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과 다락방의 미친 여자

이번주 출간도서 가운데 분량으로 가장 압도적인 책은 재닛 브라운의 <찰스 다윈 평전>(김영사, 2010)이다. 탄생 200주년이었던 작년에 이미 예고된 책인데, 출간이 약간 늦어졌다(하긴 <종의 기원> 새 번역본도 아직 나오지 않았다). 아무튼 에이드리언 데스먼드 등이 쓴 <다윈 평전>(뿌리와이파리, 2009)과 다윈에 관한 전기 중에서 단연 독보적이라 한다(사실 2000쪽이 넘는 분량 자체가 독자를 압도하고 남는다). 지난주에 나온 최종덕 교수의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휴머니스트, 2010)도 기획상으론 작년에 나와야 했을 것 같은데, 좀 늦춰진 책이다. 다윈 탄생 200주년의 '후폭풍'으로 봐야겠다. 두 책과 관련한 기사들을 챙겨놓는다.   

서울신문(10. 09. 04) 다윈과 한국사회… 대화로 풀다

찰스 다윈(1809~1882)이 1859년 ‘종의 기원’을 내놓았을 때 세상은 들끓었다. 신이 모든 것을 창조했다는 종교적 관념의 뿌리를 뒤흔든 탓이다. 당시 우스터 주교의 부인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며, 사실이라면 알려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고 했다는 말은 다윈의 진화론이 만들어낸 충격파가 얼마나 컸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진화론이 낳은 파장과 그늘은 오히려 그 이후에 더욱 심각했다.

‘마르크스가 자신의 대표적 저서 자본론 1권을 다윈에게 헌정했다.’는 헛소문이 돌 정도로 사회주의적 유물론자들에게도 충격을 줬다. 다윈의 진화론이 사회혁명이론의 정당성을 자연과학적으로 뒷받침한다고 본 것이다.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마르크스의 장례식장에서 “다윈이 자연의 발전 법칙을 발견한 것처럼 마르크스가 인간사회의 발전 법칙을 발견했다.”고 말한 연설은 유물론자들이 다윈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설명해준다.

또 1940년대 구 소련에서는 다윈의 이론을 신성불가침으로 받아들인 생물학자 리셴코가 당시 서구에서 입증된 ‘개체발생 이후의 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멘델학설을 부정하며 이에 반대하는 학자들을 반동으로 몰아 숙청했을 정도로 정치 영역으로까지 깊숙이 침투했다. 그뿐만 아니다. 다윈의 진화론 중 핵심인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 이론은 허버트 스펜서에 의해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으로 설명되더니, 나중에는 그의 저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약육강식’으로 슬그머니 표현을 바꿔서 자유주의 자본주의자들이 열광하는 이론으로 변모했다.

약소 국가와 민족을 침략, 정복해 식민지를 넓혀가고, 생산수단을 가진 자들이 못가진 자들을 지배하는 약육강식형 경쟁을 정당화하는 이론적 근거로 활용됐다. 이러한 것의 이론적 토대로서 ‘사회진화론’을 주창한 영국 생물학자 허버트 스펜서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가는 도시마다 역 앞에 군중이 모여 그를 환영한 것 또한 자본주의가 다윈을 받아들인 태도의 단면이다.

자본주의자, 사회주의자 양쪽 모두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다윈을 해석하고 적용한 것이다. 그만큼 다윈이 남긴 학문적 성과는 과학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정치, 경제, 종교, 철학 등 여러 분야에서 폭넓게 해석할 수 있는 뿌리가 된 셈이다. 또 그만큼 불완전한 상태로 열려 있고 지금까지도 지속되는 학문의 한 핵심축이기도 하다. 이는 다윈이 남겨준 짙은 그늘이 지구를 절반 가까이 돌아 동양, 한국사회에서도 의미있게 논의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최종덕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는 200년 전 태어난 다윈이 150년 전에 쓴 저작이 21세기 초반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에 대해 여러 분야에 걸쳐 학제 간 연구-이른바 통섭(統攝)적 연구-를 진행하는 이들이 모여 머리 맞대고 논의한 내용을 담고 있다.

물리학과 철학을 전공한 최종덕 상지대 교수가 대화의 한 편을 맡고, 학문과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사학자 임지현 한양대 교수, 시인이면서 생명윤리에 주목하고 있는 전방욱 강릉원주대 생물학과 교수, 의철학을 전공한 인문의학자 강신익 인제대 교수, 노장철학 전공자이며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론을 연구하는 김시천 인제대 연구교수 등이 번갈아 또다른 한 편에 서서 대화를 나눈다.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 과학이 신화의 이미지로 포장되는 것의 문제점,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뿌리가 된 다윈, 환경과 생태의 위기 대처로서 진화론 공부, 진화론과 동양적 사유의 상관성 등 폭넓고 발걸음 빠르게 문제의식들을 펼쳐낸다.

그들이 진리에 다가가는 방식은 ‘대화’다. 2000년 전 동양에서 공자가 제자들과 정치·경제·도덕·교육 등 숱한 의제를 다뤘던 방식이었고, 비슷한 시기 서양에서 소크라테스가 제자 플라톤, 소피스트들과 다투고 논쟁하며 진리를 도출해 냈던 방식이었다.

