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종강은 이미 지지난주에 했지만 오늘에서야 성적처리를 마무리지었기에 실질적인 방학은 이번 주부터다. 하지만 또 곧장 외부 계절강의와 문화센터 강의가 당장 한 달 간 잡혀 있어서 방학 기분을 내는 건 호사스런 일이다. 저녁에 원고 하나를 보내고 나서야 일과가 저무는 듯싶지만 밤에는 또 중요한 '업무'에 돌입해야 한다. 막간에 들여다본 교수신문에서 대담집 <휴머니스트를 위하여>(사계절, 2010)에 대한 서평기사를 옮겨놓는다. 제목보다는 부제 '경계를 넘어선 세계 지성 27인과의 대화'가 책의 내용을 더 잘 말해준다. '27인과의 대화'이니만큼 분량도 본문만 557쪽이다. 한 꼭지씩 읽으면 한 달 읽을거리다(내가 제일 먼저 읽은 건 프랑스 철학자 미셸 세르 편이다. '아름다움, 아름다움만이 우리를 구해줄 겁니다'란 타이틀에 끌려서). 여름을 건강하게 나려면 먹는 것도 잘 먹고 책도 잘 챙겨읽어야 한다. 이럴 때 "책도 잘 먹어야 한다"고 해야겠군...   

  

교수신문(10. 06. 28) 경계를 넘어 시대와 세계 고민한 27명의 ‘다르고 같은’ 목소리  

대담집의 매력은 무엇일까. 활자로 축 늘어져 있는 텍스트의 무미건조함을 찾아볼 수 없는, 긴장감 있고, 뒤틀릴 수도 있으며, 때로는 반복되기조차 하지만, 생생한 현장감 있는 고민의 목소리에서 그 매력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 과학분과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콘스탄틴 바를뢰벤이 8년에 걸쳐 ‘석학’ 27명을 만나 세계화·인권·생명공학을 공통주제로 대화를 나눈 책 『휴머니스트를 위하여』는 확실히 이런 지적 긴장감과 생생한 고민을 현장 중계하듯 보여주는 책이다. 원제는 ‘Le Livre des Savoirs: Conversation avec les Grands Esprits de Notre Temps’(Grasset & Fasquelle, 2007)로, 전문 번역가 강주헌 박사가 번역했다.

이 대담집의 탄생은 ‘문화를 초월한 시각적 총서’라는 프로젝트와 관계있다. 그것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석학들을 찾아 세계 곳곳을 다니며 그들과 나눈 이야기를 방송과 책으로 만드는 방대한 프로젝트였다. 저자는 ‘대담은 창조적 과정이 포함되기 때문에 어려운 작업’이라고 토로한다. 그의 말을 그대로 빌면 “입말의 직관적 지혜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담에는 학문적 경직성이 없다. 따라서 대담이 제대로 진행되면 위대한 예술가나 사상가가 내면에 감춘 비밀까지 드러낼 수 있다.” ‘내면의 비밀’이 드러날 때, 이를 달리 말하면 ‘사상의 깊이’의 드러남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이를 위해 저자는 ‘20세기에 깊은 족적을 남긴 석학들’을 선정했다. 물론 ‘21세기에 미칠 영향’도 간과하지 않았다. “미술과 문학, 종교와 문화, 인류학과 자연과학, 음악 등의 분야에서 학문적 한계를 뛰어넘어 지식의 한계까지 이른 석학”을 대상으로 했다.

저자는 이들을 이렇게 표현한다. “에드문트 후설의 표현을 빌리면 그 시대의 ‘지적 상황’에서 제기된 근본적인 문제에 도전한 인물 (……) 20세기의 터전을 닦은 인물로, 현재와 미래의 도전에 대한 견해를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지성들이다. 27명의 대담자들은 문학(고디머, 푸엔테스, 소잉카, 오즈 등)과 음악(메뉴인), 건축(니마니어, 존슨), 과학(굴드, 프리고진 등), 철학(세르, 크리스테바), 정치(부로토스 갈리, 헌팅턴), 역사(슐레징거, 두웨이밍), 인류학(레비스트로스), 종교(파니카르, 푸파르), 매체·미디어 이론(드브레, 비릴리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전문가일 뿐만 아니라 분야의 경계를 넘어 시대와 세계에 대해 고민하고 발언한 지식인이자 사상가들이다. 이들은 대담에서 갈등과 충돌로 점철된 지난 세기와 자신의 생애를 반추하고, 세계화와 문명 간 단절이 심화되고 있는 우리시대를 성찰한다. 



