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의 '8.15 기념 해외석학 인터뷰'로 미국의 저명한 한국학자인 브루스 커밍스 교수와의 대담 인터뷰가 실렸길래 옮겨온다(커밍스 교수는 아마도 촘스키 다음으로 국내 언론의 인터뷰 제의를 많이 받는 미국 학자일 듯하다).

문화일보(06. 08. 14) “한·미 관계 나빠보이며 개선 기미도 안보여”(*타이틀은 문화일보의 최근 기조를 반영하여 좀 선정적이다)

-광복 61주년이 되는 올해 해방전후사와 한국전쟁, 그리고 남·북한의 현대사를 둘러싼 한국내의 논란이 혼란스럽다. 전국교직원 노조가 만든 책자에서는 북한의 주장이 검증되지 않은 채 소개되고 남북한의 해방이후사에 대한 논란은 양극화로 치닫는 인상이 다. 심상찮은 한·미관계, 심지어 식민지종속 우려까지 제기되는한국과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협상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핵개발과 미사일 시험발사로 한반도 정세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는 북한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광복절 특집기획으로 한국 및 동아시아학 연구로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는 브루스 커밍스(시카고대)교수와 로버트 스칼라피노(미 버클리대 정치학)교수로 부터 광복61주년의 한국현대사에 대한 얘기를 들어보았다(*스칼라피노 교수와의 인터뷰는 아직 게재되지 않았다).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한국내 진보파, 북한조차 외면할 수 없는 권위를 갖고 있다. 인터뷰는 지난 7일 미시간주 앤아버의 자택에서 1시간30분 동안 이뤄졌다.

―당신은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했고 북한에 관한 책도 썼다. 북핵문제를 비롯해 향후 북한을 어떻게 보는가.

“북한은 부시 행정부가 있는 한 어떤 양보도 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 독립기념일에 미사일 발사시험을 한 것은 명백히 미국과 일본을 겨냥한 것이다.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바라고 있지만 미 행정부는 대북정책에서 6자회담파와 체제교체파로 나뉘어져 아무런 결정도 못내리고 있다. 지금은 이라크 때문에 북한문제에 신경 쓸 겨를도 없다. 더욱이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나 핵 개발 등을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에 좋은 명분으로 활용할 수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같은 강경책은 결과적으로 미국·일본의 강경파에 이용당하는 셈인가.

“그렇다.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등에게 북한의 미사일발사는 MD 강화의 명분이다. 또 북핵 문제 등은 미국이 중국을 간접 압박하는 지렛대 역할도 하고 있다.”

―한·미관계에 대한 우려가 많은데.

“한·미관계는 나빠 보이며 좋아질 것 같지도 않다. 서울에서는 젊은 세대가 권력을 잡으면서 여러 변화가 생겼지만 워싱턴은 노무현 대통령이 급진적(radical)이고 급진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은 경제적 성공으로 민족적 자긍심이 높아지고 있는 반면 미국은 한국사람들이 고마워할 줄 모른다고 여긴다. 나는 한·미관계가 회복되기 어려울 정도로 나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한국에서는 요즘 주한미군과 관련된 논쟁도 뜨겁다.

지난 1970년대에 미국에서도 격심한 논쟁이 있었다. 내 생각으로는 미 지상군이 한국 방위를 위해 주둔할 필요가 없다고 보지 만 이제는 주한미군 철수가 한·미관계에서 뜨거운 감자여서 철수하기 어렵게 됐다. 미 국방부 등에서는 노무현 정부에 압박을 가하기 위해 미군 철 수위협을 가하곤 하지만 실제 부시 행정부의 레임덕 현상이나 낮은 인기를 생각하면 주한미군 철수 등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7, 8년 전 클린턴 행정부 당시에 미 국방부에서는 남북한의 화해 이후에도 주한미군을 계속 주둔시킨다는 계획이 논의됐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때 김정일도 주한미군 주둔에 대해 반대하지 않았다. 주한미군이 장래 중국과 일본의 위협을 상쇄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럴 경우 주한미군은 미국 한국 북한 모두에게 이익이다. 주한미군은 그야말로 지역내 균형자 역할을 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협상에 대해서 미국의 진보적 학자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내 일부 주장처럼 한국이 경제적으로 종속될 가능성이 있나.

“FTA는 상호이해관계에 따라서 추진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어떤 음모가 개입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미국과 한국 양측에서 FTA 를 반대할 수밖에 없는 이해당사자도 있을 것이다. 미국도 과거 철강산업을 지키려고 철저한 보호무역적인 조치를 취해왔다. 나는 FTA로 한·미간의 경제적 관계가 나빠질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FTA문제가 한·미관계에 악영향을 끼치는 전조가 될까 걱정이다.”

요즘 한국에서는 교수의 저서 ‘한국전쟁의 기원’이 한국전쟁에서 김일성의 책임을 정당화한 책으로 인용되곤 한다. 신문 칼 럼에서는 ‘고등학생이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석좌교수 이름까지 들며 한국전은 미국과 남한이 일으켰다고 배웠다’고 한다는 사례까지 소개됐다.

역사가로서 학자로서 자신의 주장과 다른 오해를 받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다. 내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나는 남한이나 미국이 전쟁을 시작했다고 한마디도 말한 적이 없다. 아마도 이런 오해가 생긴 것은 1980년대초 내 책이 한국에 소개될 당시 상황 때문일 것이다. 당시 나는 전두환 정권과 한국내 인권문제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 때문인지 나를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이 내 책의 내용을 왜곡 하며 나를 비난했던 것 같다. 나는 남한편도 북한편도 미국편도 아니다. 미국에서는 한국전이 김일성의 남침이라는 단 한가지 사실만 알려져 있었을 뿐 미국이 1945년부터 1948년까지 한국에서 군정을 실시했던 사실은 잊혀가고 있었다. 나는 미국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장면을 밝히려고 했었다.”

―한국에서는 지난 1980년대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라는 책이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며 중도 보수성향의 학자들이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라는 책을 발간해 해방전후 역사에 대한 새로운 논란이 일고 있다.

“좋은 현상이다. 역사가는 항상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은 소련의 괴뢰였고 남한은 친일부역자의 정권이라는 단순한 양분법은 사실이 아니다. 예컨대 남한은 부분적으로 민주주의 정권인 동시에 친일부역 문제가 있었다. 그 사이에 새로운 자료와 연구 성과가 많이 나왔다. 역사적 사실은 매우 복잡한 것이다. 1980년대초 내 연구가 한국 에서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그전까지만 해도 한국 학자들이 한국전쟁 같은 사안을 연구하다가는 잘못하면 감옥에 갈 수 있는 제한적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같은 외국인 학자의 역할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한국전쟁에 대한 연구가 더욱 깊어지면 남북한이 화해할 수 있는 기초도 그만큼 나아질 것이다.”

―1990년에 출판된 교수의 저서 ‘한국전쟁의 기원2’에서는 어 떤 점이 새로 밝혀졌나.

“1권을 쓴 뒤에 구소련이 붕괴되면서 비밀해제된 자료를 보면서 나는 매우 놀랐다. 김일성과 스탈린이 교환한 서신이나 김일성의 모스크바 방문 기록을 보니까 당초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이 소련의 스탈린이 개입해 있었다. 1950년 1월 김일성은 모스크바를 방문해서 스탈린으로부터 개전 승인을 얻는다. 그러나 이런 사실도 한국전쟁을 여러 원인에서 찾고자 했던 나의 기본논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한국전쟁 직전 딘 애치슨 국무장관이 한국을 미국의 방어선에서 제외한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남침유도설 같은 주장도 나왔는데.

“애치슨 국무장관의 정책은 미국의 대아시아정책을 재확인한 내용이었다. 딘 애치슨 라인 때문에 김일성의 남침에 청신호를 주 었다는 주장은 난센스다. 한국을 제외한다는 명시적 표현도 없었다. 나중에 공화당이 이를 정략적으로 공격했지만 정작 애치슨의 발언 당시에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애치슨 장관이 이 말을 한 곳은 미 내셔널프레스클럽 연설 때였다. 당시에는 뉴욕타임스가 연설 내용을 소개하면서 한국이 방어선에 포함된다고 보도했다. 당시 북한의 노동신문도도 이를 번역해 ‘한국이 미국의 방어선에 포함된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스탈린이나 김일성이 남침을 결정한 배경은(*이하 주체사상에 관한 질문까지는 지면 기사에는 빠진 내용이다.)

스탈린이 김일성에게 ‘미국은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부추긴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스탈린은 2 차대전 이후 미국의 공세적인 반공정책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냉전의 핵심전선인 독일을 건들였다가는 3차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한반도는 냉전의 핵심전선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전선의 성격이 짙었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맥아더 장군의 동상 철거논란이 있었다. 맥아더의 역할은 어떤 것이었나.

“역사적 사실을 살펴보면 맥아더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 미국의 북진 결정도 맥아더가 아니라 트루먼과 애치슨이 결정 한 것이다. 사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그를 싫어했다.맥아더는 전술적으로도 매우 큰 실수를 했다. 군대를 둘로 나누어 동쪽 서쪽으로 각각 진군하게 했는데 이후 군사전문가들로부터 어리석은 전술이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북한에서는 전쟁이후 남로당의 박헌영 일당이 처형됐다. 과연 박헌영은 김일성의 주장대로 미국의 간첩이었나.

그 대목은 북한의 김일성 체제에서 가장 끔찍한 부분이다. 박헌영은 희생양이었다. 그는 개전 결정이나 전쟁 기간중 아무런 역 할도 하지 못한 채 김일성에게 밀려나 있었다. 박헌영이 미 군정당시 남한에 있으면서 미국관리들을 만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박은 미국이 가장 미워하는 정치적 인물이었다. 김일성은 박헌영의 남로당 세력을 남겨두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남로당 출신들이 남한내 좌파와의 관계속에서 장차 남북한 화해의 틀을 쌓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주체사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1960년대 주체사상을 도입함으로써 북한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민족주의적 정권으로 변한다. 주체사상으로 김일성은 1인 가족지배 체제를 합리화했다(*상식적이지만 자주 간과되는 견해이다). 한때 옛 소련시절 국가보안위원회(KGB) 수장이었던 유리 안드로포프 등 최고위지도자들이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과 주체사상을 둘러싸고 고성을 주고 받기도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복잡하다. 그는 소농 출신으로 가난에서 벗어나고 신분상승을 위해 일본군인이 됐었다. 그의 인권탄압이나 독재정권은 인정할 수 없지만 그는 진정으로 국력을 키웠다. 그는 다른 후진국 지도자와 달리 부패하지도 않았다. 그는 미국의 정책자문가들이 철강 산업같은 중화학공업정책을 반대했을 때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가기간산업을 키워냈다. 박정희의 중화학공업 정책은 1930년 당시 일본의 만주 산업화정책과 닮았다. 사실 박정희가 만주에서 일본군 장교로 교육받고 근무할 당시 만주는 10%의 산업성장을 거듭했다.”

―한국의 경제적 성공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나 집단은 누구라고 생각하나.

