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들 읽기'를 위한 또다른 '펌푸질'이다. 도우미로 나선 이는 문학평론가 신형철씨이고 그가 추천하는 시집(이라기보다는 결구라고 해야겠지만)은 이영광의 <그늘과 사귀다>(랜덤하우스, 2007)이다(http://h21.hani.co.kr/section-021158000/2007/09/021158000200709130677037.html). 시인의 두번째 시집이라지만 나는 아래의 소개를 읽고서야 시인의 이름을 기억해두게 됐다(앞으로도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잊어버릴 수 있는 이름이 아니잖은가!). 주로 거론되고 있는 시는 '동쪽바다'인데, 동쪽바다는 나로선 아주 친근한 곳이어서(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내가 자란 곳은 된다) 김연수의 소설에서 '7번 국도' 이야기를 들을 때만큼의 반가움을 갖게 된다(비록 시는 암울함으로 마무리되고 있지만). 전체 시가 궁금하신 분들은 나처럼 간단히 퇴근길에 서점에 들러 한권 챙기시면 된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제목은 나의 것이 아니다.

한겨레21(07. 09. 13) "당신은 좆도 몰라요"

수많은 문학상이 있다. 대개는 받을 만한 사람이 받는다. 바로 그게 문제다. 늘 받을 만한 사람이 받다니, 이럴 수가, 이렇게 지루할 수가. 불만은 또 있다. 왜 심사의 대상은 늘 ‘한 편의 작품’일까. 예컨대 이런 식은 어떤가. 올해의 제목상, 올해의 도입부상, 올해의 여성 캐릭터상, 올해의 묘사상, 올해의 아포리즘상 등등. 물론 작품이라는 것이 분리 불가능한 유기체인 줄은 잘 알고 있지만, 1등만 뽑는 시상식의 상상력이 하도 따분해서 하는 소리다.

이영광의 두 번째 시집 <그늘에서 쉬다>(랜덤하우스코리아·2007)를 읽었다. 독자들에게 많이 읽히고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체적으로 아름답고 견고한 시집이다. 이 시집에는 이를테면 유배된 선비의 순결성 같은 것이 감돌고 있었다. 그래서 아름답고 견고하지만, 좀체 틈을 주지 않는 그 염결성이 다소 답답하기도 했다. 그러다 읽은 한 편의 시에는 드물게도 쓸쓸한 투정 같은 것이 배어 있어서 외려 그게 마음을 끌었다.

“동쪽 바다로 가는 쇳덩이들,/ 짜증으로 벌겋게 달아올라/ 붕붕거린다, 꽁무니에 불을 달고// 이 지옥을 건너야 極樂 해변이 있다”는 구절로 시작된다. 동해로 가는 차들의 행렬. 교통체증이 심했던지 ‘짜증으로 벌겋게 달아오른’ 차들이 악다구니 중이다.

이어지는 대목에서 시인은 ‘지구는 공사 중’이라고 투덜거리며 찻집으로 길을 낸다. 찻집 벽에는 고구려 벽화가 그려져 있고 시인은 ‘당신’에게 편지를 쓰듯 읊조린다. “뉴 밀레니엄은 어쩌면 벽화의 시대로 남지 않을까요.” 이어지는 내용이다.



폭탄 세일과 재탕 우주 전쟁과 기본 삼만 원을/ 숙식 제공과 月下의 도우미들과/ 흡반 같은 골목을 거느린 벽의 이면,/ 벽화는 모든 벽을 은폐해요/ 모든 벽화는 春畵예요// 세상은 궁극적으로 형장이고/ 인간은 인간의 밥이고/ 에로가 어쩔 수 없이 애로이듯/ 이건 苦行이야, 마시고 싶어 마시는 게/ 아니야, 하고 내가 주정했을 때/ 당신은 암말 없었죠 블라인드 너머/ 오색의 길을 오색의 길을 오색의 길을/ 보고 있었죠 이 지구는 어쩌면/ 버려진 별이 아닐까, 신음하듯.”(‘동쪽 바다’에서)

시인은 “벽화는 모든 벽을 은폐해요”라고 적었다. 우리는 이렇게 읽었다. 이제 주위의 모든 벽들은 죄다 광고판이다. 그것은 전 지구적 자본주의 시대의 벽화쯤 될 것이다. 그 벽화들은 초자아를 잃어버린 우리 시대의 욕망들을 음란하게 드러낸다. “모든 벽화는 춘화(春畵)예요.” 게다가, 벽화가 벽을 감추듯, 우리 시대의 춘화들은 인간다운 삶을 가로막는 곳곳의 ‘벽’들을 용케 감춘다. 그걸 알기 때문에, 고행하듯 술을 마시고, 버려진 별을 보듯 지구를 본다.

“돈 내고 받아드는 영수증처럼 허망한 당신의/ 오랜 병력과 어둠과 온몸이 부서질 듯한 체념을/ 가슴으로 한번 받아볼까요 나는 잘못/ 살았어요 살았으니까 살아 있지만/ 당신과 못 만나고 터덜터덜 가는 길에/ 동쪽 바다 물소리 푸르게 들리고,/ 내가 밤하늘 올려다보며 당신 생각을 할까요/ 느티나무 그늘에 앉아 두루미처럼 울까요/ 당신은 좆도 몰라요”

같은 시의 끝부분이다. 당신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서는 길에 잃어버린 유토피아처럼 동쪽 바다 푸른 물소리가 들린다. 같은 시의 다른 대목에서 시인은 “요컨대 인간은 전쟁 중이죠“라고 적었다. 말하자면 그에게 2000년대는 ‘지구는 공사 중, 인간은 전쟁 중’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이 구절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잘못 살았다, 잘못 살았기 때문에, 살아남았다’라는 시인의 자조에도, 그의 저 쓸쓸한 귀가에도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의 진짜 매력은 이런 근엄한 메시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투정 부리듯 늘어놓는 말들의 쓸쓸한 율동에 있다. 자학인 듯 가학인 듯 이어지던 말들이 제 쓸쓸함을 견디지 못하고 이렇게 무너진다. “당신은 좆도 몰라요.” 세상과의 불화가 그리움을 키우고, 너무 큰 그리움은 때로 화를 키운다. 욕설이 이렇게 물기를 머금을 수도 있구나. 이 시를 ‘올해의 결구(結句)상’ 후보로 추천한다.(신형철_문학평론가)

07. 09. 16.

P.S. '손민호기자의 문학터치'에서도 <그늘과 사귀다>가 언급되고 있어서 옮겨놓는다. 

중앙일보(07. 06. 12) 밑바닥에서 꿈을, 죽음에서 삶을

한 달쯤 전 나란히 나온 시집 두 권을 말한다. 부족한 지면 탓에, 아니 게으름 때문에 신간(新刊)이 되지 못하고 구간(舊刊)이 되어버린 시집이다. 시인 제위에 마냥 죄스럽다. 한편으론 뿌듯한 마음도 있다. 남들이 무심코 지나친 시집을 홀로 펼칠 때의 기분은, 횡재를 맞은 듯이 짜릿하다.