물론 이 27명의 ‘석학’ 명단은 서구중심적이며, 대체로 인문주의자들이라는 점에서 관점에 따라서는 고개를 갸웃할 수 있다. 특히 철학에서 세르와 크리스테바, 정치에서 헌팅턴 등이 언급된 데는 눈이 둥그레질 수도 있다. 그러나 대담 진행 과정, 저자의 기획 의도 등을 고려한다면 이 ‘석학’ 명단 구성보다 이들 ‘석학’의 입을 통해 무엇을 끄집어내려 했는가를 중시할 필요가 있다.

27명의 대담자들은 서구와 비서구, 문명의 공존과 충돌, 과학기술의 가능성과 한계 등을 둘러싸고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이지만, 그럼에도 전 세계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으로 타자와 대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타자와 세계를 편견 없이 바라보고 대화할 것을 강조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옮긴이가 지적한 것처럼, 관점에 따라 같은 대상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만큼 개념에 대한 정의를 공유하는 것은 대화의 전제조건이다. 옮긴이 강주헌 박사는 이 정의를 두고 ‘사물이나 현상에 접근하는 관점’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흥미로운 대목이다.(최익현 기자) 

10. 0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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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 2010-06-28 21:27   좋아요 0 | URL
저기 27인에는 안 들어갔지만, 타르코프스키의 <노스탤지어> 초입에 나오는 '혼자 보는 이 아름다움이 무슨 소용 있는가'라는 대사가 세르의 '아름다움'과 대구를 이루는 것도 같네요...

로쟈 2010-06-28 22:00   좋아요 0 | URL
원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미가 세계를 구원하리라'를 떠올려주는 말이죠. 도스토예프스키나 타르코프스키나, 입니다.^^

sophie 2010-06-29 10:53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는 '심리적 공간의 파괴'라는 지적이 눈에 들어오네요. 앙드레 고르의 에콜로지카를 읽으면서 느낀건데 때로는 인터뷰 기사나 대담의 형식이 책 내용보다 더 많은 걸 알려줄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그나저나 나오는 책마다 페이지 수가 어마어마해서 앞으로 300 페이지 이하로 제한하고 싶은 충동이 드네요. 아후~

로쟈 2010-06-29 17:10   좋아요 0 | URL
절반의 책이 제거되겠는데요.^^
 

기만적인 '녹색성장'이 아니라 '생체모방'과 '생태모방'이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책들이 출간되었기에 눈여겨 보고자 한다. 지난 달에 나온 재닌 베니어스의 <생체모방>(시스테마, 2010)과 군터 파울리의 <블루 이코노미>(가교출판, 2010)가 문제의 책들이다. 소개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10. 05. 08) 지구 살리기 ‘자연모방’에 답 있다

인류가 숨쉬고 활동하는 산소와 에너지의 원천은 모두 1억5000만㎞ 저 너머에서 수소폭탄처럼 핵융합반응을 계속하고 있는 태양에서 날아온다. 우리가 먹는 모든 곡물과 채소류는 햇빛이 키웠고 쇠고기 등 육류나 생선도 햇빛으로 광합성을 하는 생명체 먹이연쇄의 산물이다. 자동차, 컴퓨터, 크리스마스트리 불빛도 그 동력은 광합성이다. 그것들을 만들고 움직이는 원료인 석유 등 화석연료들은 지난 6억년간 햇빛이 키운 식물과 그것을 먹고 산 동물 사체의 압축된 불완전연소 잔존물이다. 플라스틱, 의약품, 화학약품 등 거의 모든 생활제품들도 결국 태양 에너지를 이용한 엽록소의 광합성 소산이다. 지금 인류문명은 장구한 세월 동안 생성된 그 화석연료들을 순간적으로 태워 얻는 에너지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지구라는 닫힌 시스템 속에서 생태계를 파괴하고 화석연료를 이처럼 마구 태워 유해 탄소를 뿜어내는 인류는 촛불 켜 놓고 봉한 병 속의 생쥐, 창문을 꽉 닫아 건 집 안에서 가재도구들을 불태우는 가족들과 같다. 생명 에너지의 원천인 햇빛이 창문을 통해 집안으로 엄청나게 흘러들어오고 있는데도 그것은 보지 않고 죽은 동식물의 유해를 불 속에 던져 넣어 음식을 만들고 난방을 한다. 



