읽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뭐라도 보고 있는 게 덜 떨릴 것 같아서였다. 운발이 있었는지 택시에서 대강 본 문제가 두어 개 시험에 나왔다. 국어와 영어시험을 치르면서 바닥으로 가라앉았던 기분이 수학 시험을 치르면서 성공 예감으로 급상승했다. 대학에 합격한 건 순전히 택시에서 살펴 본 그 수학문제 덕이라고 지금도 믿고 있다.

 

어제, 아침밥도 거른 채 부여로 향하는 차 안에서 전날 읽다만 부여 무량사편을 펼쳐 읽었다. 역시 달리는 차 안에서 읽는 맛은 색다르다.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전날 미리 읽은 남편이 스포일러가 되려는 순간 급히 차단 시키느라 약간 집중력이 흐트러지긴 했지만.

 

 

 

만수산 무량사라고 쓰여진 일주문.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분명 생각없이 지나쳤을 것이다. 책에 나온 설명이다.

 

무량사는 일주문부터 색다르다. 원목을 생긴 그대로 세운 두 기둥이 아주 듬직해 보이면서 지금 우리가 검박한 절집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묵언으로 말해준다.  (199쪽)

 

 

저런 사진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법. 얼마나 듬직한지 다시 보시라.

 

 

듬직한 남편보다 더 듬직하다. 남편이 저 나무만큼 듬직하다면... 세상을 구한다고 나섰겠지, 아마. 다행이다.

 

다리 건너 저쪽 편에 있는 천왕문에 다다른다. 다시 설명이 이어진다.

 

천왕문 돌계단에 다다르면 열린 공간으로 위풍도 당당하게 잘생긴 극락전 이층집이 한눈에 들어온다. 천왕문은 마치 극락전을 한 폭의 그림으로 만드는 액틀 같다. 적당한 거리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극락전의 넉넉한 자태에는 장중한 아름다움이 넘쳐흐르지만 조금도 부담스럽지 않고 오히려 미더움이 있다.

 

 

확인해보시라. 얼마나 적확한 표현인지 그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좀 더 가까이 올라가본다.

 

 

이런 풍광을 지닌 절집이 있었던가? 한 눈에 쏙 들어오는 석탑, 오층석탑, 극락전이 절경을 이룬다. 이것만 보는 것으로도 오늘 할 일은 다한 것 같았다. 대만족이다.

 

 

 

 

더 자세한 설명은 직접 책을 보시기 바란다. 이 극락전 말고도 주변에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있고 각각 스토리가 있어 하나도 빼놓을 수 없다. 우화궁 건물 주련에는 진묵대사의 시 한 수가 걸려 있고 '그 시적 이미지가 모르긴 몰라도 세상에서 가장 스케일이' 클 것이라고 하는데 나는 직접 보고도 알아채지 못했다. 예습을 했는데도 놓쳤다. 예쁘다는 우화궁 현판은 그래도 사진으로 담았다.

 

 

 

 

극락전 뒤편 개울가에 있는 청한당이다. 저런 절집에서 하룻밤 보내고 싶다.

 

 

 

"1천 년의 연륜을 갖고 있는 고찰에는 반드시 그 절집의 간판스타가 있게 마련인데 무량사의 주인공은 단연코 매월당 김시습(1435~93)입니다. 저 앞쪽 우화궁 위로 보이는 건물이 김시습 영정을 모신 영산전입니다. 생육신의 한 분인 김시습은 방랑 끝에 말년을 여기서 보내고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마쳤습니다....:(204쪽)

 

<금오신화>의 저자인 김시습에 대해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그의 일대기나 인간상에 대해서는 거의 들어본 일이 없다. 그것이 우리 교육의 맹점이다.'라는 유홍준 교수의 안타까움에 공감하며 책에서 언급한 김시습 관련 책을 찾아본다.