특히 김시천 연구교수와 최종덕 교수의 대화를 통해 진화론적 사유구조는 당연히 생물학적 진화론에서 차용한 것이지만 과학적 진화론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세계 속에서 잉태한 총체적 사유구조를 뜻함을 보여준다. 생명의 역사와 문명의 시간을 사유하는, 서로의 궤적을 확인하는 과정은 흥미롭다. 새로운 범주의 고전 해석을 바라보는 것도 이목을 끈다.

이와 함께 ‘찰스 다윈 평전’(전2권, 재닛 브라운 지음, 임종기 옮김, 김영사 펴냄)은 태어나서 비글호 항해를 거친 시절인 1858년까지의 삶과 ‘종의 기원’을 펴낸 1859년부터 말년까지로 나눠 정리했다. 두 책 모두 ‘종의 기원’ 텍스트 자체는 없지만 개념의 정립과 함께 얽혀 있는 뒷얘기, 주변부 사례 등 풍성한 맥락의 설명이 돋보인다. 이를 통해 다윈에 대한 이해를 넘어 한국사회에 대한 이해를 폭넓게 해주며 ‘종의 기원’ 원저를 읽고픈 충동을 느끼게 한다.(박록삼기자)   

 

한국일보(10. 09. 04) 다윈 편지 1만4000통 면밀 분석 "진화론은 개인 아닌 사회적 작품"

찰스 다윈(1809~1882)이 활동했던 19세기 영국은 진화와 진보의 시대였다. 인간의 정신과 사회구조의 본질이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이 뿌리내리기 시작했고, 사상가들은 신의 권능보다는 인간 능력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표했다. 경제 분야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생겼다. 급속한 산업화로 시장이 확대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고 기업가들의 발빠른 상황 적응이 부각됐다. 구체적으로 '진화'라는 말을 쓰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은 이를 두고 '사회의 자연법칙'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환경에 잘 적응한 개체가 생존해 그 변이를 후대로 전달한다는 다윈의 진화론은 지금까지 한 위대한 자연과학자의 인내와 통찰의 결과물로 평가돼왔다. 하버드대 과학사 교수로 다윈 전문가인 재닛 브라운(60)은 그러나 <찰스 다윈 평전>에서 다윈의 업적을 다윈 개인이 아닌 정치, 경제, 사회, 과학, 종교 각 분야에서 거대한 변화가 진행되던 빅토리아 시대의 산물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종의 기원>이 출간됐을 때 공공연히 진화론 사상을 옹호한 사람은 정작 다윈이 아니라 그의 과학계 친구들이었다.

저자가 다윈의 위대성을 수많은 정보를 관리하고 중개하는 능력에서 찾는 점도 특색있다. 그는 다윈의 인생을 "편지로 굴러갔다"고 요약한다. 현재 남아있는 다윈의 편지는 1만4,000통이 넘는데 저자는 이를 면밀히 분석, 진화론이라는 다윈의 이론이 사회적 작품이자 집합적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다윈이 자신의 이론을 완성하기 위해 편지를 교환했던 인물은 비글호 항해를 함께했던 동료는 물론 사촌, 숙모, 정원사, 대학교수, 생리학자, 말 사육자, 정원사, 사냥개 사육자 등을 망라한다. 다윈은 다운이라는 농촌마을에서 살았지만 그의 집은 은거지가 아니라 세상과 과학적 교류를 맺는 거대한 '축'이었다는 것이다.

두 권의 책이 각각 1,000쪽 내외의 방대한 분량인데, 양에 걸맞는 내용의 충실함 때문에 <찰스 다윈 평전>은 다윈의 생애와 진화론을 조명한 수많은 책들 가운데 마스터피스로 꼽힐 만하다. 과학자로서뿐 아니라 재테크에도 능했던 자산가로서 다윈의 면모 등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그의 이면을 엿볼 수 있는 점도 흥미롭다.(이왕구기자) 

10. 09.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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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4 16: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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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4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알비스 2010-09-05 06:47   좋아요 0 | URL
원서는 1,2권 각각 622, 600쪽인데 번역본은 어떻게 편집을 한 것인지 1권이 1140쪽,2권이 984쪽이네요. 게다가 1권은 거의 2배로 쪽수가 늘어났구요. 혹시,쪽수와 책값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 수도.

로쟈 2010-09-05 08:12   좋아요 0 | URL
한국어판을 보니 표준적인 편집입니다. 원서가 빽빽한 게 아닌가 싶네요...
 

'좌파' '우파'란 타이틀을 단 책들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는데, 이번주엔 두 권이 눈길을 끈다. 국내서 한권, 번역서 한권으로 비율도 맞췄다. <좌우파 사전>(위즈덤하우스, 2010)과 <좌파들의 반항>(들녘, 2010)에 대한 리뷰를 챙겨놓는다. 

