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아침 신문들을 검색해보다가 '서울대 2008 논술 예시문항'이라는 타이틀이 눈에 띄었다. 예시문항 중 "인문과학을 공부하는 학생에게도 자연과학의 지식이 필요한가에 대해 그 이유를 들어 논술하시오"란 문제가 그래도 흥미를 끌어서 잠시 생각해보려고 한다. 제시문의 출처자 진 캐리의 <지식의 원전>이라고. 개인적으론 박사과정 수료 후에 몇 년간 중고생들에게 논술을 지도해본 경험이 있는데, 아직도 '가락'이 남아있는지 확인도 해볼 겸.

 

 

  

 

-과학이 무신론이고 윤리와는 거리가 멀다는 견해는 스페인의 철학자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말하는 ‘문화인’들 사이에서 과학에 대한 반감을 더욱 부채질하곤 했다. 이 두 가지 반감의 원인이 타당한 것인지는 좀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 과학자도 신의 존재를 믿을 수 있고, 더 나아가 신의 존재에 대한 과학적 증거를 찾으려 할 수도 있다. 무신론자들에게는 이것이 지루한 과학과 극단적 기독교의 만남 정도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같이 저명한 과학자가 분자구조를 이용해서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던 것을 비웃을 수는 없다(*물론 모든 과학자가 무신론자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신에 대한 '과학적 증명'을 시도하는 과학자는 많지 않다).

 

 

 



-물론 과학자들 중에는 무신론자도 많이 있다. 동물학자인 도킨스는, 모든 종교는 무한히 복제되는 정신적 바이러스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갖고 있었다(*문화적 밈의 일종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나 확고한 유신론자들의 관점에서는 이 모든 과학적 발견 역시 신에 의해 계획된 것을 발견한 것이므로 종교적 지식이라고 할 수도 있다. 따라서 과학의 본질을 무조건 비종교적이라고 간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과학자나 종교학자가 모두 진리를 찾으려고 한다는 점에서 과학과 신학은 동일한 목적을 추구한다고도 할 수 있다(*그래서 신학이 포퍼 등이 말하는 '반증가능성'에 개방되어 있는지?). 과학이 물리적 우주에 관한 진리를 찾는 것이라면, 신학은 신에 관한 진리를 찾는 것이다. 그러나 신학자들이나 혹은 어느 정도 신학적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믿고 우주를 통해 신과 만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신과 우주가 근본적으로는 뚜렷이 구분되는 대상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많은 과학자들이 과학과 종교는 서로 대립되는 개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신경심리학자인 리처드 그레고리는 ‘과학이 전통적인 믿음을 받아들이기보다는 모든 것에 질문을 던지기 때문에 과학과 종교는 근본적으로 다른 반대의 자세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바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종교가 가지고 있는 변화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유럽에서 일어난 모든 종교개혁운동은 전통적 믿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시도였다.

-과학은 증거에 의존하는 반면 종교는 계시된 사실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이들 간에 극복할 수 없는 차이점이 존재한다는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종교인들에게는 계시된 사실이 바로 증거이다. 지속적으로 신에 관한 증거들에 대해 회의하고 재해석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신학을 과학이라고 간주하더라도 결코 모순은 아니다. 사실 그것을 신학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신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본 바와 같이 과학적 연구가 몇몇 과학자를 신에게 인도했던 것처럼, 신학연구가 그 신학자를 무신론자로 만들지 않을 이유는 없다(*하지만, 그때의 무신론자를 우리는 여전히 신학자라고 부를 수 있는가?).

 

 

 



-과학의 정반대에 서 있는 것은 신학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이다. 과학은 지식의 범주에 있지만, 정치는 견해의 범주에 속한다(*견해/의견의 영역으로서의 정치는 진리와 무관하다는 얘기이다. 한데, '신학정치론'은?). 정치는 좋아하느냐 마느냐를 문제 삼는 분야로, 단지 말잔치를 통해 진리의 위치로 상승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정치는 인물과 웅변술에 의존하고, 사회계층과 인종, 그리고 민족을 핵심적인 요소로 하고 있다. 이런 모든 것들은 과학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리고 정치는 갈등을 기반으로 존재하고 적대세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대립구도가 와해된다면 정치는 더 이상 존재할 수가 없다. 즉 완벽한 의견일치를 보이는 세상에서는 정치가 존재할 수 없다(*따라서 전체주의에는 정치가 부재한다. 정치는 '민주주의'를 범형으로 갖고 있기에).



-반면에 과학은 대립이 아닌 상호 협조의 운명을 지니고 있다. 물론 과학사는 지독한 논쟁과 고뇌, 그리고 반대이론의 파괴로 점철되어 있다. 하지만 의견일치에 도달하면 과학은 붕괴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발전한다(*종교 또한 그러한가?). 또 다른 핵심적인 차이로 정치는 인간을 구속하려 든다는 점이다. 정치의 주된 관심은 권력의 집행에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정치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폭력(전쟁, 학살, 테러 등)을 사용할 수도 있으며, 가끔 실제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학은 전혀 그렇지 않다. 열역학 제2법칙과 같은 진리를 규명하기 위해 전쟁을 한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이겠는가?(*전쟁까지야 불사하지 않겠지만 테러 정도라면?) 물론 위에서 말한 것처럼 정치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고 정반대 의미의 과학이 존재하는 이상적인 상태가 실제 세상에서는 있을 수 없다. 실제로는 다른 모든 것처럼 과학도 정치에 의해 유린되고 왜곡되는 것이 기정사실이 되고 있다. 그러나 과학이 호전적이고 파괴적인 도구로 사용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은 본질적으로 과학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는 정치의 책임이다.

 

 

 

 

-우리는 이러한 과학의 비정치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과학이 초윤리적(超倫理的)이라는 비난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읽다 보니까 아주 나이브한 견해이다. 과학적 탐구 자체는 비정치적일지 모르지만, 과학자는 지극히 정치적이지 않은가? 한편, 과학이 초윤리적인 만큼 종교 또한 초윤리적인가?).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과학의 초윤리성을 과학의 문제점이 아니라 오히려 강점과 순수성으로 인식해야 한다.

-한편, 정치는 윤리로부터 절대 분리될 수 없다. 정치는 창자 속의 촌충처럼 윤리성 혹은 개념의 선악을 규정함으로써 발전해간다. 따라서 과학이 초윤리적이지 않고는 정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는 것이다(*이 또한 정치에 대한 한 가지 견해, 혹은 편견 아닌가? 정치에서 문제되는 것은 도덕적/윤리적 알리바이이지, 도덕/윤리 자체가 아니다. 정치는 마키아벨리즘의 영역이다).

 

 

 



-윤리적인 용어로 냉정하고 논리적이며 비인간적인 인생의 접근방식을 종종 ‘과학적’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과학적 방법을 윤리적 관점으로 단순히 연결시키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과학은 그것이 냉정한 것이든 아니든 윤리적 관점과의 연결을 결코 용인하지 않는다. 사람에 따라서는 동일한 과학적 명제들이 매우 상반되는 윤리적 평가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가령 인간을 원숭이와 관련짓는 다윈의 진화론은 인간을 격하시키는 것처럼 비추어졌고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브루스 프레데릭 커밍스는 이 진화론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다(*요컨대, 과학자도 춤을 춘다는 것. 한데, 작가 카잔차키스는 진화론 때문에 가출했다).



 

 

 

-나로서는 내가 다른 동물들과 가까운 친족관계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나는 나의 유인원 조상들을 선망하며, 그들이 자랑스럽다. 내가 한때는 숲 속에 사는 무수히 많은 털을 가진 유인원이었으며, 바다의 한천류로부터 활유어, 물고기, 공룡, 그리고 원숭이를 거치는 지질학적 시간대를 통해 지금의 내 틀이 완성되었다는 생각은 언제나 나를 즐겁게 한다. 누가 이런 생각을 에덴동산에서 어슬렁대는 한 쌍의 남녀와 바꾸려 들까?(*과학고 신학은 동일한 목적을 갖고 있다는 주장은 어디로 갔는가?)