“1960년대는 미국의 지원 덕이 컸다. 미국은 수출산업 정책을 권고했고 실제 미국시장을 열어주었다. 1970년대는 박정희가 중 화학공업정책으로 국가기간산업을 이뤄냈다. 1980년대도 박정희의 성공이 이어지는 시기였다. 정주영 같은 기업인들도 여러 산업과 기업을 결합시켜 성공을 이뤄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공로자는 한국인들 자신이다. 근면하고 우수하며 특히 고등학교 교육수준은 놀랄만한 것이다. 이런 바탕 위에서 지금은 지식산업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앤 아버(미시간) = 최형두특파원)

커미스와 한국사 연구(*보충 기사이다)

-미국의 진보적 역사학자인 브루스 커밍스는 한국내 진보파와 북한 모두로부터 인정받는 학자이다. 또 현재의 한국내 논란에서 상당부분 진보진영에서 인용되는 책들의 저자이다. 그는 지난 81년 <한국전쟁의 기원1>이라는 책을 통해 해방직후 미군정 시대 남북한 내, 그리고 남북한 간 정치사회적 갈등의 연장선상이라 는 관점에서 한국전쟁을 분석하는 수정주의적 관점을 제시했다. 미국정부의 방대한 미공개 자료를 근거로 한 그의 연구는 80년대 국내 소장학자들의 진보적 한국사연구에 동인을 제공했다.

 

 

 



-60대말 처음 평화봉사단원으로 내한한 커밍스는 진보적 연구시각 때문에 한동안 한국정부의 기피인물로 입국이 거부되기도 했다(*여담이지만, 도올 김용옥은 이때 커밍스로부터 영어를 배웠다고). 90년에는 구소련 붕괴이후 새로 공개된 소련측 비밀자료 등을 새로 감안한 <한국전쟁의 기원2>를 출간했다. 그가 97년에 펴낸 한국사(Korea’s Place in the Sun:A Modern History)에서는 한국전쟁에 대한 김일성의 책임, 남한의 산업화 과정에 대한 의 미부여 등을 담았다.



-2004년에는 <북한, 또하나의 나라>(한국내 번역본 ‘김정일 코드:브루스 커밍스의 북한’)에서 커밍스 교수는 핵을 둘러싼 북· 미간의 대치상황을 한국전쟁 때 미국에 의해 철저히 파괴된 북한과 북한을 ‘악의 축’등으로만 보는 미국간의 반세기 이상의 강한 적대감으로 분석했다. 또 지난 10여 년간의 핵문제로 인한 북·미갈등은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에게 덤벼드는 외교’(cat - and mouse diplomacy) 의 마지막 국면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의 태도를 이해하려는 태도와 달리 북한 자체에 대해서는 병영국가(garrison state), 즉 “폭력 전문가들이 그 사회의 가장 강력한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국가”라는 개념에 가장 근접한 국가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아울러 북한의 세습제를 비롯한 불투명한 정치적 전통과 무수한 인권침해에 관해서도 비판했다.

-컬럼비아대 박사출신으로 현재 시카고대학 역사학과 교수인 커밍스는 미국내 보수파로부터는 미국의 이익을 외면하는 좌파학자로 지목당하기도 했다. 미군정 및 한국전 당시의 미국정책에 대한 비판적 연구 때문이었다. 한국과 미국의 이념전선에서 시달려왔 을 커밍스 교수지만 직접 만나보면 매우 자상했다. 인터뷰를 마 치고 그의 집에서 나오다가 운전실수로 잔디밭 일부를 흉하게 망쳤는데도 껄껄 웃으며 괜찮다고 말했었다.(최형두 특파원)

06. 08. 14-15.

P.S. 얼마전에 브루스 커밍스의 스승이기도 한 미국의 한국학 '대부' 제임스 팔레 교수가 타계했다. 이 참에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한국의 미국학 전문가들은 누구일까?). 

동아일보(06. 08. 10) "미국내 한국학 1세대 팔레 교수 별세"

-미국 내 한국학의 대부 제임스 팔레(사진) 워싱턴주립대 한국학연구소 명예교수가 6일(현지 시간) 숙환으로 미국 시애틀 한 요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2세. 하버드대 출신인 팔레 교수는 1985년 ‘한국의 인권’이란 보고서를 통해 한국 군부정권을 비판해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미국 학계에서는 그를 ‘워싱턴 마피아’의 대부라고 불렀다. 그는 1968년 당시 워싱턴주립대 일본·한국학연구소장이던 케네스 파일 교수에게 발탁된 뒤 줄곧 한국학 연구에 몰두했다.

-또한 학문적 동반자인 브루스 커밍스(한국 현대사 전공)와 함께 하버드대의 카터 에커트,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의 존 던컨, 인디애나대의 마이클 로빈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의 돈 베이커 교수 등 한국학 2세대 학자들을 집중적으로 길러냈다. 그는 미국 내 한인사회를 중심으로 전개된 한국의 민주화운동에도 적극 동참했다. 인권 및 노동운동 탄압 등을 이유로 박정희 정권이 제안한 한국학연구기금(100만 달러)을 거부해 ‘행동하는 지식인’이라는 평가도 받았다.(김윤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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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08-15 23:34   좋아요 0 | URL
한국의 미국학 전문가들은 누구일까? -정말 누구일까요? ㅡ.ㅡ;;;;

로쟈 2006-08-17 00:27   좋아요 0 | URL
미국학 총서에 이름을 올린 저자들이 없지는 않지만, 과연 '간판급' 학자가 누구인지는 잘 떠오르지 않네요(--;)...
 

월요일 아침부터 일거리가 많군. 기사들을 읽다가 그냥 넘어가기 뭐해서 몇 개 옮겨놓는데, 최근에 <헤겔>을 출간한 이제이북스의 전응주 대표를 다룬 인터뷰 기사도 마찬가지이다. 예전에 한번 다룬 줄 알았더니 그냥 읽기만 하고 지나쳤던 모양이다. 해서, 예의상 자리를 마련한다.

경향신문(06. 08. 12) "제대로 된 철학서 누군가는 내야겠죠"

-‘2006 한국출판연감’에 따르면 2005년 9월 말 현재 문화관광부에 등록된 출판사 2만4천5백80개 가운데 지난해 책을 한 종이라도 낸 출판사는 전체의 10%에도 못미치는 2,273개이다. 평균 발행 부수는 2,745부. 이들 가운데 그나마 적자를 면할 정도로 책이 팔린 출판사는 얼마나 될까.

-이제이북스는 이른바 ‘안 팔리는 책’만 ‘골라서’ 내는 출판사 가운데 하나다. ‘안 팔리는’ 인문학서적, 그것도 철학서를 주로 내놓는다. 인문학서적의 손익분기점이라고 흔히 말하는 1,000부 이상 팔린 책은 손에 꼽을 정도. 이 회사 전응주 대표(49)는 “재판(再版) 찍은 게 3~4종 정도 되는데 그나마 철학책은 하나도 없다”면서 “사재를 털어 꾸역꾸역 책을 내고 있다”고 밝혔다.

 

 

 



-‘범주론 명제론’ ‘플라톤과 유럽의 전통’ ‘헤겔 예나 시기 정신철학’ ‘스피노자와 정치’…. 출간 도서목록만 살펴봐도 사정을 알 만하다. 최근 내놓은 역서 ‘헤겔, 영원한 철학의 거장’도 그 같은 ‘운명’을 비켜가기가 수월치 않아 보인다. 책은 극단의 평가를 받는 철학자 헤겔의 참모습을 가장 충실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 전기물이다. 1,000쪽이 넘는 방대한 양이 독자들을 압도한다. 전대표는 “출판사를 시작한 2001년에 번역자와 계약을 했으니 5년이 넘게 걸린 셈”이라고 웃었다.

-철학을 전공하고 시간강사 생활을 하던 전대표는 “좋은 철학서를 제대로 내겠다”는 신념 하나로 출판업계에 뛰어들었다(*묵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했던가?). “철학서의 번역물들이 이해하기 힘든 게 많았고, 일본어 번역서를 다시 번역한 것도 많았습니다. 최소한 오역이 없는 철학서를 내보자고 생각했지요.”

-어려운 개념이 많다보니 철학서 번역은 특히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다. 대여섯번 교열을 보는 건 기본. ‘헤겔~’은 교열과 편집 작업에만 반 년 가까이 걸렸다. 전대표가 직접 교열을 보는 경우도 많다. 그는 “지금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원전 번역물을 영어와 독일어 번역을 옆에 두고 비교하면서 보고 있다”면서 “그냥 대충 하면 손해보지 않고 갈 수도 있겠지만 그럴 수는 없다”고 말했다. 편집자들은 그를 원고를 집어삼키는 ‘블랙홀’이라고 부른다. 책을 오래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사철(絲綴) 제본을 하고, 밑줄 긋고 메모하기 편한 종이를 쓰는 것도 그 같은 꼼꼼함 때문이다.

-전대표는 희랍어·라틴어 원본을 번역할 수 있는 세대가 활동하고 있는 지금 관련 철학서를 번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만간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낼 예정이고, 플라톤 전집도 완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물론 책을 낼수록 적자만 쌓여가는 상황은 고민거리다. “좋은 책인데 내려면 겁난다”는 그의 말은 이 같은 고민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도 유행을 따라 책을 만들 생각은 없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란다. “남들은 뭐라 해도 1,500부, 2,000부 팔았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철학서 독자가 50~100% 늘었으니 그걸로 된 거 아닌가요.”

06. 08. 14.

P.S. 국내 철학전문 출판사라면 서광사와 철학과현실사를 들 수 있었다(서광사의 책들은 뜸해졌다, 철학과현실사의 책들은 '대중'과 '교양'을 별로 염두에 두지 않는 듯하다). 이제이북스는 새로운 강자다. 플라톤 전집까지 완간한다면 아마 판도가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쌓여가는 적자를 버텨주기만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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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8-14 11:49   좋아요 0 | URL
오오오. 퍼가요. 아 이런 사람들이 많아져야하는데. 나오면 죄 얼마 안가 절판되어버리니.

반딧불,, 2006-08-14 11:51   좋아요 0 | URL
저도 퍼갑니다.

로쟈 2006-08-14 11:56   좋아요 0 | URL
누군가 해야 할일을 하는 사람들이 필요하고 고마운 사람들이죠(사실 그 이면은 섬뜩한 것이기도 하지만. 누군가 해야 할 악역들)...

호랑녀 2006-08-14 12:48   좋아요 0 | URL
버텨주기를...

biosculp 2006-08-14 18:21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에 의사나 한의사가 한 7-8만명정도, 변호사도 한만명정도 되나요.교수들도 몇만명은 되는것 같고, 기업과장급이상도 꽤 될것같고, 학교 선생님들도 한 30만명 되나요. 전교조가 조합원이 9만명이라니. 그런데 좋은 학술서가 천권이 넘어가기힘드니.
수능 1등이 저 공부할때 헤겔읽었어요. 해야 좀 팔릴지, 아니면 부잣집들 장식품이 두꺼운 책으로 유행이 바뀌어야 좀 될지.
하여간 힘되는대로 당장 읽지는 않더라도 좋은 책은 사놔야지요. 안그러면 절판되어 구경하기 조차 힘드니.

