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적할 때 볼 만한 영화 가운데 <글루미 선데이>(1999)가 있다(주제가 뮤비는 http://www.youtube.com/watch?v=N2fGWQKbX68). 오늘 같은 날 보거나 듣기 좋은 헝가리 영화이고 주제가이다. 한데, '글루미'라는 게 영화 제목 이상의 '유행어'라는 건 오늘 알았다. 우연히 담비에서 읽은 기사가 '글루미 제너레이션'을 다루고 있었던 것(http://www.dambee.net/news/read.php?section=S1N5&rsec=&idxno=5894). 알고 보니 지난 봄에 TV에서 이 '우울한 세대'를 기획특집으로 다루기도 했었다(알라딘만 드나들다 보니, 세상 물정에 까막눈이 될 때가 있다!). 이 대학원신문의 기사와 함께 (언제나 앞서가는!) 마케팅 기사를 같이 옮겨놓는다.  

동국대 대학원신문(143호) '글루미 제너레이션'이 뜬다

「어느 여자가 인사동의 골목들을 지난다. 그녀의 왼손에는 따뜻한 커피가 들려 있고 오른손엔 가벼우면서도 조그만 디지털 카메라, 귀에는 목소리 굵직한 래퍼의 웅얼거림을 전해주는 이어폰이 꽂혀 있다.」 ‘그녀’에겐 가까운 사람의 체온, 시선, 목소리를 대신할만한 것들이 모두 갖춰져 있다. ‘그녀’는 ‘우리’보다 ‘혼자임’을 사랑하고, ‘우리의 관계’보다 ‘나’에 집중한다. 유행처럼 ‘그녀’를 닮은 ‘그들’이 늘어나고 세상은 그들을 글루미족(Gloomy 族)이라고 부른다.



글루미 제너레이션(Gloomy Generation), 이 새로운 세대는 이름 그대로 우울하기보다 ‘우울함을 즐기는 세대’이다. 이들을 가리켜 글루미족(Gloomy 族) 혹은 나홀로족(族)이라 한다. - 결혼이라는 틀에 자신을 맞추기보다 이상과 일, 능력을 더욱 중요시 여기는 싱글족(Single 族)과는 분명 구분되어야하는 개념이다. 싱글족(Single 族)은 결혼이라는 체제에 묶여 자신을 가두기보다 독신을 고집하면서 자신의 이상을 이루어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반면 글루미족(Gloomy 族)은 외로움과 고독을 고통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즐기는 것으로 여기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 한 방송사의 아침 프로그램이 대인관계연구소와 함께 진행한 설문 조사에서 484명 중 60%를 차지하는 291명이 자신이 글루미 제너레이션(Gloomy Generation)이라고 답했다. 많은 사람들이 우울함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Internet)의 사용이 증가하고 DMB 단말기, MP3등의 기기들이 등장하면서 혼자만의 시간도 무료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거기다 개인주의가 발전하면서 현대인들에게 외로움과 우울함은 일상이 되었고 이제 사람들은 외로움에 몸부림치며 고독에 괴로워하기보다 오히려 즐기기로 했다. 글루미족을 위한 마케팅이 블루 오션으로 환영받는 세상이 된 것이다.



우울함을 즐기기

장기화된 경기 침체, 실업률의 증가 등으로 사회 전반에 우울함이 형성됐다면 우울함은 자신감 저하, 의욕 상실, 대인기피증을 가져왔다. 어떤 의사는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표현했다. 현대인의 다수에서 흔히 발견되는 증세라고 보는 것이다. 감기를 방치하면 폐렴으로 발전되어 생명을 위협하듯 우울증도 가볍게 여기고 그냥 지나치면 누구에게든 치명적일 수 있다. 게다가 우울증 환자의 15%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다니 이는 더욱 심각한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떠한가?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다. 인구 10만명당 26.1명, 교통사고 사망률 1위를 달리는 우리나라에서 교통사고 사망자의 1.5배에 달한다. 그야말로 우울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세상을 살고 있는 셈이다.

멀지 않은 과거엔 우울증에 걸려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하면 사람들이 손가락을 빙빙 돌려가며 수군거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울함을 숨기고 나아가 우울증에 걸린 자신을 자학하기도 했다. 2005년 직장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조사에서 설문에 응한 2475명의 59.8%가 우울증을 경험하거나 치료했다고 대답했다. 현대인에게 우울증은 아프면 약을 먹고 치료해야 하는 일반적인 질병이 된 것이다. 소수에게 국한되었던 외로움과 고독이 보편적으로 확대된 이런 현상은 글루미 제너레이션(Gloomy Generation)의 등장을 보다 의미있게 한다. 글루미족은 우울함을 내면에서 끄집어내어 삶의 한 면으로 인정하고 극복해야할 대상으로 인정한다. 숨기기보다 우울함 자체를 즐기는 고독으로 대체함으로써 우울증을 이겨내는 것이다. 혼자있는 시간을 보내면서 나만의 감정과 느낌에 집중하고 내 외로움을 통해 나를 돌아보는 법도 배운다. 이렇게 보낸 시간이 다음의 일상을 준비하는 에너지가 되는 것이다.

글루미족은 우울함에 도전장을 던진다. 고독한 시간에 쓸모없는 ‘나’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온전히 ‘나’를 위해 준비된 시간에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법을 찾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글루미족의 우울함 극복기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가 될 것이다.

진화된 개인주의

「점심 메뉴를 고르면서 상대방의 취향이나 입맛을 배려해가며 식사를 하는 것보다 혼자 먹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다. 전시회 관람을 좋아하는 친구와 일정을 맞추기 위해서 골목길 산책을 좋아하는 내 취향을 버릴 바엔 과감하게 혼자 여행을 떠난다.」

글루미족이 추구하는 건 절대 자유이다. 어느 누구의 침해도 용인할 수 없는 나만의 절대적인 자유를 위해 그들은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포기한다. 직장 상사가 오전에 부부싸움을 하고 한나절을 찡그린 얼굴을 하고 있어도 내가 뭘 잘못했을까하며 자존감에 상처를 내는 일은 글루미족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 조율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거부한 그들은 이미 타인과의 소통 역시 차단한 것이다.

타인과의 소통은 단순히 타협과 통제, 절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또한 완전한 소통은 존재하지 않는다. 음성을 통해 표현된 생각을 한 번에 정확하게 이해하고 수긍하는 것은 좀처럼 힘든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울림을 통해서 그 사람과의 벽을 허물고 거리를 좁힌다. 글루미족에겐 이 어울림이 껄끄럽고 부담스럽다. 혼자가 편안하고 익숙한 이들은 다른 사람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는 일이 어색하기만 하다.

예전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기애(自己愛)를 구현했다면-자기 가치의 고양(高揚)을 위해 타인의 확인과 인정,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함-현대의 글루미족은 자신만의 세계에 구축된 자기애(自己愛)에 치중한다. 거울 속에 비치는 아름다운 나의 모습에만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내 거울을 훔쳐보며 혀를 차건 말건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마음상함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절대 자유를 얻기 위해 당당하게 자신을 지키고 형성해나갈 수 있다는 것은 저주라기보다는 축복이다.

하지만 사회가 존재하기에 인정받는 개인이라면 타인과의 소통이 없는 삶을 과연 뭐라고 해야 할까? 당당하다 못해 도도해 보이기까지 한 이 완벽한 개인주의를 변화된 사회의 치부(恥部)로 인정하고 묵인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사회 안에서 자립해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아예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연 개인주의가 도시의 세련됨과 맞물려 그럴듯하게 포장되었다고 해서 매력적인 부메랑을 얻은 것을 기뻐해야만 할까?(박수령 동국대학원신문 편집위원)

한겨레(06. 12. 10) 마케팅, 우울한 현대인을 겨냥하다

지난 7월 서울시광역정신보건센터가 1,49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충격적이다. 이 조사에 의하면 서울 시민 10명 중 4명이 우울하다고 답변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우울한 현대를 살고 있다. 이런 사회적 현상은 최근 개봉된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이라는 영화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정신적으로’ 우울한 현대인을 코믹하게 그려냈다.