박영희(44)의 시집 '즐거운 세탁'(애지)과 이영광(41)의 시집 '그늘과 사귀다'(랜덤하우스). 두 시집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하나는 비루한 삶에서 희망을 길어올리고, 다른 하나는 죽음의 그늘에서 삶의 기운이 돋아난다.

두 시인 모두 문단에서 밀어주거나 끌어주는 이 없다는 것도, 그런데도 시와 함께 산다고 주저 없이 밝히는 것도 닮아있다. 박영희는 "시인의 누명을 쓰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부끄럽다"고 적었고 이영광은 "다름 아닌 시와 더불어 고행(苦行)하게 된 것이 행복하다"고 적었다. '누명'과 '고행'에서 시를 업(業)으로 삼는 자의 '자발적 버거움'이 읽힌다.



# 삶을 노래하다

여기 한 편의 시. 읽는 요령이 있다. 시가 묘사하는 풍경을 눈앞에 그려보는 것이다.

'저울눈금을 확인한 고물상 주인이 ㎏당 50원 하는 폐지를 부리다 리어카 밑바닥에서 젖은 라면상자 두 개를 발견하고는 이런 일이 벌써 한두 차례 아니라며 남은 이보다 빠지고 없는 이가 더 많은 노인을 다그치자 재생이 가능한 폐지를 주워온 노인네는 요 며칠 궂은 날씨를 탓하여 본다.//아무리 슬픈 일이 있어도 고물상에서는 눈물이 젖어도 폐지가 젖어서는 안 된다.'

'즐거운 세탁'의 맨 앞에 실린 시 '고물상을 지나다'의 전문이다. 고단하고 퍽퍽한 고물상 노인의 삶이, 읽는 이의 눈을 할퀸다. 이 시는 전에 본 적이 있다. 박영희가 쓴 르포집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삶이 보이는 창)에서다. 시인은 거기에서 우리 사회의 밑바닥 인생을 부지런히 찾아다녔다. 고물을 줍는 노인들의 삶을 묵묵히 전한 다음, 시인은 앞의 시를 적어두었다. 그리고선 "아프면 눈물이 나오지만 고통스러우니까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때 시의 제목은 지금과 달랐다. '삶'이었다. 하여 삶은, 고물상의 젖은 라면상자다.



# 죽음을 기억하다

'그늘과 사귀다' 초입에서 이영광은 '아버지 세상 뜨시고/몇 달 뒤에 형이 죽었다'('떵떵거리는'부분)고 부고(訃告)를 쓴다. 이어 한사코 죽음만을 기록한다. 아래는 그 세목(細目)이다.

①염습(殮襲):관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몸이 씻겨지는 동안,/다른 몸들이 기역 니은 리을로/엎드려 우는 동안('황금 벌레' 부분)

②출상(出喪): 수양버들 춤추는 길에/상여 하나 떠가네/제 발로는 더 이상 걷지 못하는 자의 집,/여러 몸이 메고 가네('수양버드나무 채찍'부분)

③하관(下棺):취한 몸을 리어카에 실어와 아랫목에 눕히듯/관을 내린다/…/맞지 않는 옷을 입고도 오늘은 신경질이 없어라/난생처음 오라를 지고도/몸부림이 없어라('나무 금강로켓'부분)

④기일(忌日):제상은 그의 돌상,/뼈에 붙은 젖을 물려주고/숟가락 쥐여주고/늙은 집은 이제 처음부터 다시 그를 키우리라('음복'부분)

⑤ …그 이후:나는 그들이 검은 기억 속으로 파고 들어와/끝내 무너지지 않는 집을 짓고/떵떵거리며 살기 위해/아주 멀리 떠나버린 것이라 생각한다('떵떵거리는' 부분). 하여 죽음은, 산 자의, 아니 죽음에 채 이르지 못한 자의 영역이다.(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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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16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에 놀라 클릭했다는 --;

로쟈 2007-09-16 19:32   좋아요 0 | URL
제 탓은 아닙니다.^^;

LAYLA 2007-09-16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 좋아요. ^^ 로쟈님 덕택에 알았네요

로쟈 2007-09-17 00:27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

수유 2007-09-16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도 시지만, 신형철의 '말들의 쓸쓸한 율동'이란 표현에 무릎을 치네요. 제가 너무 옛시인속에 살았나 봅니다...좋은 시인들이 있었네요..겨울방학때쯤 한번씩은 읽어야겠습니다..신형철의 평론들도..

로쟈 2007-09-17 00:28   좋아요 0 | URL
신형철 평론집은 여름에 나온다고 했었는데 조금 늦어지는 모양입니다...
 

오랜만에(처음인가?) 가을에 읽을 시집들의 리스트를 만들어보았다(http://blog.aladin.co.kr/mramor/1574630). 최근에 시집을 낸 다섯 명의 젊은 시인들을 먼저 꼽아봤는데, 선정에 도움을 준 리뷰들 가운데 하나를 일단 옮겨놓는다(기회가 닿으면 다른 리뷰도 옮겨놓을 것이다). 아예 '로쟈의 시읽기'란 카테고리를 새로 만들려고 하다가 일을 더 벌이기 전에 이 정도에서 타협을 보기로 했다. 아래 리뷰는 작년에 '장자의 그림, 처남들의 연주:문태준, 황병승론'이란 평문으로 창비의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단한 젊은 문학평론가 김종훈씨의 글이다(http://www.culturenews.net/read.asp?title_up_code=001&title_down_code=002&article_num=8339). 성윤석의 시집 <공중묘지>(민음사, 2007)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컬처뉴스(07. 09. 05) 구름이 가까이 오면 어떻게 하세요?

칸딘스키의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는 여전히, 갖가지 색의 고유한 속성을 말하는 대목이 가장 흥미롭다. 그에 따르면 노랑은 예민하면서 밖으로 정열을 발산하고 빨강은 내부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정열을 분출하고 파랑은 결코 인간적이지 않는 슬픔의 배음을 띤다. 그리고 흰색과 검정색은 침묵을 거느린다. 시작하기 전의 무(無)이며 가능성으로 차 있는 침묵이 흰색이고 해가 진 후의 무(無)이며 가능성이 없는 침묵이 검은색이라고 한다. 그러니 침묵은 탄생 이전과 소멸 이후의, 역사 이전과 이후의, 말하기 전과 말한 다음의 세계이다. 하얀 침묵의 세계를 탐사하는 과학자와 검은 침묵의 세계를 추측하는 신비주의자의 딜레마는 말을 가지고 침묵의 세계를 더듬는다는 것이다.  

