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06. 07. 23)에서 학술동향 기사 하나를 옮겨온다. 타이틀은 '미국의 유교 연구현황'인데, 다소 생소한 테마인 만큼 얼마간의 호기심을 유발한다. 한 학술저널의 논문을 소개하고 있는 기사로 필자는 강성민 기자이다. '프래그머티즘과 유교의 대화'는 "프래그머티즘과 儒敎의 대화 … 토착화 멀지 않아"라는 부제에 들어 있는 것이다.

-‘동양철학연구’ 제46집에 실린 장원석 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 연구원의 ‘미국학계의 유교연구 현황’은 최근 5년간 미국에서 이뤄진 유교연구를 총괄해서 검토하고 유형별로 잘 정리해서 보여줌으로써 연구자들에게 매우 유용한 정보가 될 듯하다.

-장 연구원은 최근 미국의 유교연구를 ‘고전의 번역과 재인식’, ‘세계철학으로서의 유교연구’로 특징짓고 있다. 그는 “전근대문명의 파편을 확인하는 태도로 시작된” 영미권 유학 연구가 세대교체를 이루고 나이가 젊어지면서 진지해지고 깊어졌다고 말한다. 고전 다시읽기가 일종의 붐을 이루고 있는데, ‘주역’, ‘중용’, ‘맹자’, ‘논어’에 대한 번역과 연구서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여기서는 철저한 고고학적, 역사문헌적 지식을 근거로 기존 장들의 순서를 급진적으로 재구성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 과정에서 안이한 개념번역에 대한 비평도 이뤄진다. 로저 에임즈(Roger T. Ames)는 제수이트 선교사들로부터 시작해 제임스 레그(James Legge)에 의해 일단락된 1세대의 해석학적 선입견을 들춰낸다. 天을 단수형 Heaven으로 번역할 때 과연 얼마나 많은 서양인들이 그것이 조상과 문명의 축적을 의미하는 동양의 天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道를 습관적으로 Way로 번역하는 건 어떤가. 도라는 개념을 명사로 이해하는 이런 태도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의 속성’과 ‘행위의 양식’이라는 존재구분에 근거한 것 아닌가. 사실 道는 동명사적인 ‘길 만들기’로 읽거나, 주관적 느낌의 형용사로 읽어야 할 때가 많다는 게 에임즈의 지적이다. 이런 난숙해진 연구를 바탕으로 2003년과 2005년에 1천페이지가 넘는 유교백과사전이 연달아 나오고 있다(*우리에게 이런 사전이 있는가?). 미국에서 유교의 토착화가 이제 멀지 않았다는 징후일까(*우리의 유교 연구 현황은 어떻게 되나? 재작년에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 유교문화권 교육 연구단에서 몇 권의 연구논문집을 출간한 바는 있다).

 

 

 

 

-그 다음은 세계철학으로서의 유교의 부활이다. 이는 뚜 웨이밍 하버드대 교수가 제1의 물결(유교의 태동기), 제2의 물결(송, 원, 명, 청의 부흥기)에 이어 현대에 유교의 제3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하는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뚜웨이밍 교수는 국내에 가장 널리 알려진/소개된 철학자/연구자이다).

 

 

 

 

-이런 흐름과 관련하여 로버트 네빌(Robert C. Neville)의 ‘Boston Confucianism; portable Tradition in the Late-Modern World’(2000)는 미국에서의 유교연구가 ‘타자’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자기’에 대한 연구로 전환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우리는 그리스인이 아니면서 플라톤주의자가 되는 것에는 아무런 저항을 느끼지 않는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인이 아니면서 儒家가 되는 것은 어떤가”라고 그는 말한다. 네빌은 20세기 초의 유교 소외현상은 유럽대학 모델을 전세계로 이식하면서 유교를 커리큘럼에서 배제시킨 데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영국의 식민지 인도에서 인도철학 전통이 삭제됐다가 나중에 일부만 복원된 것이 그 예다.

-그래서 네빌의 핵심적 주장 중의 하나는 유교 경전을 미국 대학교육에서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 미국인들이 “인간들이 서로의 차이와 다름을 존중하는 사회적 관습을 형성하고, 개인이 커다란 가족적·공적 네트워크의 일부임을 인식하고 실천하는 데 유가의 철학이 큰 역할을 하리”라고 기대한다.

-이런 인식 속에서 미국 학자들은 유교전통의 풍부함을 강조하는데, 주로 프래그머티즘과의 비교를 통해서 이런 작업은 이뤄지고 있다. 미국에서 프래그머티즘을 대표하는 철학자인 존 스미스(John Smith)가 왕양명과 프래그머티즘을 비교한다든지, 프래그머티즘의 관점에서 왕양명의 인식론을 재정초하는 워렌 프리시나(Warren Frisina)의 ‘The Unity of Knowledge and Action’(2002)은 대표적인 저술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서양철학사 속에서도 비교적 새로운 흐름인 프래그머티즘이나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 정도만이 유일하게 동양철학에 접근할 수 있게 해주며, 이 둘을 같이 읽을 때 서양인들의 ‘과정적 사유’가 폭넓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책으로는 조셉 그랜지(Joseph Grange)의 ‘John Dewey, Confucius, and Global Philosophy’(2004)가 있고, ‘창조성’(Creativity)을 중심으로 주희와 그 후계자들의 개념을 분석한 존 버쓰롱(John H. Berthrong)의 ‘Concerning Creativity’도 이런 맥락에 서 있다.

-그 외에 유교를 통해 인권을 탐구하는 흐름이 있다. 스테판 에인절과, 콩 로이 순 등이 이끄는 이런 흐름은 중국철학과 인권의 주제를 현대 중국정치와 연결하여 천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중국철학’이란 잡지의 편집자인 Cheng Chung-ying은 현대의 해석학적 전통, 하이데거, 화이트헤드를 원용하면서 주역을 중심으로 하는 존재-해석학을 창출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주역의 ‘觀’ 괘를 창조적으로 발전시킨 그의 저작이 곧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또한 그는 모종삼의 칸트연구가 일면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칸트, 볼프, 라이프니츠의 계몽주의 철학전통이 실제적으로 주자학과 대화했고 그 영향이 어떻게 칸트 철학에 나타나고 있는지를 모종삼과는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화이트헤드의 주저 몇 권과 연구서를 나열해 본다).