 

경향신문(10. 08. 28) 하나의 현실을 판이하게 해석 ‘피 냄새’ 나는 두 시선 

얼마 전 있었던 일이다. 아이돌 출신으로 영화에도 몇 번 출연한 가수가 잡지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영화계에 서운한 게 많았던 모양이다. “한국 영화계의 본바탕은 좌파다. 굉장히 우호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알려지면서 인터넷 세상은 와글거렸다. 왜 아니겠는가? ‘좌파’라는 단어가 인터뷰 맥락과 별로 상관 없어 보이는 지점에서 생뚱맞게 등장했기 때문이다. 소동이 일자, 그는 “내 무지에서 비롯된 실수”라고 사과했다. ‘영화계는 자존심이 강하고 냉소적인 성격이 강한 집단’ 정도의 뜻을 담아 사용한 말이었다는 해명도 흘러나왔다.

한국 사회에서 ‘좌파’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방식을 보여주는 여러 웃지 못할 해프닝 가운데 하나다. 우파 개념의 경우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은데, ‘한국 사회에서 우파란 누구인가’를 정의하기 위해선 상당히 어려운 퍼즐을 풀어야 한다. 사실 좌파와 우파 개념은 차분하게 논의되기보다는 상대에게 딱지를 붙이고 공격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경향이 강하다. 미국도, 유럽도 그런 경향이 있다. 그런데 한국 사회가 경험한 역사의 잔재, 이로 인해 만들어진 특수한 담론지형 안에서 두 개념이 유통되면서 덧칠된 낙서와 얼룩, 흉터가 너무나 어지럽다. 그래서 조국 서울대 교수는 “한국에서 좌파, 우파라는 단어에서는 그 자체로 피냄새가 난다”고 했다.

구갑우·김기원·김성천·서영표·안병진·안현효·은수미·이강국·이건범·이명원·이병민·조형근·최현·황덕순 등 각계의 중진 학자 14명이 집필에 참여한 <좌우파 사전>이 한국의 좌파와 우파를 설명하기 위해 귀납적 접근법을 택한 것은 이런 어지러운 사정을 감안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여러 주제들에 대한 좌파와 우파의 기본 입장과 주장, 그들이 추구하는 대안이 어떠한지 살펴봤다.

사안별 입장을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좌파와 우파 각각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나아가 이 작업은 대한민국 자체의 모습을 그리는 것에 다름아니다. 좌파와 우파가 벌이는 현실에 대한 해석투쟁과 미래에 대한 대안경쟁을 모자이크하면 바로 대한민국이 현재 서 있는 곳, 앞으로 나아갈 곳에 관한 대략의 좌표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필진은 대체로 좌파쪽에 가깝다. 좌우파의 입장을 소개하는 데 필자마다 다소 편차도 감지된다. 이는 다수의 필진이 참여한 책의 특징이기도 하거니와, 너그럽게 보자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주제를 분해하고, 나열하고, 다시 조립하는 모습을 감상하는 재미를 안겨준다.

‘사전’이라는 제목답게 분량 600여쪽에 7개 분야 22개 표제어가 실렸다. 그 목록을 일별하는 것만으로도 좌파와 우파가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포괄적으로 대립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는 곧 좌파와 우파가 한국 사회를 분석하는 데 매우 유용한 분석틀이라는 것을 뜻한다. 각각의 표제어는 독립적으로 한국의 현실, 우파의 주장, 좌파의 주장, 대립의 본질과 전망, 더 읽을거리, 사전적 정의의 순으로 구성됐다. 반드시 처음부터 읽을 필요는 없다. 관심 있는 주제부터 읽어도 좋다. 



개념과 현실(좌파와 우파), 민주공화국(국민주권과 대의제·법치주의·애국), 주권의 공존과 충돌(남북관계·한미동맹), 시장과 대안(시장과 국가·신자유주의·노동시장 유연화·소득분배와 경제성장), 공공성과 효율성(업적주의와 사회적 불평등·연대와 경쟁·신빈곤과 사회적 위험·노사갈등과 민주주의·생태위기와 녹색담론), 인권과 사회(범죄와 처벌·자유권적 기본권 제약·소수자 인권), 지식과 권력(역사기술과 정치·영어 공용화론과 영어 몰입교육·대중지성과 전문가 권위·대학과 지식생산·고교 평준화와 학교 다양화).

거칠게 정리하자면 한국의 좌파는 평등의 지속적 확대를 주장하는 반면, 우파는 현존하는 불평등의 불가피성 또는 순기능을 옹호한다. 양측 모두 자유를 중요한 가치로 내세우는데 자유에 대해선 영역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좌파는 직접민주주의를, 우파는 간접민주주의를 옹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각론에 들어가면 좌파와 우파는 사안별로 대립하고, 때로는 입장이 중첩되거나, 심지어는 역전되기도 한다.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 오래 활동한 정관용씨는 추천사에서 “이 책이 다루는 주제들은 내가 12년 동안 라디오와 텔레비전 시사 프로그램에서 소재로 삼았던 사건이나 화제를 영역별로 갈무리한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 책의 성격을 제대로 규정했다. 독자는 좌파와 우파가 벌이는 논리싸움의 향연을 감상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입장이 어느 입장에 가깝게 서 있는지, 왜 그런지를 성찰할 수 있다. 소통은 그 다음이다. 우선은 자신이 서 있는 곳과 상대방의 모습을 가감없이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이 목표한 것도 그것으로 보인다. 소통을 하든, 싸우든 변죽만 울리지 말고 제대로 한 번 해보자는 것 말이다.(김재중기자)   