죽음을 말하는 행위는, 침묵을 말한다는 것과 같아서 우스꽝스럽다. 우리는 기껏해야 신비주의자의 옷을 입고, 죽음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그 옆에서, 겨우, 죽음을 말한다. 두려움에 가득 찬 흉내내기는 진실에 닿지 못한다. 그러나 그 흉내내는 말의 고통이 거짓일 수는 없다. 고통을 겪는 것은 증상이 아니라 증상을 가진 환자이며, 환자의 고통 또한 다시 가족에게로 전환되기도 한다. 환자가 고통스럽다고 가족의 고통이 거짓일 수 없으며, 신경증 환자가 고통을 겪는다고 해서 분석자가 고통을 겪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말을 가진 자, 생각을 가진 자는 흉내를 내는 것으로 고통의 진실에 닿는다.

성윤석의 시집 『공중묘지』의 이곳저곳은 그가 지금 벽제 용미리 화장터의 공원 관리를 직업으로 삼고 있으며, “어린 아우”가 몇 해 전에 세상을 떴고, 어머니는 그 충격에 정신병원에 자진해서 들어갔다는 정보를 일러준다. 관념으로 죽음 옆에 있는 자가 아니라 실질적인 죽음 옆에서 살고 있는 자가 성윤석이다. 그러나, 성윤석의 시집을 펼쳐 보고 있는 이유가 이 실질적인 그의 이력 때문만은 아니다.

귓속 돌이 떨어져 나가고 만 이석증을
앓고 난 이후부터 앉아서 자는 날이 많아졌다.
미쳐버리고 싶은데, 미쳐지지 않는 늦은 밤 사무실의
사십 대처럼 빙빙 돌지는 않는데
가끔 뒤로, 뒤로,
정신의 불빛이 나가 버리곤 한다.
세상의 도움이란 이제 없는 것이다.
나에겐 정리되고 끝나는 일이란 없었다.
구름이 가까이 오면
발을 대보려 했을 뿐.
그곳에는 어떤 사람의 내력이
고여 있을까.
앉아서 자는 날엔 늘 귓속 돌이 떨어져 나간
자리가 궁금해졌다.
― 「1과 8 사이엔 무엇이 있나」 부분

 “구름이 가까이 오면 / 발을 대보려 했을 뿐”. 구름이 가까이 오는 사건과 발을 대보는 행위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그리고 왜 이 구절은 계속 여운을 남길까. 구름은 천상의 것, 발은 보잘 것 없는 지상의 것, 이 간극의 공명 때문일까. 이런 해석은 부질없다. 천상과 지상의 구도 설정은 구름이 가지고 있는 일상성과 발을 내미는 개별성을 모두 없애버린다. 중요한 것은 “발을 대보”는 행위의 생생함과 그 생생함 밑에 깔려 있는 논리적 맥락이다. 그렇다면, 죽음 옆에서 생활하는 자의 무력감이 “발을 대보”는 행위에 담겨 있다고 이해하는 것은 어떨까. 구름이 가까이 오는 사건은 자연스러운 일상의 풍경이며 “발을 대보”는 것은 구름과 소통하고자 하는 나의 행동이다. 평온한 삶을 그는 누리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행동은 구름과의 소통이면서 동시에 평온한 삶을 누리고자 하는 욕망의 표현인 것이다.

발을 대본다고 해서 평온한 삶을 누릴 수는 없기 때문에 무력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구름을 평온한 삶이나 가까이 있는 죽음과 동일시하는 것 역시 부질없다. 관습적인 알레고리를 벗어나는 지점에 『공중묘지』의 좋은 시들이 있다. 그가 “사내의 입술을 벌린 뒤 / 철 핀으로 양 입술의 속을 고정시킨다”(「일요일2」)라고 했을 때, 여느 시들은 시체의 입에 박힌 철 핀을 곧장 냉혹함과 잔인함의 뜻으로 환원시키지만, 그의 시는 그의 체험 덕에 독자의 시선을 말 그대로 한참동안 실제 시체 입술에 고정된 철 핀에 머물게 한다. 그러므로 저 구름은 삶이나 죽음이 아니라, 고개를 들면 보이는 하늘의 저 유유자적하는 구름 그 자체이다. 유사한 구절이 다른 시에도 있다.

삽을 들고 파고 또 파고 내려가도
이놈의 산마는 끝도 없이 내려가 버리고 말았네요.
나는 그만 포기했어요.
너무 뻔해서 같이 안 잔 여자처럼
그때까지 따라온 구름에 발이나 대보며,
산마의 뿌리를 딛고
다시 올라왔지요.
묘지들의 언덕엔 눈보라가
앞이 안 보이도록 날리고
언덕 위 나선의 끝 눈발 사이로
언뜻 산역 인부 하나가 삽을 들고
무덤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자신의 영화를 혼자서 돌리고
또 돌리는 실패한 영화감독처럼
― 자네 이제 묘지 관리인이 다 되었네.
칭찬해 두던 그 노인네는 은퇴해서도
이 묘지를 떠나려 하진 않아요.
죽은 자들의 아파트.
이런, 이제는 찾아오지도 않고
관리비가 연체된 분들이 너무 많아졌어요.
어디로 가 버린 걸까요?

모두들 구름 같은 분들이겠죠.
― 「죽은 자들의 아파트에 눈이 내릴 때」 부분

“그때까지 따라온 구름에 발이나 대보며”. 비슷한 구절이다. 그러나 그 울림은 서로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닌다. 앞 시 「1과 8 사이엔 무엇이 있나」에서 시적 주체는 이석증을 앓고 있다. 귓속에 돌이 떨어져 나가 어지러움증을 앓고 있는 병이다. 그는 결여된 인간이다. 완성의 의지를 보이기보다는 회복의 징후를 기다리는 이이기도 하다. 그에게 완성은 없다.(“끝나는 일이란 없다”) 체념 속에 빠져 있을 때 구름이 가까이 오고 그는 발을 대보려 한다. 이것은 소극적이며 슬프기도 한 의지의 표현이다. 전체의 체념의 정서를 배경으로 슬픈 의지는 단 한번 출현한다. 영웅적 과시가 아니라 병을 앓고 있는 이의 회복하고 싶은 욕망으로. 물론 발을 대본다고 해서 회복되지는 않겠지만.

반면 두 번째 시 「죽은 자들의 아파트에 눈이 내릴 때」에서는 자신의 이력을 파헤치려는 듯 삽을 들고 무덤을 파내려 간다. 그것은 의지의 표현이다. 그리고 산마의 뿌리를 딛고 다시 올라온다. 이것도 의지의 표현이다. 바탕에 깔려 있는 의지 사이에 “너무 뻔해서 같이 안 잔 여자처럼 / 그때까지 따라온 구름에 발이나 대보며”가 끼어 있다. 의지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체념의 정서가 짙다. 각각을 둘러싼 주된 정조를 벗어나는 지점에서 저 발을 대보는 행위는 이채롭다. 그가 빠져 있는 상념에서 그를 끄집어내는 동기는 자연스러운 구름의 흐름이다. 자연스러운 행위에 몸을 맡기는 행위는 쉬운 일이 아니라 자신의 세계에 자진해서 균열을 내는 고통스러운 일이다.  