 

 

 


 

-장 연구원은 이런 주요한 흐름들을 요령껏 요약해 보여주면서,  아시아에서 발원한 유교가 현대에 들어 서양 국가에 퍼져 나가면서 그들 문화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으며 동시에 유교가 어떻게 다양한 형태로 토착화되어 그들의 내적 욕구를 충족시켜주었는가를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06. 0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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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북리뷰에 김영민 교수의 '동무와 연인'이 새로 연재된다고 한다. 오늘 읽은 건 그 첫번째로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를 다루고 있다. 타이틀은 '통속을 거부한 '커플 실험''. 이 원조 '계약 커플'이 연재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건 지극히 상식적인데, 오랜만에 관련도서들에 대한 눈요기도 해볼 겸 옮겨놓도록 한다. 한동안 활동이 뜸하던 김영민 교수도 예전의 필력을 다시 찾아가는 듯하여 반갑기도 하고...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1908~1986)는 죽는 날까지 자신의 정체를 작가로 고집했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와 나란히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야말로 내가 원하는 생활이에요!”라고 말하곤 했다. (물론 이것은 ‘스타벅스’ 커피점의 2층 풍경이 아니다.) 글과 남자! 이 20세기 여성주의의 대모는 글과 남자의 사이에서 여자의 길을 선구적으로 뚫어냈다. 하지만, 정작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삶이었으며, 그 속에서 남자는 변치않는 고민거리였다.

 

 

 

 

-당대의 누구보다도 먼저 ‘동무’의 가치를 꿰뚫어본 이 비범한 여성도 사랑이 종종 삶의 더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조금 늦게 알아챈 것일까? 뚜렷한 주관을 갖고 행동함으로써 전통적 여성상에 맺힌 남성의 오해를 떨어내려던 보부아르였건만, (그녀가 비웃었던 미국여자들처럼) 사랑했던 남자를 만족시키려고 안달을 부리기도 했다.

 

 

 



-“사트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야말로 내게는 순수한 의식이며 자유 그 자체였어요!”라며 특유한 동무 관계를 자만했지만, 실상 그는 순수한 의식과 자유만이 아니라 왕성한 성욕 그 자체이기도 했다. 여성들은 그의 못난 외모와 명성 사이의 괴리에 매혹되기도 했고, 사르트르는 오직 오쟁이를 지울 목적으로 매력없는 유부녀들을 탐하기도 했다. 모국어를 사랑했던 사르트르가 건들지 않는 여성이라고는 외국여자들뿐이었는데, 아무튼 이들 동무/연인 사이의 기나긴 갈등에는 사르트르의 쉼없는 바람과 보부아르의 맞바람이 한 몫을 했다.

 

 

 

 

-사르트르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아무런 철학 없이 연애에 빠졌고, 보부아르는 나름의 연애철학(‘과거에 고착되거나 그것을 내팽개치지 말고 새 미래를 만드는 데 애쓰자’, 는 W. 제임스 식의 실용주의 준칙)을 제시하긴 했지만, 결국 그녀는 사르트르보다 적게 섹스하고 많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보부아르의 글 역시 가히 대가급이다. 그러나 사르트르와의 관계에서만은 오히려 삶(사람)을 내세웠고, 대신 글의 세계라면 사르트르에게 조금 양보했다. 사르트르의 길은 정반대였다. 그렇기에 사르트르에게 연인관계는 늘 부차적이었지만, 보부아르는 그럴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늘 일차적, 우선적인 사안도 아니라는 자가당착이 그녀의 문제였다.) 스스로 밝히곤 했듯이, 보부아르의 행복은 사르트르와의 ‘상호 이해’에 의해서 보장된 것이었다. 그리고 육체의 향락은 환영할 만했지만 세상을 향한 지식에 비해 애써 요구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최고의 소망은 “내 인생이 끝나는 날까지 ‘살고’ 싶은 것”(sola vita!)이었고, 사랑은 그 삶의 귀한 부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르트르에게 글쓰기보다 더한 삶은 없었다. 그는 아버지(초자아)가 없는 시공간을 글로 채우며 스스로를 창조해 나갔다. 여행 중에도 풍경보다 수첩을 들여다 보고 있었고, 자동차 본네트를 깔고 앉아 몇 시간씩 프랑스어 문장을 만드느라 동행들을 성가시게 했다. 그는 <말>(1964)에서 고백했듯 우선적으로 책과 글 속에서 세상을 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보부아르가 아는 여자의 생활은 ‘제2의 성’의 운명처럼 먼저 남자들의 세상 속에 내던져지고 부대끼는 게 우선이었다. (잘난 남자는 대개 추상적이지만 잘난 여자라도 현실적일 수밖에 없는 것. 이 괴리 속에서 연인의 길과 동무의 길은 희비극적으로 어긋난다.)

-보부아르는 “나는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불리하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강변하곤 했다. 그러나 여자라는 사실이 속박도 알리바이도 아닌 여자는 거의 없다는 객관적 사실 속에 이미 그녀의 운명은 깊이 얽혀들어 있었다. 깬 여성들에게 남성의 언어와 그 표상이 마치 맞지 않는 신발처럼 어색하다면, 보부아르가 <제2의 성>(1949)을 쓰게 된 것은 필연이었다. 익명의 개인(남성)을 주제로 그 개인의 의식과 자유를 분석하거나 계급 갈등에 개입하는 사르트르의 철학적 청사진만으로는 아직 여성의 세계를 다 그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의 계약결혼마저 전형적인 갈등의 요소를 피할 수는 없었다. 이 세기의 연인/동무들에게 인간은 새로 창조되어야 할 존재이며, 그들은 함께 미래의 인간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남녀를 얽어 옥죄는 낡은 타성은 고스란히 반복되었다. 과연, 사랑은 누구에게도 통속한 것일까? 그러나 이 통속을 막으려는 공동의 노력 속에 그들의 성취가 있었고, 그 성취 속에서 동무의 가능성은 빛난다.