미국 럿거스 대학 임학박사 재닌 베니어스의 <생체모방>(Biomimicry)은 이런 지속불가능한 생활을 청산할 수밖에 없다는 걸 역설하며 그 대안을 찾아나선 책이다. 대안이 바로 생체모방이다. 생체는 지구상에 박테리아가 등장한 이후 38억년 이상의 세월에 걸쳐 태양 에너지를 활용해 불모의 지구를 생명의 땅으로 바꾸고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와 적응을 거쳐 최적의 생존조건을 만들어냈다. 생체모방이란 바로 최첨단을 달리는 현대 인간의 기술조차 그들에 비하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그 지구상 생명체들의 놀라운 생존방식, 인간과는 달리 어떤 폐기물도 배출하지 않고 자신과 주변 그리고 지구 생태계 전체를 더불어 살리는 상생과 공존의 기술을 알아내서 본받자는 것이다. 책은 생체모방 연구의 최전선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연구자들을 찾아가 그들이 진행중인 연구 현황과 전망을 구체적으로 짚어가는 내용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생체모방이라는 말 자체가 1997년에 출간된 이 책에서 비롯됐다.

 

애리조나 주립대 광합성반응센터의 생화학자 토머스 무어와 토론토대학 제임스 길릿 등은 태양에서 날아오는 광자를 생체에너지로 전환시키는 엽록소의 작동 메커니즘을 파고들고 있다. 양자역학 차원까지 들어가는 길릿의 인공광합성 연구 모델은 연못에 떠 있는 좀개구리밥. 빛 에너지를 받으면 서너 달 만에 축구장을 다 덮을 정도로 증식하는, 폭 0.6㎝에 지나지 않는 좀개구리밥 하나의 에너지 전환 효율은 인간이 만든 태양전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탁월하다.

토지연구소의 웨스 낵슨과 생태학자 존 파이퍼 등은 1만년 전에 시작된 인간의 농업이 가속적으로 파괴해온 지표가 현대에 이르러 화폐수익을 목표로 한 대규모 개간과 단일품종재배, 과도한 비료와 살충제 살포로 급속히 유실되거나 불모지로 변하고 있는 현실에 맞서고 있다. 그들의 모델은 다년생 식물들이 뿌리를 내려 토양과 유기물을 보존하는 야생의 초원과 숲 복합계.

“초원의 생명체 무게 가운데 70%가 뿌리, 잔뿌리, 깊은 곳에서 물을 취하고 영양분을 끌어올리는 단단히 엉킨 덩굴들의 형태로 존재한다. 단 한 그루의 빅블루스템이 총 40㎞의 실뿌리 관을 갖고 있으며, 그 중 약 13㎞는 해마다 죽고 다시 생긴다. 죽은 뿌리의 잔재는 위에서 떨어진 잎사귀들과 함께 개미, 톡토기, 지네, 쥐며느리, 지렁이, 박테리아, 곰팡이로 이루어진 소형 동물원의 배고픈 입속으로 들어간다. 찻숟가락 하나만큼의 흙에는 수천 종류의 벌레들이 있는데, 모두 굴을 파고 먹고 배설하면서 토양 상태를 조금씩 조절해나간다. 벌레들의 마술을 통해, 분해된 영양분은 굶주린 뿌리로 가거나 부식토에 저장된다.” 그들은 지속가능하나 소출이 부족한 야생 초원과 단기 소출은 많지만 미래가 없는 대규모 단작재배 사이의, 스스로 조직화하면서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지속가능한 최적점에서 농업의 미래를 찾으려 하고 있다. 베이너스는 이밖에 강철보다 다섯 배나 강한 거미줄, 세락믹보다 두 배나 강한 전복 속껍질 같은 자연 속 기적의 물질과 침팬지 등 야생동물의 자연치유 능력, 삼나무숲 같은 생태운영의 비밀을 풀어가는 현장들을 찾아간다.

성장주의를 배격하는 베이너스의 생체모방은 요즘 군사부문에서 유행하는 동식물의 특출한 기능 본따기, 그 죽음의 기술 추구와는 철학적 출발점이 다르다. 그는 자신을 살리면서 지구상 모든 존재와 지구 자체도 함께 윤택하게 만든 생명체의 38억년의 역사, 최후에 출현한 인간 때문에 급속도로 망가지고 있는 그 역사를 되살리는 길을 자연 속에서 찾는다. 따라서 생체모방보다는 자연모방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그 10가지 기준은 이렇다. “햇빛으로 작동하는가? 필요한 에너지만 사용하는가? 형태를 기능에 맞추는가? 모든 것을 재활용하는가? 협동에 보상해주는가? 다양성에 의존하고 있는가? 지역 전문가들을 활용하는가? 내부로부터 과잉을 억제하는가? 한계라는 힘을 이용하는가? 아름다운가?”(한승동 선임기자)   

한국일보(10. 06. 26) 경제 살리는 혁신기술… "자연을 따르라"

환경 위기를 절감하는 기업인들은 지속 가능한 경제의 모델로 '녹색산업'을 제시하고 있다. 옥수수를 이용한 바이오연료 자동차나 야자 기름으로 만든 생분해성 세제 등 이른바 친환경 제품이 각광을 받고 있다. 그것으로 충분할까.