로쟈 2006-08-14 23:23   좋아요 0 | URL
사실 도서구입 십일조 같은 거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십오조가 넘을 때도 많았지만, 그런 '민폐' 수준은 아니더라도 정신의 '웰빙'을 위해서라면 좀 투자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복날이었지만 딸아이의 생일이기도 해서 이래저래 바쁜 하루였다. 실상 아침, 점심, 저녁을 먹고 케익까지 먹는 '장정'이었을 뿐 따지고 보면 한 일도 없지만(생일카드를 늦게 주었다는 이유로 딸아이한테 반성하라는 경고를 먹었다. 물론 생일선물도 따로 준비하지 않았다!) 바쁜 일들을 제쳐두고 있다는 부담감과 무더위 때문에 더욱 피로한 하루이기도 했다. 아이가 그래도 '즐거운 하루'였다면 잠자리에 드니까 막판에 면피는 했구나란 안도감이 든다. 그나마 다행이다.

잠시 짬을 내 '고상한' 학술기사들을 찾아보았지만 눈을 씻고 봐도 없다(이런 복더위에 무슨 공부를 하랴!). 대신에 가짜 명품 사기 사건으로 사회란이 도배돼 있다.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코믹하고 또 '예술적'이어서 몇 마디 참견을 한다. 먼저 사건의 자초지종을 전하는 동아일보의 기사부터 시작해보자(요 며칠 새 유행어가 된 '된장녀'도 그렇지만 이 '빈센트' 시계 건도 석사논문감은 된다. 학술은 딴동네에 있지 않다).

동아일보(06. 08. 09) “다이애나 비도 차던 시계래” 연예인도 부유층도 홀렸다

-“일본에서 스위스산(産) ‘빈센트 앤드 코(Vincent & co)’ 시계를 봤는데 한국에서 파는 곳이 어디예요?” 최근 국내 유명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지식검색 코너에 올라온 질문이다. 질문 아래에는 ‘고가의 제품으로 한국에도 곧 수입된다’는 내용과 함께 매장의 위치를 소개한 답글이 달렸다. 하지만 이 질문과 답변은 모두 연예인과 부유층을 상대로 가짜 명품 시계를 팔다 사기 혐의로 검거된 일당이 올린 것. 실제 스위스에는 ‘빈센트 앤드 코’란 상표의 시계가 없다.

-이모(42) 씨는 지난해 5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과 신사동에 각각 시계유통업체 사무실과 40여 평 규모의 매장을 차렸다(*고급 외제 승용차를 몰고 다니며 서울 강남에서 벌어지는 각종 파티에 참석하면서 연예계 등 각계에 인맥을 쌓았다고 하는 이 이모씨가 청담동 일대에선 '필립'으로 통했다고. 이름하여 '청담동 필립' 되시겠다). 이 씨는 이곳에서 한국과 중국제 부품으로 만든 저가 시계를 100년 전통의 스위스산 명품 시계로 둔갑시켜 판매했다(*이 정도면 거의 '신지식인' 아닌가?).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고(故) 다이애나 왕세자비 등 세계 인구의 단 1%만 착용할 수 있는 시계’라는 그럴듯한 허위 광고에 허영심 많은 일부 연예인과 부유층은 매료됐다. 이 씨는 지난달 초 청담동의 한 바를 빌려 부유층과 연예인을 초청해 호화 제품 소개회를 열기도 했다. 또 이 시계를 유명 MC와 탤런트 등 8명에게 무상으로 나눠 줘 홍보효과를 극대화했다.

-이 씨는 부유층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시계 부품을 스위스 현지로 가져가 조립한 뒤 완제품 형태로 국내로 다시 들여와 정상적인 수입신고필증을 받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원가 6만 원짜리 시계가 580만 원짜리로 부풀려졌지만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이만한 고부가가치 산업이 많지 않을 듯싶다. 일부 부유층 명품족들을 상대로 한 이 사기극이 서민경제에 특별히 피해를 주었을 리도 만무한데 이러한 '재능'이 감옥에서 썩는다는 건 좀 아쉬운 일이다. 가령 비상한 두뇌의 해커들을 생각해보라. '뛰어난 재능'은 활용될 필요가 있다).

-200여 개의 작은 다이아몬드를 박은 원가 300만 원짜리 시계에는 무려 9750만 원의 가격표를 붙였다(*당연한 말이지만 원가 300만원을 붙였다면 그만큼 주목받지도 팔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중요한 건 '품질'이 아니라 가격 아닌가?). 이 씨는 32명에게 35개의 시계를 팔아 4억4600만 원의 판매 수익을 올렸다. 한 부유층은 원가 150만 원짜리 시계를 6750만 원에 사갔고 연예인 5명도 이 씨의 고객이었다. 연예인들 사이에선 이 시계가 ‘행운의 시계’로 불리며 선물용으로 인기를 모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8일 서울지방경찰청 외사과는 이 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 또 시계를 만든 박모(41) 씨는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이들은 국내 판매권을 넘기겠다고 속여 4명에게서 15억6700만 원을 가로챈 혐의도 받고 있다. 경찰은 “최근 검증되지 않은 수입 귀금속이 명품으로 팔려 나가는 사례가 많아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임우선 기자)

=사건의 전말에 대한 좀더 심층적인 분석 기사를 읽어본다. 이 동네는 조선일보가 좀 잘 아는 모양이다.

조선일보(06. 08. 09) 연예인도 부자도 ‘가짜’에 홀렸다

-‘세계 1% 명품’이라는 광고에 우리 사회 부유층이 넘어갔다. 중국산 부품으로 국내에서 조립한 싸구려 시계지만, ‘스위스산(産) 시계명품’이라고 포장하자, 강남 일대의 부유층과 유명 연예인들이 달려들었다. 원가 10만원도 채 안 되는 시계가 수천만원에 팔려나갔고, 유명 백화점이 특별전을 열어 ‘명품족(族)’을 꾀었다. 명품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일부 계층의 허영심을 파고 든 ‘대(大) 사기극’이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것이다.

◆싸구려 시계의 둔갑
-미국 영주권자인 이모(42)씨(*역시 미국산 사기가 스케일이 다르다). 그의 명품시계 사기극은 2000년 ‘빈센트 앤 코(Vincent & Co)라는 시계 브랜드를 만들면서 수년의 준비를 거쳐 치밀하게 추진됐다. 스위스와 우리나라에 법인 및 상표등록을 한 뒤, 스위스에 본사가 있는 것처럼 꾸몄다.

-그는 중국에서 시곗줄과 연결고리를 들여왔다. 여기에 시침, 분침, 외장케이스 등 값싼 국내부품을 경기도 시흥의 제조업체에서 결합했다. 원가 8만~20만원.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워낙 고가품이라 강남의 일부 고객들이 ‘스위스 직수입’인지 확인하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시계를 분리해 스위스로 가져간 뒤 현지에서 다시 조립해 정상적인 통관절차를 거쳐 수입신고필증을 받아냈다. 그렇게 수입신고필증까지 얻고 나니 장애물이 싹 걷혔다. 을지로 주변 인쇄소도 동원했다. 가짜 품질보증서를 만들어 붙여 구석구석 명품의 흉내를 냈다.

 

◆화려한 마케팅
-이씨는 철저하게 강남 일대 부유층을 겨냥한 마케팅에 나섰다. 명품 패션잡지와 TV, 인터넷 등에 ‘100년 동안 영국 등 유럽 왕실에서만 판매되던 스위스 명품 시계가 마침내 한국에 상륙한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다이애나비, 그레이스 켈리, 한국 유명 여배우 등이 차는 바로 그 시계’라며 허영심을 자극했다. 또 소수 부유층과 유명 연예인들을 불러 모아 청담동의 클럽에서 호화 런칭쇼(제품 출시를 앞두고 제품을 소개하는 패션쇼)를 열고, 강남의 한 백화점에서 VVIP(초우량고객)들만 초청해 특별전까지 가졌다. 지난 5월엔 압구정 로데오 거리 근처에 40평 규모의 매장도 열었다.

-연예인들에게 시계를 공짜로 제공한 뒤 사진을 찍어 잡지 등에 홍보하는가 하면, 유명 미용실 관계자들에게 홍보용 시계를 제공했다. 입소문이 나도록 ‘협찬 마케팅’도 빠뜨리지 않았다. 포털사이트의 댓글도 활용했다. 이씨는 직접 “일본에서 이 시계를 봤는데 국내 매장이 어디죠?”라고 질문을 올린 뒤, 마치 다른 사람이 답하는 것처럼 댓글로 매장 위치와 제품정보를 올렸다.

◆연예인·재벌2세·정치인 아내 등 미끼 물어
-이씨의 명품 마케팅 전략은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580만원’ 가격표를 붙여놓은 골프 시계가 연예인, 재벌 2세, 정치인 아내 등에게 인기 좋게 팔렸다. 금과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시계는 9750만원에 팔렸다. 모 유명 여자 연예인의 경우, 원가 20만원의 제품을 500만원대에 구입했다. 연예인 5명이 직접 구입한 것으로 확인됐고, 홍보용으로 협찬·대여받은 연예인을 합치면 13~14명에 이른다. 연예인들 사이에서 이 시계는 ‘행운의 시계’로 통했다. 여기에 재벌 2세와 정치인 아내도 ‘가짜 명품’ 구매대열에 합류했다. 경찰은 모두 30여명이 ‘빈센트 & 코’ 시계를 샀다고 확인했다. 경찰은 “시계 구입자 명단은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이씨는 시계 판매로만 4억5000만원, 대리점 운영 희망자들로부터 받은 보증금까지 합치면 23억원을 벌어들였다(*투자비용을 고려하면 생각만큼 이윤이 많이 남는 장사는 아니었군). 희대의 사기극을 벌이며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던 이씨는 “연예가, 방송가 주변에 값비싼 시계가 공짜로 돌고 있어 수상하다”는 첩보를 입수한 경찰에 결국 덜미가 잡혔다. 서울경찰청 외사과는 8일 사기 혐의로 이씨를 구속하고 제조업자 박모(41)씨를 불구속 입건했다.(최규민 기자)

=그래도 역시 최강의 분석기사는 중앙일보의 것이다(기자들이 '특종'을 다루듯이 여럿 움직이는군). 다른 기사들과 중복되는 내용이 많지만 그대로 옮겨온다.