 

 

 

-과학자 개개인은 연구를 추구하는 윤리적 혹은 초윤리적 이유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들이 그들의 발견에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으며, 그 발견이 발견자의 동기와는 전혀 무관하게 옳은 것이 될 수도 혹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신학/종교 또한 그러한가?). 데이비드 보다니스처럼 파스퇴르의 대중을 혐오하는 성향과 그가 밝혀낸 질병과 박테리아 사이에 어떤 관련성을 찾으려고 시도할 수도 있다. 그러나 파스퇴르가 밝혀낸 사실의 과학적 신뢰성은 인간을 불신하는 그의 성향으로 인해 강화되지도 혹은 약화되지도 않는다.



 

 

 

-이처럼 과학이 윤리나 종교적 문제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왜 독자들이 구태여 과학을 알아야 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좋은 답은 과학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지식)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지식에의 의지는 우리를 과학으로 이끈다?). 이에 대한 반대는 무지일 뿐이다. 콜리지는 이러한 점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최초의 과학자는 관찰대상이 그에게 식량이나 피신처, 무기, 도구, 장신구, 또는 장난감을 제공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안다는 것의 희열을 찾기 위해 사물을 관찰하는 사람이었다(*아르키메데스 이후에 스트리킹한 사례를 더 들어보지 못했다. 그 많던 희열은 다 어디로 갔는가?).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과학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지게 된 무지의 크기도 커졌다(*'부정적 발견의 시대'라는 표현은 이러한 무지의 확대도 내포한다. 종교니 윤리니 들먹이지 말고 차라이 이 문제에 더 집중하는 게 좋을 뻔했다). 문학이나 예술분야에서만 교육 받아온 사람들에게는 20세기 후반의 현대적 지식 대부분에서 몽매한 암흑의 영역이 크게 확대되었다. 무지의 추방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의 역사상 처음으로 새로운 형태의 무지한 지식층이 생겨난 것이다(*필자가 빼먹고 있는 지적은 전문화되어 있는 과학 또한 이러한 무지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식층 중에서 그래도 나은 사람들은 자신의 무지를 통렬히 후회하는 사람들이다. 20세기 미국의 뛰어난 문학비평가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라이오넬 트릴링은 ‘근대사의 특징적 성취라고 불리는 상상적 형태로부터 배제됨으로써 지적 자기만족에 큰 상처를 입게 되었다’고 탄식했다(*트릴링의 책은 번역된 책이 한권도 없는 것인가? 참고로 평론가 유종호 선생의 학위논문이 트릴링의 소설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좀더 최근에는 과학에 대한 무지가 어느 정도의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받기도 했는데, 과학을 지구 오염의 주범으로 몰아세운 녹색운동이 이러한 부분에 기여하였다. 또한 과학을 남성중심적 권력의지의 발현으로 몰아세우는 페미니즘도 마찬가지이다(*필자의 비판은 '다른 과학'에 대한 주장인 듯하다).

-이러한 비난을 제기하는 것 자체는 정당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과학을 포기해야 하는 정당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것이다. 과학이 정치에 의해 잘못 사용되어졌기 때문에 발생한 공해문제의 해결은 과학적 수단을 통해서만 해결이 가능하다(*환경문제의 해결도, 성차별의 문제도 '과학적 수단'을 통해서만 해결 가능하다?). 가장 기본적 레벨에서조차 위험에 처한 식물이나 동물을 조사하고 보호하며 보존하는 일은 필연적으로 과학적 노력에 의해서 달성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흔하게 하는 말이지만, 과학은 목적합리성에 대해서 질문할 수 있는가?).

 

 

 



-과학이 남성의 목적이나 태도에 의해 지배된다고 불평하는 페미니스트들도 여성의 과학에 대한 무지와 배타적 성향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오히려 과학교육과 연구 분야에 여성의 참여를 확대하는 것이 더욱 시급한 일일 것이다(*이러한 판단은 '과학적 판단'인가?). 이러한 관점은 가장 강경한 여권운동가 중 한 사람인 에블린 팍스 켈러의 저서 <성과 과학에 관한 고찰>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그녀는 수리생체물리학자였고, 노벨상을 수상한 유전학자인 바버라 맥클린톡의 자서전을 집필하기도 했다. 켈러는 과학적 지식이 ‘남성적 발현의 결과’라는 식의 파괴적인 표현을 쓰기 보다는 오히려 이상적인 ‘공동의 목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페미니스트 등 과학에 비판적인 사람들에게 힘을 더해준 책은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이다. 이 책으로 인해 이성적이어야 할 과학자들이 실제로는 이성적인 사람들이 아니며 문화적 조류에 따라 흔들리고 객관적 진리와는 전혀 관계없는 이유에 의해 한 패러다임에서 다른 패러다임으로 생각을 바꾸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유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떤 개념이 확신을 얻게 되는 과정에 관한 쿤의 설명은 그 개념에 대한 진위 여부를 규명하려는 노력이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과학자들의 비판을 받기도 한다(*대개의 과학자들은 쿤의 주장이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을 평가절하하는 이러한 다양한 움직임들은 무지를 정당화하고 나아가 미화하기까지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영국의 대학교수들은 대부분의 문학이나 예술계 학생들이 그들의 학창시절에 배운 미미한 과학적 지식마저도 쉽사리 잊어버린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최근 옥스퍼드 대학의 한 문학 세미나에서 나는 존 던의 시 한 구절을 인용하였는데, 그가 이 시를 쓴 1612년에는 아무도 피가 어떻게 심실에서 다른 심실로 이동하는지 모른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 세미나에서 학생들이게 실제로 피가 어떻게 이동하는지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그곳에는 학위과정의 막바지에 와 있는 30여명의 매우 지적인 학생들이 앉아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바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한 학생만이 머뭇거리며 일어나 삼투현상 때문일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들은 피가 몸속을 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것 같았다(*'두 문화' 문제의 반복적인 제기이다).

-매년 영국의 대학에서 문예 분야의 강좌를 듣기 위해 몰려드는 엄청난 수의 수강신청자에 비해 미미한 숫자의 과학계 강의 수강신청자들을 보면서 젊은이들 사이에서 과학을 포기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이러한 점은 고쳐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문예 분야가 쉽기 때문에 더 인기가 있으며 문예계열의 학생들은 과학계 강좌에서 요구하는 지적 수준을 충족시킬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더 일반적이다(*일부 대학은 문예계열 학생들에게도 자연과학도와 똑같이 과학과목을 이수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문제는 각 대학이 가진 커리큘럼이며, '과학적 지식'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대우이다.) 

 

 

 

 

-우리는 이러한 견해에 대해 반대하는 피터 메다워 경의 생각을 한번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메더워는 1953년 크릭, 윌킨스, 프랭클린과 함께 DNA의 분자구조를 발견하여 노벨상을 수상한 미국의 유명한 젊은 과학자 제임스 D. 왓슨의 경력을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왓슨과 같은 재능 있고 천재성을 가진 학생들이 문예계열의 연구에 치중되어 있었던 것 같다. 분자생물학의 첫 세대가 활동하던 1950년대에 영국의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대학의 영문학부에서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졸업생들을 배출하였다. 그들은 왓슨 수준에 버금가는 젊은 과학자들보다 훨씬 더 총명하고 창조적이며 똑똑하고 논리적이었다. 그러나 왓슨은 그들이 가지지 못한 뛰어난 장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는 매우 똑똑하면서도 어떤 대상에 관심을 가질 것인가를 아는 현명함을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점은 지식을 탐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과학자들만의 장점이며, 그들은 이러한 장점을 능력에 관계없이 향유하고 있다."(*왓슨은 천재적인 과학자이지만, 좋은 성격의 과학자는 아니다. '좋은 성격'이 과학자에게 필수적이지 않은 것처럼, 과학적 지식도 인문학도에게 필수적이지 않은 것은 아닐까?)

-똑똑하다는 것이 최고의 과학자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은 아니다. 또한 이것이 최고의 과학자가 되기 위한 충분조건은 더더욱 아니다. 과학적 연구에 의해 일어난 위대한 사회적 혁명 중의 하나는 배움의 민주화였다. 어느 누구나 통상의 상식과 보통수준의 상상력을 복합시킬 수만 있으면 창조적인 과학자가 될 수 있다(*같은 논리라면 어느 누구나 창조적인 시인이 될 수 있다). 또한 사람이 가진 능력의 한계를 넓힐 수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행복이 결정된다면, 그는 적어도 행복한 과학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메더워의 주장, 특히 과학자들은 현명한 어떤 것을 가지고 있는 데 반해 문예계열의 학생들은 그렇지 않다는 주장은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당연히 셰익스피어나 톨스토이가 전혀 현명한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냐는 항의를 들어야만 했다. 한편 과학이 천재들뿐만 아니라 보통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의 핵심적 메시지는 바로 이 부분이다.