<블루 이코노미>는 아니라고 말한다. 유럽연합의 미래 연구 모임인 로마클럽 회원이자 대안 경제를 모색하는 비영리재단 ZERI(Zero Emissions Research Instituteㆍ쓰레기 배출 제로 연구소)의 설립자 군터 파울리가 쓴 이 책은 녹색경제의 한계를 지적하며 '블루 이코노미'를 제안한다. 그는 야자유 세제를 생산하느라 열대우림이 죄다 야자수 농장으로 바뀌어 황폐해지면서 오랑우탄이 서식지를 잃는 것을 보고 녹색경제는 '덜 나쁜' 방식일 뿐임을 깨달았다. 녹색경제는 기업과 소비자에게 더 많은 투자와 지출을 요구하기 때문에 경제 침체기에는 실현가능성이 거의 없는 방법이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블루 이코노미는 자연 생태계의 순환 시스템을 따라하는 경제를 가리킨다. 자연에는 버려지는 것이 없고 모든 생물종이 저마다 역할이 있어 전체 생태계에 기여하고 있음을 보라, 생태계의 이러한 효율성을 모방하면 지구와 경제 둘 다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블루 이코노미를 위한 혁신기술과 실천 사례를 소개하면서 동참할 것을 권한다. 화학물질을 풀어 물을 정화할 게 아니라 물의 소용돌이 작용을 이용해 자연 정화를 하고, 화석 연료로 전기를 생산할 게 아니라 중력을 이용한 압전기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등 자연이 제공하는 놀랍고 우아한 해결책들을 주목하라고 강조한다. 그렇게 하면 앞으로 10년 안에 100가지 혁신기술이 1억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콜롬비아의 가비오타스 지역은 황무지로 변한 땅을 소나무와 버섯의 공생 관계를 활용해 울창한 우림으로 되살린 기적의 현장이다. 땅이 비옥해지면서 주민들의 수입이 증가했고 숲이 우거지면서 풍부해진 물 덕분에 건강도 좋아졌다.

서부 아프리카의 빈국인 베냉의 손가이센터는 사람과 동물이 배출한 쓰레기를 활용해 식량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도살장에서 나온 폐기물을 파리가 들락거릴 수 있도록 구멍을 낸 상자에 모아서 몽땅 처리하고, 거기 생긴 구더기로 물고기와 메추라기를 키워 수익을 내고 있다. 구더기의 효소는 상처 치료에 특효가 있어 제약회사들이 주목하는 물질이기도 하다.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수도 하라레에 있는 10층짜리 건물 이스트게이트 쇼핑센터는 에어컨이 없는데도 늘 쾌적하기로 유명하다. 흰개미의 집 짓기 기술을 원용했다. 흰개미는 높은 탑을 쌓으면서 통풍구를 만들어 내부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기술을 갖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은 자연이 해낸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작은 투자로도 다각적인 수익을 낼 수 있고, 자연을 착취하지 않으면서 충분히 활용하고, 낭비도 부족함도 없는 것이 블루 이코노미의 특징이라고 요약한다. 저자는 자연이 가르쳐주는 혁신기술의 무한한 잠재력을 강조하면서, 블루 이코노미는 이상주의자의 백일몽이 아니라 매우 현실적인 대안이며 지금 당장 실천해야 할 과제라고 말한다.(오미환기자) 

10. 0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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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 관련서를 대출하러 도서관에 갔다가 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한겨레를 사들었다. 새로 나온 책 몇 권과 안면을 트는 사이에 눈길을 사로잡는 그림이 있어서 주목하게 됐는데, <헨젤과 그레텔>(별천지, 2010) 새 번역본의 그림이었다. 국내에서도 영화로 만들어지고 오페라로 무대에 올려질 만큼 유명한 이 작품의 비밀은 그간에 '새엄마'로 번역되던, 헨젤과 그레텔의 엄마가 '친엄마'란 (불편한) 사실이다('새엄마'인 것이 진화심리학적으로는 더 말이 되긴 한다). 이번 번역본에서는 그걸 살렸다는 기사도 참고할 만하다(절충안으로 '못된 엄마'라고 한 모양이다). 사실 알고 보면 동화 중의 상당수는 '잔혹동화'라는 걸 새삼 일깨워준다. 원작의 비밀이 궁금하신 분들은 다시 손에 들어봐도 좋겠다.   

개인적으론 그림이 마음에 든다. 그림책 화가 주자네 얀센(Susanne Janssen)의 작품으론 <빨간 모자와 늑대>(마루벌, 2004)도 소개돼 있다(정말로 이름을 '주자네'라고 읽어주는지?). 저자가 '수잔네 얀젠'으로 표기됐으니 검색이 될 리 없다. '주잔네 얀센'이란 저자명으론 <피자를 구워주는 피아노 선생님>(비룡소, 2007)도 출간돼 있다. 일관성 없는 고유명사 표기가 불필요한 혼란을 야기시키는 사례다.    

