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고전'으로 마키아벨리의 <로마사론>(연암서가, 2016)을 고른다. <군주론>과 함께 대표작으로 꼽히지만 <군주론>만큼 많이 번역되진 않아서 이번에 나온 것이 세번째 번역본이다. 난해함과 함께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갖고 있는 게 고전인지라 이 정도 '중복'은 필요한 중복이다. 어떤 책인가.

 

"마키아벨리의 저서 <군주론>은 그의 이름을 독재적 무자비함, 냉소적 배후 조종과 동의어로 만들었다. <군주론> 못지않게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저서인 <로마사론>은 그것과는 전혀 다른 정치적이고 논쟁적인 전망을 드러낸다. <로마사론>은 고대 로마인들의 관습을 마키아벨리 당시의 이탈리아인들의 그것과 비교하면서 그의 모든 저서에서 일관되게 드러나는 정치사상을 개진한다. 리비우스의 <로마사>를 면밀히 분석 논평함으로써 아주 독창적이고도 명석한 정치사상에 도달하는데 그것은 곧 건강한 정체는 경직된 안정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분열과 갈등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이 책에서 '음모'에 관해 논한 부분은 정치적 격변의 원형을 다룬 가장 놀랍고 세련된 연구로 평가된다."

 

나는 한길사판 <로마사 논고>도 갖고 있지만 아직 읽어보진 못했다. 안 그래도 콜린 맥컬로의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를 비롯해서 로마 관련서들이 다수 나와 있어서 겸사겸사 마키아벨리의 책에까지 눈길이 간다. 좀더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로마사 가이드북을 일독한 연후에 손에 드는 것이 요령일 것도 같다. 두툼한 평전 몇 권도 올여름에 읽으려고 맘잡고 있었는데, 도대체가 이 책들을 다 읽을 수 있는 건지 고민스럽다. '즐거운 비명'이라고 해야겠지만 나이를 먹어가다 보니 즐거운 것도 스트레스다...

 

16. 0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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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힌 인디언 기록문학',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길, 2016)가 재출간되었다. 1970년작. 찾아보니 번역본은 이번이 네번째 출간이다(숲노래님의 제보로 다시 검색해보니 1979년에 청년사에서 나온 판본이 있다. 역자는 동일. 청년사판을 최초본으로 생각하면 이번에 나온 건 다섯번째다). 프레스하우스(1996), 나무심는사람(2002), 한겨레출판(2011)이 앞서 나온 판본들이다. 이렇게 여러 번, 출판사가 바뀌면서 출간되는 건 보통 두 가지 이유다. 책이 안 팔렸다는 것, 그럼에도 좋은 책이라는 것. 찾아보니 2007년에는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얼마전에 국내에서 DVD로도 출시되었다. <내 심장을 운디드 니에 묻어다오>. 개봉되었던 영화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히스토리 채널에서 방영되었을 가능성은 있다(예고편은 https://www.youtube.com/watch?v=irjRMmQ1n-A).

 

 

 

부제는 '인디언 멸망사'다. 그걸로 모든 내용을 가늠해볼 수 있다. 책의 의의는 이렇게 소개된다.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이 현대 환경운동에 불을 지폈다면,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는 같은 방식으로 아메리카 토착민에 대한 약탈행위의 진상을 일반 대중에게 알렸다."(햄프턴 시드)  

"백인들의 끝없는 탐욕이 일으킨 인디언 학살전쟁에서 마누엘리토, 붉은구름, 검은주전자, 앉은소, 매부리코, 작은까마귀, 조셉, 제로니모 등 진정한 평화주의자이자 자연보호주의자였던 인디언 전사들이 부족들을 구하기 위해 치렀던 수많은 투쟁을 다룬 기록문학이다.  "백인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이 지역의 어느 곳에도 정착할 수 없으며 어느 부분도 점유할 수 없다. 또한 인디언의 동의 없이는 이 지역을 통행할 수 없다(1868년 조약)"고 했지만 지켜지지 않은 수없이 파기된 조약에 관한 이야기가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인디언의 언어와 구술을 최대한 살려 인디언의 입장에서 서부개척시대를 다시 돌아본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니는 책으로, 2002년 저자가 사망한 후 유명한 소설가 햄프턴 사이즈(시드)의 헌사가 실린 개정판을 번역했다."

