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 한국일보(06. 05. 04)에 서경식(1951- ) 도쿄경제대 교수와의 인터뷰가 실렸다. 그렇게만 말해도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겠지만, 보다 친철하게 말하자면 <나의 서양미술 순례>, <디아스포라 기행> 등의 책을 쓴, 가장 최근에는 <난민과 국민 사이>를 쓴 저자 서경식을 말한다(그의 불행했던 가족사에 대해서는 굳이 더 적지 않는다).

내가 처음 읽은, 그리고 유일하게 읽은 책은 <나의 서양미술 순례>(창비, 1992)이지만(벌써 14년전이다. 이 책은 이후 2002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지속적인 관심은 유지하고 있었더랬다. 얼마전에는 <난민과 국민 사이>(돌베개, 2006)를 '최근에 나온 책들'에 올려놓기도 했는데, 방학때쯤 읽을 짬을 내볼까 생각중이다. 이 인터뷰는 그 '워밍업'으로 적합해 보인다.

-이산(離散)을 뜻하는 그리스어 디아스포라(diaspora). 원래는 팔레스타인 땅을 떠나 흩어져 사는 이산 유대인과 그 공동체를 가리켰던 말이지만 오늘날에는 자기가 속했던 공동체를 떠나도록 강요된 사람 모두를 가리킨다. 굳이 우리 말로 바꾸면 ‘역사적 이산 민족’에 해당한다.

-재일동포 2세인 서경식(55) 도쿄경제대학 교수. 그는 디아스포라로서의 재일동포 문제에 천착해온 사람이다. 올초 발간된 <디아스포라 기행>이나 최근 나온 <난민과 국민 사이> 모두 그의 일생의 주제인 ‘디아스포라’에 닿아 있다. 하인스 워드의 방한을 계기로 혼혈인, 외국인 노동자 등 우리 사회의 ‘디아스포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요즘, 그를 만나 우리의 관심권 밖에 있는 재일동포 문제에 관한 의견 등을 들어보았다.

-그렇게 오고싶어 했던 한국에 오셨는데, 어떤 활동을 하실 생각입니까.(그는 성공회대 연구교수 자격으로 4월초 한국에 왔다)

사람을 많이 만나고 싶습니다. 한국인의 사고와 생활방식, 문화를 직접 체험해 보고 싶어요. 제 나이 벌써 50대 중반이니, 앞으로 내 조국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머물 기회도 없을 겁니다. 저를 포함한 재일조선인(그는 재일동포 대신 재일조선인이라고 표현했다) 2, 3세는 대부분 따로 한국어를 배우지 못해 한국어가 서툰데 이번 기회에 제대로 익히고 싶습니다. 제가 책을 몇 권 냈지만 모두 일본어로 썼어요.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 한국에 번역됐는데, 그러자니 뜻이 제대로 전달되는 건지 저도 궁금하고 좀 답답했습니다.”

-한국에 온 뒤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사실 제법 고생 좀 했습니다. 국적은 분명 한국인데 주민등록번호가 없다는 이유로 휴대폰 계약조차 힘들었어요. 게다가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일본이 발행한 외국인등록증명서를 요구했습니다. 이 증명서는 재일외국인 통제가 주목적이기 때문에 과거 한국 정부가 일본측에 폐지를 요구했던 겁니다. 그런데도 그런 증명서 제출을 요구하는 것은, 한국 국적의 재외국민을 통제의 대상, 관리의 대상으로 본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제 한국어 발음이 좀 어눌해서 그런지 저를 좀 자연스럽게 대해주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류의 불편은 어느 사회나 있는 것이므로 저는 이 역시 우리 조국에서 하는 경험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서 교수에게 조국은 어떤 존재입니까.

“일본에서 저는 국가가 없는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국가란 국민에게 의무를 지우기도 하지만 반대로 국민을 보호하기도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도 저 같은 재일조선인은 일본에서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물론 귀화를 하면 되겠지요. 그러나 귀화는 일본의 식민지배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저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거부한 것입니다. 차별과 멸시가 심하면 심할수록 조국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 속에 밀려왔습니다.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제가 말한 조국은 국가 기구가 아니라 사람과 문화를 일컫는 겁니다.

-조국의 분단은 재일동포에게도 부담이 될 것 같은 데요.

“그렇습니다. 제 할아버지가 충청도 지방에서 살다가 일본으로 건너온 것이 1928년입니다. 살만 했다면 낯선 곳으로 갔겠습니까. 저희 집안 뿐 아니라 일제시대에 200만명 이상이 먹고 살기 위해 일본으로 갔습니다. 현재의 재일조선인 대다수는 그때 건너온 사람들의 후손입니다. 해방이 되고 남북의 단독 정부 수립,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한반도의 분단이 고착되지만 재일조선인 사회는 한동안 분단되지 않은 상태로 살고 있었습니다. 친척이나 친구가 민단 소속도 있고, 조총련 소속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60년대 이후 재일조선인 사회도 갈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남북이 통일을 이룬다면 우리 재일조선인들도 자유롭게 한반도의 남과 북을 오가며 조국을 지금보다 더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재일조선인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과거에 비해 지위가 많이 올라간 것 아닙니까.

“전에는 공무원, 교수, 변호사, 대기업 직원 등은 되기가 어려웠습니다. 좋은 직업을 갖기 어렵기 때문에 극심한 가난을 겪은 사람이 많습니다. 사회 관습적으로도 마찬가지여서 일본인과 결혼하려면 부모가 말리는 일이 많았고 학교에서도 아이들의 따돌림이 심했습니다. 그때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지요. 제한적으로나마 공무원이 될 수 있고 건강보험과 연금에도 가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배타성은 아직도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일본인에게 재일조선인은, 식민지배와 이에 따른 남북 분단 등 그다지 직시하고 싶지 않은 자신들의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껄끄럽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재일조선인 1세는 거의 없으며 2, 3세가 80~90%입니다. 이들은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 밖에 모릅니다. 우리 말도 잘 못하지요.”

-일본내 한류 바람과 독도 문제가 재일동포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한류가 한국과 일본의 상호 이해에는 도움을 줄지 몰라도 재일조선인의 삶에는 별 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독도는 일본이 권리를 주장하면 안 되는 곳입니다. 재일조선인의 입장에서는 이런 문제가 발생하고 두 나라가 마찰을 빚을 때마다 살기가 어려워 집니다.”

-한국의 일부 학자들은 경제 통계를 인용하면서 일제 때 고도성장이 이뤄졌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또 민족주의에 대해서도 부정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수치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수치가 보여주지 못하는 생생한 개인의 체험이 많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일제 때 일본으로 200만명 이상이 건너가 이 가운데 150만명 정도가 해방 후 귀국했습니다. 그 때문에 저를 포함한 많은 재일조선인이 일본에서 태어났고 차별 속에서 자랐습니다. 만주로도 100만명 이상이 나갔습니다. 그들이 만주에서 얼마나 어렵게 농지를 일구었는지는 잘 알지 않습니까. 당시 한국 인구의 6분의 1 정도가 딴 나라로 떠돌았습니다. 일제 하의 한국이 그만큼 먹고 살기 어려웠다는 것이지요.”

-문화 예술 전반에 상당한 조예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문학과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이 어렸을 때부터 있었습니다. 게다가 60, 70년대에는 차별 때문에 재일조선인이 직업 갖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비교적 진입이 자유로운 문학, 미술 등을 많이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소설가도 꿈꿨고 그림과 영화도 동경했습니다. 지금도 일본의 문화계, 체육계에 재일조선인이 많은 것도 저와 비슷한 이유 때문입니다.”

-저서 <나의 서양미술 순례>는 국내에서도 아주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미술은 따로 공부한 적이 있습니까.

“학문적으로 공부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차별 많은 일본에서 현실 문제를 잊고 그림을 감상했기 때문에 그 아름다움에 푹 빠지고 사심없이 작품과 대화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일보가 5월20일부터 피카소 작품전을 한다고 하는데요, 저는 피카소 그림에 매료돼 22년 전 일본에서 스페인 마드리드로 건너간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 전시된 ‘게르니카’를 직접 보겠다는 일념으로요. 직접 본 ‘게르니카’는 책이나 화첩에서 보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감동을 주었습니다. 프랑코 정부에 맞서 싸우다 조국 스페인을 떠나야만 했던 피카소가 저의 관심 영역의 하나인 ‘디아스포라’이기 때문에 더 각별한지도 모르겠습니다.”(대담=박광희기자)

06. 05.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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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증이긴 하지만 '문자중독증'이 있는 나는 여하튼 뭐든 읽을 거리를 갖고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없다고 해서 발작을 일으키거나 하지는 않기 때문에 '경증'이다). 거의 언제나 손에 가방을 들고 다니고, 또 대개는 너무 많은 책들을 넣고 다닌 탓에 팔길이가 좀 늘어나기까지 했다(하긴 중고등학교 때의 무거운 책가방 시절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나의 '가방 모찌' 경력은 4반세기를 넘어서고 있다). 저녁시간 전철을 타고 집에 가는 길에도 (특별한 읽을 거리가 없는 한) 신문이라도 챙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엊저녁에도 '문화일보'를 읽다가 얻은 소득이 있어서 여기에 옮겨놓는다(한동안 읽을 거리가 없는 신문이었는데, 최근에는 제값을 한다). 언젠가 패러디의 문제를 다루게 되면 인용해먹을 생각인 인터넷유머 '고스톱 만가' 시리즈와 함께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해준 것은 이왕주 교수의 칼럼 '진정한 영웅'이었다(이런 자질구레한 쓸 거리들을 다 적어놓기에도 '하루'는 역부족이다. 하긴 별것도 아닌 벌이에 충당해야 하는 시간으로도 모자란 것이니! '벌이'가 아닌 글들의 8할은 바람결에 흘려보내는 수밖에 없다).

<철학풀이, 철학살이>(민음사, 1994)부터 최근의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효형출판, 2005)까지 뜸하지는 않을 만큼의 저서를 내고 있는 저자의 글을 내가 본격적으로 읽어본 적은 없다. <소설 속의 철학>(문학과지성사, 1997) 같은 책이 그렇듯이 '칼럼집'이라는 가벼운 형식과 '철학'이라는 무거운 콘텐츠가 잘 버무려질 수 있을 거란 기대를 내가 별로 갖고 있지 않아서였다. 어제 읽은 칼럼은 그런 생각을 재고해보도록 만들었다. 나는 그의 <쾌락의 옹호>(문학과지성사, 2001) 같은 '가벼운' 책을 오늘이라도 사들게 될 것이다. 아래의 칼럼 때문에.

 

 

 

 

문화일보(2006. 04. 27) 한국계 천재 소녀 골퍼 미셸 위가 국내 재벌기업이 후원하는 골 프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온다고 한다. 한 신문은 미국에 서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오는 이 열일곱 살짜리가 벌어들이는 연간 수입이 우리 돈으로 약 26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미셸 위. 어쨌든 대단하다(*그녀는 잔디밭의 영웅이다). 하인스 워드의 경우처럼 미셸 위의 방한은 영웅에 목마른 이 반도를 또 한번 들뜨게 할 것 같다.



-그러나 대중의 이런 환호에는 돌이켜 살펴봐야 할 대목이 있을 것이다. 공자도 ‘모든 인간들이 달려들어 환호하는 일에 반드 시 반성해서 살펴야 할 무엇이 있다(衆好之必察焉)’ 고 충고했다. 워드와는 달리 미셸 위 신드롬은 이뤄놓은 성취가 아니라 이루게 될 성취라는 불확실한 미래에 터잡고 있다. 그만큼 위태로 운것이다. 속절없이 스러져버린 미래의 천재, 가능성의 영웅이 얼 마나 많더냐.