중앙일보(06. 08. 09) 강남 파고든 '허영 마케팅'

#1 올 6월 1일 서울 강남 청담동에 있는 T바. T바에선 유명 명품의 런칭(판촉) 행사가 자주 열린다. E.L씨 등 유명 연예인들이 눈에 띄었다. 각계의 저명인사도 있었다. 무려 400여 명이 참석했다. '빈센트 앤 코(Vincent & Co)' 시계의 한 모델인 '어반 토네이도 라인' 국내 런칭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뱀 가죽 시계줄을 사용한 이 제품 소개를 위해 온몸에 보디 페인팅을 한 러시아 무희들과 살아있는 뱀 여러 마리가 동원됐다(*러시아는 여기서도 제몫을 다하는군. 그런데, 이 컨셉은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가져온 것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의 필립은 자신의 사기술이 갖는 존재론적 함축까지도 은근히 드러내고 있는 것 아닌가?). 행사장 여기저기엔 제품 부스가 차려졌고 2층 쇼룸엔 빈센트 시계의 모든 제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값은 비싼데 디자인이 좀…." 행사장 구석에서 작은 수군거림이 있었지만 호화로운 분위기에 묻혀 이내 사라져 버렸다. 이날 행사 비용만 1억30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 7월 초 강남의 한 유명 백화점 상설 전시장.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다이애나비, 모나코 그레이스 켈리 왕비 등만이 산 제품"이라는 광고문구가 나 붙었다. 빈센트 앤 코 전시행사였다. 이날은 판매는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나던 백화점 고객들은 두 번 놀라야 했다. 백화점에서 알음알음 입소문이 났던 명품 시계를 전시한다는 것에 놀랐고, 가격에 또 놀랐다. 시계의 가격은 수백만원에서 1억원에 육박하는 것도 있었다. 유명 백화점에서 가짜를 전시할 것이란 생각은 누구도 할 수 없었다.

-미국 영주권자이자 빈센트 앤 코 대표 이모(42)씨는 이런 방법으로 중국산 부품으로 만든 손목시계를 스위스 최고급 명품으로 속여 강남 부유층과 연예인을 공략했다. 이씨는 원가 8만원짜리를 580만원에, 다이아몬드를 박은 300만원짜리 시계를 9750만원에 팔았다고 한다. 서울지방경찰청 외사과는 8일 가짜 명품 시계를 스위스산 최고급 명품으로 속여 판매한 혐의(사기)로 이씨를 구속했다. 이씨에게 시계를 납품한 N사 대표 박모(41)씨도 불구속 입건했다.

◆ '국적세탁' 수법 동원=경찰에 따르면 가짜 명품 시계는 경기도 시흥의 N사에서 중국산 부품을 이용해 만든 것이다. 2005년 3월부터 최근까지 유명 연예인과 강남 부유층 인사들을 상대로 7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했다. 이씨는 총판 운영권을 준다며 박모(46)씨 등 4명에게서 15억6700만원을 가로챈 혐의도 받고 있다.

-이씨는 2000년부터 가짜 명품시계를 국내에 팔 계획을 세웠다. 스위스와 한국에 '빈센트 앤 코'라는 법인과 상표를 등록했다. 스위스에 본사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이씨는 지난해 5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과 신사동에 각각 사무실과 매장도 열었다. 올 2월에는 홍콩에 유령회사를 차렸다. 이로써 스위스에 본사가 있고 국내에서 수입하는 형식을 갖추는 모든 준비를 마쳤다. 백화점 행사 땐 진가를 발휘한다. 전시행사를 했던 백화점 관계자는 "보통 명품 브랜드나 신규 브랜드 초청 전시회를 할 때 담당자가 검사하는 수입 면장과 본사 확인서 등을 완벽하게 구비하고 있어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 인터넷에 자문자답(自問自答) 홍보도=준비를 마친 이씨는 고객 확보에 나섰다. 우선 강남에서 잘나가는 고급 미용실을 공략했다. 원장에게 시계를 뿌렸다. 미용실에 다니는 연예인과 부유층도 주요 목표였다. 이들에게 '수작업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대량 생산이 불가능하다'며 구매 대기자 명단까지 보여줬다. '행운의 시계'란 입소문이 나기도 했다. 한 미용실 관계자는 "이씨가 재벌회장 누구를 안다며 친분을 과시해 믿었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고객이 '수입신고필증'을 요구하면 국내에서 부품을 갖고 스위스에서 들어가 조립한 뒤 정상 수입절차를 거치는 '국적세탁' 수법까지 동원했다. 또 인쇄소에서 품질보증서를 가짜로 만들어 붙였다.

-이씨는 언론을 이용해 가짜 명품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도 신경 썼다. 명품을 다루는 잡지에는 여러 차례 광고를 실었다. 올 들어서는 주요 일간지도 접촉했다. 홍보대행사를 통해 접촉한 언론 중 일부는 이씨의 뜻대로 움직여 줬다. 6월에 한 경제지에는 '빈센트시계 한국 매장 오픈'이라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인터넷 포털에는 댓글을 올려 이씨 스스로 자가발전을 했다. 그는 포털사이트에 "일본에서 이 시계 봤는데 국내 매장이 어디죠"라는 질문을 올린 뒤 댓글을 올려 매장의 위치와 제품정보를 알려줬다.(이철재.문병주.조도연 기자)

-강남 명품족의 심리를 이용한 이씨의 수법은 인맥 관리에서 또 한번 진가를 발휘한다. 청담동에 있는 매장의 총판을 맡은 회사의 대표는 현재 국내에서 잘나가는 진짜 명품의 마케팅 책임자의 친오빠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입수한 이씨의 장부에는 구매자로 여당 중진 의원의 부인과 모 재벌 그룹 고위경영자의 부인이 포함돼 있었다. 또 여자 탤런트 C씨, 남자 탤런트 L씨 등 10여 명의 유명 남녀 연예인들이 이 업체의 사기에 속아 시계를 구입하거나 협찬품으로 받았다. 이들은 경찰에서 "명품으로 소장가치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빈센트 앤 코' 가짜 명품 시계 사건은 청담동으로 대표되는 명품 소비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냈다. 서울대 여정성(소비자아동학과) 교수는 "부(富)의 상징, 즉 다른 사람보다 내가 많이 가졌다는 걸 드러내는 기호로 이른바 명품이 등장했다"며 "이번 사건은 명품으로 치장하려는 허영 심리를 교묘히 활용한 것으로 천민자본주의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패션 업계에서는 이번 사건을 명품과 유행을 좇는 일부 계층의 심리를 파고든 사례로 분석한다. 패션 마케팅 관계자는 "비싸고 희소가치가 있는 명품이라고 선전하면 그것을 사는 것이 자신의 위치가 올라가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며 "(이번 사건은) 그런 바람 같은 사람을 공략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빈센트 앤 코가 유럽에서도 상위 1%만 아는 브랜드라며 '한정판(리미티드 에디션)'을 판다고 내세운 것도 이런 심리를 역이용한 것이다.

-연예인과 패션계의 일그러진 공생관계도 확인됐다. 소위 명품 브랜드나 신규 브랜드의 런칭 행사 때 연예인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연예인을 동원하지 않으면 명품의 소비계층인 부유층을 유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행사에 동원되는 연예인은 급수에 따라 행사에 소개되는 200만~500만원가량의 물품을 받는다. 연예인들은 물건을 받는 것 외에 명품 브랜드가 자신을 인정했다는 식으로 행사에 참여한 것을 홍보에 이용한다.(조도연 기자)

 

 

 

 

학술적으로 정리를 해보자면, 먼저 이 사건은 '세계 1% 명품'이라는 사기홍보에 넘어간 자칭 '대한민국 1%'의 부유층, 곧 유한계급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우물이있는집, 2005)을 막바로 떠올리게 한다. 베블런은 "자본가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은 일치하며, 경쟁체계는 경제적 진보의 원천이라는 고전경제학의 주요 명제를 반박하며, 당대의 유한계급(leisure class)을 인류학, 역사학, 사회학적 관점에서 분석해 '명예'와 '과시성'이 갖는 계급적 의미를 논리적으로 드러냈다." '과시적 소비' 와 '과시적 여가'라는 말의 저작권자가 바로 베블런인바, 이번 사기 사건은 '과시적 소비'의 흔한(하지만 빼어난) 사례로 분류될 수 있다(그러니까 '연습문제' 정도는 되겠다). 또한 베블렌 이론의 사회학적 영감을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부르디외의 '취향의 사회학' 혹은 '사회학적 판단력 비판'은 사회계급적 시각에서 이 문제를 조명할 수 있는 틀거리를 제공해줄 것이다.

 

 

 

 

두번째로 문제가 되는 것은 현대사회에서는 상품의 사용가치보다도 오히려 그 기호적 가치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보드리야르의 통찰이다. 게다가 그는 현대사회에서 TV 등 영상산업,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로 현실을 모사한 것들이나 이미지들 즉 ‘시뮬라크르’가 오히려 거꾸로 현실이나 실재를 지배한다는 ‘시뮬라시옹’ 이론을 제창하는 바, 진짜보다는 가짜/짜가가 판을 치는 요지경 포스트모던 사회의 실상을 예리하게 해명한다(비록 별다른 대안을 제사하지 않아서 패배주의적이란 비난을 무릅쓰고는 있지만). 겉보기에 '명품'이고 남들이 명품이라 하면 그게 또 명품인 것, 그게 시뮬라시옹의 세계 아닌가?

 

 

 

 

세번째는 그러한 과시적 소비와 과다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극대화되는 모방욕망이다. 이 경우는 명품 그 자체보다도 짝퉁 명품의 소비 현상을 설명하는 데 보다 유용하다. 이번 케이스는 짝퉁을 명품으로 오인함으로써 발생한 사건이지만 짝퉁인 줄 알면서도 명품유사품으로서 그 효과를 발휘하는 짝퉁에 대한 선호도 우리 사회에는 존재한다. 제대로 알고 구입하느냐 모르고 구입하느냐의 차이가 여기엔 걸려있는 듯하지만, 실상한 동일한 현상의 이면이다. 어떤이의 소비가 그의 존재를 규정한다는. 그리고 상위 1%의 소비를 모방함으로써 자신 또한 그러한 부류에 속한다는 걸 인정받고 싶어하는 인정욕망. 그러한 욕망의 발생과정(스캔들)에 대한 면밀한 해명은 지라르 이론의 특장이다.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의 실제적 사례 아니었을까? "우리는 '명품 시계'가 벼락처럼 강남 명품족을 강타하는 것을 본다." 

 

 

 

 

네번째는 사건의 주모자인 '청담동 필립'의 절묘한 사기술이 경탄을 유발한다. 비록 실패로 돌아가긴 했지만, 그는 대한민국 1%의 소비심리와 그 구조적 메커니즘을 꿰뚫고 있었고 이를 철저하게 이용할 줄 알았다. 이를 테면 명품시장의 새로운 블루오션을 개척한 공로가 그에겐 있다. 핵심은 언론과 연예인, 그리고 인맥을 이용하라, 이고,  이아무개가 아닌 '필립'으로 행세하라, 이다. 스위스 현지에 유령회사를 차려놓고 법인등록을 했다는 게 이 '필립'의 '플러스 알파'가 되시겠다. 신형 사기술의 귀감으로서 그의 사기술은 '합법성'의 테두리 안에서 충분히 재음미될 가치가 있다(사실 그가 판 것은 '명품'이라기보다는 '명품효과'이다. 명품의 진품성이란 건 그 효과가 한 가지 지탱요소일 뿐 본질적인 건 아니다. 그는 적어도 적발되기 전까지는 '진짜' 명품-효과를 판매했다!).