한국일보(10. 08. 28) 21세기 좌파의 비판적 사고가 자본주의 결함을 메우는 동력

오른쪽(right)이 곧 옳은(바른) 쪽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들, 특히 마뜩잖은 상대와 맞설 때 '좌파'란 딱지부터 붙이고 드는 이들에게 이 책의 주장은 허튼소리로 들릴 것이다. "똑똑하게 사는 유일한 길은 좌파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자칭 좌파라면 불편해 할 목소리도 담겨 있다. "새로운 반역도 자본주의를 넘어서거나 폐지하지는 못할 것이다."

21세기 글로벌시대에 왜 좌파의 목소리가 다시 고개를 드는가. 독일의 좌파 저널리스트인<좌파들의 반항> 저자는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제국>의 저자 안토니오 네그리, 슬로베니아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 같은 이론가들 뿐 아니라, 총 대신 카메라를 들고 계급투쟁을 벌이는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마이클 무어, 베를린 출신의 팝 밴드 '우리는 영웅' 등 대중문화계의 반항아들도 주목한다. 말하자면 이 시대의 좌파란 탄탄한 이론으로 무장한 정치세력이 아니라, "어딘지 모르게 삶을 불편하게 만드는" 자본주의 체제에 나름의 몸짓으로 저항하는 모든 삐딱이들이다.

저자는 좌파의 영웅에서 상품으로 전락한 체 게바라 등의 예를 통해 저항을 포섭하는 "자본주의의 위대한 힘"을 인정한다. 그러나 좌파의 영혼에 깃든 비판적 사고는 자본주의의 결함을 메우는 동시에 그것을 변화시킬 동력으로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한다. 



좌파 이론가 존 할러웨이의 말을 빌리자면 국가권력 쟁취를 목표로 했던 옛 좌파와 달리, 새로운 좌파는 "권력을 잡지 않은 채 세상을 바꾼다." 도대체 어떻게? 저자는 노력에 값하는 보수 없이도 스스로 가치를 부여한 일에 하루 법정 노동시간 이상을 쏟아붓는 젊은이들 등 "시장 한복판에서 시장으로부터 영향권을 빼앗는" 활동들에 주목하라고 권한다. 이처럼 "먼 미래가 아니라 바로 오늘을 목표로 하는 반역, 몸짓 또는 회피들"에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상냥한 반항'쯤으로 해석될 원제('Genial Dagegen')의 함축적 의미를 살리지 못해 그저그런 좌판 이론서로 보일 한글판 제목이 아쉽다.(이희정기자) 

10. 08. 29.   

P.S. <좌파들의 반항>은 얼핏 좌파 상업주의에 대한 경계도 담고 있는 듯해서 조지프 히스와 앤드류 포터의 <혁명을 팝니다>(마티, 2006)를 떠올리게 한다. 좌우파에 모두 한방 먹이는 조지프 히스의 <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이들을 위한 경제학>(마티, 2009)과도 비슷한 입장이 아닌가 싶고. 아무튼 정확한 건 직접 읽어봐야 알겠다.  

Marx für Eilige 

한편, 저자 로버트 미지크는 'Takeout Classic' 시리즈의 하나인 <마르크스>(생각의나무, 2010)의 저자 '로베르트 미직'과 동일인이다. 고유명사 표기에 혼란이 있는 셈인데, 독일인이므로 외국어 표기안 대로라면 '로베르트 미지크'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책에 실린 저자 소개에 보면, 최근 저작의 하나가 <엘리제를 위한 마르크스 Marx für Eilige>라고 돼 있다. 베토벤의 '엘리제(Elise)를 위하여'를 떠올린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주 엉뚱하다. '급한 이들을 위하여'란 뜻의 'für Eilige'가 바로 'Takeout Classic'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역자는 미주에서 '성급한 사람을 위한 마르크스'라고 옮겼다. '엘리제를 위한 마르크스'는 편집자의 작품이리라. 엘리제를 위한 마르크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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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9 20: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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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9 2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29 2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ommer 2010-08-29 20:39   좋아요 0 | URL
Genial Dagegen은 기자의 지적과는 달리 '기발한 반항' 정도로 번역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기자는 genial을 영어단어로 착각한 게 아닌가 싶네요.

로쟈 2010-08-29 21:00   좋아요 0 | URL
구글 번역기는 '우수한 대조'라는군요.^^; 원저가 독어본이어서 저는 미심쩍은곳을 대조해보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2010-08-30 0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30 0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30 1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장 정리 일이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데, 잠시 틈을 내 리뷰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어제 프리모 레비의 자전적 소설 <지금이 아니면 언제?>(노마드북스, 2010)와 같이 구입한 크리스토퍼 브라우닝의 역사서 <아주 평범한 사람들>(책과함께, 2010)을 다룬 기사다. 같이 묶은 데서 짐작할 수 있겠지만 브라우닝의 책은 '홀로코스트' 연구서이고 이 분야의 '학장'이라고 할 라울 힐베르크에게 헌정된 책이다. <홀로코스트 유럽 유대인의 파괴>(개마고원, 2008)의 저자 힐베르크 말이다. 소개는 이렇다.   

