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문학 대표작가들의 대표작들이 새로 번역돼 나왔다.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시공사, 2015)과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문학동네, 2015), 그리고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게르망트쪽으로>(민음사, 2015) 등이다. <좁은 문>과 <페스트>는 강의에서 여러 번 다룬 작품이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내년에 다룰 작품이다. 새 번역본들에도 무관심할 수 없는 이유다.

 

 

지드의 <좁은 문>은 주로 이성복 시인의 문학과지성사판을 주로 이용했지만 최근에는 <배덕자>도 같이 번역된 민음사판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번에 나온 시공사판은 <좁은 문>만 수록하고 있는데, 번역을 대조해보고 교재로 쓸지 생각해볼 참이다.

 

 

<페스트>는 주로 책세상판을 이용했는데(똑같이 김화영 선생 번역이라 민음사판과 거의 차이가 없다) 이번에 나온 문학동네판이 강력한 도전자가 될 듯싶다.  

 

 

<페스트>의 경우에는 열린책들판도 한번 강의에서 사용한 적이 있는데, 뚜렷한 장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덧붙여, <이방인>도 그렇지만 카뮈 작품의 원조 번역자는 이휘영 선생으로 <페스트>와 함께 최근에는 <전락>(문예출판사, 2015)도 다시 나왔다. <전락>의 경우에는 책세상판 외에 창비판이 있었는데, 이제는 세 종 가운데서 골라볼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시지프 신화> 번역이다. 김화영 선생의 책세상판 외에도 문예출판사판과 범우사판이 있고, 새 번역본으로 <시시포스 신화>(연암서가, 2014)가 가세했지만 연암서가판은 기대에 훨신 못 미친다. 더 나은 경쟁 번역본이 나왔으면 싶다.

 

 

그리고 생각난 김에 적자면, 김화영 선생의 <이방인> 해설에서 "<이방인>이 1942년 5월 19일에, <시지프 신화>는 그 이듬해에, 희곡 <칼리굴라>는 1944년에야 <오해>와 함께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다."고 한 대목은 착오를 포함하고 있다(이 해설은 이번에 나온 책세상판 개정판이나 민음사판이나 동일하게 수록되어 있다). 작가 연보에도 명기돼 있듯이 <시지프의 신화>는 '그 이듬해'가 아니라 같은 해인 1942년 10월에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오류는 유기환 교수의 <이방인>(홍익출판사, 2014) 작가 연보에서도 발견된다. 1943년에 출간된 걸로 기록하고 있다.

 

사소하지만 이런 착오가 20년 넘게 방치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너무 사소해서일까?). 하지만 강의하는 입장에서는 사소하지 않다. 언젠가 카뮈에 대해 강의하면서 <시지프 신화>가 1943년에 출간되었다고 말한 적이 있기 때문인데, 그렇게 헷갈리게 만든 원인이 바로 이 해설과 연보다.  

 

 

더 사소한 오류도 적자면, <김화영의 번역수첩>(문학동네, 2015)에도 재수록된 <마담 보바리>(민음사, 2000) 해설에서 필자가 참고한 영어판 가운데 노튼판 번역자가 폴 드 만(Paul de Mann)이라고만 돼 있다. 노튼판 <마담 보바리>는 비평판이어서 번역 외에 작품에 대한 주요 비평도 수록하고 있는데, 폴 드 만은 이 비평판의 편자이고 번역의 감수자다. 드 만이 교정한 <마담 보바리>의 실제 번역은 엘레노어 맑스 아벨링(Eleanor Marx Aveling)의 것이다. 바로 칼 마르크스(맑스)의 막내딸이다. 번역자로도 유명한데 <마담 보바리> 영역본은 1886년에 펴냈다. 그밖에 입센의 주요 희곡들도 영어로 옮겼다.(*김화영 선생이 참고한 1965년판과 내가 갖고 있는 2004년판의 역자 표기 방식이 다른지도 모르겠다.) 

 

 

김희영 교수의 번역으로 나오고 있는 민음사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전체 7권 가운데, 3권이 출간됨으로써 중반에 이른 듯싶다(현재는 원저의 각 권이 두 권짜리도 나오고 있다). 내년에는 1권(<스완네 집 쪽으로>)과 2권(<꽃핀 처녀들의 그늘에서>)을 일단 강의에서 읽을 예정인데(펭귄클래식판도 같이 읽을 예정이다), 사정에 따라서는 3권도 읽을 기회가 생길지 모르겠다. 미리 대비하기 위해서 오늘 번역본과 함께 영어판도 주문했다...  

 

15.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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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1 16: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종교에 관한 책 두 권을 같이 묶는다. 개정판이라는 게 공통점인데, 조르주 바타유의 <종교이론>(문예출판사, 2015)과 이태하의 <종교의 미래>(아카넷, 2015)가 그 두 권이다. 바타유의 책은 <어떻게 인간적 상황에서 벗어날 것인가>(문예출판사, 1999)로 번역되었다가 원래의 제목을 되찾았고, 이태하 교수의 책은 불과 몇 달만에 표지갈이를 하고서 다시 나왔다. 분량도 약간 늘어났다.