내가 갖고 있는 것이 나무심는사람본인지 한겨레출판본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당연히 소재 불명이다(그간에 여러 차례 이사를 했으니). 이번에는 원서와 같이 구해서 잘 보존하고, 무엇보다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같이 읽을 만한 책은 앞서 인용한 햄프턴 시드의 <피와 천둥의 시대>(갈라파고스, 2009)다. '미국의 서부 정복과 아메리칸 인디언 멸망사'가 부제. 이 책도 소장하고 있는 줄 알았더니 구매내역에 없다(간혹 누락된 것도 있어서 기억과 기록 사이에서 어느 것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혼란과 모순의 시대였던 19세기 미국의 서부 정복담과, 이로 인한 아메리칸 인디언의 멸망과 몰락을 이야기한다. 피와 천둥으로 상징되는 혼란의 시대에서 기뻐하고 눈물 흘리는 인간의 파란만장한 삶을 산山사나이 키트 카슨과 인디언 나바호족의 모습으로 그려냈다. <뉴욕 타임스> 및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 책은 인디언의 신실한 친구였던 키트 카슨이 어떻게 인디언 학살의 주범이 되어 서부 시대의 영웅으로 거듭나는지, 미국 서부 정복의 이면에 감춰진 역사적 진실을 파헤친다. 또한 아메리칸 인디언 중 가장 번창했던 나바호족이 탐욕에 눈 먼 자들에 의해 어떻게 파멸되어갔는지를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인디언 멸망사'란 달리 말하면 '미국 흑사'이고 '백인 잔혹사'다. 새삼 그들의 역사가 무엇을 남겼고 어떤 교훈을 주는지 생각해보게 된다(지금은 보통 '우화'나 '지혜'로 남았다). 사진집으로 에드워드 커티스의 <북아메리카 인디언>(눈빛, 2011), 그리고 국내서로 김철의 <인디언의 길>(세창출판사, 2015), 박홍규의 <인디언 아나키 민주주의>(홍성사, 2009) 등이 더 참고할 만한 관련서다...

 

16. 0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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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방학과 여름휴가들을 앞두고 있는 시기라(대개 그렇다는 것이고, 나는 아무런 휴가계획도 갖고 있지 않지만) 눈에 띈 책은 울리히 슈나벨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힘>(가나출판사, 2016)이다. 눈에 띄었으니 '발견'이라고 해야겠다. 저자는 초면이 아니고, 책도 알고 보니 제목을 바꾸어 다시 펴낸 것이다. 처음 제목은 <휴식>(걷는나무, 2011)이었다. 곧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란 휴식을 푼 말이다('멍때리는 시간의 힘'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그밖에 저자의 책으론 <종교는 왜 멸망하지 않는가>(열린세상, 2013)가 더 나와 있다.

 

 

부제는 '독일 최고의 과학 저널리스트가 밝혀낸 휴식의 놀라운 효과'. 주간지 '디 차이트'의 학술부문 편집자로 일하고 있어서 '과학 저널리스트'로 소개되는 모양이다. 내용은 어렵지 않게 가늠해볼 수 있다.

"독일에서 여러 차례 언론상을 수상하며 가장 영향력 있는 저널리스트 중 하나로 손꼽히는 울리히 슈나벨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힘>을 통해 사회 전반을 물들이고 있는 시간 부족의 원인을 여러 연구 결과와 전문가들의 인터뷰, 다양한 사례를 통해 설득력 있게 분석한다. 그리고 ‘쉬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경쟁에서 뒤쳐지는 것이 두려워 쉼 없이 달리다 ‘번 아웃’ 상태에 빠지곤 하는 현대인들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아주 잠시라도 해야 할 일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임을 차분히 설명한다." 

 

 

찾아보니 원저는 2010년에 나왔다. 국내에 곧바로 소개됐지만 당시엔 별로 재미를 못 보았던 듯. 제목과 표지갈이를 한 뒤에(그밖에 손을 더 보았는지는 모르겠고) 새로운 독자들을 기다리는 모양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면 독서도 접어두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독서는 예외일까...

 

16. 07.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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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심 기다리던 책이 출간되었다. 앙드레 모루아의 <프랑스사>(김영사, 2016). <영국사>(김영사, 2013)와 <미국사>(김영사, 2015)가 차례대로 재간되기에 <프랑스사>도 곧 다시 나오겠거니 생각했다. 그리고 사실 가장 읽고 싶은 건 자기 조국의 역사인 <프랑스사>였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올해 프랑스문학 강의를 계속하고 있기에 때맞춰 읽어보려는 계산에서다.

 

"프랑스 지성 앙드레 모루아가 자국의 역사를 대문호적 통찰과 섬세한 문학적 필치로 풀어낸 역사서술의 완결판. 절대 권력의 왕정국가에서 자유와 평등의 국민국가로 발돋움한 프랑스의 고귀한 힘과 정신을 한 권으로 만난다. 최초의 왕조 메로빙거의 등장부터 프랑크 왕국의 성립, 절대왕정 속에서도 문화와 사상이 꽃을 피우고, 프랑스 혁명을 거쳐 현대 공화국 체제가 성립되기까지. 20세기를 대표하는 프랑스 대문호 앙드레 모루아가 격동의 프랑스 역사를 평론가로서의 해박한 식견과 문학가로서의 유려한 문체, 역사가로서의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심도 있게 풀어냈다."