또 최근 서울 명동에선 ‘프리 허그(Free Hug)’라 불리는 자유롭게 껴안아주는 캠페인이 펼쳐졌다. 그러나 이는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이 운동은 이미 2년 전 호주에서 처음 시작했다. 해외에선 이미 우울한 현대인을 위한 다양한 상품이 속속 등장하는 추세다.

영국 글래스턴베리(Glastonbury)에서 열린 ‘침묵 디스코’ 라는 뮤직 페스티벌에 참가한 사람들은 헤드세트를 끼고 음악을 들었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페스티벌에 참여했지만 음악은 혼자서 조용히 심취할 수 있게 하고 있는 것이다. 또, 영국 런던에 위치한 클럽바 ‘필링 글루미(Feeling Gloomy)’는 우울하고 멜랑꼬리한 음악을 즐기는 클럽으로 오는 12월 31일에는 ‘우울한 새해’를 기획하고 있다. 우울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과 가는 해를 더 우울하게 보낼 사람들을 위한 파티인 셈이다.

또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한 건강 포럼에서는 계절성 감성 치료나 만성 피로, 각종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첨단 기술을 활용한 안경이 소개되어 화제가 되었다. 루미넷 안경(Luminet glasses)이라 이름 붙여진 이 안경은 빛을 망막에 집중시키고, 이 빛이 곧 뇌에 인식되어 우울증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멜라토닌 호르몬 분비를 억제시킨다.



우울함을 즐기는 사람들

트렌드 컨설팅 업체인 아이에프네트워크(대표 김해련)는 ‘0708 FW 트렌드 워치(Trend Watch)’ 설명회에서 앞으로는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현대의 우울한 소비자들 즉 ‘글루미 컨슈머(Gloomy Consumer)’의 감성을 공략하는 것이 소비 트렌드에서 앞서가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른바 우울한 현대인, 글루미 제너레이션(Gloomy Generation은 코쿤족, 싱글족 등의 나홀로족과는 다른 개념이라는 점이다. 결혼 여부에 따라 구분되던 싱글족과는 달리 결혼을 했건 하지 않았건 현대 사회의 고독한 개개인, 글루미 제너레이션들은 곳곳에 널려 있다.

글루미 제너레이션을 주목해야 할 한 가지 이유는 이들이 외로운 현실을 피하지 않고 즐겨야 할 부분이라고 여긴다는 점이다. 이들은 고독이나 우울증을 숨기지 않고 건강하게 밖으로 끄집어낸다. 이런 특성은 이들이 향후 다양하게 출시되는 우울상품을 소비하는데 주축이 될 개연성이 높다. 많은 트렌드 워처들은 향후 등장할 우울 모드(Melancholy Mood)를 이용한 기발한 상품들이 새로운 소비를 일으키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최근 눈길을 끌고 있는 외톨족을 위한 여행 상품이나 나홀로족을 위한 놀이동산의 프로그램, 테이블마다 칸막이가 있어 옆자리 눈치를 볼 필요 없는 식당의 1인 공간 등은 더 이상 화젯거리가 아니다. ‘디스턴스 프레즌(Distance Presence)’은 글루미 제너레이션을 겨냥한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존재감을 느끼는 공간이라는 의미의 디스턴스 프레즌은 옆에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있는 것 같은 편안한 느낌을 제공하는 이불이다.

이불 원단에 열을 감지할 수 있는 기능이 있어 이불 한쪽에 손을 대면 그 정보가 이불의 반대쪽에 전달되고 그에 따라 반대쪽에 따뜻한 열기와 함께 서서히 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LED를 이용하여 상호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디자인을 많이 한 스웨덴 디자이너 칼 헤이걸링(Carl Hagerling) 디자인 그룹이 만들었다.

미국의 마이클 커쉬(Michael Kersch)가 디자인한 ‘리아이우스(Lyaeus)’는 사용자에게 편안한 3차원 공간을 제공하는 릴렉세이션 체어(Relaxation Chair)다. 휴식, 독서, 경치 즐기기 등 목적에 맞춰 리아이우스를 놓아두는 곳에 따라 사용자가 원하는 휴식을 즐길 수 있다. 야외에서 사용 시 발생하는 자외선을 막기 위해 햇빛 가리개도 있다.



4등분 되는 4인용 식탁도 있어

주변의 환경에 마음을 빼앗기기보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데 도움을 주며, 이로 인해 눈과 마음을 편하게 쉴 수 있게 하며 동시에 사생활을 보호 해주는 장점이 있다. 스프링 스틸 디자인을 이용해 만들어졌다.

일본 출신 네덜란드의 활동 작가인 쿠니코 마에다(Kuniko Maeda)가 디자인한 ‘4등분 되는 4인용 식탁’은 현대인의 식문화를 반영한 디자인 작품이다. 일반적으로 현대의 가정에 놓인 식탁은 4인용 이상인데 비해, 네 식구가 얼굴을 맞대고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매우 드물다. 쿠니코 마에다는 혼자 외로이 끼니를 때우는 이를 위해 이케아(IKEA)의 4인용 식탁을 친절히 4등분했다. 외톨족은 식탁의 한 조각만 TV앞으로 가지고 나가 식사를 할 수 있다.

최근 화제가 된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안나 마리아 코넬리아의 ‘라이프 드레스(Life Dress)’도 우울한 현대인들을 겨냥한 상품이다. 이 드레스’는 한마디로 변신 스커트다. 항상 혼자만의 공간으로 숨고 싶은 욕망을 채워 줄 신개념의 옷이다.

비상 상태가 발생했을 때, 즉 주위가 견딜 수 없이 혼잡하거나 시끄러우면 스커트로 머리를 감싼 후 지퍼를 잠그면 자신만의 개인 도피처가 마련된다. ‘라이프 드레스’는 ‘살인적인’ 소음과 스트레스를 견디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위한 특별한 프로젝트 작품인 셈이다.(류근원 기자)

우울한 어린이를 위한 상품

다양한 글루미 제너레이션들을 공략하기 위한 상품은 어린이들에게도 적용된다. 외로운 외동 자녀를 위한 상품을 공략하는 것도 시장 트렌드를 앞서가는 한 방법이 된다. 일본 니프로사의 코코로 스트레스 미터(Cocoro Stress Meter)는 자신의 감정표현이 구체적이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를 측정할 수 있는 '스트레스 측정기'이다. ‘코코로 스트레스 미터’를 입속에 넣었다가 빼면 침을 분석해 스트레스의 정도를 측정해준다고 한다.

일본 토미사의 유아용 프로젝터 드림 에너지(Dream Energy)는 부모와 아이의 다정한 시간을 연출하는 디즈니의 신 플랫폼 ‘Disney 캐릭터 이야기 극장 판타지움’을 발매했다. 이 제품은 콤팩트 사이즈의 유아용 프로젝터로 전용 소프트를 본체에 세팅 하면, 디즈니 캐릭터 관련 슬라이드가 투영된다. 화면에 표시되는 자막(스토리)을 그림책이나 그림 연극을 읽듯이 엄마나 아빠가 읽어주면서 함께 하는 엔터테인먼트 기기이다. 곧 있으면 엄마나 아빠의 목소리로 녹음할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된다.

핀란드의 론리 자켓(Lonely Jacket)은 옷에 벨크로(Velcro), 일명 찍찍이가 붙어 있어 다른 사람과 접촉만 하면 쉽게 붙어 있을 수 있다. 핵가족화 되어 사람들과 접촉이 많지 않은 요즘 가정에서 부모와 아이들이 이런 옷을 입고 있으면 재미있는 놀이도구로서의 기능도 가능하다.