-영국이 경제난국에 처하지 않기 위해 과학을 계속하여야 한다는 식의 얘기는 젊은이들을 과학 분야로 끌어들이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과학이 국가경쟁력이라는 얘기도 마찬가지겠다). 그러나 과학자들의 글을 통해 메더워가 말하는 기쁨과 자기만족이 사실이라는 점을 보여준다면, 많은 젊은이들이 과학계통의 일에 종사하게 될 것이다(*행복을 위한 과학? 이게 정말로 유인이 되는 것인지? 더불어, 기쁨과 자기만족은 초과학적이다. 즉, 과학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러니 왜 하필 과학을?).

-만약 독자들이 문학교수인 내가 무슨 생각으로 각종 지식 원전들을 한데 모으게 되었냐고 묻는다면, 기쁨과 자기만족을 위해, 그리고 콜리지의 말처럼 ‘알게 된다는 것의 희열’을 느끼기 위해 만들었다고 대답할 것이다.(*<지식의 원전>이란 편저의 서문인 듯한데, 사실 이 한 문단으로 족하다. 앞부분은 장황한, 게다가 재미없는 서두는 '무슨 생각'으로 집어넣었는지 모르겠다. 문학교수에게 문학적 자질이 요구되는 건 아니더라도 과학적 논리는 필요하다는 걸 이 '싱거운' 서문은 보여준다. 어쨌거나 인문학도에게 자연과학의 지식이 필요한 이유는 기쁨과 자기만족을 위해서란다. 왜 아니겠는가? 하지만 왜 그것뿐이겠는가?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가?)

06. 06. 16.  

P.S. 논술의 요체는 한 가지이다. '말이 되게' 쓰는 것. 즉, 말(語)를 가지고 썰(說)을 푸는 것, 성설(成說)하는 것이 논술이다. 어불성설이 난무하는 담론의 시장에서 '성설'은 '성인(成仁)'만큼이나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시험'을 보며, 그래서 '장사'가 된다. 논술로 먹고 사는 이들의 기쁨이요 자기만족이라 하겠다...  

 

 

 

 

P.S.2. 쓰다보니 좀 멋쩍게 됐다. 조금 만회하기 위해서, '인문학과 과학'이란 주제로 묶을 수 있는 책 몇 권을 꼽아본다. 이 책들에서 혹 '기쁨과 자기만족' 이상의 것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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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6-06-16 01:52   좋아요 0 | URL
제 생각을 아주 소박하게 표현하면....
"연역이 제풀에 날아가는 것을 붙잡아 놓기 위한 추로써의 귀납이 필요하다." 입니다.
이렇게 한 문장으로 하면 논술 빵점 맞나요? ^^a

아, 또... "연역의 불길이 꺼지지 않게 하는 소재로서의 귀납도 필요하다."
두 문장 됐어요.

비로그인 2006-06-16 06:36   좋아요 0 | URL
자연과학도에게 인문과학의 지식이 필요한 이유는 뭘까요?

로쟈 2006-06-16 11:35   좋아요 0 | URL
역시나 기쁨과 자기만족 때문 아닐까요?^^

네모선장 2006-06-17 08:32   좋아요 0 | URL
과거의 수학자들 중 상당한 학자들이 철학자였습니다.
자연과학의 이론이 그냥 그 분야의 학문만 한다고해서 깊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발견한 이론은 대부분 자연현상 속에서 발견한 것들입니다. 인간을 포함한 자연현상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문학도,자연과학도 모두 서로 어떤식으로의 교류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서로의 사고방식을 배우며 더 멋진 생각들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참고로 전 수학교사 입니다.
인문학을 좋아하는데 단지 기쁨 자기만족만은 아니예요.^^

로쟈 2006-06-17 13:17   좋아요 0 | URL
물론 다른 유익들까지 있다면 더욱 좋겠죠.^^

2006-07-04 1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7-04 11:15   좋아요 0 | URL
**님/ 생색은 '혼자' 다 내시네요.^^
 

알다시피 올해는 중국의 문화혁명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얼마전 '한겨레21'에서는 이에 대한 심층특집을 다룬 바 있다. 그걸 잘 정리해놓으려고 했지만, 차일피일 미루어졌었는데, 마침 오늘자 문화일보(06. 06. 13)에 문화혁명과 관련한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의 기고문이 실렸길래 옮겨온다. 읽고 정리하기에 부담이 없는 분량이기도 하고('로쟈의 생각'으로 정리하는 건 미래의 일이고 당장은 '인용'으로 때우도록 한다).

 

 

 

 

-올해로 40돌을 맞이한 문화대혁명, 그것은 중국인들에게 결코 되새기고 싶은 기억이 아니다. 40돌을 맞으면서도 그것이 중국인들의 입이나 언론에 별로 오르내리지 않는 원인도 여기에 있을 것 이다. 그렇지만 그 처절한 교훈은 모든 중국인들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문화대혁명의 발발 원인이 마오쩌둥(毛澤東)의 과오에 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그렇지만 왜 대륙전체가 삽시간에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고 온나라가 집단적 열광으로 내란, 내전에 몰입됐는지에 대해서는 명쾌한 답이 별로 없다. 어찌 보면 오늘의 50세이상 대부분이 바로 그 열광 속에 있었기에 그 답을 꺼리는 것 같이도 보인다. 거의 모두가 참여자였기에 그 교훈은 어느 한 개인이 아닌 모든 개개인에 돌려진다고 보아도 틀림없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기이한 일이다! 한편으로, 공산주의는 계속적인 '혁명'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 아닌가? 스탈린은 마오쩌둥보다 30년 앞서서 '대숙청'을 통해 이를 입증해 보였다. 사진은 1949년 모스크바에서의 마오와 스탈린.


-농민혁명과 대중혁명의 기치를 들고 간난신고 끝에 정권을 창출 한 마오는 바로 그 정권을 똑같은 방법, 즉 군중운동의 방식으로 유지하려 했다. 대중의 힘을 하늘처럼 믿었던 마오는 모든 권위에 대한 도전, 낡은 것을 짓부수는 반란정신, 심지어 실패하면 능지처참이 되더라도 과감히 황제를 말에서 끌어내리는 정신을 고취하면서 문화대혁명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어찌 보면 평생의 이상을 문화대혁명으로 마무리하려 한 것 같기도 했다.

 

 

 



-바로 그 정신을 받든 홍위병들이 반란의 기치를 내걸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놓으려 했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모든 것을 타도한다는 격이었다. 마오를 제외한 거의 모든 집권자들이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결국 그들이 장악했던 당조직과 정부는 사실상 그 기능을 잃어버렸다. ‘모든 권력은 반란파에게’라는 슬로건이 내걸렸다. ‘정권탈취’라는 구호가 신문을 뒤덮었고 각 성과 지방마다 이른바 ‘혁명위원회’라는 이름의 ‘홍색정권’이 창출됐다. 홍위병운동은 반란파, 보수파, 중간파라는 파벌로 나뉘어 전국을 내전으로 내몰았다. 그때 쌓인 불신의 앙금이 오늘까지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을 정도다.


-무엇이 이러한 통제불가능의 사태를 불러왔을까. 어찌 보면 대명, 대방, 대자보라는 형식의 중국식 ‘민주’도 크게 한몫한 것 같기도 하다(*오늘날의 인터넷은 그 유사-대자보가 아닐까?). 누구나 대명, 대방, 대자보를 이용하여 마오를 제외한 어떠한 권위에도 도전할 수 있었다. 그것은 선과 악이 갈리는 무대였다. 낙후한 생산력은 결국 이 초현실주의 이상을 소화 해내지 못하고 충돌과 파국을 초래한 것이다.

-중국이 문화대혁명에서 얻은 교훈은 실로 많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이 개혁·개방 초기부터 줄곧 안정국면을 강조하고 대명, 대방, 대자보를 법적으로 금지한 것도 바로 그 교훈을 되새긴 일례라고 하겠다. 부정부패와 빈부격차, 실업인구의 증가, 산발적인 소란 같은 현실문제를 심각하게 안고 있는 오늘, 중국은 경제발전에 걸맞은 정치체제 개혁과 시민사회·민주사회 건설을 지향하면서도 문화대혁명의 교훈을 되새겨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어찌 보면 딜레마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새로운 문화대혁명’으로 부정부패와 빈부격차를 일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문화대혁명이 관려주의와 부패일소에 공을 세웠다는 논리도 펴고 있다. 그렇지만 중국에 다시 문화대혁명의 일막이라도 재현한다면 그것은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불행이기도 할 것이다.