한겨레(10. 06. 26) 오누이를 버린 건 누굴까 

헨젤과 그레텔을 내다 버린 것은 누구? 숲속에 버려진 어린 오누이가 갖은 기지를 발휘해 결국 집으로 돌아와 행복하게 산다는 내용의 <헨젤과 그레텔>은 19세기 독일의 언어학자 야코프 그림과 빌헬름 그림 형제가 펴낸 <그림 동화집>의 한 이야기다. <그림 동화집>은 전해내려오던 민담들을 채록하여 쓴 것인데, <헨젤과 그레텔>은 중세 유럽에 만연했던 아동 유기 풍조가 반영된 것이다. 그림 형제는 <헨젤과 그레텔> 얘기를 통해 그런 세태에 경종을 울리고자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림 형제가 쓴 <헨젤과 그레텔>에서 가족이 굶주릴 처지에 놓이자 어린 헨젤과 그레텔을 버리도록 부추긴 이는 새엄마가 아니었다. 망설이는 아빠를 설득한 것은 엄마였다. 그동안 그림 형제의 <헨젤과 그레텔>을 그림책이나 동화로 펴낸 편집자·번역자들은 헨젤과 그레텔의 엄마를 차마 엄마라고 옮기지 못했다. 대신 ‘새엄마’니 ‘계모’로 번역했다. 새엄마는 나쁘다는 편견을 아이들에게 심는 데 번역판 <헨젤과 그레텔>이 한몫한 셈이다. 이는 비단 한국어 번역만이 아니다. 더러 유럽 언어권에서도 그러했다. 



별천지 출판사에서 번역 출간한 그림책 <헨젤과 그레텔>은 처음으로 엄마를 엄마라 번역한 그림책이라 할 것이다. 그래도 차마 그냥 ‘엄마’로 옮기진 못하고 ‘못된 엄마’로 번역했다. 출판사 쪽은 그림 형제의 원작이 지닌 문학적 숨결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 원작에 충실하게 ‘(못된) 엄마’로 번역했다고 밝혔다. 이 <헨젤과 그레텔>에는 독일의 그림책 화가 주자네 얀센(46)이 불타는 빨강과 칠흑 같은 검정을 주조로 형상화한 헐벗은 오누이와 굶주려 뼈만 남은 부모의 모습이 대담한 화폭에 담겨 있다.

그림 형제의 <헨젤과 그레텔> 속 악역은 엄마와 함께, 오누이를 잡아먹으려는 숲 속 마녀다. 악당을 모두 여성으로 설정한 반면, 아빠는 무능할지언정 ‘착한 아버지’라는 구도다. 두 번이나 아내와 합작하여 자식들을 버렸으며 아내가 (아마도 굶어) 죽고 나서도 살아남아 마녀의 보물을 갖고 돌아온 오누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았던 그는 과연 착한 사람일까. 동화 속에서 누군가는 착한 인물이어야 하고 누군가는 악당이어야 한다면, 약자인 여성을 ‘마녀 사냥’처럼 희생양 삼던 중세 유럽의 풍조를 이 또한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6살부터.(허미경 기자) 

10. 06. 26.  

P.S. 얀센의 그림을 조금 더 찾아봤다. 아이들은 좀 무서워하지 않을까 싶다. '6살부터'가 아니라 '16살부터'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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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26 1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26 1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무래도 월드컵 기간이라 출판계와 서점계가 불황이라고 하는데, 그와 무관하게 개인적으론 주변에 쌓아놓고 있는 책들의 높이가 가속도가 붙은 듯이 올라가고 있다. 어제오늘만 하더라도 수중에 넣은 책이 열댓 권이 넘으니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거기에 포핟돼 있는 책이 토니 클리프의 <레닌 평전>(책갈피, 2010)이다. 전체 4부작 가운데, 3권이 이번에 나왔다. 로버트 서비스의 <레닌>(시학사, 2001)보다 훨씬 더 방대하고 자세한 평전이어서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다(토니 클리프는 트로츠키 전기 4부작도 갖고 있다). 일단은 어떤 책인지 소개기사를 참고하도록 한다.   