07. 0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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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도서반납을 위해 동네에 있는 시립도서관에 갔다가 몇 권의 책을 훑어보게 되었다. 그 중 하나가 남경태의 <개념어 사전>(들녘, 2006). 작년 늦가을에 나온 이 책은 '종횡무진' 역사 시리즈와 번역자로 잘 알려진 저자의 '내공'을 보여주는 책으로 호평을 받았더랬다. 인문서로서는, 그리고 '개념어'란 타이틀을 갖고 있는 책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상당한 부수가 판매된 것으로 안다. 출간 당시 이 책에 별로 주목하지 않은 나로서는 저자의 고정 독자층이 형성돼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별로 주목하지 않은 까닭? 그건 '한권짜리' 사전이 갖는 불가피한 용적상의 한계를 먼저 떠올렸기 때문이다. 주제별 사전이 아니라면 적어도 '한 가지 개념에 책 한 권' 정도가 내가 흥미를 갖는 분량이다. 아무튼 서문에 따르면 책은 '개념어의 이미지를 내 멋대로 그리다' 정신에 충실하며 저자가 밝힌 책의 원제목은 '내 멋대로 순전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쓴 개념어 사전'이라고 하니까 그냥 그 정도 수준에서 흥미롭게 읽어봄 직하다. 그래야 "고삐 풀린 망아지가 종횡무진 초원을 누비듯이 한 개인이 지적 세계 속에서 좌충우돌하면서 겪고 부딪힌 개념들을 자신의 목소리로 들려준다"는 책의 특장과 미덕이 도드라진다. 뒤늦게 관련기사를 다시 읽어보면서 옥에 티라 할 만한 것도 지적해둔다.

한국일보(06. 11. 18) "인문학 개념, 사전부터 찾지 말고 그림을 그려보세요"

우리가 많이 보는 대형 국어사전은 인터넷을 ‘전 세계의 컴퓨터가 서로 연결되어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하나의 거대한 컴퓨터 통신망’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개념어 사전>(들녘 발행ㆍ452쪽ㆍ1만3,000원)은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 들뢰즈와 가타리의 시선을 빌어 인터넷을 설명한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노동자가 토지에서 해방돼 법적, 정치적 자유를 얻는 동시에 새로이 자본에 경제적으로 예속된다는 점에서 이중적이고 분열적이다. 인터넷은 그 같은 이중적, 분열적인 속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인터넷은 본질적으로 자체의 내용을 가지지 않은 매체-비유하자면 인터넷은 자동차가 아니라 자동차를 달리게 하는 도로일 뿐이다-이지만, 광범위한 정보를 매개하고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므로 들뢰즈와 가타리가 보는 분열증, 이중성과 닮은 꼴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처럼 <개념어 사전>은 각 개념에 대한 설명을, 그 개념의 탄생 배경 및 역사적 사회적 맥락 등과 연결해 파악한다.

저자인 남경태(45)씨는 <문학과 예술의 문화사> <세상을 바꾼 문자, 알파벳> 등 70여권을 번역한 1급 번역자이자 <종횡무진 한국사> <한눈에 읽는 현대철학> 등 대여섯 권의 저자이기도 하다.  "자연과학과 달리 인문학의 개념은 단일한 의미보다 복합적인 뜻을 지니고, 하나의 개념도 인접 개념과 연관되고 중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개념을 이해할 때는 사전적 정의보다 그 개념에 관한 전반적인 이미지를 얻는 것이 올바른 이해의 방법입니다.”

그가 말하는 ‘개념에 대한 이미지’는 하나의 개념을 전체 맥락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너, 잘났다’라고 말하는데 이를 문자 그대로만 받아들이면 ‘잘 났다’라는 뜻이지만, 앞 뒤 흐름을 헤아린다면 ‘너, 잘난 척 하지 마라’라는, 정반대의 뜻이 됩니다. 인문학에서 말하는 각종 개념은 이렇게 해야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책은 권력에 대한 설명에서도, 지식이 곧 권력이라는 철학자 미셸 푸코의 주장을 차용한다. 이성이 지배하던 시대에 인간을 몽매한 상태에서 해방시킨 지식이 이제는 권력과 하나가 돼 도리어 억압과 질곡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같은 사례를 말해주는 퀴즈를 덧붙인다. 의사가 라틴어로 처방전을 쓰고 약사가 약을 잘게 갈아주는 이유는? 답은 환자가 자신의 증상이 가벼운 감기라는 것을 알지 못하게 하고, 환자가 받은 약이 실은 아스피린이라는 것을 모르게 하기 위해서란다.

책에는 가상현실, 담론, 디아스포라, 마녀사냥, 모더니즘, 신자유주의, 엄숙주의, 유물론, 자본주의, 제3의 물결, 창조론, 카오스, 파시즘, 패러디, 하이브리드 등 150여 개의 개념에 대한 설명이 들어있다. 대부분 우리가 오래 전부터 사용했거나 익숙한 것들로 저자가 책을 쓰면서 메모해놓은 철학 역사 심리학 예술 등 인문학 전반의 개념들이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용어 사전이 아니라 인문학의 지적 탐색이다. 각 개념 하나하나에 대한 설명이 그 자체로 책 한 권씩을 압축한 것 같아 인문학적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은근한 재미를 준다.

그렇다면 저자의 말처럼, 인문학의 개념들은 어떻게 파악해야 할까. 그는 무엇보다 책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더 나아가 눈으로만 읽지 말고 그 의미를 되씹어 보자고 한다. “책에서 뭔가를 뽑아내려고만 하지 말고, 책을 나의 사고 작용을 촉발하는 수단으로 대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한 가지 개념의 사전적 정의에 매몰되지 않고 그것이 말하는, 혹은 그것이 형성된 역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박광희 기자)

07. 09. 26.

 

 

 

 

P.S. '개인적인 사전'이란 의미에서 <개념어 사전>이 내게 제일 먼저 떠올려준 책은 다른 사전들이 아니라 고종석의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문학과지성사, 1996)이다. 이 역시 '사랑의 말들'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그러나 아름다운 단상과 정의들의 성찬인 책이었다. 시간상 <개념어사전>을 다 훑어보지 못하고 저자가 참고한 문헌들의 목록을 유심히 훑어보았는데, 몇몇 책들에 대한 촌평이 눈길을 끌었다.

가령 렘프레히트의 <서양철학사>(을유문화사, 2001)에 대해서 "국내에 소개된 철학사는 몇 가지 종류가 있지만 읽을 만한 게 별로 없다. 그중 나은 게 이 책인데, 이것도 서술이 지루한 데다가 미국 철학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 엄정하지는 못하다."라고 평한다(이 책은 최근에 '떨이 판매'를 하길래 주문해놓았다. 종이값 정도의 가격이어서). 거기에 알라딘에서는 검색이 되지 않지만 러셀의 <서양철학사>(대한교과서, 1989)의 경우 "도저히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번역이 엉망이니 주의하도록!"이라는 조언도 들을 만하다(하지만 잉여적인 조언이기도 한데, 시중에 나와 있는 건 주로 집문당판이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참고문헌을 읽어내려 가다가 두 가지 사항이 다소 놀라웠다. 하나는 참고문헌이 소략하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배열 순서가 엉터리라는 것. 때로 간략한 필수문헌만을 제시하기도 하므로 소략한 참고문헌 자체가 흠이 될 수는 없겠다(국외서도 일부러 배제한 듯하다). 하지만 참고문헌의 '개념 없는' 차례는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책의 마무리가 옥에 티인 셈(이 차례는 편집부에서 만든 것일까?).

일반적으로 성을 먼저 적는 관행과는 달리 이 책의 참고문헌에서는 이름이 성보다 먼저 제시된다. 가령, <고독한 군중>의 저자 '데이비드 리스먼'은 '리즈먼, 데이비드'라고 표기되는 대신에 '데이비드 리스먼'으로 표기되고 있는 것. 하지만, 문제는 이 '부자연스런' 원칙마저도 언제나 지켜지지는 않는다는 점. 코믹하게도 <정신분석 입문>의 저자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여서 'ㅈ'란에 가 있고, <꿈의 해석>의 저자는 '프로이트'여서 'ㅍ'란에 가 있는 식이다. 간혹 '이름' 대신에 성만이 제시된 저자는 '레비스트로스'처럼 'ㄹ'란에 가 있는데, 자체 원칙을 따르자면 'ㅋ'란에 가 있어야 했다('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이니까). 사정이 그러하니 'E. H. 카'가 어찌된 영문인지 <성경전서> 다음에 위치하게 된 것도 그러려니 하는 수밖에. 잘 씌어진 책에 '코 빠뜨리는' 참고문헌이다.  