"<아주 평범한 사람들>은 1992년에 초판이 출간되었으며(1998년 재판), 한국어판을 포함하여 현재까지 11개 국어로 번역되었다. 사회 하층 계급의 평범한 중년 남성들로 구성된 나치의 한 예비경찰부대가 수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하고, 또한 죽음의 수용소로 이송한 사례를 심층 연구한 이 책은 라울 힐베르크의 선구적 업적인 <홀로코스트 유럽 유대인의 파괴>의 뒤를 잇는 홀로코스트 연구의 또 다른 기념비적 저서로 평가받는다."  

경향신문(10. 08. 21) 특수 상황선 누구라도 ‘악마’가 될 수 있다  

연쇄살인범이 잡히면 그의 행위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그가 광기에 사로잡힌 악마라는 것인데 대다수 보통 사람의 감정적 반응이 이것이다. 이에 반해 그가 악행을 저지르게 된 상황적 요인이 있을 것이란 입장이 맞선다. 악행을 용서하는 것과는 별개로 악행의 원인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개인적 또는 집단적 행동, 특히 악행의 주요 원인은 증오심, 기질과 같은 심리적인 것인가, 아니면 그가 처한 특수한 상황 또는 사회적 구조인가라는 질문으로 달리 표현할 수 있다. 어찌보면 전자의 입장이 훨씬 속 편할지 모른다. 그저 나하곤 전혀 별개의 나쁜 놈, 악마로 규정하면 끝이니까. 그러나 이런 해석은 반복되는 인류의 잔혹한 행동들, 그리고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다.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에 대한 학계의 논의도 크게 보면 비슷한 구조다. 유대인 학살에 참여한 사람들은 원래부터 극도로 유대인을 증오했거나 잔악한 사람들이었던 것인가? 아니면 위에서 시켰기 때문에, 즉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학살에 가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인가? 미국의 홀로코스트 전문 역사가 크리스토퍼 R 브라우닝이 1992년 처음 발표한 <아주 평범한 사람들>(원제 Ordinary Men)은 이런 질문을 물고 늘어져 강력한 가설을 제시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제목에 등장한 ‘평범’이라는 단어는 의미심장하다. 한나 아렌트가 유대인 수백만명을 죽게 만든 책임자인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한 책에서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을 주창했듯, 사악함이나 세뇌효과, 유대인에 대한 증오심 등 심리적 요인이 잔혹한 행위의 결정적 원인은 아니었다는 결론을 암시한다. <아주 평범한 사람들>은 학살 책임자나 피해자보다는 학살을 직접 수행한 말단의 당사자를 집중 추적한 연구서로 최초이기도 하다. 이 책이 나온 뒤 요나 골드하겐이라는 학자가 같은 자료로 브라우닝과 정반대의 결론, 즉 심리적 요인이 결정적이었다고 주장한 책을 출간하면서 꽤 유명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브라우닝은 개정판(98년) 후기에서 골드하겐의 공격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어 양자 사이의 논쟁의 뼈대를 파악할 수 있게 했다.

 

브라우닝이 발견한 ‘아주 평범한 학살 집행자들’은 나치 독일 당시의 ‘101예비경찰대대’. 101예비경찰대대는 1942~43년 폴란드에 투입돼 유대인 3만8000여명을 학살하고, 4만4200여명을 죽음의 수용소로 강제 이송했다. 명실상부한 ‘죽음의 부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독일의 중년 남성 500여명으로 구성된 101예비경찰대대 구성원은 대부분 열렬한 히틀러 지지자가 아니었으며, 오히려 반(反)나치 성향이 강한 함부르크 지역 출신이었다. 철저한 훈련과 이념교육을 받은 정예부대는커녕 대부분 군 복무 경험조차 없었다. 말 그대로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브라우닝은 함부르크 검찰이 1960년대에 전직 101예비경찰대대원 125명을 취조한 기록을 분석, 이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학살 전문가’가 돼 갔는지 규명했다. 1942년 7월 처음으로 유대인 학살 작전에 나서기 직전 101예비경찰대대의 지휘관은 임무를 설명하면서 감당할 자신이 없는 사람은 빠져도 좋다고 말한다. 500여명 가운데 12~13명이 나왔다. 나머지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은 유대인 1500여명의 머리통을 총탄으로 차례차례 날려버리는 과정에 직접 참여했다. 물론 소극적으로 임하거나, 몇명 죽이고 나서는 빠져나온 부대원도 생겼다. 20% 정도가 열외를 택한 것으로 추정됐다. 놀랍지 않은가. 10명 가운데 8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자신과 아무런 원한도 없거니와 범죄자도, 적군도 아닌 민간인을 시체더미로 만드는 데 나선 것이다. 학살 작업을 거부해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물론 묵묵히 임무를 수행한 부대원들도 첫날의 경험을 한 뒤 극심한 스트레스와 역겨움을 호소했다. 부대로 돌아와 독한 술에 만취했고,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브라우닝은 말한다. “얼마 후 그들이 다시 사살 임무 앞에 서게 됐을 때 그들은 결코 ‘미쳐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점차 효과적이고 무감각한 학살 집행자로 변해갔다.” 대부분은 학살을 무덤덤한 일상으로 받아들였으며 심지어 학살을 즐기는 사람까지 나타났다.