 

세계일보(10. 06. 26) 평등국가 꿈꾼 이상주의자 

칼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론이 최초로 국가 체제에 적용됐던 소련은 이미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그로 인해 혁명 전후의 러시아나 칼 마르크스, 블라디미르 레닌에 대한 논의조차 하지 말아야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가급적 레닌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려고 애썼다. “스탈린주의가 레닌을 계승한 것처럼 전해지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레닌은 스탈린의 폭압적 정권 쟁취를 비판했고, 스탈린 같은 폭압적 지배계급이 러시아를 지배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는 노동자 계급이 평등하게 국가를 건설해 이상 사회를 펼치는 것을 꿈꾼 이상주의자였다.”

레닌은 죽기 전 스탈린과 끊임없는 노선 투쟁을 벌였다. 레닌은 노농감찰부를 당 기구에 구성해 당의 관료화와 당의 지배 계급화를 저지하려 애썼다. 레닌의 머리에는 ‘옛 소련식 팽창주의’는 없었다. 동유럽에 폭압적인 사회주의 체제를 이식하고 확산하려는 정책은 아니었다. 레닌은 불가피한 경우 폭력적 수단을 동원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스탈린처럼 탱크를 보내 동유럽을 공산화한다는 야심은 없었다.

저자는 “레닌은 진정한 공산주의자였기 때문에 소련이 무너진 것을 보고 기뻐했을 것이다. 자신의 동상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도 진심으로 기뻐했을 것이다. 소련은 사회주의 탈을 쓴 국가자본주의일 뿐이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레닌 역시 노동자들이 단결해 평등하고 이상적인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이상론과, 필요하다면 폭력을 수반해야한다는 국가혁명론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레닌은 스탈린과는 분명히 다른 평등하고 이상적인 국가를 꿈꿨지만 건설 방법에는 한계를 노출하고 있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동안 출간된 많은 레닌 평전들은 레닌을 당대 현실을 초월한 성인처럼 묘사하고 그의 말과 글을 종교 경전이나 교리처럼 떠받들고 있지만 실은 대부분 아전인수격 해석에 가깝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이 책이 레닌의 장점과 정치적 위대성을 인정하면서도 러시아와 유럽의 다양한 사료와 문헌을 바탕으로 그의 오류와 한계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은 저자의 이 같은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정승욱 기자)  

10. 06. 25. 

P.S. '레닌 읽기'에 대해선 리스트를 만들어놓은 적이 있기에 따로 적지 않는다. 기회가 닿으면 조금 더 체계적으로 읽고 싶지만 당장은 계획일 뿐이다. 그럼에도 토니 클리프판 레닌 평전의 마지막 권 <볼셰비키와 세계혁명>이 조만간 출간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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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06-26 14:54   좋아요 0 | URL
토니 클리프를 그냥 저널리스트라고만 소개하다니 좀 이상하네요.유명한 트로츠키 주의자라고 소개해야 하는데...아마 기자가 저자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나봐요.

로쟈 2010-06-26 15:27   좋아요 0 | URL
저자 소개에 '저술가이자 저널리스트'로 돼 있어요. 저도 '트로츠키주의자'로 알고 있었는데, 국가자본주의론을 주장하면서 '정설 트로츠키주의'와는 결별한 걸로 돼 있네요...

노이에자이트 2010-06-26 21:42   좋아요 0 | URL
클리프의 저서 중 <소련국가자본주의>라는 책이 있는데 트로츠키의 소련체제 해석론과 공통점이 있느냐 여부로 이런 저런 논쟁이 있었습니다.우리나라에서는 정성진 씨가 이 분야의 전문가인데 정 씨 자신이 클리프가 주도한 사회주의노동당 계열이라서...우리나라 트로츠키 주의자들도 이쪽 계열이 강하지요.

루체오페르 2010-06-27 12:36   좋아요 0 | URL
공산주의자들이 이 땅에 와서 지금을 보면 참 만감이 교차할듯 싶습니다.
완전한 평등이라...그들은 인간의 본성을 너무 몰랐던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인류 역사 이래 단 한번이라도 성공한적 있었던지, 앞으로도 영원히 불가능할듯...

로쟈 2010-06-27 15:11   좋아요 0 | URL
지금 이대로 지속할 수는 없다는 판단이 중요한 것이죠. 실패한 자리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거구요. '본성'을 고려한 다윈주의 좌파적 기획도 있을 테고, 본성을 '개선'해야 한다는 기획도 가능하겠지요...

