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데이비드 브룩스의 신작이 번역돼 나왔다. <두번째 산>(부키). 주목하게 되는 건 전작 <인간의 품격>(부키)에 대한 호감 때문이다(여러 인물들에 대한 스케치 가운데 특히 조지 엘리엇 장이 내게는 유익했다). '믿고 보는' 저자로 분류한 것. '두번째 산'으로 비유되는 신작의 요지에도 적극 공감한다.
















"데이비드 브룩스는 <두 번째 산>에서 우리는 고통의 시기를 겪으며 인생의 태도를 다시 정립한다고 말한다. 삶의 고통을 딛고 다시 시작하는 법을 익히려면 개인과 사회 차원에서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제 우리가 개인의 행복, 독립성, 자율성이라는 허울 좋은 가치를 넘어 도덕적 기쁨, 상호 의존성, 관계성을 회복할 때라고 주장한다. 지난 60년간 앞의 가치들을 지나치게 강조해 온 결과, 공동체는 해체되고 개인들 사이의 결속은 끊어지며 외로움은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사회적 고립'으로 부를 수 있는 이런 상황은 삶의 고통을 더욱 심화시킬 뿐 아니라 자기 발견과 성장을 한층 더 어렵게 만든다. 저자는 좋은 인생을 살아가려면 훨씬 더 큰 차원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문화적 패러다임의 무게 중심이 개인주의라는 첫 번째 산에서 관계주의라는 두 번째 산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주의라는 첫번째 산과 관계주의라는 두번째 산 사이의 관계가 문제될 수 있는데, 그것이 선택적인 것인지, 순차적인 것인지에 대한 저자의 입장은 책을 읽어봐야 알겠다. 다만, 현재 진행하고 있는 도스토예프스키 강의에서, 그리고 미국문학 강의에서 내가 강조하는 것은 그 순차성이다. 혹은 병행성이다. 저자가 톨스토이를 사례로 들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끄는데, 문학에 대한 식견도 미더운 편이다. 이주의 추천도서로 모자람이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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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역사 저술가 톰 홀랜드의 신작이 번역돼 나왔다. <도미니언>(책과함께). '기독교는 어떻게 서양의 세계관을 지배하게 되었는가'가 부제다. 기독교 세계의 형성과 그 유산을 다룬 책. 톰 홀랜드의 그리스와 로마사 분야의 책들을 주로 펴냈는데, 그 연장선상에 놓인 책이겠다. 


 











"세계적인 역사 저술가 톰 홀랜드는 이 책에서 기독교가 어떤 과정을 거쳐 서구 사회와 서양인의 세계관을 지배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결과로 세상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과감하면서도 우아하게, 역설적이면서도 균형 있게 다룬다. 고대 로마부터 비틀스와 메르켈 총리까지 2500년을 연대순으로 '혁명', '육체', '우주'와 같은 핵심 키워드가 담긴 21개 장으로 묶어 흥미진진한 대서사시를 이룬다."
















초점은 다르지만 자연스레 비교해볼 수 있는 건 기독교 역사에 관한 책들이다. 다수의 책들이 소개돼 있고, 나도 여러 권 갖고 있다. 그래도 홀랜드의 책으로 중심을 잡는 게 좋을 듯싶다. 
















그리고 기독교의 교리와 관련해서는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의 책들이 나오고 있어서 이 자리에서 적어놓는다. <정통>은 몇 번 번역됐지만, <영원한 사람>은 처음 나온 것으로 안다(시리즈의 다음 책은 <이단>인가?). 에세이집 <못생긴 것들에 대한 옹호>도 다시 찾아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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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분야의 신간이다. 김성민의 <아름답고 쓸모없는 독서>(다반). 네이버 블로그 '시간의 기록'을 운영하고 있는 저자의 독서 기록이다. 오래전 알라딘의 글들을 묶어서 첫 책을 냈던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은 쓰이지 않는 말이지만 블로그+북이란 뜻으로 '블룩'이라 부르기도 했다. <아름답고 쓸고없는 독서>도 그런 의미에서 '블룩'에 해당한다. 
















"<아름답고 쓸모없는 독서>는 책과 함께한 시간을 담은 독서 기록이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사용가치, 소비가치로 즉시 환원되지 않는다. 새로움보다는 오랜 시간동안 천천히 스미는 지속성을 지향한다. 쓸모를 의미하는 ‘쓸 만한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는 시대에, 책보다 더 효율적인 매체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어쩌면 독서는 쓸모없다. 그러나 독서가 삶의 구원이자 단단한 동아줄이 될 수 있다면 독서는 아름답다."


몇년 전 도서관 강의에서 서평에 관해 질문을 받고서 저자가 지속적으로 독서 기록을 쓰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꾸준히 책을 읽고 기록하는 모든 이들이 내게는 친구이자 동료다. <아름답고 쓸모없는 독서>의 추천사도 기꺼이 적었다.  