-그 성취와 가능성은 ‘말’이었다. 마찬가지로 둘의 사귐에서 보부아르가 특별한 것은 그녀의 육체가 아니라 ‘귀’였다. 사르트르의 보부아르는 육체(연인)가 아니라 그녀의 귀(동무)였을 것이다. 물론 보부아르가 만난 사르트르도 ‘작고 못생긴데다 그나마 사팔뜨기인’ 그의 육체(연인)가 아니라 그의 입(동무)이었던 것은 재론할 것도 없다. 사르트르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죄다 털어놓을 수 있는 지적 반려자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남자인데, 관계의 요체는 바로 여기, ‘지적 반려자’에 있었다.



-보부아르가 두려워한 여자는 육체로 승부하는 바비 인형들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적 반려자의 자리였고, 사르트르의 주변에 그 싹이 돋을라치면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연인 넬슨 올그렌(N. Algren)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다면서도, “어떤 경우에도 사르트르와의 우정만은 결코 포기할 수 없어요”라고 단언했다. 사르트르처럼 편집병적이진 않았지만, 그녀의 삶에서도 말과 글은 뺄 수 없는 부분이었다. 보부아르에게 죽음이란 (바흐친과 비슷하게) ‘다시는 내게 말을 걸지 않는 것’이었다.

-사르트르의 죽음을 놓고 그녀가 가장 슬퍼한 것은 물론 ‘그의 말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말년의 보부아르가 그들 사이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결산하면서 요약한 부분도 ‘말’이었다. “사르트르와 나 사이에는 늘 말이 있었어요.”(*그리고 그들은 같이 묻혔다.)

06. 07. 21.

P.S. 1970년대 중반부터인가 사르트르가 거의 실명한 상태에서 보부아르는 차분하게 그의 '남편'과의 이별을 준비해나간다. 그 기록이 <작별의 예식>(두레, 1982)이다. 아주 오래전 지방도시의 시립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던 책인데, 요즘은 구할 수가 없다. 그/그녀의 독자들에겐 아쉬운 일이다. 작고한 평론가 김현이 이 책에서 인용한 문장은 사르트르의 장례식을 맞은 보부아르의 슬픔을 토로한 것인데, 이런 내용이다. "그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았다. 하지만 언젠가 나의 죽음이 우리를 다시 합치놓지 못할 것이다."(예전에는 불어로도 읊고 다녔는데, 요즘은 기억 감퇴다.) 영생을 믿지 않았던 커플이었던 만큼 그들의 '차가운' 해후는 무덤을 찾는 이들의 상상 속에서만 이루어졌을 법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 또한 적당히 눈물겨운, 인간의 삶이고 운명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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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루시초프에 관한 자료들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지난 1월에 러시아어 등의 외국어 표기법에 개정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난 월드컵 때 선수들의 인명 표기에 상당한 변화/혼란이 빚어졌던 게 우연이 아니었던 것. 뒷북치는 셈이 됐지만, 여하튼 이런저런 개정 내용이 불만스럽다. 개정내용을 소개하는 한겨레의 기사와 문제점을 지적하는 스포츠칸의 기사를 옮겨온다. 스포츠칸의 엄민용 기자는 기자협회보에 '엉터리 국어정책 유감'이라고 그래도 답답한 마음을 좀 풀어주는 기사를 실었는데, 그걸로 페이퍼의 제목을 삼는다. 마지막엔 축구선수들의 표기 문제를 사례로 짚어본다. 중앙엔터테인먼트&스포츠의 기사이다.    

 

 

 

 

한겨레(06. 01. 08) 포르투갈어 등 3개언어 새 표기법 마련

-국립국어원은 5일 포르투갈, 네덜란드, 러시아 등 세 언어의 새로운 표기법을 고시했다. 이 표기법은 현지 언어의 발음에 가깝게 표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 △포르투갈어에서 r를 ‘ㄹ’과 ‘ㅎ’으로 구분하여 적고 브라질 지명·지명은 포르투갈어와 다른 브라질의 발음 특성을 반영하고 △네덜란드어의 g는 ‘ㅎ’으로 적고, v는 ‘ㅍ’과 ‘ㅂ’으로 나누어 적으며 △러시아어 p, t, k, b, d, g, f, v가 무성 자음 앞에 올 때는 받침으로 적고 sh와 shch는 ‘시’로 적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포르투갈의 인명 Ronaldo는 ‘호나우두’, Rivaldo는 ‘히바우두’로 적어야 한다. Jorge는 포르투갈 사람이면 ‘조르즈’로, 브라질 사람이면 ‘조르지’로 적어야 한다. 이과수폭포(브)는 이구아수, 리우그란데(브)는 히우그란지, 바스코 다가마(포)는 바스쿠 다가마 등으로 바뀐다. 네덜란드어의 경우 에인트호벤은 에인트호번, 에라스무스는 에라스뮈스, 호이징가는 하위징아, 스키폴 공항은 스히폴 공항으로 써야 한다.

-러시아의 차이코프스키는 차이콥스키, 고골리는 고골, 하바로프스크는 하바롭스크, 흐루시초프는 흐루쇼프, 푸슈킨은 푸시킨, 루빈슈타인은 루빈시테인으로 각각 바뀐다. 그러나 리우데자네이루, 아드보카트, 하멜, 보드카, 프라우다 등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 표기를 그대로 인정키로 했다(*흐루시초프나 푸슈킨이 아드보카트보다 지명도가 떨어진다는 말인가? '하위징아'는 또 뭔가? '하위징아'로 무얼 검색하란 말인가?).