 

 

 

 

 

 

 

 

 

 

 

 

 

 

 

 

 

 

 

 

 

 

 

 

 

 

 

 

 

우리가 모르는 게, 어설프게 배운 게, 어디 김시습 뿐이랴. 이 책 206쪽~208쪽에 쓰인 김시습의 짧은 일대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파란만장한 시대를 보냈는지 먹먹하게 다가온다.

 

김시습의 자는 열경, 호는 매월당, 청한자, '세상에 쓸모없는 늙은이'라는 뜻의 췌세옹(贅世翁) 등이 있다.

 

'세상에 쓸모없는 늙은이'...옛사람들은 참으로 겸손도 하시지. '췌세옹'이란 말 듣기 싫어서 난 오늘도 이렇게 열심히 블로그질을 한다만.

 

 

 

 

 

드디어 이 책에서 언급하지 않은 불상(?)을 발견했다. 누가 쌓았는지는 모르지만 나름 절묘하다. 발견의 기쁨이라면 과할까? ㅎㅎㅎ

 

 

 

 

'부여 반교마을 옛담장'이라고 들어는보셨는가? 마치 제주도를 연상시키는 돌담이 있는 마을인데 바로 유홍준 교수의 세컨드하우스(?)가 있는 마을이다. 무량사에서 가까운 곳이라 들렀다. 허락없이 찾아간 곳이라 되도록 사진은 얌전하게 찍으려 했다.

 

 

 

 

 

 

 

전망이 확 트인 곳을 좋아하는 남편은 위치가 좀 그렇다는데, 내가 보기엔 산 속에 아니 동네 속에 숨은 절집 같아서 좋았다. '휴휴당'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집이다.

 

 

<산사 순례>를 괜히 샀나보다. 또 다녀야되니....

 

 

이런, 정작 중요한 한마디를 빠트렸다. 이 절집은 말 그대로 '절집' 의 모범 같았다. 우선 기념품 따위 파는 가게가 없어 어수선하지 않았다. 산을 둘러싼 분지에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품도 넉넉해 보였고, 무엇보다도 고요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좋았다. 바로 이 맛이야, 할 때의 바로 이 맛을 내는 절집이다. 남편도 같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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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사에 갈 계획은 애초부터 없었다. 그저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제천 새한서점에 다녀올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선 시간은 오전 6시쯤. 보통 그 시간이면 아침밥을 먹는 시간이라 특별히 일찍 서두른 건 아니었지만 아침밥은 가다가 휴게소에서 사먹기로 했다.

 

고속도로 휴게소를 편애한다면 좀 그럴까? 영동고속도로의 덕평 휴게소는 복합문화단지 같아서 좋고, 서해안 고속도로의 행담도 휴게소는 자율식당에서 부페처럼 반찬을 골라서 주문하게 되어 있어 천편일률적인 휴게소의 구태에서 벗어나 있어서 좋다.

 

덕평을 건너뛰자는 남편의 제안이 약간 서운했으나 이내 도착한 여주 휴게소에는 다행히 자율식당이 있엇다. 찌게와 국을 멀리하는 우리는 거의 일인분 가격으로 생선까스와 제육볶음, 쭈꾸미까지 맛볼 수 있었다. 이런 것들은 집에서 내가 해주지 않는 음식들이다.

 

커피까지 마시고 천천히 시간을 끌었으나 서점으로 직행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일렀다. 얼마쯤 가다보니 이정표에 안동이란 글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안동에 몇 번 가본긴했으나 여기서 안동이 멀지 않다는 게 반가우면서도 이상하게 여겨졌다. 흠, 안동이 먼 곳이 아니었구나. 안동은 권선생 고향인데 우리 딸내미 수능 때 시험 잘 보라고 꽃게장을 담궈줬었지. 딸이 재수하는 바람에 그것도 두 번씩이나...남편과 이런 말들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느닷없이 봉정사가 떠올랐다. 마침 엇그제 구매한 유홍준의 <산사 순례>에 봉정사가 소개되어 있었지, 아마.

