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간한 독자라면 제목에서 조지 스타이너란 이름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요즘은 어지간한 독자들이 드물어졌지만). "영미 비평계에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조지 스타이너(1929- )의 처녀작이자 출세작이 바로 <톨스토이냐 도스토예프스키냐>(1959, 1996)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만 서른에 발표한 책이니까 20대에 쓴 것이고 거의 반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고전적인 연구'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요즘은 저자가 자처하고 있는 '구비평'이라고 무시하는 연구자들도 있지만 이만한 '에세이'를 쓰는 건 드문 열정과 재능의 소산이다). 지난 1996년 예일대출판부에서 2판이 출간된 이 책이 '오늘의 책'이다.

2판의 서문 말미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이 책의 기원은 본문의 첫문장이다: "문학비평은 사랑을 빚진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Literary criticism should arise out of a debt of love.) 어떤 사랑인가? "위대한 예술작품은 폭풍처럼 우리의 마음을 휩쓸어, 지각의 문을 열어젖히고, 그 변형력으로 우리의 신념 체계에 압박을 가한다. 우리는 그 작품의 영향을 기록하고, 우리의 뒤흔들린 정신세계를 새 질서로 정비하려고 한다." 이것이 첫 단계로서 위대한 예술작품의 사랑(자극)과 그에 대한 반응이겠다.

이어지는 두번째 단계는 그러한 영향 혹은 충격을 전달하려고 애쓰는 것: "의사를 전달하려는 본연의 충동에 끌려, 우리는 타인에게 우리 경험의 성질과 힘을 전해주려 한다. 그들 스스로도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고 싶은 것이다. 이 설득하려는 기도에서 비평이 줄 수 있는 가장 진실한 통찰이 비롯된다."(국역본, 3쪽) 그가 이 '비평적 에세이'에서 전달하고자, 혹은 설득하고자 애쓰는 '가장 진실한 통찰'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가 "가장 위대한 두 소설가"(6쪽)라는 것이다. 이 책에 대한 나의 사랑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하지만 이 사랑은 공유하기 어렵다(젠장, 여기서 두 문단을 날려먹고 다시 쓴다). 일단 <톨스토이냐 도스토예프스키냐>의 국역본을 시중에서 구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그의 책으론 <하이데거>(지성의샘)만이 대형서점에 남아있는 정도이다). 해서 도서관에 의존하거나 헌책방을 전전해야 할 터인데, 80년대에 두 종의 번역본이 출간됐던 걸 고려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두 종의 국역본이란 건 윤지관본(종로서적, 1983)과 김석희본(심지, 1983)을 말한다. 내가 갖고 있는 건 윤지관본이고 1983년 초판이다(역자 또한 20대에 번역한 책이군). 이후에 두 작가에 대한 주목할 만한 연구서가 별로 소개된 바도 없으므로 이 책이라도 다시 나왔으면 좋겠다. 1996년에 2판이 나온 사실에서도 알 수 있지만 묵혀두기엔 아까운 책이다.  

저자인 스타이너는 영어권 유수의 대학들에서 학위를 했지만 프랑스 태생이고 영어, 불어, 독어 '트리링구얼'이라고 한다. 스위스의 제네바 대학에서 비교문학 교수로 오래 봉직했지만 저술목록을 보면 언어와 번역의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인 것을 알 수 있다. 역자에 따르면 (1983년 시점에서) "스타이너의 비평 작업은 현대 문명의 패러독소 - 이 고도의 문명이 수많은 야만행위들, 예들 들어 강제수용소, 정치적 탄압, 대규모의 전쟁 등을 자행하고 있다는 -를 의식하고 여기에 대결하려는 태도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비평가의 역할을 현대문학이 과연 이러한 시대에 쇠퇴해가는 도덕적 지성의 힘을 고양시켜 나가고 있는지 판단하는 것이라고 본다."(310쪽) 말 그대로 '고전적인' 비평가의 임무를 상기시켜준다.  

그의 책들 가운데 <비극의 죽음>(1961), <언어와 침묵>(1967), <바벨 이후>(1975) 등이 유명한데 예전에 국내에서 쉽게 원서를 구할 수 있었던 책들이다(나도 소장하고 있다). 물론 그밖에도 최근까지 20여 권 이상의 책이 더 출간됐고, 그 중에서 내가 눈독을 들이고 있는 책은 <안티고네들>(1984). <톨스토이냐 도스토예프스키냐>, <비극의 죽음> 등과 함께 1996년에 보급판으로 다시 출간된 이 책은 부제대로 '서구의 문학과 예술, 그리고 사상에 나타난 안티고네 전설'을 다루고 있다. <안티고네>에 대한 강의를 맡는다면 가장 먼저 참조해볼 만한 책이다.

스타이너가 '고전적인 비평가'라고 적었는데, 그 자신의 표현을 빌면 '구식 비평가'이다(2판의 부제 자체가 'An Essay in the Old Criticism'으로 돼 있다). 그가 염두에 둔 것은 30년대부터 60년대 초반까지 영미비평을 주도한 신비평(New Criticism)일 터인데, 그가 차지하고 있는 '특이한 위치'라는 건 그의 '시대를 거스르는' 비평관과 무관하지 않겠다. 그는 이렇게 적는다.

"현대비평은 조롱조이며 궤변조인 동시에, 철학적 연원과 복잡한 도구를 광범하게 파악하고 있어서, 대개 칭찬하기보다는 매장한다. 사실상, 건강한 언어, 건강한 감수성이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라면, 매장되어야 할 것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수많은 작품이 의식을 풍부하게 하거나 생명의 원천이 되지 못하고, 용이하고 천박하며 일시적 위안을 주는 세계로 끌어들이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책들을 다루는 일은 서평가가 맡아야 하는 기능이지, 명상하고 재창조하는 비평가의 기술이 관여할 바는 아니다."(3-4쪽)

그렇다면, 비평가의 역할을 무엇인가? "서평가나 문학사가와는 달리, 비평가는 걸작에만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의 일차적 기능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하는 일이 아니라 좋은 것과 최상의 것을 구별하는 일이다."(In distinction from both the reviewer and the literary historian, the critic should be concerned with masterpieces. His primary function is to distinguish not between the good and the bad, but between the good and the best.)

"문학비평은 사랑을 빚진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에 이어서 확실한 밑줄긋기가 필요한 대목이다. 내가 마음에 드는 대목은 '좋은 것과 최상의 것을 구별'하는 것이 비평가의 주된 기능이라는 단언. 좋은 작가나 작품을 식별/선별하는 일은 리뷰어(서평가나 서평꾼)에게 맡기고 비평가는 오직 최고의 작품들하고만 씨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겠다(그러고 보면 정작 우리 주변에 '비평가'는 아주 드물다는 걸 알게 된다).  

스타이너 자신이 젊은 날에 쓴 에세이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비평관은 아주 확고하다. 걸작의 기준에 있어서도 그렇다. "비평은 우리에게 위대한 계보의 기억과, 호머에서 밀턴까지 이어지는 고서사시(high epic)의 무쌍의 전통과 아테네, 엘리자베드조, 신고전주의 연극의 찬란함과 소설의 대가들을 환기시켜야 한다." '무쌍의 전통'은 'matchless tradition'을 옮긴 것이다. '버금하거나 견줄 만한 것이 없는 전통'이란 뜻이겠다. 특별히 그가 부각시키고 있는 계보/전통은 '서사시'와 '비극'인데, 상식적으로 알아둘 일이지만, 그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이 두 전통의 적통으로 이해하며 평가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톨스토이는 그의 작품을 호머의 작품에 비교하"는데, "조이스의 <율리시즈>보다 훨씬 엄밀한 의미에서,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는 서사 양식의 부활을 구체화하였고"(8쪽) "도스토예프스키의 경우에도(...) 일반적으로 그의 천재는 희곡적 성격으로, 중요한 점에서 셰익스피어 이래 가장 포괄적이고 자연스런 희곡적 기질로 이해되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위대한 비극 시인의 한 사람이다." 즉 톨스토이는 우리와 가장 가까운 시대의 호머(호메로스)이고 도스토예프스키는 셰익스피어다.

그런 맥락에서도 스타이너가 보기에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는 단순히 '좋은(good)' 작가가 아니다(지적한 대로 '좋은 작가들'은 리뷰어들이 다룬다). 그들은 '최고의(the best)' 작가들이다. 그는 인용하고 있는 영국 작가 E. M. 포스터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영국 소설가도 톨스토이만큼 위대하지는 않다. 다시 말해, 인간의 삶은 가정적인 면이든 영웅적인 면이든, 그처럼 완벽하게 그린 사람은 없다. 또한 어떤 영국 소설가도 도스토예프스키만큼 인간의 영혼을 깊이 파헤친 사람은 없다." 스타이너는 한술 더 떠서 이러한 판단이 영문학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예 소설문학을 통틀어서 그렇다는 것이다(물론 그의 말대로 이러한 판단은 증명 불가능하다. 대신에 그는 '청력'의 문제라고 말한다. 귀 있는 자는 들어보라, 는 것이다). 참고로 포스터의 인용출처는 <소설의 제 양상(Aspects of the Novel)>(1950)이다. <소설의 이해>(문예출판사)라고 번역돼 있는 책이다.

그렇다면, 이제 왜 제목이 "톨스토이냐 도스토예프스키냐(Tolstoy or Dostoevsky)"인가를 물을 차례다. 이미 서사시/비극이라는 문학사의 양대 전통에 대한 언급에서 시사된 것인지만, "그것은 대비를 통해 그들의 업적을 살피고 각각의 천재의 성격을 규정하려 하기 때문이다."(9쪽) 러시아 철학자 베르자예프를 인용하자면, "인간 영혼의 두 양식, 즉 톨스토이적인 정신과 도스토예프스키적인 정신을 규정하는 일은 가능할 것이다."

다시 말해 두 작가와 대면하는 일은 인간 영혼/정신의 두 가지 양식, 더 나아가 두 가지 상이한 세계관과 조우하는 일이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중의 택일은 실존주의자들이 앙가주망이라고 부름 직한 것을 예시하고 있다. 그 선택은 상상력을 인간의 운명, 역사적 미래, 신의 신비에 대한 근본적으로 반대되는 두 해석 중 하나에다 위임해버리는 일이다." 다시 베르자예프의 표현을 빌면,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는 "두 종류의 가정, 존재의 두 기본 개념이 서로 충돌하는 해결 없는 논쟁"의 본보기이다.  

Николай Бердяев Миросозерцание Достоевского

스타이너가 인용하고 있는 베르자예프는 불어판 <도스토예프스키의 정신(L'esprit de Dostoievski)>(1946)인데, 국내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세계관>이란 타이틀로 이경식본(현대사상사, 1975), 류준수본(한양대출판부, 1982), 이종진본(범조사, 1987) 등이 나와 있었다(앞의 두 권은 영역본을 중역한 것으로 보인다. 내가 갖고 있는 건 이종진 역의 범조사 문고본이다). 물론 요즘은 구하기 힘든 책이 돼버렸지만. 이미지는 가장 저렴한 러시아어 문고본의 <도스토예프스키의 세계관>.  

 

 

 

 

자, 이제 해야 할일은 보다 본격적으로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읽고, <톨스토이냐 도스토예프스키냐>를 읽는 것이다. 톨스토이를 읽는다면 그의 데뷔작이자 자전 3부작의 첫 작품인 <어린시절>(1852)부터 읽어야겠다. 최근 다시 나오기 시작한 새 톨스토이전집의 1권 <소년시절-청소년시절-청년시절>(작가정신, 2007)을 따르자면 '소년시절'이 될 테지만 관례적으로 '어린시절' 내지는 '유년시절'('유년시대')로 번역된 작품이다(영어로는 'The Childhood').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라면 데뷔작인 <가난한 사람들>(1846)로부터.

 

 

 

 

각각 <부활>과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이르는 긴 여정이다(<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최근 새 번역본이 출간됐다).

  

 

 

 

길잡이가 될 만한 책들이 많지는 않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나란히 다루고 있는 책으로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평전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자연사랑, 2001)을 들 수 있겠다. 츠바이크가 그런 타이틀의 단행본을 쓴 건 아니고 그의 <천재와 광기>(예하, 1993)에서 두 작가에 관한 대목만 따로 묶은 것이다(교열상태는 상당히 불량하다). 러시아 상징주의 작가 D. 메레지코프스키의 책도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금문, 1996)로 소개되었었지만 절판됐다. 스타이너의 표현을 빌면 "변덕스럽고 신용이 없지만, 많은 것을 알려주는" 책이다(국역본 각주에는 '메레즈프스키'라고 표기돼 있는데 착오이다).

그리고 인디북에서 나온 박형규판 톨스토이 선집의 서론격인 <톨스토이>(인디북, 2004). 두툼한 책이니 사전 정도로 활용할 수 있겠다. 톨스토이의 역사관을 다룬 이사야 벌린의 <고슴도치와 여우>(비전비앤피, 2007)도 읽어둘 만한 고급한 에세이지만 국역본은 교열상태가 좋지 않다(게다가 러시아사와 톨스토이에 대한 무지가 너무 도드라지는 번역이다). 

