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보예 지젝의 신간이 나왔다. <용기의 정치학>(다산초당). '우리의 삶에서 희망이 사라졌을 때'가 부제인데, 원제 'The Courage of Hopelessness'를 제목과 부제가 나눠가진 형국. 앞서 나온 책으로는 <자본주의에 희망은 있는가>(문학사상)와 짝이 될 수 있는 책이다(같은 역자가 옮겼다). 자본주의가 두 책의 공통 화두여서다. 그런 면에서는 <공산당 선언 리부트>도 같이 읽을 수 있다.

















"21세기 정치 지형부터, 경제, 종교, 정치적 올바름 운동까지, 지젝은 세계의 면을 폭넓게 살펴보며 거짓 희망이 어떻게 사회에 퍼져 있으며, 이 문제를 넘어 진정한 변화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탐구한다. <용기의 정치학>은 정치적 진화의 종착지로 여겨지던 세계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뿌리부터 뒤흔들리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용기와 지혜를 선사한다."


초면의 독자가 읽기에는 용기가 필요할 것 같지만 지젝의 책과 구면인 독자들에게는 유익한 통찰과 정치한 정세 분석을 접할 수 있겠다. 
















원저는 재작년에 나왔는데, '슬라보예 지젝의 신간'이란 소개가 무색하게도 그 사이에 나온 책이 이미 여럿이다. 이달에 나온 책으로는 <판데믹>도 있는데, 책은 구입해서 읽어보려는 참이다. 여름에 나올 예정인 헤겔책도 구미가 당긴다. 도대체가 읽는 속도를 무색하게 하는 철학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읽을거리를 챙겨서 나오다가 경비실 앞 의자에(택배물 위탁장소다) 배송물이 놓여있어서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다음주 강의가 있어서 중고로 주문한 <파스칼의 편지>(지훈)였다. 목차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주문했는데, 예상보다 책상태도 괜찮고 내용도 흡족하다. 편지 외에 소품들도 번역돼 있는데 역자인 이환 교수가 젊은 시절 한 번역을 수정한 판본이기도 하다.

오래전에 <팡세>를 읽으며 이환 교수의 책들을 읽은 적이 있다(<파스칼 연구> 등). 당시엔 유일한 파스칼 전공자로 보였는데 이후에 김형길 교수가 새로운 <팡세> 번역본을 선보이며 등장했고, 나의 파스칼 읽기도 그 즈음에서 중단되었다. 다시 검색해보니 김화영 박사(카뮈 전공의 김화영 교수와는 동명이인인 듯)가 젊은 세대의 파스칼 전공자로 보인다.

17세기를 살았던 블레즈 파스칼의 생애는 짧았다. 1623년생이고 1662년몰(<파스칼의 편지> 책갈피에는 부주의하게도 1623-1622로 표기되었다). 만 39년의 삶이었지만 <팡세>(1670)라는 기념비적인 사색록을 남겼다. 사후에 출간된 유작. 엊그제 강의한 몽테뉴와 함꼐 근대 전환기 프랑스의 흥미로은 지성이다. 역시 오래 전에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은 이환 교수의 <몽테뉴와 파스칼>을 이번에 새책으로(중고본이지만) 구해서 다시 읽고 있다. 오래전 친구와 재회하는 느낌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wo0sun 2020-05-23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문한 <몽테뉴와 파스칼>을 저도 조금전 받았어요.
이책에 대한 샘 글을 읽고 주문했는데 다음주 파스칼 강의
듣는데 많은 도움이 될거 같아요.

로쟈 2020-05-23 16:43   좋아요 0 | URL
네 파스칼 연구서는 희소하기도하구요.

모맘 2020-05-25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겐 눈이 번쩍 뜨이는 책소개입니다 룰루랄라입니다~
파주의 이번 강의는 정~말,
잠시라도 이사가고 싶습니다ㅋㅋ
 

아침을 먹고 다시 눈을 붙였다가 점심이 되어 정신을 차린다. 듣다 말았던 시사유튜브를 들으며 내주의 일거리들을 생각하다가(강의와 관련해서 읽어야 할 책과 논문들) 밀린 서재일들도 일부 처리하기로 한다. 어젯밤에 발견한 책부터. <해시시 클럽>이란 책이 15년만에 다시 나왔다. '해시시' 혹은 '하시시'는 간단히 말해 마약의 일종이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인도대마가 결실을 맺는 초기의 이삭이나 잎"을 뜻하는데, 마약으로서 해시시는 그 성분은 농축한 것이라 대마초보다 강력하다고 한다. 이것이 유럽 사회에서 유행했던 것.  
















"이 책은 고티에와 보들레르의 산문과 해시시 클럽을 주관했던 정신과 의사 장 자크 모로, 이비자 섬에서 개인적인 실험을 진행했던 발터 벤야민의 에피소드와 환각문학으로 유명한 피츠 휴 러들로와 알레이스터 크롤리의 해시시에 관한 산문을 모았다. 고티에는 당시 해시시 클럽에 대한 묘사를, 보들레르는 해시시의 낯선 광기와 도덕성에 대한 분석을, 벤야민은 해시시와 관련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러들로와 크롤리는 해시시가 주는 정신적인 영감과 육체적인 변화를 이야기한다."


2005년 시점에서는 보들레르와 벤야민에 대한 관심 때문에 반겼던 책인데, 정작 구입하고도 읽어보진 않았다(혹은 읽었더라도 기억에 남아 있는 게 없다). 책은 자연스레 절판되었고 다시 나올 일이 없을 것 같았는데, 뜻밖에도 이번에 나왔다. 그렇다고 다시 주목받을 것 같지는 않지만, 이번에는 프랑스문학 강의에 참고가 될까 하여 다시 주목해본다. 역자의 <포도주, 해시시 그리고 섹스>(2003)도 이 주제와 관련하여 참고할 만한 책. 
















