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물론 쇼펜하우어의 주저다. 그렇게 적은 건 책이 다시 나왔기 때문인데, 을유사상고전판은 보급형 모양새이지만 책값은 오히려 높게 매겨졌다. 그래도 처음 구입하는 독자라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 몇 종의 번역본을 갖고 있지만 나도 읽는다면 을유문화사판이다. 다만 대개의 철학서들이 그렇듯이 읽을 만한 여분의 시간을 갖지 못할 따름이다(여러 번 시도하고 영역본까지 구입해놓은 지도 몇년 되었다).

쇼펜하우어는 윌 듀란트의 <철학이야기>를 통해서 처음 접한 듯한데(그때가 고3때였던 듯) 이후에는 문학에 끼친 영향 때문에 독서과제가 되었다. 유럽 자연주의 문학은 쇼펜하우어 철학을 감안하지 않으면 쭉정이만 읽는 게 된다. 졸라만 예외로 하고 입센이나 투르게네프, 하디와 모파상 등이 모두 쇼펜하우어의 영향하에 놓인다. 톨스토이와 토마스 만까지도 그렇다(쇼펜하우어와 톨스토이는 니체와 도스토옙스키처럼 비교거리다).

가령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에서 직접 언급되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참조한다면 토마스 부덴브로크의 몰락 과정을 더 깊이 공감하며 따라갈 수 있으리라. 읽은 지 오래 되어 엊그제 다시 주문하기도 했는데 톨스토이의 <인생론>에도 쇼펜하우어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 않았던가 싶다. 니체와의 관계는(‘교육자로서의 쇼펜하우어‘) 잘 알려져 있기에 군말을 보탤 필요도 없다. 갑자기 든 관심인데 후기 프로이트에도 영향을 주었는지 찾아봐야겠다. ‘괴로운 날엔 쇼펜하우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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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자 김두식 교수의 대표작 <불멸의 신성가족>(창비)이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 2009년에 초판이 나왔으니 10년만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으로 한번 더 여실히 드러난 게 법조계 엘리트들이 장악한 ‘그들의 세계‘다. 덕분에 10년 전보다 책의 시의성이 더 두드러진다.

˝개정판에서는 최근 벌어진 ‘사법행정권 남용‘이 한국 법조계에 던지는 시사점을 정리한 글을 수록하고, 사법시험 폐지와 법학전문대학원 출범 등 초판 출간 이후 법조계에 일어난 주요 변화들을 반영해 내용을 업데이트했다. 그동안 통계나 개인 저술에만 머물던 법조연구의 고무적인 시도이자 일반 시민들에게 멀게만 느껴졌던 법조계의 내부를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심층탐구했다.˝

10년 전에 읽은 책이지만 기꺼이 다시 읽고픈 생각이 든다. 비록 <법률가들>(창비)은 아직 숙제로 남겨둔 상태이지만 이런 ‘새치기‘는 불법이 아니라 독서인의 권리다. 혹 10년 뒤에 또 개정판이 나오게 될까? 한국사회의 진보를 가늠하는 한 척도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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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인류학자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된 공동체>(길)가 새 번역본으로 나왔다. 가장 먼저 나왔던 번역판으로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나남)나 그 개정판 <상상의 공동체>이 모두 절판된 상태여서 현재로선 유일 번역본이다. ‘민족주의의 기원과 보급에 대한 고찰‘이 부제. 선택의 여지도 없지만 정본 번역본의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에 새롭게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번역은 앤더슨의 또 다른 주요 저술인 <세 깃발 아래서: 아나키즘과 반식민주의적 상상력>을 번역 출간했으며, 앤더슨과 마찬가지로 태국·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정치를 연구하고 있는 서지원이 번역했다. 앤더슨은 10여 개 언어의 탁월한 구사력, 동남아시아학에 대한 정통한 학문적 역량을 바탕으로 유럽만이 아니라 그 식민지들 및 다른 국가들의 경험까지 섭렵하고 있고, 그 국가들의 정치와 더불어 문학 또한 전거로 활용하는 탓에 그 글을 번역하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이를 한국어로 옮기기 위해 옮긴이는 직접 지은이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번역을 다듬었다. 이제야말로 이 사회과학 고전을 제대로 읽을 기회를 얻은 것이다.˝