한편 도스토예프스키에 관한 연구서로 모출스키의 평전과 (절판된) 바흐친의 <도스토예프스키의 시학> 등을 제외하면 시중에 나와 있는 건 국내 전공자들의 연구서이다. 권철근 교수의 <도스토예프스키 장편소설 연구>(한국외대출판부, 2006)와 조주관 교수의 <죄와 벌의 현대적 해석>(연세대출판부, 2007)이 최근에 나온 대표적인 저작들인데, 일반 독자라면 굳이 참조할 필요가 없겠지만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대학 강의'가 궁금한 독자라면 읽어볼 만하다. 여타의 많은 참고문헌들은 이런 연구서들의 부록을 참조하시길...

07. 09. 24-25.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심술 2007-09-24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두 쉬는데 로쟈님만 바쁘시군요. 한가위 잘 보내세요. 안타깝게도 전 어지간한 독자는 못 되는군요.

심술 2007-09-24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도 잘 이해는 안 되지만 인문학이 참 깊고도 어려운 거구나 하는 건 올려 주시는 글 읽으며 깨닫고 있습니다.

로쟈 2007-09-24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페이퍼가 저에겐 '쉰다'는 의미입니다.^^; '어지간한 독자' 같은 얘기는, 아시겠지만, 좀더 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죠. '인문학이 참 깊고도 어려운 거'라는 인식을 심어드렸다면 제가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사실은 인문학의 '대중화'에 한몫한다면서 이러고 있는데 말이죠...

심술 2007-09-24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망과 함께 자극과 관심,흥미도 주시니까 너무 고민하지 마세요.^^
 

'푸슈킨의 돈후안 텍스트'에 이어지는 글이다. 역시나 2004년 가을에 작성된 것이고 모스크바통신에 올려놓았던 적이 있다. 다시 올리면서 이미지들을 덧붙여둔다. '돈후안주의'란 테마와 관련하여 관련서와 영화의 이미지도 몇 종 나열해본다. 말론 브란도와 조니 뎁이 주연했던 영화 <돈주앙>은 볼 만한 영화이다. 가장 최근에 나온 소설 <돈주앙의 잃어버린 일기>(램덤하우스, 2007)은 언제 한번 살펴봐야겠다... 

 

 

 

 

푸슈킨의 <석상손님>(1830) 읽기의 계속이다. 주된 내용만 간추리면서, 푸슈킨이 해석하고 있는 ‘돈후안주의’의 의미가 무엇이며, 그것이 왜 ‘파멸’에 이르는가에 대한 나름의 의견을 제시하도록 하겠다. 네 개의 장면으로 구성돼 있는 <석상손님>(영어로는 'The Stone Guest')은 돈후안과 레포렐로가 마드리드에 도착한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태초에 욕망이 있었다”에 대응하듯이 맨처음 입을 여는 것은 리비도-돈후안인바, 그의 첫 대사는 “여기서 밤까지 기다리자.”이다. 물론 유혹자 돈후안이 활동하기에 적합한 시간이 낮이 아니라 밤이라는 것은 자연스러우며, 돈후안을 푸슈킨의 분신으로 볼 경우 그가 푸슈킨의 에고가 아닌 리비도의 형상이라는 점은 바로 이 첫대사에서부터 암시되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사는 “아, 마침내 우리가 마드리드의 성문에 이르렀구나!”인데, 이 대사는 주의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먼저, 공간적 배경의 변화. 돈후안 텍스트의 기본적인 배경은 스페인의 세비야 외에 이탈리아의 항구도시 나폴리나 시칠리 등이며 마드리드가 명시적인 배경으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물론 모차르트의 <돈조반니>에서 돈후안(돈죠반니)의 여성 편력을 늘어놓을 때 적어도 5개국이 거명되며(돈후안이 농락한 여성의 숫자는 이탈리아에서 641명, 독일에서 231명, 프랑스에서 100명, 터키에서 91명, 스페인에서 1,003명 등 총 2,066명이다. 물론 이러한 과장된 숫자가 <돈조반니>에 익살극적인 성격을 강화시켜준다. 한편, 이 숫자는 안나 아흐마토바를 인용한 것이며, 주판치치에 따르면 이탈리아에서 640명으로 한 명 적다. 그게 그거겠지만), 여자의 외모를 가리지 않는 그가 특정한 도시를 가렸을 리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석상손님>에서 공간적 배경이 ‘세비야’에서 ‘마드리드’로 옮겨진 것은, 작가 푸슈킨과의 관련성을 노골적으로 암시한다. 즉 17세기 스페인의 지방도시 세비야가 아닌 수도 마드리드에 대응하는 것은 19세기 러시아의 수도 페테르부르크이며, 마드리드에 다시 (몰래)입성한 돈후안은 유배중이던 1820년대에 미하일롭스코예에서 여러 차례 페테르부르크로의 입성을 시도했던 푸슈킨의 모습을 비틀어서 재연하고 있다(‘마드리드의 돈후안’은 ‘페테르부르크의 푸슈킨’이다).

둘째, “우리가 성문에 이르렀다”는 표현에서 ‘이르다/도달하다’란 러시아어 동사는 보통 (공간적으로)‘어떤 장소에 도달하다’란 뜻과 함께 (시간적으로)‘어떤 연령에 도달하다’란 문구를 구성한다. 이때의 ‘어떤 연령’이란 대개 성년/어른을 가리키며, 공간개념의 ‘문’은 성년/어른의 문턱이라는 시간개념의 흔한 은유이다. 그리고 1830년 가을, 푸슈킨은 이미 지적한대로 콜레라 속에서도 바로 이 문턱(=결혼)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해서, 돈후안과 푸슈킨은 모두 어떤 문턱에 자리하고 있다. 문제는 그 문턱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문턱넘기를 주제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석상손님>은 입사제의적 드라마이며, 이 드라마의 그러한 성격은 돈후안의 첫대사에 이미 새겨져 있다.

그리고,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드라마 텍스트에 최초로 등장하는 인칭대명사 ‘우리’이다. 돈후안이 ‘우리’라고 일컫은 것은 물론 돈후안 자신과 하인 레포렐로이다. 즉 리비도-돈후안과 레포렐로-푸슈킨이다. 돈후안에게 ‘사회’란 바로 레포렐로와의 2자적 관계를 뜻하는바, 그것은 사회라기보다는 ‘유사-사회’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2자적 관계, 즉 하인(=엄마) 레포렐로가 주인(=아이) 돈후안의 모든 요구를 들어주는 식의 관계란, 아이와 엄마라는 기본적/모태적 2자 관계의 변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경우엔 그러한 2자적 관계에 제3자로서의 ‘아버지’ 혹은 ‘아버지의-이름’이 개입함으로써 아이가 상징적 거세를 통해 사회라는 상징적 질서에 편입될 수 있도록 해준다. 하지만, 석상손님과의 조우 이전의 돈후안의 세계에는 그러한 ‘아버지’가 부재한다.

물론 제3자로서의 ‘아버지’의 후보가 없지는 않다. 유배지에서 제멋대로 마드리드에 입성한 돈후안이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인물로 꼽는 ‘국왕’이 바로 그이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국왕이 알게 될 경우 어떻게 하실 것 같느냐는 레포렐로의 질문에 대해서 돈후안은 그가 자신을 다시 돌려보낼 것이며, 국사범(國事犯)도 아니기에 목을 베지는 않을 거라고 답한다. 오히려 피살자의 가족들로부터 보호해주기 위해서 유배를 보낸 거라고. 중요한 것은, 스페인의 국왕이 실제로 돈후안을 사랑해서 유배를 보냈는지의 여부가 아니라 돈후안이 그렇게 ‘상상’한다는 점이다. 즉, 그의 상상 속에서 국왕은 자신을 거세할(=목을 벨!) ‘아버지’, 다시 말해서 ‘부권적 기능’의 대행자가 아니라 오히려 피살자의 가족들로부터 돈후안을 보호하고자 하는 ‘어머니’의 형상이다.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는 바이지만, 돈후안의 상상력이란 언제나 2자적 상상력이며 거기에는 어떠한 제3자도 배제돼 있다. 그는 심지어 <장면3>에서는 기사단장의 ‘석상’조자도 그 문법적 성 때문에 여성으로 대우한다. 상징계의 문턱을 제대로 넘어서지 못한, ‘아버지의-이름’이 부재하는 세계에 속한 그는 아직 상상계의 존재이며, 이러한 그에게서 가장 활성화되어 있는 것은 다름아닌 ‘시적 상상력’이다. 결과적으로 그의 파멸을 가져오게 되는 도나 안나와의 만남도 이 상상력에서 처음 비롯된바, <장면1>에서 그는 도나 안나의 발뒤꿈치만 간신히 보고서도, 레포렐로의 말을 빌면, 한순간에 모든 걸 상상해낸다: “나리께는 그걸로 충분하죠. 나리의 상상력은 눈깜짝할 사이에 나머지를 모두 그려내니까요.”

요컨대, 돈후안에게는 3자적 관계를 통해서 유도/형성되는 사회적 자아가 결여돼 있으며(그래서 ‘리비도-돈후안’이다), 사회적 정체성 또한 부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결여/부재의 이면이, 아브람 테르츠(시냐프스키)의 말을 빌면, “모두를 사랑하면서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돈후안식 사랑이고, 푸슈킨이 새롭게 조형해낸 즉흥시인적 자질이다.

하지만, 돈후안의 시적 상상력은 그의 가장 큰 재능이면서 동시에 최대 약점이다. 즉, 도나 안나의 발뒤꿈치는 돈후안에게서 ‘아킬레스의 발뒤꿈치’였다는 게 밝혀지는바, <장면3>에서 그녀를 유혹하려는 자신을 (죽은)기사단장이 어떻게 생각할 거 같으냐는 레포렐로의 물음에, 돈후안은 그가 결코 질투하지 않을 거라고 ‘상상’한다. 그는 시적인 상상력으로 여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지만, 한편으로 기사단장(석상손님)에 대한 과소평가와 불경을 유도한 것도 이러한 그의 상상력이며, 결과적으로 이 오도(誤導)된 상상력이 그의 파멸을 부르게 된다.

이미 앞에서 돈후안이 말하는 ‘우리’는 (상징계적)‘사회’가 아니라 (상상계적)‘유사-사회’라는 지적을 했지만, ‘우리’라는 말이 전제하는바, 마치 리비도에 대한 에고(자아)의 관계에서처럼, 레포렐로가 자신의 ‘충직한 하인’으로서 언제나 뒤를 따라다니며 뒤치다꺼리를 해줄 거라는 돈후안의 순진한 기대 혹은 상상이 그려낸 상상적 구성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걸 확인시켜주는 장면을 보라. <장면1>의 마지막 대목이다.

돈후안: 한데 벌써 어두워졌군.
달이 우리 머리 위로 떠올라
이 어둠을 밝은 여명으로 바꾸어놓기 전에
마드리드에 입성하자.(퇴장)

레포렐로: 스페인의 귀족이 도둑처럼
밤을 기다리고 달을 무서워하는군, 맙소사!
빌어먹을 인생이군. 대체 언제까지 저런 작자와
붙어다녀야 하는 거야? 그래, 이젠 힘도 다 빠졌어.


“여기서 밤까지 기다리자.”라고 한 <장면1>의 서두 부분을 이어받고 있는 이 장면에서 암시적이게도 돈후안은 “마드리에 입성하자”는 말과 함께 무대에서 퇴장해버리고 레포렐로 혼자만이 남게 된다(결국은 그렇게 될 것이다). 레포렐로는 돈후안을 ‘도둑’에 비유하면서(그가 ‘도둑’인 것은 사회의 상징적 질서 바깥에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붙어다녀야 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에고(자아)와 마찬가지로 이미 사회화된 존재로서 상식적인 도덕률의 담지자인 그는 하인으로서 부득이 ‘난봉꾼’ 주인 돈후안을 따라다니긴 하지만, 이젠 그의 기력과 인내가 바닥이 난 상태이다. 그러한 사정을 그는 이 장면에서 명시적으로 토로하고 있다. 이미 그는 은연중에 주인의 죽음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지 않았던가. 즉, <장면1>의 중반, 수도승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그는 “돈후안 같은 난봉꾼들은 모조리 자루에 넣어서 바다에 처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레포렐로의 말은 문맥상 돈후안을 “후안무치하고 파렴치한 난봉꾼”으로 보는 수도승의 시각에 맞장구를 쳐주고 자신들에 대한 의혹을 무마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징적 ‘핑계’가 감추고/드러내고 있는 것은 주인 돈후안과 분리되고자 하는 실재적 욕구이다. 그리고 이러한 레포렐로-푸슈킨의 욕구는 텍스트 속에서 교묘하게 실행된다. 마드리드에 도착한 돈후안이 가장 먼저 달려가고자 하는 대상은 라우라인데(“오, 라우라! 나는 곧장 그녀에게로 달려갈 거야”), 돈후안의 걸음을 지체시키면서 수도승에게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는 것은(“저기 오는 게 누굴까요?”), 그리하여 기사단장의 미망인 도나 안나를 돈후안에게 간접적으로 소개하는 것은 레포렐로이며, <장면3>에서 도나 안나와의 밀회를 약속받은 돈후안에게 이번엔 기사단장(석상)의 존재를 환기시키는 것도 레포렐로이다.