욕망에 논리를 짜 맞추는 행위는 칩거 생활을 하는 것과 같다. 밖에서 타인의 말과 나의 말을 계속 섞으면 나의 말이 타인의 말과 닮아 간다. 반복이나 중첩이나 처세술이 이와 다르지 않으니, 칩거는 창조적 직관의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대개 칩거는 자폐와 망상을 불러온다. 칩거가 창조적 직관의 밑거름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가로막는 벽을 넘어 바깥과의 소통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시인에게 소통의 대상은 독자가 아니라 자연스러움이며, 시인을 가로막는 벽은 난해함이 아니라 시인의 이성과 논리가 잇대놓은 욕망의 사고체계일 것이다. 침묵으로 향해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에 몸을 맡겼을 때 언어가 고통의 진실에 가 닿을 수 있듯, 창조적 직관이 밑거름이 될 때 시인의 언어는 이성과 논리의 그물을 빠져나올 수 있다. 그것으로 시의 언어는 임무를 완성한다.(김종훈_문학평론가)

07. 09. 16.

P.S. 참고로 서울신문의 소개기사도 옮겨놓는다. 그의 시적 여정은 '극장이 너무 많은 우리 동네'에서 '무덤이 너무 많은 나의 일터'까지로 요약되는 듯하다.

서울신문(07. 08. 06) 이승의 끝에서 삶을 긍정하다

쇠뜨기, 바랭이, 쑥부쟁이가 무연묘(無緣墓)를 뒤덮었다. 비석도 상석(床石)도 없다. 활개도 축대(築臺)도 없다.10년이 지나도 찾는 이 없고, 묘적부에서도 지워졌다. 바람 불어 초록 풀씨 날리면 묘지는 수풀 속에서 형태마저 잃는다.‘더욱 버려져’ 마음 아린 무연묘에 시선을 주며 쓸쓸해하는 이, 성윤석(42) 뿐이다. 성윤석은 경기도 용미리 서울시립묘지 관리인 생활을 시작하고도 2년이 지나서야 놓았던 펜을 다시 들 수 있었다.25살 대학 4학년(1990년) 때 등단했고,31살(1996년) 때 첫 시집(‘극장이 너무 많은 우리 동네’, 문학과지성)을 냈던 시인. 두 번째 시집 ‘공중묘지’(민음사)가 나오기까지 11년이 걸렸다.

‘공중묘지’는 죽음으로 꽉 차 있다. 썩은 시체 눈알이 굴러 떨어지고, 시즙(屍汁)이 뚝뚝 흐른다. 몸에서 막 빠져나간 영혼은 ‘사랑해서 생긴 약점’(아내와 어린 자식들)이 맘에 걸려 세상을 떠돈다. 시집에 내리 깔린 죽음의 이미지엔 시인이 보낸 가혹한 시간이 더해졌다. 11년 동안 그는 신문기자와 공무원을 거쳤고, 사업에 실패했다.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동생이 죽었고, 충격받은 어머니는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몸의 평형기능을 상실하는 ‘양성발작성변환이석증’에 걸려 시인의 눈은 환상을 봤다. 지하철을 타면 두 다리가 공중에 붕붕 떴고, 눈 옆으로 꽃이 폈다. 밤마다 하얀 원피스 입은 소녀가 미간을 스쳐갔다. 묘지 앞에서 만난 시인은 “공포스러운 나날이었다.”고 회고했다.

묘지에 와서야 공포를 떼어내다
시인은 그 공포를 무심한 언어로 옮겼다.“어머니는 기절했으며 / 조문객들은 낄낄대며 술추렴을 했다”(‘아우가 죽었다’)고 썼고,“미쳐 버리고 싶은데, 미쳐지지 않는 늦은 밤”에 “가끔 뒤로, 뒤로 / 정신의 불빛이 나가 버리곤 한다”(‘1과 8사이엔 무엇이 있나’)며 전정기관 망가진 자신을 관조했다. 공포로부터 자신을 떼어내 객관화할 수 있었던 건 살아 움직이는 것 없는 공중묘지, 온갖 버려진 것들의 집결지에 와서야 가능했다.

“목매러 왔다 줄만 매달아 놓고 간 사람, 미혼모가 쓰레기통에 버리고 간 아이 시체, 묘지를 떠도는 애꾸눈 애완견…. 묘지의 살아있음이 눈에 보이면서 이야기들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죽음의 골짜기인 묘지에서 도리어 이야기는 살아나더군요.”

모든 사람이 무서워하며, 묘지 인부들마저 침 뱉으며 멀리하고, 까마귀떼만 날아오르는 공중묘지가 이제 시인에겐 일상이자, 밥을 벌고, 삶을 구하는 터전이 됐다. 늙은 산역 작업부가 “자네 이제 묘지 관리인이 다 되었네”(‘죽은 자들의 아파트에 눈이 내릴 때’)라고 할 만큼 ‘내공’ 쌓인 그는 죽음 가득한 행간에 생의 의지를 꼭꼭 숨겼다. 공중묘지는 죽어 떠도는 영혼이 마지막으로 의탁하는 안식처(‘공중묘지 6’)이자, 시체의 자양분을 찾아 산마가 무덤 밑으로 끝없이 뿌리 뻗는 곳(‘죽은 자들의 아파트에 눈이 내릴 때’)이다. 생명이 부글거리는 공간(‘알박기’)이다.

“아버지가 묻혀 있는 동그란 무덤 속 / 아버지의 살점을 자양분으로 / 살모사는 새끼를 낳자마자 죽고 낳자 죽고 / 두더쥐와 굼벵이와 들쥐와 구더기는 아버지의 / 평생 속고 속아 썩어 문드러진 가슴께에서 / 햇빛처럼 떨어지는 생을 향해 / 부글부글거리겠지.”(‘알박기’) 시인은 “이승의 끝인 공중묘지에서 삶을 긍정함으로써 신산한 인생들이 겪어온 아픔을 치유하고 싶었다.”고 했다.

묘지 관리인으로 활동하며 창작
‘공중묘지’에 실린 58편의 시적 밀도가 모두 균일한 건 아니다. 묘지 관리인으로 일하며 쓴 최근 시들(1부)의 압도적 정서에 비해, 과거 젊은 날에 쓴 시들(2∼3부)은 다소 성긴 게 사실이다. 그 간극의 차이를 시인은 “영화처럼 꿈꿀 수 있다고 믿었던 젊은 시절과 달리 지금은 인생의 속살이 찬란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성윤석은 용미리를 떠나지 않겠다고 했다. 죽음도 공포가 아닌 평생 붙들고 씨름하고픈 화두가 됐다. 온갖 ‘아름다운 이유’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저 바깥 세상, 그곳이야말로 거대한 공중묘지임을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이문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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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7-09-16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라 할말이 없네요..꼭 사서 읽어야겠습니다..

로쟈 2007-09-16 18:01   좋아요 0 | URL
막바로 삶의 '실재'로 초대하는 시들 같습니다...