끝으로 한 가지, 현대언어학의 시조인 소쉬르에 대해서 저자는 '프랑스 언어학자 소쉬르'라고 부르는데, 그의 <일반언어학강의>가 불어로 돼 있기는 하나 소쉬르는 '프랑스' 언어학자가 아니라 '스위스' 언어학자이다. '내 멋대로 쓴 개념어 사전'이라도 사전은 사전이므로 디테일에 좀더 주의를 기울였으면 좋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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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6 17: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26 17: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성에 눈뜨다'는 발터 벤야민(1892-1940)의 <베를린의 어린시절>(새물결, 2007)의 한 꼭지이다. 예전 번역본인 <베를린의 유년시절>(솔, 1992; 1998)에도 같은 제목으로 번역돼 있는데, 유대인들의 '설날'을 배경으로 한 짤막한 글이다. 각각 새물결판 195-196쪽과 솔판 58-59쪽의 글을 읽어본다(둘다 독어본을 옮긴 것으로 돼 있다). 곁다리로 참고한 책은 영어판 <베를린의 어린시절>(하버드대출판부, 2006)이다(판본들에 대해서는 http://blog.aladin.co.kr/mramor/1469383 참조). 영어본의 제목은 'Sexual  Awakening'이고 123-124쪽에 수록돼 있다.

시작은 이렇다: "끝도 없이 싸돌아다니던 중 나중에 밤에 배회하게 되는 거리들 중의 하나에서, 그럴 나이가 되기도 했지만 나는 (아주) 기묘한 상황에서 불시에 성충동에 눈뜨게 되었다."(새물결); "나중에 끝없이 방랑하며 밤길을 돌아다니던 바로 그 거리에서 나는 어떤 특별한 계기에 의해서 처음으로 성적 충동을 느끼게 되었다."(솔)

이 첫대목은 두 번역본이 기묘하게 엇갈리는데, "끝도 없이 싸돌아다니던" 시점과 "끝없이 방랑하며 밤길을 돌아다니던" 시점이 언제인 것인지? 새물결판에 따르면 "끝도 없이 싸돌아다니던" 건 이야기가 진행되는 시점인 어린시절이고, "배회하게 되는" 건 그보다 나중이다(그러니까 싸돌아다니던 것과 배회하던 것 사이에 시차가 있다). 그리고 솔판에 따르면 '방랑'하던 시점과 '밤길을 돌아다니던' 시점은 동일하며 둘은 같은 의미연관의 행위이다.   

아주 사소하지만 이 첫대목의 차이가 흥미를 끌어서 영어본과 대조해보았다: "On one of those streets I later roamed at night, in wanderings that knew no end, I was taken unawares by the awakening of the sex drive (whose time had come), and under rather strange circumstances."

벤야민이 회고하고 있는 어린시절이 1900년경(영어로는 'around 1900')이니까 그의 나이 8-9살 때이다. 이어지는 내용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그는 낯선 거리에서 헤맨다) 그가 처음 '성적 충동'을 느낀 그 거리는 그가 나중에(머리가 커서) 끝도 없이 싸돌아다니게 될 거리이다. 해서 영역본에 따르면 "one of those streets I later roamed at night, in wanderings that knew no end"이 문법적으로 "끝도 없이 싸돌아다니던 중 나중에 밤에 배회하게 되는 거리들"(새물결)이란 표현을 지지할 수 있더라도 번역은 교정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나중에 끝도 없이 싸돌아다니며 배회하게 되는 거리들"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그런 맥락에서라면 "나중에 끝없이 방랑하며 밤길을 돌아다니던"(솔)은 "나중에 끝없이 방랑하며 밤길을 돌아다니게 되는"이라고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겠고.

"그날은 유대력으로 새해 첫날로, 부모님은 내가 예배식에 참석하기 위해 필요한 채비를 다 해놓으신 상태였다."(새물결); "그때는 유대인의 설날이었다. 부모님들이 어느 예배식에 참석하여 나에게 막 자리를 찾아주려던 참이었다."(솔); "It was the Jewish New Year, and my parents had arranged for me to be present at a ceremony of public worship."

솔판의 번역은 역자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의역한 것으로 보이는데, 새물결판과 영역본을 고려하면 "예배식에 참석하여 나에게 막 자리를 찾아주려던 참"이었다는 건 오버이다. 왜냐하면 '꼬마' 벤야민이 친척 한 사람을 데리고/모시고 와야 한다는 '미션'을 수행하게 되는데, 교회에 이미 도착한 이후에 이 아이가 다시 친척을 데리러 나간다는 건 넌센스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냥 꼬마 벤야민은 이날 교회 예배에 참석하기도 예정돼 있었고, 다만 중간에 한 가지 과제를 수행해야 했을 따름이겠다. 그 '과제'란 무엇인가? 

"이 축제날 나를 돌보는 일은 다소 먼 친척 손에 맡겨졌는데, 내가 그를 중간에 모시러 가게 되어 있었다."(새물결); "사람들은 내가 이 예배식에 누군가 친척 한 명을 데리고 와야 한다고 권한 바 있었다."(솔); "For this holiday, I had been given into the custody of a distant relative, whom I was to fetch on the way."

두 국역본은 같은 독어본 문장을 옮긴 것인지 의심이 갈 정도로 차이를 보인다(새물결판은 영역본과 일치한다). 유대 관습과 관련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날 어린 벤야민은 자신의 후견인 노릇을 할 먼 친척을 교회에 가는 길에 모시러 가야 했다. 문제는 그가 길을 헤매개 됐다는 것. 어린 나이를 감안하면 충분히 그럴 만한 일이긴 하다.

"그런데 주소를 잊어버렸는지, 아니면 주변 길을 잘 몰랐는지 - 아무튼 시간은 점점 늦어지게 되었으며, 게다가 나는 계속해서 길을 헤매고 있을 뿐 제대로 도착할 기미는 점점 더 보이지 않게 되었다."(새물결); "이 지역을 아직 잘 모르고 있었는지, 아니면 그의 주소를 잊어버렸는지는 알 수가 없다. 어쨌든 나는 시간이 자꾸 흐를수록 거의 절망적인 상태에 빠졌다."(솔); "But for whatever reason - whether because I had forgotten his address, or because I could not get my bearings in the neighborhood - the hour was growing later and later, and my wandering more hopeless."  

이 대목은 대동소이하다. 어린 벤야민은 교회(회당)에 혼자 간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하는데, 일단은 보호자(후견인)가 입장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론 종교 의식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었다. 이어지는 것이 글의 후반부이다.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고 있던 와중에 갑자기 어떤 불안감("너무 늦었어. 결코 회당에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없어.")이 뜨거운 파도처럼 엄습해왔다. 하지만 그와 거의 같은 순간, 아니 아직 앞의 물결이 밀려가기도 전에 두번째 물결이, 전혀 정직하지 못한 생각이 밀려들었다("될 대로 되라지 뭐. 나하고는 상관없어."). 그리고 내 마음 속에서 이 두 개의 물결이 억누르기 힘들게 처음으로 눈뜬 커다른 쾌감 속에서 하나로 합쳐졌는데, 그러한 쾌감 속에서 축제일에 대한 모독은 거리의 뚜쟁이 같은 짓거리와 뒤섞이고 있었다. 그제서야 비로소 나는 막 깨어난 충동을 위해 거리가 마련해줄 수 있는 서비스가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새물결)

맨마지막 문장은 솔판과 영역본에서 이렇게 돼 있다: "이러한 내 마음속의 두 가지 물결이 처음으로 끓어오르는 성적인 거대한 욕망과 합쳐지고 있었다. 축제일에 대한 모독감은 거리의 뚜쟁이와 같은 짓거리와 뒤섞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나는 깨어난 성적인 충동에 대하여 어떻게 다스려 나가야 하는가를 처음으로 추측할 수 있었다."; "And the two waves converged irresistibly in a dawning sensation of pleasure, wherein the profanation of the holy day combined with the pandering of the street, which here, for the first time, gave me an inkling of the services it was prepared to render to awakened instincts." 