이 모든 문제성과 함께 내게 떠오른 것은 러시아 작가 고골(1809-1852)의 <죽은 혼>(1842)이다('죽은 혼'은 러시아어로 '죽은 농노'를 뜻한다). 지방을 돌아다니며 (지주에게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죽은 농노들을 장부상으로 사들인 다음 그걸 담보로(장부상으론 많은 농노를 거느린 대지주가 된다) 거액의 대출을 받으려고 한 희대의 사기꾼 치치코프의 행각을 통해서 당대의 비틀린 러시아 사회를 실감나게 묘사/풍자하고 있는 소설, 아니 '서사시'가 <죽은 혼>이다(국내에 아직 정본 번역이 안 나와 있다는 것은 유감스럽다. 참고로 3부작으로 기획됐던 이 소설의 1부만이 완성되었고 단테의 <연옥>과 <천국>에 해당하는 2, 3부를 마저 완성시키지 못하는 자괴감에 고골은 괴로워하다가 굶어죽는다. '속물' 묘사에 천재적인 작가였지만 선한 인간은 그려낼 수 없었다).

차이라면 치치코프가 '죽은 혼'들을 거래했던 반면에 명품 시계 사건에서는 '죽은 혼'들이 거래의 당사자라는 것. 지라르의 표현을 빌자면, '낭만적 거짓'에 빠져있는 주인공들처럼. 혹은 사도 바울의 경고를 빌자면, "너희가 살아있다고 해서 다 살아있는 줄 아느냐?" 이때 필요한 것은, 지젝식으로 말하자면 '공백으로서의 주체'를 메우기 위한, 이 경우엔 치장하기 위한 모든 명품-주체화로부터 탈피하는 것, 그러한 환상을 횡단하는 것이다. '신성한 광기'란 그러한 탈피/횡단의 운동에 붙여진 이름이다(우리가 주체화에 안주하게 될 때, 인조인간의 운명은 곧 우리 자신의 운명이기도 하다. 아래는 <블레이드 러너>에서의 인조인간 조라).

=이제 마무리를 지어보자. 한겨레의 사설과 조선일보의 '만물상' 칼럼을 옮겨온다.

한겨레(06. 08. 10) 허영이 부른 가짜 명품시계 사건

- 일부 부유층과 연예인들이 치밀한 사기꾼에게 호되게 당했다. 원가 8만~20만원짜리 시계를 최고 수천만원에 사서 차고 다녔다고 한다. 웬만한 직장인의 한 해 소득쯤 되는 액수를 시계 구입에 썼다는 것도 놀랍지만, ‘명품’에 눈이 멀어 어이없이 당했다는 점은 더욱 놀랍다. 서울 강남 등의 일부 부유층이 서양 부자들 흉내내는 ‘국제 감각’은 익혔어도, 가짜를 알아보는 안목까진 갖추지 못한 것 같다. 내실은 없이 겉치레만 신경 쓰는 일부 계층의 행태를 상징하는 듯하다(*그러니까 '대한민국 1%'가 '세계 1%'가 되기에는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다는 얘기이다. 벼락치기 교양의 한계인 것일까?).

-사기 수법은 더욱 혀를 내두르게 한다. 사기 유통업자는 삐뚤어진 부유층의 허점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유럽 왕족’을 내세운 점, 화려한 제품 발표회로 현혹한 점, 특권 의식을 한껏 부추기는 ‘초우량 고객 전용’ 마케팅 수법 등이 특히 그렇다. 마치 일부 부자들을 비웃어주기로 작심한 게 아닌가 싶을 지경이다(*그런 의혹은 나도 갖게 된다). 치밀성도 놀라울 정도다. ‘스위스 직수입’을 확인시키려고 현지에 직접 법인까지 차리고 상표까지 등록했다고 한다. 한탕에 거액을 챙기려는 사기범들도 이젠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시대가 됐다.

-이번 사건은 돈이 최고의 가치로 자리잡은 풍토와 무관하지 않다. 요즘 날로 번져가는 ‘명품 집착증’의 밑바닥에는, 돈으로 치장해야 알아주고, 돈이 곧 사람을 만든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이는 ‘사서 쓰는 상품이 사람의 가치를 결정한다’는 소비 만능주의의 또다른 얼굴이기도 하다. 크게 한탕을 벌여 일확천금을 얻겠다는 사기범 또한 물신주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사건은 돈으로 자신을 과시하려는 허영심과 돈을 최고로 여기는 한탕주의가 빚은 희극이자 비극이다.

-중산층에까지 번지고 있는 고급 선호 현상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니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은 상당한 진실을 담고 있다. 질이 좀 떨어져도 국산품을 쓰자는 주장이 먹혀들던 시절도 지났다. 소비자의 고급스런 안목이 국산품의 품질 향상을 자극하는 측면도 분명히 있다. 문제는 일부 부유층의 지나친 행태가 사회 전반에 끼치는 악영향이다. 분수에 맞지 않더라도 부유층을 흉내내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과 이를 이용하는 상술이 진짜 걱정이다. 단순히 합리적인 소비만 강조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물질만능 풍조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 고민이 언제 끝나시는 건지 의문일 뿐더러 한겨레의 결론은 식상하게도 '물신만능주의'와 '한탕주의'에 대한 훈계로 마무리되고 있다. 아무런 사고도 자극하지 않는, 맥빠진. 과연 "분수에 맞지 않더라도 부유층을 흉내내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이 문제인가? 그래서 분수를 지키자? "일부 부유층의 지나친 행태"는 또 무엇인가? "분수를 모르는 일부 부유층"? 그러니가 부유하기는 한데 아직 세계 수준에는 미달인 졸부들? "문질만능풍조"에 대해서 고민하면, 무슨 정신운동이라도 벌여야 할까? (같은 검색어로 뜨긴 했지만) 조선일보 칼럼까지 읽게 된 건 한겨레의 칼럼이 너무 맹탕이어서였다.

 

 

 

 

조선일보(06. 08. 10) [만물상] 신종 명품 사기극

-16세기 로마의 조르조 추기경이 큰돈을 들여 ‘잠자는 큐피드’를 샀다. 고대 조각상이라 했다. 알고 보니 젊은 미켈란젤로가 만든 것이었다. “자네 작품을 땅에 묻었다가 고대 로마 작품이라고 팔면 훨씬 많은 돈을 받을 걸세.” 한 친구가 미켈란젤로를 꼬드겼다. 미켈란젤로는 큐피드상을 파묻었다가 친구에게 건넸다. 친구는 그걸 로마로 가져가 다시 땅 속에서 묵힌 뒤 추기경에게 팔았다.

▶르네상스시대 영국과 독일 귀족들이 자식들을 3~4년씩 파리와 이탈리아로 보내는 ‘그랜드 투어’가 유행했다. 자식들은 세련된 문화인 행세를 하느라 비싼 예술품을 잔뜩 갖고 돌아왔다. 태반이 가짜였다. 예술품 위조의 맥은 1980년대 영국의 모작(模作) 거장 에릭 헵번에게 이어 왔다. 그는 “내가 500점 넘게 그린 가짜 그림 목록을 폭로하면 미술시장이 마비된다”고 했다. “내 그림이 대영박물관과 워싱턴 국립미술관에도 걸려 있다”고 비웃기도 했다.

▶예술품은 물론 약품부터 자동차까지 베끼지 못할 게 없는 세상이다. 세계 위조품시장은 10년 사이 17배나 팽창했다고 한다. 2003년 한 해에 4500억달러어치의 위조품이 세계를 휘저었다. 세계 무역의 6%에 이르는 덩치다. 하도 교묘하게 만들어서 진품 가게가 애프터서비스를 해주는 위조품들도 자꾸 늘어난다.

▶‘루이뷔통은 변호사 40명과 조사관 250명을 전 세계에 풀어 놓았다. 이들이 2003년에 덮친 위조 현장만 4200곳에 이른다. 그래 봐야 ‘언 발에 오줌 누기’밖에 안 된다. 명품 회사들은 때 되면 모여 머리를 맞대곤 하지만 밀려드는 위조의 해일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 세계적 ‘짝퉁 전쟁’에서도 보지 못한 신종 명품 사기극이 서울에서 벌어졌다. 연예인과 부유층이 원가 8만~20만원짜리 국산 시계를 스위스 명품으로 속아 수천만원까지 주고 샀다.

▶이 사기꾼은 명품을 위조하는 차원을 넘어 아예 있지도 않은 브랜드를 하나 창조한 뒤 최고 명품이라고 거짓 선전했다. 중국 부품을 국내에서 조립한 시계를 스위스로 가져가 통관 서류까지 받아 되들여 왔다. 백화점에서 특별전까지 열었다. 멀쩡한 사람들이 ‘엘리자베스여왕의 시계’라는 말에 넘어갔다. ‘짝퉁’은 명품의 후광을 맛보려는 서민들을 유혹한다. 그러나 이번 사기극은 몇몇 특별한 사람들의 허영을 농락했다는 점에서 고소한 구석이 없지 않다.(주용중 논설위원)

(*)마지막 문장이 핵심이다. "이번 사기극은 몇몇 특별한 사람들의 허영을 농락했다는 점에서 고소한 구석이 없지 않다"는 것. 이게  "문제는 일부 부유층의 지나친 행태가 사회 전반에 끼치는 악영향이다"라는 한겨례의 판단보다 현실적이며 합리적이다. 몇 천만원짜리 시계도 차 본 사람이나 차며 부러워하는 사람이나 부러워한다. 돈이면 다 되는 사회라고 해서 다 죽은 혼들만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06. 08. 09-10.

 

 

 

 

P.S. 이번 사건으로 챙기게 된 사실은 '명품'이란 표현 자체의 이데올로기이다. 중앙일보에서 정리해준 바에 따르면, "명품(名品)=고가의 브랜드 제품을 일컫는 말이다. 원래 '사치품'으로 불리다 1990년대부터 '명품'이란 단어로 대체됐다. 일반적으로 값이 비싸고, 역사가 깊고, 소량 생산되는 제품을 말한다." 진정한 사건은 '가짜 명품' 따위가 아니라, '사치품에서 명품으로의 이행'에 있었던 것이다. 아래는 그와 관련한 칼럼.

한국일보(06. 08. 16) 사치품과 명품

-인간은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찾는 합리적 소비를 추구한다는 가정은 경제학을 떠받치는 기본 전제다. 가격이 오르면 수요는 감소한다는 것이 유명한 마샬의 수요법칙이다. 그러나 실생활에서는 비쌀수록 도리어 수요가 늘어나는 비합리적 소비행태가 버젓이 존재한다.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 베블렌은 이를 사치적 소비를 통해 신분을 과시하려는 현상이라고 설명, ‘베블렌 효과’라는 용어를 낳았다. 비싸고 쓸모도 적은 은제품이 상류층의 식기로 널리 쓰이는 유일한 이유는 과시적 소비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싸구려 중국시계를 스위스 명품이라고 속여 수 천만원씩 받고 판 명품시계 사건은 베블렌 효과를 극적으로 활용한 사기 수법이다. 최근에는 180년 전통의 이탈리아 명품이라던 시계 역시 가짜라는 보도가 있어 경찰이 가짜 명품에 대한 전면 수사에 나섰다. 문제의 가짜 명품업체는 강남 한복판에 초호화 매장을 내고 유명 연예인을 개점행사에 대거 동원했는가 하면 유명 인사들에게 시계를 선물로 뿌리는 판촉전략을 썼다. 명품을 찾는 소비심리에는 천박한 과시욕과 함께 명품을 쓰는 계층과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욕구가 있다는 점을 간파한 상술이다.