주로 돈후안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게 레포렐로의 주된 일이지만, 이 두 경우에 그는 운명의 길라잡이가 된다. 도나 안나와의 사랑이 결과적으로 돈후안의 파멸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라면, 레포렐로는 그 파멸의 간접적인 사주자가 될 것이다(이 드라마를 사실주의적 심리극으로 독해/공연할 경우 <장면4>의 석상손님은 레포렐로가 분장한 것으로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돈후안에게 석상에 대한 ‘공포’를 불어넣은 장본인이며, 도나 안나와의 만남에 대해서 못마땅하게 생각했었다. 한편으로 “내일 준비하게”라고 <장면3>에서 돈후안이 언질을 주지만, <장면4>에서 그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돈후안이 밤이 되길 기다려서 마드리드에 입성하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마드리드는 밤의 공간이고 꿈의 작업이 펼쳐지는 무의식의 무대이다. 물론 거기엔 <석상손님>을 작가 푸슈킨의 ‘백일몽’(프로이트)으로 읽고자 하는 우리의 관심도 반영돼 있다. 주의할 것은 이 백일몽의 무대가 균질적인 무대가 아니라, 이질적인 무대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차이를 낳는 것은 레포렐로의 등장 유무이다. 왜인가? 그는 리비도-돈후안의 충동을 보존하면서도 감시하는 에고(자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돈후안의 ‘진정한’ 판타지는 레포렐로의 부재속에서 펼쳐진다. 레포렐로가 등장하는 장면/무대가 비록 ‘유사-사회’라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상징적 질서가 존중되는 상징계적 공간이라면(물론 이 ‘상징계’는 레포렐로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그가 등장하지 않는 장면/무대는 ‘즉흥시인’ 돈후안의 판타지가 마음껏 펼쳐지는 상상계적 공간이다.

<장면1>과 <장면3>에서 주요 배역은 돈후안과 레포렐로이며, 레포렐로를 기준으로 한 이 상징계 공간은 개방공간이다(해서 가장 ‘현실적인’ 공간이다). <장면2>와 <장면4>는 돈후안의 상상계적 공간이면서 시적 판타지의 공간이다. 그리고 판타지의 특성상 이 두 공간은 폐쇄공간이다. 그의 판타지는 <장면2>에서 상징적 질서(돈카를로스)에 승리를 거두지만, <장면4>에서는 상징적 질서(석상손님)에 아무런 중재없이 충돌하여 패배한다. 그것은 ‘라우라의 집’과 ‘도나 안나의 집’이라는 각기 다른 공간의 성격과도 관련될 것이다. 이에 대해서 차례대로 설명하기로 한다.

<장면1>에서의 2자적 관계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설명한바 있다. 이제 <장면2>로 넘어갈 차례인데, 사실 돈후안과 도나 안나와의 관계를 이 작품의 중심적인 관계축으로 본다면 돈후안과 라우라의 만남을 무대화하고 있는 이 장면은 <석상손님>에서 가장 ‘잉여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잉여성은 거꾸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즉, <장면2>는 푸슈킨판 돈후안 텍스트에서 가장 독창적이며 가장 중요한 장면이다. 돈후안 텍스트의 ‘반복’ 속에서 푸슈킨만의 ‘차이’가 집약돼 있는 것이 바로 이 장면이기 때문이다.

<장면2>는 라우라의 집을 배경으로 저녁식사를 하면서 그녀가 남자 손님들에게 둘러싸여 노래를 불러주는 걸로 시작한다. ‘손님1’의 말을 빌면, 그녀의 노래에는 “당신의 음울한 손님 카를로스도 감동한 눈치이다.” 손님들을 감동으로 몰고 간 그녀의 노래는 “충실한 친구이자, 바람둥이 연인” 돈후안이 지어준 것이다. 그리고, 돈후안이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만큼이나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라우라는 그의 ‘친구’로서 전혀 모자람이 없는 ‘여성 돈후안’이다. 그녀는 만찬이 끝나고 손님들을 돌려보내면서 ‘음울한 손님’ 돈카를로스만은 붙잡는데, 그가 돈후안을 생각나게 해주었다는 이유에서이다. 이어지는 두 사람의 대사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인데, 라우라가 돈후안을 무척 사랑했다는 것과 그녀의 사랑은 순간/현재의 사랑이라는 것. 이 순간/현재에의 충실성이라는 것이 ‘돈후안주의’의 핵심적인 모토이다.

 

 

 



물론 이 충실성의 전제조건으로 놓여 있는 것은 ‘젊음’인바, 젊음이란 티르소의 텍스트에 의하면 ‘죽음과 신의 심판으로부터의 거리’이며, 티르소의 돈후안이 자신의 모토처럼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은 “아직 멀었어!”(국역본에서는 “오래도 두고 보시는구먼.”)이다. 즉, ‘돈후안주의’란 현재의 젊음을 근거로 하여 미래의 죽음과 (기독교 문화권의 경우) 죽음 이후의 심판/정의를 거부하거나 간과하는 태도로 규정될 수 있다.

다르게 말해서, 돈후안주의는 현재의 젊음, 젊음의 현재를 어떠한 규범적 테두리로부터도 벗어나 있는 무제약적인 것으로 예찬하며 숭배하는 태도이다. 따라서, 흔히 돈후안주의로 지목되는 무분별한 여성편력은 돈후안주의의 본질과는 무관하며 그러한 태도의 부수적인 결과일 따름이다. 푸슈킨이 새롭게 제시하고 있는 ‘여성 돈후안’ 라우라의 남성편력이 말해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푸슈킨은 돈후안주의의 핵심으로서 ‘젊음’ 지상주의가 갖는 매력과 위험을 동시에 간파하고 있었고, 이어지는 카를로스와 라우라의 대화는 이에 관한 것이다. 카를로스는 라우라에게 나이를 묻고 18살이라고 대답하자, 그녀가 아직은 젊지만, 그래서 앞으로도 6년간은 남자들이 애무와 아첨과 선물을 갖다 바칠 테지만(젊음은 24살까지이다!), 세월이 흐른 뒤 결국은 늙어서 현재의 젊음을 상실하고 쪼그라질 것이고, 사람들로부터 ‘할망구’라 불릴 거라고 얘기한다. “그때는 뭐라고 말할 것인가?” 즉, 그때도 지금처럼 당당하고 자신만만할 것인가?

카를로스의 대사는 비록 거칠고 분위기에 안 맞는 것이긴 하지만, 이 장면에서 그가 대표하고 있는 ‘산문적 세계관’을 집약하고 있다. 그 세계관은 “시간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예브게니 오네긴> 또한 이러한 주제적 배경을 갖고 있다. 그것이 ‘소설’인 근거이다. 루카치에 따르면, 소설에서 본질은 시간과 함께 주어진다).

거기에 대해서 라우라는 먼 북쪽의 파리에서는 차가운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레몬과 월계수 내음을 풍기고 있는 현재 마드리드의 아늑한 밤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대꾸한다. 그녀의 대사,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죠?”는 티르소판 “아직 멀었어!”의 푸슈킨 버전이면서, 라우라가 대표하고 있는 돈후안적 세계관, ‘시적 세계관’의 논리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그것은 “멈추어라, 너는 진정 아름답구나!”(“Verweile doch! du bist so schön!”) 라는 파우스트적 발견과도 일맥상통한다.

즉, 돈후안주의와 파우스트주의는 모두 지속(=시간)이 아닌 순간에서 삶의 의미(=향락)과 구원을 찾는다는 점에서 동류적이다(푸슈킨은 괴테를 ‘낭만주의의 거인’으로 평가하며, <파우스트>를 바이런의 <만프레드>와 동일시한다). 그 동류적 세계관은 “현재의 순간은 영원하다”는 것으로 집약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순간/현재 앞에서 웃으라고 라우라는 카를로스에게 명령한다.

돈카를로스의 산문적 세계관과 라우라의 시적 세계관의 대결에서 판정승을 거두는 것은 라우라이며, 패배를 자인하는 돈카를로스가 라우라에게 던지는 대사는 ‘사랑스런 악마!’이다. 그리고 <장면4>에서 도나 안나가 돈후안을 지칭하는 말도 ‘악마’이다: “당신은 파렴치한 난봉꾼이고, 살아있는 악마라고들 말하죠.” <석상손님>에서 돈후안주의는 ‘사랑스러운 악마’ 라우라와 ‘살아있는 악마’ 돈후안 커플에 의해서 대변되는바, 가령 <장면3>에서 도나 안나와의 대화 장면에서 도나 안나가 “절 사랑한 지 오래되었나요?”라고 묻자, 돈후안은 “오래 되었는지 아닌지는 저도 모릅니다./ 다만 순간적인 삶의 가치를 알게 된 바로 그 순간부터,/ 행복이란 단어가 무얼 의미하는지 알아차린/ 바로 그 순간부터입니다.”라고 답한다.

거기서도 돈후안주의의 모토인 ‘순간적인 삶의 가치’에 대한 옹호가 다시 반복되고 있다(더불어 지적하자면, 돈후안주의자의 행복은 언제나 일순간이다). 그리고 그러한 옹호의 수사학은 매혹적이다. 도나 안나가 돈후안을 가리켜 ‘위험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런 수사의 위험성을 감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매혹에 일단은 굴복하며 밀회를 약속한다. 사실, 순간에 충실한 사랑은 지속이란 관점에서 보면, 변덕스러운 사랑이지만 결코 거짓된 사랑은 아니다. 사랑하는 그 순간만큼은 진실이 담지돼 있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즉, 돈후안은 모든 여자를 진실되게 사랑한다. 따라서 도나 안나에 대한 돈후안의 사랑은 진실한 사랑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와의 사랑이 돈후안의 편력에서 특권화될 수는 없다.

라우라와 돈후안 두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오직 충만한 현재만을 사는 돈후안주의자에게 과거와 미래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여(무시간성은 리비도를 규정하는 성격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들에게서 어떠한 후회나 책임감도, 혹은 죄의식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장면4>에서 돈후안은 도나 안내에게 자신이 남편을 죽였다는 걸 고백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당신의 남편을 죽였소./ 그리고 거기에 대해선 후회하지 않아요./ 나에겐 아무런 참회도 없습니다.”). 요컨대, 그들은 그저 후안무치하며 순진무구할 따름이다. 그것을 범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장면2>의 후반부이다.

불청객 돈후안이 라우라의 집에 들이닥치자 라우라는 다시 곧장 돈후안의 품에 안기고 돈카를로스는 (기사단장인 형 돈알바르에 대한) 복수와 (라우라에 대한) 질투의 칼을 빼어든다. 하지만, 결투에서 단숨에 그의 숨을 끊어놓는 건 돈후안이다. 그리고는 이 돈후안주의 커플은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망자(亡者) 앞에서 사랑을 나누는바, <장면2>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돈후안: 라우라, 그자를 오래전부터 사랑했나?
라우라: 누구를요?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예요?.
돈후안: 고백해보시오, 내가 없는 동안 몇 번이나 날 배신했지?
라우라: 당신은요, 건달 나리?
돈후안: 말해보시오... 아니, 나중에 따집시다.

이 장면에서 돈후안은 잠시 라우라에게 질투의 감정을 피력하지만, 현재의 충만을 사는 돈후안주의자들에게 과거사(過去事)가 문제될 리 없다. 해서, “나중에 따집시다”는 이들의 또다른 표어가 된다. <장면2>에서는 ‘돈카를로스’라는 제3자가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고작 ‘3각 관계’로 머물면서, 3자적 관계(=상징적 질서)로 이행하지 못한 것은 돈카를로스가 대표하는 상징계의 권위가 돈후안과 라우라, 두 사람을 제압하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즉, 돈카를로스는 ‘유사-제3자’이다. 그는 돈후안을 ‘거세’하기 위한 칼을 빼들지만, 돈후안주의의 공간인 라우라의 집에서 그를 이길 수는 없다. 사실, 그는 돈후안에게 패배하기 이전에 이미 라우라와의 (말)싸움에서도 패배하지 않았던가. 그의 산문적인 언어는 라우라의 시적인 언어를 당해내기에도 역부족이었다. 이로써 돈후안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좀더 강한 적수가 필요하게 되는데, 그것은 티르소 텍스트에서부터 도입된바, 석상의 ‘오른손’(=신의 정의)이다. 그리고, <장면3>과 <장면4>는 돈후안 혹은 돈후안주의가 비로소 제격의 적수를 만나서 제압당하는 이야기이다.

<장면3>은 <장면4>의 결말을 예비하는 장면인데, (1)돈후안과 도나 안나의 대화, (2)돈후안과 레포렐로의 대화, 두 대목으로 구성돼 있다. 여기서 주의해볼 대목은 ‘연가를 부르는 즉흥시인처럼’ 도나 안나에게 말을 걸 궁리를 하던 그가 기사단장(석상)에 대해서 ‘상상’하는 부분이다.

벌써 올 때가 되었는데. 그녀가 없으면,
내 생각에, 기사단장도 심심할 거야.
여기서는 아주 거인으로 서 있구만!
어깨 좀 봐! 헤라클레스를 뺨치는군!..
고인은 실제로 왜소하고 허약했었는데,
여기서는 발돋음을 하고 손을 뻗쳐봐야
자기 코끝에도 못 미치겠어.
우리가 에스코리알 뒷편에서 맞붙었을 때
그는 내 칼에 찔려 찍 소리 못했지,
핀에 꽂힌 잠자리처럼. 하지만 그는
오만하고 용감했어. 엄격한 정신을 정신을 가진 데다...