"나의 독서가 아름답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쓸모없다는 푸념도 하지 않았다. '독서인' 혹은 '읽는 인간'이란 말에 기대면 내게 독서는 일상이자 나의 존재 자체다. 김성민의 <아름답고 쓸모없는 독서>를 읽으며 또 다른 독서와 마주한다. '아름답지만 쓸모없는' 독서가 아니다! 아름다운 독서와 쓸모없는 독서는 분명 대립적이지만 저자에게는 절실함에 있어서 대등하다. 독서를 통해서 삶을 되돌아보고 흩어져가는 시간을 한데 모으면서 자신을 굳건히 세우려는 의지가 그의 책을 관통한다. 독서가 취미나 장식이 아닐 때 아름답고 쓸모없는 독서와 만난다는 걸 덕분에 깨닫는다. 그 독서가 아니라면 초생달과 바구지꽃도, 그리고 우리 자신도 빛을 잃을 거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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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작법이나 시작법 책을 포함해 글쓰기 책들을 좀 갖고 있지만(추천사를 쓴 책도 있다) 사실 내 '타입'은 아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배운다고 할 때 두 가지 방식이 가능한데, (1)규칙을 통해서, (2)시범을 통해서다. 오래전 일이지만 바둑을 배울 때 고수와 많이 두면서 배우는 것과 교재를 숙독하면서 배우는 것, 두 가지가 가능했다. 아, 이건 좋은 예는 아니다. 바둑의 경우에는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게 효과적이라. 글쓰기의 경우는 나는 단연 후자쪽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글을 통해서 배우는 것. 어떻게 쓰라는 교본을 따라하는 게 아니라(교본을 필요로 하는 '타입'도 물론 가능할 것이다).
















"글쓰기에 관한 한 단연 최고의 책"이라는 벌린 클링켄보그의 <짧게 잘 쓰는 법>(교유서가)을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뉴욕 타임스' 편집위원. 의당 글쓰기에 관해서라면 전문가라고 할 수 있겠다(기사작성법이나 칼럼작성법에 관한 책이 더 낫지 않을까). 다행히 소로의 <월든> 같은, 전원생활의 경험담을 엮은 <단순하지만 충만한, 나의 전원생활>(목수생활)이 번역돼 있다. 내가 보기엔 두 권의 책을 번갈아가면서 읽는 것이, 정말 글쓰기에 관해 배워보려는 독자라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글쓰기 책이 소설쓰기 책과 구분 없이 나와 있는데, 사실 둘은 분명히 구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설쓰기와 글쓰기는 다르기에. 일반적인 글에서 좋은 문장의 기준과 좋은 소설문장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은 헤밍웨이와 포크너의 소설만 비교해봐도 알 수 있다. 너무나도 다른 문장의 사례인데, 그렇다고 해서 문장만 갖고서 누가 더 나은 작가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교정자의 관점에서 자기 문장을 조금 개선하는 일은 필요하고도 필수적이다. 글쓰기 책을 읽고서 글쓰기의 대가가 될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개선이나 향상은 기대해볼 수 있으리라. 


<짧게 잘 쓰는 법>이라고 돼 있지만, 원제는 '글쓰기에 관한 짧은 문장들'이다. 저자의 요지가 '짧게 잘 쓰는 법'으로 수렴되는 것인지. 실제로 책은 몇 가지 조언들로 구성돼 있다. 하루에 몇 페이지씩 음미하면서 읽기에 적당한. 다만, 영어 문장에 대한 조언인지라, 관계대명사 운운하는 대목은 건너뛰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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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2020-09-07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려워서?, 힘들어서?,낯설어서?
글쓰기가 안되는 걸까요?

로쟈 2020-09-07 23:21   좋아요 2 | URL
숨쉬고 걸어다니는 것처럼 생활의 일부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오지 2020-09-07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간 순간 느낌을 기록하고 놓치면 안되겠네요
흔적도 없이 사라질테니. 매일매일 글쓰기?

로쟈 2020-09-07 23:51   좋아요 0 | URL
직업으로 글을 쓰는 건 다른 문제지만 말과 글은 언어생활의 일부죠..
 

'호프 자런과 캐럴라인 냅'이라는 제목을 붙이려다 좀더 친숙한(친숙할 수 있는) 별칭을 택했다. 실제로 두 저자가 그런 별칭으로 불리는지 모르겠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하다. <랩걸>의 저자 호프 자런과 <명랑한 은둔자>의 저자 캐럴라인 냅. 두 저자가 나란히 호명된 건 그냥 같은 시기에 신간이 출간된 때문이다. 

















화제작 <랩걸>로 유명한 호프 자런은 1969년생 과학자로 미국 태생이지만 현재는 노르웨이 오슬로대학에 재직중이라 한다. 이번에 나온 책은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김영사). 원저는 올해 나온 최신작이다. 원저의 제목은 'The Story of More'라서 번역이 까다로운데 'How We Got to Climate Change and Where to Go from Here(우리는 기후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지금 이곳에서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까지 감안해서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라고 제목을 정한 모양이다.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는 밑도 끝도 없이 겁을 주는 책이 아니라, 우리가 누려왔던 것들과 누릴 수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짚어보며 우리 자신이라는 자원으로 생태 위기를 개선해나갈 수 있다고 믿는 현실주의자의 책이다."
















지적이고 유려한 에세이를 쓰는 작가라고 소개되는 캐럴라인 냅은 <드링킹> 같은 책의 저자다. 1959년생으로 지난 2002년에 때이르게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명랑한 은둔자>(2004)는 유교 에세이집. 


"그는 <명랑한 은둔자>에서 혼자 살고 혼자 일했고, 가족과 친구와 개와 소중한 관계를 맺으며 자기 앞의 고독을 외면하지 않았던 삶을 이야기한다. 또한 알코올과 거식증에 중독되었으나 그로부터 힘겹게 빠져나왔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옥죄었던 심리적 굴레를 벗어나 자유와 해방감을 경험한 한 인간의 깨달음을 들려준다."



그냥 에세이집이긴 하지만, 현재의 팬데믹 상황에서 각자가 자발적 은둔자가 되어야 하기에 주목하게 된다. 자발적인 거리두기를 하면서 서로 협력해야 하는 상황에서 뭔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에세이집? 저자의 의도와는 무관하게도 그렇게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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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8 21: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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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9 00: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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