-며칠 전 서울 등촌동의 한 아파트에서 화재가 났다. 부모 없는 사이 초등학생 세 명이 라이터놀이하다 불을 낸 것이다. 마침 서울 화곡여자정보산업고 1학년 여학생 10명이 그 곁을 지나다가 연기와 화염에 싸인 채 목숨이 경각에 달린 어린이들을 합심하여 침착하게 구해냈다.(*이 여학생들은 지난 월요일 서울시 소방방재본부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이 여학생들도 남들처럼 그 상황을 무심히 스치거나 외면하거나 기껏 119에 신고하는 것쯤으로 떼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과감히 그 상황 안으로 뛰어들어 하마터면 화마 속에 사라져갈 뻔한 어린 생명들을 건져냈다. 그 여학생들 가운데 누군가가 동갑내기 미셸 위처럼 유명하게 될지 어떨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저 모두 남들처럼 대학에 진학하거나 직장에 취직하거나 결혼해서 이름 없이 그냥 평범하게 살아갈지 어떨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만은 단언할 수 있다. 그들이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든, 이제 좀더 예민한 후각과 눈으로 이웃과 주위에 고통 받는 이웃은 없는지, 상처로 휘청거리는 타인은 없는지 살피며 살아가리라는 것을. 그리고 구원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는 수난자들에게 기꺼이 손을 뻗쳐 붙들어주리라는 것을.

-영웅은 대중의 환호나 갈채 속에서만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내게는 이 이름 없는 여학생들이야말로 진짜 영웅으로 보인다. 자가용 비행기쯤이야 없으면 어떠냐. 그 치열한 성장기에는 그냥 우산없이 내리는 비에 흠뻑 젖어 걸어가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도움이 필요한 약자들에게로 열리는 그 따뜻한 마음을 생애 동안 지켜내는 것이다.(*이 여학생들은 '이미지'도 없다.)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에서 주인공인 가출 청소년 홀든 콜필드는 머나먼 서부로 떠나기에 앞서 만난 여동생 피비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난 조그만 꼬마들이 뛰어노는 넓디넓은 호밀밭을 늘 눈앞에 그려보곤 해. 수많은 꼬마 녀석들이 있을 뿐 어른은 나밖에 없는 거야. 오직 나밖엔. 나는 언제나 아득한 낭떠러지 옆에 서 있지. 내가 하는 일은 그 꼬마녀석들 중에 누구라도 낭떠러지 쪽으로 다가서려면 달려가서 붙잡는 거야. 애들이란 달릴 때 저희가 어디로 달리고 있는지 모르잖아? 그럴 때, 내가 어딘가에서 나타나 그 애를 붙들어주는 거야. 이게 내가 하루종일 하게 되는 일의 전부지. 나는 정말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어. 이게 바보짓인 줄은 나도 알아. 하지만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이것뿐이야.”(*주인공의 이 대사는 사실 이 작품의 감동을 상당 부분 감당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누가 우리 청소년들에게서 회의와 절망만을 확인하는가. 이런 소녀들이 있는 한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그들 모두가 그저 이기적인 공부벌레가 되어 책상 앞에만 붙들려 있는 것도 아니고, 콘서트에서 노래하는 가수들에게 열광하거나 컴퓨터 게임 같은 것 에 몰두하면서 생을 소모하고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 자신이 어린 영혼들이면서 더 어리고 더 약한 영혼들이 뛰노는 호밀밭 가장자리의 낭떠러지 곁을 지켜주는 파수꾼으로 나서기도 하는 것이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의 표상이 아닐까. 누가 그 이름을 기 억하는가, 기억하지 않는가는 중요한 게 아니다. 잊어진다는 것, 그냥 사라져간다는 것, 그게 또 무슨 상관이랴. 호밀밭의 파수꾼은 훈장을 위해, 그 잘난 포상을 위해 낭떠러지를 지키는 게 아니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어 그러는 것일 뿐이다.

06. 04. 28.

P.S. 좌파니 우파니, 뉴라이트니 뉴레프트니 하는 치들이 아니라 세상은 '그냥 그렇게 하고 싶어 그러는 것일 뿐'인 이 파수꾼들에 의해 조금씩 나아지는 거라고 나는 믿고 싶다, 아니 믿고 있다. 적어도 '잔디밭-세상'이 아닌 '호밑밭-세상'에서는 그렇다. 참고로, 홀든은 '그냥 그러고 싶지 않을 뿐'인 바틀비의 짝패이다. 밥먹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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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런스 2006-04-28 11:48   좋아요 0 | URL
좋은 글.... 오... "중요한 것은 도움이 필요한 약자들에게로 열리는 그 따뜻한 마음을 생애 동안 지켜내는 것이다." 진짜 어려운 말이네요!

로쟈 2006-04-28 16:31   좋아요 0 | URL
'말'이 어려운 건 아니고 실행하는 게 좀 어려운 일이죠.^^
 

노르웨이의 오슬로 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는 (러시아계 한국인) 박노자 교수가 지난달 18일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정교-진보운동-사회주의'라는 주제의 초청강연을 가졌다(이날 강연에는 학생들과 시민 1700여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그 녹취록이 있기에 옮겨온다. 많은 분들이 일독해 보시도록 권유하기 위해서이다(종교에 관한 우리의 '상식'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 녹취록은 '푸하'님의 서재에서, 그리고 강연회 사진은 '데일리서프라이즈'에서 갖고 온 것이다. 군데군데 굵은 글씨로 표시한 강조와 간혹 덧붙여진 군말은 나의 것이다.  

-하필이면 왜 이 주제를 선택했는지에 대해서 먼저 일종의 변명 같은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1∼2년 전에 민중 신학과 가까운 한 기독교 계통의 잡지로부터 현대 한국 기독교를 비판하는 글을 청탁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걸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하다가 결국엔 '죄송합니다. 못쓰겠습니다' 그렇게 넘어갔습니다. 제 학술 분야가 원래 기독교보다 고대사였기 때문에 불교 공부를 좀더 많이 한 부분도 있었고, 또 신자가 아닌 신분으로 비판하기에는 뭔가가 쉽게 내키지 않은 부분이 있었던 것도 같지만, 사실 그때 제가 거절의 말씀을 드렸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하면   이건 굳이 기독교뿐만 아니라 결국 불교에도 그대로 해당됩니다만   '기업 활동에 대해서 이념적인 비판을 할 수 있는가'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기업 활동이라고 말씀드린 것은, 얼핏 보면 신을 모독하는 발언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실은 신에 대한 발언이 아니라 현존하는 종교 조직에 대한 발언입니다.(*종교사회학에서는 상식적인 얘기이다. 교회 성장의 중요한 요건 중 하나가 '자리' 곧 '좋은 목'이라는 사실을 목사님들의 상식이듯이. 이미지는 김종서 교수의 <종교사회학>(서울대출판부, 2005)을 가져왔는데, 내가 오래전에 종교학 과목을 수강하며 읽었던 책은 오경환의 <종교사회학>(서광사, 1990)이다.) 그리고 사실은 외국의 사회인류학이라든가 사회학 같은 부문에서는, 특히 종교사회학에서는 요즘  '종교 시장'이라는 용어를 거의 별 거부감 없이 쓰다 보니까 저도 약간의 영향을 받은 것 같은데, 어쨌든 한국의 경우 사찰이든 교회든 예외적인 소수를 제외하면, 일종의 기업 활동으로 보이는 신앙 활동의 형태가 많이 보이기 때문에 이것을 어떤 이념적 입장에서 비판하기가 왠지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여기서 기업 활동이란 우리가 경험적으로 잘 아는 소위 기복 장사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꼭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사찰이나 교회를 찾을 때는 마음 속에 일종의 거래를 하는 듯한 마음으로 찾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 말씀이지요. 예컨대 "내가 열심히 신앙생활 하고 기도하면 내 아들이 서울대에 입학하겠지" 하고 생각할 때 여기서 신의 축복이란 게 아주 현실적이면서도 물질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입니다. "신앙 생활 잘 하고 기도를 잘 하면, 대학교 입학뿐 아니라 예컨대 직장에서도 인간 관계가 원만해져서 안 짤리겠죠. 그러니까, 난 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 하면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 결국에는 여유있는 생활하고 잘 살 수 있겠지" 하는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신앙 생활을 한다는 것은 일종의 "신통력이 있다, 신이나 어떤 초자연적인 힘과 거래할 수 있다"는 조직에 가입해서, 헌금이라는 이름이든 성금이란 이름이든 불전이란 이름이든, 어떤 명목으로 거기에다 일종의 물질적 대가를 바치고 그 대신에 상당히 현실적인 성격의 축복을 돌려 받는, 성격의 신앙 생활이 우리한테는 아주 익숙해진 것이고, 넓은 의미에서 그것은 기복 신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기복 신앙은 꼭 구체적으로 '자녀 입학하게 해 달라', 아니면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극락왕생하게 해 달라' 하는 것뿐만 아니고 넓은 의미에서 현실 생활이 원만하고, '현실적인 잣대'로 봤을 때 행복한 생활을 초자연적 힘에 의해서 돌려받으려는 것이 기복 신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찰이든 교회든 수많은 종교단체에서 이와 같은 넓은 의미의 기복을 제공함으로써 상당한 대가를 받고, 또 그 대가로 사찰의 경우엔 동양에서 가장 크다는 대형 불상을 짓고, 교회 같으면 단일 교회로선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짓고, 말하자면 기복 장사를 잘 한다는 것을 건물이나 여러 가지 종교적 상징물로 나타내기도 하는데, 결국 그런 거래나 장사에 대해서 이념적 입장에서 뭐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좀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이런 기복 장사, 종교를 신통력이 있는 개인이나 단체와 거래하는 곳으로 이해한다는 것, 또는 종교의 대상으로 신이나 초자연적 힘, 또는 그 힘을 빌려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들을 생각한다는 것은 어제그제 생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더 비판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습니다.



-혹시 고등학교 때 역사 교과서에서 배웠는지 모르겠지만, 신라의 이차돈이 누군지 기억하십니까? 신라 법흥왕 때의 순교자 이차돈을 잘 기억하시겠지만, 왕이 대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불교를 도입했는데, 그 과정에서 법흥왕이 이차돈을 희생시킨 거죠. 대신들하고 화해하기 위해서 이차돈을 죽였는데, 결국 대신들의 반대가 무로 돌아가고 불교가 받아들여졌다는 게 우리가 알고 있는 공식적인 이야기인데, 혹시 여러분은 이차돈이 순교했을 때의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삼국유사를 그대로 믿는다면 그것이 신라에서 불교가 공인된 동기가 됐는데, 이차돈이 참수당하기 직전에 '만약 부처님에게 신통력이 있다면, 부처님에게 기적을 일으킬 권세가 있다면, 내가 죽고 나서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이렇게 예언하고 참수당한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피 대신에 하얀 물, 그러니까 우유와 같은 색깔의 하얀 물이 갑자기 목에서 솟아 나와, 그 자리에 있는 모든 대신들이 부처가 대단한 신통력을 가진 무서운 신인 줄 알고 거기에 감복하고 불교를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다분히 설화적인 이야기이고, 불교를 믿는 수행자의 목을 칠 때 하얀색의 액체가 나온다는 이야기는 붓다의 본생담(本生譚), '자타카'에서 많이 읽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불교의 설화로서는 유래가 깊은 설화입니다. 그러니까 특별히 신라에서 생긴 설화도 전혀 아닙니다. 어쨌든 여기에서 중요한 부분은, 신라 사람들한테 초기의 붓다, 초기의 부처가 바로 기적을 일으킬 만한 힘을 가진 그런 신통한 존재였고, 불교를 믿는 사람들, 승려나 순교자 이차돈 같은 사람들이 기적을 일으킬 만한 신통력의 소유자로 보인 것입니다.