기사단장의 석상과 돈후안이 처음 대면하는 장면인데, 실제의 왜소하고 허약했던 기사단장(석상)은 세 가지 이미지/비유를 통해서 그에게 제시되고 있다. 즉, 기사단장(고인)-거인(헤라클레스)-잠자리가 그것들이다. 그리고, 기사단장에 대한 이 세 규정항은 라캉의 도식을 빌자면, 실재(the Real)-상징계(the Symbolic)-상상계(the Imaginary)라는 RSI 3항에 그대로 대응한다. 여기서 특별히 문제되는 것은 (상상계의)‘잠자리’와 (상징계의)‘헤라클레스’ 사이의 간극이다.

석상 앞에서 돈후안은 이러한 간극에 ‘처음’ 노출되는 것이며, 이것이 그를 경탄하게 하면서 동시에 당황하게 만든다. 그의 상상은 거인(석상)에서 실제의 기사단장으로, 그리고 잠자리로 이행하면서 차츰 현실을 자기의 것으로 전유(專有)하지만, 그러한 전유는 (예전만큼)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즉, 거기에 틈새가 생긴 것이며, 이러한 틈새는 곧장 ‘하지만’이란 반전을 가져온다. “하지만, 그는 오만하고 용감했어. 엄격한 정신을 가진 데다..” 때마침 도나 안나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나열은 한동안 더 계속되었을 것이고, 상상력의 이러한 반전은 다시 “그는 정말로 위대한 거인이었어!”라는 정점으로까지 치달았을지도 모른다.

죽은 기사단장의 거인 같은 석상에서 돈후안은 비로소 제3자로서의 ‘아버지’ 형상을 보게 되는 것이며(‘엄격한’이란 수식어!), 이 체험은 그에게 경탄과 함께 (무의식적인) 공포로 각인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도나 안나는 따라서 전형적인 ‘엄마’의 형상이다. 다른 돈후안 텍스트들에서와는 달리 <석상손님>에서는 기사단장이 도나 안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남편으로 등장하고, 도나 안나와의 만남 이전에 돈후안이 결투에서 기사단장(돈알바르)를 죽였기 때문에 이 작품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구도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인 것으로 생각되기 쉬우나, 그러한 판단은 성급한 것이다. 오히려 푸슈킨의 텍스트는 티르소 등의 텍스트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전형적인 구도에 더 충실하다. 그리고, 도나 안나의 실제 남편이었던 돈알바르가 아닌 그의 석상을 ‘아버지’의 형상으로 가져왔다는 점에서 푸슈킨은 <‘아버지’에서 ‘아버지의-이름’으로의 이행>이라는 라캉적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해를 선취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돈후안이 질투하는 것은 그가 죽인 돈알바르가 아니라 대리석 석상이며(석상을 부러워하는 돈후안의 대사: “저는 말없이 경탄하며 생각합니다. 그녀의 신성한 숨결로 따스해지고 사랑의 눈물로 범벅이 된 차가운 대리석, 저 대리석의 임자는 행복하구나라고...”), 이 작품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구성하는 <아이-엄마-아버지>는 <돈후안-도나 안나-석상>의 3항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도를 전제할 때 <장면4>에서 도나 안나에 대한 돈후안의 ‘지순한’ 고백은 문자 그대로 읽혀져야 할 것이다.

그렇소, 나는 오랫동안 방탕의 충실한 제자였소.
그러나 당신을 본 순간부터
나는 완전히 다시 태어난 것 같소.

여기서 ‘다시 태어났다’는 말이 문자 그대로 뜻하는 바는 돈후안이 (다시 태어난)‘어린아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르네상스(Renaissance)’와 연관짓는 것은 과장이며, 이 고백의 진실성 여부를 따져묻는 것은 부차적이다. ‘방탕의 제자’이면서 ‘순간의 사제’인 돈후안은 달콤한 한순간을 위해서 매번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며, 그를 통해서 되살아난다. 그리고 이러한 ‘갱생(rebirth)’이 그가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다시 <장면3>에서 돈후안이 도나 안나의 발에 엎드려 본격적인 구애에 돌입한 대목을 잠시 따라가본다.

도나 안나 맙소사! 일어나세요, 얼른 일어나요... 당신은 대체 누구시죠?
돈후안 희망없는 열정의 희생자요, 불행한 사내입니다.
도나 안나 오 하느님 맙소사! 여기, 무덤 앞에서!/ 저리 가세요.
돈후안 1분만, 도나 안나,/ 제발 1분만!
도나 안나 누가 오기라도 하면!..
돈후안 철문은 닫혀 있습니다. 딱 1분만!
도나 안나 그래요? 그런데, 왜죠? 무얼 원하시는 거예요?
돈후안 죽음입니다. 오, 지금 당장 당신의 발 아래 죽었으면.(...)


이런 대목에서 돈후안의 구애는 어린아이의 투정/요구와 구별되지 않는다. 더불어 “제발 1분만!”이라고 간청하는 돈후안의 모습은 순간에 모든 것을 거는 돈후안주의의 이면이라 할 만하다. 무얼 원하는 거냐는 물음에 대해서, 돈후안은 단도직입적으로 ‘죽음’이라고 답하는바, 사실 돈후안의 사랑을 이끌고 가는 힘은 욕망이라기보다는 충동이다. 그것은 죽음/고통을 기꺼이 감수한다는 점에서 쾌락원칙을 넘어서며, 라캉적 의미에서 향략(jouissance)에 값한다.

이런 점에서, 몰리에르의 <돈주앙>의 주인공 돈후안(돈주앙)을 드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의 주인공 발몽과 대비시키고 있는 주판치치의 지적은 시사적이다. 그녀는 발몽과 돈후안의 차이를 ‘욕망(desire)’과 ‘충동(drive)’의 차이로 규정하면서, 돈후안의 형상을 이렇게 설명한다.

“반면에 돈후안은 자신의 행동을 이끌고 가는 틈새를 만족 그 자체에서 찾는다. 그의 경우는 욕망의 환유가 아니다. 즉 (욕망의) ‘진정한’ 대상을 영원히 붙잡지 못하는 경우가 아니다. 그는 자신에게 맞는 어떤 유일한 여자를 찾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한 여자에서 다른 여자로 계속 옮겨가는 것은 실망이나 결여, 즉 그가 이전의 여자에게서 찾지 못한 어떤 것 때문이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돈후안에게는 모든 여자가 다 잘 맞는 여자이며, 그를 계속적인 편력으로 이끄는 것은 그가 이전의 연인에게서 발견하지 못한 어떤 것 때문이 아니라 정확히 그가 발견한 어떤 것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지 않고도 만족을 얻는다. 혹은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의 목적이란 다름 아니라 ‘반복적인 편력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며, 그는 바로 거기에서 만족을 얻는다. 바로 이것이 돈후안을 충동의 형상으로 만들어준다.”(<실재의 윤리>, 214-5쪽, 번역 수정)

원문은 이렇다: “Don Juan, on the contrary, finds the gap that constitutes the drive of his actions in satisfaction itself. His case is not that of the metonymy of desire, of the eternal elusiveness of the 'true' object (of desire). He is not looking for the right woman; his constant moving on to another woman is not motivated by disappointment or lack, by what he did not find with the previous woman. On the contrary, for Don Juan each and every woman is the right one, and what drives him further is not what he did find not find in his previous lover, but precisely what he did find. He attains satisfaction without attaining his aim or - more exactly, he attains satisfaction precisely in so far as his aim is nothing but 'getting back into circulation'. This is exactly what makes Don Juan a figure of the drive."(A. Jupancic, 'Ethics of the Real: Kant and Lacan', Verso, p. 136)

이러한 지적은 몰리에르의 돈후안뿐만 아니라, 푸슈킨의 돈후안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즉, 돈후안이 이네자에서 라우라로, 라우라에서 도나 안나로 옮겨가는 것은 어떤 실망/결여 때문이 아니라 지극한 만족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 만족하며, 그의 반복적인 편력은 오히려 이 만족에서 비롯한다. 따라서, 도나 안나를 돈후안의 최후의 여인, 곧 진정으로 그가 찾던 여인으로 이해하고, 그가 진정한 사랑을 발견한 순간에 파멸하는 것이 이 작품의 비극성이라고 보는 것은 돈후안을 충동의 인간이 아니라 욕망의 인간으로 전제할 때 가능한 이해이다.

<장면4>에서 도나 안나에게 (다른 여인들에 대해서)“그들 중 이제까지 내가 사랑한 여인은 한 명도 없소.”라고 한 돈후안의 고백이 이러한 시각의 이해를 지지하는 듯하지만, 돈후안이 순간/현재에 충실할 뿐이라는 점을 다시금 상기할 필요가 있다(더불어 그는 도나 안나로 인하여 다시 태어나지 않았던가?). 즉, 그의 그런 고백은 ‘진실’이지만(그는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다), ‘사실’은 아니다(하지만 그를 믿을 수는 없다).

요컨대, 그는 충동의 인간이라 할 수 있는바, 이 충동의 보다 정확한 이름은 ‘죽음충동(death drive)’이다. <장면4>에서 특히 두드러지지만, 그러한 충동의 인간으로서, 그리고 순간의 인간으로서 그는 언제라도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죽음이란 게 뭔가요? 만남의 달콤한 한순간을 위해서라면/ 나는 아무런 불평없이 목숨을 바칠 겁니다.”) 그렇다면, 언제라도 죽을 준비가 돼 있는 죽음충동의 인간 돈후안이 결국엔 죽음을 맞이하는 ‘당연한’ 결말은 어떻게 준비되며,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돈후안의 비극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이 작품의 궁극적인 메시지는 무엇인가?

<장면3>에서 도나 안나로부터 밀회의 약속을 얻어낸 돈후안은 “난 어린아이처럼 행복하다!”고 말한다. 이 ‘환희’의 표현은 돈후안주의의 핵심을 집약하고 있는 문구이다. 이미 <석상손님>에서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구도에 대해서는 지적한바 있는데, 그 드라마가 본격적으로 무대화되는 것은 바로 이 장면에서부터이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그는 기사단장의 석상을 다음날 도나 안나의 집으로 오도록 초대한다. 그것도 밀회를 나누는 자리에 보초를 서라고. 돈후안의 의도는 물론 도나 안나에 대한 정념에 드리워져 있는 기사단장의 그림자를 제거해보고자 하는, 그래서 자신의 ‘완전한 승리’를 확인해보고자 하는 것이겠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의 준엄함/엄격함을 모르는 어린아이 같은 욕구이다. 그런 그에게 레포렐로는 석상에의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결국 레포렐로의 ‘엄살’을 물리치고 돈후안은 직접 석상에게 초대의 말을 하는데, 이때 그는 석상을 ‘기사단장’이라고 호칭한다. 이미 지적한대로, (죽은)‘기사단장’과 ‘석상’은 다른 차원에 속하지만 어른-아이 돈후안은 그 차이를 구별해내지 못한다. 그는 자신이 이미 죽인바 있는, 그래서 만만하게 본 기사단장을 초대했지만, 정작 초대에 응해 <장면4>에서 나타난 것은 ‘거인’으로서의 ‘석상손님’이다. 그 석상손님은 그가 이길 수 없는 적수였다.



여기서 작가 푸슈킨에게서 성숙이란 무엇이고, 행복이란 무엇이었나를 물어볼 필요가 있다. 역시나 ‘볼지노의 가을’의 완성된 <예브게니 오네긴>(1823-1830)에서 우리는 그에 대한 시사를 얻을 수 있다(이 작품의 결말 장면에서도 <오네긴-타치야나-장군(남편)>의 오이디푸스 구도가 반복된다. 그것은 <석상손님>의 결말과 동형적이다).

 

 

 

 

돈후안과 마찬가지로 또 다른 ‘어린아이’ 오네긴이 여행에서 돌아올 무렵, 자연의 순리/법칙에 대해서 화자-푸슈킨이 ‘명상’하고 있는 대목(8장 29연)에서, 그는 동일한 사랑의 열정/충동이라도 계절에 따라 의미가 달라짐을 지적한다. 그것은 마치 봄날의 비가 화려한 꽃과 열매를 맺게 해주지만, 차가운 가을의 비바람은 주변의 숲을 벌거숭이로 만들어놓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물론 이러한 이러한 이치는 자연의 봄/가을에 대응하는 인생의 봄/가을에도 적용된다. 자연적 시간에서와 마찬가지로 인생의 사계(四季)에도 모퉁이, 즉 ‘전환기’가 가로놓여 있으며(돈후안이 ‘문’ 앞에 서 있었음을 기억하자), 그것을 기준으로 하여 삶의 가치들은 전도되기도 한다. 예컨대, 열정이란 것도 청춘의 열정과 때늦은 나이의 열정이 삶에서 갖는 기능은 봄비와 가을비의 그것처럼 상반되며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푸슈킨의 시간적 상상력은 공간에서의 환유적인 상상력과는 달리 은유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에게 시간은 같은 시간의 연속이 아니라 다른 시간들로의 도약이다. 시간은 양적인 것이 아니라 질적인 것으로 주어지며, 이 시간을 살아가는 일이란 생장하고 변화/성숙하는 일이다. 그 점을 ‘일상적인 통찰’로서 간명하게 말해주는 것이 8장의 10연이다.