2007-09-16 16: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16 17: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유 2007-09-16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저기 건드리는, 쿡쿡 쑤시거나 심장을 컥컥 막히게 하는 시들이라 읽으면서 너무 아프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로쟈 2007-09-17 00:29   좋아요 0 | URL
성긴 시들도 들어있다고 하니까 얼추 중화가 되지 않을까요?..
 

이번 가을에 읽을, 주로 최근에 나온 시집들 모음. 김행숙, 박상우, 성윤석, 송승환, 이영광, 황병승의 시집들(가나다순)...


12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이미 망한 생
박상우 지음 / 열림원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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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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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7일 (화)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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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김행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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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탄자배송
5월 7일 (화)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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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 묘지
성윤석 지음 / 민음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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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주문하면 "5월 7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07년 09월 16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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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종 데트르'는 알다시피 '존재 이유'란 뜻의 불어이다. 책마을 소식에 밝은 이라면 이번주에 출간된 김갑수의 '독서 오디세이' <나의 레종 데트르>(미래M&B, 2007)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이 책은 아직 손에 들지 못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낮에 학회에 가는 길에 서점에 들러보았지만 예기치 않은 놀라움, 혹은 발견의 기쁨을 가져다주는 책은 이번주에도 만나지 못했다(물론 대형서점이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다). 나올 만한, 나올 법한 책들만 몇 권 눈에 띄었다. 다소의 실망을 뒤로 한 채 이번주에는 책에 대한 책들이나 읽어볼까 마음 먹었다.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손에 든 책이 <장정일의 독서일기7>(랜덤하우스, 2007)이다. 그의 다른 책들과는 달리 한참 뜸을 들이다가 손에 들었다고 생각했는데(장정일을 들먹이니까 왠지 파란여우님이 생각나는군), 지난 7월에 나온 책이니 아직 한 계절도 지나기 전이다(초판 1쇄인 건 당연하겠고). 그의 책 <장정일의 공부>(랜덤하우스코리아, 2006)를 작년말에 구입했었으니까 1년에 한권씩은 사는 셈이다. 

비록 277쪽의 분량이 두껍다고는 할 수 없지만 10,000원의 정가도 왠지 저렴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전철에서 책을 읽으며 더욱 굳어졌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50권 이상의 책에 대한 알찬, 혹은 재미있는 리뷰를 읽을 수 있으니 그만한 비용은 들임직 하지 않은가(생각해보니까 일곱 번째 이 일기는 범우사가 아닌 랜덤하우스에서 출간됐다. 아마도 그의 '소속사'가 지난번 <공부>때부터 그리로 바뀐 모양이다).

 

 

 

 

가령, 2003년 4월 20일자부터 기록하고 있는 그의 일기에서 맨처음 다루어진 장준하의 <돌베개>(청한문화사, 1971) 얘기를 읽다 보면, 아직 읽지 않은 그의 책을 읽은 듯한 느낌을 갖게 되면서 한편으론 언젠가 읽을 책의 목록으로도 올려두게 되니 일거양득 아닌가. 이번에 검색을 하니 아예 <돌베개>(세계사, 2007)의 새로운 판이 얼마전에 나왔다는 사실도 알게 되고. 아울러 같이 언급되고 있는 광복군 친구였던 김준엽의 <장정 1,2>(나남, 2003)에 대해서도 메모해두게 된다(<장정>은 5권짜리 책이고 1,2권이 광복군 시절을 다룬다). 거기에 저자가 장준하에 대한 평가로 인용하고 있는 서중석의 <비극의 현대지도자>(성균관대출판부, 2002)까지 챙겨두게 되면 '독서일기'로 하는 공부는 소임을 다하게 된다.

 

 

 

 

그뿐인가. 장정일도 헌책방에서 읽었다는 전민조의 <가짜사진 트릭사전>(행림출판사, 1999)을 안 그래도 사진에 문외한인 내가 무슨 수로 알고 찾아서 읽겠는가(찾아보니 그의 책들이 댓 권 이상 출간돼 있다. 사진집인 만큼 도서관에서 편하게 대출해볼 수 있겠다). 하지만 책의 요점이며 요긴한 에피소드 등을 서너 쪽의 일기를 통해서 습득할 수가 있다. 예컨대, "상륙정에서 내려 바닷물에 무릎까지 바지를 적시며 뭍으로 걸어나오는 맥아더의 사진은 종종 인천상륙작전의 한 장면으로 우리들의 뇌리에 인상 깊게 남아 있지만, 사실 그 사진은 일본에 의해 필리핀을 쫓겨났던 맥아더가 필리핀을 탈환할 때의 사진이다."(18쪽) 같은 대목들은 '계몽적인' 효과를 갖지 않는가. 이런 사진을 또 '로쟈'는 찾아놓는다(로쟈의 레종 데트르인가?). 아래 사진이다.

 

이게 가짜라는 것인데, 실상은 좀더 '복잡'하다. "이 사진 역시 미군이 필리핀에 상륙하는 역사적 장면을 놓친 <라이프>지의 기자를 위해 맥아더가 군함을 동원해 상륙 당시를 다시 연출한 사진이다. 필리핀을 쫓겨나면서 '나는 돌아오리라'는 호언을 남겼던 맥아더로서는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이 말했던 바를 실천했음을 증명해 놓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또 맥아더와 인천상륙작전에 관한 책들을 점검해놓는다. 한 가지 더 놀라운 사실. "스페인 내란 당시 프랑코 파의 총탄을 맞고 쓰러지는 인민전선 측의 병사를 찍은 로버트 카파의 저 유명한 사진이 연출된 것이라는 사실은 작은 충격이다."(19쪽) 지난봄 로버트 카파 전시회에서도 본 바로 아래의 사진이다(음, 이 '순간의 감동'이 '조작된 감동'이라는 얘기로군).

그밖에도 재미있는 내용들은 계속 이어진다. 그 재미는 주로 고미숙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그린비, 2003)처럼 많이 알려진 책이 아니라 이병주의 <대통령들의 초상>(서당, 1991) 같이 잘 알려지지 않은, "운 좋게 만나지 못했다면 있는 줄도 모르고 넘어갈 뻔한 기서(奇書)"(21쪽)들을 다룰 때 배가된다(장정일이 왜 '기서'라고 부르는지는 직접 확인해보시길).