-이번 표기법 고시는 1986년에 제정한 현행 표기법이 이들 언어에 대해 자세한 표기 규칙을 두지 않아 현지 발음과 동떨어지거나 체계적이지 못하여 언어생활에 혼란을 빚어 온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러시아어 등에 써오던 표기와 달라지는 것이 많아 상당한 혼란이 예상되며 정착되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달라진 표기법이 '현지 발음', 특히 '러시아어 발음'에 더 부합하는 것도 아니다. 왜 이런 억지를 강요하는 것인가? 원칙도, 철학도, 실리도 없는).

-한편, 국립국어원은 올해 안에 그리스어, 아랍어, 터키어 등 3개 국어에 대한 표기법을 고시할 예정이라고 밝히고 이로써 24개 외국어에 대한 표기법이 완성된다고 말했다(*이런 식이라면 그들만의 표기법이겠다. 국립국어원에서 할 수 있는 더 유익한 일들이 있지 않을까?). 그러나 몽골, 아프리카어에 대한 표기법은 특별한 불편과 수요가 없어 따로 두지 않기로 했다.(임종업 기자)

 

 

 

 

스포츠칸(06. 01. 10) 새 외래어표기법 ‘희한하네’

-국립국어원이 지난달 28일 포르투갈·네덜란드·러시아어 등 세 언어의 새로운 표기법을 지정·고시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음, 그러니까 작년말이었다는 얘기군). 국립국어원은 지난 5일 “1986년에 제정한 현행 표기법이 이들 언어에 대해 자세한 표기규칙을 두지 않아 현지 발음과 동떨어지거나 체계적이지 못해 언어생활에 혼란을 빚어왔다”며 “더 이상의 혼란을 막기 위해 새 표기법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금까지 써오던 표기와 달라지는 것이 많아 상당한 혼란이 예상된다. 더욱이 규칙 자체에 문제점을 드러내 정착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새 표기법에 따르면 ‘거스 히딩크' 전 축구국가대표 감독이 ‘휘스 히딩크’로 바뀌는 것을 비롯해 차이코프스키는 차이콥스키, 고골리는 고골, 하바로프스크는 하바롭스크, 흐루시초프는 흐루쇼프, 루빈슈타인은 루빈시테인으로 써야 한다(*'고골리'는 이미 '고골'로 쓰고 있다. 한데, '흐루시초프'를 굳이 '흐루쇼프'로 바꿔 표기해야 할까? 이 안에 따르면 러시아어의 'sh'와 'shch'의 음성표기가 동일하게 된다. 비슷한 소리이지만 동일한 소리는 아니며 영어 표기에서는 앞에서처럼 구별해준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은 수백억원의 국가예산을 들여 교과서를 바꾸고 민간 출판사들도 온갖 책들을 다시 찍어야 하는 일을 벌이면서도 공청회 등 의견수렴을 거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언론외래어공동심의위원회의 의견을 받아들여 ‘하멜’ ‘리우데자네이루’ ‘아드보카트’ 등 6가지를 ‘관용’ 표기토록 했을 뿐이다(*아드보카트가 언제 한국에 다시 올는지 모를 일임에도 '관용'으로, 국내에 많은 책들이 소개돼 있는 흐루시초프나 푸슈킨 등이 '관용'에서 예외로 처리된 건 놀라운 일이다. 그들만의 행정으로 봐주어야 하는 일일까?) .

-하지만 이마저 언론을 의식한 ‘면피용’으로 비친다. 최근 언론에 부쩍 많이 나오는 축구국가대표 감독 ‘아드보카트’에 대해 “원래는 ‘앗보가트’가 맞지만 관용 처리한다”고 하면서, 더 많은 국민이 알고 있을 흐루시초프 등은 관용표기를 허용하지 않았다. 특히 이 관용표기는 ‘아드보카트의 아들 앗보카트가…’ ‘하멜표류기를 쓴 하멜의 자손인 하멀은…’ 따위로 써야 하는 모순을 안고 있다. 지난달 28일 고시하고도 그 사실을 1주일 넘게 알리지 않은 이유도 의문이다. 이와 관련, 국어연구원의 관계자는 “현실적 쓰임과 지나치게 괴리하는 말은 토의를 거쳐 관용표기를 허용할 방침”이라고 말했다.(엄민용 기자)

기자협회보(06. 01. 18) 엉터리 국어정책 유감

-국립국어원은 지난달 28일 포르투갈·네덜란드·러시아어 등 세 언어의 새로운 표기법을 지정·고시했다. 그리고 지난 5일 이 같은 사실을 뒤늦게 언론에 알리면서 “1986년에 제정한 현행 외래어표기법이 이들 언어에 대해 자세한 표기규칙을 두지 않아 현지 발음과 동떨어지거나 체계적이지 못해 언어생활에 혼란을 빚어왔다”며 “더 이상의 혼란을 막기 위해 새 표기법을 마련했다”고 밝혔다(*더 이상의 혼란을 막은 게 아니라 그 이상의 혼란을 더 보탰다!).

-그러나 오히려 새 표기법 때문에 국민의 국어생활이 혼란스러워지지 않을까 염려된다(*내 말이 그 말이다. 이런 문제제기가 스포츠신문의 기자 한 사람에게서만 나왔다는 것도 신기한 노릇이다). 새 표기법에 따르면 그동안 온 국민이 ‘거스 히딩크’라 부르던 전 축구국가대표 감독은 ‘휘스 히딩크’로 바뀐다. 또 차이코프스키는 차이콥스키, 고골리는 고골, 하바로프스크는 하바롭스크, 흐루시초프는 흐루쇼프, 루빈슈타인은 루빈시테인으로 써야 한다. 그뿐 아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만든 ‘관용 표기’인지 모르겠지만, ‘아드보카트의 아들 앗보카트가 한국에 왔다’거나 ‘하멜의 자손인 하멀은…’ 따위로 써야 한단다(*엄기자가 잘 꼬집고 있다).