 

 

 

 

 

 

 

 

 

 

 

 

 

 

 

채 열 쪽이나 읽었던가. 재미있는 다른 책을 읽느라 이 답사기는 겉표지 정도만을 만져봤을 뿐이다. 오히려 잘 되었다. 책을 읽고 가면 책에서 언급한 것을 찾느라고 바쁠 뿐 내 눈의 감식안을 꺼내보지도 못할 수 있다. 예습의 함정이다.

 

과연 유홍준 선생은 책에서 뭐라고 했을까, 궁금히 여기며 탐사에 들어갔다.

 

 

절에 오면 늘 궁금한 게 있다. 주차장은 절에서 멀리 떨어진 초입에 있어 순진한 우리는 당연히 초입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킨다. 주차장이니까. 그런데 숨을 헐떡이며 걷다보면 다른 차량은 계속 올라가는 거다. 뭐지? 다 스님들이 승차한 차량인가? 절에 거의 다다를 무렵이면 절 바로 코 밑에 있는 또다른 주차장이 눈에 들어온다. 앗! 또 속았어. 그냥 밀고 올라오면 되는데...그러면 뭐하나. 전에도 이랬었다. 절에 가면 무조건 끝까지 올라가보는거야. 아니면 말고. 하면서도 매번 착실하게 초입의 주차장에 차를 대곤 한다. 다음엔 안 속을거야.

 

그건 그렇고. 절로 향하는 진입로에 소나무들이 진한 향을 뿜어내고 있다. 유홍준 교수라면 이 길을 두고 어떤 말을 했을까?

 

'주차장에서 강파른 언덕, 잔솔밭을 가볍게 두어 굽이 넘어가자면 왼쪽 계곡 안쪽으로는 퇴계가 여기서 공부한 것을 기념하여 지은 창암정사와 명옥대라는 그럴듯한 정자가 있지만 지금은 봉정사가 목표인지라 거기에 발길이 닿을 여유가 없다. 여기서 다시 한 굽이 넘어서면 안쪽 주차장과 함께 새로 세운 일주문이 봉정사에 다 왔음을 알려준다. ' -56쪽

 

'안쪽 주차장'이 있다잖은가. 정작 가슴을 친 건 다음 말이다.

 

'일주문을 넘어서면 산길 좌우로는 해묵은 고목들이 높이 치솟아 하늘을 가리는데 그 나무가 굴참나무라는 사실이 차라리 놀랍다. 우리는 보통 야산에 즐비한 작은 참나무만 보아와서 참나무가 이렇게 크게 자랄 수 있다는 생각을 좀처럼 하지 못한다.(중략)..서울 종묘를 답사했을 때 종묘 숲의 70퍼센트가 참나무인 것을 알았고 참나무의 참모습과 참가치도 그때 들어 배워서 알았다. 그러고나서 봉정사에 다시 왔을 때 나는 여기도 참나무 숲길이 있음을 비로소 알게 됐으니 사람이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지나치는 것이 얼마나 큰 차이인가를 새삼 깨닫게 됐다.' -57쪽

 

저 '잔솔밭'만 신나게 사진에 담았지 내 눈에는 참나무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으니...'모르고 지나치는' 삶을 살면서도 잘난 척하고 살고 있었다는...

 

 

' 봉정사가 세상에 이름 높은 것은 현존하는 목조견물 중 가장 오래된 집인 극락전(국보 제 15호)이 있기 때문이다.'

 

 

극락전. 단순하면서도 간결한 게 문외한이 보기에도 초기양식이라는 것은 추측이 가능하다.

 

 

 

극락전 내부. 천장을 보면 어떤 견고함과 강직함 같은 것이 느껴진다. 전문가는 이걸 이렇게 풀어 쓴다.