-우리는 백제가 불교를 일본에 전달했다는 것을 상당한 민족적 긍지로 삼는데, 만약  일본서기 , 일본의 공식 역사를 그대로 믿는다면, 백제 성왕이 일본에 불교를 전수했을 때, '부처를 믿으면 나라 안이 태평할 것이고 붓다가 나라를 지켜줄 수 있다'는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백제에서 불교를 받아들인 일본 지배자의 입장에서는 붓다라는 신이 힘이 세고 무서운 신통력을 갖고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그런 초자연적 존재였던 것이죠. 그런 면에서 종교에다 초자연적 힘을 부여하고, 종교 전문가들, 성직자들을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무섭고도 신비한 도사로 생각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만이 아니고 우리 역사 속에 상당히 깊이 내재돼 있기 때문에 이것을 건드리기가 상당히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물론 과거의 기복과 오늘날의 기복은 상당히 다릅니다. 기복은 복을 빈다는 이야기인데, 복을 누구를 위해서 비는가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예컨대, 자녀가 수능시험을 볼 때 어머님이 사찰에 가서 대입 기도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입 기도라는 게 결국 내 옆에서 기도를 하는 다른 아줌마의 아들보다 내 아들을 먼저 입학시켜 달라는 이야기가 들어 있는데(청중 웃음), 기도는 같이 하지만 결국 그 속에는 상당한 경쟁 관념이 내재해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현대의 기복은 완전히 장삿속이 되기도 하지만, 아주 원자화된 개인, 말하자면 옆의 아줌마 아들이 아니라 내 아들만을 입학시켜 달라는, 개인·개체 위주의 장사인데, 전통적인 기복이 이것보다는 약간 차원이 높았습니다.

 

 

 



-예를 들어 신라 시대 때 미륵상이나 아미타상을 만들고 거기에다 어떤 명을 새겼는가 하면, 나의 부모를 비롯한 칠세(七世) 친척들을 극락왕생하게 하소서, 그리고 우리 국토가 태평하고 모든 중생들이 깨달음을 얻게끔 하소서 하는 명을 새겼습니다. 결국 나뿐만 아니고 국가 전체가 그리고 모든 중생들이 뭔가를 받도록 비는 그런 마음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차이가 있습니다만, 그래도 근본적으로 기복 신앙이라는 것이 아주 오랜 역사를 갖고 있고, 이미 문화 속에 얽히고설킨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제가 그때는 그것에 대해서 뭐라고 얘기하기가 왠지 참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그때 제게 어떤 생각이 들었냐하면, 기복 장사 자체를 문제 삼기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기복 장사에는 사찰이나 교회라는 공급자가 있는가 하면, 그 장사를 제발 해 달라고 하는 수요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와 사찰들이 갑자기 없어지고 수요만 그대로 남는다면, 예를 들어 무당이나 점쟁이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수요자로 하여금 이런 기복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상황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바뀌지 않는다면 공급자나 수요자만을 인격적으로 탓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기복 장사 자체를 문제삼을 순 없다 하더라도 소위 '상도덕'은 문제삼을 수 있는 부분입니다. '상도덕' 아시죠? 장사할 때 그래도 어기면 안 되는 일종의 '상도'가 있는데, 기복 장사하는 과정에선 이것이 너무도 많이 어겨지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서 일반 재벌들끼리 장사를 해도, 만약 LG 휴대폰 쪽에서 '삼성 휴대폰이 곧 고장날 것이니 삼성 휴대폰을 사는 사람은 그것을 행복하게 쓸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악성 흑색 광고를 낸다면 이것은 아마 당장 재판을 받아 상당한 돈을 물을 겁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나왔다는 사람이 '불신지옥'이라고 외친다면 이건 사실 LG 휴대폰만이 진리고 삼성 휴대폰이 거짓이라는 말과 전혀 다를 게 없습니다. 그러니까 결국에는 같은 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관계인데. 그걸 또 '불신지옥'이라고 외칠 때에는 꼭 '불신(佛信)지옥', 그러니까 '불교를 믿는다면 지옥이다' 라고 들리기 때문에... (청중 웃음) 이것은 상도덕의 문제입니다. 아무리 장사를 열심히 하겠다고 발벗고 나서도 장사를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청중 웃음)

-이런 부분도 있습니다. 기업체에서는 고용자를 막 다루면 안 되지 않습니까? 삼성이 무노조 경영을 한다고 해서 삼성을 대단히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삼성말고 무노조 경영하는 곳이 '종교 재벌'들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 혹시 대형 교회나 대형 사찰에서 노조를 본 적이 있으십니까? 없죠?(청중 웃음)

-사실은, 삼성보다 대형 교회에서 주인이 아닌 '밑에 사람'으로 일하기가 훨씬 불안합니다. 대형 교회의 부목이나 전도사, 운전사 정도면   뭐 월급이 박한 건 그렇다 치고 언제 짤릴지 모르는 상황이죠. 주목의 마음에 안 들고 노선을 달리 하면 자르는 데 별 절차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노조를 만드는 시도를 2년 전부터 한 것 같은데, 아직 대다수 대형 교회들에 노조가 없습니다. 고용된 사람들이 많은데도 말입니다.

-대형 교회도 그렇지만 최근 부산의 삼광사라는 대형 사찰에서 노조 탄압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비정규직 사찰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려다 사태가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매일노동뉴스>에서 알게 됐습니다. 결국 장사를 한다 하더라도 이렇게 장사를 해서는 무노조 삼성보다 더 못된 장사가 될 것 같아서 좀 문제가 있습니다.

-또, 예를 들어, 아무리 장사를 많이 한다 하더라도 기업체가 정치에 부당하게 압박을 주면 안 된다는 부분이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서, 지금 한국 노무현 정부가 미국과 FTA 투자 협정을 맺고자 하는데 실제로는 이 협정이 체결되면 가장 혜택을 볼 기업체가 어느 기업체인지 뻔하거든요. 삼성입니다. 삼성에서는 아마도 FTA가 맺어지기를 대단히 바라고 있겠지만, 만약에 삼성이 이를 위해 정치권에 상당히 노골적인 로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게 된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할 것입니다.



-그런데 대형 교회들이 성조기를 들고 나와서 미군을 찬양한다든가 'We Love America!'를 부른다면 이것도 결국엔 일종의 기업체의 정치적 압박의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대형 교회의 경우에는 미국과의 역사적 관계도 있고 이해관계도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많은데, 그렇다 하더라도 나라 전체의 정치를 한 집단 위주로 하려고 한다는 건 문제입니다.

 

 

 



-또, [그들이] 성조기를 들고 나올 때 드는 생각은, 미국의 정치인들이나 주류 지식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비유 중 하나, 즉 미국을 '새로운 로마제국'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그러니까 "'새로운 로마제국'처럼 미국이 전 세계를 다스리면서 사람들한테 라틴어 대신 영어를 가르쳐 주고 공동 문화를 만들어 주고 문명의 공간을 확보해 준다." 이것은 미 제국의 주류 지식인들이 제국을 옹호하는 입장의 골자 중 하나인데, 그러면 미 제국의 성조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결국에는 새로운 로마제국의 깃발을 들고 다니는 꼴이 되는데, 예수를 못 박아 죽인 것은 바로 로마제국이 아닙니까?(청중 웃음) 그러니까, 그런 역사적 관계까지 생각하면 이것은 상당히 기이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실제로는 로마제국에 못 박혀 죽은 예수를 숭배하는 것인지, 아니면 일종의 무한의 힘의 상징인 성조기를 숭배하는 것인지 좀 분간하기 어려운 지경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업체에 대해서 한 가지 문제 삼는 부분이 '탈세'인데, 종교단체 같은 경우엔 탈세도 아니고 '무세'입니다. 세금을 아예 안 냅니다(청중 웃음). 만약, 주요 종교단체들의 수익이 웬만한 중소기업보다 많다는 사실까지 감안한다면, 예컨대 대형 교회에서 세금을 내서 그 세금 전액이 무상 의료나 무상 교육의 실천에 쓰인다든가, 아니면 단순히 이런저런 방법으로 자선에 쓰인다든가 이런 조건을 내세워 세금을 낸다면 이것은 교리에 반대되는 부분이 전혀 없을 텐데, 어쨌든 탈세도 아닌 '무세'라니 이건 참 '상도덕'상 문제가 있지 않나 그런 생각도 있습니다(청중웃음).



-또, 제가 늘 한국 종교에 관해 문제 삼고자 하는 또 하나의 부분은 '상품 강매'입니다. 일반 회사가 그렇게 하면 당장 걸리겠지만, 예를 들어 종교 재단이 세운 학교에서 학생들한테 예배시키는 것은 결국 '상품 강매'와 다른 게 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인들이 신앙 시장에서 본인들의 상품을 열심히 마케팅하고 추진하는 것까진 좋은데, 본인들의 회사에서 운영하는 학교의 학생들한테까지 그 상품을 사게끔 강제한다면 이건 헌법상의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상도덕'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국이나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주류 종교를 얘기할 때, 이것은 단순히 기복 장사로만 얘기할 수 없는 성질의 훨씬 더 복합적인 현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를 들어, 외국의 한인 사회에 왜 하필이면 교회가 그렇게 많은가 물어보면 그것은 신앙이 강해서라기보다는 교회가 일종의 네트워크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다니지 않으면 미국의 한인 사회나 유럽의 한인 사회에서는 '왕따'를 당하게 돼 있습니다. 교회들이 일부러 왕따 시키지 않더라도 저절로 당하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바깥에서는 그것이 좀더 극명하게 나타날 뿐이지만, 한국 안에서도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교연, 즉 교회와 교맥을 통해서 맺어지는 것까지 포함하면, 한국에서 흔히 '관계 자본'이라고 말하는 3연, 즉 학연·혈연·지연말고도 '교연'을 분명히 더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교회나 사찰의 경우에는 또 한 가지 대단히 중요한 기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기존 사회나 기존 질서에 뭔가 신성한 듯한 외피를 덮어 주고 기존 질서를 합리화하는 데 신의 도움을 받는 그런 부분이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일반적인 한국 사람이 평생 살면서 진심으로 존경할 만한 공인(public figure)이 과연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아주 일찍 초·중·고등학교에서 국가주의적인 주입을 받아 국가를 대단한 숭배 대상으로 삼을 수 있지만, 국가를 존경하기가 좀 힘들어요.

-국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되는지 다들 체험적으로 알기 때문에 '추상적인 국가'를 숭배해도 '구체적인 국가'를 존경하기란 좀 힘듭니다. 존경하고 싶어도 곧잘 무슨 최연희 의원의 성파문이든 무슨 파문이든 (청중 웃음)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꼭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추상적으로 운동 경기에서 우리 팀이 꼭 이겨야 한다든가 태극기로 상징되는 추상적인 대한민국이 숭배 대상이 돼도 구체적인 대통령, 국회의원, 고급관료들이 존경 대상이 되기는 아무래도 조금 힘들어요.