루체오페르 2010-06-27 19:30   좋아요 0 | URL
로쟈님 댓글은 항상 많은 가르침을 줍니다. 또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엊저녁엔 다 아는 바와 같이 남아공 월드컵 조별예선 첫 경기에서 한국이 그리스에 기분 좋은 승리를 거두었다. 우리가 생각보다 강한 건지, 그리스가 생각보다 약했던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리스 감독은 첫 골을 그리스가 넣었더라면 경기의 양상은 달라졌을 거라고 말했다. 지당한 말이다. 축구공은 둥그니까. 그런 불확실성을 다시금 상기시켜준 건 영국과 미국의 경기. 새벽 경기라 직접 보진 못하고 아침에 스코어만 확인했는데, 이 또한 알다시피 1:1 무승부라는 의외의 결과였다. 물론 영국이 승리할 가능성이 거꾸로일 가능성보다는 몇 배 높았지만 결과는 무승부였고, 가장 결정적인 건 어이없는 동점골을 내준 영국 골키퍼의 실수였다. 덕분에 좀더 '유명해진' 로버트 그린은 경기후 인터뷰에서 "이것이 골키퍼의 인생"이라는 매우 담담하면서도 철학적인 소감을 밝혔다. “항상 안정감을 유지하고 어려운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문제다. 하지만 골키퍼의 인생은 그런 것”이라고. 

 

당장은 그가 다음 경기에도 기용될지 미지수인데, 기사를 보다 보니 문득 제임스 설터의 <어젯밤>(마음산책, 2010)에 대한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칼럼이 생각났다. '그래,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가 지난주 한겨레21의 칼럼 제목이었다(http://h21.hani.co.kr/arti/COLUMN/130/27484.html). 간단하게 소설 일반론을 먼저 기술하고 그는 이렇게 적었다.   

범박한 일반론이지만 다시 정리해볼 생각을 한 것은 최근에 출간된 제임스 설터의 소설집 <어젯밤>(마음산책·2010) 때문이다. 이 인상적인 책은 사건, 해석, 진실, 단절로 이어지는 저 과정을 놀랍도록 효율적인 방식으로, 짧고 깊게, 단숨에 성취해버린다. 그림자에게 소매치기를 당한 기분이랄까. 1925년생이니 80살이 되던 해에 출간한 책이다. 소설은 통찰력의 산물이고 통찰력은 시간의 선물이라는 점을 되새기게 하는 대목이다. 어쩐 일인지 우리에게는 이 책으로 처음 소개되었지만, 미국에서는 “소설을 찾아 읽는 독자들에게 제임스 설터가 생존한 미국 작가 중 영어를 가장 잘 쓰는 작가라는 사실은 일종의 신념과도 같다”(리처드 포드)는 평을 받는 대가라고 하니, 이제야 읽게 된 게 좀 억울할 지경이다.

열 개의 단편소설 중 ‘포기’와 ‘어젯밤’이 단연 압권이다. ‘포기’에서 잭은 그의 아내와 아이에게 좋은 남편이자 아빠처럼 보인다. 잭의 친구인 시인 데스가 마치 가족의 일원인 듯이 함께 살고 있는데, 평범한 조합은 아니지만 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작품을 읽게 된다. 아내의 생일을 맞아 단란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날 밤, 아내가 잭에게 데스에 관해 무언가를 말한다. 다음날 아침, 세상은 완전히 달라진다. ‘어젯밤’의 경우는 더 극적이다. 어젯밤 월터는 죽어가는 아내의 요구로 그녀의 안락사를 도왔다. 그 와중에 무언가가 잘못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월터의 삶은 무너진다. 두 작품 모두에서 ‘어젯밤’은 사건의 날이다. “그게 무엇이었든 두 사람 사이에 있던 건 사라지고 없었다.”(199쪽)  

"생존한 미국 작가 중 영어를 가장 잘 쓰는 작가"란 표현은 '옮긴이의 말에 인용돼 있는데, 사실 이토록 '대단한' 작가의 이름이 국내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가 이번에 처음 소개된다는 점이 좀 놀랍다. 하성란 소설가도 "제임스 설터는 너무 늦게 우리 독자에게 왔다. 왜 존 치버나 레이먼드 카버에 가려져 있었는지! 하지만 지금이라도 그의 소설을 읽게 되어 다행이다. 참 다행이다."라고 적었을 정도다. 

책 말미에는 '이 책에 쏟아진 찬사'가 몇 페이지에 걸쳐 나열돼 있는데, "표제작 '어젯밤'은 안톤 체홉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에 견줄 만한 잊을 수 없는 걸작이며, 이 시대 문단 최고의 단편으로 자리한다."는 평이 눈길을 끈다. 수전 손택도 "제임스 설터는 독서의 강렬한 즐거움을 아는 독자에게 특히 어울리는 작가다"라며 거들었다. 뭐 이 정도면 거의 '협박' 수준이다. 작품을 읽지 않을 재간이 있을까. 역자가 '옮긴이의 말'을 마무리하는 소감은 가히 정점이라 할 만하다.  

"설터의 책을 번역하는 건 호화 저택에서 몸종을 거느리고 사는 기분이다. 아니, 그보단 바닷가에 지은, 커다란 테라스가 있는 집에서 맨발로 뛰어다니며 사치스럽게 산 기분이다. 이제 그 집에서 떠나고 싶지 않다." 