역자의 번역서는 2006년에 나온 <무크타르 마이의 고백>(자음과모음)이 마지막인데, 16년만에 <해시시>가 나온 것도 특이하다. 알 수 없는 사정이 있지 않을까 싶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wo0sun 2020-05-23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프랑스고전 강의에 고티에가 빠져 조금 아쉬웠는데
고티에, 보들레르, 벤야민까지 줄줄이 엮인 이 책 관심이~~

로쟈 2020-05-23 16:56   좋아요 0 | URL
작년에 다뤘어야 하는데 그때는 ‘모팽양‘이 절판된 상태여서..
 

이번주 한겨레에 실은 북칼럼을 옮겨놓는다. 최근 강의에서 읽는 모파상의 <삐에르와 장>(창비)에 대해서 적었다. 앞선 <여자의 일생>(<어느 인생>)과 <벨아미>와는 다른 종류의 소설로('심리소설'로 분류할 수 있겠다) 그에 이어지는 <죽음보다 강한 사랑>(백성)까지 읽어봐야 모파상 장편소설에 대해 해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파상이 남긴 여섯 편의 장편 가운데 국내에는 이들 네 편이 번역돼 있다...


















한겨레(20. 05. 20) 영웅 아닌 이들로 소설을 쓴다는 것


한국 독자가 기억하는 모파상은 단편 ‘목걸이'와 첫 장편 <여자의 일생>의 작가다. 그와 함께 두 번째 장편 <벨아미>도 수년 전에 여러 종의 번역으로 출간돼 모파상이란 이름을 다시 기억하게 했다. 단편작가로서 세계적인 명망을 얻었지만 모파상은 여섯 편의 장편도 남긴 작가다. <여자의 일생>이나 <벨아미>만큼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삐에르와 장>(1888)도 그중 하나로 빼어난 문체와 형식미를 자랑하는 수작으로 꼽힌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작품의 분량인데, 단편보다는 물론 길지만 당시 통상적인 장편소설보다는 짧은 편이어서 모파상 자신이 서문 격으로 실린 ‘소설’이란 에세이에서 ‘짤막한 소설’이라고 불렀다. 우리말로는 모순적이지만 ‘짧은 장편소설’에 해당한다. 모파상이 작품과는 별개로 소설에 대한 성찰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에세이 ‘소설’인데, 사실 <삐에르와 장> 역시 모파상 소설의 특징에 대한, 더 나아가 소설 장르의 본질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줄거리는 간단한 편이다. 파리에서 보석상을 하던 아버지 롤랑은 연금생활이 가능하게 되자 곧바로 가게를 접고 아내와 함께 노르망디의 르아브르에 정착한다. 항해와 낚시에 대한 넘치는 애정 때문이었다. 다섯살 터울의 두 아들 피에르와 장은 그 사이에 학업을 마치고 각각 의사와 변호사로서 사회 진출을 앞두고 있다. 이들 가족이 로제미유라는 젊은 미망인과 교제를 갖게 되는데, 미혼의 피에르와 장은 둘다 그녀에게 관심을 쏟는다. 통상 그렇듯이 형제는 우애와 함께 경쟁심도 품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롤랑 부부가 파리에서 친구로 지냈던 마레샬 씨가 사망하면서 막대한 유산의 상속자로 장을 지정한다. 형제 중 한 명만 특정한 것이기에 특이한 일이었지만 피에르만 제외하고 롤랑의 가족은 의심 없이 기뻐한다. 피에르는 동생의 횡재를 질투하면서 차츰 어머니와 마레샬의 관계를 의심하게 되고 결국 추궁 끝에 어머니가 그와 내연의 관계였다는 고백을 받아낸다. 아들 장에게 어머니는 마레샬이 진정한 사랑의 대상이었다고 토로하고 형 피에르로부터 구해달라고 부탁한다. 장의 적극적인 주선으로 피에르는 가족과 작별하고 주치의로 미국행 유람선에 오른다. 장은 로제이유 부인과 결혼을 약속한다.


이 ‘짤막한 소설’은 어떻게 가능했던가. 두 가지 경로가 가능하다. 단편소설을 확장하는 것과 장편소설을 축소하는 것. <삐에르와 장>은 단편소설을 확장한 쪽에 가까운데 두 주인공 피에르와 장의 심리를 묘사함으로써 모파상은 서사의 분량을 늘렸다. 다른 면에서 보자면 사회적 현실을 총체적으로 묘사하는 대신에 한 가족의 이야기만을 다룸으로써 서사의 범위를 축소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소설의 핵심 특징이 인물의 심리 묘사에 있다는 점은 주인공들이 영웅성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인물이라는 데서도 확인된다. 


만약 작가가 심리 대신 행동만을 묘사했다면 소설의 분량은 중편 이하로 축소되었을 것이다. 즉 피에르와 장 형제는 장편소설을 이끌어나갈 만한 주인공의 역량을 갖고 있지 않다. 피에르는 어머니의 부정을 응징하려 나서지 않으며, 장은 온당하지 않은 유산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 조건에서 예기치 않은 유산 상속으로 빚어진 형제간의 불화와 어머니의 숨겨진 비밀 이야기는 장편 서사의 동력으로 부족하다. <삐에르와 장>은 ‘변변찮은 인물들로 장편소설 쓰기’의 어려움과 노하우를 알려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로쟈 > 시간의 지도와 생태제국주의

7년 전에 쓴 페이퍼다. <생태제국주의>는 나중에 구입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