-그런데 그런 것도 그렇지만, 예를 들어서 어떤 학교 의식이라든가 어떤 공적인 의식에 대통령을 모신다고 하면 아마 참석자들이 대단히 좋아할 것입니다. 근데 그것은 노무현 씨라는 한 개인이 좋아서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아직 대통령직에 추상적으로 권위를 부여하기 때문이죠. "대통령도 왔다!", 그러면 우리가 생각하는 위계 서열에서는 대단히 높은 사람이 온 것인데, 그렇다고 해서 아마도 노사모 빼고는 인격적으로 노무현 씨를 아주 진심으로 사모하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을 겁니다.(청중 웃음)

-그러니까, '추상적인 권위 인정'과 '구체적인 인격적 존경,' 이 두 가지는 조금 다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우리가 제도적으로도 존경하게끔 돼 있지만, 좀 신비한 옷을 입고 신비한 말씀을 하고 뭔가 신성한 듯한 아우라(청중 웃음), [즉] 후광을 갖고 나타날 추기경님이나 큰스님이다 하면 대다수 사람들이 제도적인 인정뿐만 아니라 인격적인 존경까지도 하게 돼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런 공인된 종교 지도자들이 이 체제가 나쁘다든가, 이 체제를 우리가 빨리 바꿔야 한다든가, 이 체제의 문제점이 무엇이라는 말씀을 잘 안 하시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청중 웃음), 사실 맞다고 할 수도 없고 틀리다고 할 수도 없는 말씀을 하도 잘하시기 때문에, 이 분들의 존재 자체는 체제를 상당 부분 합리화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높으신 스님이 <조선일보>나 <동아일보>나 <중앙일보>에 인터뷰하시고 법문다운 좋은 말씀을 하시는데, 그 말씀에는 별 문제가 없어도   어차피 그 말씀 상당 부분이 당나라 후기나 송나라 때 선사들의 책에서 다 베낀, 이미 역사적으로 검증된 말씀이라 별 문제는 없는데   주류 언론에다가 인터뷰한다는 것 자체는 대한민국 제도권의 권위를 높여주는 부분이 있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종교는 이 체제가 인간이 살 만하고 이 체제가 인간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체제라는 환상을 피지배자들한테 상당히 효과적으로 덮어씌우는 면이 있는 건데 이것은 굳이 한국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작년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돌아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사실, 요한 바오로 2세라는 사람이 여러 가지 주장을 했는데, 그 중 하나가 피임을 종교적 죄악으로 본 겁니다. 그것이 종교적으로 맞다 틀리다 하는 건 제가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서 뭐라 할 수는 없는데, 어쨌든 아프리카, 특히 남부 아프리카의 경우에는 에이즈가 지금 대단히 치성(熾盛)을 부리고 있어서 예컨대 잠비아나 나미비아의 경우에는 에이즈에 전염된 사람이 이미 15퍼센트에서 20퍼센트까지입니다. 이미 나라가 멸종으로 치닫고 있는 거죠.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보호 없는 섹스를 한다는 것은 목숨을 대단히 위협할 만한 부분이 있는 것이죠. 왜냐하면 성교시에 피임하지 않을 경우 곧잘 에이즈가 전염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교황의 말씀을 듣고 피임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에이즈에 걸려 죽은 사람이 과연 몇 만 명이 되는지 대단히 궁금할 따름입니다.

-낙태 수술에 대한 교황의 입장도 아주 단호하셨는데, 현실적으로 가난한 나라에서는 어차피 키울 수 없는 아이를 낳았다가는 결국 사회적 살인처럼 되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낙태를 절대적으로 반대하는 종교 입장을 따라서 많은 여인들이 결국 낙태하지 않고 아이를 낳았는데, 결국 그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고통으로 빠뜨렸는지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런데 요한 바오로 2세가 죽었을 적에 한국 언론들도 그렇지만 외국 언론에서도 그것을 언급하는 언론이 몇 군데밖에 안 됐고, 대다수는 요한 바오로를 거의 새로운 성인으로 모시고 그랬습니다. 요한 바오로에 대한 비판적인 언급을 여러 언론 중에서도 한두 군데밖에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종교 지도자의 권위는 세계 지배계급에게 그만큼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것은 굳이 한국만의 사정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러한 신성하다 싶은 지도자로 상징되는 종교가 원자화·개체화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결국 '여러분이 불행하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신앙생활이나 인격의 문제가 되는 것이고, 여러분의 불행은 여러분이 종교적인 생활을 하고 인격을 수양해서 언제든지 행복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결국 행복하지 않은 사회에서, 그리고 구조적으로 행복할 수 없는 사회에서 개인이 신과 종교라는 매개체를 통해 거래하면 일단 개인적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죠.

-그런데, 이 메시지는 이 종교를 창시한 사람들, 예수님이나 부처님하고는 별 관계가 없고 바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와 직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소비자이자 노동자들한테 모든 사회적 문제를 인격이나 수양 문제로 돌리기를 원하는 게 아마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핵심이 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교회는 기복 장사하는 기업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 기업체의 정체는 체제 전체를 합리화하고 공고화하고 아주 당연할 뿐만 아니라 거의 신성하다 싶은 것으로 만드는 기능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맑스가 종교에 대해서 한 말을 혹시 기억하십니까? "민중의 아편"이라는 말이 제일 유명해졌는데, 그 문장에서는 그 이야기뿐만 아니라 다른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짓밟힌 존재의 신음소리'라는 얘기죠. 그러니까 종교는 맑스가 보기에는 '짓밟힌 존재의 신음소리이자 민중을 위한 아편'이라고 이야기한 건데, 그런 면에서 맑스는 신음할 수밖에 없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종교를 찾게 돼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입니다. 맑스는 종교가 단순히 위에서 강요하는 '아편'이라기보다는 이 상황을, 행복할 수 없는 상황을 사람들이 바꾸지 않는 한은  결국 민중이 저절로 찾게 돼 있는 불가피한 것, 또는 일부분이나마 민중의 현실적 상황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특히 전근대 사회에서는 수많은 종교 이단들이 바로 민중의 반항 의지, 저항 의지를 대변했고, 말 그대로 민중의 신음소리를 담았다는 것이 맑스의 종교론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지금의 한국 현실을 중심으로 본다면 종교는 과연 '짓밟힌 존재의 신음 소리'에 더 가깝습니까, 아니면 '민중을 위한 아편'에 더 가깝습니까? 둘 다 종교의 기능을 묘사하는 얘기인데 저는 잘 모르겠지만 얼핏 보기에는 '짓밟힌 존재의 신음 소리'보다 그 신음 소리를 진통시켜 주고 침묵을 강요하고, 그래서 결국에는 상처가 아프지 않게 진통시키는 일종의 마취제에 더 가까운 것 같은 느낌입니다. 물론 아주 아플 때 마취제를 먹게 돼 있지만, 마취제·진통제를 먹는다고 해서 상처가 아물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당분간 아프지는 않겠지만 상처는 그래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무엇이냐면, 지금의 종교가 기존 체제를 옹립하고 합리화하고 체제로 인한 개인의 불행을 개인적인, 상당히 자기 기만적인 행복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종교들의 원래 모습이 과연 맞는가 하는 점입니다. 종교가 정말 민중을 위한 아편 정도라면 하필이면 기독교나 불교, 이슬람이 왜 그렇게 오래도록 존재해 왔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바보가 아니거든요. 기만이라면 상당히 빨리 깨우칠 수 있는 부분인데, 또 실제로는 신음하는 소리, 짓밟힌 사람이 신음하는 소리를 담지 않은 종교는 지금 봤을 때는 그렇게 오래 안 가요.

-예컨대, 최근에 만들어진 소위 신흥종교들 중에는 상당히 빨리 쇠퇴하는 종교들이 꽤 있는데, 통일교만 해도 1960∼70년대에 특히, 미국이나 일본에서 교세 확장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실제로 교세가 상당히 쇠미해졌습니다. 기존의 신자도 많이 탈락하고 새로운 신자 확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됐는데,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습니다만, 그 중 하나는 실제 통일교 교리에서는 이 "짓밟힌 사람의 신음소리"를 거의 들어볼 수 없다는 부분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문선명한테 카리스마가 있지만 문선명이 미국의 지도층·지배층하고 너무 가깝기 때문에 아무래도 "짓밟힌 사람의 신음소리" 듣기에는 조금 어려운 종교입니다.

-그러니까, 신흥종교를 봐도 알 수 있지만 대개 아픈 사람의 신음 소리를 담아 주지 않는 종교는 장수하지는 못합니다. 기독교나 불교, 이슬람이 이 때까지 장수해 온 비밀이 있다면, 그것이 만들어졌을 때 그 종교를 만든 사람들이 분명히 민중 편에 섰던 것이고, 민중의 그 신음 소리를 많이 담고 민중이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 쪽으로 나아가자고 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오랫동안 예수나 붓다, 무하마드의 카리스마를 이용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용하려면 일단 카리스마가 있어야 하는데 결국 붓다나 예수님, 무하마드에게 그 카리스마를 만들어 준 것이 아마도 종교 속에 담겨 있는, 그러니까 초기 불교나 초기 기독교, 초기 이슬람에 담겨 있는 상당히 강력한 평등 정신이나 저항 정신이 아닌가 싶습니다.

 

 

 

 

-불교에 대해서 저항 정신이란 말이 아마 지금의 불교를 보면 어울리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제도 불교는 저항과 전혀 어울리는 모습은 아닌데, 실제로 붓다라는 사람 - 원래 상류계급에 속했다가 진리를 찾겠다고 혼자 뛰쳐나와 6년 동안 고생해 결국 뭔가를 깨달았다는 그 붓다 - 은 그 깨달은 것이 공(空)과 연기(緣起)라는 진리였는데, 이 진리대로라면 당시 인도 계급 제도인 카스트 제도나 남녀차별이 사실 존재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 부처님이 실제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불경을 통해서는 읽어내기가 대단히 힘듭니다. 대다수 불경들이 붓다가 죽은 뒤 4∼5백 년 뒤에 만들어진 글들입니다. 거기에 붓다가 그렇게 말했다고 돼 있지만, 그건 사실과 전혀 관계 없습니다. 실제 붓다의 육성에 가장 가까운 초기 경전들 중에서도 붓다의 말씀을 거의 그대로 담았다고 믿어지는 것은 아마 <숫타니파타> 라든가 그 정도 경전 몇 개이고요, <니카야>, <아함경(阿含經)> 이라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초기 경전도 붓다가 죽은 지 훨씬 뒤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붓다가 실제로 무슨 얘기를 했는지 아마  숫타니파타 를 보면 대충 알 수가 있겠지만   윤색된 부분도 있고 가미된 부분도 있습니다만   붓다는 처음에 깨닫고 나서는 무엇보다 인간의 평등을 많이 얘기했습니다.

-진정한 바라문이 무엇이냐? 바라문은 인도의 성직자 계급입니다. 당시에는 계급 질서 맨 위에 있었다는 성직자 계급인데, 이 바라문에게 붓다가 얘기한 것은 사람 귀하다는 것이 결국에는 남에게 자비를 베풀고 탐욕을 내지 않는 것이고, 사람들 사이에 절대 차별을 두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동물들 사이에서는 '내 종이다, 내 종이 아니다. 동류다, 이류다' 이렇게 서로 차별할 수 있지만, 사람들은 모두 다 똑같다 이런 얘기를 한 것입니다. 붓다가 깨달은 이치는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공허하다. 그리고 우리의 존재는 여러 가지 요인들로 만들어지는 이유와 결과의 순환이다" 이런 것이었는데, 거기에서는 영구한 계급 차별이라는 부분이 개입될 수 없는 그런 가르침을 만든 것입니다.

-붓다는 만인 평등을 외치기도 하고, 동물 죽여서 제사 지내는 것을 반대하기도 하고, 남자와 여자가 원칙적으로 평등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죠. 또, 붓다의 생활 방식은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탁발 아니었습니까? 탁발이라 하면 동냥을 구하는 것인데, 실제 붓다가 탁발하면서 뭘 했었냐면 요즘 말로 아마 심리정신과의 상담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민중이 밥을 줄 때는 뭘 물어보지 않습니까? 붓다가 그 대답을 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생활 문제 풀어 주고 어떻게 바르게 살아야 하는지 얘기해 주고, 말하자면 상담을 해 주고 식량을 받는 그런 거래를 하는 것인데, 그것은 민중과 아주 가까운 생활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붓다는 기적을 절대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신통력이나 기적이라는 부분은 붓다에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아들을 부활시켜 달라고 애원하는 한 여자한테 붓다는 '그래요? 한 번 부활시켜 보겠습니다. 그런데 당신 마을에서 친척 중에 죽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 그런 사람을 한 번 찾아 주면 제가 당신 아들도 부활시켜 보겠습니다' 하고 말한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무슨 얘기냐면, 붓다의 원래 가르침은 신통력, 초자연적 힘, 신이라는 것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던 겁니다. 붓다는 대단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던 거죠. 민중한테 붓다는 존경받는 스승이었습니다.