-국립국어원은 이처럼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들 일을 벌이면서 국민의 얘기는 한마디도 듣지 않았다. 공청회는 고사하고, 신문사에서 매일 외래어표기법과 씨름하는 교열기자들에게도 일언반구가 없었다. 수백억원의 국가예산을 들여 교과서를 다시 찍어야 하고, 민간 출판사들도 제 돈을 들여 온갖 책을 다시 찍어야 하는 상황을 국립국어원은 아주 비밀스레 만들었다. 그 이유가 뭘까? 국립국어원의 한 관계자는 “표기법을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할일인데, 그 일을 하면서 일일이 알릴 필요가 있느냐”고 말했다(*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당신들이 한 일을 일일이 공표하지도 말라는 것이다. 내부용으로만 돌려보면 될 거 아닌가?).

-무서운 말이다. 슬픈 얘기다. 그 관계자의 말이 국립국어원 전체의 생각을 대변한 것이라면 이미 우리의 국어는 죽은 송장이다. 말과 글의 주인은 국민, 즉 언중이다. 일부 학자들이 마음대로 이래라저래라 할 것이 못된다. 한글맞춤법이 어찌되어 있든, 표준어규정이 어떻게 정하고 있든, 많은 언중이 자주 쓰면 그 말이 표준어가 되는 게 상식이다. 외래어도 마찬가지다. 미국인이 어떻게 소리내든, 아프리카 원주민이 뭐라 발음하든, 그런 말이 우리 국민이 똑같이 쓰는 말을 못 쓰게 만들 수는 없다. 세상에 ‘그런 벱’은 없다(*이 정도의 상식도 통하지 않는다는 게 거듭 유감스럽다).

-국립국어원은 ‘나라의 적기가 외국의 소리와 달라 어린 백성이 혼란을 겪는 것이 안쓰러워’ 새 표기법을 만들었다고 했다(*그 취지가 심히 한심해서 말도 안 나온다). 그 말이 맞는다면 ‘라디오’ ‘컴퓨터’ ‘밀크’ 따위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나라의 이름은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외국 어디도 우리를 대한민국이라 불러주지 않는다. ‘KOREA’라 쓰고 ‘코리아’라고 소리내는 영문도 지들 마음대로 ‘COREE’라 적고 ‘꼬레’쯤으로 소리낸다. 그것이 외래어표기다.

-외래어 표기는 외국인들에게 ‘우리가 당신네 말을 당신네 소리대로 잘 적어주고 있지요’라고 자랑하려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의 국어생활에 통일을 기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이 정도의 상식도 모른다면, 국립국어원의 명칭을 국립외국어원으로 바꾸는 게 차라리 낫겠다). 따라서 한번 정해진 것은 쉬 바꾸는 것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툭하면 바뀌는 외래어 표기는 정말 문제다.

 

 



-더욱이 이번 새 표기법은 국립국어원이 수년 전 1백억원이 넘는 돈을 들여 만든 <표준국어대사전>마저 쓰레기로 만들었다. 그 사전은 이제 버려야 한다. 아직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새 표기법과 다른 말이 수천자는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새 표기법은 이미 지정·고시됐다. 이제 와서 왈가왈부한다고 해서 만든 표기법을 버릴 수도 없다(*대신에 무시하는 도리밖에 없겠다). 하지만 이같은 일이 반복돼서는 안된다. 국립국어원이 몇몇 학자들 중심으로 표기법을 만들고 국민들은 무조건 따르라는 식으로 해서는 안된다(*러시아어 표기만 하더라도 전공자들마다 의견이 다 제각각이다. 전문가의 자문이랍시구 한두 사람의 의견을 수렴해서 국민 모두에게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국립국어원이 언중 위에 군림하면 국어가 죽는다.

JES(06. 07. 06) 호나우두 혹은 호날두

-이번 월드컵을 보다 보면 생각나는 록 밴드가 있다. 바로 너바나다. 1990년대의 록을 이야기할 때의 너바나를 빼놓는다면 깍두기 없이 설렁탕과 다름없다. 그러나 한국을 대표하는 DJ 배철수씨는 너바나라는 그룹을 모른다. 그에게 이 밴드를 물으면. “아. 니르바나(Nirvana)?”하고 되묻는다. 불교 용어로 열반(涅槃)을 뜻하는 니르바나는 천년 전부터 한국인들이 쓰던 단어인데 한 미국 밴드가 그 단어를 이름으로 썼다고 해서 새삼 다른 식으로 읽을 이유가 있느냐는 주장이다. 말하자면 ‘마다나’를 ‘마돈나’라고 쓰는 것과 같은 이치다. 늘 바뀌는 외국 인명ㆍ지명의 한글 표기에 경종을 울리는 주장이다.

-한글 외래어 표기는 언론인들의 영원한 숙제다. 현행 기준 중 가장 중요한 원칙은 ‘현지인이 발음하는 대로 적는다’는 것이다(*가장 웃기는 원칙이다. 우리끼리 쓰면서 '현지음' 흉내를 왜 내는가? 입에 침이 마르는군. "워러 플리즈!"). 물론 중요하다. 똑같이 써도 프랑스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가 미국으로 건너가면 청바지 상표인 리바이-스트라우스로 변하고. 역시 알파벳만 보면 미국 조지아 주와 구 소련 지역의 그루지야 공화국이 혼동되기도 한다(*실제로 '그루지야'를 '조지아'라고 표기하는 사례가 종종 나온다).

-하지만 대회때마다 바뀌는 축구 선수의 권장 표기 명칭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지난 98년 미국월드컵에 등장한 호나우두 이후로는 포르투갈어의 R을 ‘ㅎ’으로. L을 ‘이우’로 읽는 관행이 정착됐지만 이번 월드컵에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복병으로 등장했다. 외모와 실력을 겸비해 국내에도 익히 알려진 이 선수는 호나우두에서 하루 아침에 호날두로 개명을 당했다.