 

 

'봉정사 극락전의 이 간결하면서도 강한 아름다움은 내부에서 더 잘 보여준다. 곱게 다듬은 기둥들이 모두 유려한 곡선의 배흘림을 하고 있는데 낱낱 부재와 연등천장이 남김없이 다 드러나면서도 뻗고 걸치고 얽힌 결구들이 이 집의 견고성을 과시하듯 단단히 엮여 있다. 그리고 곳곳에 화려한 복화반 받침이 끼여 있어 가벼운 리듬과 변화를 일으킨다.'

 

복화반 받침이 어딨는거야?

 

 

 

진입로에 있는 만세루. 이제야 만세루가 뭔지 겨우 이해하고는 있다만.

 

'봉정사의 절집 진입로는 만세루인 덕휘루 아래로 난 돌계단으로 되어 있다. 정성을 다해 가지런히 쌓았으면서도 천연의 멋을 다치지 않았다. 돌계단을 밟고 만세루를 향하면 품에 안을 듯 압도하는 누각에 몸을 맡기고 싶어진다. 그리고 우리는 반드시 누마루 아래로 난 돌계단을 따라 고개를 숙이고서야 안마당으로 들어서게 되니 성역에 들어가는 겸손을 저절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하하하. '반드시...고개를 숙이고서야'... 나에겐 해당이 안 된다. 난 도대체 고개 숙일 일이 없다. 키가 작으니까. 그러니 '겸손'은 내가 따로 배워야 할 덕목이다. 농담!

 

 

 

봉정사 대웅전. 만세루에 누워, 만세루 지붕이 살짝 보이면서 대웅전이 나오게끔 사진을 찍었다. 멋 좀 부려봤다.

 

'봉정사 대웅전 앞마당은 전형적인 산지중정형으로 남북으로는 대웅전과 만세루, 동서로는 선방인 화엄강당과 승방인 무량해회가 포치하고 있다. 그런데 이 앞마당에는 석탑이나 석등 같은 일체의 장식물이 없고 반듯한 축대에 반듯한 돌계단이라는 정면성이 강조되어 있다. 수평면에서도 대웅전을 슬쩍 올렸다는 기분이 들 뿐 평면감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 단순성과 표정의 절제로 우리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말간 느낌의 절마당을 맛보게 된다.'

 

 

되지 않는 멋만 부렸지 도대체 절마당이 어디메 있나? 절마당을 보긴 본건가?

 

 

극락전과 앞마당.

 

'..극락전의 앞마당은 중정에 귀여운 삼층 석탑이 자리잡고 돌계단 양옆으로는 화단이 있어서 정겨운 공간이 연출되고 그 앞으로는 거칠 것 없이 시원한 전망이 열려 있어서 대웅전 앞마당 같은 엄숙과 위압이 없다. 이 대조적인 두 공간의 병존이 우리로 하여금 봉정사의 가람배치에 경탄을 금하지 못하게 하며 우리나라 산사의 대표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는 찬사를 보내게 하는 것이다.'

 

'귀여운 삼층 석탑'은 찍었는데 돌계단 양옆에 있는 화단은 찍히지도 않았으니 '정겨운 공간' 운운하기도 가련하다. 이쯤되면 자조적인 웃음밖에 안 나온다. 나의 어리석은 무지와 안목없음에 경탄을 금하지 못하게 되니 감히 '우리나라 산사의 대표적인 아름다움'을 입에 올리기에도 남부끄럽다. 그저 허탈한 웃음만 나온다.

 

 

영산암 우화루. 설명을 들어본다.