-그런데 붓다에게 한 가지 좀 아쉬운 점은, 붓다는 일종의 초기 공산주의적인 공동체인 승가를 만들기 위해 국가 권력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해 자기 제자, 수행자들과 함께 숲 속에서 살기로 한 것인데요. 그것은 어찌 보면 민중과도 가까운 거리에서 사는 효과가 있기도 했고, 또 어찌 보면 그런 저항의 태도, 아주 소극적인 저항의 태도에는 문제점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들한테는 처자를 버리고 수행자가 된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붓다는 자기 부인 야쇼타라와 아들 라후라를 내버려두어도 그들을 먹여 살릴 만한 사람이 충분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처자를 버리고 수행자가 된다는 게 훨씬 더 부담이 큽니다. 그래서 붓다의 제자들 중에는 대개 수행 생활을 해도 되는 상당한 재력과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였고, 결국 그 사람들이 붓다가 죽자마자 붓다의 가르침을 자기 편한 대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붓다의 제자 중에는 노예 출신들도 있었는데, 붓다가 죽고 나서는 노비는 스님이 될 수 없다는 계율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니까 노비나 왕의 고용자한테는 스님이 되는 기회를 막아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붓다가 했는지 아니면 그 제자가 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아마도 초기 불교의 주류 승단에서 한 것 같은데, 처음부터 여성이 승려가 되는 데 대단히 까다로운 조건들이 있었습니다. 소위 '팔경법'[尼八敬戒]이라는 건데, 여덟 가지로 여승이 남자 승려를 공경해야 한다, 아무리 나이 어린 남자스님이라 하더라도 나이 많은 여자 스님이 먼저 꼭 절해야 한다든가 하는 법들이 만들어졌는데, 그것이 붓다에게 가탁(假託)돼 있지만 실제로는 그 제자들이 만든 것 아닌가 싶습니다.

-어쨌든 불교는 상당 부분 아주 초기부터 왜곡되기 시작했고 체제에 편입되기 시작했는데, 인도를 통일했다는 아쇼카왕 때는 불교가 왕의 국교가 돼서 거의 원래 정신을 이미 잃어버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중국이나 한국으로 유입된 불교는 이미 절대평등주의적이고 남녀평등주의적인 붓다의 가르침과는 거의 관계 없다 싶은, 이미 체제에 완전히 편입된 종교였습니다. 그런데 붓다라는 스승의 카리스마가 있었기에 후기의 승단, 후기의 승려들이 그것을 계속 이용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싶고, 바로 그런 붓다의 카리스마는 불교가 그래도 죽지 않고 계속 민중들한테 인기가 있는 비결이 아닌가 싶습니다.

 

 

 



-불교에 대한 묘사는 기독교에 대한 묘사와 놀랍게도 비슷합니다. 아마도 복음서를 읽으신 분은 다 아시겠지만, 특히 누가복음에는 계급투쟁적이라 할까요. 상류 계급에 대한 상당한 혐오감이 담겨 있습니다. '배부른 사람들이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니고 배고픈 사람들이 배부르게 되리라' 하고 돼 있고, '부자가 하늘나라 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도 어렵다'는 말은 체제에 편입된 사람이라면 도저히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도 그렇지만 그런 체제 반대적인 발언들이 가장 많은 책이 요한계시록입니다. 요한계시록 같은 경우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곧 올 것으로 기술을 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올 때 로마제국이 망할 것이고, 로마제국에 협력했던 부자들이 결국 벌을 받을 것으로 서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복음서들이 최종 편집되는 것은 180년대라고들 추정하고 있습니다. 180년대에 이미 기독교는 거의 체제에 편입된 종교였습니다. 그럼에도 이미 체제에 협력하고 있던 교단 지도자들이 '부자들이 복을 받을 수 없고 하나님 나라 갈 수 없다'는 예수의 진짜 말씀을 남겨 놓은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프롤레타리아로서의 예수의 카리스마가 그 사람들한테 필요했던 것입니다. 예수가 만약에 부자들이 하늘나라로 갈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과연 기독교가 이렇게 빠른 속도로 확산될 수 있었겠습니까? 이미 2세기의 기독교는 상당히 보수화됐는데, 그래도 예수의 원래 정신은 상징적으로라도 복음서에 담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던 것이고, 그런 예수의 정신이 있었기에 기독교는 지금까지도 수많은 짓밟힌 사람들한테 영감을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서의 편집 과정이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게 4복음서 - 마태·마가·누가·요한 복음 - 에는 재미있게도 노예의 존재나 노예제에 대해 아무 언급이 없는 겁니다. 예수가 살았다고 믿어지는 1세기 초반에는 노예제가 경제의 주춧돌이었습니다. 노예들이 대단히 많았고, 예수가 부자 보고 하늘나라 못 간다고 했다면 분명히 노예 문제에 대해 발언을 안 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복음서에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노예에 대한 얘기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하면, 사도 바울 그러니까 기독교 보수화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사도 바울이 나중에 '종들이여, 주인들에게 복종하라' 하고 말한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이 그대로 신약에 담겨져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결국 그 편집 과정에서는 말하자면 대중한테 어필할 수 있는 미끼 밥을 남겨 두기는 했는데, 상당 부분은 바울 사도와 그 제자들의 보수적인 이데올로기로 메워진 것 아닌가 싶은 것입니다.

 

 

 

 


-기독교도 그렇지만 또 아주 재미있는 예가 이슬람입니다. 이슬람을 창시한 무하마드라는 사람은 메카라는 상업 도시에서 '거지가 왜 이렇게 많은가. 왜 부자들은 이렇게 잘 살고 못사는 사람은 왜 이렇게 못사는가' 이런 불만이 출발점이 돼서 새로운 종교를 만든 사람이었습니다. 무하마드와 그 공동체가 메디나에서 망명중이었을 때, 당시에 예배할 수 있는 장소가 무하마드의 집뿐이었는데, 그 집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함께 예배를 봤습니다.

-그런데 무하마드가 죽고 나서 무하마드의 계승자 우마르가 거의 맨 먼저 개악을 한 것 중의 하나가 '남자와 여자는 예배를 따로 봐야 한다'는 법률을 정한 겁니다. 무하마드의 원래 육성을 담은 코란의 기록을 보면 여성의 권리를 상당 부분 주장했습니다. 이혼권이나 피임권리나 유산상속권이나, 여자와 남자는 원래 알라신에 의해서 평등한 존재로 만들어졌다는 등 여성 권리에 대한 주장들이 상당히 많은데, 나중의 이슬람 율법을 보면 이게 상당 부분 뒤집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슬람권의 페미니스트들을 보면, 상당 부분 서구의 페미니즘에서도 영감을 받지만, '무하마드의 진짜 정신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슬람을 페미니즘의 원천으로 생각하는 여성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슬람을 보든, 기독교를 보든, 불교를 보든 우리가 살고 있는 계급 사회에서 고등 종교의 스토리는 놀라울 만큼 비슷합니다. 제가 뭔가 사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입장에서 기존 종교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지는 게 좋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제 그것을 결론 삼아 끝내겠습니다.

 

 

 



-결국 지금 성직자 집단이 대표하는 기존의 제도권 종교를 그대로 인정하기는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 가르침은 그 종교를 만들었다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사실, 옛날에 한용운 스님이 <조선불교유신론>에서 "만약 붓다의 가르침이 맞다면 나도 붓다가 될 수 있는 존재인데 왜 사찰에 가서 불상 앞에 절해야 하는가. 나 자신에게 절해도 되는데" 하고 말했습니다. 또는 "명부전에 가서 부모님들이나 내 자신이 극락왕생하게 해 달라고 비는 것이 재판관한테 뇌물 주는 것하고 무엇이 다르냐. 결국에는 내가 죄가 없으면 왕생할 거고 죄가 있다면 아무리 빌어도 안 될 텐데, 뇌물 주듯이 비는 게 다 뭐냐" 하고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결국 만해 한용운의 정신을 살려서 우리가 기존 종교가 분명히 그 원래 정신과 다른 부분을 당연히 비판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대신 우리가 맑스주의자가 된다 하더라도 속류 맑시스트나 스탈린주의자들처럼 '종교, 그 정체는 무용지물이다. 마약이다' 하고 버리기보다는 그 종교를 만든 사람들의 진짜 의지가 무엇이었는지, 왜 그 사람들한테 그렇게 많은 민중이 모였는지, 왜 그 사람들이 지금도 민중한테 이렇게 귀중한 이름들인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지금 베네수엘라의 수많은 빈민들의 집에 딱 두 개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차베스 대통령이죠. 그러니까 양쪽을 상당히 가깝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하여튼 왜 하필이면 수많은 빈민들한테 예수는 지금도 이렇게 영감을 주는지, 우리가 진정한 맑시스트라면 스탈린주의 식으로 종교를 무조건 팽개치기보다는 종교를 비판함과 동시에 종교에 대한, 원래 종교의 모습에 대해 나름으로 애착을 가지는 것도 좋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사실 이 문제는 러시아의 볼셰비키들에게도 고전적인 문제였다. '건신론(God-building)'을 둘러싼 논쟁이 대표적이다. 고리키의 <어머니>나 <고백> 같은 작품에는 그런 문제의식이 많이 반영돼 있다. '오래된 미래'는 '종교-진보운동-사회주의'의 문제에도 예외가 아니다. 역사적 예수의 삶으로부터 진보운동의 영감을 얻고자 하는 김규항의 경우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06. 04.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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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6-04-22 13:56   좋아요 0 | URL
좀 길어서 일단 퍼갑니다. ^^;; 곧 읽고 답글 다시 달겠습니다. ~

로쟈 2006-04-23 02:22   좋아요 0 | URL
마이페이퍼 쓰기의 툴바가 말썽이어서 매번 작업이 지체되고 있는데, 벌써 퍼가셨군요.^^

와넬 2006-05-11 14:02   좋아요 0 | URL
잘 읽었습니다.

푸른하늘 2006-05-21 18:20   좋아요 0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감사...평소 한국 기독교에 대해 비판적 논지를 취하고 있었던 저에게 상당히 공감을 주는 글입니다..

로쟈 2006-05-21 18:39   좋아요 0 | URL
좋은 글이 아니라 '좋은 강연'입니다.^^

곰돌이 2006-07-13 10:04   좋아요 0 | URL
박노자 교수... 어떻게 이렇게 민감하고 어려운 주제를 이렇게 너무나 쉽게 잘 전달할 수 있는지... 그 능력에 혀를 내두룰 수 밖에 없네요... 정리 감사하구요 퍼갈게요.

파란마음 2009-02-03 16:28   좋아요 0 | URL
잘 읽었습니다~ 제 개인홈으로 퍼가도 될까요? 물론 출처는 밝히구요
 

최근일자 교수신문(06 04. 12)의 해외동향란에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의 전성시대에 관한 특파원 보고가 실렸길래 여기에 옮겨놓는다. 필자는 빌레펠트대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정광진 통신원이다. 루만은 흔히 20세기 후반의 독일 사회학을 하버마스와 양분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지만 국내에서의 번역/소개는 그 지명도에 걸맞지 않을 정도로 소략하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그의 주저들이 소개되기를 기대한다(개인적인 관심은 그의 예술체계론이다.)  

-바야흐로 ‘루만의 전성시대’다. 니클라스 루만(1928~1998)은 생전에 60여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서와 30여년에 걸쳐 쌓아올린 체계이론으로 하버마스와 함께 독일의 대표 사회이론가로 명성을 누렸지만, 체계이론에 기초한 사회학 연구는 타계후 더 화려하게 만개하고 있다.