 

해서 '옮긴이의 말' 타이틀이 '호화로운 집에 살다'이다. 대체 어떤 '집'인가 궁금하여 현관 계단까지 갔다가, 책상에 잔뜩 쌓여 있는 책과 일거리를 생각하여 오늘은 이렇게 변죽만 울리기로 했다. 아마도 내일쯤 좌석버스 안에서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아직 첫 작품도 읽기 전이지만 미리부터 그의 대표작이라는 <가벼운 나날들>이 번역되길 기대해본다. 랜덤하우스의 명편집자 조지프 폭스가 자신이 편집한 책 중에 다음 세대까지 남을 책을 들어달라는 질문에 트루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와 함께 꼽았다는 책이다. 아, 인생은 짧고 읽을 책은 너무나 많도다!..  

10. 06. 13. 

P.S. "생존한 미국 작가 중 영어를 가장 잘 쓰는 작가"란 표현에서 인용한 제목이 잘못 번역된 문장에 근거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으므로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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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4 0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14 2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이드 2010-06-14 02:24   좋아요 0 | URL
아름다운 영어.가 강조될수록 번역문을 읽을때의 찜찜함도 느는 것 같습니다. 평을 보기 전에 책을 읽을 때는 (물론 개인차가 있겠지만) 위의 평처럼 대단한 느낌은 받지 못했거든요. 카버의 번역본과 원서가 사뭇 다른 느낌이었듯이, 제임스 설터도 그런 작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제임스 설터의 책으로는 국내에 번역된 부인과 함께 쓴 음식 이야기같은 약간은 싱거운(?) 책도 있어요. 마음산책의 인상적인 표지 이야기, 제가 포스팅 했던 것 링크 남겨 봅니다.

http://blog.aladdin.co.kr/misshide/3752917


로쟈 2010-06-14 19:43   좋아요 0 | URL
'아름다운 영어'라기보다는 '간결한 영어' 같습니다. 카버나 치버 계통의...

Kitty 2010-06-14 03:54   좋아요 0 | URL
아름다운 영어...라면 번역가의 두통이 먼저 떠오르는...ㅠㅠ
영어가 수려하고 멋질수록 번역하기는 더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서 소설 번역하시는 분들이 더욱 대단해보이기도 하고요.

로쟈 2010-06-14 19:42   좋아요 0 | URL
적재적소에 잘 들어맞는 언어를 구사하는 게 사실 작가의 역량이죠...

나비 2010-06-14 22:59   좋아요 0 | URL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영어 배우는데 나름 열심인 사람입니다. 로쟈 님의 글(http://blog.aladdin.co.kr/mramor/3818074)에 달린 댓글들을 제 블로그(http://blog.jinbo.net/hizino/?pid=37)에 올려도 되는지요?
저작권을 명시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로쟈 2010-06-14 23:01   좋아요 0 | URL
네, 무방합니다.

나비 2010-06-14 23:1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비로그인 2010-06-15 05:0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드립니다!
로쟈님의 글은 난해한 개념의 분류와 번역의 문제를 명료하게 해주셔서 이제 막 공부를 시작하는 제게 매우 유익한 길잡이가 되고 있습니다. 실은 그간 곁눈질로 선생님께서 후학들에게 퍼감을 허락하시길래 제 맘대로 선생님의 글을 퍼갔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요사이 몇몇 주제들을 구체화하려다 보니 글을 퍼감을 선생님께 정식으로 허락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서번역의 인용이나 용어 상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꼭 출처를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사후 재가를 구하는 것이 되어 좀 민망하지만 그래도 말씀을 드리는 것이 나을 것같아 용기를 내어 댓글을 올립니다. 허락해주시길 바라며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로쟈 2010-06-15 10:30   좋아요 0 | URL
출처만 밝히시면 펌은 다 무방합니다..

비로그인 2010-06-15 11:5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로쟈 2010-06-21 08:23   좋아요 0 | URL
^^

sophie 2010-06-20 23:48   좋아요 0 | URL
로쟈님 어젯밤을 읽어보았습니다. 말씀대로 정말 간결한 문장으로 긴박감을 느끼는 소설의 전개였지요. 근데 다 읽고나서는 '어 모야, 아 짜증나..'라는 말이 절로 나오더군요. 이런 원시적인 반응이라니... 로쟈님은 어떻게 느끼셨는지 궁금하네요. (한 편만 읽고 모라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포기'를 읽을 생각이 들지 어떨지....)

로쟈 2010-06-21 08:23   좋아요 0 | URL
ㅎㅎ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과는 종류가 다른 소설이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