-문화대혁명이 초현실주의 생산관계와 낙후한 생산력 간에 빚어진 갈등이었다면 작금의 중국은 발전하는 생산력에 순응해 점진적인 체제개혁으로 문제점을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민주사회는 혼란이 아닌 질서 속에서 이루어지는 실험을 해야 할 것이다.

-문화대혁명은 중국에서 철저히 부정되고 있는 역사임에 틀림이 없지만 그것은 귀중한 교훈을 남겼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하겠다. 역설적으로 문화대혁명이 없었다면 과거에 대한 부정이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고, 오늘의 개혁·개방도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 교훈이 중국인에게 난관을 헤쳐나갈 지혜를 안겨준 측면도 분명히 있다. 그런 시각에서 볼 때 문화대혁명을 잘 모르면 오늘의 중국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06. 06. 13.

P.S. 참고로 지난 봄 '한겨레'에 연재됐었던 이상수 베이징 특파원의 '천안문의 마르크스' 중에서 '(4)사상의 좌우 난독증'(06. 04. 26)을 옮겨온다. 최근 중국의 사상/이념 지형에 대해서 안내해주는 기사이다.

-최근 중국에서 이른바 ‘좌파’들의 목소리가 유난히 자주 터져 나오고 있다. 홍콩 <명보>는 지난해 중반 이후 중국 내에서 ‘개혁의 성씨가 자씨(자본주의)인지, 사씨(사회주의)인지’를 묻는 논쟁이 자주 터지고 있다며, “이런 사상논쟁은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이래 최고조”라고 보도했다.

-좌파와 자유파로부터 비판받는 당국=지난해 8월 궁센톈 베이징대학 교수(법학)는 우방궈 전국인민대표대회 상임위원장과 상임위원들 앞으로 공개편지를 보내, 당시 상임위가 심의중이던 물권법 초안이 ‘사회주의 공유제를 주체로 한다’고 규정한 헌법에 어긋난다며 이 법 추진 중단을 요청했다. 물권법의 성씨가 ‘자씨’ 아니냐는 얘기다. 지난 3월 전인대 4차 전체회의에서 통과될 예정이던 물권법은 궁 교수 등 ‘좌파’들의 저항으로 유보됐다.

-물권법이 ‘좌파’의 저격을 받자 개혁 성향의 이론가 황푸핑은 월간 <재경>에 발표한 글을 통해 “개혁개방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문제를 ‘시장화’의 책임으로 돌려선 안 되고, 이는 개혁의 심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며, “새로운 좌경화를 경계한다”고 ‘좌파’에 반격을 가했다.

-중국 당국을 공격하는 건 ‘좌파’만이 아니다. 자유주의자들은 되레 당국의 개혁이 너무 더디다고 비판한다. 당국에 의해 한때 정간 당했던 <중국청년보> 주말 부록 <빙점>의 리다퉁 전 편집장이나 해직당한 자오궈뱌오 전 베이징대 교수, 그리고 허웨이팡 베이징대 교수(법학) 등은 인터넷과 해외 매체 기고 등을 통해 전면적인 언론·집회·결사의 자유 보장과 다당제 개혁 등을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좌파’는 개혁개방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고 있고, ‘자유파’는 경제는 물론 정치까지 포함한 전면적인 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형국이다.

-극좌와 극우의 상호침투=프랑스 대혁명 이래 ‘좌파’는 적극적인 개혁의 주창자들에게, ‘우파’는 보수적인 이들에게 따라붙는 별명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은 누가 진정한 ‘좌파’이고 누가 ‘우파’인지 알 수 없는, 심각한 난독증을 앓고 있다.

 

 

 

 

-친후이 칭화대 인문사회과학학원 교수(역사학)는 오늘날 중국에서 좌·우 개념이 혼란스러워진 원인으로, 문혁 때의 극좌적 오류와 더불어 90년대부터 진행된 ‘국유자산 사유화’ 과정을 꼽는다. “과거에 이른바 ‘공유제’를 실시하고 있을 때도 국유기업의 자산 처분권은 명목상으로만 전 직원의 소유일 뿐, 사실은 당서기와 공장장의 손에 집중돼 있었다. 국유기업이 이른바 ‘시장화’ 개혁을 거치면서 공장 ‘영도 간부’들은 공장을 분양해 한몫씩 챙겨 나갔지만 노동자들은 퇴직금과 의료보험은 물론 그동안 삶의 터전이던 일터까지 상실했다.”

-친 교수는 이 과정에서 공유제 아래 극좌파이던 ‘영도 간부’들이 순식간에 ‘극우파’로 변했다고 지적한다(*이건 한국의 경우에도 예의가 아니다). “자유파와 극우파는 거리가 매우 멀다. 그러나 극우파와 극좌파는 매우 가깝다. ‘전인민적 소유’란 명목으로 ‘영도 간부’가 독점 소유하는 것이나, 극단적인 시장화로 노동인민을 내몰고 이들이 이권을 다시 독차지하는 것은 사실상 같기 때문이다.”

-실사구시로 개혁개방의 길 찾기=중국 당국이 좌파와 자유주의파로부터 동시에 공격을 받고 있는 건 오늘날 중국의 복합적인 과제를 말해준다. 자유주의파의 공격에선 개혁개방의 확대와 지속적 추진이 부각된다. 좌파의 공격에선 개혁개방을 신자유주의적 시장논리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한 젊은 사회과학자는 “오늘날 중국에서 단순히 좌파 또는 우파의 시각만 고집할 수 없으므로 자신을 ‘실사구시파’로 불러달라는 이들도 늘고 있다”고 소개한다.

-친후이 교수는 중국이 올바른 개혁개방의 길을 찾기 위해서는 개혁개방의 ‘사회적 공정성’ 문제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미 전국의 국유자산 가운데 절반쯤이 ‘시장화’된 상태다. 이 시장화 과정에서 노동자와 농민에 대한 공평한 분배의 문제는 토론조차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이런 불건전한 시장화가 중국 경제에 안정적이고 공평한 시장 환경과 질서를 형성할 것이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지난 3월 전인대에서 후진타오 주석이 확고하게 말했듯 “개혁개방의 추진”은 흔들릴 수 없는 중국 당국의 정책 방향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이미 심각하게 불거진 불공정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앞으로 중국 개혁개방의 미래상을 좌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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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06. 06. 12)에 홍윤기 교수의 반론('노마디즘 대 노마디즘' 참조)에 대한 이정우 철학아카데미 교수의 재반론이 실렸다. 반론문의 말미에 '노마디즘 논쟁 일지'가 정리돼 있기에 같이 옮겨온다. 이 정도면 생산적인 결론을 이끌며 마무리되었으면 싶지만, 사정은 여의치 않은 듯하다. 나로선 방학때나 '노마돌로지'를 읽어보고 몇 마디 거들 계획이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처럼 충돌과 갈등을 통해 창조 또한 가능하다. 논쟁이란 이성과 이성의 길항(dia-logos)을 통해서 진리/진실에 한발자국씩 다가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적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출한다거나 상대방을 이기려는 아집에 사로잡혀 지엽적인 문제에 집착하는 것을 피해야 할 것이다.

-지금 핵심적인 문제는 들뢰즈/가타리의 ‘유목주의’가 침략주의인가, 천규석의 주장이 과연 근거 있는가, 아니 최소한의 지적 성실성이라도 갖추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유목주의/노마디즘’이라는 표현으로 들뢰즈/가타리 사유를 지칭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는 논증된 문제가 아니다. 이 표현은 이들의 것이 아니라 이진경의 것이다. 그러나 일단 이 말을 사용하기로 하자)

-‘노마디즘’은 이중적으로 패러디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유목민들의 삶을 그리워하는 낭만적 회귀라는 패러디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후기자본주의적 상품논리로서의 ‘유비쿼터스’ 전략이라는 패러디이다. 둘 다 들뢰즈/가타리의 본지와는 한참 떨어진 패러디들이다. 그러나 후자의 패러디가 훨씬 심각하다. 국민국가들을 매개 고리로 하는 후기자본주의적 ‘공리계’(화폐 회로들의 장)에 저항하고자 하는 소수자 윤리학/정치학을 완전히 거꾸로 ‘침략주의’, ‘시장제국주의’로 해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천규석의 책은 ‘천의 고원’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없이 그것을 항간에 유행하는 천박한 “유목주의”와 동일시함으로써 “침략주의”라는 극단적인 해석(?)을 내리고 있다.