 

'영산암은 낡고 낡은 누마루인 우화루 밑으로 대문이 나 있고 안에 들어서면 서너 채의 승방이 분방하게 배치되어 있다. 안마당은 굴곡과 표정이 많아서 우리가 본 봉정사 대웅전이나 극락전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일부러 가산(假山)을 만들고 거기에 괴석과 굽은 향나무를 심고 여름꽃도 갖가지, 관상수도 갖가지다. 툇마루도 있고 누마루도 있고 넓은 정자마루도 있으며 뒤뜰로 이어지는 숨은 공간도 많다. 뭔가 부산스럽고 분주하면서 그런 가운데 질서와 묘미를 찾으려고 한 흔적이 역연하다.'

 

저 우화루를 거쳐 영산암에 들어가보았으나 대단히 부산스럽고 분주해보였다. 툇마루에는 수십 개의 상자가 쌓여 있었고 한쪽 구석에서는 무슨 공사가 진행중이어서 도저히 사진에 담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아름답고 운치있는 공간이라는 건 느낄 수 있었다. 사진에 보이는 빨랫줄이 그 어수선함을 대신해준다고나 할까.

 

 

 

영산암을 등지고 우화루 아래에서 내다 본 바깥이 더 인상적이었다. 머리는 조심할 일이 없으나 발은 조심해서 걸어야 한다는 것만 빼고.

 

 

결론.

 

'그러고 보니 봉정사에 와서 우리는 서로 성격이 다른 세 개의 마당을 보았다. 대웅전 앞의 엄숙한 마당, 극락전 앞의 정겨운 마당, 영산암의 감정 표현이 강하게 나타난 복잡한 마당. 마당을 눈여겨볼 줄 알 때 비로소 한옥을 제대로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 건축의 에센스는 마당에 있다. (중략) 우리의 전통 음악에서는 음과 음의 사이, 전통 회화에서는 여백을 더욱 소중하게 여겼던 것처럼 전통 건축에서는 건물 자체가 아니라 방과 방 사이, 건물과 건물 사이가 더욱 중요한 공간이었다. 즉 단일 건물보다는 집합으로서의 건축적 조화가 우선이었던 까닭에 그 집합의 중심에 놓이는 비워진 공간인 마당은 우리 건축의 가장 기본적 요소이며 개념이 된다.(중략) 마당은 이처럼 건물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면서도 또 유기적으로 분할하고 건물의 성격과 표정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겉표지의 사진이 바로 봉정사임을 이제사 깨달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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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5 1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05 1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oren 2018-10-05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동 봉정사를 다녀오셨군요. 저는 지난 주말에 성묘하러 고향 가는 길에 안동을 슬쩍 지나쳤는데, 우리 일행도 서울에서 새벽 6시쯤 두 대의 차량으로 출발했고, 마침 여주 휴게소에서 만나 ‘아침 식사‘를 했답니다. 거기서 커피도 한 잔씩 사먹었고요. 그런데 저는 고교 3년을 꼬박 안동에서 학교를 다녔으면서도 정작 봉정사엔 한 번도 가 보지 못했네요.(하회마을, 병산서원, 도산서원, 퇴계종택, 이육사 문학관, 농암고택 등도 따지고 보면 결국 어른이 되고 나서야 가봤지만요.) 그렇지만 nama 님이 올려주신 봉정사의 풍경들과 책 속에서 인용해 주신 글들을 보니 급관심이 가네요.

이 책의 표지에 담긴 사진이 봉정사라는 사실은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고, 책 소개글을 더 자세히 살펴 봤더니 이미 들렀던 산사들이 적잖이 눈에 띄어서 더욱 반갑네요. 어쩌다 한두 번쯤 들렀던 산사들인 영주 부석사, 해남 대흥사, 미황사, 고창 선운사, 부안 내소사, 영암 도갑사, 강진 무위사 등등에 대해 유홍준 님은 과연 책에서 어떤 흥미로운 글들을 남겨놓으셨을지도 궁금하네요.

nama 2018-10-05 21:58   좋아요 0 | URL
안동에서 학교를 다니셨군요. 저는 수원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수원화성에는 관심조차 없었지요. 어른이 되어서야 관심을 갖게 되었구요. 때가 되어야 비로소 관심을 갖게 되는 무슨 법칙 같은 게 있는 듯해요.