-이유가 가관이다. 같은 포르투갈어지만 L이 이우로 발음되는 것은 브라질 식의 발음이고. 포르투갈 본국에서는 그냥 ‘ㄹ’로 발음된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그리고 물론 한심하다). 국립국어원에서 언제쯤 호나우두의 조국은 브라질이 아닌 ‘브라지우’라고 표기해야 한다는 공문이 나올지 궁금할 뿐이다.

-한국에서 ‘반니’라는 애칭으로 불린지 오래인 반 니스텔루이 역시 하루 아침에 판 니스텔로이가 됐다. 글쎄. 어련히 알아서 정했겠지만 지난해 내한했던 PSV 에인트호벤(이것도 국립국어원이 정한 권장 표기다) 관계자가 “우리 팀의 이름은 아인트호벤인데 왜 한국에서는 에인트호벤이라고 쓰는지 모르겠다”는 걸 보면 정말 현지 발음에 더 가깝기는 한 건지 좀 의심스럽기도 하다.

-현지 발음에 가까운 것도 좋지만 일단 정착된 표기는 최대한 존중하고. 혼란을 최소화하는 것이 한글 표기법의 사명이 아닐까(*공무원은 때로 복지부동하는 것이 차라리 국민에게 유익하다). 지금까지는 사실 강 건너 불이지만. 이런 과잉 교정의 열풍이 언제 연예계로 밀어닥칠까 불안하기만 하다. 영국 출신인 비틀즈 멤버 존 레논과 미국을 대표하던 배우인 잔 웨인이 ‘파리’ 아닌 ‘빠히’에서 만났다고 기사를 쓰게 되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송원섭 기자)

06. 0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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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6-07-21 08:30   좋아요 0 | URL
정말 스펙타클하네요

프레이야 2006-07-21 09:53   좋아요 0 | URL
담아갑니다.. 좋은 정보 감사해요.

로쟈 2006-07-21 10:20   좋아요 0 | URL
네, 가관이죠. 오탈자를 약간 수정했습니다...
 

휴일인지라 월요일이란 느낌을 가질 수가 없는데, 밀린 일들이야 어찌됐던 그런 휴일을 좀 느끼게 해주는 칼럼이 있어서 옮겨온다. 이미 한국문학사 속에 편입된 소설가 김연수가 오늘자 한겨레에 기고한 것이다. 몇 가지 이미지를 보충해놓는다.    

한겨레(06. 07. 17) 칠순 소피아 로렌의 누드사진보다 세월 녹아든 오드리 헵번이 아름답다

-거리의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24쪽 분량의 단편소설이 있다. 그게 무슨 내용인지 짐작하려면 ‘구르는 돌처럼’(Like a Rolling Stone)이란 노래를 들어봐야 한다. 그 노래를 지은 밥 딜런이 자기가 쓴 소설에서 가사를 따왔다니까. 살아오면서 여러 차례 이 노래를 들었지만, 가장 인상적으로 들은 것은 1993년 동숭아트홀에서 영화 <백 비트>를 볼 때였다. 비틀스의 초기 역사를 다룬 영화인데, 독일 함부르크를 향해 떠나는 배 안에서 고작 스무 살 안팎이었던 비틀스 멤버들이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나도 한번 구르는 돌처럼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물씬 들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구르는 돌처럼’이 입구에서 삶을 바라보는 젊은이의 노래라면 비틀스의 ‘나 살아가는 동안’(In My Life)은 뒤돌아보면서 부르는 노래다. 당시 <백 비트>의 영화 팸플릿에는 주인공인 스튜어트 셔트클리프를 추억하기 위해 존 레넌이 만든 노래라고 적혀 있었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비틀스의 초기 멤버였던 스튜어트는 함부르크에서 만난 사진작가 아스트리드와 격렬한 사랑을 나누다가 21살의 나이로 숨진다. 이런 저간의 사정을 감안해서 “어떤 사람들은 죽었고, 어떤 사람들은 살아남았지만, 나 살아가는 동안 그들 모두를 사랑했네”라는 가사를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아련해진다.

-그렇긴 해도 존 레넌은 이 노래를 너무 빨리 불렀다. 지금쯤 이 노래를 불렀다면 좋았을 텐데. 이런 나의 아쉬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난해 오지 오스본이 이 노래를 불렀다. 오지 오즈번도 이제 환갑이 2년 앞이다. 한때 자타가 공인한 악마의 목소리로 느릿느릿 ‘나 살아가는 동안’을 부르고 있는 오지 오즈번을 보노라면, 인생이란 살아볼 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거지에게 적선하겠지만, 내일은 그 거지가 될 수도 있다던 ‘구르는 돌처럼’의 가사처럼 어제는 악마의 목소리, 오늘은 늙은이의 푸념. 이런 인생이 어찌 멋지지 않을까.

-오드리 헵번(1929-1993)의 탄생 70돌을 기념해서 만든 책 <오드리 헵번>에 실린 사진들을 하나하나 보고 있으면 살아가는 동안 한 인간의 모습이 얼마나 다양하게 변해가는지 깜짝 놀라게 된다. 오드리 헵번은 정말 아름답다. 젊은 시절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그 아름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나이가 들면서 더욱 아름다워지는 것 같다. 그건 보톡스의 힘도, 성형수술의 힘도 아니다. 나이 든 오드리 헵번의 얼굴은 자신을 거쳐 간 세월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사람의 아름다움이 남아 있다. 그런 얼굴로 오드리 헵번은 기아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아프리카로 갔다.

 

 

 

 

-그에 비하면 72살의 나이로 누드사진을 찍겠다고 나서 전 세계의 할머니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 소피아 로렌(1934- )의 얼굴은 좀 징그럽다. 변하지 않는 미모라는 건 정말 끔찍하다. 변하지 않는 인생처럼. 세상을 어느 정도 살아봤다면 생각이 바뀌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그 생각이 어떻게 바뀌느냐는 점이다. ‘구르는 돌처럼’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하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나 살아가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따져볼 수밖에 없다. 인생에서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순간도 바로 그 때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바로 그 순간 발휘된다. 젊은이들 못잖은 탱탱한 피부와 날씬한 몸매를 유지할 때가 아니라.