앤더슨의 주장(민족=상상된 공동체)은 국내에서도 많은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는데 어떻게 결론이 맺어졌는지 모르겠다. 이 주제와 관련한 논문집도 나옴직하다. 민족과 근대성의 문제를 다루는 데 중요한 자극과 영감을 주는 책인지라 나도 이번 기회에 정독해봐야겠다. 기억에는 이전 번역판 <상상의 공동체>를 대충 훑어보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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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고전 가운데 하나로 베티 프리단의 <여성의 신비>가 다시 나왔다. 제목이 <여성성의 신화>(갈라파고스)로 바뀌었다. 제목이 바뀐 건 저자의 반어적인 의도를 살리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통용되던 제목을 바꾼 것이어서 좀 번거롭게 되었다. 어떤 책이었나.

˝이 책은 여성의 지적 능력에 대한 확신을 훼손시키고 여성들을 집안에만 가둬두는 교활한 신념과 제도인 ‘이름 없는 문제’를 완벽하게 설명해냈다. 흥미진진한 일화와 인터뷰, 통찰력 넘치는 글을 통해 여성들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되찾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다시 나온 덕분에 바뀐 표지로 읽을 수 있게 된 건 다행스럽다. 최초 번역본이 조악한 번역으로 책을 망친 경우라면 두번째 번역본은 뜨악한 표지로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들고 다닐 수가 없는 종류의 표지였다). 이번에는 코르셋을 넜었는데 나름 코르셋(탈코르셋)이 이슈가 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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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혁명에 대한 전통적 해석을 대표하는 알베르 소불의 <프랑스혁명사>(교양인)가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 애초에는 두권짜리 <프랑스대혁명사>(두레, 1984)로 나왔던 책이니 34년만에 나온 개정판이다. 번역자 최갑수 교수는 그 사이에 20대 대학원생에서 정년을 앞둔 나이가 되었다.

‘전통적 해석‘이라고 한 것은 그에 맞서는 수정주의적 해석의 강력한 도전을 받았기 때문이다. 수정주의 해석의 대표자가 프랑수아 퓌레로 국내에도 그의 책이 번역됐었다. 이념적으로 대비하자면 프랑스혁명을 부르주아혁명으로 이해하는 소불의 해석이 마르크스주의에 근거한다면 이에 반대하는 퓌레는 자유주의적(부르주아적) 입장에 서 있다.

두 입장의 ‘끝장토론‘이 프랑스에서 전개되었는지, 어떤 결론에 도달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역자후기의 제목이 ‘왜 여전히 소불을 읽어야 하는가‘인 것으로 보아 전통적 해석이 여전히 수세 국면인 것도 같다. 하지만 역자와 마찬가지로 나는 소불의 견해(프랑스혁명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에 동조한다. 프랑스문학 강의에서도(그리고 뒤이은 러시아혁명에 대해서도) 그런 입장을 취한다.

프랑스혁명사 관련서는 러시아혁명사와 마찬가지로 최대한 구해놓고는 있는데 이 주제 역시 ‘어디까지 읽어야 할지‘ 고심하게 한다. 막연히 남은 여생을 생각하면 읽을 수도 있을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 독서는 ‘이주의 독서‘나 ‘이달의 독서‘가 되지 않으면 물 건너 간 독서다. 아주 오랜만에 나온 <프랑스혁명사>의 묵직한 개정판을 반가워하면서도 환한 표정을 짓지 못하는 이유다. 인간의 진화가 독서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한번 더 확인한다. 그래도 손에서 놓지 못하는 가련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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