실제 집필도 <영국사>(1937), <미국사>(1943)에 이어서 <프랑스사>(1947)가 맨 나중이다. 그렇더라도 20세기 전반까지만 다루는 만큼 전후 현대사는 빠지는 셈. 하지만 나의 관심사는 주로 19세기이기 때문에 오히려 장점이 된다(그만큼 19세기에 할애된 분량이 늘어나기에).

 

 

모루아의 역사서는 예전에 기린원에서 출간됐었다(아마도 그 이전에는 홍성사에서 나오지 않았던가 한다). 당시에는 (다행스럽게도) 구입하지 않았는데, 새 장정으로 나온 재간본은 표지도 그렇고 꽤 번듯하다. 겉보기 좋은 책이 읽기에도 좋다는 게 늘 통하는 말은 아니지만, 모루아의 역사서들만큼은 새롭게 독서욕을 자극한다. 장서용으로도 폼이 나고. 오늘도 택배가 너무 많이 와서 잔소리를 들었는데, 언제쯤 구입해야 할지 잘 생각해봐야겠다...

 

16. 0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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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zone 2020-02-04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처럼 책을 쟁여대면 일반적으로 잔소리 정도가 아니라 생명의 위협을 당할지도 모를 걸요.ㅎ 로쟈님 글 보고 방금 모루아 프랑스사 질렀으요.
 

'이주의 고전'으로 다룰 책들이 좀 밀려 있는데, 시간이 없어서 일단은 윈스턴 처칠의 회고록 <제2차 세계대전>(까치, 2016)만을 언급하도록 한다. 이번에 나온 번역본이 상하 합계 145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인데, 원저의 '발췌본'이다. 전6권 분량의 원저는 전문가가 아니라면 직접 참고하긴 어려운 대작이다. 원저는 각권 900여쪽이고, 발췌본은 1000여쪽이므로 대략 6분의 1보다는 많고 5분의 1보다는 적은 분량. 발췌본 원서까지 구입할지 고민중이다.

 

 

영국 수상으로서 자신이 직접 치른 전쟁에 대한 상세한 회고록을 남김으로써 처칠은 그의 역사적 공과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평가받을 만하다. 이 <제2차 세계대전>을 주요한 업적으로 그는 1953년에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했다. 몇년 전 노벨문학상 작가들을 강의하면서 새삼 알게 된 사실인데, 국내에 번역본이 없어서 좀 놀랐었다. 이번에(이제서야) 번역본이 나온 셈인데, 역자는 차병직 변호사다. 어떤 의의가 있는 책인가.

'전쟁에는 결단', '패배에는 투지', '승리에는 관용', '평화에는 선의'라는 네 가지 '교훈'에 기초하여 집필된 윈스턴 처칠의 <제2차 세계대전>. 1,500만의 사망자와 3,450만의 부상자를 기록한 인류 역사 최대의 전쟁인 제2차 세계대전의 전체 역사를 개관한 결정판이다. 개인의 회고록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이 책은 양적 측면에서는 물론이고 내용과 의미의 질적 측면에서도 그 깊이와 넓이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제2차 세계대전에 관한 저작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처칠의 역할과 그에 대한 평가로는 폴 존슨의 <윈스턴 처칠의 뜨거운 승리>(주영사, 2010)가 적당한 분량의 책이다. 원제는 <처칠>. 그밖에 니겔 로저스의 <30분에 읽는 처칠>(랜덤하우스코리아, 2005)과 존 램스덴의 <처칠>(을유문화사, 2004)이 소개됐었지만 현재는 절판된 상태. 가장 얇은 책과 가장 두꺼운 책이다(램스덴의 전기는 880쪽에 이른다).

 

 

한편, 처칠 자신의 책으로는 자서전으로 <처칠, 나의 청춘기>(원제 <나의 젊은 시절>)와 <폭풍우 한가운데>(원제 <사상과 모험>) 등이 더 번역돼 있다. 2차 세계대전의 전체상과 비교하기 위해서는 존 키건의 <2차세계대전사>(청어람미디어, 2007)를 옆에 두고 같이 보면 좋겠다. 그나저나 이 정도 분량이면 여름 휴가 때나 읽을 수 있는 것 아닌가. 혹은 다리가 부러져 입원하든지 해야...

 

16. 06.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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