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올라오는 길에 시와 소설을 같이 쓰는 임솔아의 첫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문학과지성사)을 읽었다. 보통 시집은 최고의 시 한편만 고른다는 기분으로 읽는데, 그러면 밑지지 않으면서 빨리 읽게 되는 이점이 있다. 이 시집에서는 ‘모래‘가 그 한 편이다.
제목대로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이 나오는 시도 들어 있기는 하지만(그들은 ‘예보‘라는 시에 나온다), 내 마음을 끈 것은 ˝오늘은 내가 수두룩했다˝로 시작해서 ˝오늘은 내가 무수했다˝로 마무리되는 시이다.
오늘은 내가 무수했다.
나를 모래처럼 수북하게 쌓아두고 끝까지 세어보았다.
혼자가 아니라는 말은 얼마나 오래 혼자였던 것일까.
시의 마지막 연인데 말장난에다 정서를 얹는 스킬이 이 시인의 장기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런 장기가 제대로 발휘된 시는 많지 않다. ‘모래‘는 표본이 아니라 예외에 가까운 시이다. 처음 세 연을 읽어 본다.
오늘은 내가 수두룩했다.
스팸 메일을 끝까지 읽었다.
난간 아래 악착같이 매달려 있는
물방울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떨어지라고 응원해주었다.
내가 키우는 담쟁이에 몇 개의 입이 있는지
처음으로 세어보았다. 담쟁이를 따라 숫자가 뒤엉켰고 나는
속고 있는 것만 같았다.
기본적으로는 언어유희적 착상에 의해 이끌어지는 시이지만 어떤 정서를 건드린다(주로 동사들이 그런 환기력을 갖는다). 시의 각 연은 모래알처럼 별다른 연관 없이, 끈끈함 없이 나열돼 있는데, 보통은 흠이 되지만 이 시는 제목이 ‘모래‘이기에 그 또한 효과적인 전략으로 간주할 수 있다. 5연에 가서, ˝깁스에 적어주는 낙서들처럼/ 아픔은 문장에게 인기가 좋았다˝는 또 얼마나 재치 있는 진술인가.
그런가 하면 너무 나이브해서 당혹스런 구절도 만나게 된다. ‘아름다움‘이란 시의 한 연이다.
이곳을 떠나본 자들은
지구가 아름다운 별이라 말했다지만
이곳에서만 살아본 나는
지옥이 여기라는 걸 증명하고 싶다.
시집 전체에서도, 그리고 ‘아름다움‘이란 시에서도 맥락을 찾기 어려운 돌발적인 진술이다. ‘포즈‘로서도 점수를 주기 어렵다.
기린이 보고 싶어서
기린을 보러 간다
기린은 보지 못하고
기린을 만든다
(...)
기린에 기린이 없어서
지구에 지구가 없어서
사람에 사람이 없어서
좋다
(...)
세계가 세계로부터 헛걸음을 한다
나는 나를 모형들과 함께 세워둔다 (‘모형‘)
전문을 다 적지는 않았지만 다 적더라도 별로 나아지지 않는 시다. 이렇게 ‘헛걸음‘ 하도록 만드는 ‘시‘까지도 시집에 포함하게 되면 시인의 역량뿐 아니라 저의까지도 의심하게 된다(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시집에는 그 흔한 해설도 붙어 있지 않은데 혹 그런 이유에서인가란 생각도 들었다.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로서 ‘모래‘와 괴괴한 시들의 차이를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