젊어서 젊은이다운 자는 행복하며,
제때에 성숙한 자는 행복하다.
나이를 먹으며 차츰 삶의 냉담함을
견딜 수 있게 된 자는 행복하다.


이 첫 4행이 던지는 메시지는 상식적이며 간단하다(푸슈킨은 어려운 진리를 얘기하지 않는다). 즉, 인간의 행복이란 인생의 사계에 걸맞게 처신할 때 얻어진다는 것이다. 젊었을 때 젊은이다는 열정으로 삶에 뛰어드는 자는 행복하다. 그리고, 나이 들어 삶의 냉담함을 견딜 수 있게 된 자, 그와 타협할 수 있게 된 자는 행복하다. 물론 이때 후자의 행복은 (열정의) 어떤 상실을 전제로 한 ‘차가운 행복’일 것이며, 따라서 거기에 어떤 아이러니가 개입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그 아이러니는 성숙의 지표이자 대가이다.

해서, 때가 되면 젊음(러시아어로 ‘몰로드’)도 차츰 삶의 냉담함(러시아어로 ‘홀로드’)과 타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푸슈킨의 지혜이다. 젊음은 영원하지 않으며, 시간 앞에서 패배하기 마련이다. 젊은날의 방황/방랑은 아름답지만, 늙은날의 그것은 안쓰럽다. 따라서 젊음을 밑배경으로 하여 충만한 순간/현재만을 삶의 시간으로 누리고자 하는 돈후안주의가 궁극적으로 비극적인 결말에 이르는 것은 당연하다. 젊음/열정의 상징 돈후안(몰로드)는 냉혹한 석상손님(홀로드)을 이겨낼 수 없는 것이다.

다시 <석상손님>으로 돌아오면, <장면4>에서 ‘돈디에고’(‘돈디에고’란 이름은 티르소 텍스트에서 돈후안의 ‘아버지’로 등장한다. 돈후안은 ‘아버지’라는 가면을 쓰지만, 그는 ‘아버지’가 될 수 없다) 돈후안은 도나 안나가 남편을 죽인 원수인 돈후안을 만나게 되면 ‘악당’의 가슴에 칼을 꽂겠다고 하자, 가슴을 내밀며 바로 자신이 돈디에고가 아니라 돈후안이라고 고백한다. 물론 이러한 태도는 석상을 밀회의 자리에 부른 것과 마찬가지로 보다 완전한 사랑/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돈후안의 도전/도박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믿지 않아 하는 도나 안나에게 세 차례나 반복해서 자신의 이름을 밝힌다.

돈후안이 ‘돈후안’임을 시인하는 이 대목은 두 가지 방향에서 읽힐 수 있다. 먼저, 이 또한 고도의 돈후안적 전략으로 보는 것이다. “인간은 진실 그 자체를 이용해서 타자를 속인다. 모두가 가면 뒤에서 진실한 얼굴을 찾는 세계에서 그들로 하여금 길을 잃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진실 자체의 가면을 쓰는 것이다. 하지만, 가면과 진실을 일치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지젝,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84쪽) 즉, ‘돈후안’은 돈후안의 또다른 가면에 불과하다(도나 안나를 속이기에/유혹하기에 가장 적합한). 물론 이때 전제가 되는 것은 돈후안 자신조차도 그것이 가면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돈후안주의가 갖는 ‘진정성’의 조건이다.

또다른 방향은 자신의 이름을 세 번 (부인하는 대신에) ‘인정’함으로써 돈후안 스스로가 ‘상징적인 거세’를 수행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자아의 자기정체성이라는 것은 사회적 ‘호명(interpellation)’, 혹은 이데올로기적 호명에 의해서 가능하게 되는바, 돈후안이 그러한 호명으로서의, 또는 ‘고정적 지시자’로서의 (상징계적)‘돈후안’을 자신의 가면이 아닌 정체성으로 승인/수용할 때, 더 이상 (상상계적)‘돈후안’은 남아있지 않게 된다. 즉, ‘돈후안’은 이미 죽은 것이다.

따라서, <장면4>에서 돈후안은 두 번 죽는다(도나 안나도 그에게 두 번 키스한다). 그것은 <장면2>에서 돈카를로스가 라우라와 돈후안에 의해서 두 번 죽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이 두 죽음은 실제의 무대에서도 ‘장면화’된다. 도나 안나의 작별의 키스를 받고 돈후안은 무대에서 퇴장하지만(첫번째 죽음), 석상에 쫓겨 다시 무대로 뛰어들어왔다가 다시 석상의 손에 이끌려 무대에서 꺼져버리기(두번째 죽음) 때문이다.

돈후안 그 차갑고 평온한 키스를 한번만 더...
도나 안나 당신은 참 성가신 분이군요! 자, 여기 있어요.
무슨 문 두드리는 소리지? 어서 숨어요, 돈후안.
돈후안 안녕, 잘 있어요, 나의 사랑스러운 친구.
(퇴장했다가 다시 뛰어들어온다.) 아!
도나 안나 무슨 일이에요? 아!..
(기사단장의 석상이 들어온다. 도나 안나는 쓰러진다.)
석상 부른대로 왔노라.
돈후안 오 맙소사! 도나 안나!
석상 그녀를 놔두게./ 모든 건 끝났어. 자네, 떨고 있구만, 돈후안.
돈후안 내가? 천만에. 내가 자넬 불렀고, 이렇게 보니까 반갑네.
석상 그럼 손을 내밀게.
돈후안 여기 있네... 오, 이 자의 돌손은/ 정말로 꽉 쥐는구나!
나를 놔줘, 내 손을, 어서 놓아달라고...
나는 죽는구나, 끝장이야, 오 도나 안나!
(둘은 바닥으로 꺼져버린다.)

도나 안나의 ‘차갑고 평온한 키스’는 작별의 키스이면서 이미 죽음의 키스이다. 그 키스는 “여기 있어요.(영어로는 ‘Here he is’)”라고 말하면서(러시아어에서 ‘키스’는 남성명사이다), 그 이면에서는 “여기 그가 있어요.”라고 남편인 기사단장(석상)의 도래를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악수의 손을 내밀라고 한 석상에게 돈후안이 “여기 있네(영어로는 ‘Here she is.’)”라고 한 대사도 이면적으로는 “여기 그녀가 있네.”란 뜻을 가지면서 사실상 “모든 것이 끝났다”는 걸 확인시켜주고 있다(러시아어로 ‘손’은 여성명사이다). 그리고 더불어 ‘끝났다’란 말도 석상과 돈후안에게서 두 번 반복된다). 그러한 이면성을 ‘텍스트적 무의식’이라고 한다면, 푸슈킨의 텍스트에 언제나 드리워져 있는 것은 그러한 텍스트적 무의식이며, 그것이 그의 간명한 텍스트들이 복잡한 의미작용을 낳게 하는 배경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드라마의 이면에서 레포렐로-푸슈킨의 내적 드라마를 읽어내고자 했는바, 그것은 어른-아이의 세계(=돈후안주의)에서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가 담지하는) ‘성숙한 어른의 세계’(루카치의 정의에 따르면 이것은 소설의 세계이기도 하다)로 넘어가고자 했던 작가 푸슈킨의 ‘작별의식’이기도 하다. 도나 안나가 돈후안에게 건네는 말을 빌자면(“아, 당신을 증오할 수만 있다면! 하지만 이제 우린 헤어져야 해요.”), 우리는, 그리고 레포렐로-푸슈킨은 돈후안을 증오할 수 없지만(그는 ‘사랑스러운 악마’이다), 우리는 그와 헤어져야 한다. 이젠 ‘삶의 냉담함’을 견디며 살아야 할 나이가 됐기 때문이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돈후안은 석상(=죽음)에 맞서서 “미적 인간, 미의 탐색가로서의 원칙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돈후안은 스스로 자신의 존재에 비극적 주인공으로서의 품위를 부여하고, 멜로드라마의 얇은 차원으로 내려서지 않는다.”고도 지적된다. 그리고 역시 유사한 결말을 갖고 있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조반니>에 대한 지젝의 해석을 빌면, 돈후안은 “자신이 그것[자신의 악]을 고집하면 영원히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최종적으로 악을 선택함으로써 그는 역설적이게도 윤리적인 영웅의 위상을 얻는다.”(<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59쪽)

즉, 그는 절대적인 쾌락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쾌락원칙 너머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의미에서, 그는 정확히 절대적인 윤리(=정언명령)의 대행자인 석상만큼 ‘윤리적’이다(칸트와 함께 사드를(Kant avec Sade)’이라는 라캉의 표어는 여기서 ‘석상과 함께 돈후안을(Statue with Don Juan)’로 변주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절대성을 고집하는 이들의 입장은 언제나 타협적인, 가치상대론자 푸슈킨의 입장과는 구별된다(그는 제카브리스트에 동조했지만 가담하지 않았으며, 전제주의와도 거리를 두었다. 1830년대에 그가 몰두한 건 ‘역사’였고, 그 결과 얻어진 것이 <푸가초프 반란사>라는 역사서이다. <대위의 딸>은 그 부산물이다). 한 연구자는 푸슈킨의 <석상손님>이 삶의 ‘중간영역(middle ground)’를 유지하기 위한 시도라고 평가하는데(돈후안에게는 그런 영역 존재하지 않는다), 그 ‘중간영역’을 다른 말로 바꾸면 리비도와 초자아를 중재/매개하는 ‘자아(ego)’의 자리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아-레포렐로, 레포렐로-푸슈킨의 자리이기도 하다. 돈후안과 석상이 꺼진 자리에 남아있는 건 도나 안나(와 레포렐로)뿐이다. 마치, <예브게니 오네긴>의 마지막 장면에서 ‘석상’처럼 굳은 오네긴을 두고 화자-푸슈킨과 그의 뮤즈 타치야나만이 떠나듯이, <석상손님>에서 삶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은 도나 안나와 레포렐로-푸슈킨이 될 것이다.

이제 우리가 처음 떠나온 자리로 되돌아가 에피그라프를 다시 읽을 차례이다. 거기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오, 위대하신 기사단장님의/ 고귀하신 석상이시여!../...아, 주인님!”(<돈죠반니>) 여기서 이탈리아어 ‘주인님(padrone)’과 흔하게 운을 맞추는 단어가 ‘아버지(padre)’라는 점을 상기해보자(흔히 ‘padre - padrone’라고 말한다. 같은 제목을 가진, 타비야니 형제의 영화도 있었다). 

그때, <석상손님>의 진정한 ‘주인’이자 ‘아버지’, 곧 이 텍스트의 산출자는 ‘석상손님’도 아니고 ‘돈후안’도 아니다. 푸슈킨의 <석상손님>이란 텍스트의 의미를 읽어내고자 하는, 그래서 돈후안의 행적을 열심히 따라가본 ‘레포렐로-독자들’이 마침내 도달하게/발견하게 되는 주인과 주인기표는 다름아닌 ‘푸슈킨’이다. 그리하여, 독자가 맨마지막에 다시 읽는 에피그라프는 푸슈킨의 ‘위대하신/고귀하신’ 작품(<석상손님>) 앞에서 자신을 비춰보며 그대로 반복하게 되는 대사가 될 것이다(“아, 주인님!”).

P.S. 푸슈킨이 ‘볼지노의 가을’에 <석상손님>을 완성한 날짜는 1830년 11월 4일이다. 그리고 나는 ‘모스크바의 가을’을 보내며 2004년 11월의 첫주를 <석상손님>과 함께 했다. 참고로, 올해는 푸슈킨 탄생 205주년이 되는 해였다. 이 글은 그걸 기념하는 한 레포렐로-독자의 ‘입막음’의 글이다(물론 이 작품에 대한 읽기는 이걸로 마감되지 않는다. 이 글은 고작 하나의 이정표일 따름이다). 아마도 <석상손님>에 대한 최초의 ‘레포렐로-독자’는 동시대 비평가 벨린스키(1811-1848)일 것인바, 그는 이렇게 말했다: “결론적으로 <석상손님>은 예술적인 면에 있어서 푸슈킨 최고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너무도, 너무나도 훌륭하다!”

04. 11. 09./ 07. 09. 23. 

P.S. 마땅한(맘에 드는) 이미지들이 없어서 꽤 애를 먹었다(그나마 라우라 역의 여배우가 맘에 든다). 비소츠키 주연의 영화 <석상손님>에서 이미지들을 따오면 가장 좋았을 텐데, 아직은 그렇게 할 만한 기술(혹은 장비)이 내겐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푸슈킨의 드라마 <보리스 고두노프>를 강의하게 된 김에 자료들을 정리하다가 그의 소비극 작품들 가운데 하나인 <석상손님>에 대해 예전에 써놓은 글을 옮겨놓는다(이 작품은 열린책들의 <보리스 고두노프>에 <석상방문객>이라고 번역돼 있다). 초고는 3년전 가을 모스크바통신에 올려놓았던 것인데 이번에 부분적으로 다듬으면서 이미지들을 붙여놓는다.  