 

 

<종교이론>의 부제는 '인간과 종교, 제사, 축제, 전쟁에 대한 성찰'이다. 인류학 책으로 읽어도 무방한데, 문제는 분량 대비 난이도이다. 150쪽밖에 되지 않지만, 바타유의 책 가운데 가장 난해한 축에 속한다. 이미 이전 번역본에 대해서 지적한 바 있지만 그런 난해함을 가중시키는 것이 엎친데 덮친 격의 번역이었다. 얼마나 손을 보아 개정판이 나온 것인지는 확인해볼 일이지만, 좀 염려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제대로 번역되었다면 우리는 바타유 특유의 인류학적 성찰과 만날 수 있다.

바타유의 화두는 '어떻게 인간적 상황을 벗어나는가?'이다. 바타유는 인간도 동물성, 사물 또는 도구의 입장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도구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으며, 목표와 관계할 때만 가치를 갖는다. 우리는 여기서 언어의 가장 두드러진, 가장 심각한 탈선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도구를 사용해서 어떤 것을 생산하지만, 그 생산물은 다시 다른 어떤 것에 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고리는 계속 이어진다. 바타유는 수단을 벗어나기 위한 인간의 몸부림을 전쟁, 종교, 제사, 축제에서 찾고 있다.

 

<종교의 미래>도 얇은 책이다(하비 콕스의 책도 같은 제목으로 번역된 바 있다). 분량이 늘어난 개정판도 230쪽에 불과하다. '반종교와 무신론을 넘어서'가 부제. "저자는 우리 시대의 종교를 이해하기 위해서 종교를 옹호하는 무신론과 종교를 거부하는 유신론 모두를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런 맥락에서 제시된 종교 없는 신, 신 없는 종교, 종교 없는 종교, 이 세 용어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이 책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단서 역할을 한다."

 

 

얼마간 관심을 갖고 읽어봄직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더 관심을 갖는 건 저자가 번역한 흄의 책들이다. <기적에 관하여>(책세상, 2003) 이후 <종교의 자연사>(아카넷, 2004)와 <자연종교에 관한 대화>(나남, 2008) 등이 더 번역되었는데, <기적에 관하여>를 제외하면 모두 절판된 상태다. 흄의 종교론에 흥미가 생겨서 찾았을 때 이미 구하기가 어려운 상태였으니 벌써 수년 전이다. 생각난 김에 다시 나오기를 기대한다...

 

15. 12.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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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된 책 가운데 하나였던 코플스턴 신부의 <그리스 로마 철학사>(복코리아, 2015)가 출판사를 옮겨 다시 나왔다. 애초에 철학과현실사(1998)에서 나왔던 책이다.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서양철학사를 단독으로 써낸 경우는 코플스톤 신부와 옥스포드 대학의 앤서니 케니 교수를 제외하곤 떠오르지 않는다. 분량으로는 코플스톤의 철학사(전9권)가 더 방대한 듯싶다. <그리스 로마 철학사>의 목차는 예상과 다르지 않다.  

 

제1부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
제2부 소크라테스의 시대
제3부 플라톤
제4부 아리스토텔레스
제5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고대철학

아무려나 시리즈 서양철학사 가운데서는 가장 오랫동안 읽히는 듯싶은 책이 다시 나와 반갑다.

 

 

 

<그리스 로마 철학사>에 이어지는 책은 <중세철학사>(서광사, 1989), <영국경험론>(서광사, 1991), <합리론>(서광사, 1998)이다.

 

 

독일 관념론으로 넘어가면 <칸트>(중원문화, 2013)와 <18.19세기 독일철학>(서광사, 2008)이 번역돼 있는데, <칸트>는 코플스턴의 철학사 6권(프랑스혁명에서 칸트까지)에서 칸트 파트만 옮긴 것이다. <18.19세기 독일철학>은 그에 이어지는 7권의 번역서다. 6권이 부분역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론 9권 가운데 6권이 번역된 셈이다. 아직 번역되지 않은 것은 4권(중세 후기와 르네상스 철학), 8권(현대 영미철학), 9권(현대 프랑스철학)이다. 마지막 권에서 다루는 현대 프랑스철학은 프랑스혁명부터 20세기 중반까지가 범위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와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이 마지막 장들의 제목이다. 

 

결과적으론 나오다 만 미완의 철학사 시리즈가 돼버렸는데, 완결될 가능성은 별로 없을 듯싶다. <그리스 로마 철학사>가 이제야 재간된 걸 보아서도 그렇다. 이런 책들을 구매할 독자층이 없는 것이다.