시인이자, 알고 보면 출판인 출신의 방송인 김갑수의 <나의 레종 데트르>에서 독후감은 <장정일의 독서일기>처럼 연대순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주제별 분류를 따른다. 아직 구입하지 않았기에 알라딘의 맛보기만을 옮겨오면 이런 식이란다(저자 자신이 58년 개띠이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한두 번 만난 인연밖에 없지만 어쩐지 '희경아'라고 부르고 싶은 작가 은희경이 펴낸 <마이너리그>.(...) <마이너리그>는 58년 개띠 네 친구들의 25년간에 걸친 성장소설이다. 이 글을 쓰는 내가 바로 58년 개띠이니 그 시간의 흐름을 체험적으로 추적해나가는 게 가능하다.(...) 이 소설의 가장 우둔한 독법은 적어도 자신의 삶은 만수산들과는 다르게 진지하고 치열했노라고 자위하는 일이다. '이보다 더 한심할 수는 없는' 인물들에게서 위안 받는다면 작가의 교묘한 조롱에 말려 들어가는 것일 테니까. 다음으로 우둔한 독법은 개띠들의 초상을 잘못 그렸다고 작가에게 항변하는 일이다. 의외로 신문서평에 그런 지적이 많이 보인다. 한데 작가가 언제 58년 개띠의 대표선수를 선발하겠다고 했나.('들어라, 58년 개띠들아' 중에서) 

그리고 한겨레 기자를 역임한 언론인 차기태의 <고전, 내 마음의 엘리시움>(필맥, 2007)은 제목이 말해주듯이 '고전 읽기'라는 점에서 앞의 두 책과는 다르다. "성서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부터 알베르 카뮈, 존 스타인벡의 소설까지에 이르기까지 오늘날에도 깊은 울림을 전하는 서양고전에 대한 감상과 해설을 담은 책"이라고 소개돼 있다. 장정일의 책을 사들고 나오다가 신간코너에 있길래 잠시 들춰본 책이다. 역시나 독서일기류의 책들에 주목한 중앙일보의 책소개를 잠시 인용해본다.

독서일기류의 책들이 눈에 띄는 한 주였습니다. 저마다 삶에 울림을 줬던 책들을 소개하고, 현실과 접목시켜 해설하고 있습니다. 그 중 <고전, 내 마음의 엘리시움>(필맥)은 기자 출신인 저자 차기태씨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 플라톤의 『국가론』, 루소의 『에밀』 등 서양 고전의 감상과 해설을 담아낸 책입니다. “수 많은 출판사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진정한 지혜로 초대하는 책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책은 오히려 영혼의 칼을 무디게 만들 뿐이다”는 게 저자가 고전에 빠져든 이유랍니다. “잡초같이 많은 서적 중에서 지혜의 샘물이 되고 영혼의 양식이 되는 것은 결국 고전뿐”이라는 거지요.

 

 

 

 

거기에 덧붙여야 할 문제의식은 물론 믿고 읽을 만한 고전 번역서들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겠다. 원로 종교학자 정진홍 교수의 <고전, 끝나지 않는 울림>(강, 2003)은 유일하게도 다른 책들과 달리 몇 년 전에 나온 책이다. 최근에 나온 독서일기를 다루면서 굳이 거명한 것은 예전에 문예지에 연재될 때 한번 읽었던 글들을 다시 한번 훑어볼 생각에서이다. 책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8편의 고전 가운데 <햄릿>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내가 이번 학기에 강의해야 하는 작품들이어서 문득 생각이 났다.    

끝으로 지난주에 출간된 <오픈북>(을유문화사, 2007)은 "30년째 유력지 '워싱턴 포스트'의 서평란을 이끌고 있는 퓰리처 상 수상 작가이자 서평가 마이클 더다가 유년 시절부터 스무 살까지의 삶을 자신이 읽었던 책들을 통해 회고한 일종의 회고록. 노동자 집안의 아들에서, 우등생으로, 문학 소년, 명문대 장학생이 되기까지의 책과 연계된 삶을 그리고 있다."는 책이다. 물론 나는 더다란 이름도 그의 서평도 읽어본 적이 없지만(국내에 소개된 적도 없는 듯하고) 이런 류의 독서일기는 읽어볼 용의가 있다.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07. 09. 14. 

P.S. <고전, 끝나지 않는 울림>을 펴낸 출판인의 소감도 읽은 기억이 나서 옮겨놓는다. 한겨레(05. 07. 01)에 '권위에서 비껴난 고전읽기'란 타이틀로 게재됐던 기사이다.   

정진홍 선생은 흰 고무신을 신고 아파트 앞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정년퇴임을 앞두고 집 인근에 작업실 용도로 마련하셨다는 자그마한 아파트는 단정했다. 책과 책상, 손님맞이용 탁자와 의자가 다였다. 대학시절 선생의 연구실로 찾아갔을 때 늦가을 오후의 어둑함 속에 불도 켜지 않고 앉아 계셨던 모습이 아마도 이런 정갈함이었지 싶었다. 강출판사로 복귀해서 대책 없는 암중 상태를 하루하루 꺼가고 있는 게 보기 그랬던지 비평하는 후배가 문예지에서 읽은 정진홍 선생의 글 이야기를 꺼냈던 게 그 얼마 전이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 <아Q정전> <햄릿> 등등의 고전 문학작품에 대한 에세이라고 했다. 그러려고 그랬겠지만 마침 도서관이 코앞에 있었다. 모처럼의 일다운 일이었다. 그러나 웬걸, 여덟 편의 글을 문예지에서 찾아 복사하는 데는 한나절도 안 걸렸다. 이젠 글을 천천히 읽어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백지상태의 멍함이 그리도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선생의 글은 고전작품에 대한 찬양과 독서의 권면이 아니었다. 젊은 시절 나는 이런 작품들을 힘들여 읽고 그 감동 속에서 인간과 세계에 눈떴다, 당신들도 제대로 된 사람이 되려면 이런 작품들은 반드시 읽어야 된다, 라는 흔한 시나리오의 계몽적인 목소리가 거기에는 없었다. 그것은 차라리 고전이라는 권위의 성채에 대한 회의와 부인의 몸짓에 더 가까운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혼돈 속에서 처음 입을 가르고 나오는 물음들의 산이었다. 카라마조프 이야기만 나오면 왜 다들 알료사고, ‘대심문관편’인가. 내 젊은 날의 상처입고 궁핍한 자존심이 가닿은 대목은 전혀 다른 것이 아니었던가. 처음 읽었을 때 <마담 보바리>의 그통속성이라니. 내게 <모비 딕>을 권했던 선배는 정말 작품을 읽기는 읽었던 것일까. 미친 사람을 마음껏 착취하고 조롱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돈 끼호테>는 달리 무엇이란 말인가. 물론 역설이었다.

선생은 거듭 이들 작품을 읽었고, 그 우연하고 해명하기 어려운 반복의 사건 속에서 각 작품의 고전다움을 자신만의 언어로 새롭게 발견하고 그려내고 있었다. 좌절한 독후감의 흔적들이 한 종교학자의 고백의 언어에 실려 고전의 열린 지평을 향해 거슬러오르는 광경이 거기 펼쳐져 있었다. '필독서’라는 권위의 언명에서 비껴나 고전과 젊은 정신들의 다양한 만남을 자극할 가능성이 그렇게, 거기 함께 있었다.