-루만과 체계이론에 대한 반향을 최근 출간된 서적과 논문으로 살피면 크게 다섯 줄기로 볼 수 있다. 우선 루만의 유고출간이다. 10여권 정도 나왔는데, 최근 것으론 <교육학 논문집>(2004)과 강의녹취록인 <사회이론입문>(2005)이 있다. 둘째, 이론 소개서들이다. ‘체계이론 입문서 시장’이라 할 정도로 루만이론을 쉽게 소개하는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삽화와 도식을 곁들인 <쉽게 이해하는 루만>(2003)이 인기다. 셋째, 루만이론의 각론을 다른 학문·이론과 비교하는 것이다. 가령 루만의 정치이론에 관해 지난 3년간 발간된 연구서만 6권에 달한다. 넷째, 체계이론 자체를 발전시킨 연구들이다.

-루만은 ‘루만학파’를 만들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스스로를 한명의 체계이론가로 여겼던 것. 제자그룹이 있긴 하나 루만을 교조적으로 추종하지 않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체계이론을 심화·발전시키고 있다. 대표주자로 D. 배커, R. 슈티히베, P. 푹스, A. 나세히를 꼽을 수 있는데, 이들은 루만과 다른 접근법으로 혹은 그가 자세히 다루지 못했던 영역에 대한 연구서들을 꾸준히 펴내고 있다.

-끝으로, 구체적 사회학 연구에 체계이론을 적용시키는 경우다. 이에 해당하는 문헌은 워낙 다양한데, 특기할만한 점은 경험적 연구의 부재라는 체계이론에 대한 대표적 비판을 어느 정도 누그러뜨릴만한 연구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연구는 대부분 ‘조직’이나 ‘상호작용’을 분석단위로 삼고 해석학적 방법론을 사용한다. 루만은 사회에 대한 분명한 이론없이 데이터를 모으고 해석하는 경험적 사회학과 고전의 뼈다귀만을 갉아먹고 있는 이론사회학 모두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이에 필생의 과제를 사회에 대한 새로운 통합적 이론을 세우는 것으로 삼았다.

-루만과 후학들의 노력으로 체계이론은 어느때보다 정교해졌지만 경험적 연구와 친화성을 갖추는 일은 여전히 중요과제로 남아있다. 이를 해결 못한다면 루만의 전성시대는 체계이론가들만의 파티로 끝나고 말 것이다. 이밖에 체계이론가들은 독립된 논의의 지면도 확보하고 있는데, 체계이론적 사회 이론지를 표방하며 1995년 창간된 ‘Soziale Systeme’가 그것이다. 현재 편집장은 스위스 루체른 대학의 루돌프 슈티히베 교수가 맡고 있다. 인터넷 공간에도 체계이론에 대한 활발한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이같은 체계이론 전성시대의 도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거시 사회이론에 대한 회의적 분위기가 지배적인 이 시대에 사회학도들을 끌어당기는 루만의 매력은 무엇인가. 우선 체계이론이 ‘세계사회’에서 ‘조직’, ‘상호작용’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현상을 하나의 이론틀로 설명하려는 드문 ‘슈퍼이론’이기 때문이다. 사회학 연구전통에서 오랫동안 사회는 국가와 동일시됐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심화된 지구화는 이러한 사회학의 전제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이에 대한 사회학의 반응은 지구화를 하나의 현상으로 기술하거나, 조직, 네트워크 등 더 미시적인 차원에 시야를 고정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루만은 이미 1971년에 발표한 ‘세계사회’라는 논문에서 국가는 정치체계의 자기서술일 뿐이고 기능적으로 분화된 현대에는 유일한 하나의 ‘세계사회’가 있을 뿐이라는 테제를 제시했다. 그리고 기능적 분화, 지역적 분화, 사회, 조직 등 다양한 차원의 체계와 그들 간의 관계를 하나의 이론틀 안에서 연결시키려 한 것이다. 물론 이 모든 시도가 매끄럽게 진행된 건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도 야심찬 기획임엔 틀림없다.

-또 다른 이유로 체계이론의 개방성을 들 수 있다. 체계이론에서 사용하는 개념들은 기존 사회학도들에게 생소하고 난해하기로 악명높다. 하지만 일단 그 패러다임 속에 들어가 복잡한 개념들의 연결고리를 찾기만 하면 쉽게 자신만의 독창적인 해석을 덧붙일 수 있기도 하다. 체계이론은 루만에 의해 완성된 이론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인 사회에 대한 이론작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 이르기까지는 매우 괴로운 정독의 시기를 거쳐야만 한다. 또한 독일어를 모르면 깊이 이해하기 어렵다. 극히 일부만 번역됐기 때문.

-외국인의 경우 설령 독일어를 익혔더라도 루만이 전제하고 있는 철학적, 사회과학적 전통을 공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제대로 소화하려면 훨씬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제약 때문에 체계이론이 갖는 장점에도 불구, 비독일어권에서 루만의 전성시대가 도래하리라고 예측하기는 힘들다.(*그렇다면, 한국에서도 루만의 전성시대는 기대하기 어렵겠다.) 

-한국에서도 루만과 체계이론에 대해 소개된 내용은 빈약하기 그지없다. 최근 연구는 거의 소개되지 않았고, 루만의 저서 두 권과 한 권의 입문서가 번역됐을 따름이다. 하지만 예정대로 올 상반기에 루만의 주저로 꼽히는 <사회체계>(1984)가 박여성 제주대 교수의 번역으로 출간된다면, 그것이 루만에 대한 본격적 논의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가장 반가운 소식이면서 한편으론 두려운 소식이다. 그 방대한 분량을 고려한다면 책값은 얼마나?)  루만과 체계이론 소개를 또 다른 서구 이론의 ‘수입’으로 폄하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차피 문닫아 걸고 한국어로만 학문할 수는 없는 이상 말이다. 그 보다는 한국 학문 생태계의 건강 유지와 자생력을 키워나가기 위한 ‘이론 다양성’의 자원으로 이해하는 게 나을 것이다. 편식은 건강에 해롭지 않은가.

06. 0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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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나온 화제의 신간은 이진경(박태호 교수)의 <미-래의 맑수주의>(그린비, 2006)이다. 아직 구해서 읽어보진 않았지만, 맑스(주의)에 관한 책으로 가라타니 고진의 <트랜스크리틱>(한길사, 2005) 2부와 함께 듀엣으로 읽어볼 계획은 갖고 있다. 거기에 덧붙이자면, 니콜라스 쏘번의 <들뢰즈 맑스주의>(갈무리, 2005)를 꼽을 수 있겠다(네그리/하트의 <제국>까지 포함시키고자 하면 줄줄이 딸린 책들 때문에 또다른 한판의 방대한 책읽기가 되므로, 가급적 자제해야겠다). 해서, 예비적으로 <미-래의 맑스주의>에 대한 몇 개의 리뷰를 읽어보았다. 이 페이퍼는 그걸 정리한 것이다. 세 개의 서평인데, 각각 한겨레, 동아일보, 경향신문의 것이다.

(1)먼저, 한겨레의 리뷰(06. 04. 07)는 "마르크스 근대성 넘어 '이진경주의'로"로 제목을 달고 있다(*해서, 이 글 제목 '이진경주의'의 출처가 됐다). 내가 읽기에, 그 속사정은 (전통적) '맑스주의'와 이진경의 (과격한) 맑스주의를 분리시키기 위함이 아닌가 싶다. 해서, '미-래의 맑스주의'를 '이진경 맑스주의', 혹은 더 줄여서 '이진경주의'라고 불러주는 것. 서로 인상 구기지 않게 말이다. 그건 그냥 나의 '추측'이고, 다른 속사정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리뷰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이진경씨의 새 책이 나왔다. <미래의 맑스주의>(2006)다. 그의 이력은 그가 쓴 책으로 대표된다.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1986년), <철학과 굴뚝청소부>(1994), <맑스주의와 근대성>(1997년), <근대적 주거공간의 탄생>(2000), (노마디즘>(2002), <자본을 넘어선 자본>(2004년). 그는 쉼없이 생각하고 썼다.(*물론 저자는 거명된 책들보다 더 많은 책을 썼다. <철학과 굴뚝청소부>는 대학가 베스트셀러였고, <근대적 주거공간의 탄생>은 박사학위논문이며, <노마디즘>은 한국사회의 '메인스트림'으로부터도 호평을 얻으면서 '이진경'이란 운동권 브랜드가 '인문학 브랜드화'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책이다. 동시에 국내에 들뢰즈와 노마드/노마디즘 붐을 가져온.)

-<사회구성체론> 이후 꼭 20년만에 나온 <미래의 맑스주의>는 그 이력에 책 하나를 더하는 의미 이상이다. 책 제목에 마르크스주의라는 꼬리표를 달았지만, 실은 ‘이진경주의’를 본격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앞으로 그를 말할 때는 <사회구성체론>과 <미래의 맑스주의>를 언급하게 될 것이다. <사회구성체론>에서 그러했듯이, <미래의 맑스주의>에서 그는 사상가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즉, '사상가' 맑스나 맑스주의를 표방하지만, 실상은 이진경 자신의 이야기라는 함축이다). 이를 따라가며 읽어내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은 두 책의 또다른 공통점이다(*무슨 소리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90년대 이후 그의 화두는 근대의 패러다임에 오염된 마르크스주의를 재구성·재작동시키는 것이었다. 이 화두를 풀기 위해 10여년이 넘도록 사상의 초원 위를 유목하며 고독한(실은 난해한) 전투를 벌였다. 푸코, 들뢰즈, 가타리 등 서구 탈근대론자들의 문제설정과 씨름했다. 동양사상과 생명과학 등도 섭렵했다(*'10여년이 넘도록'이 아니라 '10여년도 안되어'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 <사회구성체론> 이후에 나온 모든 책들은 그런 편력의 특정한 대목을 반영하는 것이다. 책이 나올 때마다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 이진경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박수를 치건 돌을 던지건,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이 이 책에 담겨 있다. 그동안 몇몇 책에서 등장했던 독특한 사유와 개념들이 <미래의 맑스주의>를 통해 비로소 전체적인 얼개 속에 자리를 잡았다.

-우선 유물론을 물질개념에서 탈피시켰다. “물질이란 말로부터 유물론을 해방시키지 않고서는 유물론에 대한 적절한 정의에 이를 수 없다.” 그는 물질과 관념을 대비시키는 방식으로 유물론을 설명하려는 시도를 거부한다. 대신 “유물론이란 ‘외부’에 의한 사유”라고 말한다. 이에 비해 관념론은 “내부에 의해 스스로 완결되는 사유”다. 유물론은 “모든 것의 본질은 그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 의해 결정된다”는 철학이다.(*단순한 의문. '외부'에 관한 사유는 규정하기에 따라서 초월적 관념론을 모두 포괄하는 거 아닌가? 혹은, '철학의 외부'란 철학이 자신의 무능력한 대면하는 지점 아닌가? 철학의 외부에 대해서 (유물론)철학은 무엇을 사융할 수 있는가? 사유되는 외부도 여전히 '외부'인가?) 

-이어 마르크스주의 인식론의 한계도 넘나든다. 인간과 자연의 결합을 넘어 인간과 기계와 자연의 합일을 말한다. 그의 생태학 안에서는 “기계와 자연은 더이상 대립하지 않는”다. 예컨대 “자연으로 돌아가는 보존의 생태주의가 아니라 기계와 문명조차 거대한 자연의 일부임을 받아들이는” 게 그의 세계 인식의 틀이다.(*이미 '포스트-휴먼' 시대에 진입하고 있는지라 이러한 주장은 특별히 생소하거나 과격하지 않다. 물론 '생태주의자'들이라면 불편해 할 주장일 것도 같지만). 