브라우닝이 발견한 요소는 ‘동조(同調)’와 ‘권위에 대한 복종’이었다. 대원들은 동료나 상관에게 ‘사나이답지 못한 태도’를 보이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며 체면을 중시했고, ‘최고위층의 명령’이라는 권위에 복종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수행하고 있는 임무에 대해 충격과 혐오감을 느끼면서도 대부분 학살을 계속했다. 대열에서 이탈하는 것, 공개적으로 비동조 행위를 보이는 것은 그들 대부분의 능력 밖에 있었다. 차라리 총을 쏘는 것이 그들에게는 더 쉬웠다.”

브라우닝은 “학살을 저지른 그들은 같은 상황에서는 누구나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라는 주장에 의해 결코 사면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을 우리가 ‘이해’했을 때 상당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브라우닝의 결론은 평범한 사람도-나를 포함해서-특수한 상황에 처하면 언제든 악마가 될 수 있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브라우닝도 “잔혹성은 개인적이고 성격적인 것이 아니라, 훨씬 더 근본적인 뿌리를 볼 때 사회적”이라는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을 인용한 뒤 “101예비경찰대대 대원들의 이야기에서 엄청난 불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101예비경찰대대 대원들이 당시의 조건 아래서 학살자가 될 수 있었다면, 오늘날 유사한 조건이 주어질 때 어떤 집단이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는 것이다.

우리는 브라우닝이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이미 알고 있다. 나치의 홀로코스트 이후에도 우리는 세계 여러 나라 정부들이 ‘아주 평범한 사람들’을 ‘자발적인 학살 집행자’로 동원한 사례를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는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근대적 삶 속에 숨어 있는 잠재적인 위험이다”(지그문트 바우만)라는 명제는 불편하지만 진실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런 이해가 홀로코스트 학살자의 책임을 덜어주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학살 임무를 거부한 사람들도 소수지만 있었으니까.(김재중기자) 

10. 08. 21.  

P.S. 기사 말미에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이 언급되는데, 바우만의 <모더니티와 홀로코스트>도 마저 소개되면 좋겠다. 번역중이란 얘기를 언제 들은 것도 같은데 정확하진 않다. 덧붙여, 츠베탕 토도로프의 <극한에 직면하기> 같은 책도 소개되면 좋겠다. 몇년 전 프리모 레비를 읽을 때 들춰본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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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1 1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22 0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불확실성이 지배적인 시대라곤 하지만, 출판분야는 좀 예외적이어서 올해의 최고 베스트셀러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문학동네, 2010)가 될 거라는 걸 누구라도 알 수 있다. 또한 그에 버금하는 책으로 인문분야 최고의 화제작이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 2010)가 될 거라는 것도. 이미 30만부 이상 판매됐다고 하니까 아무튼 당분간 깨지기 힘든 '기록'을 세우게 될 듯하다.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그 샌델이 한국에  온다. 실상은 그의 두 번째 방한이지만, 베스트셀러 저자로서의 감회는 새로울 듯하다.    

최근 국내 서점가에 인문서 열풍을 몰고온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의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5천명 한국 독자와 만난다. 아산정책연구원(원장 함재봉) 초청으로 다음주 방한하는 샌델 교수는 20일 저녁 7시 경희대 평화의 전당(4700석 규모)에서 강연을 한다. 19일 오전 10시에는 아산정책연구원에서 기자간담회도 갖는다. 20년 연속 하버드대 최고 명강의로 꼽히는 샌델 교수의 강연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로, 7월 26일~8월 3일까지 선착순으로 신청을 받았다.

30년간 샌델 교수가 하버드대생들에게 강의했던 '정의' 이야기를 담은 '정의란 무엇인가'는 5월 24일 출간된 후 3개월 여만에 32만부(8월 12일 기준)가 판매됐다. 한국출판인회의가 집계한 8월 둘째주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전국 온,오프라인 서점 10곳 판매부수 종합)에서도 무라카미 하루키 장편소설 '1Q84'(문학동네) 3권에 이어 2위를 기록 중이다.(노컷뉴스)

 

첫 번째 방한시의 강연을 모은 책이 <공동체주의와 공공성>(철학과현실사, 2008)이지만 이 책은 '<정의란 무엇인가> 바람'을 전혀 타지 않았다(놀라울 정도다!). 한 문학평론가는 그래서 그의 강연 모습을 담은 표지 이미지가 오히려 샌델이란 고유명사나 그의 얼굴 사진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 게 아닌가란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원서의 이미지와 비교하면 마케팅의 한 축으로 고려했음 직하다는 게 억지는 아니다. 그 샌델의 책이 한 권 더 나왔다. '유전학적으로 완벽해지려는 인간에 대한 반론'이 부제인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동녘, 2010).  