솔판의 번역에서는 마지막 '추측'의 근거가 무엇인지 불명료하다. 새물결판과 영역본에 따를 때 그것은 '거리'이다. 그 거리에서 종교 의식에 참석해야 하는 의무를 방기하는 데 따른 어떤 불안감과 자포자기의 심정이 벤야민은 최초의 성적 충동, 혹은 커다란 쾌감과 결합돼 있었다고 기억한다. 어렴풋하게만 기술돼 있지만, 조금 더 확정적으로 말하면, 기본적으로 그의 배회는 '위반'의 체험이고 이 위반은 종교의식과 성적 욕망에 밀접하게 기대고 있다. 이건 아주 전형적인 '바타이유적 체험' 아닌가? 사실 '성에 눈뜨다'란 주제 자체가 바타이유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때문에 벤야민이 나중에 파리를 탈출하면서 파리 국립도서관의 사서였던 바타이유(1897-1962)에게 <아케이드 프로젝트>가 포함된 마지막 유고를 맡긴 것은 '기묘한' 우연의 일치로 보인다(이 유고는 조르주 아감벤에 의해 1981년에서야 발견된다). 벤야민과 바타이유에 관한 글들을 찾아봐야겠다...

07. 0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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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7-10-05 0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타이유와 벤야민의 관계는 저 또한 오랜 시간 동안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주제인데, 이렇게 로쟈 님 글에서 만나니 또한 반갑군요.^^ 둘 사이의 관계를 언급하고 있는 대표적인 문헌으로는 일단 Michel Surya가 쓴 바타이유 전기가 있고ㅡ이 전기는 정말 얼마 없는 바타이유 전기들 중에서 백미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ㅡ또한 로쟈 님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Susan Buck-Morss의 책이 있지요. 특히나 저로서는 바타이유와 벤야민이 모두 멤버로 있었던 프랑스-독일 지식인들의 비밀 결사체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얼마 전 김남시 님 서재에서 벤야민-바타이유-아감벤의 연결고리를 읽고 오호라~ 싶었는데, 어서 그와 관련된 이탈리아어 자료들을 읽고 싶은 마음뿐입니다(예전에 김남시 님께 서지사항을 문의드렸었는데, 아직 대답이 없으시네요^^;).

로쟈 2007-10-05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ichel Surya의 전기는 처음 듣는다 싶었더니 불어로 된 책이군요.^^; 저로선 그냥 에로티즘의 문제와 관련해서(벤야민에게는 은닉 혹은 억압돼 있는 게 아닌가 싶고요) 두 사람의 커넥션을 건드려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고, 혹 좋은 참고문헌을 발견하시면 귀뜀해주시길(불어나 이태리어가 아니라면요^^)...

람혼 2007-10-07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ichel Surya의 바타이유 전기 "Georges Bataille, la mort à l'œuvre"는, Verso 출판사에서 "Georges Bataille: an Intellectual Biography"(ISBN 1-85984-822-2)라는 제목으로 영역되어 나온 바 있습니다.^^

로쟈 2007-10-07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도서관에 불역본만 있길래 아직 영역되지 않은 줄 알았습니다.^^; 하긴 너무 방대한 분량이어서 읽을 만한 엄두는 잘 나지 않는군요...
 

알다시피 미혼 남녀들이 명절 때 어른들이나 주변으로부터 가장 듣기 싫어하는 소리가 언제 결혼하느냐는 것이다. 다들 바쁜 일이 있어서 어제 하루 간단하게 저녁식사만 같이 한 우리집의 경우에도 지난봄에 늦게 결혼한 동생 때문에 작년까지만 해도 명절 때마다 '결혼'은 빠지지 않는 화두였다(대개 당사자들은 시큰둥하거나 짜증을 내지만). 그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겠지만 얼마전에 출간된 결혼 상담서 <연애와 결혼의 원칙>(황금가지, 2007)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저자인 마거릿 켄트가 한국어판 출간과 관련하여 방한하기도 했었는데(http://blog.aladin.co.kr/mramor/1571196) 조금 자세한 인터뷰 기사가 있기에 옮겨놓는다. 결혼의 장점? 이성에 대한 필요 이상의 정념적인(병리적인!) 관심에서 해방되어(전적이라고는 할 수 없더라도), 독서에 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 그럼 단점은? 모든 결혼생활이 그런 건 아니다... 

경향신문(07. 09. 20) [현장에서 만난 여성]연애·결혼 전문가 마거릿 켄트

"누구나 이상형 남자 만날 수 있죠” 세상에 절반은 남자라는데 괜찮은 남자는 어느 골목으로 나를 피해 다니는 걸까. 또 내 마음에 드는 남자는 왜 내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한심한 남자만 데이트를 신청할까. 왜 나보다 훨씬 못생기고 성격도 나쁜 친구가 근사한 남자의 사랑을 얻는 걸까…. 10대 소녀부터 노처녀까지 모두가 끙끙거리는 고민들이다.



‘연애와 결혼의 원칙’의 작가인 마거릿 켄트(65)는 세계 각국을 돌며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남자를 만나 결혼에 성공하는가’를 강의해왔다. 남편 로버트 파인슈라이버와 함께 한국을 찾은 그녀는 신혼부부처럼 계속 손을 잡고 수시로 눈을 마주치고 미소를 교환하는 등 애정을 과시했다. 1981년에 결혼한 데다 둘다 60대이니 덤덤해질 만도 한데 이들은 당당했다.

“스킨십을 좋아해요. 부부라면 늘 이렇게 애정을 표현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그 말에 기가 죽어 “결혼 20년이 넘으니 남편과 스킨십은커녕 대화 나누기도 서먹서먹한 오촌당숙같다”고 하자 켄트는 너무나 명쾌하게 말했다. “당장 이혼하세요. 애정없이 뭐하러 억지로 결혼생활을 유지하죠? 얼마든지 당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남자를 만날 수 있다고요. 남편은 내가 워낙 열정적이어서 그런지 내 미래의 남편은 지금 스무살쯤 됐을 거라고 농담을 해요. 그만큼 내가 원하는 남자를 만날 능력이 있다고 믿는 거죠.”

책을 쓰게 된 동기 역시 남편의 권유였다. 처음엔 그저 몇 명을 보아 1년에 한두 번 강의를 하려는 계획이었지만 세금전문 변호사답게 남편은 “책을 써서 더 많은 여성들에게 알려주고 강연회 역시 미국의 몇 몇 주가 아니라 전 세계를 돌아다니자”라고 했다. ‘결혼 아니면 환불!’이란 광고 문안을 만든 것도 남편이었다. 84년 책이 출간되자마자 폭발적 호응을 얻었으며 20년이 지나 3번째 개정판을 내면서도 계속 사랑받고 있다.

마거릿 켄트는 첫번째 결혼 역시 자신의 이상형과 했다. 스페인어 교사였던 그녀에게 스페인어를 배우는 학생이던 첫 남편은 정신과 의사이자 변호사였다. 그에게 히스패닉계 환자나 고객의 통역을 해주면서 결혼과 남녀관계의 지혜를 익힌 그녀는 천천히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결혼했다. 그러나 79년 첫 남편과 사별하고 법대를 마친 후 로버트와 재혼했다. 예일대 법대를 나온 유능한 변호사가 마흔두 살 과부의 어떤 매력에 빠졌을까.