- 마르크스 경제학의 핵심인 노동가치론도 전복시켰다. 기존의 노동가치론은 “노동이라는 상품을 생산하는 자만이 인간이라는 인간중심주의”의 함정에 빠져있다고 비판했다. “노동의 특권적 중심성을 제거해 노동과 비노동의 구별을 넘어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인간의 노동만이 가치를 생산한다는 명제는 과거의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과정의 기계화를 언급하면서 “이젠 ‘인간화된 기계’가 가치를 생산한다”고 말한다.(*인간과 기계의 결합에서 유추될 수 있는 자연스런 결론이다. 요컨대, 그는 전통적인 맑스주의적 휴머니즘에 반대한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그의 계급론이다. 프롤레타리아트와 노동계급을 구분했다. 그가 보기에 “프롤레타리아트는 노동자 계급이 아니다.” 프롤레타리아트란 “사회를 지배하는 척도에서 배제되거나 벗어난 자들”이다. 여기서 ‘프롤레타리아-되기’ 전략이 나온다. “자본주의 사회의 보편적 척도에 복속되는 길을 벗어나 이것과는 다른 삶의 방식, 다른 종류의 가치, 다른 종류의 세계를 창안하는 것”이 핵심이다. ‘프롤레타리아-되기’는 기존 지배질서를 거부하는 다양한 소수자들을 한데 모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이런 전략은 그가 주창해온 ‘코뮨주의’의 핵심이다.(*하면, 노동자계급은 이렇게 자문하도록 해야겠다. "내가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란 말인가?" 여성이라고 해서 자연스레 '여성'이 되는 게 아니며, '여성-되기'가 요청되듯이, 노동자라고 해서 자동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에 편입되는 건 아니라는 얘기겠다. 프롤레타리아트-되기가 필요한 것. 한편으로 생각하면, 노동계급은 부르주아도 아니고 프롤레타리아트도 아니다! )

-거칠게 보자면 그는 국가·노동계급·인간 중심주의를 거부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진경주의’는 확실히 ‘과거의 마르크스주의’와 상당히 다르다. <미래의 맑스주의>는 이진경이 몸담고 있는 연구집단 ‘수유+너머’가 주창한 코뮨주의적 실천에 대한 하나의 선언이거나 알리바이다. 그는 서문에서 “이 책의 불온함이 책을 읽는 분들의 또다른 불온함을 촉발하고 증식시키길 바란다”고 적었다.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적 함의를 오늘에 되살리려는 그의 깊은 모색의 끝에서, 그러나 여전히 남는 의문은 있다. 지금 이진경의 사유와 ‘수유+너머’의 실험을 불온하게 여기며 두려워 하는 이는 과연 누구인가?(*뭐가 불온하냐는 반문이겠다. 한편으론 자신의 '불온함'에 대한 과신도 불온함의 일종인 것일까? 문득 자신의 '야함'에 대해서 언제나 자신하는 마광수가 떠오른다.)   



(*)이어지는 건 기사의 보충설명인데, '이진경의 지적 이력'이라고 해서 군대 차트식으로 '화염병→감옥→사회주의 붕괴→‘수유+너머’'라고 정리하고 있다. 

-400여쪽의 책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맑스주의와 코뮨주의’라는 제목의 장이다. 20여쪽의 짧은 글에서 이진경은 자신의 지적 이력을 담담하게 돌아보고 있다. “돌맹이와 화염병, 매캐한 최루가스로 가득찬 전투의 바람, 혹은 아련한 꿈같은 혁명의 바람”이 스물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적었다. 1980년대에 대한 회상이다. 그러나 감옥에 있는 동안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했다. 고민에 빠졌다. “좀 더 나은 삶의 꿈을 포기할 수 없는 한, 맑스스주의는 쉽게 버릴 수 있는 하나의 이념이 아니었다. 동시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고집스런 지조로 그저 안고 가기만 하면 되는 그런 이념도 아니었다.”

-그는 기존의 사회주의 사회 역시 또다른 ‘근대 사회’에 불과했음을 깨달았다. 여기서부터 ‘근대성’에 대한 긴 모색이 시작됐다. 근대적 마르크스주의를 넘으려는 모색은 “맑스주의 외부에서 던져져야 했고, 맑스주의 안에 없는 것, 그 공백을 통해서 사유돼야 했다.” 푸코, 들뢰즈, 가타리, 네그리, 심지어 동양의 화엄학까지 끌어들였다. ‘수유+너머’ 연구실을 출범시킨 것도 이때문이다. 그는 여기서 “연구와 삶이 하나로 결합된, 근대적인 것과는 다른 삶의 방식을 창안하고 실험하며 새로운 종류의 습속과 무의식을 생산하는 ‘연구자들의 코뮨’”을 시도했다.(*그러니까 노동자 계급보다 혁명적인 것이 이 '연구자들'이겠다. 프롤레타리아트 후보 1순위. 한데, 노동자도 아니고 연구자도 아닌 이들, 즉 삶과 결합될 '연구'를 안 갖고 있는 이들은 어디에 포함되어야 하는지?)

-이진경은 이제 “기존의 맑스주의, 지배적 형태의 맑스주의를 다른 것으로 변형시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계급과 혁명에 대한 구도에 다른 이질적 요소들이 침투해 뒤섞이는 것, 이미 자본주의 사회의 또다른 주류 계급이 된 노동운동을 소수화의 전략을 통해 새롭게 혁명화하는 것”을 통해 이뤄진다고 믿는다.(*그러니까 이진경에게서 맑스주의는 '맑스의 정신'을 뜻하는 것이겠다. 맑스의 정신을 근대 맑스주의주로부터 분리/구출하고자 하는 것.) 

-그런 그가 ‘급진 혁명가’가 아니라 스테디셀러 작가로 인식되는 경향은 분명 불행한 일이다.(*자본의 외부에 대한 사유도 자본주의 안에서 유통되는 것이니까.) 20년전 봄에 나온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 서문에서 이진경은 “사상적 논쟁 과정이 주체의 형성과정”이라고 썼다. 코뮨주의의 주체를 형성하려는 그에겐 지금 논쟁할 상대가 없다. 어쩌면 논쟁하려는 사람들이 없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일수도 있다.(*아무도 대꾸를 안 해준다는 얘기인가?)

(2)이어서 동아일보의 리뷰(06. 04. 08)는 '마르크스 넘어서 코뮌주의'란 제목을 달고 있고, 따라서 방점은 맑스주의가 아닌 '코뮌주의'에 찍힌다.  

 

 

 



-<굿바이 프로이트>라는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한때 그를 믿었다가 버린 사람의 수로 쳤을 때 이 빈 출신의 의사(프로이트)를 능가하는 것은 마르크스밖에 없다.” 그렇다. 프로이트도 울고 갈 만큼 수많은 개종자를 양산했던 그 마르크스에 대한 개종을 거부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 1980년대 운동권의 대표적인 논객이었고 1990년대 탈(脫)근대사상 연구에 주력해 왔던 박태호 서울산업대 교수다. 필명 이진경으로 더 유명한 그는 한때 사회주의혁명을 꿈꾸다 감옥까지 다녀온 뒤 한동안 푸코와 들뢰즈의 사상에 푹 빠져 지냈다. 그러다 2004년 <자본을 넘어선 자본>을 발표하며 마르크스의 사상을 집단주의적이고 경제결정론적인 공산주의가 아닌 자유로운 개인의 공동체로서 코뮌주의로 재해석할 것을 주장하고 나섰다.(*요컨대, '코뮌주의자로서' 그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한국사회의 '주류'로부터 거부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 연장선상에 놓였다. 그가 주장하는 코뮌주의는 익숙한 마르크스 사상과 많이 다르다.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DNA로 꼽히는 변증법적 유물론, 노동가치설, 계급투쟁론, 자본주의 붕괴론을 전혀 다른 차원에서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는 마르크스의 유물론을 모든 것이 물질적 요소에 의해 좌우된다는 ‘경제주의’와는 다른 ‘외부에 의한 사유’라고 주장한다. 관념론이 모든 문제를 체계 내부의 인과관계에서 바라본다면 유물론은 이를 초월해 우리 삶을 규정하는 체계 외부 조건에 대한 통찰을 말한다는 것이다.(*마르크스 또한 자본주의를 '자본의 외부'와 관련지어 사고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체계의 예외성으로서의 '외부'란 체계의 구성적 조건이기도 하다는 상식 정도만 상기하기로 하자. 그의 '외부'는 어떤 외부인 것일까? '수유+너머'?)

-그는 노동가치설에 대해 기계나 화폐, 지대도 가치를 생산한다는 측면에서 인간중심주의적 노동가치설의 폐기를 주장한다. 또 프롤레타리아는 자본주의 계급질서 내 노동자계급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계가 포착할 수 없는 ‘비(非)계급’으로 바라볼 것을 주장한다. 그것은 다양한 비주류 소수자 그룹으로 재해석돼야 한다는 것이다. 코뮌주의는 바로 이런 소수자들이 자본주의라는 체계 외부의 공간을 마련하려는 모든 불온한 노력을 말한다는 것이다.(*'불온성'은 저자가 표나게 강조하는 바인 모양이다. 한데, '체계 외부의 공간'은 어디일까? '율도국'? 아니면, '존 말코비치'의 머리속?)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것이 과연 마르크스주의일까. 근대적 사상가였던 마르크스에게 온갖 탈근대적 사유를 주입한 뒤 이게 본래의 마르크스라고 주장하는 것은 한국 유생들이 중국 취푸(曲阜) 공자 생가에 걸려 있는 초상화가 공자를 안 닮았다고 버럭 화를 내는 것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고 했던 선불교의 기개가 못내 아쉽다.(*미래의 맑스주의, 아직 도래하지 않는 맑스주의가 제안하는 것은 한편으론 모든 과거에 실재해던 모든 '역사적' 맑스주의의 기각이다. "너네, 맑스주의 아냐, 딱지 다 반납해!" 한데, 그건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역사적 자본주의, 혹은 현실 자본주의의 모순은 '미래의 자본주의', 진정한 자본주의에 의해서 극복될 거라고.) 

(3)경향신문의 리뷰(06. 04. 09)는 "마르크시즘을 뒤집어 새 마르크시즘 만났다"란 제목이다. 여기서 '이진경주의'는 '새 마르크시즘'이란 표현을 얻었다. 가장 호의적인 게 아닌가 싶다(인터뷰라서 그런가?).

-사회학자 이진경씨(서울산업대 교수·43)가 ‘미-래의 맑스주의’(그린비)를 내놓았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해석서이지만, 책에는 ‘이것이 마르크시즘인가?’ 할 정도로 새로운 내용이 적지 않다. 이 책에서 이씨는 도시 부르주아지는 자본주의적인 계급이 아니라고 말한다. 노동자가 프롤레타리아트는 아니다라는 주장도 펼친다. 인간만이 가치를 생산한다는 마르크스의 주장에 대해서는 ‘기계적 포섭’ 개념을 통해 기계 또한 가치를 생산한다며 맞선다. 공산주의를 대신하는 ‘코뮨주의’라는 사회모델도 내놓았다. 독창적이다 못해 낯설고 도발적이다.

-그래서 책은 이씨의 독창적인 사회구성체론으로도 읽힌다. 이씨가 20대인 1987년 내놓았던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의 연장선인 셈이다(*나는 이 80년대의 '고전'을 읽지 않았다. 다들 사회과학 서적들을 읽을 때라서, 나는 딴 걸 읽었다). 한때 들뢰즈, 가타리, 푸코 등에 탐닉하며 ‘노마디즘’을 유행시킨 이씨를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만났다.

-마르크시즘으로 다시 돌아온 것인가.

“아니다. 대학시절 마르크스를 만난 이후 한번도 마르크스를 떠난 적이 없다. 사회주의 몰락 이후 마르크스보다는 푸코, 들뢰즈와 같은 비마르크스주의자들과 만났지만, 모두 마르크스를 제대로 알기 위한 것이었다. 이들의 연구를 통해 마르크스주의를 보다 잘 재구성할 수 있었다.”

-흔히 마르크시즘은 사적 유물론으로 알려져 있는데.