이번엔 독사진이긴 하지만, 저자의 이미지를 조금 더 키웠다. 물론 강연하는 모습이고,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라는 사실도 부각시켰다. 책이 어떤 반응을 얻을지 궁금하다. '생명의 윤리'란 타이틀을 달고 나온 책 가운데서는 가장 많이 나갈 듯싶지만, '윤리'란 말의 '저항선'도 만만찮기 때문이다('윤리'는 '정의'와 다르다!).   

개인적으론 샌델의 강연에 갈 계획이 없지만,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는 바로 읽어볼 마음이 있다. 내가 같이 떠올린 책은 자유주의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의 <생명의 지배영역>(이화여대출판부, 2008). 대학출판부에서 나온 책답게 <공동체주의와 공공성>보다도 덜 주목받은 책이다(이런 경우 저자의 지명도는 거의 '제로'다). 그리고 역시나 같은 '다산 기념 철학 강좌'의 초청으로 방한 강연을 했던 피터 싱어의 강연집 <이 시대에 윤리적으로 살아가기>(철학과현실사, 2008). 샌델이 2006년, 싱어가 2007년 초빙 연사였다. 싱어의 네 차례 강연은 윤리적 문제의 본질, 세계화의 윤리, 동물해방의 윤리, 생사판정과 관련한 생명윤리 등을 다루고 있다. 샌델의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와 초점이 겹치는 대목이 있을 듯하다.  

그리고 한 권만 더하자면, 하버마스의 <인간이라는 자연의 미래>(나남, 2003). 독일 사회철학의 거장이 "'생명윤리'의 문제와 더불어 생명공학(또는 유전공학)의 발전이 제기하는 윤리적, 도덕적 문제를 심층적으로 살펴본 책"이다. 모두가 대중적으론 별로 주목받지 못한 책들인데, 샌델의 책이 이 주제의 독서경험을 확장해보도록 부추길지도 모르겠다. '마이클 샌델 붐'이란 게 있다면, 거기에서 내가 기대하고 싶은 건 그것이다...  

10. 0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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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08-16 17:45   좋아요 0 | URL
함재봉 씨가 초청했군요.랜드 연구소에 있었는데 국내에 자리를 잡았네요.한국의 대표적인 매파 보수논객이지요.샌델 씨는 함재봉 씨가 쓴 시위대처법에 대한 논문을 정의론의 관점에서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해집니다.

로쟈 2010-08-16 20:06   좋아요 0 | URL
예전엔 '유교 자본주의론'을 주장/지지한 걸로 기억하는 데요. 함재봉씨가 매파면 조갑제옹 같은 양반은 어떻게 분류를 해야 할까요?..

노이에자이트 2010-08-16 23:17   좋아요 0 | URL
조갑제 씨는 거리의 전사가 되었고 실제로 정부에 대한 영향력은 함재봉 씨 쪽이 더 나을 겁니다.경찰청 쪽에서 의뢰받아서 함씨가 쓴 논문이 '광우병 괴담의 정보적 특성분석과 대비책에 관한 연구'인데 보수여론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지요.보수신문들에서 이 논문의 내용을 크게 소개했습니다.

푸른바다 2010-08-17 10:13   좋아요 0 | URL
함재봉씨가 초청했다기 보다는 정몽준이 초청하고 함재봉씨가 실무를 맡았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언론에도 정몽준이 초청한 것으로 보도되었습니다. 아산정책연구원은 정몽준이 운영하는 사설연구소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 그의 대선 준비를 위한 연구소가 아닐까 합니다.

함재봉은 전두환의 비서실장을 지낸 함병춘의 아들입니다. 함병춘은 동서양의 정치사상에 정통한 인물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그는 박정희 정권과도 협력했고 전두환의 비서실장까지 지냈으니 그의 성향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는 동서비교정치철학의 전문가였는데 그의 '지식'을 독재정권의 이론적 정당화에 활용했습니다.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발상이 그의 정치철학과 부합되는 면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아웅산 사태시 사망했는데, 불행하게 사망한 그의 유업을 장남인 함재봉이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함재봉이 지금은 구체적으로 어떤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과거 박정희의 정치철학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하는 연구를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함재봉이 유교존재론을 들먹이며 서양정치사상을 비판하고 우리가 부정적으로 논하는 가치들, 예를 들어 인맥 등등을 정당화하는 것을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한국의 보수들은 철학이나 이론이 없다고 쉽게 생각해 버리지만, 박종홍, 함병춘-함재봉으로 이어지는 계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은 좌-우를 통털어서 공부를 많이했던 것으로는 국내에서는 최고였던, 최고인 사람들입니다. 섵부른 폭력적 보수에서 이들의 이론을 바탕으로한 보다 성숙한 '한국적 보수주의'가 탄생할런지도 모르지요...