 

 

 

해서 서양철학사를 자세하게 읽고픈 독자라면 앤서니 케니의 4권짜리 서양철학사를 읽는 게 좋겠다(다행이 완결되었다). 앤서니 케니가 쓰거나 엮은 단권짜리 서양철학사 두 종은 모두 절판된 상태다...

 

15.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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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철학자 휴버트 드레이퍼스의 <인터넷의 철학>(필로소픽, 2015)이 재번역돼 나왔다. 원저 2판의 번역이다. 당초 초판은 <인터넷상에서>(동문선, 2003)란 제목으로 번역돼 나왔었다(원제는 <인터넷에 대하여>). 저자명이 '하버트 드레퓌스'라고 표기되었다. <인터넷 철학>(동문선, 2003)이란 제목의 책도 있는데, 고든 그레이엄이 저자다. 번역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게 치명적. 

 

현상학과 인공지능 분야의 거장 드레이퍼스 교수의 인터넷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성찰. 플라톤에서 니체, 데카르트에서 하이데거까지 다양한 노선의 사상가들을 끌어들여, 인터넷이 대중 교육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인간에게 새로운 차원의 공동체를 열어줄 수 있는가와 같은 문제를 탈신체화에 관한 현상학적 관점으로 논의한다.

 

드레이퍼스는 숀 도런스 켈리와의 공저 <모든 것은 빛난다>(사월의책, 2013)를 통해서 국내 인문 독자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는데, 사실은 폴 라비노우와의 공저 <미셸 푸코: 구조주의와 해석학을 넘어서>(나남, 1989)로 학계에 이름을 알린 철학자다. 80년대에 영어로 나온 푸코 연구서들 가운데 평판이 가장 좋은 책이었다. 그리고 하이데거 철학의 권위자로도 유명한데 일찍부터 인공지능과 인터넷 등의 주제에도 관심을 두어왔다. 몇 권 더 소개돼도 좋을 만한 저자라고 생각한다.

 

 

인터넷 철학에 견줄 만한 심리학 책은 없을까 찾아봤는데, 패트리샤 월리스의 <인터넷 심리학>(에코리브르, 2001)이 눈에 띈다. 지금은 절판된 책인데, 너무 일찍 나왔던 게 아닌가도 싶다(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의 번역이다).

<인터넷 심리학>은 현실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인간 행동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지은이는 사이버 공간이라는 새로운 무대에서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하고, 이러한 행동이 왜 일어나며 또 이 공간에서 사람들은 어떠한 삶을 만들어나가는지, 그 행동과 심리의 패턴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나간다.

아닌 게 아니라, 원저는 올해 2판이 출간되었다. 여전히 유효한 책이라는 뜻도 되겠다. 번역본도 개정판으로 다시 나오면 좋겠다. 국내서로는 이민영 박사의 <인터넷 심리학>(커뮤니케이션북스, 2015)이란 얇은 책이 나와 있다...

 

15.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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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고전'으로 앙리 베르그손(개인적으로는 '베르그송'이란 표기를 더 선호하지만 출간된 표기를 따른다)의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아카넷, 2015)을 고른다(살펴보니 '이주의 고전'도 몇 권 밀렸다). 초역은 아니지만 아카넷의 '대우고전총서'에 들어있는 베르그손의 나머지 주저들과 '깔맞춤'하는 의미는 있다.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은 베르그손의 마지막 주저다. 베르그손은 19세기 말의 근대로부터 20세기의 탈근대로 이행하면서 새로운 사유의 물꼬를 열어놓은 위대한 철학자다. 근대적 사유가 기계적 결정론에 물든 과학적 인식과 추상적 관념의 논리에 사로잡혀 있을 때, 베르그손은 창조적인 지속과 역동적인 생성의 존재론으로, 구체적인 삶의 생동하는 실재에 대한 직관으로 사유의 패러다임을 전환시키면서 당대 최고의 명성을 획득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미래적 사유의 잠재적 원천으로 존중받고 있다.

<종교와 도덕의 두 원천>의 다른 번역판들도 갖고 있지만 완독하진 않았다. 이번 번역판을 '정본'으로 간주해서 일독해봐야겠다. 역자는 <물질과 기억>(아카넷, 2005)을 옮긴 박종원 박사다.

 

 

베르그손의 책들을 관심을 갖고 읽은 건 대학원 시절이니 20년쯤 전의 일이다. 아카넷판으로 나오기 이전의 번역본들로 초기 저작과 <웃음><사유와 운동> 등을 읽은 기억이 난다. <창조적 진화>까지는 가지 못했는데(당시에는 세로읽기로 나온 번역판만 있었다) 여건이 좋아진 이후에는 오히려 관심이 멀어졌다(다른 저자들에게 관심을 갖는 바람에). 마지막 주저가 새 번역판으로 나온 김에 거꾸로 읽어나가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내년에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고 강의할 계획도 있는데, 베르그손의 저작도 같이 읽을 기회가 자연스럽게 마련되겠다. 벌써 내년의 독서와 강의 준비로 마음이 분주하다... 

 

15. 11.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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