-늘씬한 몸매가 보고 싶다면 젊음 여자 사진이 있는 달력을 사서 걸어놓으면 될 일이지, 굳이 소피아 로렌의 달력을 살 필요가 있을까. “내가 나이 들어 머리 다 빠지는 먼 훗날에도 밸런타인 카드와 와인 보내줄 거지?”(내가 64살이 되면)라고 폴 매카트니가 노래했다. 소피아 로렌에게도 와인이나 한 병 보내줘야겠다. 밸런타인 카드는 빼고.

06. 07. 17.

 

 

 

 

P.S. '나 살아가는 동안'의 가사를 옮겨놓는다.

 

 

 

 

 

Beatles - In My Life

There are places I'll remember
All my life, though some have changed
Some forever, not for better
Some have gone and some remain
All this places have their moments
With lovers and friends I still can recall
Some are dead and some are living
In my life, I've loved them all

But of all these friends and lovers
There is no one compares with you
And these memories lose their meaning
When I think of love as something new
Though I know I'll never lose affection
For people and things that went before
I know I'll often stop and think about them
In my life, I love you more

Though I know I'll never lose affection
For people and things that went before
I know I'll often stop and think about them
In my life, I love you more
In my life-- I love you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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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6-07-17 23:33   좋아요 0 | URL
가사를 보고 있으니 노래를 따라하게 되네요. ㅎㅎ

로쟈 2006-07-18 00:17   좋아요 0 | URL
다른 곡들에 비해 특별히 더 좋아했던 곡은 아니지만 저도 하도 듣던 곡이라 귓가에 맴돌긴 합니다.^^

푸른괭이 2006-07-18 03:29   좋아요 0 | URL
김연수는 소설도 잘 쓰지만 에세이도 참 잘 쓰는 듯해요. 여러 모로 공감.

로쟈 2006-07-18 07:42   좋아요 0 | URL
그게 같은 거라고 봅니다. 소설이나 에세이나 결국엔 사유와 성찰의 깊이 + 문장력이니까요...

stella.K 2006-07-18 10:43   좋아요 0 | URL
김연수가 대세로군요. 오드리 헵번 좋아해요. 소피아 로렌 좀 심하군요. 팔뚝보니 나이는 속일 수 없는가 봅니다. 늙는 것이 추한 것마는 아닐텐데 외모지상주의가 걱정이군요. 물론 걱정해서 될 일은 아니지만 이놈의 사회분위기 좀 바뀌었으면 합니다.

퍼그 2006-07-19 00:43   좋아요 0 | URL
이 노래 가사가 이런 내용이었네요! (수십 번도 더 들었던 노래인데;;) 지나간 것들을 더 사랑한다니, 왠지 존을 더 사랑하고 싶어지는군요.
 

지난달에 작고한 극작가 차범석(1924-2006) 선생의 이름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는데, 나름대로 사연이 있다. 남미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이 대표작 <산불>을 뮤지컬 버전으로 만들어서 무대에 올리게 됐다는 것. 뮤지컬 버전 <댄싱 섀도우>는 물론 배경이나 분위기가 많이 다르지만, 원작자 '차범석'의 이름을 언제나 그림자처럼 달고 다니게 될 것이니 사후의 불멸 또한 여러 가지 버전이 있다는 걸 입증해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이번에 내한한(그는 자주 오는 듯하다) 도르프만의 인터뷰 기사와 <댄싱 섀도우>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교과서에 일부 실렸던 <산불> 외에는 별로 읽은 작품이 없지만, 이 참에 자신에게 '깐깐했던' 한 원로 극작가의 명복을 빈다.

한국일보(06. 07. 05) 세계적 극작가 도르프만, 차범석 작품 뮤지컬로

-“한국전쟁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지만 세계 어디서나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합니다. 뉴욕 브로드웨이나 런던 웨스트엔드에서도 큰 성공을 거뒀으면 좋겠어요.”

-지난달 타계한 극작가 차범석 선생의 <산불>을 뮤지컬로 각색한 세계적인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64)이 한국을 방문했다. 내년 7월 무대에 오르는 창작 뮤지컬 ‘댄싱 섀도우’제작발표회에 참석하기 위해 10년 만에 방한한 그는 “한국은 라틴 아메리카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민주화 과정을 겪어 언제나 깊은 형제애를 느낀다”며 “‘미스터 차’가 없는 것만 빼면 모든 것이 훌륭하고 감동적”이라고 방한 소감을 밝혔다.

 

 



 

-카를로 푸엔테스, 이사벨 아옌데 등과 함께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세계 문학의 중심부에 정립시킨 그는 1942년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두 살 때 미국 뉴욕으로 이주했다. 10년 후 가족과 함께 칠레로 돌아갔지만 아옌데의 민주혁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피노체트 군부 독재정권의 탄압을 받았고, 10년 넘는 망명생활 끝에 1985년 미국 듀크대 교수로 자리를 잡았다.

-소설 <산티아고에서의 마지막 왈츠>와 <죽음과 소녀> 등의 희곡으로 이미 현대문학사에 깊은 날인을 새긴 그이지만(*<죽음과 소녀>는 국내에서도 공연된 것으로 안다), 뮤지컬 각본을 쓰는 건 이번이 처음. “한 번도 안 해본 일이라 큰 도전이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흥미로웠습니다. 저는 집에서 어딜 나갈 때도 늘 다른 길로만 다니거든요.” 뉴욕에서 자란 꼬마시절부터 <마이 페어 레이디> 같은 뮤지컬을 보며 자랐고, 항상 뮤지컬을 사랑했다는 그는 “뮤지컬은 음악과 가사, 춤, 배우들이 다 같이 어우러져야 하기 때문에 나 혼자 잘한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희곡이 두 시간짜리 대화라면 뮤지컬은 1시간 40분간 노래하고 춤추고, 나머지 20분이라는 제한된 시간동안 짧은 대사 안에 모든 걸 표현해야 합니다. 나는 원래 에둘러 말하는 화법의 소유자지만, 이젠 뮤지컬 스타일에 맞춰 직설적으로 말하는 버릇을 들여야 해요. 그 점이 가장 어렵고,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뮤지컬이 좋습니다.”