정몽준이 자신의 연구소에 '아산'이라는 이름을 붙힌 걸 보면 아버지를 계승할 생각이 있기는 있는 모양입니다.^^ 그의 반북 이데올로기는 소떼를 몰고 방북한 아버지 정주영의 '실천'과 부합되지 않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8-17 17:35   좋아요 0 | URL
함병춘 씨는 반대진영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은 인물로 알려져 있지요.예절바른 신사였다고 합니다.제 생각에는 학자로서 좀더 남아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이른바 품위있는 보수랄까...함재봉 씨에 관해서는 그가 유학 마치고 국내에 왔던 초창기 김용옥과 함께 일하기도 했지요.그때부터 유교사상이 우리나라에 도움도 되었다는 이론을 제시했는데 강준만이 <인물과 사상>에서 그런 점을 지적하기도 해서 알려졌습니다.

요즘은 촛불시위에 대한 논문도 그렇고 전형적인 보수 이데올로그로 활약할 듯 싶습니다.그런데 정몽준씨와 잘 어울릴까 약간 의구심도 드네요.
 

천안함 사건에 대한 '의문과 쟁점'을 집약한 책이 출간됐다. <천안함을 묻는다>(창비, 2010). 여전히 조사가 진행중(?)인 이 사건이 어떻게 귀결될지 궁금한데, 짐작엔 머지 않은 장래에 (역사의 심판대에 오르기 전에!)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한다. 책은 손 가까이에 둔다고 해놓고 못 찾고 있는데, 일단은 리뷰기사만 옮겨놓는다.  

경향신문(10. 08. 04) 천안함에 ?를 던질 수밖에 없는 이유  

<천안함을 묻는다, 의문과 쟁점>(창비)은 지난 3월26일 천안함 침몰 이후 시민사회와 과학계·언론계·군사전문가들이 천안함 사건에 대해 제기한 합리적·상식적인 의심과 의문, 과학적 반론을 집대성한 책이다.

책은 1~4부에서 사건의 발생부터 사태 전개과정, 정치·외교·안보 문제까지 두루 짚고 있다. 주목할 만한 곳은 2부다. 민·군 합동조사단의 5월20일 조사결과 발표는 ‘중간’조사 결과였다. 하지만 정부와 합조단은 5월15일 백령도 앞바다에서 발견한 어뢰 후미부 추진체 등을 20일 ‘결정적 증거물’로 제시하며 사실상 조사를 마무리했다.

이에 이념·정파와 상관없는 과학자들은 정부 발표에 잇달아 의문을 제기했다. 정부 측은 묵묵부답하다 겨우 해명의 장에 나오고, 또 기존 발표 결과를 번복하기도 했다. 과학자인 서재정 존스홉킨스대 물리학과 교수와 이승헌 버지니아대 물리학과 교수는 ‘결정적 의문, 결정적 증거’란 글을 실었다. 이들은 ‘외부폭발’-‘1번 어뢰’-‘1번 어뢰=북한 어뢰’로 완결된 합조단 논리 중 한 가지라도 입증되지 않으면 논리적 연결고리가 끊어져 북한이 천안함을 파괴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고 주장한다.

송태호 KAIST 교수는 2일 국방부에서 “어뢰 추진부에서 20도 이상의 온도 상승은 일어나지 않았다. ‘1번’ 글씨 부분은 0.1도의 온도 상승도 없어 글씨 등이 열 손상을 입을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의 “‘1번 어뢰’는 고열로 타버렸을 것”이란 주장과 비교해도 좋을 듯하다. 이 교수는 책에서 “알루미늄 파우더가 프로펠러에 접촉하는 순간 액체 상태로 있어야 하는데 알루미늄 용융점은 660도이므로 폭발 때 프로펠러 인근에 그 이상의 고온이 가해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말대로라면 송 교수의 “0.1도의 온도 상승이 없었다”는 주장은 탄두에서 디스크(1번이라 쓰인 부분)보다 멀리 떨어진 프로펠러에 폭약 성분인 알루미늄이 왜 흡착됐는지 설명 못하는 셈이다.

5부 ‘천안함 사건의 출구와 해법’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최문순 민주당 의원, 강태호 한겨레신문 기자가 천안함 사건의 정치·사회적 의미와 정부의 외교 문제를 논의한 좌담이다. 1977년부터 통일 업무를 해온 정 전 장관이 구체적·현실적 진단과 해법을 제시했다. 정 전 장관은 행위 주체가 빠진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을 거론하며 “결론은 ‘대화로 풀라’는 것인데, 그 이야기를 들으려고 그렇게 요란을 떤 것인가”라며 “천안함 사건 이후 외교는 자해 행위가 됐다. 이 문제를 불러온 것은 이 대통령의 외교안보 인식 결여, 철학 부재”라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남북관계는 최악이었는데도 95년 6월 북한에 쌀 15만t을 지원했다”며 인도적 지원도 강조했다. 그는 “소망교회, 순복음교회에서 대북지원을 해야 한다고 나섰다”며 “대통령은 ‘그분들이 하는 일을 말릴 수는 없지 않은가’ 식으로 화해협력으로 나갈 토대를 만들고, 6자회담이 열렸을 때 나가는 좋다”고 했다. 또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경제공동체 형성 토대가 허물어졌다”며 “‘북한 경제의 중국화’ 현상을 방치하는 것은 민족사적으로 큰 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김종목 기자) 

10. 08.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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