-천규석/홍윤기는 들뢰즈/가타리 사유를 1)개념/이론이 아니라 인상/이미지로 받아들이고 2)그것을 상상/억측한 후 3)그것에 대해 전혀 빗나간 ‘비판’을 가하고 있다. “전쟁기계”라는 말을 듣고서 거기에 “전쟁”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자 ‘피 냄새가 난다’, ‘칭기즈칸의 정복주의’를 찬양하는 것이다 같은 식의 ‘비판’을 가하는 것이 전형적인 예이다. ‘유목’이라는 말이 들어가자 여기저기 이동하는 것이라고 상상하고, ‘욕망’이라는 말이 들어가자 퇴폐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상상하는 둥, 우스꽝스러운 상상/억측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어떤 개념을 듣고서 그것에 대한 최소한의 성실한 이해도 없이, 그 언어가 연상시키는 이미지/인상을 근거로 상상/억측한 후 다시 그것을 엉뚱하게 비판하는 것, 이것이 천규석/홍윤기의 글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사유’이다.

-전쟁기계는 전쟁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정말 그런가?). 그것은 1968년(‘68혁명’) 이래 도래한 소수자 운동(여성운동, 학생운동, 새로운 노동운동, 문화운동, 생태운동 등등)을 염두에 둔 개념이며, 국가장치/자본주의로부터 탈주하면서 투쟁하고 사랑하고 창조하는 모든 행위들을 가리키는 말이다.(참으로 얄궂은 것은 천규석 등이 추구하는 생체공동체야말로 다름 아니라 들뢰즈/가타리가 추구하는 전쟁기계의 좋은 예라는 사실이다)

-이런 식으로 무책임하게 상상/억측할 때 천규석도 침략주의자이다. 천규석은 ‘농사꾼 철학자’이고 따라서 농사와 철학을 가로지르면서 유목하고 있지 않은가(*이전에 지적한 바 있지만, 이것이 이정우에게서의 '유목'이다. '가로지르기'로서의 유목. 그리고 그의 유목은 사실 들뢰즈의 유목과도 좀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천규석은 침략주의자가 된다. 이 무슨 기묘한 결과인가. 이런 식의 “연상 고리들”을 끊고서, 최소한의 지적 성실성을 가지고서 누군가를 언급하고 평가하고 비판해야 하지 않을까.

-덧붙여 말한다면, 홍윤기는 홈 패인/매끄러운, 유목/정주, 리좀/수목형을 비롯해 들뢰즈/가타리의 구분이 개념적 구분일 뿐 실체적/실재적 구분이 아니라는 내 지적을 논박하기 위해서 내용/표현, 실체/형식을 도식한 그림을 내세웠다. 그러면서 ‘봐라, 들뢰즈/가타리가 실체의 내용과 표현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느냐’는 요지의 반론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들뢰즈/가타리에게 ‘내용의 실체와 형식’, ‘표현의 실체와 형식’은 있어도 ‘실체의 내용과 표현’, ‘형식의 내용과 표현’ 같은 것은 없다.

-첫째, 무엇인가가 있고 그것의 내용과 표현이 있는 것이 아니다.(들뢰즈/가타리의 ‘표현’을 어떤 존재가 있고 그 존재가 무엇인가를 표현한다는 상식적 의미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돌과 조각가가 있을 때 돌이 내용이고 조각가가 표현이다. 일상적 ‘표현’ 개념과는 전혀 다른 개념인 것이다) 내용과 표현이 각각 어떤 것, 무엇이다.

 -둘째, 이들에게 ‘실체’란 어떤 것, 무엇이 아니라 어떤 것의 질료/물질을 뜻한다.(chemical substance를 ‘화학물질’로 번역하는 것을 상기하면 되겠다) ‘형식’은 어떤 것의 구조를 뜻한다. 그러니까 홍윤기 식으로 말하는 것은 ‘철수의 키와 성격’, ‘영희의 키와 성격’이라 해야 할 것을 ‘키의 철수와 영희’, ‘성격의 철수와 영희’라고 말하는 것과도 같다.(‘천의 고원’ 58-60쪽, 한글본 92~95쪽을 숙독할 것을 권한다) 요컨대 홍윤기는 그림의 가로를 먼저 읽고 세로를 읽어야 하는데, 그것을 거꾸로 읽고 있는 것이다.(!)

-더 기막힌 것은 이런 실소를 자아내는 “근거”를 제시한 후에, 그는 오히려 내가 “원전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고 강변한다는 사실이다. 설사 내가 틀렸다 해도 “사기극”이 무슨 말인가. 논적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을까.

06. 06. 13.

P.S. 참고로, 북매거진 <텍스트>(2006년 5월호)에 게재됐던 인터뷰에서 이정우 교수가 말하는 '유목'의 뜻을 옮겨온다. 비생산적인 동어반복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강조는 나의 것이다.

-'유목'이라는 말이 언급되는 맥락이 좀 이질적인데요, 사실 그런 맥락들이 아무런 구분없이 '유목을 하자'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목이라는 말이 공허하고 티비 선전문구처럼 사용되죠. 유목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최소한 네 가지로 구분해서 생각해봐야 됩니다. 하나는 문자 그대로의 유목이 있죠. 이건 중아시아의 유목민들을 일컬을 때의 유목민들을 말하는 경우 같은 거죠.

-그런 맥락과는 다르게 일반적이고 철학적인, 가령 들뢰즈나 가타리가 말하는 유목이 있죠. 문자 그대로의 유목과 관련은 되지만, 그것으로 이해하면 아주 희한한 이야기가 되죠. 문자 그대로의 유목과 철학적 사유의 방식으로의 유목은 완전히 다른 거예요. 들뢰즈 같은 경우는 유목적 사유를 이야기하지만 유럽의 다른 나라도 잘 안 갔다 오거든요. 디지털 유목이라는 말도 좀 이상한 개념이죠. 왜냐하면 인터넷 세계를 막 돌아다니는 사람은 자기 몸은 가만이 방안에 있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노마디즘인지, 인터넷 공간에서는 노마디즘이지만 자신은 완전히 폐쇄적인 것이거든요.

-마지막으로 내가 말하는 유목은 이런 것과는 관계가 없고 공부를 담론세계에서 문학, 철학, 과학 등으로 전공을 정하고 그것을 선택하는 데 돈, 이권, 권력 등과 얽혀서 하는 폐쇄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의식, 자신의 체험을 가지고 기존의 섹션화된 학문에 얽매이지 말고 폭넓게 사유하자는 의미입니다(*요컨대, '폭넓게 사유하자'가 이정우의 '유목을 하자'이다. 그리고 이건 들뢰즈/가타리의 노마디즘과도 전혀 별개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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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6-06-13 00:40   좋아요 0 | URL
논쟁 좋아요. 학문은 역시 논쟁을 통해서 무언가 밝혀지는 거라고 그래도 믿어 봅니다 :) 홍윤기 선생은 이쪽이 전공이 아니시지 않나요? 연세가 꽤 되시는 철학과 교수님으로 알고 있는데. 반면에 이정우 선생이나 이진경 선생 같은 경우는 소장 학자이고 들뢰즈, 가타리에 일가견이 있으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논쟁이 어떻게 마무리 될지 기대됩니다. 로자님의 논평도요 ^^

마늘빵 2006-06-13 07:57   좋아요 0 | URL
이런 논쟁이 좋아요.

비로그인 2006-06-13 12:51   좋아요 0 | URL
홍윤기 교수도 그닥 연장자는 아니지 않나요? 이정우 박사와 비슷한 세대인 것으로 아는데요.

yoonta 2006-06-13 12:53   좋아요 0 | URL
일단 이정우씨는...
"개념적/형식적 구분을 실재적/실체적 구분으로 오인"했다는 표현을 하여 오해를
유발했다는 측면에서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정우씨가 재반론에서도 언급했지만 내용/표현의 구분에서도 실체substance와
실재reality등의 용어들을 분명히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홍윤기씨처럼 실체 혹은
실재라는 개념을 이원론적으로 사용하는 분에게 이정우씨가 말하고자하는 의미에서의 "개념"이 무엇인지 분명히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의 "개념"은 실재적/실체적이지 않다고 함으로써 홍윤기씨로하여금 오해를 유발시켰다는 것이죠.