반년 넘게 일을 놓고 있었던 터라 더더욱 어깨에 힘이 들어갔던가 보다. 여덟 편의 글마다 ‘나를 움직인 대목들’을 넣자고 제안해놓고 보니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진홍 선생은 작품들을 하나하나 다시 읽으면서 인용문을 뽑고 거기에 일일이 코멘트를 붙였다. 두 달 남짓 걸렸고 원고량이 350매 가량 되었다. 물론 별도의 원고료를 드리지는 않았다. 작품마다 관련 사진 자료를 찾고 그걸 편집해 넣느라 없는 손발이 바빴다. 그렇게 찾은 사진 자료가 아까워서 본문은 2도 인쇄를 했다. 제목을 정하느라 선생을 괴롭힌 수차례의 전화는 결국 “알아서 하시라”는 체념 섞인 대답 끝에 지금의 다소 계몽적이고 권위적인 제목이 되고 말았다.

46판 양장본으로 만들어 책에 고전적 품격을 불어넣어보려던 생각은 본문 필름에 표지 디자인까지 다 나온 상태에서 제본비라는 암초를 떠올리는 순간 좌초했다. 그 덕분에 본문용지 95그램, 380쪽의 두툼한 책은 페이퍼백이라는 몸에 꼭 죄는 옷을 얻어 입고 말았다. 마음만 바쁜 시절이었다. 고전을 ‘다르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만나고 질문하는 이 책의 고유한 자리를 편집이나 출간 이후의 과정에서 잘 드러내지 못했다는 자책이 좀체 끝나지 않는 아쉬움으로 남아있다.(정홍수/강출판사 대표)

P.S.2. 이 페이퍼는 이번주에 즐찾 1300명을 넘어선 데 대한 '자축'과 '위로'의 의미로도 작성됐다(오늘로써 1303명이다). 1200명을 넘어선 게 지난 7월 초엽이었던 듯한데, 이런 페이스라면 올 겨울에는 1500명을 돌파할 수도 있겠다(총 방문자는 30만명을 넘어서고). 이 서재의 '변화'를 말해주는 다른 지표가 없으니 내가 참조할 수 있는 건 그런 수치들뿐이다. 그때쯤이면 '고마해라'는 소리들이 터져나오지 않을까? 레종 데트르가 다하면, 박수칠 때 떠나도록 해야지.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우기엔, 날이 너무 궂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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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즐찾의 의미
    from 아프락사스, 자유를 찾아서 2007-09-15 10:58 
      로쟈님의 페이퍼를 읽다가 든 생각. 현재 즐찾이 1300까지 늘어났다시면서 앞으로 몇백이 더 늘어나면 스스로 떠나야하지 않을까 생각하시는 듯 하다. 한쪽으로 쏠리는건 바람직하지 않다시면서 민주주의를 위해 떠나는게 좋을거라고. -_- 해서 로쟈님의 페이퍼에 댓글을 달다가 즐찾이 뭘까에 대해 생각해봤다. (개인적으로 로쟈님이 떠나시는건 원치 않는다. 떠나고 말고야 로쟈님의 선택이지만, 지금 떠나시겠다는 것도 아니지
 
 
하이드 2007-09-15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김갑수의 레종데트르 보관함에 담아두었어요. '오픈북'은 다른 동네 서점에서 하는 서평단에 달라고 졸라 놓은 상태구요. 독서일기 중에는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일기' 같은 책이 제 취향에는 가장 맞더군요. 고전 리뷰 책 중에는 해럴드 블룸 책 정도 읽어봤나봐요. 에피소드 관련 책으로는 앤 패디먼의'서재결혼시키기' 가 제일 좋았구요. ^^

로쟈 2007-09-15 01:45   좋아요 0 | URL
<서재 결혼 시키기>는 손에 안들게 됐는데(제 서재만 문제라서^^;) 좋은 평들을 많이 듣네요...

심술 2007-09-15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돌아오리라라는 말을 들으니 갑자기 맥아더랑 터미네이터 아놀드랑 겹쳐 보이는군요. 이병주 대통령들의 초상은 딱하게도 알라딘엔 없네요.

로쟈 2007-09-15 01:47   좋아요 0 | URL
독서일기만 읽으셔도 충분할 거 같습니다. 이병주의 책은 아마도 도서관이나 헌책방을 둘러봐야 할 것 같고요...

전자인간 2007-09-15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버트 카파의 저 논란스러운 사진이 조작이었다는 게 확실히 밝혀진 것인가요? @.@ '혐의'만 있지, 아직 확실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즐찾 1300 축하드리며, 로쟈님의 레종 데트르가 다하는 날이 오지 않기를 빌어 봅니다.

로쟈 2007-09-15 08:46   좋아요 0 | URL
조작여부가 설인지, 사실인지는 저도 모르겠구요, <가짜사진 트릭사진>의 저자는 그리 알고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레종 데트르가 존재하는 한, 마감도 있는 것이죠.^^; 축하는 감사합니다...

마늘빵 2007-09-15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1500명이 안되게 로쟈님의 서재 방문중단운동이라도 벌여야하는거에요? ㅋㅋ
알라딘에 이렇게 많은 서재지기들이 있는줄 몰랐네요. 1300명씩이나. 헐. 축하해요~!

로쟈 2007-09-15 09:42   좋아요 0 | URL
사실 저명 서재인들이 활동을 끊으면서 그리된 감도 없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도 한쪽으로 쏠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고 쫓겨나기 전에(도편추방법이라고 있잖아요) 제 발로 나가는 게 모양새가 나을 거란 생각은 듭니다...

마늘빵 2007-09-15 09:48   좋아요 0 | URL
글쎄요, 다른 분들이 활동하지 않으시는 것에 대해 즐찾숫자가 많다고 하여 로쟈님이 책임을 떠안는건 아닌거 같습니다. 물론 더 많은 분들이 활동하고, 좋은 글 써줬으면 하는 바람은 저도 언제나 갖고 있고, 예전에 좋은 글 올리셨던 분들이 돌아오셨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그렇다고 현재 있는 분이 다른 분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해 떠나는건 아닌거 같아요.

로쟈 2007-09-15 10:14   좋아요 0 | URL
우회적으로 말씀드린 것이기도 한데, '로쟈'라는 이름이 유명세를 탈수록 제가 한편으론 '고립감'과 '배신감'을 느끼거든요(요즘엔 나이도 느껴지고). 독서인들의 자발적인 품앗이를 애초에 기대했던 것인데 이게 별로 매력있거나 보람있는 일로 여겨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하긴 저부터도 정신과에 가보란 얘기를 주변에서 들으니까요)...

마늘빵 2007-09-15 10:57   좋아요 0 | URL
꼭 비틀어 보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죠. 로쟈님의 무료 페이퍼를 아직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지만, 무난히 읽을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보는 편입니다. 저 같은 사람들도 많을테고. 도움받는 사람들은 조용히 있는 반면, 여기에 어떤 악의적인 의도가 있다고 비틀어 보는 사람들은 떠들기 마련이죠. 너무 주변의 소리에 신경쓰지 않으셨으면 해요.