똑똑한 남자라 해도 여자들에게 거절이나 거부를 당할까봐 두려워해요. 똑똑하고 예쁜 여자들이 정작 노처녀로 늙어가는 이유는 대부분 남자들이 그들에게 두려움을 갖기 때문이에요. 빌 클린턴이 예일대에서 힐러리를 보고 한 눈에 반해 며칠 동안 계속 바라보기만 하니까 힐러리가 먼저 ‘넌 왜 날 보기만 하니? 내 이름은 힐러리야, 넌?’하고 물었을 때 자기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더래요. 힐러리처럼 만약 지금 주변의 어떤 남성에게 관심이 있다면 먼저 다가가 “안녕하세요”라고 간단하게 인사하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남자들은 완벽하게 이상적인 여성에겐 정작 숨이 막혀 말도 못 붙이고 자신을 받아들여줄 거라고 100% 확신이 서는 여자에게만 말을 건네거든요. 그 두려움을 없애주기 위해 여자가 다가가는 것이 필요해요. 정말 마음에 들면 먼저 전화도 하고요.”

켄트는 또 여성의 신체부위 중 가장 섹시한 곳이 ‘귀’라고 강조한다. 자신이 원하는 남자가 나한테 사랑에 빠지기를 원한다면 남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는 것이 필수라는 것. 그저 묵묵히 듣는 것이 아니라 “와! 정말 멋있어요” “조금만 더 자세히 얘기해주세요” “대단하네요” 등의 추임새를 넣어 ‘진심으로 내 이야기를 듣고 있구나’란 감동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좋은 남자’를 찾기보다 사람을 제대로 보는 눈을 갖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겉으론 멀쩡해도 알고보니 편협한 성격이나 병적인 우울증, 혹은 의처증이나 허풍쟁이인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켄트는 “본인에게 ‘당신의 성격을 3가지 단어로 묘사해보라’고 하고 친구나 가족들에게도 그 사람을 설명해달라고 부탁하라”고 조언한다. 뒤에서 몰래 조사하지 말고 함께 있을 때 자연스럽게 질문하면 ‘낙천적이다’ ‘게으르다’ 등등의 성격적 특징을 듣게 된다. 자신도 지금의 남편과 결혼 전에 남편의 자녀들에게 “네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 달라”고 했단다. 자신은 지적인 남자를 좋아하는데 자녀들 역시 ‘우리 아빠는 매우 똑똑하고 지혜롭다’고 해서 마음에 들었단다. 만약 주변에서 ‘거짓말을 잘 한다’ 등의 지적을 해주는 남자라면 단호하게 결별해야 한다.

이상형 남자가 성격이나 인생관 등에서 내 남편감이란 확신이 들었다면 ‘그의 아내처럼 행동하라’고 조언한다. 칭찬 일색의 대화는 끝내고, 칭찬 4∼5번에 비판 1∼2번을 섞는 관계를 만들라는 것이다. 무조건 칭찬만 해주면 “내 약점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멍청한 여자거나 차마 지적못하는 마음 약한 여자로 무시하거나 자신이 완벽한 남자”라는 착각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날카로운 비판은 필수. 단, 남자를 비판할 때는 몰아붙이지 말고 어머니가 아들을 대하듯이 다뤄야 한단다. ‘왜 매일 약속을 안지키는 거예요’라고 히스테릭하게 신경질을 내기보다 ‘당신은 다른 건 다 좋은데 약속한 걸 자주 잊어 버리는 게 나빠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모든 남자들에게 호감을 받는 완벽한 여성’이 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고 켄트는 강조한다. 100명을 사로잡으려고 애쓰다간 결국 한 명도 사로잡지 못한다. 공직에 출마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특별한 한 사람을 만나면 되므로 자신의 개성과 매력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면서 그 사람의 호감을 얻어 유지하는 노하우를 익히면 된다.

“연애와 결혼은 낭만적인 사랑만큼이나 전략과 전술이 필요해요. 그걸 여우짓이라고 비난만 하지 말고 남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상냥한 미소, 관심어린 눈빛, 단정해서 단추를 풀어보고 싶은 블라우스, 만져보고 싶은 고운 머릿결을 만드는 등 시각적 아름다움은 물론 지적인 매력도 잃지 말아야죠.”

그는 변호사답게 다양한 고객을 위한 연애와 결혼 가이드를 해준다. 평범한 여성이라도 정말 마음에 드는 남자가 나타났을 때 눈길 사로잡는 법부터 그 남자가 명품인지 짝퉁인지 구별하는 법, 남성의 본성과 심리 등을 친절한 언니처럼 설명해주고 무엇보다 남자가 아닌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을 잃지 말라고 ‘지적 매력의 중요함’을 강조한다.

둘다 세금전문 변호사로 1년에 절반이 넘는 국내외 출장도 늘 함께한다는 마거릿 켄트 부부. “하루에 여섯 번 흥분하는 남자와 여섯달에 한 번 흥분하는 여자는 절대 함께 살 수 없지 않냐”면서 “우린 대화도 풍부하지만 남편이 날 너무 사랑해서 하루도 떨어져 있을 수 없다”고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곁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남편을 보니 책에 대한 신뢰감이 들었다. 자신의 이상형을 콕 찍어 결혼한 후, 65세에도 저토록 남편 사랑을 받는 여성의 충고라면 받아들일 만하지 않은가.(유인경기자)

07. 09. 25.

P.S. 유튜브에 인터뷰 동영상도 떠있군(http://www.youtube.com/watch?v=lVHwXIIC3G0). 참고로 영화를 본 사람들은 동의할 만한 일이지만 미혼 남녀들이 '최악의 영화'를 꼽는다면 단연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일 것이다(http://www.youtube.com/watch?v=1Z8dOX602jo). 만추가 되어서야 서로가 짝임을 확인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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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7-09-25 22:41   좋아요 0 | URL
juin님의 입장은 결혼에 결코 '포획되지' 않겠다는 히스테리증자의 태도이겠습니다.^^ '모든 결혼생활이 그런 건 아니'라는 단서를 달았으니까 제가 덧붙일 내용은 없구요(저의 '행복'이란 말이 좀 낯서네요. 저는 행복에 관해서라면 '무신론자'입니다), 지젝의 관점은 아마도 주디스 버틀러와 차이점으로 귀결될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저는 '급진적 페미니즘'에 대해서 과문하지만, 동등한 권리주장 정도는 공감합니다. '빠른 일상복귀'란 무슨 말씀이신지?^^;

로쟈 2007-09-25 22:46   좋아요 0 | URL
글쎄요, 어떤 '급진성'을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저의 기본적인 입장이라는 게 있다면 다윈주의이고, 소위 '다윈주의 좌파'와 지젝식의 정신분석적 정치를 결합시켜서 사고해보는 게 제가 갖고 있는 일종의 '기획'입니다. 결혼이냐 비혼이냐 같은 건 별로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 '해소'되기를 바라는 쪽입니다. 더불어, 고상한 페미니즘에 대해서 저는 상당히 냉소적입니다...

marr 2007-09-25 21:42   좋아요 0 | URL
"당장 이혼하세요. 애정없이 뭐하러 억지로 결혼생활을 유지하죠? 얼마든지 당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남자를 만날 수 있다고요."
하하. 정말 당찬 여성입니다.
마거릿 켄트 여사의 말이 하나도 틀린 데가 없지만, 이거 문화에 따라 상당히 다르죠.
우리나라에서 이런 책이 팔릴 수 있다는 게 신기하네요. 한국은 나이먹은 사람들이(음... 30대 후반 이후)연애하기 정말 힘든 나라잖아요. 한국 여성들은 사랑을 너무 고귀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한방주의에 빠져있거든요. 이거 남성중심적인 편견이란 소리릴 들을 수도 있겠군요.

로쟈님의 소개를 읽는 순간 이 영화가 떠오르더군요.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Something's Gotta Give, 2003), 제가 좋아하는 잭 니콜슨이 나옵니다. 이 영화에서 잭 니콜슨은 사랑이니 결혼이니 이런 생각보다 젊은 여자들과 만나 연애하는 재미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세상에! 저렇게 젊고 섹시한 여성들이 늙어서 주름투성이 잭과 연애를 하다니! 엄청 부럽군요.
이 영화에는 이제는 늙어버린 다이안 키튼이 잭의 상대역으로 나옵니다. 정말 매력적인 여성이지요. 제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미스터 굿바를 찾아서"에서 처음 봤지요.