저도 부석사, 대흥사, 선운사, 내소사, 선암사, 운문사, 수덕사, 개심사, 연곡사. 도갑사 (그러고보니 많이 다니기도 했네요.^^) 등을 다녀봤는데 이 책 읽기가 약간 겁나기도 해요. 살짝 머리가 아파지기도 하고요. 책이 편하게 읽혀지지 않아요. ‘내가 그간 뭘 보고 다닌거야?‘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oren 2018-10-05 22:11   좋아요 0 | URL
수원 화성은 대학 1학년때 따스한 봄날 하루 날 잡아서 일부러 1호선 전철 타고 수원까지 내려가서 구경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나중에 결혼하고 보니 처가가 수원이고, 아내도 마침 ‘베레모가 멋있었던‘ 수원여고 출신이라서, 이래저래 수원에 대해서는 차츰 빠삭해 지더군요. 더군다나 대학때 만나 여태 어울리고 있는 친한 친구들 가운데 무려 두 넘이 수성고 출신이라서 수원과는 이래저래 인연이 있는 듯해요. 지들이 고등학교 다닐 때 수원여고 여학생들 보고 ‘물여고‘라고 놀렸대나 어쨌다나 하는 이야기도 듣고요.^^

nama 2018-10-05 22:18   좋아요 0 | URL
수원여고. 자주색 베레모, 자주색 교복, 자주색 가방, 자주색 스타킹, 자주색 구두. 개혓바닥 모양의 블라우스 카라. 그렇다면 부인께서는 제 후배쯤 되겠는데요. 우리보다 한 수 낮았던 수성고...우리는 그렇게 여겼었는데 감히 우리를 ‘물여고‘라고 불렀다니...처음 듣는 소리인데요.ㅎㅎ

oren 2018-10-05 22:36   좋아요 0 | URL
제 아내도 수성고가 수원여고 보다는 한 수 아래였다는 말을 틈날 때마다(?) 자주 하긴 하더군요. 그 당시엔 경기도뿐 아니라 충청도 등 전국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모여들었고, 웬만한 지방 중학교에서는 어쩌다 한 명 입학하기도 어려웠다고 하더군요.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도 경북 도내에서는 커트라인이 가장 높았던 명문이라고 가끔 우겨 보지만, ‘어디 수원여고에 비교를 하느냐‘는 바람에 번번이 꼬리를 내리긴 합니다.^^

nama 2018-10-05 22:54   좋아요 0 | URL
역시 수원여고 출신이 확실하네요. 약간의 과장도..ㅎ. 전 34회 졸업생이랍니다. 부질없는 이야기지만.

oren 2018-10-05 22:55   좋아요 0 | URL
나중에 아내한테 몇 회 졸업생인지 슬쩍 함 물어봐야겠네요.
혹시나 nama 님과 동기생쯤 될까봐 약간 걱정되기도 합니다.^^

nama 2018-10-05 22:57   좋아요 0 | URL
오호! 기대되네요.^^

oren 2018-10-05 23:05   좋아요 0 | URL
저는 고교 졸업 30주년 행사를 2011년에 했습니다만, 제 아내는 그런 행사를 언제 했는지 잘 모른답니다. 집에서 살림만 하느라 동창 모임엔 거의 안 나가거든요.^^
http://blog.aladin.co.kr/oren/5135761

nama 2018-10-05 23:10   좋아요 0 | URL
동창회에는 가본적이 없지요. 제가 3학년 4반이어서 34회 졸업생이라는 걸 기억할 뿐이에요.^^

nama 2018-10-05 23:18   좋아요 0 | URL
고교졸업 30주년 기념사진들이 감동적이네요. 부러우면 지는 건데 안동고가 수원여고보다 센 것 같아요.^^
저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우리들 가슴을 주물럭거리곤 해서 #미투에 올릴까 고민하고 있답니다. 잊지못할 고약한 선생님을 두었다는 건 슬픈일이지요.