 

 

 

 

푸슈킨의 ‘돈후안 텍스트’ <석상손님>을 일주일간 붙들고 있었는데, 내가 쓴 분량은 참고문헌을 포함해서 원고지 215장이다. 계획했던 내용의 2/3밖에 쓰지 못했지만, 그래도 분량이 오바되는 바람에 거꾸로 1/3을 줄여야 한다. 해서, 드는 생각이 내가 상당히 ‘수다적’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이 통신문의 ‘부작용’인 듯하다. 지금은 쓴 글에 대해서 ‘애정’이 남아있기 때문에 놔두지만, 얼마간 ‘거리’가 생기면 가차없이 잘라낼 수 있을 것이다(나는 남의 논문을 2/3로 잘라내는 일을 여러 번 해왔다). 

200장 분량을 여기에 다 옮겨올 수는 없고, 일단 서론에 해당하는 대목만 정리해서 옮겨온다. 본문의 러시아어는 다 삭제하고, 전문적인 각주도 다 제외하도록 한다. 드라마 소품인 <석상손님>은 열린책들과 솔출판사에서 나온 푸슈킨 전집에 들어 있으며, 예전에 금성출판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의 푸슈킨 편에도 들어 있다.

일단 이 작품을 읽기/이해하기 위해서는 같은 ‘돈후안 텍스트’로서 ‘계열체 관계’에 놓여 있는 티르소, 몰리에르, 모차르트/다 폰테의 <돈후안>을 참고할 필요가 있으며(나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조반니>의 영어대본을 인터넷에서 찾다가 못 찾았다. 이탈리아어만 떠 있었다. 어딘가에 있을 테지만, ‘현지사정상’ 검색이 제한적이다), 다른 한편으론 같은 ‘소비극(Little Tragedies)’에 속하는, 그래서 ‘통합체 관계’에 있는 세 작품, <인색한 기사>,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페스트 중의 향연> 등의 작품과 연관지어 읽어야 한다. 비교적 짧은 텍스트가 텍스트-무한인 것은 그 때문이고, 그런 텍스트를 읽는다는 건 언제나 쉽지 않은 노릇이다.

이 작품을 비롯한 소비극들에 관한 가장 훌륭한 연구서는 예전에 언급한바 있지만, 예브도키모바(S. Evdokimova)가 편집한 <알렉산드르 푸슈킨의 소비극(Alexander Pushkins's Little Tragedies: The Poetics of Brevity)>(2003)이다. 푸슈킨의 소비극들에 대한 국제학술회의 발표논문들을 모은 것이다. 참고문헌 서지도 유용하며, 뒷부분에는 네 작품의 영역도 실려 있다. 러시아에서는 유독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를 높이 평가하며, 이 한 작품에 대해서만 학술회의가 개최됐을 정도이다(이 작품은 <아마데우스>의 ‘원작’ 정도라고 보면 된다. 각색자가 몰랐다고는 하지만).

 

더불어, 연극 공연은 대개 실패했지만(왜 실패했는지도 연구대상이다), 영화화된 소비극 작품들은 볼 만한데, 1979년에 TV용으로 만들어졌고 감독은 미하일 슈베이체르(Mikhail Shveitser)이다. <석상손님>에서 주연인 돈후안(돈구안) 역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가수이자 시인 겸 배우, 고(故) 블라지미르 비소츠키가 맡고 있다. 그는 햄릿 역으로도 유명하며(http://www.youtube.com/watch?v=-r01fRADCII 참조), 그의 아들도 배우이다.



비소츠키? <백야>에 나오는 노래, <야생마>(직역하면, <길들여지지 않는 말>이고, 노래 분위기에 맞게 의역하면, <말은 채찍으로 길들여지지 않는다>)를 걸쭉하게 부른 가수 말이다(어제 이곳의 ‘가요무대’ 같은 프로에서 한 개그맨이 <야생마>를 약간 패러디해서 부르길래 나는 한참 낄낄거렸다. 이 노래도 길들여지지 않는 듯했다).

일단은 푸슈킨과 관련한 약간의 전기적 지식이 필요하다. 우선, 전기적인 차원에서 이 작품이 1830년 ‘볼지노의 가을’의 산물이라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데(볼지노는 푸슈킨의 영지가 있었던 곳이다), 그것은 <석상손님>이 작가의 삶에 있어서 다른 시기에는 씌어질 수 없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볼지노의 가을’은 결혼과 관련한 작가적 삶의 이행기에서 ‘정점’에 해당한다. 푸슈킨은 30세이던 1829년 5월 1일 1차로 나탈리아 곤차로바에게 청혼하지만 지참금 문제로 거절당하고, 그가 재차 청혼해서 곤차로바와 약혼하게 되는 것은 1830년 5월 6일이다.

그해에 예정돼 있던 결혼은 모스크바에 창궐했던 콜레라로 인하여 이듬해로 연기되고(그때 모스크바가 봉쇄되는 바람에 푸슈킨은 볼지노에서 가을 석 달을 보내게 되는데, 이때가 그의 창작의 전성기이며 <벨킨이야기>, <소비극> 등이 이때 창작된다), 두 사람은 1831년 2월 18일에야 마침내 결혼하게 된다(곤차로바가 19살 때이고, 두 사람은 네 자녀를 두었다. 1837년 푸슈킨이 결투로 죽을 때까지. 곤차로바는 물론 재혼했다).

작가적 삶의 ‘이행기’, 푸슈킨에게서 ‘<나>에서 <우리>로의 이행기’라는 것은 바로 1829년 5월부터 1831년 2월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그리고 이 시기는 그가 <나>라는 삶에서의 ‘낭만주의’로부터 <우리>라는 ‘사실주의’로 옮겨가는 때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 그는 문학장르상으로도 ‘시’에서 ‘산문’으로 이행해가는바, 그는 ‘시적인 삶’에서 ‘산문적인 삶’으로 옮겨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1824년을 경계로 하여 푸슈킨은 자유의 문제를 놓고 바이런주의라는 ‘바다’를 넘어온바 있다. 그리고 이제 ‘이행기’에 그가 건너뛰어야 할 매혹적인 심연은 돈후안주의가 된다. 이때 돈후안주의가 가리키는 것은 문학적 의장(儀裝)이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이다.



이런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이제 텍스트를 읽어보기로 하자. 우리말 번역은 열린책들의 번역을 참고하여 다시 옮긴 것이다(몇 가지 오역과 교정상의 실수들이 교정되어야 한다). 우리가 읽을 건 일단 모차르트의 <돈죠반니>에서 따온 작품의 에피그라프이다.

Leporello. O statua gentilissima
Del gran' Commendatore!..
...Ah, Padrone!
- Don Giovanni

“오, 위대하신 기사단장님의/ 고귀하신 석상이시여!../...아, 주인님!”(<돈조반니>) 푸슈킨이 ‘볼지노의 가을’에 완성한 네 편의 ‘소비극’ 중 세번째 작품 <석상손님>(1830)의 길잡이로 내세운 건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조반니>(1787)에서 따온 레포렐로의 대사이다(돈후안의 하인은 작품마다 이름이 다르다. 티르소에서는 카탈리논이고, 몰리에르에서는 스가나렐이다). 즉, 이 길잡이 대사가 <석상손님>의 에피그라프(epigraph)인바, 문학적 관례로서의 에피그라프란 “작품의 기본적인 갈등과 테마, 관념, 혹은 정조를 독자들이 감식할 수 있게끔 밝혀놓은” 것이다. 그런데, 어원적 의미에서의 에피그라프는 작품의 ‘제사(題詞)’이기 이전에 ‘비문(碑文)’이란 뜻이며, 그것은 작품이라는 ‘무덤’의 입구를 지키는 ‘문지기’이다.

푸슈킨의 <석상손님>을 읽고자 할 때, ‘석상손님’이라는 제목에 이어서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이 작품 입구에 문지기처럼 서 있는 바로 이 대사이다(이 이탈리아어 대사는 본문과는 다른 언어, 다른 표기체계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텍스트의 바깥(=죽음)을 지시한다. 그것은 텍스트-안에-있는-바깥이다). 그리고, 그것의 진정한 ‘메시지’는 작품을 다 읽은 후에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레포렐로의 대사는 작품의 회귀점이기도 하다. 요컨대, 돈후안의 연애행각과 비극적 죽음을 줄거리로 한 푸슈킨판 ‘돈후안 텍스트’ <석상손님>은 레포렐로의 대사로 시작해서 레포렐로의 대사로 끝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에게 길잡이가 되는 레포렐로의 대사에서 ‘주인님’이 가리키는 것은 오페라 장면의 경우 돈후안이지만, 에피그라프만 본다면 ‘주인님!’이란 호명은 두 가지 방향성을 갖고 있다. 즉, 기의적으로는 출처로 밑에 주어진 ‘돈조반니(Don Giovanni)’ 곧 ‘돈후안’을 지시하지만, 기표로서의 ‘주인님(Padrone)’은 ‘기사단장(Commendatore)’, 곧 석상과 각운을 맞춤으로써 오히려 ‘기사단장(=석상)’과 의미론적으로 등가화/동일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은 충분히 음미해볼 만한데, 게다가 이 푸슈킨의 돈후안 텍스트의 제목은 ‘돈후안’이 아니라 ‘석상손님’이 아닌가. 즉, 에피그라프뿐만이 아니라 텍스트 전체를 마치 거대한 바위처럼 내려다보며 제압하고 있는 것은 바로 ‘석상손님’이란 타이틀이며, 이 타이틀의 기표는 텍스트의 궁극적인 물질적/기표적 잔여물로서 프로이트-라캉적 의미에서의 사물(Thing)에 대응한다. 때문에 당연한 일이지만, 이 드라마에서 타이틀롤(주제역)을 맡고 있는 인물은 오페라에서처럼 돈조반니(=돈후안)가 아니라 석상손님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돈후안 텍스트의 원조로 간주되는, 티르소 데 몰리나(Tirso De Molina)의 텍스트는 <세비야의 난봉꾼과 석상의 초대(El Burlador de Sevilla y el Convidado)>(1624/1630)란 제목이며, 몰리에르의 텍스트는 <돈주앙 혹은 석상의 잔치(Don Juan ou le Festin de Pierre)>(1665)란 제목이다. 티르소에게서 ‘세비야의 난봉꾼’으로 지칭되는 인물이 주인공 돈후안 테노리오인바, 이들 대표적인 돈후안 텍스트들의 제목은 ‘돈후안’과 ‘석상(손님)’을 핵심적인 구성소로 갖고 있다. 거기에서 이미 암시되는 바이지만, 돈후안 신화는 사실상 별개로 존재하던 두 가지 전설/신화의 종합이다(이러한 종합의 공로는 티르소에게 돌려져야 할 것이다).

첫 번째 전설은 사자(死者; Death)의 식사/잔치 초대에 관한 것인데,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다. 한 젊은 농부가 들에서 해골을 발견하고서는 원래의 자리에 묻어주는 대신에 발로 차면서 농담으로 식사에 초대한다. 그런데, 사자가 정말로 나타나서 이번엔 반대로 농부를 자신의 식사에 초대한다. 그리고 이 두 번째 식사, 산송장(living dead)의 잔치는 이 무례한 농부가 죽음을 맞이하거나, “앞으로는 죽은자를 존중하라”는 도덕적인 교훈을 새기면서 용서를 받는 걸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물론 두 번째 전설은 ‘돈후안’이란 이름에 각인돼 있는 한 난봉꾼, 혹은 변덕스런 유혹자에 관한 신화이다.(이 대목은 장 루세를 참조한 주판치치를 다시 참조한 것이다.)

해서, 어떤 텍스트가 ‘돈후안 텍스트’로 분류되기 위한 필수조건은 첫째, 돈후안(혹은 석상)이 주인공으로 등장할 것, 둘째, 예시한 줄거리 구도가 관철될 것, 이다. 이러한 조건들이 충족될 경우, 그 텍스트는 돈후안 신화의 ‘직계’ 텍스트로 간주될 수 있다. 반면에 어느 하나만이 충족된다면, 그 텍스트는 ‘방계’ 텍스트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두 전설/신화의 종합을 바탕으로 하여 구성된 돈후안 텍스트의 기저 신화소는 (1)돈후안의 연애행각과 살인, (2)죽은자에 대한 돈후안의 모욕/불경, (3)돈후안에 대한 죽은자(=신)의 응징이다. 돈후안 텍스트에서 그가 여성들을 유혹/농락하는 과정에서 살인하게 되는 인물이 기사단장이며, 죽은 기사단장은 전설에서의 ‘산송장’에 대응하는 ‘석상’으로 변형되어 돈후안을 응징한다. 이것이 티르소와 몰리에르, 모차르트 등 대표적인 돈후안 텍스트들을 관통하는 줄거리 구도이며, 이 구도는 이들 텍스트들을 참조하고 있는 푸슈킨의 <석상손님>에서도 예외없이 반복되고 있다. 즉, 이 구도는 직계의 돈후안 텍스트들을 식별할 수 있도록 해주는 텍스트의 불변항이며, ‘차이 속의 반복’이다.

