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겨레에 실은 '이현우의 언어의 경계에서' 칼럼을 옮겨놓는다. 도리스 레싱의 데뷔작 <풀잎은 노래한다>(1950)에 대해서 적었다. 레싱의 작품은 주요작으로 <마사 퀘스트>와 <금색 공책>도 조만간 강의에서 다룰 예정이다(이전에 주로 다뤘던 작품은 <다섯째 아이>였다)...


 















한겨레(20. 06. 19) 백인 남성 문명의 종말을 노래한다


20세기 전반 영문학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가 버지니아 울프라면 2007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도리스 레싱은 20세기 후반의 간판 작가다. 1919년 이란(당시 페르시아)에서 태어나 영국의 식민지였던 짐바브웨(당시 남부 로디지아)에서 성장한 레싱은 20대에 두 번의 결혼과 이혼을 경험하고 1949년 영국으로 떠난다. 런던에 입성했을 때 그녀의 손에는 한 권의 소설 원고만 들려 있을 뿐이었는데, 이듬해 출간돼 작가로서의 운명을 결정지은 <풀잎은 노래한다>이다. 걸출한 작가들의 데뷔작이 대개 그렇듯이 자전적인 이야기에 바탕을 두면서도 세상을 향해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작품이다.
















도리스 레싱은 6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현역 작가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장르에 걸쳐 많은 수의 작품을 썼다. 국내에도 대표작 <금색 공책>(<황금노트북>으로도 번역됐다)을 비롯해 여러 작품이 번역돼 있지만 아무래도 레싱 읽기의 출발점은 <풀잎은 노래한다>일 수밖에 없다(가장 먼저 번역되기도 했다). 제목은 엘리엇의 시 ‘황무지’에서 가져왔는데 “예배당 주변의 나자빠진 무덤들 위에서 풀잎은 노래한다”는 대목이다. 누구의 무덤이고 무엇의 무덤인가. 작품의 줄거리와 작가의 암시를 고려하면, 주인공 메리 터너와 같은 여성들의 무덤이고 더 나아가 백인 문명의 무덤이다.


농장주 리처드 터너의 아내 메리가 피살됐다는 독자 투고 기사를 단서로 하여 소설은 시간을 거슬러올라가 메리가 어떤 환경에서 성장했고 리처드와 어떤 동기에서 결혼했으며 왜 흑인 하인 모세에게 살해되었는지 순차적으로 서술한다. 남아프리카에서 백인 부모 슬하에서 태어난 메리는 우편물들의 발송지인 영국을 고향이라고 생각하지만 영국에는 단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 매일같이 술에 취해 지내는 아버지는 무능한 가장으로 어머니와 다툼이 잦았다. 메리의 부모가 잠시나마 사이가 좋았던 시절은 메리의 언니와 오빠가 이질로 죽은 때였다. 먹여 살릴 아이가 메리 하나로 줄어서야 집안이 평온해질 만큼 가난한 백인 가정이었다.


기숙학교에 다니다가 중퇴하고 메리는 열여섯 살에 소도시의 사무실에 취직하면서 자립한다. 스물다섯 살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메리의 불행도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안락하고 속 편한 독신 여성의 생활로 충분하다고 느꼈다. 그녀는 별다른 생각이나 고민 없이 살아가는 전형적인 남아프리카 백인 여성이었다. 그러나 서른 살이 되자 주변에서 메리가 미혼인 사실을 두고 수군덕거리기 시작했고 나사가 하나 빠진 것 같다며 조롱했다. 남자 경험은 물론 관심조차 없던 메리는 뒤늦게 자극을 받아서 극장에서 우연히 만난 리처드의 구혼을 받자 덜컥 결혼한다. 리처드는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농장의 주인이었고 메리는 처음으로 원주민들과 대면한다.


리처드는 빚을 내서 여러 가지 농장일을 시도해보지만 실패만 거듭하고 메리는 그런 남편의 무능력에 지쳐간다. 남편의 곁을 떠나 도시로도 탈출해보지만 시골 농장주의 아내 메리는 더이상 예전의 도시 여성 메리가 아니었고 그녀를 위한 일자리도 존재하지 않았다. 말라리아에까지 걸려서 점점 쇠약해져가는 남편을 대신해 메리는 원주민들에게 채찍질을 해가며 농장을 되살려보고자 한다. 그러나 모세라는 하인의 건강한 육체를 본 이후에 메리는 혼란에 빠진다. 인종주의에 따르면 백인이 흑인을 지배해야 하지만 당시 성에 대한 통념상 약한 여성은 강한 남성의 사랑과 보호를 필요로 하는 존재였다. 메리와 모세의 관계는 이 두 가지 관계의 착종을 보여주며 결국 살인까지 불러오게 된다.


가장 전형적인 백인 여성 메리의 죽음을 통해서 도리스 레싱은 인종주의에 근거한 백인 문명이 더이상 지속될 수 없으며 여성의 정체성은 성차별에서 벗어나 새롭게 모색되어야 한다고 시사한다. <풀잎은 노래한다>는 이후에 펼쳐질 레싱의 작품세계를 미리 가늠하게 해준다.