“유물론은 흔히 물질의 일차성을 인정한다거나 정신적인 것을 물질적인 것으로 환원하는 것을 말하지만, 나는 마르크스의 유물론을 ‘외부에 의한 사유’로 정의한다(*유물론에 대한 알튀세르의 정의는 탈목적론으서의 우연성에 대한 사고이다). 역사유물론에서 ‘역사’가 사물의 본질을 규정하는 조건들을 뜻한다고 볼 때 사적유물론은 역사 과학이라기보다는 외부를 통해 사유하는 방법이라고 정의하는 게 옳다. 스탈린주의자들처럼 사적유물론을 사회발전단계론으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그렇다면 마르크시즘의 핵심은 무엇인가.

외부에 의한 사고다. 사물은 정해진 것도 없고 본성도 관계 속에 달라진다. 사물은 조건에 비춰 사유하고 관계 속에서 해석하는 게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이다.(*'人'이 아닌 '人間'에 대해 사고했던 동아시아 사상, 혹은 불교의 연기론 사상이야 말로 '관계적 사유'라는 의미에서 유물론에 근접하는 것이겠다.) 외부에 의한 사고는 유물론을 물질이란 개념과 결별하도록까지 한다.”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계급 개념 등이 통설과 달라 혼란스럽다.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문제 등은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요구한다. 오늘날 프롤레타리아트 개념은 노동자 계급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비계급’으로 보아야 한다. 한국노총 등에서 보듯 노동자가 귀족화되는 속에서 노동운동은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문제 등과 연대를 가져야 한다. 현재의 노동운동만으로는 변혁의 힘을 가질 수 없다.”

-‘기계적 포섭’은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을 부정하는 것인가.

“가치나 가치 생산에 대한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 기계화·자동화도 가치를 생산한다. BT(생명공학) 산업도 잉여가치의 중요한 원천이 되고 있다. 정보화시대, 생명복제시대에는 인간과 기계, 생명체와 기계에 관해서도 기존과 다르게 사유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인간 중심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곤란하다.”(*물론 저자는 알튀세리언의 경력을 거쳤으며, 알튀세르적 맑스주의는 반휴머니즘을 표방했었다.)



-자신을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밝힌 이씨는 루카치, 그람시, 로자 룩셈부르크가 그랬듯이 마르크시즘은 역사 속에서 계속 재해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씨가 책 제목을 ‘미-래의’ 마르크스주의라고 붙인 것은 마르크시즘이 다가온 현재뿐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세상을 이해하는 데도 유용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에게 마르크시즘은 ‘새로운 것을 찾는’ 무엇이 아니라 ‘아직 사유되지 않은 것을 사유하는’ 사상이자 철학이다.(*그에게서 마르크시즘은 일종의 '메시아주의'인 것이다.)

06. 04. 12.

P.S. '이진경'의 이미지를 검색하다가 눈에 띈 글은 김규항의 '이진경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이다. 'B급 좌파'의 견해(04. 07. 10)도 참고삼아 들어보기로 한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이진경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이따금 받는다. 오늘은 이렇게 대답했다. 진리에 접근하는 방법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이진경의 방법은 지적 편력, 혹은 지적 허세다. 편력이든 허세든 그가 알아서 선택할 일이지만 그런 방법이 지나치게 많은 존중을 얻는 건 우스운 일이다. 그 배경엔 그가 80년대 PD 운동권의 주요한 이론가였다는 다소 엉뚱한(그러나 한국이라는 기지촌 지식 사회에선 지극히 당연한) 이유가 있다.

-이진경의 주 메뉴가 현실 변혁의 가능성을 차단당한 유럽 좌파들의 정신적 공황과 지적 허세(특히 프랑스의)의 결합에 의해 탄생한 탈근대 철학이라는 건 우연이 아니다. 탈근대철학은 90년대 이후 한국에서 이진경을 비롯한 80년대 우등생 좌파들의 정신적 공황과 포기할 수 없는 지적 허세에 안성맞춤이었다. 주류 사회에 편입되기엔 자의식이 강하고, 기약 없이 풍찬노숙하며 운동하기에도 너무나 유약한 그들에게 탈주, 횡단, 유목 같은 탈근대 철학의 개념들은 뇌까리는 건 모든 것을 실제로 청산하면서도 뭔가 진지한 탐색을 지속하는 듯한 외양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진경은 최근 <자본을 넘어선 자본>이라는 책을 ‘예약 이벤트’까지 벌이며 냈다. 그 책의 맑스주의적 가치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있지만, 그 점에 대해선 이미 맑스가 말한 바 있다. “철학자들은 세계를 해석해 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하는 것이다.”(*요컨대, '근대적 맑스주의자'로서 김규항은 '새로운 맑스주의'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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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shot 2006-04-13 12:24   좋아요 0 | URL
'존 말코비치의 머리속'...이게 왠지 핵심같아 보인다는...

pax 2006-04-13 12:26   좋아요 0 | URL
'불온성'은 저자가 표나게 강조하는 바인 모양이다. 한데, '체계 외부의 공간'은 어디일까? '율도국'? 아니면, '존 말코비치'의 머리속?<--이 부분 읽고 그만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확실히, 외부, 외부, 이야기하지만 저로서도 잘 감이 잡히지 않는 개념이더군요. 제가 상상력이 너무 부족한 건가요?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질렀습니다. 근데 읽기도 전에 이 글을 읽으니 최초의 열광이 많이 가라앉는 느낌이군요....;;; 뭐, 비난하는 건 아닙니다. 어쨌거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 글입니다^^

yoonta 2006-04-13 13:51   좋아요 0 | URL
왠지 한겨례의 "이진경주의"라는 표현때문에 좌파쪽 사람들한테 더 많이 까이는 것 같다는..-_- 위의 로쟈님 코멘트에서도 느끼는 거지만..저는 솔직히 이진경씨만한 분도 드물다는 생각입니다. 맑스주의적 좌파라는 것이 이론적 천착을 기본으로 깔고들어가는 것이라면 그만큼 그것에 충실한 사람이 없죠. 김규항씨처럼 이론을 등한시?하는 좌파가 이진경씨처럼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을 까대는것이 설득력이 없어보이는 것도 그가 불온한 좌파?라는 꼬리표를 스스로에게 달고 있기 때문이죠. 고민하지않고 공부하지않는 좌파가 공부하는 좌파를 깐다..-_- 물론 그것이 지적허세처럼 보일수도 있지만..구세대적 혁명이 불가능한 오늘날의 상황에서 맑스주의의 세례를 받은 지식인이 할수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공부하고 이론을 천착하는 것 그리고 미래의 변혁을 구상하고 준비하는것이 아니면 무엇일까요? 그런점에서 이진경은 다만 자신의 일에 충실했을 따름입니다.

그런점에서 저는 김규항씨의 별볼일없는 에쎄이집보다..이진경씨의 지적허세처럼보이는 그의 저작들이 백배는 더 불온해보이는군요..

참 아이러니컬한게 뭐냐면..구세대의 좌파에서 "코뮨주의"를 이야기했던 사람들은 공부하지않는? 바쿠닌같은 아나키스트였고 반대로 권위적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와 개량적 사민주의노선을 걸어온 사람들이 공부하는 맑스주의적 좌파였다면 요즘은 김규항씨같은 공부하지 않는 좌파들이 더욱 개량적?이어지고 공부하는 이진경씨같은 좌파들이 더욱 급진적인 아나키즘적 "코뮨주의"로 간다는 건데요. 요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_-

p.s. 그리고..프롤레타리아트-되기와 여자-되기는 다릅니다. 전자는 사회적으로 후천적으로 결정되는 성질을 가지는 반면 후자는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진경식 뭐뭐-되기가 필요하다는것은 너무도 당연한것 아닌가요? 노동자답지않은 노동자가 그런 노동자보다 더 많은 지금의 현실을 보면 말이죠..

노부후사 2006-04-13 13:44   좋아요 0 | URL
불온한 건 둘째치고 이진경씨는 어쩜 저리 느끼해 보일까요. 흡흡

프라즈나 2006-04-13 13:59   좋아요 0 | URL
저도 yoonta님 의견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맑스주의건 들뢰즈주의건 불교이건 뭐건간에 이론은 재해석되고 발전해야 하는
것이며 그로인해 철학적/사상적 발전은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이러한 노력을 두고 맑스의 말을 인용해서 비판하는 김규항씨가 오히려
'가볍고 교조주의적으로' 보입니다.

로쟈 2006-04-13 14:31   좋아요 0 | URL
다양한 의견들이시군요. yoonta님의 의견 가운데, "프롤레타리아트-되기와 여자-되기는 다릅니다. 전자는 사회적으로 후천적으로 결정되는 성질을 가지는 반면 후자는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죠." 하신 것에만 이견을 답니다. 여자도 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게 들뢰즈의 주장 아니었나요? 적어도 제가 읽은 콜브룩은 그렇게 이야기하고 그게 맞다고 봅니다. 여자-되기는 일종의 소수자-되기이기 때문에.

'B급 좌파'에 대한 비판은 그 자신이 'B급'이라고 접어두고 있기 때문에, 별로 효력이 없는 비판 같습니다(자신이 먼저 스스로를 까고 있는 형국이니까). 한편, 저로선 '좌파적 허세'가 불편하긴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 비판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마저 없다면, 그분들이 무엇으로 삶을 정당화할 수 있을지 아직은 염려스럽기 때문에...

yoonta 2006-04-13 15:42   좋아요 0 | URL
물론 여자도 여자-되기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죠. 제가 하고싶은 이야기는 들뢰즈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적어도 현실에서의 노동자들은 여자-되기를 해야하는 여자들보다 프롤레타리아-되기를 해야하는 노동자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일뿐입니다. 그것이 소수자-되기인지 뭔지는 차치해놓고라도 말이죠. 여자들은 그래도 여자들을 상대로 남자-되기를 시킨다고 쉽게 남자가 되지는 않죠..반면 노동자들은 파쇼-되기를 하면 쉽게 파쇼가 되는 그런 사회적 집단입니다. 그래서 이진경식의 프롤레타리아-되기라는 말도 유효할수있단 거죠.


그리고 이진경의 프롤레타리아-되기에 문제가 있으면 그것에 대해 빈정대기보다는 그것의 문제가 무엇인지..그리고 그것을 대체할만한 계급론 혹은 대안이 무엇인지를 말하면 되는 겁니다.

로쟈 2006-04-13 16:38   좋아요 0 | URL
'빈정대기'의 뉘앙스가 포함돼 있지만, 기본적으론 제 '의문'이자 '질문'입니다. '프롤레타리아-되기'에서 왜, 노동계급과 프롤레타리아 범주를 분리시키면서까지 '프롤레타리아'(란 기표)를 특권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유효성을 여전히 유지하기 위해서일까요?(프롤레타리아에의 충실성? 하지만, 그 역시 '미래의 프롤레레타리아'?) 이 역시 '빈정대기'로 비칠 수 있지만, 제 '의문'입니다. 책을 읽기 위한...

yoonta 2006-04-14 02:42   좋아요 0 | URL
제가 로쟈님 "질문"에 답할수있는 처지가 아니니 무어라 말하순 없네요. 프롤레타리아란 기표를 "특권화"하거나 맑시즘, 노마디즘, 탈주, 접속 등등의 기표를 특권화하고 또 그것을 소비하는 방식에 좀 문제가 있어보이긴 합니다. 아마도 맑시즘이라기보다는 아나키즘에 가까운 그의 "코뮨주의"를 굳이 "미-래의 맑스주의"라고 부르는 것과 프롤레타리아라는 기표를 특권화 시키는 것은 공통의 이유에서가 아닐까 싶어요. 맑시즘이라는 기표에 집착하는 그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답답해보인다는 생각이 드는데..80년대를 살았던 사람으로써 맑시즘이라는 기표를 그냥 내다버리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느끼나 봐요.

로쟈 2006-04-14 08:32   좋아요 0 | URL
그런 의미에서, 맑시즘이 종교적이라는 의미에서, 이진경주의 또한 매우 종교적이란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