-허황된 명품소비 심리 못지 않게 심각한 문제가 명품이란 말의 남용이다. 요즘 명품으로 통하는 제품들은 실은 사치품이 더 적합한 표현이다. 과거 박정희 정권 시대만 해도 이들 제품은 사치품이라고 불렸다. 영어로도 ‘값 비싸고 호화스럽다’는 의미의 럭셔리(Luxury) 제품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들 사치품이 장인정신과 예술혼이 살아 있는 작품을 의미하는 명품으로 슬며시 간판이 바뀌었다. 사치라는 단어의 거부감을 없애고 예술작품이라도 소장한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말장난이 절묘하다.

-과시적 소비는 베블렌이 19세기말 2차 산업혁명을 통해 부를 축적한 벼락부자들의 타락적 소비행태를 질타하면서 쓴 용어다. 당대에 부를 축적한 부자들이 전통적 부자에게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돈을 물 쓰듯 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잘못된 소비행태의 이면에도 갑작스레 부를 얻은 졸부들의 과시욕이 있다고 생각된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구두 굽이 닳는 것을 막기 위해 징을 박아가며 30년 동안 같은 구두를 사용한 것이 사후에 밝혀져 새삼 감동을 주었다. 진정한 부자의 소비가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해준다.(배정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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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이재현의 '가상 인터뷰'에서 프리모 레비 편을 옮겨온다. 이 연재에서는 이전에 <모크샤>의 저자 올더스 헉슬리 편을 옮겨온 기억이 난다. 국내에는 직접적으로 소개된 바 없지만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이나 증언자로서 가장 저명한 지식인 작가이다. 나도 사실 그의 책을 실제로 처음 본 건 모스크바의 구내 헌책방에서였는데, 영어본 몇 개가 꽂혀있었던 것. 나는 그가 유태인이라는 건 알았지만 이탈리아 사람이라는 건 그 이후에야 알게 되었다. 최근에 레바논 사태와 관련하여 한번쯤 귀담아볼 만한 '인터뷰'이다.

 

한국일보(06. 08. 08) 프리모 레비(Primo Levi, 1919-1987).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이며 현대 이탈리아 문학을 대표했던 유태계 이탈리아인. 자신이 태어난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홀에서 투신 자살했다. 토리노에서 태어난 레비는 토리노 대학 화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부가 최초의 인종차별법을 공포해서 유태인들은 공립 학교에 다니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었지만 재학생들은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의 졸업증서에는 ‘유태인’이라고 기재되었다. 졸업 후 제약 공장에 다니던 그는 반파시스트 저항 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진다.



-독일의 패전 후 어렵게 복귀해서 도료 공장에 일자리를 구한 레비는 1946년 ‘이것이 인간인가: 아우슈비츠에서의 생존’을 써서 이듬 해 출판한다. 1963년에도 수용소 체험 에세이집 ‘휴전’을 출판하고, 이어서 단편집 ‘자연스러운 이야기’(1967) ‘형식의 결함’(1971) ‘주기율표’(1975) ‘릴리트와 단편들’(1981), 시집 ‘브레마의 선술집’(1975) 및 노동자에 대한 민속지학적 이야기 책 ‘멍키 스패너’(1978), 에세이집 ‘익사한 자와 구조된 자’(1986) 등의 작품을 출간해서 이탈리아 안팎에서 국제적 명성을 얻는다. 아우슈비츠에서 나치가 그에게 문신했던 수인 번호 174517는 그의 묘비에도 새겨져 있다.

 

 

 



-1982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했을 때 레비는 이를 비판하는 성명을 내고 이스라엘의 ‘공격적 내셔널리즘’을 비판하면서 이에 ‘저항할 책임’을 주장했고, 또 디아스포라(이산)의 국제적 체험에 깃든 관용의 사상적 전통을 지켜내야 한다고 역설했다(*서경식 선생의 책들에서 프리모 레비는 자주 참조된다. 아우슈비츠의 또다른 생존 체험기로는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의 책들이 있다. 물론 그 수용소장 <헤스의 고백록>도 참조가 되겠다).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했던 이스라엘 국방장관 샤론이 다시 권력에 복귀했을 때에도 애써 낙관적으로 역사와 현실을 보려고 했던 레비가 끝내 자살을 하게 된 것은 다큐멘터리 ‘쇼아’에 대한 보수 진영의 반동으로 소위 ‘역사가 논쟁’이 독일에서 터진 탓이다. 1986년 독일의 우파 역사가들은 학문의 외피를 쓴 채 독일 파시즘의 불가피성을 노골적으로 옹호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프리모 레비는 40년에 걸친 자신의 증언에 대해 절망적으로 회의하게 되었다(*이러한 절망은 서로에 대한 증오와 함께 아직 현재진행이다).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계속 살아 남아서 글로 증언하고 했던 정신적 계기는 바로 ‘기억하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의미’이며 ‘인간은 불행한 경험 속에서도 살아가야 할 의무’와 ‘그 경험을 전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그 자신이 믿어 왔는데, 그렇게 ‘증인의 의무를 갖고 지옥에서 나왔지만’ 이제 우파 역사가들의 뻔뻔스러운 역사 왜곡 앞에서는 ‘증언자로서 자신의 자격에 대한 회의’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의 자살은 당시 유럽에 큰 충격을 주었다. 왜냐하면 아우슈비츠는 결코 끝난 것이 아님을 만천하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이재현(이하 현) 레비 선생님, 이스라엘의 광기가 너무 무섭습니다. 최근에는 민간인 마을을 폭격해서 수십 명을 학살했습니다. 여기에는 너덧 살 된 어린이들도 포함되어 있답니다. 3주 넘게 계속된 무차별 공격으로 숨진 레바논 측 민간인 사망자가 7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지난 7월말 현재 난민 숫자는 레바논에서만 68만 명이고 시리아, 요르단, 사이프러스 및 걸프 지역에도 22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프리모 레비(이하 레비) 살해된 민간인 다수는 피난민들이고 사망자 절반 가까이는 아이들이야. 공습으로 죽은 유엔 감시단원들은 이스라엘측이 고의적으로 정밀 폭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지. 무너진 건물에 깔려 있는 시신을 포함하면 죽은 사람들 숫자는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을 게야.

현: 지금 이스라엘은 레바논의 거의 모든 곳을 아우슈비츠로 만들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홀로코스트(대학살) 범죄자라고 하면 아이히만과 같은 나치 파시스트 도살자들을 가리켰지만, 이제는 레바논 침공을 지지하는 이스라엘 국민들이 홀로코스트의 범죄자들로 전락해 버린 셈입니다. 전세계에서 지탄을 하고 고발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뻔뻔스럽게 민간인들을 대낮에 학살하는 이스라엘의 야만적 전쟁 범죄를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기란 너무 힘들고 괴로운 일입니다. 인간의 탈을 쓰고 과연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건가요?



레비: 니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지. 괴물과 싸우다 보면 괴물이 되어버린다고 말이야.

현: 이스라엘은 이번 침공의 발단이 헤즈볼라에 의한 이스라엘 병사 2명의 납치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레비: 우선 ‘납치’란 말이 잘못 된 거야. ‘납치’란 말은 이스라엘과 미국의 입장에서의 표현인 거고. 헤즈볼라 입장에서는 1982년 창설된 이래 이스라엘과 전쟁 중이니까 이스라엘 병사들은 엄연히 전쟁 포로인 거지(*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침공 자체는 정당화되는 것인가? 민간인 학살만이 문제될 뿐?). 그리고 원래 이번 사건은 지난 6월 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인민저항위원회(PRC)의 지도자 아부 삼하다나 등 4명을 살해하고, 가자 지구 북부 해안을 폭격해서 팔레스타인 민간인 7명이 사망하고 30명 넘게 부상하게 된 사건이 발단이라네. 그 사건 이후 하마스는 2005년 2월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사이에 성립된 휴전의 무효를 선포하고 이스라엘과 전투를 하기 시작한 걸세. 헤즈볼라 측의 공세는 이 전투의 연장인 거야.

현: 헤즈볼라는 뭐고 하마스는 뭔가요?

레비: 헤즈볼라는 ‘신의 당’이란 뜻을 가진 레바논의 시아파 이슬람주의 정치 조직인데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때 창설되었고, 1992년에 처음 의회에 진출해서 현재 전체 128석의 의회에서 14석을 차지한 합법 정당을 갖고 있기도 해. 물론 산하에는 무장 조직도 있고, 평소에 의료와 교육 등의 영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지. 하마스는 ‘이슬람 저항 운동’이란 뜻의 팔레스타인 수니파 이슬람주의 정치 조직인데 1987년의 제 1차 인디파타(봉기) 때 ‘무슬림 형제당’의 가자 지구 조직으로 출발했어. 2004년 3월에 하마스 지도자 야신이 이스라엘군에 의해 암살된 적이 있고, 올해 1월 총선에서 하마스가 압승해서 팔레스타인 의회의 다수당이 되었지. 하마스가 집권하자마자 미국은 팔레스타인 원조를 끊어 버렸지.

현: 헤즈볼라와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강경하게 대응한다는 공통점을 가졌군요. ‘무슬림 형제당’은 1928년과 1929년 사이에 이집트에서 창설된 최초의 ‘정치적 이슬람주의’ 조직이고, 정치적 이슬람주의의 대표적 사례는 이란에서의 시아파 집권이지요. 그러니까 헤즈볼라와 하마스는 단지 이슬람 율법을 전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슬람 국가의 창설을 통해서 이슬람화를 정치적으로 성취하려는 이념을 갖고 있는 거네요. 그들의 무장 투쟁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적 침탈과 지배에 대한 불가피한 대응인 거고요.

레비: 국민 국가마다 세부적인 사정은 다르지만 대체로 그런 거지. 그런데 문제는 헤즈볼라와 하마스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우파 강경 집단이야. 1995년에는 이스라엘의 라빈 총리가 1993년에 팔레스타인 측과 오슬로 평화 협정을 맺었다는 이유로 해서 이스라엘의 극우파에 의해 암살된 적이 있지. 또 올 3월에는 이스라엘 총선에서 카디마 당이 승리를 했는데 이 카디마 당은 강경 우파 정당인 리쿠드당 당수로서 총리가 된 샤론이 작년에 새롭게 출범시킨 정당이야.

현: 샤론은 1967년 3차 중동 전쟁에서 전쟁 영웅으로 떠오른 다음, 국방장관 시절이던 1982년 메나헴 베긴 당시 총리에게 보고하지 않은 채 난민촌을 공격해서 많은 민간인을 학살한 적이 있지요? 이 때문에 팔레스타인 사람들로부터 ‘도살자’라고 불리기도 했구요.

레비: 그런 샤론이 총리 취임 후에는 독자적인 제안을 만들어, 이를 기반으로 작년 9월에 38년 간 점령했던 가자 지구를 포기했다네. 그 제안이란 1967년 제 3차 중동전쟁 이전의 점령지는 이스라엘 영토로 인정하고 그 대신 동예루살렘과 요르단강 서안을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쪽에 돌려준다는 내용이지.