2007-09-15 1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15 1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7-09-15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화- 즐찾1300 대단하세요 ^^

(그럼 로쟈님의 즐찾 1300에 부쳐, 라는 새 페이퍼를 작성해야 하나.. 호홋-)

로쟈 2007-09-15 13:48   좋아요 0 | URL
사실 알라딘에서만 '대단한' 수치죠.^^; 유명 블로그들에 비하면 아직 '동네' 수준이고요...

mong 2007-09-15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픈북...읽고 있는데 추천할 만하더군요
환경에도 불구하고 책을 먹고 자라는 저자의 이야기도 와닿고
희망의 인문학도 떠오르구요
워낙에 글을 잘 쓰는 이라 그렇겠지만

로쟈 2007-09-16 00:48   좋아요 0 | URL
30년째 서평란을 맡고 있을 정도라면 저도 무슨 '비결'이 있을 거라고 봅니다...
 

알라딘에는 '남녀관계'라는 도서분류 카테고리가 있다. 주로 남녀간의 이런저런 차이와 연애술에 관한 책들이 이 범주에 속하는데, 부동의 베스트셀러는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이다. 거기에 자칭 '연애박사'쯤 되는 듯한 송창민씨의 <연애 교과서> 등 몇 권이 상위권에 랭크돼 있다. 요즘 대학생들이 이런 책도 읽는구나, 싶었던 책이다.

하긴 젊은이들에게 취업과 함께 가장 중차대한 관심대상인 '연애' 문제에 있어서 마땅히 권장할 만한 책이 없다는 것도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연애와 결혼에  관한 '고전'이자 '바이블'이라는 마거릿 켄트의 <연애와 결혼의 원칙>(황금가지, 2007)에 눈길이 가는 이유이다(전세계적 베스트셀러라는 책이 이제서야 번역된 게 신기하다. 하긴 아마존의 평은 극과 극이다). 물론 내가 읽을 건 아니고 주변의 미혼 여자후배들에게 권해볼까 한다(원제는 '당신이 원하는 남자와 결혼하는 법'쯤이군). 알라딘의 압축적 소개와 함께 이번에 내한한 저자의 인터뷰기사를 옮겨놓는다. 책의 내용을 대략 어림할 수 있다.

연애와 결혼에 관한 책 가운데 부동의 고전으로 평가 받으며 20년간 미국을 위시한 전 세계 36개국에서 베스트를 지켜온 책. 1984년 초판이 발행된 후 파격적이고 솔직한 내용으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으나 세월과 함께 논란은 명성으로 대체되었고, 한 세대가 지난 오늘날까지 연애서의 고전으로 불린다.

한겨레(07. 09. 12) "여성의 지적 매력 절대 숨기지 마라”

“본인이 똑똑하다는 사실을 숨기려들지 마세요. 예쁜 얼굴은 시간이 지나면 늙고 주름지지만, 지성만은 절대 변하지 않고 여성을 매력적으로 만듭니다.”

‘결혼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연애와 결혼의 원칙(How to marry the man of your choice)>의 저자 마거릿 켄트(65)가 자신의 책 한국어판 발간을 맞아 한국을 찾았다. 84년 출간 뒤 16주 연속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 책은 매년 쇄를 거듭하며 23년간 연애서의 고전으로 자리잡았다. 래리 킹 라이브 등 300여개의 텔레비전 쇼에 출연하며 미국의 명사로 자리잡은 그녀는 지금까지도 데이트 코칭과 결혼에 관한 강연과 워크숍을 꾸려오고 있다.

11일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연애를 위해 첫째로 지적 매력을 감추지 말 것, 둘째로 남성의 자존심을 잘 추어올려 줄 것”을 주문했다. 여기서 여성의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 “아무리 못생겼어도, 당신이 미스 유니버스보다 예쁘다고 생각하는 남자가 두 명 이상은 있죠. 많은 남자가 아니라 딱 한 명을 찾는 것이잖아요?”

그 ‘한 명’을 찾았다면, 사랑에 빠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이 여성이 가진 가장 섹시한 신체부위일까요?” 하고 말문을 연 그는 “다름아닌 귀”라고 답한다. 남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부드럽게 격려하는 여성에게 끌린다는 것이다. “이상적인 남편감, 부인감은 백 명에 한 명 꼴로 있어요. 문제는 당신이 결혼하기 적절치 않은 사람인지 알아보기 위해 6개월씩 연애를 한다면, 100번째 상대를 만나기 위해선 50년이 걸린다는 거죠. 이 책은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당신을 바꾸라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는 남자를 찾기 위한 불필요한 수고를 덜자는 뜻에서 쓰여졌습니다.”

그는 “책이 효과가 있다는 증거로써 남편을 늘 동행하고 있다”며 함께 온 남편을 소개했다. 그는 심리학자였던 첫남편과 사별한 후, 마흔살에 두번째 남편과 만나 사랑에 빠졌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25년째 이어오고 있다. “출간 후 가장 많이 받아온 질문은 정말 효과가 있느냐는 거였죠. 타임워너사에서 책을 출판했을 때, 2년 안에 결혼 못하면 돈을 다시 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베스트셀러가 된 뒤, 환불해 준 것은 단지 0.02% 뿐이었어요.”

<연애와 결혼의 원칙>은 20여년 동안 세계 36개국에 번역됐으며, 미국에서 3번째 개정판이 2005년에 나왔다. 이 책은 얄팍한 연애기술을 교습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신의 매력을 깨닫고, 남자의 마음과 행동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라는 ‘인간관계의 일반원칙’에 충실하도록 충고한다. 이 책이 무수한 아류와 달리 스테디셀러로 살아남은 원인이기도 하다.

그는 “결혼중개업체나, 인터넷 채팅 등 어떻게 만나는지는 달라지지만, 사랑에 빠지는 법은 20여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며 “한국에서도 30살에서 35살에 이르는 여성들이 결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들었다. 연애와 결혼은 만국공통의 문제”라고 말한다. 또한 “똑똑하고 착하고 능력있는 여성들이 결혼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남자를 잘 모르기 때문”이라며 “결혼하길 원한다면 많은 남성들을 만나고, 또 남성들이 거절당할까 두려워하지 않도록 친근감을 표시하라”고 조언한다.(글·사진 정유경 기자)

07. 0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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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9-14 09:02   좋아요 0 | URL
어젯밤 '연애와 결혼'이란 제목으로 페이퍼를 썼는데, 이런 우연이. :)

비로그인 2007-09-14 09:30   좋아요 0 | URL
로쟈님과 텔레파시? ㅎㅎㅎ

로쟈 2007-09-14 12:41   좋아요 0 | URL
우연은 아니고요,^^ 아프님 페이퍼를 제가 봤습니다. 기사를 옮겨놓을 생각을 한 건 그보다도 더 먼저인데, 알라딘에 퍼오신 분이 없길래 손품을 팔았습니다...

비로그인 2007-09-14 14:21   좋아요 0 | URL
로쟈님 딴소린데요,
바뀐 대문 사진 맘에 들어요 :)

웃음이 시원- 해서 좋아요. 진짜 로쟈님도 저렇게 웃으실까? ㅎㅎ

로쟈 2007-09-14 14:22   좋아요 0 | URL
저로선 드문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