 

 

 

 

-도르프만과 <산불>의 만남은 그가 아르헨티나에 머물던 2003년에 이뤄졌다. “한국에서 보내온 ‘산불’의 희곡을 읽었는데 너무 좋았어요. 더구나 한국 작품이라니…, 꼭 해보고 싶었죠. ‘몇 가지만 바꾸면 딱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원작자가 마음에 걸렸어요. 그런데 뜻밖에도 차 선생님이 ‘노 프로블럼’(No Problem)이라며 흔쾌히 승낙해줬어요. <산불>이 뮤지컬로 만들어지는 걸 보는 게 그분 소원이었는데, 여기 안 계셔서 너무 안타깝습니다.”(*아래 사진은 공연 워크샵에 함께 한 차범석, 도르프만, 그리고 울프슨.)



-그렇게 해서 차범석의 <산불>은 마술적 요소가 강한 러브스토리 <댄싱 섀도우>로 재탄생하게 됐다. 음악을 맡은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에릭 울프슨과도 두 시간 만에 작품 이야기를 마칠 정도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도르프만은 소백산맥의 과부촌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삼각 사랑과 이념 대립을 동화(fairy tale) 스타일로 바꾸기 위해 중세 아랍과 발칸 반도에서 지명과 인명 등을 차용했다.

-“원작은 철저한 리얼리즘에 입각해 있는 작품이죠. 하지만 리얼리즘 뮤지컬이란 건 없어요. 뮤지컬의 특성상 리얼리즘을 탈색시킬 필요가 있었죠. 동화로 바꾼 건 세계 시장에 내놓았을 때 전세계 어디서나 공감을 얻기 위해서예요. 그런 점에서 <댄싱 섀도우>는 한국적인 작품일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사실 <댄싱 섀도우>를 원작과 똑같이 만들려고 하면 내가 왜 필요하겠습니까.”(웃음)

한겨레(06. 07. 05) ‘한국산 다국적표 창작뮤지컬’ 나온다: ‘댄싱 새도우’ 제작 발표

-“칠레에서 태어나 아르헨티나 국적을 갖고 미국에서 살고 있는 제가 각색을 하고, 스코틀랜드의 작곡가와 영국의 연출가가 한국의 원작으로 공연을 만드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입니다.”

-3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린, 신시뮤지컬컴퍼니와 예술의전당 공동제작 대형 창작뮤지컬 <댄싱 섀도우>의 제작 발표회에서 세계적인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64)은 이 작품 탄생 과정 자체가 ‘글로벌’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한국의 민주화 과정을 보면 고국 아르헨티나의 상황이 거울처럼 비쳐진다”며 “전쟁과 독재의 압박을 겪은 한국에서 전쟁의 아픔과 상처를 주제로 한 작품을 만들어 전 세계에 전달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예술이 존재하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 출신으로 뮤지컬 <갬블러>를 작곡한 에릭 울프슨(61)과 박명성(43) 신시뮤지컬컴퍼니 사장이 만난 것은 지난 1999년 5월. 세계 일류 스태프를 동원해 세계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신시의 장기 계획이 시작된 것이다. 이어 아리엘 도르프만이 차범석의 희곡 <산불>을 대본으로 만드는 작업에 참여했고, 뮤지컬 <맘마미아!>의 연출가 폴 게링턴(37)과 안무가 니콜라 트리헨느(50) 등이 합류했다. 주요 스태프들 모두 영국 웨스트엔드와 미국 브로드웨이 전문가들로 구성된 다국적군이다. ‘뮤지컬 본고장의 인력을 고용해 뮤지컬 본고장에 진출하겠다’는 역발상의 산물이었다.

-현재 우리나라 뮤지컬 시장의 매출액은 한해 1000억원을 웃돈다.(인터파크, 티켓링크 2005년 집계). 외국에 로열티를 지급하고 의상부터 무대세트까지 고스란히 수입하는 ‘라이선스 공연’이 그 중 90%를 차지한다. 신시는 바로 이 수입공연으로 한국 뮤지컬 시장을 키워온 장본인이다. 국내 최장기 공연이었던 <아이다>, 40~50대를 극장으로 불러들이는 데 성공한 <맘마미아> 등이 모두 라이선스 공연이다.

-시장을 개척한 공은 인정받았지만 ‘뮤지컬 오퍼상’이라는 비난에 시달렸다. 48억원에 이르는 거액을 투자해 세계 4대 뮤지컬 수준의 명품을 만들어보이겠다는 오기가 발동한 박명성 대표. 그는 “그동안 비싼 수업료를 내고 선진 뮤지컬의 노하우를 배웠다”며 “이번 공연을 통해 우리 스태프들의 수준도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댄싱 섀도우>는 내년 7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두달 동안 무대에 오른다. 현재 대본과 작곡은 거의 끝났으며, 세부 수정 작업만 남아있다. ‘번개 공연’이 범람하는 우리 공연계에서, 공연 1년 전에 출연진을 확정하고 제작발표 및 시연회를 하는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급하게 마음먹었으면 올해라도 당장 공연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제작 관행도 선진적으로 바꾸고 싶었습니다. 극장을 대관하고, 그 날짜에 맞춰 허겁지겁 준비하느라 프리뷰만도 못한 수준의 공연을 돈 받고 팔고 있는 게 우리 현실 아닙니까?”(박명성)

06. 07.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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