현: 그런데 헤즈볼라나 하마스는 이 제안을 인정하지 않는 거네요. 제 1차 중동전쟁이 일어났던 1948년 이전을 기준으로 해서 본다면 이 제안은 애당초 말이 안 된다는 거지요?

레비: 이러한 학살과 증오와 광가의 역사에 대한 성찰과 비판 없이 잠정적인 정치 협상 기술만으로는 절대로 참다운 평화가 만들어질 수가 없어. 게다가 아랍 내 일부 친미 권위주의 국가들의 집권층은 팔레스타인에 자치와 연대에 기초한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속으로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있어. 대부분의 아랍 사람들이 현재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 때문에 헤즈볼라를 지지하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지.

현: 그럼 이번 레바논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고, 또 어떻게 힘을 보태야 하나요?

레비: 나라고 해서 해답이 있는 건 아냐. 다만 단테의 ‘신곡’ 지옥편 제 26곡의 오딧세이 부분에서의 인용문을 들려주고 싶네. “너희들은 짐승 같은 야만적 삶을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덕과 지식을 구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로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도록 내게 힘을 주었던 구절이라네.



현: 어쨌든 일단 즉각적으로 휴전이 이루어져서 레바논 사람들이 한숨을 돌렸으면 좋겠네요. 협상은 그 다음에 하면 되는 거니까요. 우선 사람이 살고 봐야지요.(문화비평가 이재현) *프리모 레비에 대한 서경식 선생의 책이 이후에 출간됐다.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창비, 2006)가 그것이다.


 

 

 

 

06. 08. 08

P.S. 이어서 헤즈볼라측 의견을 들어본다. 한겨레의 국제분쟁 전문기자 정문태씨가 헤즈볼라의 창설주역이자 레바논의 국회부의장 하스 하산을 만나서 들어본 이야기이다. 그는 "군인 둘 때문에 전쟁 일으키는 이스라엘을 국제사회는 이해하지 못한다”며 모든 책임은 이스라엘에 있다고 말한다.  

 

 

 

 

한겨레21(06. 08. 03) 조건 없는 휴전, 협상은 그 다음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정치란 참 실없는 짓이구나. 늘 현실과 동떨어진 딴 세상에서 놀고 있다.” 뭐, 이런 비관적인 건데, 멋지게 꾸며놓은 레바논 의회- 사실은 세상 모든 의회- 앞마당에 설 때마다 늘 그런 생각이 들었다.

-7월25일, 504호 의원실 문을 두드렸다. 헤즈볼라당 의원이며 레바논 국회부의장인 하스 하산 후세인(Dr. Has Hassan Houssein). 그는 1982년 헤즈볼라를 창설한 주역 가운데 한 명이다. 현재 14개 의석을 지닌 헤즈볼라당 출신으로서 헤즈볼라 최고지도자인 나스랄라를 정치적으로 보좌하는 인물이다.

-어제 헤즈볼라 쪽에서 휴전을 제의했는데.

=야만적인 이스라엘의 공격을 보라. 수많은 시민을 살해하고, 레바논 사회를 파괴시키고…. 이스라엘이 공습한 베이루트 남부 지역은 테러리스트가 아니고 민간인 거주지일 뿐이다.

-그런 거 말고, 휴전 이야기부터 좀 해보자.

=그래서 휴전하자는 거다. 조건 없는 휴전부터 하자는 거다.

-왜 지금 와서 휴전하자는 건가? 처음부터 개전을 말았어야지.

=이건 우리(레바논) 전쟁이 아니다. 그이들(이스라엘) 전쟁이다. 이스라엘이 전쟁을 일으켰다.

-‘무조건 휴전’을 내걸었는데, 그 다음은?

=휴전부터 하고 협상해나가면 된다. 포로 교환을 포함해서 모든 사안을 하나씩.

-이상적이긴 한데, 이스라엘이 들어줄 것 같은가? 휴전협상도 흥정인데.

=그러니 조건 없이 휴전부터 하자는 거다. 서로 조건 내걸면 휴전하기 어려우니.

-무조건이란 것도 정치적으로 말하자면 상대방이 받아들일 만한 ‘거리’를 주는 거 아니겠나? 예컨대, 헤즈볼라가 납치한 군인 두 명의 석방을 넌지시 보장한다든가.

=그건 무조건이 아니지. 우린 완벽하게 조건 없는 휴전을 제의한 상태다. 그런 건 휴전 뒤에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먼저 휴전해서 시민 희생부터 줄이자는 게 우리 뜻이다.

-형식상 이스라엘은 납치당한 군인 둘을 빌미로 공격을 시작했는데, 명분 없이 휴전을 하겠나?

= (말 자르고 흥분하며) 군인 둘 납치와 전쟁은 다른 사안이다. 전쟁을 그렇게 쉽게 벌이나?

-그럼, 헤즈볼라는 군인 둘을 납치할 때 이스라엘이 어떻게 나올지 예상 못했다는 건가?

=세상이 모두 이스라엘을 예상할 수 있다. 레바논을 파괴시키겠다는 건 이스라엘과 미국의 계획이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이걸 ‘새로운 중동’의 시작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럼, 예상했으면서 왜 이스라엘에 말려들었는가.

=(얼굴을 돌려버리며) 이런 유의 대화라면 그만두자.

-내 뜻은 헤즈볼라가 영리하지 못했다는 거다. 이스라엘에 전쟁의 빌미를 줬잖은가.

=군인 둘을 납치했든 안 했든, 그런 건 이스라엘에 아무 상관이 없다. 군인 둘 때문에 전쟁을 일으켜 시민을 마구 죽일 수 있는 이스라엘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이해하려고 여기까지 온 거 아니겠나?

=(좀 누그러지면서 겸연쩍은 듯 크게 웃고) 내가 당신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국제사회가 그렇다는 거다. 이스라엘을 이해하지 못하니 국제사회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거다.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군인 둘을 납치할 땐 전쟁을 예상했겠지? 나스랄라가 올해 두 번씩이나 이스라엘에 감금된 헤즈볼라 석방을 공언했고, 이번 작전명도 ‘진실한 약속’이 아니던가.

=그게 어떻게 전쟁이 되어야 하나? 그러면 이스라엘이 전쟁을 벌일 권리가 있다는 건가? 이렇게 시민을 살해할 권리가 있다는 건가? 힘 있는 자는 아무나 죽여도 된다는 건가?

-그러면 계획도 없었고 준비도 없었으니 이번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격에 놀랐겠네?

=왜 놀라나? 이스라엘은 늘 그런 식이었는데. 내가 놀란 건 이스라엘의 공격이 아니라 그런 이스라엘을 이해하지 못하는 국제사회다.

-이번 전쟁으로 누가 이익을 챙길 것으로 보나?

= 이스라엘이고 미국이겠지. 잃는 쪽은 레바논과 아랍 전체고(*이건 사실과 다르다. 8월 7일자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4주째 이스라엘의 공세에 맞서고 있는 헤즈볼라의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46)가 ‘아랍세계의 새로운 상징’,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고 <뉴욕타임스>의 보도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아랍인들은 나스랄라를 ‘약속을 지키는 인물’ ‘정치·군사적 능력을 겸비한 아랍지도자’로 평가한다. 60년 베이루트 동부 빈민가에서 야채장수의 아들로 태어난 나스랄라는 이라크와 이란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헤즈볼라에 참여했다. 92년 전임자가 이스라엘 로켓에 암살되자 사무총장에 선출돼 헤즈볼라를 레바논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조직으로 키워냈다." 그러니까 이번 전쟁으로 이익을 챙기는 축에는 헤즈볼라도 포함되는 것.) 

-그럼, 헤즈볼라는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는 건가? 뭐 때문에 싸우나?

=물리적으로야 헤즈볼라도 타격을 입겠지만, 우린 정신적인 것들로 계산한다. 우린 잃을수록 더 강해진다. 헤즈볼라는 이 전쟁으로 더 강해질 거고, 이스라엘은 결국 패하게 된다.

-헤즈볼라가 이미 상당한 타격을 입었을 텐데, 장기전에 돌입한다면 버텨낼 수 있겠나?

=어리석은 질문이다. 헤즈볼라의 역사를 봐라. 아랍에서 이스라엘을 물리친 유일한 조직이다.

-레바논이 다시 내전에 빠질 가능성은 없겠지?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현재 총리를 포함해 의회까지 모두 하나다. 내전은 없다. 적은 하나다. 이스라엘뿐이다.

-동료 의원이 그의 방으로 찾아와서 자리를 털었다. “빨리 휴전하고 복구해야 할 텐데….” 인사랍시고 던졌지만, 공허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정치는 현실과 여전히 멀리 떨어져 있기만 했다. 그이 말이 모두 옳을지언정, 이 시간에도 수많은 시민이 죽임을 당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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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8-08 18:38   좋아요 0 | URL
프리모 레비가 계단에서 떨어져 자살한 것은 충격이었습니다.
(서경식의 책에선 계단에서 떨어졌다고 묘사)
그의 책엔 펠릭스 누스바움과 프리모 레비가 단골로 출연하지요.
지금 서경식의 <난민과 국민 사이>를 읽고 있는데
재일조선인과 팔레스타인, 아우슈비츠 모두 공통점이 있음에 씁쓸하군요.
날이 겁나게 더워서 컴 켜고 당최 뭘 끄적거리는 일이 끔찍하군요.
읽는 즐거움만 배가시키고 있답니다. 퍼갑니다.

로쟈 2006-08-08 18:53   좋아요 0 | URL
조르지오 아감벤이란 이탈리아 철학자의 아우슈비츠 3부작이 있는데, 이 주제와 관련하여 가장 고대하고 있는 책입니다. <호모 사케르> 같은 건 근간으로 돼 있는데도 빨리 안 나오네요. <난민과 국민 사이>는 저도 벼르고 있는 책인데, (맨날 하는 소리로) 시간을 내기가 힘들군요(--;)...

오드라데끄 2006-12-02 20:31   좋아요 0 | URL
이재현 씨 저 가상 인터뷰 보고 불쾌했어요. 레비 책을 하나도 안 읽고 그냥 레비가 레바논 침공과 독일의 역사가 논쟁에 영향을 받아 자살했다는 서경식 이야기 한 마디만 듣고 썼더군요.(서경식은 아주 조심스럽게 내리는 추론인데 그걸 거칠게 가져다 써놓고 마치 자기 이야기인 척하는 것도 불쾌하고요) 레비가 제대로 소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저런 피상적인 대사들을 그것도 그의 글쓰기의 핵심인 세밀한 묘사, 위트, 겸손한 어조, 고도의 상징 등을 하나도 살리지 못한 채 무슨 고리타분한 랍비처럼 보이게 만들다니...... 레비의 팬으로서 너무나 너무나 불쾌합니다. 아니 신문 한면 통째로 글 쓰는 사람이 이래도 되는 겁니까. 게다가 레비는 자신은 목격자, 증언자로서의 역할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경험한 것에 대해서만 아주 치밀하게 말하고 싶다고 했지요. 아 예전에 신문에서 보고도 분개했었는데, 다시 한번 분그 불쾌감이 고스란히 떠오르는군요. 아뭏튼 정말 정말 맘에 안 들어요. 이 사람. 왜 우리 신문에는 이렇게 자기가 모르는 걸 최소한의 노력도 없이 아는 척하는 글들이 많은 걸까요. 아우 승질나.