물론 개별적인 돈후안 텍스트를 읽을 경우에, 보다 더 우리의 관심대상이 되는 것은 텍스트의 불변항, 즉 ‘차이 속의 반복’이라기보다는 변항들, 즉 ‘반복 속의 차이’들이다. 그리고 푸슈킨의 <석상손님>의 경우, 제목에서 ‘난봉꾼’ 돈후안/돈주앙이 제거된 것은 일차적이면서도 가장 두드러진 차이이다. (아마도) 이 차이를 최초로 지적한 이는 시인 겸 ‘푸슈킨학자’ 안나 아흐마토바일 것이다(아흐마토바의 글은 물론 우리말로 번역돼 있지 않으며, 그녀의 <석상손님>론 앞에서 언급한 연구서에 영역돼 있다. 아흐마토바는 한 권 분량의 푸슈킨론을 쓴 바 있다).

그녀는 열정(정념)과 도덕의 문제를 돈후안 텍스트의 중심테마로 보는데, 푸슈킨의 선행자들이 도덕/복수의 문제를 직접적으로(조급하게) 제기하지 않았던 데 반해서, 푸슈킨은 제목에서부터 ‘돈주앙’이 아닌 ‘석상손님’을 선택함으로써 이 작품이 ‘복수의 비극’이라는 걸 단도직입적으로 독자들에게 주지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견해에 반드시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석상손님’이라는 제목이 푸슈킨의 의도적인 선택의 결과라는 점만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구상단계에서의 제목은 <돈주앙>이었다).



이 점은 그가 에피그라프를 따온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조반니>와 비교해 보아도 알 수 있다. 모차르트를 위한 다 폰테(Da Ponte)의 오페라 대본은 <돈조반니 혹은 벌받은 방탕아(Don Giovanni ossia Il dissoluto punito)>(1787)란 제목을 갖고 있으며, 이것은 ‘2막의 익살극’으로 되어 있다. ‘돈죠반니’나 ‘벌받은 방탕아’가 똑같이 가리키는 것은 돈주앙 텍스트의 ‘고정적 지시자(rigid designator)’로서의 ‘돈후안’인바, 요컨대 모차르트/다 폰테의 제목에서는 ‘석상손님’이 제거돼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모차르트의 ‘익살극’ <돈조반니>와 푸슈킨의 ‘소비극’ <석상손님>은 거울상적인 반영관계에 놓여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모차르트/다 폰테(‘돈조반니’)와 푸슈킨(‘석상손님’) 텍스트의 제목이 ‘종합’될 때, 비로소 ‘돈후안(돈죠반니) 혹은 석상손님’이라는 보다 완전한 제목이 구성된다. 

푸슈킨이 <돈조반니>에서 인용해온 에피그라프의 다양한 의미작용과 복잡한 의미망은 거기에서 종결되지 않는다. <돈죠반니>의 2막에 나오는 이 레포렐로의 대사는 돈죠반니의 초대를 레포렐로가 석상에게 전달하는 장면에 나오는 것으로, 이어지는 대사는 “가슴이 떨려서 말도 못 끝내겠네!(Mi trema il core, Non posso terminer!)"이다. 즉, 그에겐 아직 다 끝내지 못한 말들이 남아있는바, 에피그라프의 의미작용 또한 마찬가지이다. 거기에 덧붙여져야 할 것은 푸슈킨 텍스트의 이 에피그라프가 티르소 텍스트의 에피그라프와 맺고 있는 상호관련성, 혹은 상호텍스트성이다.

티르소의 텍스트 <세비야의 난봉꾼과 석상의 초대>에는 물론 제사(題詞)로서의 에피그라프는 붙어 있지 않다(그의 텍스트는 ‘원조’ 돈후안 텍스트이다). 대신에 거기에 놓여 있는 것은 비문(碑文)으로서의 에피그라프이다. 그 비문은 작품의 후반부에서 돈후안이 그의 하인 카탈리논과 함께 자신이 죽인 기사단장 돈곤살로의 무덤을 지나가는 장면에서 나온다.

돈후안 이게 누구의 무덤이지?
카탈리논 명예로운 전사, 돈곤살로인뎁쇼.
돈후안 그럼, 내가 죽인 노인네인데.../ 무덤 한번 거창하군.
카탈리논 국왕께서 만드신 겁니다./ 비문에는 뭐라고 써 있나요?
돈후안 (읽는다) “한 기사가 여기에 잠들다.
그는 신의 (오른)손이 살인자에게/ 복수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복수의 열망 때문에, 아마도/ 편히 잠들지 못하는 모양이군.
그런가, 돌수염 늙은이?/ (석상의 수염을 잡아당긴다.)


번역은 러시아어본에서 옮긴 것이다. 우리말 번역으로 <돈후안: 세비야의 난봉꾼과 석상의 초대>(서쪽나라, 2002)를 참조할 수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별로 신뢰할 만하지 않다. 하다못해, 막이나 장의 구분이 전혀 안돼 있는데, 실제 티르소의 드라마가 그런지?(공연을 위한 대본이 그렇다는 건 넌센스이다.) 게다가 지문들도 거의 생략돼 있다.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인용한 대목의 국역본 번역도 나로선 요령부득이다). 아무튼, 이 대목에서 돈후안이 돈곤살로 석상의 수염을 잡아당기는 행위는 ‘사자(死者)의 초대’에 관한 전설에서 젊은 농부가 해골을 발로 차는 행위에 대응하는바, 죽은자에 대한 모욕/불경에 해당한다. 바로 이어지는 장면에서 카탈리논은 그러한 돈후안의 행위를 만류한다.

여기서 돈후안의 손에 의해 죽은 돈곤살로가 “신의 오른손(=정의)이 살인자에게 복수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라는, 비문의 내용은 비단 티르소 텍스트의 결말에서 이루어질 복수를 암시하는 복선일 뿐 아니라, 모든 돈후안 텍스트 전체의 구도를 규정하는 에피그라프이기도 하다. 적어도 ‘직계’ 돈후안 텍스트들에서는 석상이 돈후안에게 손을 달라고 하며, 돈후안이 그 손을 잡음으로써 파멸하는 걸로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비록 분량에 있어서는 티르소나 몰리에르의 텍스트에 비해서 아주 짧지만, 푸슈킨의 <석상손님> 또한 이러한 결말을 충실히 따른다는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비대(碑臺), 즉 돌에 새겨진 비문이 전통적으로/명시적으로 상징하는 것은 (십계명의 예에서 보듯이) 신의 정의이고 율법이다. 그것은 모든 정념적/병리적 과잉(pathological excess)을 제한함으로써 상징적 질서를 유지하고 보존하는 힘이다. 그리고, 돈후안 텍스트에서 죽은 기사단장의 석상은 그러한 힘의 대행자이다. 따라서, 에피그라프에서 “오, 위대하신 기사단장님의 고귀하신 석상이시여!..”라는 레포렐로의 대사는 대행자-석상을 예찬함으로써 암묵적으로 그러한 힘, 곧 신의 정의/율법을 승인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거기에 이어지는 “아, 주인님!”이라는 대사는 (신의 대행자를 가리키는) ‘위대한 주인님!’과 (그에 희생되는 돈후안을 가리키는) ‘가련한 주인님!’을 동시에 이중적으로 호명하는 것으로도 읽힌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표면적으로 돈후안의 무분별한 애정행각과 그로 인한 파멸을 그리고 있는 <석상손님>은 심층적으로는 레포렐로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가를 밝혀주는 이야기이다. 그의 주인은 ‘가련한 주인’ 돈후안에서 ‘위대한 주인’ 석상손님으로 ‘이행’하게 되는바, 이 작품의 주제는 그러한 이행에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이행이 갖는 의미는 이미 다른 방식으로 푸슈킨 자신에 의해서 언표/암시된바 있는데, 그는 1830년 9월 29일, 친구인 플레트뇨프(1792-1865)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바라트인스키가 말하길, 약혼남들 가운데 행복한 건 오직 바보들뿐이라더군. 하지만, 생각이 있는 남자라면 미래에 대해서 걱정이 되고 불안하기 마련이라고. 이제까지는 <나>였다가 곧 <우리>가 되는 거니까. 그럴 듯한 농담이지!”



갑작스런 콜레라의 창궐 때문에 부득이 연기되긴 했지만, 나탈리아 곤차로바와의 결혼을 목전에 두고 있던 ‘약혼남’ 푸슈킨에게서 결혼, 즉 <나>에서 <우리>로의 이행은 바이런적 시인이었고, 돈후안적 시인이었던 그가 이전까지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푸슈킨에게 새롭게 제기된 과제는 (나의)‘자유’가 아닌 (우리의)‘행복’ 찾기였는바, <석상손님>을 끝낸 바로 다음날, 즉 1830년 11월 5일에 오시포바(1781-1859)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쓴다: “행복에 관해서라는 저는 무신론자입니다. 저는 행복을 믿지 않습니다. 다만, 친구들과 섞여 있을 때나 조금 양보해서 회의주의자가 될 따름입니다.”(원문은 불어)

물론 푸슈킨의 이러한 제스처는 아흐마토바의 지적대로, 행복의 상실에 대한 염려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행복을 두려워하는 심리에서 발원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요컨대, 푸슈킨 창작에 있어서 최전성기라고 할 ‘볼지노의 가을’은 <나>에서 <우리>로의 이행기였으며(그는 이듬해인 1831년 2월에 결혼한다), 행복에 대한 갈망과 불안(두려움)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다. ‘소비극 사이클’에 대한 중요한 연구논문에서 벨략/비롤라이넨(러시아 연구자들이다)은 이러한 상황에 처한 푸슈킨이 새롭게 맞부닥치게 된 ‘행복’의 문제에 대한 해법을 (러시아적) 전통에서는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자신이 직접 찾아야만 했고, 그의 소비극 사이클은 그러한 모색 과정의 산물이라고 보았다.

그들에 따르면, <인색한 기사>의 ‘드라마적 연구’(푸슈킨이 ‘소비극’을 지칭한 용어이다) 대상은 중세의 위기이며, <석상손님>과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페스트 속의 향연>은 각각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동시대)낭만주의의 위기를 연구대상으로 한다. 그리하여 이 드라마 사이클의 주제는 (유럽)근대사이며, 그것은 <행복에서 불행으로>의 거대한 이행으로 특징지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거대한 이행’은 ‘소비극’의 연구대상이 되기에는 너무 거창하며, 두 연구자의 단언적인 주장은 너무 ‘고지식하다.’ 예브도키모바의 지적대로, 소비극 사이클의 시공간적 배경은 극도로 간소화돼 있고 일반화돼 있기 때문이다.

<석상손님>에 한정하여 보더라도, 르네상스라는 배경은 돈후안의 개인주의적 세계관에 근거한 과잉유추일 뿐 작품속에 직접적으로 지시돼 있지 않다. 벨략/비롤라이넨은 이 작품이 스페인 르네상스 드라마의 전통을 따르고 있는 걸로 보는데, 거기에 적합한 드라마는 티르소의 <돈후안> 정도일 테지만 이 역시 이미 17세기(바로크) 드라마이며(스페인 극문학사에서 티르소는 로페 데 베가와 칼데론 사이에 위치한다), 돈후안 신화에 대한 보다 일반적인 관점은 그것을 ‘근대 개인주의 신화’로 읽는 것이다(이언 와트의 <근대 개인주의 신화> 참조). 에브도키모바는 이러한 관점에서, 소비극 사이클의 연구대상이 ‘근대적 자아의 해부’에 있다고 보며, 네 작품의 주인공들은 특정한 개인이라기보다는 근대적 인간 ‘유형’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석상손님>의 경우에 문제가 되는 것은 ‘돈후안’이 아니라 ‘돈후안주의’라는 것이다.

벨략/비롤라이넨과 에브도키모바의 주장을 종합해 보면, 분명 소비극 사이클의 네 작품은 ‘행복에서 불행으로의 이행’을 보여주며, 특히 <석상손님>은 무절제한 정념의 추구라는 ‘돈후안주의’의 비극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데, 거기에는 작가 푸슈킨의 자리가 제대로 고려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행복에서 불행으로의 이행’이라는 것은 근대사의 거대한 이행이기 이전에, 미래의 삶에 대한 예감과 각오를 담지한 푸슈킨 자신의 <내적 드라마>이며, ‘돈후안주의’의 운명이라는 것은 돈후안-시인 푸슈킨의 <자기 알레고리>이다. 물론 이 점에 대해서는 이 작품 연구의 '원조‘가 되는 아흐마토바가 충분히 지적했지만, 문제는 아흐마토바의 경우 이러한 내적 드라마와 자기 알레고리를 설명해줄 수 있는 텍스트의 매개항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텍스트적 매개항은 작가 푸슈킨에 의해서 (무)의식적으로 너무도 쉽게 주어져 있는바, 이미 앞에서 에피그라프에 대한 자세한 분석을 통해 그 존재감을 부각시킨바 있는 ‘레포렐로’가 바로 그것이다. 푸슈킨의 <석상손님>에 대한 그동안의 읽기/연구에서 레포렐로에게 충분한 주의가 두어지지 않은 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지만, 한편으론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것은 마치 E. A. 포우의 단편 <도난당한 편지>에서의 ‘잃어버린 편지(missing letter)’에 해당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즉, 레포렐로가 잘 눈에 띄지 않은 것은 그가 너무 잘 보이는 곳에 있기 때문인바, 그는 <석상손님>의 ‘잃어버린 인물(missing character)’이다.