20. 06. 19.
















P.S. 이미 적은 대로 도리스 레싱은 다작의 작가다. 장편과 단편소설들에 이이서 최근에는 산문집 <고양이에 대하여>(비채)가 소개되었는데, 더 바란다면 두 권의 자서전이 번역되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로쟈 >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11년 전에 옮겨놓은 글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로쟈 > 강신주 인문학의 거의 모든 것

7년 전에 쓴 리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로쟈 > 인터넷은 인문학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

11년 전에 쓴 글이다. 요즘이라면 ˝유튜브는 인문학을 위해~˝라고 누가 써주어야 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번주 주간경향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E. M. 포스터 원작의 소설들이 영화로 재개봉됐거나 개봉될 예정인데(<전망 좋은 방>과 <하워즈 엔드> 그리고 <모리스> 등) 영소설 강의에서 최근에 <전망 좋은 방>과 <하워즈 엔드>를 읽었다. 대표작 <하워즈 엔드>는 여러 가지 면에서 빼어난 모범적인 소설로 여겨져 리뷰에서 간단히 살펴보았다. 

















주간경향(20. 06. 22) 영국 중산층 세 부류 계급 전쟁의 해법


사후에 출간된 <모리스>까지 단 여섯 편의 장편소설을 남겼을 뿐이지만, E. M. 포스터는 20세기 초반 영국 소설사에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다. <하워즈 엔드>(1910)를 정점으로 한 그의 소설들은 여전히 소설이란 무엇이고, 사회적 문제를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 좋은 참고가 된다. ‘사회적 문제’라고 한 것은 구체적으로 계급 문제다. 미국의 비평가 라이오널 트릴링은 <하워즈 엔드>를 일컬어 “영국의 운명에 관한 소설로서, 계급 전쟁을 다룬 이야기”라고 정확하게 규정했다. 소설은 중산층 내부의 세 부류를 제시한다. 헨리를 가장으로 하는 윌콕스가는 문명의 건설자를 자부하는 전형적인 사업가 집안이다. 헨리는 사업가 한 명이 열두 명의 사회개혁가보다 세상에 유익하다고 생각하며 여성 참정권이니 사회주의니 하는 주장을 헛소리로 치부한다.


반면에 아버지가 귀화한 독일인인 슐레겔가의 자매, 마거릿과 헬렌은 교양있는 시민계급을 대표한다. 자매는 범게르만주의 역시 영국의 제국주의와 마찬가지로 전혀 창조적이지 못하며, 저속한 정신의 악덕만을 보여줄 뿐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하게 보면 소설은 이렇듯 대립적으로 설정된 슐레겔가의 자매와 윌콕스 집안의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진 해프닝과 인연을 따라가는 것으로 읽힌다. 동생 헬렌이 윌콕스가의 막내아들과 벌인 약혼 소동이 해프닝이라면 언니 마거릿이 상처한 헨리 윌콕스의 청혼을 받고 결혼하게 되는 것이 인연이다.


그렇지만 두 집안의 대립과 인연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 설정은 도시 중산층의 밑바닥을 구성하는 사무직 노동자 레너드 바스트의 존재다. 레너드는 신사 계급의 맨 끝자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신사 계급처럼 행동해야 한다. 즉 자신이 열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 신사적 교양을 악착같이 습득해야 한다. 독서와 음악회 관람을 빼놓지 않는 이유다. 그런 레너드가 한 음악회에서 슐레겔 자매와 만나면서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이 마련된다.

자본가인 윌콕스에게 세상이 부자와 빈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설사 부를 균등하게 나눈다 하더라도 빈부의 격차는 다시금 생겨날 수밖에 없다고 그는 믿는다. 반면 슐레겔 자매는 레너드와 같은 하층계급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고자 한다. 자매는 레너드가 다니는 직장의 전망이 어둡다는 윌콕스의 조언에 따라 레너드로 하여금 이직하게 하지만, 오히려 그는 옮긴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곤궁에 처한다. 헬렌은 윌콕스에게 책임을 물으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레너드의 아내가 과거 윌콕스의 정부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상황은 더 꼬인다. 급기야는 동정심에, 책임감까지 더해져 헬렌은 레너드의 아이를 갖게 되고, 그런 사실도 모른 채 레너드는 어이없는 사고로 죽는다. 


그렇게 마무리된다면 사회 비극이 될 뻔한 이야기지만 결말에서 윌콕스는 저택 ‘하워즈 엔드’를 아내 마거릿에게 양도하고 나중에는 헬렌의 아이에게 상속되게끔 한다. ‘단지 연결하라’는 구호를 모토로 내건 소설에서 포스터가 제시하고 있는 계급 전쟁의 해법이다.


20. 06. 17.

















P.S. 국내에는 단편소설집까지 한 권 더해서 일곱 권의 E. M. 포스터 전집이 출간됐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절판되었고 세 권만 현재 세계문학전집판에 들어가 있다. 초기 두 작품을 포함해 <하워즈 엔드>와 함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인도로 가는 길>까지 현재 번역본이 없는 상황이다(나는 하는 수 없이 중고본으로 구했다). 어떻게든 다시 나오길 기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