한편 내용/표현이라는 항을 잘못 읽었다는 이정우씨의 비판만큼은 정확해보입니다.
홍윤기씨는 <천개의 고원> 797쪽에서의 내용과 표현을 내용/표현의 실체와 형식이 아닌 실체/형식의 내용과 표현으로 읽었다는 이정우씨의 지적은 맞기 때문입니다..

홍윤기씨는 내용과 표현상의 차이가 소위 이중분절double articulation과정을 통해서 생성되는 실재적real 구분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 못합니다. <고원93쪽>
전쟁기계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그것의 첫번째 분절로서의 내용의 실체와 형식이 생성되고 그리고 두번째 분절로서의 표현의 실체와 형식이라는 것을 보지못했다는 것이죠. 이정우씨의 "들뢰즈/가타리에게 ‘내용의 실체와 형식’, ‘표현의 실체와 형식’은
있어도 ‘실체의 내용과 표현’, ‘형식의 내용과 표현’ 같은 것은 없다."라는 지적은
홍윤기씨의 그런 잘못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정우씨의 이야기에도 뭔가 불분명해보이는 부분이 있네요..특히 이부분..

"무엇인가가 있고 그것의 내용과 표현이 있는 것이 아니다.
(들뢰즈/가타리의 ‘표현’을 어떤 존재가 있고 그 존재가 무엇인가를 표현한다는
상식적 의미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돌과 조각가가 있을 때 돌이 내용이고 조각가가 표현이다. 일상적 ‘표현’ 개념과는 전혀 다른 개념인 것이다) 내용과 표현이 각각 어떤 것, 무엇이다."

여기에서 무엇인가있는 것이 아니고 내용과 표현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이건 좀 아닌것 같네요..
왜냐하면 분명 내용과 표현이 있기 이전에 질료matter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들뢰즈에게 있어서 질료matter는 매우 중요한 개념인데 특히 그가 <기관없는 신체>라는 개념으로 혹은 유기적으로 조직되지않고 탈지층화된 물체가 "있는"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형식을 부여받지 않은 불안정한 질료들, 모든 방향으로 가는 흐름들, 자유로운 강렬함들 또는 유목민과 같은 독자성들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미친 입자들"<고원85쪽> 등등은 어떤 실체와 형식성을 부여받기 이전의 질료적 상태를 나타내는 개념으로서 제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체substance는 "형식을 부여받은 질료"<고원88쪽>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설명되고 있고 내용content라는 개념도 이중분절과정중 첫번째 분절의 결과 형성되는 상대적으로 헐거운 질료의 상태를 표현하기 위한 개념이죠..두번째 분절은 구조structure의 형성과 관련되고 그럼으로서 보다 유기적이고 안정적인 질료의"표현"과 상관적인 개념이죠.
코드화되기 이전의 지구/자연 혹은 기관없는 몸체가 스피노자식으로라면 "신" 그 자체라면 어떤 특정의 물체로 이어지는 발생의 과정성에서 생기는 코드화와 덧코드화overcoding 혹은 영토화/탈영토화과정등등은 "신의 심판"<고원86쪽>의 과정이라는 겁니다.

때문에 이정우씨의 "무엇인가 있고 그것의 내용과 표현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은 틀린 말이거나 보다 분명한 맥락을 생략한채 사용한 "부정확한 표현"이라고 보고싶네요.."내용과 표현이 각각 어떤 것, 무엇이다"라는 표현도 의미가 있으려면
그것이 있기 이전의 상태..즉 <질료matter로서의 어떤 것>을 먼저 이야기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다만 "어떤 것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 정신과 실재를 이원론적으로 구분하는 상태에서의 "실재"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일원론적 관점에서하는 말이라면 이해가 되긴합니다. 특히 들뢰즈처럼 "계사존재론"적 철학보다는 관계사에 의한 연결접속에 중요성을 두는 철학에서는 말이죠.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떤 일원론적인 "내재성의 평면"혹은 <기관없는 신체>가 선험적으로 주어진것으로 보아야만 그로부터의 어떤 "연결접속" 혹은 "이중분절"도 가능하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이정우씨의 이야기는 맥락이 생략된 부정확한 설명이라는 거죠.

그리고 노마디즘의 개념에 대해서는 이정우씨가 대체적으로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의 가로지르기적 사유도 분명 들뢰즈/가타리의 유목적 사유의 한 양태임에는 분명해보이는데요. 로쟈님은 그것을 "별개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네요? 제가보기에는 그러한 사유로서의 유목도 들뢰즈/가타리의 유목주의의 한 양태인것 같은데 "다르다"라고 한다면..어떤 점에서 다른지 좀 설명을 부탁합니다..로쟈님..^^




로쟈 2006-06-13 14:32   좋아요 0 | URL
'다르다'고 한 건 이정우씨의 발언을 제가 다시 '확인'한 것에 불과합니다. 인용한 인터뷰에서 알 수 있다시피, 그는 '최소한' 네 가지 다른 '유목'을 구분하고자 하며, (1)문자 그대로의 유목, (2)들뢰즈/가타리의 철학적 유목, (3)디지털 유목, (4)이정우식 유목 등이 그 네 가지입니다.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한 가지라면, 혹은 한 가지의 다른 양태라면 그의 '구분'은 유지될 수 없습니다.

물론 제 구분은 '경제적 노마디즘'과 '철학적 노마디즘', 두 가지였고, 이들은 '싸돌아다니는 유목'과 '앉아서 하는 유목'으로 환언될 수 있습니다(그러니까 똑같이 앉아서 하는 거라는 점에서 저는 들뢰즈/가타리와 이정우의 유목을 같이 다루었습니다). 한데, 이정우씨의 말을 들어보면, 더 세분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고, 그 경우엔 '다르게' 보이는 것이죠. 이정우식 관점으로 해석하면, (고작) '폭넓게 사유하자' '가로지르며 사유하자'가 소위 들뢰즈/가타리의 그 '대단한' 노마디즘인가요?(그건 좀 의외가 아닌가요?)

yoonta 2006-06-13 15:17   좋아요 0 | URL
질료적 상태로 있는 어떤 "잠재적인 것"은 여러가지 양태로 "표현"됩니다. 그 표현의 양태가 1번 2번 3번 4번등으로 나타날수있다는 거죠. 전쟁기계개념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전투와 전쟁이 어쩔수없이 전쟁기계로부터 유래하더라도" 전쟁기계가 무조건 "전쟁"을 목표로하는 것은 아니고 일정한 맥락속에서만 그렇다<고원797쪽>는 말도 그렇게 이해할수있다고 봅니다. 그런점에서 이정우씨가 설명하는 전쟁기계개념 즉 어떠한 전쟁기계인가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도 이런 맥락속에서 이해할수 있죠..