oren 2018-10-05 23:32   좋아요 0 | URL
허걱~ 그런 고약한 선생님이 있었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네요.

oren 2018-10-06 21:21   좋아요 0 | URL
아내에게 물어보니 다행히도(?) nama 님과는 간발의 차이로 동기는 아니네요. 제 아내가 후배인 게 맞고요. 제 아내도 나이가 적잖다고 여기고 있는데, nama 님께서도 연배가 결코 만만치 않으시네요. ㅎㅎ 어쨌든 nama 님께서 제 아내의 선배분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어 더욱 반갑습니다.^^

nama 2018-10-06 21:32   좋아요 0 | URL
두 살 아래의 이종사촌여동생도 수원여고 출신인데 혹시 동기가 아닐까 싶네요.
어떤 선으로 연결되어있는 듯한 이 느낌은 뭘까요?^^

oren 2018-10-06 21:42   좋아요 0 | URL
세월이 너무 오래 흐르면 같은 고교 동기를 만났는데도 학창 시절의 옛 얼굴이 퍼뜩 잘 떠오르지 않아서 당황스러울 때도 있더라구요. 올 봄에 친구 아들 결혼식에 갔다가 그런 경험을 했었지요.(혼주 되는 친구 녀석이 워낙 마당발이라, 고교 졸업후 처음 보는 동기들이 꽤 여럿 나타났더라고요.) 그런데, 여고 동창생들끼리는 그런 경향이 남자들보다 조금 더 심하지 않을까 싶은 상상도 문득 해보게 됩니다.^^

nama 2018-10-06 22:04   좋아요 0 | URL
여고 동창들이 오랜만에 만나면 분명 세월이 흘렀음에도 이런 거짓말을 한다고 하지요.
˝어쩜. 넌 옛날 그대로니. 호호호.˝
남들 보기엔 그들이 늙어보이는데도요.

요즘은 작은 결혼식을 많이 하네요. 예전처럼 아는 사람을 모두 불러들이는 그런 결혼식이 점차 사라지는 듯해요.

oren 2018-10-06 22:24   좋아요 0 | URL
결혼식이 확실히 예전과 달라진 건 사실이죠. 이젠 주례 선생님도 없는 결혼식도 흔해 졌고요. 올봄에 있었던 제 친구 녀석의 아들 결혼식에는 신부의 아버님이 주례를 맡아서 깜짝 놀랐답니다. 그날 장가를 간 친구의 아들은 총각 시절에 ‘자전거 여행‘으로만 블라디보스톡에서 영국까지 건너 갔고(타클라마칸 사막을 지나고 파미르 고원을 넘어서...), 영국땅에서 신부를 만났더군요. 암튼 그때 아들을 장가 보낸 그 친구 녀석은 오랜 동안 노인들한테 ‘장수 기념 사진‘을 찍어드리느라 아직도 주말이면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니는 ‘참 마음씨 착한 녀석‘이에요. 여러 해 전에는 우리 마을에도 저와 함께 다녀온 적이 있었고요. http://blog.aladin.co.kr/oren/5903921

nama 2018-10-06 22:57   좋아요 0 | URL
장가간 친구 아들을 보고싶군요. 저는 지난 여름 타클라마칸에 발자국만 찍고 왔는데 그곳을 자전거를 타고 넘었다고요...하기야 히말라야를 자전거로 넘는 사람들도 봤어요. 에고, 저는 자전거도 탈 줄 모르고 운전면허도 없는 오로지 뚜벅이 인생인데요.