로쟈 2006-12-03 01:14   좋아요 0 | URL
그러시군요. 프리모 레비의 책들이 한권도 소개되지 않은 터라 '소개(?)'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옮겨왔는데, 오해의 소지도 있다면 참조하겠습니다. 제대로 소개된다면 '아는 척하는 글들'이 알아서 꼬리를 내리겠지요...

오드라데끄 2006-12-16 17:37   좋아요 0 | URL
헉, 제가 너무 흥분해서 글을 옮기신 로쟈님이 불쾌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못 했어요. 이런 자료들을 링크 걸어주시는 건 너무너무 도움이 됩니다. 위의 책 모음도 그렇고요. 그리고 제 마지막 문장에 방점은 '최소한의 노력도 없이'였답니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해요. 저도 로쟈 님 리뷰나 페이퍼들을 아주 유용하게 보고 있는 사람들 중 하나랍니다. 님 말씀대로 제대로 소개가 되면 오해의 여지도 줄어들겠지요... 제대로 소개다 되어야 할 텐데... ㅠㅠ (관련자로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로쟈 2006-12-17 01:21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 '관련자'분들의 의견들이 더 많이 나와야지요.^^ 듣기에 내년엔 레비의 책들이 두어 권 나올 거 같더군요. 얼마간 해갈이 될 걸로 기대해 봅니다...
 

필요 때문에 번역에 관한 책들을 훑어보다가 폴 리쾨르의 <번역론>(철학과현실사, 2006) 출간 소식을 접했다. 다행히도 중앙일보에 역자들과의 인터뷰 기사가 게재되었기에 옮겨온다.

중앙일보(06. 08. 02) "'번역론' 번역하느라 1년을 티격태격"

-'좋은 번역'이란 무엇인가. 서양철학과 번역학을 각각 전공한 윤성우(39.한국외국어대) 교수와 이향(36.한국외국어대 통역번역대학원) 박사는 지난 1년간 이 문제를 놓고 씨름했다. 프랑스 현대철학자 폴 리쾨르의 <번역론>을 우리말로 잘 번역할 수 있는 방법을 놓고 이들은 팽팽한 샅바싸움을 벌였다. 그 결과물이 <번역론-번역에 관한 철학적 성찰>(철학과 현실사)이란 이름으로 최근 번역돼 나왔다. 1일 오전 이들을 만나 공동번역 과정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봤다.

-두 사람의 입장은 원문과 번역문 중 어디에 강조점을 둘 것인가를 놓고 갈렸다. 리쾨르 철학 전문가인 윤 교수는 원문의 형식에 충실하게 번역하자는 입장이었다. 이에 반해 이 박사는 원문의 형식을 다소 파괴하더라도 전체적 의미를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자고 맞섰다. 두 입장 가운데 어느 것이 좋은 번역의 기준이 될 것인가. 원문 한줄 한줄을 놓고 두 사람의 주장은 평행선을 그렸다고 한다. 비교적 적은 분량의 책인데도 1년이란 세월이 소요된 것은 그 때문이다(*두 사람이 고심한 만큼 신뢰할 만한 번역서가 아닐까 믿어본다. 한데, 본문 68쪽짜리면 팜플렛 수준이군! 영역본은 'On translation'(2006)으로 국역본과 거의 동시에 출간됐다).

On Translation (Thinking in Action S.)
이 향="우리처럼 조합이 된 공동 번역은 처음인 것 같아요. 공역 과정은 상대방을 설득하는 과정이었어요. 적정한 선에서 서로 양보해 번역어를 결정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어요. 철학적 개념어의 경우 철학 전공이 아닌 제가 봐도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을 해야한다고 주장했어요. 개인적으론 해석학과 번역의 관계에 새롭게 눈뜨는 계기가 됐어요."

윤성우="원문에 충실할 것인가, 원문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인가. 무척 오래된 논쟁입니다. 어느 한 쪽으로 결론 날 가능성은 앞으로도 없다고 봅니다. 리쾨르의 책을 통해 생각하게 되는 것은 한 고전에 대해서도 다양한 번역본이 나오면 좋다는 것입니다. 번역의 우열에 대한 섣부른 판정을 내릴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공동작업을 통해 두 사람은 리쾨르가 <번역론>에서 제기한 "좋은 번역의 절대적 기준이란 없다"는 관점에 공감하게 됐다고 한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각주가 실린 전문가용 번역과 가독성이 높은 대중용 번역이 모두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독자가 자신의 필요와 목표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버전의 번역이 요청된다는 것이다.



-<번역론>은 리쾨르가 90년대 후반부터 써온 글들을 모아 타계하기 1년 전인 2004년 프랑스에서 출간한 책이다. 부제는 '번역에 관한 철학적 성찰'. 리쾨르가 번역을 단순히 외국어 사이의 의사소통 수단만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내는 부제다. 리쾨르는 번역을 철학의 영역으로 대폭 확장시키며 '번역=철학'이란 견해를 밝힌다. 어떤 사태와 의미에 대한 오해가 생길 수 있는 상황에선 늘 번역이 필요하다고 했다. 번역은 다른 문화와 세계관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대화를 풀어가는 철학 행위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리쾨르에 따르면 번역은 외국어 사이에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모국어를 구사하는 동시대인의 문헌이나 대화를 타인에게 전달할 때도 번역 행위가 개입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 자체가 곧 번역 행위라고도 말할 수 있겠는데, 이처럼 중요한 번역을 경시하는 풍조가 우리 사회에 만연된 까닭은 무엇일까.

윤성우="서양에선 20세기 초반부터 번역의 철학적 의미에 대한 논의들이 활발히 진행됐습니다. 일본의 경우 서양 근대문화를 수용할 때 번역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는 외국어를 주로 취직.승진 같은 실용적 측면에서 보기 때문에 번역의 철학적 의미에 관한 논의가 적은 것 같습니다."

이 향="번역과 철학을 연결시키는 일은 사실 실무 번역자들에게는 낯선 설명입니다. 번역자들은 실제 구체적 도움이 되는 것들을 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번역자들도 번역의 철학적 의미와 같은 본질적인 물음에도 소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이번에 깨닫게 됐습니다."



-현재 또 다른 책의 공동번역을 진행하고 있는 두 사람은 논문쓰기보다 번역하기가 더 힘들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전문 번역서를 제대로 평가하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이러한 지적들이 나온 지도 꽤 오래되었다. 그런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서 누가 움직여야 하는 것인지?).

06. 08. 07.

 

 

 

 

P.S. '번역의 문제'에 관련하여 내가 읽었거나 읽을 계획으로 있는 책들을 대략적으로 꼽아보았다. <번역과 주체>, <번역과 제국>이 번역과 철학, 정치학과 관련한 책이라면, <번역은 반역인가>,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는 우리의 번역/오역 현실을 둘러보게 하는 책이다. <번역은 내 운명>은 현장 번역가들의 육성을 담고 있다. 거기에 일본작가 쓰지 유미의 <번역사산책>, <번역과 번역가들>이 내가 이전에 부분적으로 읽은 관련서들이다. 음, 어디에서부터 시작을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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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6-08-07 18:27   좋아요 0 | URL
1년 동안 리쾨르를 공부한 적이 있었는데, 문학도로서 '악의 상징'이나 '해석의 갈등' 같은 책은 매력적이더라고요. 정치적 입장에서는 차이가 나지만.
윤성우 선생님의 리쾨르 관련 개설서도 잘 읽히고 좋은 한국어 문장들을 구사하시던데, 이렇게 노력을 많이 하셨다니 기대됩니다. :)

로쟈 2006-08-07 18:50   좋아요 0 | URL
만만찮은 책들을 읽으셨군요. 사실 이번에 나온 책은 60여쪽 분량이니까(국역본 166쪽은 좀 부풀려진 것이고) 실제 작업보다는 '티격태격'에 더 많은 시간이 소모되었을 듯합니다. 어쨌거나 리쾨르의 책들 가운데 가장 '빨리' 읽을 수 있을 거 같네요. 리쾨르 입문서 가운데 리처드 커니가 쓴 게 있는데, 그런 종류도 소개되길 이 참에 기대해봅니다...

swyun2002 2006-08-08 00:3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이번 번역에 참여했던 공역자중 하나인 윤성우입니다.로자님의 글 잘 보았읍니다.독서력과 내공이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기인님과 로자님의 댓글도 잘 읽었읍니다.이렇게 찾아서 읽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참고로 제가 쓴 해제와 저자인 리쾨르 소개가 60쪽 정도이고 리쾨르의 글은 실제 약 90쪽 정도 입니다 .  다른 공역자인 이 향 박사께서 작년 학위 준비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없어 조금 길어진 면이 없진 않지만 1년을 내내 "티격 태격"한 것은 아닙니다. 통번역을 전공하는 분이라 불어는 물론이고 한국어 구사가 뛰어나신 장점과 제가 리쾨르 전공한터라 상호 보완성이 있었읍니다. 역자 후기에도 나와 있지만,  장절을 나누어서 번역하여 합친 그런 공역은 아닙니다. 원전을 AZ까지 함께 읽고 문맥과 저자의 의도에 부합하도록 우리말을 거듭해서 고민하며 옮겨 보았고 역주도 관련문헌을 찾아서 읽고 이해한 내용을 바탕으로 적다 보니 시간이 그렇게 가더라구요. 그렇다고 해도 틀린 불어 철자나 오역이 없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읽어시다가 발견되면 알려주세요.담에 반영하도록 노력해볼께요.야튼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리차드 커니는 파리에 머물며 리쾨르에게서 직접 배우기도 하고 오랜 교분이 있는 학자라 좋은 입문서가 될 듯합니다.  커니덕에 리쾨르가 종종 강연차 더블린에 가기도 했읍니다. 짧은 글로는 스피겔버그가 쓴 "현상학적 운동 II "'에 나오는 글도 추천할만 합니다.


로쟈 2006-08-08 00:15   좋아요 0 | URL
직접 찾아주셔서 영광입니다. 사실은 낮에 책 주문을 넣었기 때문에 저는 모레쯤 읽어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마침 번역 문제에 관한 글을 쓸 일이 생겼는데, 요긴한 참조가 될 듯합니다. 커니의 책은 'On Ricoeur'를 염두에 둔 것이었는데, 윤선생님 같은 전공자께서 번역해주시면 좋을 거 같네요.^^

swyun2002 2006-08-08 00:28   좋아요 0 | URL
내 그 책은 저도 있어요.볼만 합니다.사실 영어권과 불어권의 세컨드리가 한 권정도씩 번역이 나와야 하는데, 눈은 졸리고 손은 더디어서요. 꾸뻑

기인 2006-08-09 05:51   좋아요 0 | URL
ㅋㅋ 윤성우 선생님 답글에 오타 많습니다 ^^; ㅎㅎ

swyun2002 2006-08-10 11:07   좋아요 0 | URL
초등학교 시절에 놀기만 해서 띄어쓰기와 국어 ??실력이 좀 사실 떨어져요.인정.지적에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