하여튼, 이 영화에서 다이안 키튼의 여동생으로 나오는 여성분이 잭 니콜슨에게 이렇게 말하지요 "언니는 진짜 멋진 여자예요. 게다가 성공한 극작가죠. 이혼녀지만 나이가 오십 밖에 안됐는데 매일밤 독수공방. 왜냐하면 그 나이의 남자들은 다른 여성을 원하거든요. 마린같은 영계들만 찾는다구요. 50줄 넘은 남자들은 늙은 여잔는 쳐다도 안봐요. 그래서 여자들은 점점 더 일에 몰두하고, 결국 남자들은 늙은 여자들에게 흥미를 잃게되요."

이거 참... 나도 그런가??
다시 읽어보니 횡설수설이 되었군요. 용서하세요.

로쟈 2007-09-25 22:15   좋아요 0 | URL
제 생각에 켄트의 결혼론의 핵심은 "아무리 못생겼어도, 당신이 미스 유니버스보다 예쁘다고 생각하는 남자가 두 명 이상은 있죠. 많은 남자가 아니라 딱 한 명을 찾는 것이잖아요?"입니다. 늙은 여자들에게도 '두 명 정도'는 흥미를 가질 거라는 얘기죠(결혼은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을 고르는 것이고)...

비로그인 2007-09-25 22:07   좋아요 0 | URL
만져보고 싶은 고운 머릿결을 유지하라니 ㅎㅎㅎ
일단 그건 갖춘 셈이네요~ 재밌습니다 :)

로쟈 2007-09-26 01:48   좋아요 0 | URL
그것만 갖춘 건 아니시겠죠.^^

섬나무 2007-09-27 13:56   좋아요 0 | URL
마거릿 켄트 할머니는 똑똑한 여성이지요. 하지만 똑똑한 사람들이 꼭 지혜로운 건 아니예요.저는 마거릿 켄트 할머니의 똑부러진 성공적인 삶이 잘 포장된 상품처럼 느껴집니다.애정 없이 왜 사냐 이런 대사 날리는 여자들 보면 그냥 주눅드는 나같은 사람이 보기에 말입니다. 음...하여간 딱 한 명을 구하는 핵심은 연애에도 해당된다고 보면 그점은 희망적이군요. 하지만 아무래도 이 양반한테선 너무 돈 냄새가 납니다.

로쟈 2007-09-27 14:14   좋아요 0 | URL
엘리트 여성인 건 맞고, 또 켄트 여사 자신이 '지성미'를 강조하고 있지요. 돈이야 이 책 팔아서도 꽤 벌었을 듯하네요...

호민관 2007-09-27 22:51   좋아요 0 | URL
"이세상에 나를 좋아해주는 남자가 두 명정도는 있을것이다...(그들과 잘해보라?).."어제 신문에서 인터뷰기사를 보고 설득력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여기서 다시 이글을 보니 정답이라고 하기에는 좀 빈약한 느낌이 드네요. 만약 그 두 명의 남자가 내 맘에 들지 않았을때는 어쩌죠. "내가 맘에 드는 그녀는 남자친구가 있고 맘에 안드는 그녀에겐 자꾸 전화가 오고~!"(공일오비'신인류의 사랑') 이게 인생일텐데요.

로쟈 2007-09-27 23:33   좋아요 0 | URL
그런 선택의 딜레마는 천 명의 남자여도 마찬가지일 거 같습니다. 정 그럴 때는 마음을 접어야지요...
 

보통은 남들보다 예민한 사람들이기에 소설가들이 이상한 징크스와 이색적인 집필 습관을 갖고 있다는 건 전혀 놀랄 만한 소식이 아니겠다. 그럼에도 그들이 잠깐 털어놓는 이야기는 흥미를 끈다. 소설가들의 집필 습관를 소개하는 기사가 있기에 옮겨놓는다. 

◇백가흠◇천운영◇이기호◇은희경◇박상우◇윤대녕◇김숨◇손홍규(시계방향)

세계일보(07. 09. 17) 소설가 8인에게 들어본 '나만의 집필 습관' 

“흰 러닝셔츠를 입지 않으면 소설이 안 써집니다.”(소설가 백가흠) 소설가에게는 저마다 독특한 집필 습관이 있다. 편하게 러닝셔츠, 축구 유니폼을 걸치거나 긴장감을 돋우려고 외출복을 입기도 한다. 애완견을 곁에 둬야 손이 풀린다는 작가도 있고, 집필실 대청소로 심기일전하는 작가도 있다. 내재한 감수성과 창의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소설가들의 노력은 기발하고, 독특하다. 현재 활발히 작품활동을 하는 소설가 8인에게 그들만의 집필 습관을 물었다.

#1 헐렁한 마음가짐
‘난닝구’와 ‘깔깔이’는 백가흠씨의 집필 스트레스를 덜어준다. 최근 소설집 ‘조대리의 트렁크’를 펴낸 그는 흰색 러닝셔츠 없이 집필을 할 수가 없다. 평소에는 러닝셔츠를 챙겨 입지 않지만, 유독 글을 쓸 때 간절해진다. 그는 “헐렁한 러닝셔츠엔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뭔가가 있다”고 말한다. 겨울에는 군대 방한복 ‘깔깔이’가 러닝셔츠를 대신한다.

‘잘가라, 서커스’의 천운영씨는 여자임에도 남성용 트렁크 팬티와 ‘아버지 메리야스’를 애용한다. 헐거운 복장은 마음을 편하게 하고, 작업 능률도 올린다. 그는 “예전엔 평범한 체크무늬를 입었는데, 요즘은 양과 구름 무늬 트렁크를 즐겨 입는다”고 말한다. 그의 어머니가 결혼하지 않은 딸의 옷장 속에서 트렁크 팬티 ‘컬렉션’을 발견하고 기겁한 적도 있다.

‘최순덕 성령충만기’의 이기호씨는 축구 유니폼을 입고 글을 쓴다. 소설 진척 정도에 따라 유니폼 등번호가 바뀐다. 소설 중간쯤 쓸 땐 미드필더 번호인 7번을, 결말 무렵엔 공격수 등번호 11번을 입는다.



#2 옷깃을 여미고
의관을 정제하고 책상 앞에 앉는 작가도 있다. 올해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를 출간한 은희경씨는 글을 쓸 때 일부러 편한 옷을 입지 않는다. 집에서도 외출복 차림에 양말까지 챙겨 신고, 스스로 ‘출퇴근’ 시간도 정해놓는다. “긴장감을 늦추지 않기 위해서 직장생활 하듯 글을 써요. 영감이 아닌 직업정신으로 밀고 나갑니다.”

‘내 마음의 옥탑방’을 쓴 박상우씨는 새 작품을 쓰기 전, 대청소를 한다. 마음을 다잡는 동시에 새 작품에 전작의 잔상이 끼어들 여지를 없애기 위해서다. 어지러운 책상을 정돈하는 것은 물론 방 구조까지 바꾸기도 한다. 그는 “발동이 걸려 펜이 술술 나가려면, 대청소로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소설가 윤대녕씨의 경우 “소설에 대한 일관된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한 작품을 완성할 때까지 식단을 최대한 단순하게 한다”고 그의 문단 동료가 전한다.



#3 나만의 분위기 조성
“사람은 집필에 방해가 되지만, 강아지는 그렇지 않아요. 정적으로 꽉 차 불안한 방에 발랄한 기운을 퍼뜨립니다.” 최근 소설집 ‘침대’를 펴낸 김숨씨는 집필실에 애완견 ‘포그’ ‘포아’를 풀어놓는다. 두 요크셔테리어는 고독한 작업에 시달리는 작가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사람의 신화’의 손홍규씨는 글이 막히면, 옷을 다 벗고 5∼10분간 춤을 춘다. ‘나체 막춤’은 마음을 새롭게 하는 데 효과적이다. 흡족한 단편소설을 내놓기 위해 보통 1∼2번 그만의 ‘의식’이 필요하다. 문학평론가 김미현씨는 “집필습관은 작가의 창작욕과 연결된다”면서 “글쓰기를 노동으로 받아들이거나, 그 반대로 일상을 벗어난 특별한 작업으로 여기려는 마음가짐은 모두 작가 자신의 잠재력을 끌어내려는 안간힘이자 ‘실존적 선택’”이라고 말한다.(심재천 기자)

07. 09. 25.