‘참 마음씨 착한 녀석‘을 친구로 두셨군요. 그런 분의 아드님이니 여행이나 결혼식이 ‘의식‘이 있군요.

spo 2018-10-06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고 동창생끼리의 거짓말
˝넌 옛날 그대로다˝는 완전한 거짓말은 아닌 듯 싶습니다.
오랜만에 만났어도 분명 친구의 얼굴을 단박에 알아본다는 것은
학생 때 보았던 얼굴이 남아있음입니다.
그러니 옛날 그대로인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사회에서 지금 만나는 분들은, 지금의 내 모습 만 알고 있지만
옛 친구들은 나의 리즈시절(?)을 알고있으니
어릴 적 모습을 기억 해주는 옛 친구들이 더 소중한 이유가
한 가지 더해집니다.

nama 2018-10-06 22:43   좋아요 0 | URL
함께 늙어갈 옛 친구가 있다는 건 인생 5복중의 하나가 아닐까요?
서로 늙어가는 모습도 보고 화장발도 필요없는 그런 친구들이 정말로 소중하지요.

spo 2018-10-06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 5복을 다 갖기는 어렵겠죠?
하지만 함께 늙어갈 옛 친구가 있다는 복은 욕심이 납니다.

nama 2018-10-06 23:01   좋아요 0 | URL
내가 먼저 주고, 계산하지 않고, 마음 주고...이런 친구들은 결국 서로의 노력이지요.
 

 

영화 <내부자들>에 나왔던 충북 단양 소재의 새한서점에 다녀왔다. 몇년 동안 벼르고 벼르던 방문이었다. 유명세를 타지 않았다면, 글쎄, 가려고 마음이나 먹었을까 싶게 시골 깊숙한 곳에 박혀(?) 있었다. 경박한 도시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박혀 있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곳이다. 유명세 덕분인지 우리가 갔을 때도 연신 사람들이 들락날락하고 있었으나 대부분은 그저 구경삼아 온 것이지 진지하게 책을 고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내방한 사람들이 책 한 권이라도 사들고 가길 바라는 심정이 들었다. 그곳에 온 관심과 차량의 기름값을 치를 정도의 정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 그 정도의 마음을 써야한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다. 왜냐면, 서점의 기운이 이미 쇠락의 운명을 어쩌지 못하고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로하신 주인 할아버지의 서점에 대한 애정과 정성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의당 그래야 할 일이다.

 

솔직히 이 서점에서 소위 말하는 힐링을 받고 오지는 못했다. 만약 내게 시간이 넉넉히 주어져서 온종일 이 서점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면 채 반나절도 못되어 울면서 뛰쳐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무너져가는 서가, 흙으로 돌아가고 있는 듯한 옛 서적들 틈에서 반듯하게 버티고 있을 재간이 없을 것같다. 내 자신의 앞날을 미리 앞당겨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면 과장이 지나칠까.

 

각설하고, 사진을 감상하시라.

 

 

 

전경을 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서점 정면

 

 

 

 

이 부분은 꼼꼼하게 읽어주시길 바란다. 

 

 

 

서점 입구겸 테라스

 

 

 

말하자면 서점의 로비

 

 

 

 

내가 구입한 책. 대부분 알라딘에서도 구입할 수 있으나 <인도의 사랑>은 글쎄 이곳이 아니면 구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내 바람이다. 나만 소유하고 싶은...

 

 

 

 

 

 

 

 

 

 

 

 

 

 

 

 

 

 

 

 

포르투갈의 어떤 서점에서는 5유로의 입장료를 받는다고 한다. 물론 책을 구매하면 5유로를 할인해준단다. 내가 만약 주인이라면 욕을 먹을지라도 이 방법을 취해볼 텐데. . 그러다 아무도 안 오면? 그래도 책 볼 사람은 반드시 오리라는 믿음을 믿어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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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0-04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소네요~우아!

nama 2018-10-04 12:18   좋아요 0 | URL
명소이긴하나 서점이라 생각하고 책을 봐주면 좋을 듯해요. 그냥 구경만 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2018-10-04 1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04 14:3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