이처럼 어떤 잠재성은 여러가지 표현양태로 나타날수있는데 들뢰즈/가타리의 노마디즘 혹은 이정우식의 노마디즘으로도 표현될수있다는 거죠. 이지점에서도 이정우씨는 좀 부정확했던 것 같아요. 자신의 "폭넓게 사유하기" "가로지르며 사유하기"도 넓게 보면 분명 들뢰즈/가타리의 노마디즘과 분명 관련이 있는 것인데..그것을보고 "내가 말하는 유목은 이런 것(들뢰즈/가타리의 노마디즘)과는 관계가 없"다고 말해버렸으니 말이죠. "섹션화된" 개별분과학문들이 특정한 형태로 표현된 다양한 "고원들"이고 그렇다면 그것들을 가로지르면서 분과학문들의 영역을 허무는 노마디즘적인 "탈영토화"작업으로 자신의 노마디즘을 설명할수있는데도 불구하고 이처럼 말했다는것은 개념의 창조와 사용을 주로 행하는 철학자로서는 좀 부정확한 표현이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로쟈 2006-06-13 15:19   좋아요 0 | URL
배아줄기세포로서의 '잠재성'은 물론 모든 것이 될 수 있을 터입니다. 그런데, 그 잠재성으로서의 노마디즘, 곧 문자 그대로의 노마디즘이 되기도 하고, 철학적 노마디즘이 되기도 하는 어떤 '질료적 상태'를 가정하는 것이(이건 에이리언의 어떤 모체를 연상케 하는데요) 노마디즘에 대한 천규석/홍윤기의 '비판'을 무력화시킨다고 보시는 건가요?..

yoonta 2006-06-13 15:25   좋아요 0 | URL
이정우씨의 논지는 결국 "어떠한 노마디즘인가?" 를 정확히 보자는 것 같아요. 천규석씨나 홍윤기씨는 분명 들뢰즈의 노마디즘을 오독하고 있죠. 이정우씨는 단지 그것을 지적하고 있을 뿐이라고 봅니다. 이정우씨가 그들을 비판하면서 어떤 정치적 맥락을 개입시키고 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그런데 이정우씨는 그것 즉 노마디즘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이야기하면서...원전도 읽지 못한다는 둥..불필요한 이야기를 함으로써 홍윤기씨나 기타다른 분들으리 비판을 촉발시킨 측면이 있죠. 그런점에서는 이정우씨는 분명 잘못했다고 봅니다. 단순히 윤리적 측면에서뿐만아니라..철학을 공부하는 방법에 있어서도요...
 

 

 

 

 

영국의 대표적인 지성사학자 이사야 벌린 경의 <자유론>(아카넷, 2006)이 번역/출간됐다. '최근에 나온 책들'에서 다룰 여유가 없기에 언론 리뷰 두 개를 옮겨놓는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것인데, 보수주의 석학의 책인 만큼 두 보수 언론의 '경의'는 마땅해 보인다. 이미 평전 <칼 마르크스>와 <낭만주의의 뿌리>의 저자로 소개된 바 있지만, 벌린의 저작은 좀더 읽히는 것이 온당하다. 에누리 없이 '교양의 문턱'이기 때문이다. <낭만주의의 뿌리>의 공역자이기도 한 강유원은 <공산당 선언> 강의에서 이렇게 적었다.

"앞서 소개한 마르크스 평전 중 하나를 쓴 이사야 벌린은 오늘날 대표적인우파 지식인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일단 '근대인'이라 하면 우파적인 교양을 갖추는 게 기본이다. 우파적 교양을 기본으로 갖추고 거기서 좀더 나가서 골고루 먹고사는 문제, 그러니까 평등의 문제 등을 고민하면 좌파인 거다. 우파건 좌파건 근대인이라는 것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사람들 모두 교양인이다. 한국에서 우파라 불리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안된다. '한국 우파의 금자탑' 운운하는 조갑제 같은 사람을 떠올리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힘센 보스를 그리워하는 노예근성의 똘마니들일 뿐이다."(51쪽, 강조는 나의 것)

그러니까 자신이 교양인이라고 떠들어대는 이라면, 우파건 좌파건 간에 먼저 벌린 정도는 읽어줘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유론>은 얼마전에 재출간된 칼 포퍼 경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민음사, 2006)과 함께 '우파 교양서'의 전범적인 저작이므로 필히 아는 체해둘 필요가 있겠다. 이 정도 읽어주지 않으면, 우파건 좌파건 '똘마니'라 불리는 걸 면하지 못한다. 적어도 근대인/교양인을 기준으로 삼으면 그렇다는 얘기이다. 일단은 두 개의 서평을 참조하시길.

동아일보(06. 06. 10) 영국의 지성사학자 이사야 벌린(1909∼1997)의 진면목은 같은 영국의 역사학자 E H 카(1892∼1982)와 비교했을 때 두드러진다. <역사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카는 케임브리지 출신으로 러시아혁명을 높이 산 진보적 역사학자였다. 반면 러시아계 유대인으로 어린 시절 러시아혁명을 목격한 벌린은 옥스퍼드 출신으로 혁명에 기반한 전체주의를 강하게 비판한 전통적 자유주의자였다(*그러니까 벌린의 경우도 '좌파 이후의 우파'였다).

-두 사람은 나란히 카를 마르크스의 평전을 냈다는 공통점도 지닌다(*카는 도스토예프스키의 평전도 썼다. 한편, 벌린이 상대적으로 높이 평가한 러시아의 작가/사상가는 투르게네프와 게르첸이다). 학계에서는 사회주의에 경도된 카의 평전보다는 자유주의자였던 벌린의 평전을 더 높이 평가한다. 한국에서는 카의 영향이 압도적이지만 2000년대 들어 벌린의 저서가 잇따라 번역되면서 그의 만만치 않은 내공에 감탄하는 이가 늘고 있다.

-이 책은 ‘자유에 관한 네 편의 논문’이라는 제목으로 1968년 출간된 것을 그의 사후인 2002년 대폭 보완해 새롭게 출간한 것이다. 벌린은 이 책에서 20세기 초반 사회주의의 거센 광풍 아래 부르주아 사상이라고 비판 받은 자유주의가 얼마나 심오하고 진취적 사상인가를 펼쳐 보인다.

-네 편의 논문 중 ‘역사적 불가피성’은 인류의 역사가 필연적이라는 결정론적 사고와 역사 속에서 개인의 선택을 도덕적으로 찬양·비난하는 윤리적 행위의 모순을 지적한다. 그는 이 과정에서 역사에서 개인의 선택을 거대한 흐름의 일부로 격하시킨 카의 역사관을 교조적 유물주의라고 비판한다. 그렇다고 벌린이 역사의 필연성을 부인하거나 영웅사관을 옹호한 것은 아니다. 그에게 자유주의는 이런 모순을 깊숙이 파고드는 회의주의이기 때문이다.

-‘자유의 두 개념’은 일체의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소극적 자유와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하기 위해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적극적 자유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즉, 우리의 상식에 대한 재고를 요청한다). 자유주의의 진취성은 진리는 하나라는 교조주의와 그 진리를 전유(專有)하려는 전체주의와의 치열한 싸움에서 확인된다. 벌린의 이런 관점으로 인해 이 책은 다원주의의 고전으로도 꼽힌다. 이 개정판에는 ‘자유에 관한 다섯 번째 논문’이 될 뻔했다가 시한에 쫓겨 빠진 ‘희망과 공포로부터의 해방’과 함께 그가 12세 때 소설 형식으로 러시아혁명의 모순을 다룬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와 ‘냉전의 설계자’라 불린 미국 외교정책의 브레인 조지 케넌에게 보낸 서한 등이 수록돼 있다.(권재현 기자)

조선일보(06. 06. 10) 1997년 11월 영국 사상가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의 타계 소식을 접했을 때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그날 뉴욕타임즈 지는 벌린의 생애와 사상을 조명하는 기사를 한 면 통째로 실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사상가에게 영국 국왕은 기사 칭호와 공로 서훈을 내렸다. 이 책은 벌린의 주저로 이미 고전의 반열에 들어 간 ‘자유에 관한 네 편의 논문’의 수정증보판을 우리 말로 옮긴 것이다.

-벌린의 사상은 ‘자유주의적 다원주의’라는 말로 압축될 수 있다. 그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여러 가지일 뿐 아니라 때로 조화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따라서 윤리학이나 정치학 등의 인간 관계 학문 분야에서 ‘최종성’(finality) 즉, 일원론을 기대한다는 것은 위험천만이다. 박해와 불관용의 씨앗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벌린은 자유를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로 구분하면서 자유에 대한 논의를 한 차원 높게 끌어올렸다. 벌린은 자유의 근본 개념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제지나 방해를 받지 않는 상태에서 추출한다. 그렇다면 외부의 간섭이나 방해가 없는 소극적 자유만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이에 반해 적극적 자유론은 이성에 입각한 자기 지배를 이상으로 한다. ‘하나의 진리’를 믿기 때문이다. 벌린은 유일 진리에 대한 허황된 맹신(盲信)이 민족주의자·공산주의자·전체주의자 등에 의해 악용될 소지에 대해 극구 우려하고 있다.