P.S. 겸사겸사 같은 지면에서 최근 소설집을 낸 소설가 천명관씨의 인터뷰의 기사를 옮겨놓는다. 이건 '집필 습관'이 아니라 '집필 성향'관 관련된 것이다. 나는 언젠가 접해본 그의 '국적 없는' 괴이한 소설이 넌센스라고 생각했었는데, 기사를 읽어보니 작가로선 이유가 없지 않았다. “한마디로 ‘격이 떨어지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재미있게 쓰자’는 거지요. 한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이 웃을 수 있도록." 그의 소설을 읽고 유쾌할 수 없었던 나는 그가 고려하는 '전 세계 3000명'에는 포함되지 않는 듯하다.

세계일보(07. 09. 22) "문학상 받은 소설들 답답해"

“전통이 잘 지켜진 소설, 문학상 받은 소설이 답답해요.” 서사 중심의 환상적인 플롯으로 화제를 모았던 ‘고래’의 작가 천명관(43)씨가 첫 소설집 ‘유쾌한 하녀 마리사’(문학동네)를 펴냈다. 등단작부터 최근작까지 11편의 중·단편엔 장차 세계 독자와 소통할 ‘호환성’이 있다.

천씨는 “이것저것 자질구레하게 묶은 글 무더기들”이라면서도 “모아놓고 보니 내가 아프리카인 유럽인 남미인 등 전 세계인이 고개를 끄덕일 만한 보편성을 추구한다는 것을 알겠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한곳에서 10만명에게 읽히는 것보다 전 세계 3000명에게 읽히길 원한다.

그는 ‘외국배우’를 즐겨 기용하고, 이국 풍경을 무대에 자주 올리는 연출가다. 표제작 ‘유쾌한 하녀 마리사’엔 그의 세계화 성향이 잘 드러난다. 김치 냄새를 싹 뺀 단편은 등장인물부터 탈한국적이다. 한국 소설에 자주 쓰이는 내면 묘사, 관념적 표현을 일절 배제하고, 이야기에 치중한다.

등장인물은 독일인 소설가 토마스와 그의 아내 요한나, 처제 나디아, 포르투갈인 가정부 마리아다. 토마스는 처제 나디아와 바람을 피운다. 극심한 배신감에 치를 떤 요한나는 자살을 결심한다. 소설은 요한나가 남편의 변심을 탓하며 남긴 유서 형식이다. 낭만적인 최후를 위해 요한나는 샴페인 ‘동 페리뇽’을 두 병 마련한다. 자신이 마실 샴페인엔 치명적인 독을 풀었다. 남편이 불륜여행에서 돌아올 시간에 맞춰 요한나는 욕조에서 독이 든 샴페인을 들이켠다. 토마스는 거실에서 아내가 준비한 샴페인을 홀짝이며 유서를 읽는다. 피를 토하는 쪽은 토마스다. 하녀 마리사가 집 안 정돈을 하다 샴페인 병을 바꿨고, 얄궂게도 두 사람의 운명마저 바꿔놨다.

제 주변 상황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합니다. 한국의 역사나 현실을 담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든 작가가 그렇게 쓸 필요는 없지요. 한국문학의 격식과도 같은 진지한 정서, 묵직한 주제 등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또, 될 수 있는 대로 직접적이고 간결한 구어체 문장을 써요. 고상하고 문학적인 단어를 멀리하는 편이 내용전달에 효과적이에요.”

등단작 ‘프랭크와 나’ 역시 그의 소설관을 반영한다. 순박한 한국 남자가 캐나다에서 랍스터를 수입하는 사업을 벌이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이야기다. 랍스터 공급책 사촌형 프랭크가 동거녀와 헤어지면서 일이 꼬인다. 실의에 빠진 프랭크는 술김에 흑인 깡패를 폭행하고, 갱단 두목에게 쫓긴다. 토론토에서 살벌한 보복극에 휘말린 남자는 랍스터 구경도 못한 채 우왕좌왕한다.

‘세일링’은 한국이 배경이다. 대서는 성묘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느닷없이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 숙영과 다툰다. 아내에겐 매일 다정하게 통화하는 남자가 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 답답해 하는 대서는 고속도로에서 비현실적인 거대한 배와 맞닥뜨린다. 배는 일순 일상의 비루함을 잊고 숭고함을 느끼게 한다. 이 이야기의 등장인물을 마이클과 제인, 장소를 한갓진 미국 시애틀 농촌으로 바꿔도 전혀 무리가 없다. 작가는 국적에 구애받지 않는 소설을 쓰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격이 떨어지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재미있게 쓰자’는 거지요. 한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이 웃을 수 있도록.” (심재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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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량 2007-09-25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천명관 씨 소설 속 외국 인물들의 이름은 하나같이 흔한 것들이네요. 그 중에서도 대부분은 성경에서 유래한 것들이라 얼마든지 '호환 가능'하고요. 요약하자면 넓은 의미에서 번역 불가능한 부분들을 원천적으로 없애보겠다는 말인데, 한마디 한마디가 상품논리를 충실히 반영하는 것 같아서 조금 불편합니다. 그나저나 요즘 작가들이나 독자들이 한국문학의 족쇄라고 한결같이 말하는 "진지한 정서, 묵직한 주제"야말로 한국문학이 한국문학으로서 미약하게나마 바깥에 소개될 수 있는 밑거름이 아니었을까요. 마음놓고 웃을 수 없었던 그 엄혹하고 처참하던 시절에 그러한 진지함으로 저항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지금과 같은 표현의 자유가 주어졌겠습니까. 여전히 국가보안법은 살아 있는데 말이지요. 그러한 전통을 벗어나고 싶다면 바로 그 전통을 적극적으로 대면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아무튼 추석 잘 보내세요. ^^

로쟈 2007-09-25 09:52   좋아요 0 | URL
"아프리카인 유럽인 남미인 등 전 세계인이 고개를 끄덕일 만한 보편성을 추구"하는 것이 '세계화'라고 하는 데 저로선 동의하기도 공감하기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냥 '가상소설'이라고 하면 좋겠어요. 가상의 공간에서 가상의 배역들이 펼쳐놓는 이야기.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인지 남들이 가지 않아도 좋을 길을 반면교사로 보여주는 것인지 판가름이 나겠지만, 저라면 후자에 걸겠습니다...

하이드 2007-09-25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를 풀어 놓는다거나, 나체막춤을 춘다거나, 트렁크와 난닝구, 깔깔이를 입는 등은 어째, 책에서 봤으면, 작위적이다.고 코웃음 쳤을 작가들의 습관이겠네요. 상상력 빈곤한 기자가 억지로 지어냈거나 ^^; 전 잘 모르지만, 나름 잘나가는 작가님들이라고 하니,더욱 지루한 습관들이네요. 집필습관이 너 재미있으라고 있는거냐?고 한다면 할 말 없지만요.

추석이라 알라딘이 썰렁하네요. 로쟈님, 연휴 잘 보내세요 -

로쟈 2007-09-25 09:53   좋아요 0 | URL
기사에는 출처가 나와 있지 않네요. 직접 설문조사를 한 것인지 술자리에서 들은 것인지도. 하이드님도 명절 잘 쇠시길...

비로그인 2007-09-25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앗- 천명관씨 책이군요.
이번 페이퍼엔 제가 읽어본 책들이 많아서 기쁩니다 ^^
로쟈님 페이퍼 감사드립니다. 명절 잘 보내시고요~ :)

로쟈 2007-09-25 16:11   좋아요 0 | URL
한국소설들을 잘 챙기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