일반적인 견해와는 다르게, <석상손님>에서 푸슈킨의 시적 ‘자아(=에고)’를 대변하는 인물은 돈후안이 아니라 레포렐로이며, (프로이트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맹목적 욕망(혹은 충동)의 형상으로서의 돈후안은 그의 ‘리비도(이드)’를, 억압적인 ‘아버지’ 형상을 구현하고 있는 석상은 ‘초자아’를 각각 상징한다. 즉, <석상손님>은 푸슈킨의 <리비도-자아-초자아>가 <돈후안-레포렐로-석상손님>에 투사된 내적 드라마로 다시 읽을 수 있다. 아흐마토바가 지적하고 있는 바이지만, 소비극 중 (가장 길고 완성도가 높은 데도 불구하고) <석상손님>만이 유독 그의 생전에는 발표되지 않았다. 그 이유가 이 작품에 ‘푸슈킨 자신’이 너무 많이 투여돼 있기 때문이리라는 아흐마토바의 견해는 억측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구도를 전제한다면, 하인 레포렐로는 ‘위대한 주인’(=석상)도 ‘가련한 주인’(=돈후안)도 아니지만, 그들에게 의미를 부여해주는, 의미작용의 누빔점으로서의 ‘주인기표’이다...

여기까지가 서론이고, 작품의 에피그라프 읽기이다. 시간을 봐서, 나머지 부분들도 전부 올리든가 대폭 축약해서 올리든가 하겠다. 모스크바에는 아직 눈이 내리지 않았으며, 오후 5시가 넘으면 어둑해진다. 어제(일요일)는 모처럼 해가 났었지만, 논문의 초고를 쓰고 저녁 6시가 넘어서 인터넷카페에 갈 때는 ‘캄캄한’ 밤중이었다. 나에겐 아직 한 계절이 남아있다…

04. 11. 08./ 07. 09. 23.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필라멘트 2007-09-23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에 너무 각인된 탓인지 푸슈킨의 다른 작품들이 낯설어 보입니다. 로쟈님이야 푸슈킨으로 박사학위논문을 쓰셨으니 그의 모든 작품들이 다 낯익겠지만. 간간히 올라오는 러시아 문학 포스트로 러시아 문학에 조금씩 젖어들고 있습니다. 로쟈님이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해도 '전도'효과는 큰 듯합니다. 이 서재에 오면 늘 제 지식결핍에 '절망'하면서 동시에 분발하자는 '절감'을 또 느끼곤 합니다. 인문학 지식의 정보제공와 자극에 늘 빚지고 있는 느낌인데, 설마 빚독촉을 하시진 않으시겠죠. ㅎㅎ 아무튼 감사드리며 한가위 연휴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로쟈 2007-09-23 18:09   좋아요 0 | URL
러시아문학 포스트를 더 자주 올려야겠네요.^^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필라멘트님도 편안한 연휴가 되시길...
 

이번주에 나온 책들의 '라인업'을 보고서 가장 먼저 구입을 결정한 책 두 권은 영화평론가 김영진의 <평론가 매혈기>(마음산책, 2007)와 미국의 저널리스트 로버트 카플란의 <지중해 오디세이>(민음사, 2007)다. 관련 리뷰를 찾다가 카플란과의 인터뷰 기사가 눈에 띄기에 옮겨놓는다(역시나 조선일보에서 크게 다루고 있다). '극우 보수파'란 비판도 많이 듣는 듯하지만 좌우야 어찌됐던 간에 탁상공론파들과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점이 그의 강점이다. 얼마전에 나온 <제국의 최전선>(갈라파고스, 2007)을 손에 들어보기도 전에 또다른 신작이 나온 것이어서 뻘쭘하긴 한데, 마침 '그리스 읽기'를 관심테마로도 정해놓은 터여서 <지중해 오디세이>를 먼저 들여다볼 것도 같다. 원로 영문학자 이상옥 교수가 번역을 맡은 것도 특기할 만하다.   

  • 조선일보(07. 09. 22) "국가 경영의 도덕적 책무는 개인의 도덕성을 넘는다”

    로버트 카플란(Robert Kaplan·55)은 골방에서 글을 쓰고 있었다. 그를 만난 건 9·11 다음날 미국 메릴랜드 주도(州都) 애나폴리스의 해군사관학교 바로 앞 작은 집에서였다. 안온한 초가을 서정이 내려 앉은 집 바깥과 달리, TV·침대 말고 살림살이라곤 없는 집이 휑뎅그렁했다. 해사 방문 교수인 그는 해사 측이 마련해 준 이 집에 강의가 있는 매주 이틀만 머문다고 했다.



    ‘신보수주의자(neo-con)’로서 왕성한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분쟁지역 현장 취재를 바탕으로 국제문제에 대한 분석과 예측을 내놔 주목 받았고, 미국의 군사·외교 정책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다면 카플란을 읽으라”고 했고, “카플란에 매료된 조지 부시 대통령이 별장까지 그의 저서 ‘타타르로 가는 길’(Eastward to Tartary)을 가져가 읽었다”는 얘기가 있었다.

    ‘승자학’(Warrior Politics)은 뉴트 깅리치 미국 전 하원의장이 “9·11 이후 미국의 대응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려면 필독하라”고 권했다. ‘발칸의 유령들’(Balkan Ghosts)은 유고슬라비아 전쟁(1991~2000)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의 보스니아 군사 불개입 결정에 영향을 끼쳤다는 얘기가 백악관에서 흘러 나오고, 클린턴이 겨드랑이에 끼고 있는 게 목격되면서 판매에 불이 붙었다.

    한때 ‘극우 국수파’ ‘주전론자(主戰論者)’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던 그는 ‘월간 애틀랜틱(Atlantic Monthly)’ 편집장을 지냈고 현재도 해외통신원을 맡고 있으며 뉴욕 타임스, 월 스트리트 저널, 워싱턴 포스트, 포브스에도 칼럼을 써왔다.

    이번 주 번역 출간된 ‘지중해 오디세이’(Mediterranean Winter·민음사)에서 그는 “2류 대학(코네티컷 주립대 영문과) 나와 대도시 신문사에 지원했다 계속 낙방해 버몬트의 허름한 지방 신문사에 다니다 사표 내고 지중해 여행을 통해 미래를 설계했다”고 털어 놓았다. 이스라엘 주둔 미군에서 1년간 복무했고, 그 뒤 동유럽·중동과 특히 에티오피아·아프가니스탄·이란·이라크·우간다·수단·시에라리온 같은 분쟁 지역을 찾아 다녔다.



    ―스물 셋에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유럽행 편도 비행기만 끊어 훌쩍 떠날 당시 무슨 생각이었나? 그래서 쓴 ‘지중해 오디세이’는 어떤 책인가?

    그땐 젊었고 색다른 방랑을 원했다. 당시의 취재와 기록이 저널리스트로서 밑바탕이 됐다. 나로선 열 번째 책이고, 정치색을 띠지 않은, 드물게 사적(私的)인 순수 여행서다. 기억과 기록으로 썼는데, 점차 뇌리에서 잊혀져 가고 있어 기록해 놓길 잘 했다고 생각한다.”

    ―이스라엘에서의 군 복무 경험이 이후 삶에 많은 영향을 준 것 같다.

    병영 체험은 좋은 것이고, 그것이 나를 현실주의자로 이끌었다. 그곳에선 모두가 군 복무를 했고, 안보 상황이 무척 생생했다.”

    ―당신의 저서들에는 미래를 예측하는 대목이 많다. 누구를 또는 무엇을 단골 정보원 삼는가?

    “많이 읽고 많이 만난다. 미래를 예측하는 데 독서가 가장 쉬운 방법이다. 미래는 반복되지 않지만, 역사를 알수록 예측은 쉬워진다.”

    ―당신은 도발적인 글로 종종 세상을 달궜다. ‘미국 정치·경제적 지도자들은 기독교 윤리를 내팽개쳐라’ 같은 주장이 그렇다.

    개인적인 도덕성과 회사 또는 나라를 경영하는 데 필요한 도덕적 책무는 구분돼야 한다. 더 큰 선(善)을 생각해야 하고, 개인적 도덕성을 뛰어 넘어야 한다. 저술가로서의 배짱(guts)이란 것이 즐거운 건 아니지만, 무얼 쓰더라도 비판을 각오해야 한다. ‘내가 이걸 왜 쓰는가’를 상기해야 한다. 남을 의식하고 조종 받을 바에 뭐 하러 쓰는가? 익명의 블로거·네티즌 공세가 최악인 이 시대에도, 책은 여전히 영향력이 있고 정의를 위해 존재한다.”

  • ―당신을 가리켜 국익 우선론자라고도 한다. 군대의 보호 속에 종군 취재를 하도록 한 미 정부 취재 방침(embedding program)을 옹호하며 ‘기자이기 앞서 한 나라의 국민이어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기자이자 미국 시민이다. 기자는 중요한 존재(somebody)다. 보통의 저자라면 진실만 전하면 되지만, 기자라면 자신의 관점을 전하는 것이고 그것은 미국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함께 보여준다는 의미다.”

    ―지난해 10월 ‘북한이 무너진 뒤(When North Korea Falls)’라는 칼럼을 월간 애틀랜틱에 게재해 화제를 일으켰다.

    칼럼 쓰기 앞서 한국사를 공부했고, 한국을 방문해 취재도 했다. 어딜 가든, 그에 앞서 그 지역 역사를 먼저 공부한다. ‘지중해 오디세이’ 때도 마찬가지로, 무작정 길을 나섰지만 그 전에 지중해 연안국 역사를 축적해 놓았다. 과거의 기록을 제대로 읽으면 현재의 풍광이 더 잘 보인다는 게 지론이다. 북한은 일반의 인식과 달리 이성적이다. 미사일 위협을 통해 긴장 상황을 만들고 미국과 1대1 협상을 하려는 건 고립된 북한 입장에서 매우 영리한 전략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졌던 한국인 인질 사태를 어떻게 보는가?

    “국제 협력에 있어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 인질 사태에 관해선 국제적 공조가 중요하다.”

    ―미국은 제국으로서 정점에 올라 내리막길이 불가피하고, 중국은 통일 한국(Greater Korea) 시대 아시아의 유력한 승자가 될 걸로 내다봤는데.

    “미 제국이 쇠락할 것은 확실하다. 다만 그 시기가 언제일지 알 수 없다. 제2차 대전 후 미 해군이 사실상 지배했던 태평양만 해도 한·중·일·호주 해군이 강화돼 다극화 체제가 굳어가고 있다. 통일 한국은 식민역사 때문에 일본과 긴장 상태가 유지될 것이고, 정서적으로 중국과 가까워질 것이다.”

    ―두터운 고정 독자를 가진 작가로서 인기 비결은?

    “나는 어떤 누구도 만족시키려 글을 쓰지 않고, 절충자(gap-filler)가 될 생각도 없다. 이라크에 국한하지 않고 다른 저자가 건드리지 않은 세계의 모든 현안을 쓰려고 한다.”



    ―앞으로 저술 계획은?

    “2년 전 낸 ‘제국의 최전선(Imperial Grunts: The American Military in the Ground)’ 속편을 막 마쳐 가제본이 나왔다. 이제 다른 주제로 쓸 계획이다.”

    ―스스로의 기록과 장서가 방대할 것 같다. 글을 쓰는 서재를 어떻게 관리하는가?

    “매사추세츠 스탁브리지 내 서재는 산과 숲을 앞에 둬 정경이 빼어나다. 크지는 않지만 책과 동양에서 갖고 온 카펫들로 가득한 아늑한 공간이다. 책은 수천 권 있는데, 그리스·터키·중앙아시아 식으로 지역별로 자료를 분류해 뒀다. 어떤 주제를 쓸까 궁리할 때 항상 지도를 먼저 본다.”

    ―글은 하루 중 언제 쓰는가?

    “아침형 인간(morning person)이다. 아침 5시에 일어나 뉴스나 이메일이 쇄도하기 전까지 집중해서 쓴다.”(박영석 기자)

    07. 09. 22.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딸기 2007-09-29 00:12   좋아요 0 | URL
    카플란의 새 책이 나왔다고 해서, 어쨌든 보기는 해야겠네, 하고 있었는데...
    저 인터뷰는, 카플란의 글에 대한 제 느낌이나 생각거리와는 너무나너무나 동떨어져 있군요.
    로쟈님은 카플란의 세계관을 어떻게 보시나요.

    로쟈 2007-09-29 00:25   좋아요 0 | URL
    김훈을 떠올리게 됩니다.^^ 강대국과 약소국의 차이가 있지만...
     

    그리스 읽기를 위한 몇 권의 책.


    18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정신의 발견 : 서구적 사유의 그리스적 기원
    브루노 스넬 지음, 김재홍 옮김 / 까치 / 2002년 3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2007년 09월 22일에 저장
    구판절판
    헬라스 사상의 심층
    박종현 지음 / 서광사 / 2001년 11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5월 7일 (화)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07년 09월 22일에 저장

    그리스인들의 신화와 사유
    장 피에르 베르낭 지음, 박희영 옮김 / 아카넷 / 2005년 8월
    28,000원 → 26,600원(5%할인) / 마일리지 1,400원(5% 적립)
    2007년 09월 22일에 저장
    품절
    그리스 사유의 기원
    장 피에르 베르낭 지음, 김재홍 옮김 / 길(도서출판) / 2006년 3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2007년 09월 22일에 저장
    품절


    18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