-벌린은 따라서 인간의 삶에서 선택이 중요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되풀이 강조한다. 다원주의와 소극적 자유가 인간적 상황을 넘어가는데 최선의 방책이라고 하는 결론을 내린다. 유일 진리 따위에 대해 환상을 가진다는 것은 형이상학적 오만이며, 이는 곧 위험하기 짝이 없는 도덕적·정치적 미숙(未熟)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벌린의 글 속에는 이 시점 한국 사회를 향한 질문도 발견된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말을 믿어도 되는 것일까? 진리는 끝내 승리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인종주의적 증오를 부추기고 지역감정을 조장하며 북한 체제를 미화하는 언동 등도 토론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허용되어야 하는 것일까? 그의 책을 곰곰이 읽어도 그가 어떤 처방을 내놓을지 분간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는 주어진 상황에 대한 선택에만 촛점을 맞출 뿐, 선택의 내용이나 방향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벌린은 시종일관, 사람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보편적 이론은 존재할 수가 없음을 역설한다. 그렇다면 그 자신이 소극적 자유를 자유의 알파요 오메가로 단정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그 자신이 말했던 것처럼, 자유에 대한 생각과 인간 존재론이 떼어질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면, 가치에 대한 생각이 사람마다 다르듯이 자유에 대한 입장도 달라야 마땅하지 않은가? 가치의 객관성에 대한 회의를 바탕으로 소극적 자유를 강조하는 벌린의 문제의식은 현대 자유주의의 철학적 기조(基調)와 거의 그대로 중첩된다. 따라서 벌린의 한계도 고스란히 반복된다.

 

 

 



-벌린 특유의 만연체에도 불구하고 옮긴이의 진지한 노력 덕분에 책이 쉽게 넘어간다. 성실한 주석도 크게 도움이 된다. 벌린의 사상을 큰 틀에서 조망하고 평가하는 글이 빠져 아쉽지만, 8년에 걸친 번역의 수고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서병훈 숭실대 교수·정치사)

06. 0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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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6-06-12 06:47   좋아요 0 | URL
음... 이사야 벌린의 글을 함 읽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도움이 되는 포스트로군요. 잘 읽고 갑니다.

로쟈 2006-06-12 07:44   좋아요 0 | URL
분량이 만만치는 않지만, '예의상' 읽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瑚璉 2006-06-12 11:21   좋아요 0 | URL
그냥 똘마니하면 안될까요 (T.T).

로쟈 2006-06-12 18:58   좋아요 0 | URL
'교양인' 노릇한다는 게 좀 힘들긴 합니다. '무시'당하지 않고 산다는 게 여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닌 것처럼...
 

 

 

 

 

한국일보 문학기자(이면서 현재는 수석논설위원)인 박래부씨가 <작가의 방>이란 책을 최근에 냈다(서해문집, 2006). 지난주말에 북리뷰들을 읽다가 알게 된 것인데, 오늘자 한국일보(06. 05. 30)에 소개 기사가 실렸다. 기꺼이 옮겨오도록 한다. '남의 집' 혹은 '남의 서재' 구경에 특별히 취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이 블로그 자체가 '나의 서재'인 만큼 작가들의 서재를 눈동냥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테니까. 기사의 필자는 (동업자이면서 필히 후배일) 최윤필 기자이다.

한편, 박래부 기자는 직장 선배였던 김훈과 '문학기행'을 연재하기도 했었는데, 찾아보니 2004년에 세번째 판이 <제비는 푸른 하늘 다 구경하고>(따뜻한손)로 출간됐다. <화가 손상기 평전>(랜덤하우스중앙, 2000)도 그의 작품이다.

-‘작가의 방’…, 이라는 묘한 울림의 에스프리를 담은 책이 나왔다. 한국일보 수석논설위원인 문학기자 박래부씨가 우리 시대의 좋은 시인 소설가 6명- 이문열, 김영하, 강은교, 공지영, 김용택, 신경숙- 의 집을 찾아가, 집과 방과 책과 책상을, 거기에 녹아 든 햇살과 바람과 음악과 그림을, 또 그들의 시와 소설을 이야기한 책이다.

-그들의 빛나는 문학이 탄생한 공간과 거기에 투영된 작가 자신의 내면이 아스라한 거리를 두고 그들의 문학과 만나는 지점들. 필자는 그 지점의 표정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격조 있는 문체로 담아냈고, 출판저널 기자 박신우씨는 사진으로, 일러스트레이터 안희원씨는 맛깔스러운 그림으로 빈 곳을 채워주고 있다.

-처음 들른 ‘방’인, 소설가 이문열씨의 경기 이천 ‘부악문원’을 두고 그는 “그 자체가 평생 추구해온 탈이념적 복고주의적 이상과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혹은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디세이에 다름 아닐 것”이라고 썼다. 그 정신적 ‘오디세이’의 서재는, 성채를 방불케 하는 규모와 공간 벽면을 가득 채운 저서에도 불구하고, 자기 과시나 예술적 취향에는 거의 돈을 들이지 않았다. 철저히 ‘기능적’이다. “검소한, 또는 무미건조해 보이는 취향 고백을 듣지 않더라도, 그의 소설 역시 예술지향적이기보다 철학지향적이다. 그러나 이는 그가 문학에만 전력투구하는 유형의 작가라는 것, 목표와 주제에 치열하다는 것을 말해준다.”(29쪽)

-이렇듯 그가 안내하는 작가의 방은 그들의 내밀한 사생활을 들여다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10여년 전 ‘문학기행’시절의 행로에서 문학이 배태된 거시 공간을 살폈다면, 이번 책에서 그는 작가들의 미시공간, 그리고 내면의 공간을 살핀다.

-자유로운 인문주의자의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젊은 소설가이자 교수인 김영하씨의 연구실, ‘꾸밈없는 착함이 거처’하는 강은교 시인의 소박하고도 정갈한 방, 작은 도서관쯤은 될 법한 장서를 갖추고 책이 자신의 오락이라고 말하는 소설가 공지영씨의 ‘방’.

-시골 청년을 시인으로, 지식인으로 성장시킨 ‘조강지처 같은 책’들을 둘 데 없어 학교와 고향집, 전주의 아파트에 나눠 쌓아두고 있는 김용택 시인의 ‘방’을 나서며 그는, “자연 전체를 하나의 큰 서재로 여기는 시인은 드물지만 행복하다”(231쪽)고 썼고, ‘집 전체가 정갈한 카페’를 연상케 하는 소설가 신경숙씨의 집필공간 옆 책장에서는 ‘문학전집’을 꺼내보기도 한다. 작가가 대학에 입학하던 해에 큰오빠가 선물한, 소설 <외딴방>에 그 과정을 쓰기도 했던 그 오래된 책이다.

-필자는 작가들의 서재에서 귀하고 반가운 책이나 사상가를 만나면 못내 지나치지 못하고 자신의 단상을 적는다. <외딴방> 이야기 끝에 필자의 대학시절 야학교사 경험을 이야기하는 등 기억을 더듬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작가의 방과 그들의 문학 이야기일 뿐 아니라, 기사로 문학텍스트를 심심찮게 압도했던 문학기자(필자)의 삶과 문학에 대한 열애의 은근한 추억담 같기도 하다. 책에 실린 사진들은 30일부터 내달 6일까지 종로구 사간동 ‘유갤러리’에서 전시된다.

06. 05. 30.


 

 

 

P.S. 서재 훔쳐보기가 흥미로웠다면, 아예 돗자리 펴고 작가들의 사생활까지 염탐해볼 수도 있겠다. 김화영 교수의 <한국 문학의 사생활>(문학동네, 2005)이 요긴한 길잡이가 되어줄 듯하다. 시인들 얘기는 <시인박물관>(현암사, 2005)에서도 엿들을 수 있겠고. 끝으로 맘에 드는 서재 이미지를 하나 옮겨온다. 다소 호사스러워 보이긴 하지만,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는 게 염치 있어 보인다(물론 서가가 사방을 둘러싸고 있어야 하지만). 가끔은 내가 가족뿐만 아니라 책들도 혹사시키는 게 아닌가란 자책이 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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瑚璉 2006-05-30 11:13   좋아요 0 | URL
마지막 이미지는 안보이는데요?

로쟈 2006-05-30 11:17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아직은 보이는데... 가 아니군요. 다시 구해와야겠습니다.^^

3794 2006-05-31 19:34   좋아요 0 | URL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는 게 염치 있어 보인다'// '염치 있어보인다' 는게 무슨 뜻인가요?^^;;

로쟈 2006-05-31 19:51   좋아요 0 | URL
염치란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입니다. 고작 책들로 많은 공간을 차지한다는 건 염치 없는 일인지라...